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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0/01

혼란을 거듭한 민주노총 후보논의, 혁신과 투쟁을 결의하는 선거운동으로

지난 1월 8일 민주노총 6기 임원선거에 위원장-사무총장 후보 3팀, 여성부위원장 후보 5명, 일반명부 부위원장 후보 8명이 등록했다. 그러나 임성규-신승철 후보 사퇴, 연이은 부위원장 후보 사퇴로 선거초기부터 여러 논란과 소문이 무성하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는 일부의 통합단일후보 추진 세력과 일부 산별연맹대표자들의 무조건적 형식적 통합단일후보 구성 논의가 결정적 요인이라는 지적이 대두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을 합의한 정파가 ‘합의’를 깨고 후보를 냈다는 주장, 각 정파들의 패권성 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12월 12일 민주노총은 의견그룹들에게 ‘통합단일후보’에 대한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제안했다. 현장파인 ‘노동전선’은 통합단일후보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출하고 이어 민주노총 혁신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제기했지만 범국민파 진영에서 ‘토론회는 분열만 가중시키므로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해 공개토론회는 무산된바 있다. 결국, 혁신과제는 공론화되지 못한 채 ‘통합’ 만 중요하게 떠올랐고 이에 노동전선의 반대로 통합단일후보는 사실상 무산됐다.
통합논의가 불발되자 일부 산별연맹대표자들은 별도로 통합단일후보논의를 진행하고 논란 끝에 임성규-신승철 현 위원장-사무총장을 ‘통합단일후보’로 추대하고 등록했다. 여기에 ‘범국민파진영’에서 김영훈-강승철후보, 노동전선에서 허영구-이정행후보가 최종 등록하게 됐다. 그러나 임성규 현 위원장은 “이미 수차례의 불출마를 선언한바 있고, 이미 3팀의 후보가 나온 상황에서 자신이 내세운 통합이라는 명분조차 상실했다”며 결국 1월 11일 후보 사퇴와 함께 위원장직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통합단일후보’ 논의는 지난 6년간의 실정에 대한 대중적 평가를 피하고, 혁신과제 대한 충분한 공론화 없이 사람중심의 논의와 정파운동의 반정립으로 논의되다 결국 혼란만 초래했다는 평가다. 일부에서는 ‘통합’논의를 이끌었던 일부 산별대표자들 역시 ‘범국민파’ 계열로 정파운동의 반정립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었다는 평가도 대두된다. 
2파전으로 치러질 민주노총 후보들의 주요 공약을 살펴보면, 기호1번 김영훈-강승철 후보는 ‘현장에서 준비된 승리하는 민주노총’이라는 슬로건 하에 ▷ 조직운영의 혁신, 현장과의 소통으로 신뢰받는 민주노총 ▷노동기본권-서민기본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총 ▷고용보장, 살맛나는 일터로 노동자의 희망이 되는 민주노총 ▷반MB 연대전선 확대로 국민과 함께 승리하는 민주노총!을 주된 공약으로 제출했다.
기호2번 허영구-이정행 후보는 ‘강한 민주노총! 당당한 조합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지난 6년에 대한 평가 하에 ‘강한 민주노총 재건을 위한 투쟁·혁신·연대전략’을 제출하고 주요하게 ▷반자본-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정면 돌파 ▷ 투쟁회피, 투항적 노사정 야합, 면피성 대정부교섭 척결 ▷ 2013년 내 임원-대의원 직선제 실시 ▷집행력혁신-지역운동 강화 ▷여성주의와 결합된 노동운동 혁신과 변혁성 강화 ▷비정규직-중소영세 노동자 조직화로 계급대표성 강화 ▷진보적-변혁적 노동자 정치운동 확산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출했다. 
이명박 정권과 임기를 함께할 이번 6기 임원선거는 노동운동의 명운을 걸고 반자본-반MB투쟁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힘 있게 결의해야할 민주노총의 투쟁의 장이 돼야 한다.
조합원들의 냉대와 무관심속에 대의원 간선제로 선출되는 것이 아닌 투쟁과 혁신의 열기를 모아내는 그런 선거를 기대해 본다.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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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잃어버린 정체성부터 찾아야

 ‘다 같이 잘해보자’로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 마주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

민주노총 선거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정파운동이 조직을 흔들어버린다’는 정파운동에 대한 공격부터, 무조건적 통합이 강요되기도 한다. 후보사퇴라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논란의 배경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존재한다. MB정권의 노동자에 대한 적대의식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면서 ‘민주노조’ 존립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위기의 원인 진단과 해법이다. 일부에서는 정파운동의 폐해가 심했으니 어려운 때이니만큼 공조직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통합지도력 구축을 통해 돌파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사실 의도와 무관하게 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정파운동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위기는 총체적이다. 단순히 사회적 위상추락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조차 ‘부끄러운 조직’이 됐다는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극복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안정성’이 아니라 ‘정체성’
왜 그런가. 지난 6년 동안 소위 국민파가 집권한 민주노총은 사상 초유의 지도부 비리사건, 성폭력 사건으로 얼룩져 민주노조의 도덕적 우위는 사실상 해체됐다. 단위 사업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요 대공장의 채용비리와 회계비리 등의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일부 노조들의 노사담합적인 밀실 이면합의 등이 언론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민주노조의 도덕성, 자주성이 훼손됐다.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둘러싼 조직 내 갈등은 조직의 지도력을 약화시켰다. 노동조합의 민주주의가 ‘다수결’ 로 협소하게 인식되고 왜곡되면서 패권적인 조직운영에 대한 비판적 제기가 대두됐지만 이런 문제가 제대로 소통되고 합의를 이뤄내기는커녕 ‘비판’은 정파의 이해로 왜곡됐다.
‘총파업 남발’이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준비된 총파업’ 구호는 허상이었고 로드맵, 비정규악법에 대한 민주노총의 투쟁은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조직력, 투쟁력은 급격하게 약화되고 ‘교섭’, ‘의회’에 의존하는 경향은 총파업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정권과 자본의 ‘대공장-정규직 노동자 이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의 실리주의적-투쟁회피적 경향을 제어하지 못하고 비정규노동자투쟁은 총노동의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방치되기 일쑤였다. 20년 민주노조 투쟁의 역사가 일궈 논 전체 노동계급의 대표성은 사라지고 연대는 약화됐다. 2009년 사회연대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과의 연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노동자 내부의 연대가 강조됐지만 용산투쟁, 쌍용차 투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민주노총은 ‘연대’라는 구호만 현란했을 뿐 그 어느 때보다 초라한 성적표를 갖고 있다.
이렇듯 지난 몇 년간의 민주노총을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고, ‘위기니까 평가나 비판하지 말고 통합해서 조직의 안정성을 회복하고 돌파하자’는 주장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오류를 반복할 뿐이다. 지금 민주노총이 직면한 문제는 ‘조직 안정성’이 아니라 바로 ‘잃어버린 정체성’ 이기 때문이다.

