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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영원한 소년 <마르크 샤갈>

몇달전부터 벼르던 전시를 오늘에서야 겨우내 보았다.

 

http://www.chagallkorea.com/

 

달리전에서 기대이하의 실망으로 상심이 컸던 난 샤갈전은 한층 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왜냐면 유명작가의 실재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내평생 올까말까하는

귀중한 시간이므로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것 때문이었다.

 

샤갈은 꿈꾸는 소년이었다.

하얀 수염을 달고 있는 할아버지의 머리에서 그려지는 것들에서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지 않은건 왜일까?

그건 꿈꾸는 자이기 때문에 가능할꺼다.

 

작가는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담고, 자신의 철학을 형상화한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색채의 감각이 점점 어두워지고 강렬해지는.. 어렴풋이

그에게도 속세의 품새가 느껴지지만 그가 그리는 세상은 여전히 땅에 닿아있기

보다는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

 

감동적이었다.

 

그에 그림속에서 살고 싶었다.

그가 그리는 마을은 외로움, 미움, 세상의 부정과 한발짝 떨어져 관조의 세계이다.

날개한쪽 달린 시계와 통통한 닭, 뿔인지 귀인지 구분되지 않는 말....

초가지붕의 집들, 광대, 앙증맞은 초생달까지...

그리고 푸근한 그녀...심지어 그녀의 동그란 가슴은 섹시보다는 귀여움이다.

어떤 것도 뾰족한 건 없다.

어떤 것도 둥글게 둥글게...

그의 선은 하나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고리와 고리를 이은 듯 잘게 쪼개져서

연결되어있다.

연결된 선은 화합을 의미하는 듯하다. 포용하고 너그러이 이해하는 사랑을 의미하는 듯하다.

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꿈꾸는 영원한 소년"이다.

육체는 비록 새하얗게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현실이 아닌 풍요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 샤갈...

그가 부러울 뿐이다.

유명한 화가여서가 아니라 평생을 꿈꾸며 살았던 행복한 인간이었기에 말이다.

 

직장인은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오후4시라는 환상적인 시간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전시장을

거닐면서 나는 오늘 한껏 마음의 풍요로운 여유를 느꼈다.

행복하다....

 

경향신문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마르크 샤갈(1887~1985)은 고향 백러시아의 작은 유태인 마을 비프테스크, 그리고 미국 망명기간(1941~1948)을 제외하고 일생을 보낸 프랑스를 소재로 마술사 같은 환상적 색채를 사용해 자전적인 고백 같은 연인들의 사랑과 종교적 주제를 표현했다.

“불어 발음을 잘 못하는 러시아 출신 유태인”이라며 샤갈을 비웃기도 했던 피카소조차도 “마티스 이후 샤갈만이 색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화가이며, 르누아르 이래 샤갈만큼 빛을 잘 파악한 화가는 아무도 없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항상 작품속에 연인 중 한 명이나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 수탉 등으로 자신을 표현한 샤갈은 푸른 색과 빨강, 노랑과 녹색을 주조로 환상적 색채의 하모니를 이루어냈다. 푸른 색은 자유의 상징이면서 유태인으로서 종교적 숭배를 나타내며, 빨강은 유태인에 대한 형제애를 표현하고 땅의 색이기도 하다. 녹색과 노랑은 기쁨과 평화를 나타낸다.

한 시대를 주름잡는 미술사조에 자신을 맡기는 일도 단호히 거부한 샤갈은 파리 유학에서 돌아와 고향 비프테스크 미술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당시, 교사의 한 사람이었던 절대주의자(한가지 색으로 전체 화폭을 칠하는 추상주의의 한 사조) 말레비치와도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유태인 극장 패널화 중 ‘음악’ 부분에서 악사의 옷차림이나 배경에 작게 그려놓은 검은 네모와 부채꼴 모양은 말레비치의 추상적 절대주의가 그리 대단할 것 없다는 샤갈의 예술적 자존심에서 빚어진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10월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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