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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체제=불법국가(Unrechtsstaat)? - 3 (튀링엔주 연정합의서 전문)

원문

 

"동독 시민권운동 안에서 태동하여 발생한 정당인 동맹90/녹색당과 사민당뿐만 아니라 좌파당(Die Linke)에게도 SED-독재를 그 크고 작은 모든 면에서 면대하고 그 진상을 접수하는 일은 (面對、接受真相 -Aufarbeitung) 불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 지향적이지도 않다. 관건은 내일의 민주 문화다. 사회 전반을 아우르고 사회전반이 받아들이는 面對、接受真相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독은 독재였다. 법치국가가 아니었다. 자유롭지 못한 선거들로 인하여 이미 국가 행정의 구조적이고 민주적인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권리]법(Recht)과 정의가 동독에서는 크고 작은 권력자 하나가 원하면 [바로] 끝장났기 때문에, 모든 [권리]법과 정의가 체제에 순응하지 않게 행동하는사람들에게는 사라졌기 때문에, 동독은 결론적으로 불법국가(Unrechtsstaat)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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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체제=불법국가(Unrechtsstaat)? - 2

연방하원 학술 지원처(Wissenschaftliche Dienste)가 법치국가 혹은 “불법국가”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자.

[번역] 원문

 

 

“Unrechtsstaat”(불법국가) 개념의 과학적인 정의

 

과학적으로 타당한 “Unrechtsstaat” 개념은 법학뿐만 아니라 사회인문학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논쟁에서 “Rechtsstaat”(법치국가)와 “Unrechtsstaat”( 불법국가)를 대립을 빚는 한 짝으로 만들어 자주 사용한다.

 

이런 논쟁에서 의도되는 것은 대개 불법국가라고 낙인 찍히는 국가의 정치적 질서를 법치국가적으로 구성된 체제 저편의 것으로 규정하고 도덕적으로 악평하기 위함이다. (밑줄 ou)

 

법치국가개념의 생성은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Rechtsstaat”(법치국가)란 복합어는 단지 독어권에만 있는 신생어다. 다른 언어에는 [법치국가] 개념이 이런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없다.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rule of law"(법치)란 표현도 [Rechtsstaat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니다. Rechtsstaat 개념은 18세기 말에 등장했다. 처음엔  전제주의적인 경찰 및 군주국가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개념화되었다. 따라서 독일 법치국가개념은 근원적으로 경찰국가적이고 가부장적인 지배구조들의  퇴치와 합리적인 개혁을 대신하는 개념이었다. Rechtsstaat 이념은 유럽과 북미의 근대적인 리버럴한 사상과 자유주의적인 정치체제 발전에서 핵심적인 결과물의 하나로 간주 될 수 있다.

 

학계에서는 형식적인 법치국가개념와 실질적인 법치국가개념을 구별한다.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올바른 것과 정의로운 것 안에서 추구되는 것을 목적으로 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정치체제의 조직을 통해서 현실화하고 보존함으로써 정당성이 부여되는 국가를 일컫는 개념이다. 반면 형식적인 법치국가개념은 정치적 이념과 지침의 현실화 방법에 초첨을 맞춘다. 이 맥락에서는 국가가 법안전체제로(Rechtssicherheitssystem) 축소된다.

 

(중략)

 

독일에서는 1848년 부르주아 혁명의 실패 이후 법치국가개념의 형식화가 관철되었다. 이 형식화는 이성법적 접근뿐만 아니라 개별주의적 접근에 반하는 것이었다. [결과] 법치국가개념은 본질적으로 행정법상의 권리보호와 함께 행정의 적법성으로 축소되었다.

 

[이렇게] 법치국가개념은 형식적인 법실증주의적인 개념("Gesetzesstaat")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규정된 법규(Rechtssätze)에 의해서 국가의 행정(Handeln)이 예측가능하게, 계산가능하게, 그리고 독립적인 법원을 통해서 통제가능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중략)

 

법치국가 개념의 보편 타당한 정의는 이 개념에 대한 학계의 광범위한 토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활용가능할 만큼 다져지지 않았다.

 

법치국가는 다면적이고, 전혀 다른 헌법상의 관점들을 아우르는 법리로서 수많은, 종이 다른 하위원리들을 망라하기 때문이다.