엄혹한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정체성 찾기
경제공황과 노동자들에게 적대의식을 갖고 있는 이명박정권의 대대적인 공격 앞에 놓인 민주노총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그 근본적 변화의 지렛대는 바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가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제 살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평가는 필수적이다. 상호 비판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최근 몇 년간의 민주노총 운동이 드러냈던 민주성, 자주성, 투쟁성의 훼손을 스스로 드러내고 집행부를 비롯한 대대적인 쇄신작업에 돌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노총 선거를 통해 공론화되고 소통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는 묻어둔 채 ‘다 같이 잘해보자’는 민주노총을 더 큰 위기에 빠뜨릴 뿐이다.
 

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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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이 남긴 과제] 주거권 확보와 도시공간의 사회생태적 전환을 위한 운동으로 이어져야

재개발 사업은 ‘사는 곳’ 개선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시장판’
용산참사를 낳게 한 원인의 하나인 재개발사업은 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등 사업의 성격과 범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불린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환경정비, 도심재생사업, 도시환경정비 등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겉으로는 노후 및 불량주택 등 주거환경, 놀이터·공원·소방도로 등 환경개선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공동체 보전과 생계터전 유지와 같은 사회적인 목적도 아울러 내세운다. 최근에는 생태친화적인 공간과 환경의 창출 같은 목표도 제출한다. 하지만 내세우고 있는 목적과는 달리 재개발 사업은 땅주인, 소수의 건물주와 가옥주를 중심으로 한 조합, 개발사업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자본에게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사업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게다가 건설회사에 자금을 대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의 금융상품, 부동산 담보대출 등으로 대출 장사를 하는 금융자본의 이해와 맞물리면서 재개발사업은 ‘사는 곳’의 개선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사고파는 ‘시장판’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주택공급의 원활이라는 목표와 다르게 뉴타운사업의 완료된 곳에서 원거주민 정착률은 15%미만에 그치고 있다. 원거주민의 전출과 이주수요로 주변의 전월세값은 뛰어 부담은 늘어나고 상가세입자들은 생계수단마저 빼앗기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민들은 주거권과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저항에 나설 수  밖에 없다.

멈추지 않고 있는 시한폭탄의 시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 시정자문위원회에서도 인정해, 뉴타운사업에 대해 실패라는 판정을 내리고 전면적인 검토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용산참사 이후에도 재개발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은 시늉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그린벨트까지 해제하면서, ‘보금자리주택’이라는 그럴 듯한 포장까지 하고, 재개발 사업을 더 빨리, 더 많이 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이러한 재개발사업은 뉴타운사업의 경우 서울에서만 34개 지구 190여 곳에 달한다. 이는 서울 전 면적의 20%에 달하고, 인구수로 따지면 서울인구의 15%가 해당된다. 서울만이 아니다. 대구에는 270여 곳의 도시정비사업구역이 있고, 광주에도 31개소의 사업지구가 있다. 재개발사업에서 자유로운 도시는 없다. 더군다나 2010년까지 도시재정비 10개년 계획(?2020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수립토록 되어 있어, 2010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또 다시 전국이 뉴타운 욕망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한폭탄’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해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강제할 ‘사회적 힘’이 필요
재개발사업은 민간개발이든, 공영개발이든 위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점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 건설사와 조합의 수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시장중심의 방식을 고수하는 한에서는 그렇다. 이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주거,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생태적인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주거권과 생존권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단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민간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달성 불가능하다. 토지 등은 공공소유로 전환하고, 계획수립부터 세입자대책까지 세입자를 포함한 주민들의 참여하에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공공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사실 현재 재개발사업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는 답은 이미 알려져 있다. 핵심은 이러한 답을 강제할 ‘사회적 힘’이 조직되지 못한 데에 있다. 아직은 ‘개발이 이루어지면 내가 더 잘 살 수 있고, 좋은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욕망이 지배적이다. 세입자, 가옥주, 재개발조합, 건설자본, 지자체, 보수정치권이 이러한 욕망의 굴레에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굴레를 끊어내는 힘은 현재까지 철거민과 세입자의 저항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족하다. 이것이 세입자, 영세가옥주, 영세상가세입자 등을 중심으로 주거권과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과 흐름이 용산 이후 이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강동진(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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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투쟁의 순간들


 

2월 28일 추모대회. 용산투쟁의 초기엔 많은 사람들이 결합했다.




경찰은 용산관련 모든 집회를 불허하고 폭력진압을 일삼았다. 사진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용산경찰서 수사과장은 집회때마다 악명을 떨치다 나중에 영안실 수배자 3인의 탈출극으로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촛불집회 1주년기념과 용산투쟁이 결합해 서울의 자랑거리인 하이서울페스티발 전야제를 장악했다.