 

(중략)

 

법치국가를 보편 타당하게 정의하는 여려 어려움을 직시하면 “불법국가” 개념의 타당한 정의 또한 없다는 게 의아한 일이 아니다.  이 개념은 통상적으로 법치국가 원리를 현실화하지 않는 체제의 성격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실존하는 정치체제에서 어떤 원리들이 얼마큼 현실화되어야 법치국가 혹은 불법국가로 표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학계와 정계에서 입장에 따라 극히 다를 것이다.(밑줄 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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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1.

내 기억에 배고픔의 기억은 없다. 배고픔을 체험해 보긴 했지만 배고픔이 지배적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페니히(Pfennig/유로화 이전 독일 마르크 최하 단위, 약 5원)를 긁어모아 밀가루를 사 본 적은 있지만 배고픔이 나를 사로잡은 적은 없었다. 손 가득 동전으로 밀가루를 살 때도 밀가루 대신 담배를 살까말까 망서렸다.

 

2.

아침이 멀건 죽이다.

“우리 이렇게 가난해? 며칠 더 견디기 위해서 이렇게 묽게 한 거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어?”

짝지의 볼이 볼그스레해지더니 이내 겸연쩍은 미소로 피어 오른다. 긴 산행 중 익숙해진 포리쥐(Porridge)를 종종 먹는다. 짝지는 이런 거 절대 안 먹는데, 아파 누워있을 때 해주었더니 맛있다고 종종 먹는다. 근데 우유 대신 물로, 그리고 묽게 끓어야 맛있단다. 근데 어찌나 멀것케 끓였는지 밑바닥이 보일 정도다.

배고픔의 기억은 어쩜 배고픔에 대항하여 싸우는 어머님의 기억일 거다. 배고픔을 그날의 측량단위로 환산한 어머님.

 

3.

독일에서 소비되지 않고 버려지는 식품이 연 2천만 톤이란다.

베를린엔 쓰레기 처리되는 식품을 구하자는 청년들이 있다.  운동을 벌인다. 슈퍼에서 유통기한 이전에 버려진 식품을 쓰레기통에서 구해서 생활하는 청년들이 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산다. “containern”이란 신생어가 생길 정도다.

“식품나누기”(foodsharing)가 이제 독일 대도시엔 자주 보인다. 거주지 길목에 냉장고를 세워놓고, 거기다 샀지만 소비되지 않을게 빤한 음식물을 갔다 놓으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서 소비한다. 이렇게 음식물을 구[제]한다 (Lebensmittel retten). (참조: lebensmittelretten.de)

 

4.

어제 제2차 식량관련 국제회의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 약 8억이라고 발표했다. 절대 식품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다. 어찌해야 하나?      

전혀 보지 못했던, 식품이 넘쳐나는 서독의 슈퍼마켓에 구토하면서, 전혀 보지 못했던, 먹지못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과 언쟁을 벌였던 어린 시절의 논리는 단순했다. 너무 많이 먹는 놈이 있으니까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근데 이건 또 무슨 희귀한 현상인가? 못사는 사람들이 중심부에서는 뚱뚱하고 주변부에서는 삐적 말라 있다.

 

5.

음식물을 함부로 버리는 걸 7대 죄에 포함해서 8대 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단테가 그 죄에 대한 형벌이 뭔지 실감나게 서술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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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체제=불법국가(Unrechtsstaat)? - 1

글의 짜임새는 건축물과 비교될 수 있다. 건축물은 꼭 지붕이 있다. 그리고 지붕을 받쳐주는 기둥이 있다. 기둥은 지붕을 지탱할 수 있도록, 지붕은 기둥에 맞게 계산되고 설계된다. 글에도 이와 같이 기둥과 지붕이 있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글에서는 지붕과 기둥이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아이의 글에서 그런게 아니라,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글에서 그렇다. 기둥 하나는 동쪽 끝에, 다른 하나는 서쪽 끝에 세우고, 손바닥만한 지붕을 그 위에 올린다. 그리고 보란듯이 내놓는다. 건축물이라면 건축계에서 영원히 쫒겨날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임금님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레기를 먹고 사는 글쟁이들이 “임금님 옷 참 멋있다”하듯이 “훌륭한 집이네” 한다.

 

“Bundesstiftung zur Aufarbeitung der SED-Diktatur”(보통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 청산재단”으로 번역되는데 “Aufarbeitung”의 개념을 살펴보고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겠다.)와 우드로우 윌슨 국제센터가 공동 저술한 “Coming to Terms: Dealing with the Communist Past in United Germany”가 이런 유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여기 영어 원문, 한글 번역본, 중국어(중국 본토/대만) 번역본, 그리고 스페인어 번역본을 내려 받을 수 있다.

 
우선 원문의 들어가는 부분과 한글 번역본을 비판해 보려고 한다.
 

해당 부분 원문은 아래와 같다.

 

“During the course of the 20th century Germany experienced two different dictatorships, the twelve years of fascist Nazi Germany’s “Third Reich” between 1933 and 1945 and the 40 years of communist rule in East Germany between 1949 and 1989 (the latter preceded by Soviet military occupation of Eastern Germany and East Berlin since 1945 when German communists were guided in building up dictatorial structures).

Both periods of dictatorships had some structural elements in common while they also displayed obvious contrasts. Both dictatorships started and ended very differently, with Nazi Germany resorting to a global war of aggression resulting in millions of war dead and the genocide of European Jewry. Respective crimes committed by the two German dictatorships differed vastly in scope and geographical range.”

 

여기서 주제화된 문제는 독일 정치지형에서 매우 현실적인(aktuell) 문제다.  독일연방대통령이 지난 9월 1일 폴란드 그단스크에 있었던 2차대전 발발 기념식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 푸틴을 히틀러와 동일시하는 연설에 이어서 최근 튀링엔주의 좌파당 주도 연정 구성의 가능성을 앞두고 (사민당 당원들의 찬반투표를 앞두고) 좌파당이 아직 동독 통일 사회당과 결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등 동독체제와 나치체제를 “불법국가”(Unrechtsstaat)란 개념을 적용해서 동일시하는 경향이 팽배하다. 

 

이건 오래전부터 다듬어진 인식이다.

 

참조한 글에서 나치독일과 동독이 어떻게 비교되고, 또 한글로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

나치체제와 동독체제를 “two different dictatorships”라 한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이성인가? 아니라고 한다. 최근류(genus proximum)와 종차(differentia specifica)를 따지는 전통적인 정의 방식을 동원해서 둘 다 한통속이라고 은근슬쩍 주장한다. 최근류로는 “some structural elements in common”(공통의 몇몇 구조적 요소들)을, 종차로는 “obvious contrasts”(자명한 차이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structural elements”(구조적 요소들)의 질적 정체를 밝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some”(몇몇의)이 10개 중 하나인지 둘인지, 100개 중 둘인지 셋인지 그 양적 정체도 밝히지 않는다. 양과 질이 밝혀져야 비교가능한 게 아닌가?

 

구조적 요소를 들먹이면서 나치체제와 동독체제가 같은 속성이라고 전제한 다음, 차이는 그 속성의 현상화에 있다고 한다. “obvious contrasts”(자명한 뚜렷한 차이)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당연히 각 현상의 시작과 끝은 다르다. “obvious”한 것이다. “길에 오르는”((라)ob viam = obvious)데 있어서는 각 현상이 다른 건 자명하다.

 

나치체제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설명한다.   

 

“Nazi Germany resorting to a global war of aggression resulting in millions of war dead and the genocide of European Jewry”

“나치 독일은 수백만명의 전쟁사망자와 유럽 유대인의 인종청소로 귀결되는 지구적 침략전쟁을 일으켜”

 

그러나 동독체제의 시작과 끝은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표현은 “war dead”란 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전쟁에서 어쩔 수 없이, 불가향력적으로 발생하는 사망자란 의미가 농후하다. 이건 역사 왜곡이다. 나치의 전쟁범죄로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주로 동유럽 슬라브 민족과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디터 폴(참조: Dieter Pohl: 1939-1945 나치 시대의 핍박과 대량살상, 2003 다름슈타트/위키에서 재인용http://de.wikipedia.org/wiki/Kriegstote_des_Zweiten_Weltkrieges#cite_note-5)에 따르면 나치전쟁범죄로 학살되 민간인은 1천 3백 37만명으로 집계된다. 그리고 인명피해가 가장 많은 국가는 2천 7백만명으로 쏘련이었다 (같은 곳 참조)

 

이런 ‘차이’를 말소할 수 없었는지 필자는 아래와 같이 결론한다.

 

 “Respective crimes committed by the two German dictatorships differed vastly in scope and geographical range.”