투쟁이 장기화로 접어들며 점점 동력이 떨어져갔고, 경찰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져 유가족도 고인의 영정도 안전하지 않았다.



대학생 빈활투쟁. 투쟁동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용산현장에는 끝없이 투쟁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추모미사는 지리멸렬한 투쟁을 이어나가는 큰 힘이 되었다.



힘든 투쟁이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했다. 사진은 “평택 쌍용차노동자들에게 물을”이란 캠페인 영상을 찍는 장면.



용산국민법정.



타결되었다지만 이 투쟁이 끝나지 않음을 강변하는 ‘용산 12월 31일’



촛불미디어센터 레아. 용산투쟁은 다양한 자원활동가들이 많았다. 특히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의 결합이 큰 힘이 되었고, 레아 호프는 촛불미디어센터 레아로 재개장해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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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용산투쟁 1년,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

‘역량’이 아니라 ‘의지’가 광범위한 연대와 참여를 이뤄냈다

 

조희주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노동전선 대표)
4월, 용산투쟁이 힘겨울 때가 있었다. 조금씩 장례를 치르자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투쟁동력은 1월 그 분노에 비해 턱없이 약화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장례를 치룰 수는 없었다. 용산범대위 대표자 농성이 제안됐고 천막을 쳤다. ‘이대로는 열사를 보낼 수 없다’는 맘 때문이었다. 대표단 농성에 4-5명 정도, 10여개도 안되는 단체들이 농성을 이어갔다. 용산참사가 갖는 정세적 엄중함에 비해 운동세력들의 긴장감과 결합력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농성이 이어지고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종교계의 헌신적인 연대가 지속되면서 다시 용산투쟁은 부활했다. 장례를 빨리 치르자는 목소리는 약해지고 더 많은 이들의 결합과 운동세력들의 참여가 이뤄졌다. 누구는 열심히 했고 누구는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참여를 했다가 유보한 단체들도 다시 왔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조직들도 다시 적극성을 보였기에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의 활동체인 노동전선의 적극적 참여에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용산학살은 전체운동세력이 사활을 걸고 함께 해야 하는 투쟁이라고 생각했기에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우리의 연대가 이처럼 된다면, 부족한 역량이지만 굳건한 ‘의지’를 모아낼 수 있다면, 광범위한 참여와 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용산투쟁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실제 용산투쟁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개개인들의 성원에 힘을 얻었다. 더 많은 이들의 참여와 연대는 바로 ‘이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굳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철거민들은 용기와 희망을 가졌다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


철거민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다. 그럼에도 외로운 투쟁을 해왔다.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철거민들이 연대에서 만든 전철연은 정권의 공격대상이 됐다. 계속되는 음해와 왜곡보도로 힘겨운 날도 있었다. 하지만 살인적인 재개발 중단,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확대됐다. 철거민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 운동세력이 있다는 것에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됐다. 철거민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성과다.

전철연은 주거권 쟁취를 위해, 영구임대주택을 요구하면서 투쟁해왔다. 뉴타운,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는 영세상가들도 전철연에 가입했다. 건설자본의 이윤을 위해 주거권과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이들이 전철연과 함께 하고 있다. 철거 과정에서는 용역을 앞세운 살인적인 폭력이 곳곳에서 자행된다. 철거민들은 이러한 거대한 자본, 용역, 자본과 결탁한 정치권력에 맞서 혼자 싸울 수 없기 때문에 연대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망루를 세웠고 함께 투쟁했다. 이 과정에서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자본의 이윤논리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재개발, 주거권이 제대로 쟁취될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떠나면 저들은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권명숙 (故 이성수 열사 부인)


애 아빠가 일 년 만에 용산에 돌아왔습니다. 불타고 녹슨 망루처럼, 할퀴어진 건물들처럼, 을씨년스러운 겨울바람처럼. 검게 그을리고, 갈가리 찢기고, 차갑게 얼어붙은 남편의 시신이 한 서린 용산에 왔습니다. 2009년 1월 20일, 무엇이 그리 두려웠나요? 왜 시신을 도둑질해서 갈기갈기 찢어놓고 버렸습니까... 육신을 더럽혔으면 명예라도 깨끗이 씻겨줘야지요, 어찌하여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붙였답니까. 그 한 많은 영령이 어떻게 눈을 감으라고 이런 잘못을 저질렀답니까.

(중략) 용산을 뒤로 하고 떠나려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남편의 원혼이 서린 남일당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이렇게 정리하고 떠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시탐탐 저희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보면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우리가 용산을 떠난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용산을 만들겠지요. (중략) 이제 국민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아서 너무 다행입니다.    
- 노제, 유가족 인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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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정세전망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응방향

잠복된 공황

지금 세계정세를 형성하는 데에서 세계공황이 압도적인 우위와 규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작년 전 세계 지배계급은 발 빠르게 국제 공조와 협력 체계를 가동시켰다. 저금리정책, 유동성공급, 보호무역차단을 국제규범으로 성사시켰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지금 세계 각국은 엄청난 규모의 국가 부채를 떠안고 있으며, 소비 위축이 심각한 수준이고, 대량실업이 넘쳐나고 있으며, 극단적인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즉 지금 공황이 잠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단지 지배계급 사이의 공조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에게 일방적으로 위기를 전가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배계급 사이의 공조와 협력이 마냥 계속되기는 어렵다. 또한 노동자 민중의 불만과 분노는 갈수록 쌓이고 있다. 따라서 위기는 진정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잠복되어 있을 뿐이다.
지금 지배계급 내에서 한편에서는 출구 전략을 말하는, 또 한편에서는 이중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세계정세는 대단히 유동적이며 불투명하다. 다만 공조와 전가가 아직은 이어지고 있고 비록 공급(거품)에 따른 효과이기는 하지만 일부 성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할 때, 2010년에 공황이 세계적 차원에서 급격히 폭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정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편 이번 공황은 미국 경제가 처한 취약성이 반영된 것이며 이번 공황을 통해 그 취약성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의 패권 역시 더욱 약화될 전망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힘의 저울추가 급격히 기울지는 않겠지만 머지않아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 장소에 힘의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 공백을 차지하려는 자본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며 그 만큼 새로운 대립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특히 그 중심에 중국이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 진작부터 공공연한 사실로 떠올라 있다. 얼마 전 코펜하겐 기후협약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이 부딪침으로써 벌써 현실화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 지구화 역시 지금까지와 같은 질주를 계속하기는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 이번 공황 자체가 바로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불러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축적 전략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자체가 이미 위기에 빠진 자본의 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새로운 시도가 오히려 위기를 부추겨 더 큰 위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2010년은 이제까지 미국의 패권과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두 축에 의해 움직이던 세계에 어떤 변화가 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요지부동 이명박 정권

2010년은 이명박 정권이 집권 반환점을 도는 해이자, 지자체 선거를 치르는 해이다. 부르주아 정치세력 사이에서 사활을 건 쟁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민주당은 촛불투쟁, 용산투쟁, 쌍용차투쟁에서는 사실상 객에 불과했지만, 미디어법 투쟁을 계기로 반이명박의 대표 주자로 나섰다. 두 전직 대통령의 연 이은 죽음이 이를 더욱 가능케 했다.
지금 정세는 이명박 대 반이명박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노동자 민중이 투쟁을 일으키고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배경이 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현실은 훨씬 후자 쪽으로 기울어 있다. 진보정당이 반이명박 투쟁전선에서 노동자 민중투쟁의 한 주체로 서지 않고, 반대로 제도 정치 공간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태도를 취한 것이 이를 더욱 부채질 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자의 투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에도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정국은 세종시 문제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다. 민주당은 이를 활용해 반이명박의 정치적 대표성을 더욱 강화하고 나아가 지자체 선거에서 민주대연합을 주도하려 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여전히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해다툼을 벌이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진보정당 통합 타령만 되뇌고 있다. 그건 민주노총이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사안일 수는 있어도 전력투구해야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과 분명히 결별할 것을 주장하고, 노동자 민중투쟁을 같이 조직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자 민중도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계급에 대한 분노를 켜켜이 쌓고 있으면서도 선뜻 저항과 투쟁으로 떨쳐나서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지금과 같은 행태를 벗지 않는다면 설령 통합이 돼도 그것이 계기가 되서 노동자 민중이 자신감을 회복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은 설사 지자체에서 패한다 해도 의회를 무기로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와 국정 운영 방식을 그대로 가져갈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권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지 않는 한 그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노동자 민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2010년에도, 지자체 선거 결과에 따른 일부의 영향은 있겠지만, 정세의 급격한 변동이나 변화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변화하는 동북아

한편 지금 세계정세에서 동북아 정세가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매우 빠르게 커지고 있다. 중국이 이미 미국과 함께 G2로 불릴 정도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경제 대국 일본이 지금까지 미국과 맺어온 일방적인 관계를 되돌아보며 아시아 중시를 말하고 있는 데에서 그 현실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과 일본이 전후 최초로 우호적 관계를 맺기 위한 여건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 예정되어 있는 일본 선거에서 하토야마 정권이 승리할 경우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물론 동북아가 EU와 같은 정도로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역내 경제 협력이 높아질수록 정치적 관계가 밀접해 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2010년은 중국, 일본, 한국, 아세안이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습이 더 활발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그럴 경우 동북아가 세계정세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북아 정세를 규정하는 또 다른 요인이 ‘북핵 문제’라고 할 때, 2010년은 오바마 정권의 ‘북핵 문제’ 해법이 비로소 가시화되는 해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가 내세운 ‘핵 없는 세계’ 정책, ‘NPT 체제’ 복원 등과 맞물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란 문제 해결, 중간 선거 대비 등을 앞두고 최소한 북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북은 ‘비핵화’를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북은 지금 체제(정권) 보장과 경제 봉쇄가 풀리지 않고는 생존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6자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미국의 의도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철회시켜야 하는 북의 의도가 일정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평행선을 그릴 것인지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어떤 형태, 어떤 수준에서든 2010년은 대화국면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와 함께 남북관계에도 일정한 변화가 예상된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도 북의 대 중국 의존도가 더 이상 진전되는 것은 원치 않고 있으며, 북의 입장에서도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자본을 더욱 구체화, 대중화 하자

사회주의 진영은 반MB투쟁과 반자본 투쟁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체 반MB전선은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다. 올 6월 지자체 선거 때까지 반MB전선은 민주대연합(민주 대 반민주)과 진보대연합(보수 대 진보)이라는 틀(프레임)에 갇힐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그럴 경우 반MB투쟁은 정권 심판론/선거 심판론으로 협소/왜곡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진영은 지금까지 반MB투쟁을 정권 퇴진 투쟁과 반자본 투쟁으로 가져가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반MB와 반자본 사이의 관계를 부지불식간에 반MB를 통한 반자본, 즉 ‘선 반MB, 후 반자본’과 같은 매개론 또는 단계론적으로 사고했거나 아니면 상호 관계성을 해명하지 못한 채 병렬시켰다.
2009년에 대표적으로 결합했던 용산투쟁과 쌍용차투쟁의 경험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전력을 다했으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위와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현실에서 사회주의 진영의 반MB 역시 민주당 헤게모니와 진보정당의 담론에 갇혀 있고, 반자본은 꼬리말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반자본을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그래야만 반MB 투쟁도 지속성을 가질 수 있으며 정치적 의의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자본의 내용을 더욱 구체화하고 더욱 대중적으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반자본을 단지 정치적 구호나 선전으로 생각해서는 그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자신부터 반자본이 대중의 정서나 정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반자본은 오늘의 세계가 처한 현실을 볼 때 미래에 도달할 어떤 이데아가 아니다. 작은 일상 속에서도 이미 반자본은 충분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반자본을 지금의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만들어가야 한다. 