“이 두 독일 독재체제가 자행한 범죄들은 그 규모와 [범죄현장] 지역의 크기에 있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차이”(differ vastly)가 나치체제와 동독체제를 비교불가능하게 하는 게 아닌가?

 

Vast의 어원은 (라) vastus로써 (라) immanis와 거의 함께 쓰인다. 측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치체제의 범죄와 동독체제의 범죄 간의 차이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있다. 나치체제와 동독체제를 비교하려면 그 차이를 메워주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공허하다 (vastus).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시편 103편 12절) 서로 뚝 떨어져 있다.

 

이렇게 서로 뚝 떨어져 있는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이데올로기 공세가 주조한 손바닥만한 지붕을 올렸다. 말이 안되는 걸 스스로 인식하면서 억지로 집을 짓는다.  

 

   
2.  공식 한글번역

 

“통일 독일에서의 과거 공 산주의자 청산문제

20세기, 독일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간 파시스트 나치(제 3제국) 독재역사와 더불어 1949년부터 1989년에 걸친 동독 공산주의 독재역사를 경험했다. (1945년 소련군의 동독과 동베를린 지역 점령이래로 동독의 독재체제가 구축되었다.)
 
이와 같은 두 독재기간은 구조적 요소간의 공통점들을 가지는 동시에 시작과 몰락에 있어 큰 차이점을 보인다. 나치 독일은 세계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살상하였고 유럽 내 유대인 대량학살을 자행하며 독재정권을 이어갔다. 이 두 독재체제로 인해 발생한 범죄들은 그 성격과 지정학적 범위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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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브라더

상상해 보자.

 

모든 사람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몸수색을 받는다.  버스 정류장, 전철역, 공항 등 교통 요충지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모든 길목에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기록된다. 그리고 퇴근 후 누구랑 만나는지 다 기록된다.

 

근데 이게 상상이 아니다. 사이버공간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대태러전쟁, 사이버 안전을 빌미로 하여 전체적인 감시체계가 구축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해외 전담 정보기관인 BND(Bundesnachrichtendienst/연방정보국)에 SSCD(SIGINT Support for Cyber Defense)란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모든 통신망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통제.수색하여 뭔가 이상한 것이 있으면 죄다 색출한다는 구상이다.

 

공화국 이념과 배치되는 비밀 정보기관의 통제와 투명성은 열린사회의 관심거리다. 열린사회는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게 통신하고 접촉하기를 원한다. 이런 자유를 저해하는 수많은 불량소프트웨어가 있다. 사이버 공간의 길목에, 교통 요충지에 협잡꾼들이 있다. 정보기관이, 정권의 주문아래, 이런 협잡꾼들과 똑 같이 소매치기, 사기행각 등에 용이한 방법(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사용함으로써 누가 협잡꾼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참조기사

FAZ: Was der BND wirklich will (BND가 정말 원하는 것은?)

Kopp Online: Überwachung total: Die Wunschliste des BND (감시 토탈, BND의 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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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오래만에 윤선애를 찾았다.

 

성민이가 소개한 꽃다지 노래를 듣다가 윤선애를 찾게 되었다. 어딘가에 테이프(!)가 쳐박혀 있을 거다. 유투브로 몇 곡 들었다. 찡하다.

 

유선애 못지않게 청아한 목소리로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불렀던 ㅈ 언니가 보고 싶다.

 

어디에 있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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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 비판

한참 지난 연설이다. 시간이 허와 실을 밝혀 준다. 내구성이 없는 그날의 요구는 허섭스레기처럼 조용히 이는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태풍이 필요없다.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날의 요구는 정신이 이끌어 주는 방향으로 변형되어 오늘의 요구로 다가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이 과연 “기대감을 갖[을]”(염돈재) 만한 연설이었는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렇다.  

 


1.

세상 흐름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이었던 연설들은 수취인(adressee)이 분명했다. Address – 특정 대상을 향하여 하는 말인 연설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이다. 실재하는 잠재력이 수취인이 된다.

 

근데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청중은 있지만 수취인은 없다. 애매모호한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63년 6월 26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있었던 케네디의 연설은 이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수취인이 뚜렷하다. 비스마르크 총리의 재밋는 말(bon mot)을 빌려 자유대 학생들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더 큰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서 죽도록 공부하는 학생, 먹고노는 학생, 그리고 차기 지도자가 될 학생으로 3등분 하고, 이 마지막 분류에 호소한다. 이들에게 너희들이야말로 세계 시민으로 교육되어 진보세력이 감당해야 할 어렵고 예민한 인류의 과제를 수행할 사람들이라고 어필한다.    

 

여기에, 특히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분명한 수취인이 없는, ‘연설’이라 할 수 없는 잡다한 것을 나열하는, 대기업 홍보이사의 발표와 다름 없는 對고객 광고에 불과하다. 좋은 것을 망라하는 겉치장에 불과하다. 정신이 없다.

 


2.

힘이 있는 연설은 수취인을 분명하게 한 다음 반성과 자아비판을 촉구한다.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리고 반성과 자아비판의 척도와 장은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고 수취인이 추구하겠다고 스스로 작정한 가치들을 기반으로 한다. 베를린 자유대에서의 케네디의 연설은 진리,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베를린 자유대의 기풍(genius loci)을 반성과 자아비판의 장으로 삼는다. (자세한 내용은 http://blog.jinbo.net/ou_topia/649 댓글 참조)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에 저런 반성과 자아비판의 계기가 있는가? 전혀 없다. 여기에 염돈재가 끼어 들어 동방정책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자아비판이 아닌 타자비판을 일삼는다. 그래서 자아비판을 거쳐서 타자를 아우르는 전체로 나아가는 계기가 없다. 삿대질 이상이 될 수 없다.

 

드레스덴 공대의 기풍도 고작 “명문”이다. 밥그룻 문제를 잘 해결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진실,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비해 협소하기 짝이 없는 어필이다.
 
 
3.

세상을 바꾸는 힘을 부여하는 연설은 현상태(status quo)에 안위하지 않는다. 현상태를 타파하는 보다 큰 지평을 연다. (“So this is our goal, and it is a goal which may be attainable most readily in the context of the reconstitution of the larger Europe on both sides of the harsh line which now divides it. - 케네디 베를린 자유대 연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국제사회 기구들을 나열하는데 그친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없다. 염돈재가 자청해서 우물안 개구리 모습을 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기업 총수에게는 어울릴지 몰라도,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는 정치 지도자 격에는 한참 부족한 연설이다.


“국제사회야, 나 좀 봐줘. 나 정답 알고 있지, 그지?” 정답 답습에 급급한 한국 교육이 만들어 낸 협소한 정신에서 나온 연설이 아닌가 한다. 염돈재의 말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근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이 빠져있는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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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의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에 대한 비판 - 3

독어에 “falscher Zungenschlag”이란 표현이 있다. 말을 하려면 혓바닥(Zunge)을 굴려야 하는데, 의도와 어긋나는 상황을 억지로 끼어 맞추려고 할 때 혓바닥이 의도와 달리 어만(falsch) 곳을 때려(Schlag/schlagen)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 걸 두고 사용하는 말이다.

 

염돈재의 글에 이런 ‘falscher Zungenschlag’이 있다. 정신분석 대상이다.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는 셋째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셋째, 우리는 서독이 동독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품 연평균 20억달러 가운데 77.1%는 서독 주민과 교회가 동독 친척과 교회에 보낸 물품이며,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지불한 금품은 15.7%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돈은 우편·철도·도로 사용료 및 정치범 석방 대금 등 동독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반대급부일 뿐 무상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서독”이 경제지원을 했다는데 그 주체가 애매모호하다. 브란트와 슈미트 사민당 총리들이? 아니면 기민당 콜 총리가? 앞에서 “사민당이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면” 하는데 과거 사민당이 집권할 때 그랬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하지 않은 콜 총리가 경제지원을 그만 두었다는 말인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다.

 

대동독 경제지원 실상은 이렇다.

 

우선 내독 교역을 보자.

 

출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Peter Gey, Die Wirtschaftsbeziehungen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1949-19 (1949-1989 서독과 동독간 경제관계, http://library.fes.de/pdf-files/bueros/seoul/02837.pdf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인 상승을 보이고 있다. 이어진 선은 동독으로 수출, 점선은 동독에서 수입, 마지막 선은 거래액 - ou)

 

내독 교역관계는 1982년 콜 총리 정권이 등장한 후에도 지속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단절이 없다.


염돈재는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품 연평균 20억달러 가운데 77.1%는 서독 주민과 교회가 동독 친척과 교회에 보낸 물품이며,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지불한 금품은 15.7%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어디서 얻어온 수치인지 알 수 없다.