동북아·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자

2010년 동북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는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상당한 변화가 일 것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다. 기존 경색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거나 안정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해 당사국 사이의 또는 지배계급 사이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끌어내기가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 것이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대화 테이블은 어떤 식으로든 복원하려 할 것만은 분명하다. 사회주의 진영은 지금부터 미국과 이명박 정권에게 대북적대정책 철회, 한반도 비핵화 동참,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 체제를 실현할 것을 정치적 요구로 내걸고 최대한 개입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지배계급은 오히려 그것들을 실천할 분명한 의사나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개입을 통해 저들의 본질을 폭로하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들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자동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만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지만 이 문제를 저들에게 맡겨버리고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요구와 개입이 노동자 민중을 정치적 수동 상태에 머물게 한다거나 민족주의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야말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지금 원칙적 차원에서 반대해야 할 것은 자본 중심의 동북아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지배계급의 움직임이다. 아직은 이 문제가 가시권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역내 국가 사이의 FTA 체결이 이루어지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그 때서야 대응하려면 이미 늦다. 또한 지배세력과 또 다르게 그것이 마치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대안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개량주의 세력의 입장과 태도에 대해 단호히 비판하고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사회주의 진영은 동북아, 한반도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의 당사자로, 대안 세력으로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전국적·전계급적 활동, 민주노조운동을 방어하자

2010년 사회주의 진영은 노동 현안에 대한 개입과 대응을 비상하게 할 준비와 각오를 다져야 한다. 지난 철도노조 투쟁에서 그대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은 이제 아주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에 대해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노동관계법 개악, 공공부문 선진화, 금속노조에서 예상되는 임단협 후퇴, 비정규법 개정 등을 동원하여 민주노조의 의의와 역할을 아예 없애려 작정하고 있다.
지금 닥치고 있는 현실은 이제까지 일종의 습관처럼 말하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처한 위기에 겹쳐 거센 풍랑이 일면 정말 배가 파산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노동자 민중이 겪어야 할 어려움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의 대응도 이제까지와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달라져야 한다. 하나는 사회주의 세력의 정체성과 존재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노동자를 주체화하는 문제와 이를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그 반대다. 노동자를 주체화하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주의 세력은 운동진영 전반에 만연된 대기주의와 경제주의에 맞서기 위한 일대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또 하나는 노동 현안에 개입한다고 해서 거기서 만의 활동으로 제한하거나 제약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민주노조(운동)을 방어하는 것조차 성공하기 어렵다. 사회주의 진영도 그동안 보여 온 노동자주의적 태도와 실천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
전국(세계)적 시야와 전계급적 안목을 갖추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대중투쟁이 일어나기를 막연히 기다릴 것이 아니라 대중이 투쟁에 떨쳐나설 수 있는 정치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지방선거, 자본가 정당과 결별해야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올 지자체 선거에서 이루어야 할 최소한의 정치적 목표는 적어도 진보정당까지를 포함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 자본가 정당과 분명히 결별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정치적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를 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형성해야 한다. 그럴 수 있어야만 비로소 본격적인 정치 논쟁이 가능해지고 정치를 꽃피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두 진보정당은 지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 민중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태도와는 거리가 한참 먼 행보를 걷고 있을 뿐이다. 한참 동안을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 사이에서 헤매다가 결국 도달한 결론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이해를 지키기 위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진보대연합이든 통합이든 그것들은 정치적 명분,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쇠하고 있다.
정파가 자신의 정치를 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를 탓할 필요나 이유는 없다. 자신의 정치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속에서 그것이 노동자 민중 전체의 이해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면 된다. 진보신당이 전면적 진보대연합을 말한 바 있고 민주노동당이 통합을 전제로 한 선거연합을 결의했지만 이를 듣는 노동자 민중의 가슴은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다.
이제 사회주의 세력이 나서서 노동자 민중진영을 묶어 세워야 한다. 노동자 민중진영이 취해야 할 선거 목표와 그를 위한 방안을 제출하고 흩어진 대중을 결집시키기 위한 활동을 적극 펼쳐 나가자.
 

고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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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살인적인 재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입구 동교동, 그 서울 한복판에서 용역을 앞세운 마구잡이 철거가 이뤄졌다. 그런데 철거가 진행되는 한 가운데 홀로 남아 이러한 막가파식 재개발 정책에 반대하며 투쟁하고 있는 ‘두리반 식당’이 있다. 11군데 세입자 가운데, 10명의 세입자들은 형편없는 이주보상비만을 받고 최근 떠나갔고, 철거가 진행 중인 가운데 ‘두리반 식당’ 3층 건물만이 우뚝 서있다.

치솟는 땅값, 쫓겨나는 세입자
이 지역에 경전철이 놓이게 되면서 땅값은 치솟았다. 이에 땅 건물주인은 비싼 값에 팔아넘겼고, 세입자들은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작년부터 조합과 협상이 들어갔지만 터무니없는  보상금에 세입자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건설자본 측의 각개격파를 막아내지 못하고 세입자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먼저 나간 세입자들 또한 보상받은 돈으로 현재 어딜 가서 장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 많은 건설사의 재개발 방침에 따라, 가난해서 어디서도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된 것이다.
‘두리반’ 투쟁 대책위원장이신 안종려 동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 정책의 문제점을 쏟아냈다. 열악한 지역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 더 인간답게 잘 살게 하기 위한 재개발이 진짜 재개발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재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의 현실은 어떠한가? 돈 많은 자본건설사에서 있는 돈 투자해서 더 벌기 위해 좋은 건물 짓기 위한 재개발이고 그 과정에서 거기에 살던 가난한 세입자들은 길바닥으로 쫓겨나고, 다시 세워지는 좋은 건물에 들어갈 생각은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만드는 재개발이 벌어지고 있다며 분노한다.
재개발로 쫓겨난 철거민들은 더욱 열악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자본이 횡포를 부릴 때 정부가 나서서 약자들을 보호하는가? 택도 없는 소리다. 돈 없는 세입자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지역이 재개발 지역으로 되는 순간, 건설자본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현재 법이다. 형편없는 보상에 반대하며 나가지 않고 있으면, 서울 한 복판에서 그것도 한 낮에 용역들이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하고 철거해도 합법인 세상이다. 돈을 위한 개발이고, 돈을 위한 법이다.

싸우는 게 서로에게 힘이 되길
“크리스마스 전날, 용역들이 들이닥쳐 ‘집딸림’을 하고, 내 가게를 못 들어가게 막아놔서 다시 식당에 쇠사슬을 끊고 들어올 때 고민 많이 했다. 처음에 용역에게 당하고 했을 때, 너무 거대한 권력으로 느껴지고 두려웠었다. 그런데 내가 당당하기에,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말도 안되는 자본의 폭력과 불의에 굴복할 수 없어서 이렇게 저항하고 있다.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이 투쟁하고 있는 다른 철거민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조심스럽게 1월 14일 7시에 두리반 투쟁 현장에서 용산 참사 현장에서 진행되었던 종교계의 촛불예배가 진행된다는 말을 꺼냈다.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홀로 남은 세입자의 투쟁으로 시작했지만, 자본의 폭력에 맞서기 위한 연대의 힘들이 조금씩 모아지고 있었다. 개인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이것이 잘못된 재개발 정책과 제도를 바꿔 나가는 데 힘을 보태는 투쟁으로, 투쟁하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 하셨던, 안종려 동지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영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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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새해에는 장기투쟁 동지들의 숙원을 풀어내자!!

 지역에서부터 투쟁체계를 구축해야
과거, 장기투쟁 사업장은 ‘노동운동의 첨병’이었다. 자본과의 치열한 전투, 그 최전선에서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의 깃발을 사수하기 위해 해고라는 극단적 상황을 기꺼이 감내하는 동지들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연대정신을 복원하라고 끊임없이 깨우쳐주는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치열하게 투쟁했고, 그래서 존중받았다고 생각한다.지금, 장기투쟁사업장은 지역에서는 ‘지역의 계륵(鷄肋)이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해결하고 싶지만 마땅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 돼버렸다.
단위사업장과 지역운동의 상황이 어렵다보니 차라리 중앙차원에서의 투쟁기획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충남지역의 장기투쟁 사업장
경제위기(공황)시대,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노조 죽이기’공세에 전국이 투쟁 사업장으로 난리가 아니다. 이미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는 먹튀 자본의 칼바람, 구조조정, 단협 해지를 비롯한 전방위적 공세가 엄습해오고 있다. 노동유연화가 전면화 되면서 비정규직은 투쟁은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장기투쟁이 되고 있다.
충남지역에는 신라정밀, 위니아만도, 경남제약, 동희오토가 힘겹게 투쟁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마자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경비를 투입한 신라정밀! 돈 빨아먹는 흡혈자본처럼 착취하고,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위니아만도와 경남제약! 완성차 최초로 생산직 100% 비정규직이자 해고공장 동희오토! 이 동지들이 힘차게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부터 다시 투쟁체계 구축
장기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부터 투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과거 충남지역은 세원테크 투쟁부터 근래의 경남제약투쟁까지 지역 총파업을 전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었다. 그런 지역투쟁의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일단 지역과 단위사업장 간부들의 결의가 필요하다. 작은 힘이라도 일단은 모여야 힘이 된다. 그 힘이 더 큰 힘으로, 그래야 지역 총파업으로 전진할 수 있다. 동희오토는 2010년 투쟁을 다시 한 번 결의하고 있다. 지역의 장투 사업장들과, 비정규투쟁 사업장들과 함께 자본의 탄압을 함께 돌파해보자는 것이다.
중앙도 지역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 장기투쟁-비정규-구조조정 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지난 시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투쟁을 전개한 것이 없었다. 그 결과, 투쟁하는 선별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 그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지경이다. 지도부의 선언과 계획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업과 집행 그리고 재정에 이르기까지 실제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정치조직과 사회운동도 함께
지금까지 정치조직, 사회운동은 핵심적 대규모사업장의 투쟁에는 적극적인 연대·엄호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개별사업장의 문제는 지역단위에서의 지원정도였다. 정치조직과 사회운동단위에서도 이 투쟁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제기해 나가자. 이제부터라도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한 축이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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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대한 인간의 가능성

어슐러 K. 르 귄 읽기 1

SF문학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르 귄은 1962년부터 최근 2007년까지 70편이 넘는 소설, 시, 산문, 번역서들을 집필했다. 아직 한국에는 이 작품들 중에서 20여 편이 번역됐다. 그 중 내가 읽은 헤인 에큐멘 시리즈와 어스시 시리즈로 ‘르 귄 읽기’를 쓴다는 것은 시건방일지 모르지만, 그 두 시리즈는 심심치 않게 내가 무언가를 말하게끔 부추기고 있다. 그것을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하지만 억지로 표현하면, 다른 문화의 감수성, 갈등 풀기, 변화 속의 균형 등이다. 먼저 헤인 에큐멘 시리즈로 이글을 시작한다.