쿤레(G. W. Kuhnle)의 1993년 박사논문 “Die Bedeutung und Vorteile der deutsch-deutschen
Wirtschaftsbeziehungen für die DDR. Eine Analyse unter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paraökonomischer Aspekte”(독.독 경제관계의 의미와 이점. 경제외적 관점을 특별 반영한 분석)에 근거하여 페터 가이가 젝공한 앞 자료에 의하면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품은 연평균 40억 마르크를 웃돈다. 이중 약 50% 20억 마르크는 서독 정부의 각종 정책 – 스윙, 동독통과 고속도로 사용료 등 – 에 의해서 동독 정부에 이전된 금품이다. 그리고 서독 주민이 동독에 보낸 물품을 마르크로 환산하면 추정하면 연 약 10억 마르크가  된다. 이 외 서독 주민의 동독 방문시의 강제교환금, 비자수수료, 동독 통과고속도로에서의 구매 등 12억 마르크 상당의 금품이 동독에 이전되었다. 합산하면 40억 마르크(당시의 환율로 약 20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참조: 같은 곳, 15쪽)

 

그리고 “ (…) 이 돈은 우편·철도·도로 사용료 및 정치범 석방 대금 등 동독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반대급부일 뿐 무상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고 하는데 누가 언제 무상 지원하자고 했었나?

 

그리고 호네커의 동독 주민의 물질적 생활수준을 높인다는 정책이 동독이 대외 자본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채무불능이 되었을 때 도와 준 사람이 누구였던가? 1983년 ‘공산주의 혐오주의자’ 바이에른주 총리 슈트라우스를 앞세워 콜 총리가 호네커에게 10억 마르크를 건내 주지 않았던가? 이게 동독 호네커 체제를 연장했다는 비판이 있다 (참조: 바이에른 공영방송 BR, http://www.br.de/nachrichten/strauss-kredit-ddr100.html) 우파 일간 디 벨트(Die Welt)는 이 거래를 두고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지 못했던 원수지간이 거의 최고의 친구관계가 된 경위”(“Wie aus Todfeinden ziemlich beste Freunde wurden”)라고 꼬집는다.

 


Scghon der Fototermin war eine Sensation: Am 24. Juli 1983 trafen sich Bayerns Ministerpräsident Franz Josef Strau0ß und der DDR-Staats- und Parteichef Erich Honecker im Gästehaus Hubertusstock am Werbellinsee

(출처: 디 벨트, http://www.welt.de/geschichte/article118317130/Wie-aus-Todfeinden-ziemlich-beste-Freunde-wurden.html)

 

물론, 내독경계선 지대에 설치된 자동발사장치 철거 등 반대급부가 있었다. 여기에 기민당, 사민당 다른 점이 없었다.


학자로 탈바꿈한 염돈재 학장님이 이젠 그만 빌어먹고 학자에 걸 맞는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다. 토종적인 주둥이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겠다는 루터의 권위를 빌려 말하자면 좆까 그걸 생긴대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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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의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에 대한 비판 - 2

염돈재의 글은 안봐도 빤한 논리전개로 이어진다.

 

동방정책의 목적이 동독정권변화에 있다는 왜곡의 이면에는 사실 동방정책의 목적이 혹은 그 결과가 동독정권강화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출발한 논리 전개는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동방정책이 단절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염돈재는 바로 저런 논리전개를 한다. 원문을 보자.

   

“둘째, 많은 사람은 기민당의 콜 총리가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계승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콜 총리는 동독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침만 이어갔을 뿐 사민당 정책 기조는 계승하지 않았다. 콜 총리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사민당 요구대로 동독 탈출민의 수용을 거부하고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지연됐거나 불가능하게 됐을 가능성이 많다. 위기에서 벗어난 공산 잔당이 다시 세력을 얻어 통일을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을 짚고 넘어가자.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은 맏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 한국의 친지 노인네들과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눈다. “지난 번에는 스위스와 독일 국경사이에 있는 보덴제 호수에 다녀왔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거기서 머냐?” 착시현상의 한 발현이다.

 

그런데 이런 착시현상이 뚝 떨어져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두고서도 일어난다. 염돈재는 분명 역사적인 사건들의 시간성 – 공간적으로는 거리성 – 을 가늠할 줄 알 거다. 근데 그는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을 취하고 일반인들을 우롱한다. 장벽이 붕괴된 직후의 상황과 동방정책이 만들어진 시기를 동시화하고 있다.