문화 또는 문명의 충돌
인류의 과학기술은 우주진출을 이미 시작했다. 아직 알 수 없지만, 곧 외계인과 조우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 넓은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다는 믿음은 이제 종교적 맹신으로 치부된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에 심심찮게 대중을 심각하게 만드는 외계인과 조우에 대한 기대와 걱정은 인류의 수많은 문명과 문화가 충돌한 경험 때문일 것이다. 자본은 완전히 세계화되어 지구 어느 오지에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며 심각한 충돌을 만들고 있다. 그 양상은 다르지만 역사시대 이전부터 좁게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넓게는 공동체들 사이에 충돌해왔다. 한편 충돌의 역사는 서서히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며 거대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향한 인류 정신의 최고 단계를 아직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공산주의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이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했고 여전히 실천하고 있다. 그 변화가 너무나 더디게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변화의 방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염세적인 인간들의 디스토피아식 저주 또한 어느 정도는 좋은 세계를 위한 경고와 계몽의 메세지로 읽을 수 있다. 인류는 어렵지만 서서히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하면 막연한 낙관같지만, 대중이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려는 신념과 노력 또한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이다. 
르 귄의 헤인 에큐멘 시리즈는 지금보다 훨씬 앞으로 나간 인류에 대한 상상이다. 그러나 이 상상은 지옥의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르 귄이 살고 있는 지구, 미국,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유럽의 문화, 자신이 공부한 중국의 노자 사상 등이 상상의 재료다. 지금보다 훨씬 앞으로 나간 인류는 어떤 충돌을 경험할까? 개인과 개인의 충돌은 똑같고, 공동체들 간의 충돌은 행성간의 문명 충돌로 표현하고 있다. 행성간 다른 인간 종족의 충돌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다른 문화의 차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이 시리즈는 다른 문화와 문명의 충돌을 어떻게 극복하고 소통하는가의 이야기다. 

소통을 위한 기술, 과학과 정신
르 귄은 소통을 위한 과학기술로 빛보다 빠르고 거리를 초월한 실시간의 통신기 앤서블을 발명해낸다. 이 과학기술은 행성간 교류와 발전이라는 인류의 진보에 날개를 달아주지만 르 귄은 인간을 과학기술에만 의존하는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소통을 위한 인간의 정신적 노력으로 언젠가 텔레파시의 능력을 습득하게 만든다. 말과 문자 언어가 가지는 오해와 한계를 지적하며 정신 그대로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상상한 것이다. 이 정신적 노력이야말로 르 귄이 추구하는 소통의 핵심이다.
한편으로 과학과 정신 두 가지 기술은 악용되기도 한다. 그 기술을 지배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에큐멘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빛보다 빠른 물질의 이동 기술은 메세지 통신이 아니라 파괴를 위한 에너지의 이동 또한 가능케 한다. 텔레파시의 능력도 차원 높은 소통이 아니라 약자의 정신지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과학기술의 이용방법은 에큐멘 보다 정체불명의 적에 가깝다. 첨단 과학은 대중을 지배하려는 자본가 계급의 전유물이며, 약소국을 강탈하려는 제국주의의 무기였다. 
다른 종 사이의 소통을 위한 상상은 SF세계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얼마 전 본 영화 아바타에서는 판도라 행성의 생명체에 ‘교감’을 위한 촉수모양의 감각기관을 상상하고 있었다. 인간의 환경파괴를 막아낸 것은 촉수들로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교감을 나눠 그 감각기관이 없는 인간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아바타에서 말하는 ‘교감’의 촉수기관은 대단히 훌륭한 상상이지만, 그 촉수기관으로 관계를 맺은 사이는 주종관계와 소유관계를 형성했다. 약간만 삐딱하게 보면, 판도라의 종족은 만물을 다 따먹고 군림하는 종족이었다. 헤인 에큐멘 시리즈에 등장했다면 분명히 적이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에큐멘의 대사들과 주인공들은 다른 문화와 소통을 위해 끝없는 이해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희생도 불사하지만, 약자를 지배하려는 적들에 대해서는 두가지 기술을 무기화해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한다. 인류 역사 속의 뛰어난 혁명가들을 연상케하는 대목이다.
현실로 돌아와 지금의 양자물리학은 앤서블 같은 기술이 이론적으로 가능함을 증명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앤서블의 실현은 시간문제다. 텔레파시의 능력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정신의 영역이다. 대중의 열망이라는 거대한 에너지를 귀신같이 악용하는 기업과 정치인들이 있고, 대중의 열망을 직접민주주의로 실현하려는 사회주의자들도 존재한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대중의 열망이 언어와 이미지라는 데이터로만 파악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이고 정신이다. 지배가 아니라 소통을 목적으로 눈과 귀를 열고 마음을 여는 것이 텔레파시의 출발이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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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인 에큐멘 시리즈
아주 오랜 옛날 헤인(인류)은 은하 곳곳에 인류의 문명을 전파했다. 그 뒤 각 행성의 인류는 고립된 채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어 나갔다.
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헤인은 은하 곳곳에 떨어져 있는 인류를 찾아 서로 교류하기 위한 에큐멘이란 행성 연합을 결성한다.

 
로케넌의 세계, 1966년
이 저작은 ‘셈레이의 목걸이’이란 단편의 뒷이야기로 시작한다. 셈레이가 며칠간 우주여행을 했지만, 셈레이가 살던 곳에서는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로케넌의 세계’는 셈레이의 여행 때 잠깐 등장했던 에큐먼의 로케넌이 셈레이가 살던 행성을 탐사하며 정체불명의 적과 대결한다. 이 행성은 아직 이름이 없었고, 석기 문화의 두 종족과 청동기 문화의 한 종족이 살고 있었다. 당시 에큐먼은 엔서블이란 통신기를 사용했고, 로케넌이 모험 과정에서 적이 아닌 정체불명의 어떤 존재에게 텔레파시의 능력을 훈련받는다. 로케넌은 적에게서 이 행성을 지켰고, 원주민과 에큐멘은 로케넌의 공로를 기려 이 행성에 ‘로케넌의 세계’란 이름을 붙인다.