 

 비판 본론으로 들어가자.

 

계승이 문제다. 염돈재는 동방정책을 둘로 구분한다. 하나는 “사민당 정책 기조”고 다른 하나는 “동독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침”이다. 이렇게 구분하고 콜 총리가 사민당의 정책 기조는 계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민당 정책 기조”를 은근 슬쩍  “동독 탈출민의 수용을 거부하고 대규모 경제 지원”이라고 정의한다. 이어서 사민당 정책 기조가 관철 혹은 계승되었다면 “ 독일 통일은 훨씬 지연됐거나 불가능하게 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마지막에 드디어 염돈재의 글을 지배하는 팔림세스트 텍스트, 혹은 피벗 텍스트가 등장한다. 동방정책이 지속되었더라면 “위기에서 벗어난 공산 잔당이 다시 세력을 얻어 통일을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인다. 북한 지원하지 말라는 말이다. 북한 지원이 북한 체제를 강화한다는 말이다.

 

근데 동방정책의 기조가 바로 케네디의 제안의 연속 안에서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침”이었다. 다른 게 없었다.

 

그리고 사민당이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뭔가를 잘못 알고 있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독일 제 2 공영방송 ZDF의 탐사보도를 참조하라. (Die SPD war 1990 gegen die Wiedervereinigung – Stimmt so nicht/사민당은 1990년 통일을 반대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없는] 맞지 않는 말이다.  http://zdfcheck.zdf.de/faktencheck/spd-wiedervereinigung/) 누누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통일조약을 100% 찬성한 정당은 자유민주당 FDP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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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의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에 대한 비판 - 1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이 NK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이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 전문을 인용하고 싶지만 무단전재 및 재배포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부분인용을 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해 보려고 한다.

 

염돈재의 글 기조는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는데 박근혜 정부가 비로서 “(…) 독일 통일의 교훈을 올바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잘못된 길로 들어선 한반도 통일정책을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첫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모방한 독일 총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관한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조는 '접근을 통한 변화'였다. 염돈재는 이 정책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독일 통일 관련  “독일 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변해서 된 것이 아니라 동독 민주혁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망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접근을 통한 변화’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였나? 원문에 기대어 이 주장의 실과 허를 살펴보자.

 

“Das Ziel einer solchen Politik kann natürlich nicht sein, die Zone zu erpressen, denn kein
kommunistisches Regime, und schon gar nicht das so gefährdete in der Zone, kann sich durch
Wirtschaftsbeziehungen in seinem Charakter ändern lassen. Aber das haben schließlich auch nicht die Amerikaner verlangt, als sie Polen Kredite gaben, und das ist auch nicht der Sinn des
amerikanischen Wunsches nach verstärktem Osthandel. Uns hat es zunächst um die Menschen zu gehen und um die Ausschöpfung jedes denkbar und verantwortbaren Versuchs, die Situation zu
erleichtern.”

“이와 같은 정치의 목적은 물론 [쏘련 지배하의] 동독지역의(Zone) 협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공산주의 정권이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동독지역(Zone)에서와 같이 [지위가] 위태롭기 짝이없는 정권은 더더욱, 경제관계들에 의해서 자신의 [억압적인] 성격이 변화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런 변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aber)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schliesslich) 폴란드에 신용대출을 할 때 미국도 요구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게 또한 강화된 동구권교역을 원하는 미국이 뜻하는 바(Sinn)도 아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선(uns) 먼저 [동독] 사람들이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erleichtern) 생각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철저하게 이용하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한다.”(수정된 인용: http://blog.jinbo.net/ou_topia/566)

 

“접근을 통한 변화” 연설문 원문에서 동방정책의 기조가 ‘동독정권 변화’라는 걸 도출할 수 있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은 동독정권이 잘하면 변할 거라는 낭만에 젖어있지 않다. 오히려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전제한다. 매우 실용주의적인 미국 사고방식이 이 정책의 기조다.

 

그럼 염돈재는 왜 저렇게 말할까? 독해력이 문제인가? 아니면 미리 정해진 정치적 아젠다에서 도출된 주장인가?
 

진정 살펴봐야 할 문제는 교묘하게 회피한다. 문제되는 것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과 동독의 ‘민주혁명’ 사이의 관계다. 이게 긍정적인 관계였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관계였는지, 학자라면 바로 이걸  연구영역으로 삼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결론이야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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