유배행성, 1966년
로케넌의 모험 보다 수천 년이 흘러 다른 행성은 배경으로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문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에큐멘에서 석기 문화의 어느 행성에 연구그룹이 이주했지만, 앤서블과 우주선을 잃고 고향 행성과 천 년 전에 연락이 끊겨 이주민들은 서서히 소멸해가는 상황이었다. 석기인은 온순한 농경족과 겨울이 되면 남하하는 포악한 수렵족이 있다. 수렵족의 이동은 농경족과 문명족 모두에게 큰 위협이었다. 농경족의 족장 딸과 문명족 지도자의 사랑 때문에 수렵족의 이동에 두 종족간의 공조가 깨져 큰 비극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비극을 해쳐나가는 과정에서 문명족과 석기족의 이종교배 가능성이 생긴다. 텔레파시는 다른 두 종족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환영의 도시, 1967년
‘유배행성’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지 다시 수 천 년이 흘러, 이 문명은 옛날 빛의 속도로 나는 우주선의 과학을 복원한다. 그리고 싱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적이 출현한다. 새 문명의 젊은 왕자는 싱에게 쫓겨 테라라 불리는 지구로 오지만 모든 기억과 능력을 상실한다. 테라 또한 싱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싱은 상상을 초월하는 환영으로 인류의 소통을 통제하며 과학기술의 사용을 막고 있다. 젊은 왕자는 테라인의 도움으로 서서히 기억과 능력을 되찾아 싱과 일대 결전을 벌인다. 텔레파시의 발전은 소통능력을 넘어서서 정신을 지배하는 무서운 힘으로까지 발전했다. 두개의 막강한 정신의 대결에서 힘이 아니라 지혜가 승리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SF식 헌사라 할만하다.


어둠의 왼손, 1969년
에큐멘이 겨울행성과 연맹을 맺는 과정이다. 텔레파시가 등장하지 않고, 앤서블이란 통신기를 행성간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아 ‘로케넌의 세계’ 보다 이전의 연대기다. 겨울행성은 매우 추운 행성이라 매우 더디게 문명이 발전하지만 우주진출 직전의 과학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매우 게으르고 관료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가 지배적이다. 특이한 점은 이 행성의 종족은 자웅동체고, 생리주기가 되면 하나의 성징이 나타난다. 에큐멘의 사절은 겨울행성의 두 나라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지만, 왕조의 대신 에스트라벤과 사랑과 우정의 친교를 맺으며 끝내 에큐멘과 외교를 성사시킨다. 양성인의 문화를 이분법이 없거나 둔화된 사회로 묘사한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빼앗긴 자들, 1974년
에큐멘이 결성되기 직전 우라스와 아나레스라는 쌍둥이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우라스는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전한 사회고, 이에 폭발한 혁명으로 건설된 무정부 사회가 아나레스다. 아나레스는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지만 환경이 황폐해 매우 가난하고, 관료제와 집단주의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아나레스의 물리학자 쉐벡이 두 행성의 교류와 발전을 위해 우라스로 간다. 두 행성으로 갈라진 사회, 각 사회의 장단점들에 대한 실감나는 비교는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의 비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두 행성 모두에게 외면 받는 독특한 충돌 속에서 쉐벡은 빛의 속도 보다 빠르고 공간의 거리를 초월한 실시간 이동의 기술을 발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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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세종시 찬반논란, 지역주의와 보수정치권의 이전투구로 전락

이명박 정권은 지난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다. 수정안의 핵심내용은 행정기관 이전을 골자로 하는 원안 폐기와 혁신도시 계획을 적용해 과학비즈니스벨트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정안이 발표되자 정치권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난리다. 지역별로도 수도권은 ‘환영’과 동시에 ‘수도권 지역의 규제완화’를,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세종시 특혜’라며 정부 비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은 한나라당 내 친박계의 반대로 불거지고 있는 한나라당 내 반발이다. 이미 충청권 한나라당 기초의원들 및 주요 당직자들의 탈당 러시가 이어지고 있고 수도 이전 반대를 외치며 국회 단상을 점거하고 대통령 탄핵을 진두지휘했던 박근혜는 ‘세종시 원안’ 고수의 선봉자가 됐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서민들은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올 해 지자체 선거를 겨냥한 정치행보에 불과하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실제 세종시를 둘러싼 지방균형 발전, 생태환경을 헤치지 않는 개선 등에 정치권들이 관심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다보니 각 지역별로 기업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주요 도시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세종시 문제를 바라 볼 뿐이다.
지역주의가 난무하고, 각 이해관계로 국민들의 여론을 동원하는 정치권의 후진적인 이전투구는 일차적으로 이명박정권이 제공했다. 세종시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주요 대기업들에게 반값으로 땅을 제공하고 심지어 사상 초유의 단독 특별사면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기업들의 세종시 유치를 강제하고 있는 정부 정책이 온 나라를 두동강, 세동강 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주민들의 경제, 생활 등은 그들의 관심사 아닌 지 오래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면 ‘선’이 되고 다수 노동자서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은 곤란하다. 또한 지역주의에 가둬진 ‘세종시 찬반논란’은 노동자서민들의 삶과 무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특혜, 부자감세로 기업플렌들리 정책을 관철시켜내고 있는 정권의 정책 자체가 문제시 되고 경제, 사회적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 확대와 시스템 구축이, 환경에 대한 고려가 전제되는 전략을 마련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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