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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9
    디스트릭트9 제한된 구역에 사는 우리들
    PP
  2. 2009/09/29
    환상을 찍어보세요
    PP
  3. 2009/09/29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PP

디스트릭트9 제한된 구역에 사는 우리들

28년 전, 지구상공에 외계비행물체가 떴다. 우습게도 그 곳은 뉴욕, 워싱턴, 런던, 도쿄가 아닌 남아공의 요한네스버그였다. 가장 열악한 제3세계 국가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PRAWN”이라 불리며 쓰레기더미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포식자로 살아간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그곳의 원주민들도 이 외계인들을 등쳐먹고 무시하지만, 외계인들은 견뎌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28년을 그 곳에서 살아가도 그들은 지구상의 성원이 아닌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카메라 앞에 앉아 연신 싱글벙글대며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는 MNU(외계인관리소)에 장인 덕에 초고속 승진을 한 비쿠스라는 사내다. 비쿠스는 이번 제한구역 9에 사는 외계인들을 다른 지역으로 철거하는 사업의 총책임자다. 그런데, 비쿠스는 덜렁대고 큰소리 한 번 제대로 못치는 못난이다. 하지만 유독 외계인들에게는 강경한 어조로 철거통보서에 사인을 강제로 하게 만든다. 외계인의 아이들을 죽이면서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팝콘터지는 소리같다고 즐거워하기도 하며, 저항하는 외계인에게 총을 들이댄다.
은 실제 남아공의 요한네스버그에 존재했던 “DISTRICT 6”를 떠오르게 한다. 남아공은 인종갈등이 심해 흑인빈민들을 따로 제한구역, DISTRICT 6 지역에 격리 거주시켰던 역사가 있다. 물론 영화처럼 그 과정은 강제철거와 저항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어쩌면 영화는 영화 속 사람들이 외계인들을 멸시하고 경멸하며 쓰레기나 먹게 만든 것처럼 현실에서 남아공의 백인들도 흑인들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접한 이 미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편 비쿠스는 철거 과정에서 외계물체의 액체에 노출된다. 그때부터 그는 외계인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의 장인은 비쿠스를 사위가 아닌 실험용 외계인으로 대한다. 비인간적 고문과 학대를 비쿠스의 장인은 카메라를 통해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고, 피부와 뇌, 심장을 꺼내 실험하겠다는 MNU 의사의 말에도, 살려달라는 사위의 목소리에도 무표정하게 걱정말라는 거짓된 위로의 말만 남긴다.
살기 위해 MNU를 탈출한 비쿠스는 결국 외계인거주지역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탄압하고 겁박한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자신이 몸담았던 MNU와의 투쟁을 시작한다. 그의 주변에 모든 인간들은 그를 손에 넣어 죽이거나 실험하려고만 했다. 오로지 그에게 도움을 주고 그와 동지애를 나누는 건 외계인밖에 없었다.
그가 인간이 되는 희망을 버리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외계인으로 사는 것을 만족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인간이었을 시절에 그리워하는 건 단 하나, 그의 부인을 생각하며 쓰레기더미에서 꽃을 만들어내는 장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감독은 결국 같은 인간이라해서 모든 인간에게 인류애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결국 착취자가 피착취자를, 피착취자 또한 누군가를 착취하려고 든다는 경고를 하는 것은 아닐까. 용산사건, 쌍용자동차가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씁쓸하고 슬펐다.
우리는 외계인이 아니며, 언제든 외계인이 될 수 있거나 그와 다름없는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잊고 살아가거나 잊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외계인들은 투쟁하는 노동자, 철거민, 이주노동자, 빈민이다. 그 많은 숫자에도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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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찍어보세요

디카 300만 시대
디카 300만 시대라 부를 만큼 사진이 완전히 대중화된 시대에 살며 어느날 갑자기 재미있는 광고를 하나 발견했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사진가 등용 프로젝트! 1기 뉴칼레도니아 포토워크숍’이란 것인데, ‘포토저널리즘의 신화 로버트카파, 찰나의 거장 브레송. 거장의 대열에 성큼 다가서는 사진가 등용 워크숍’이란 카피가 붙었다. 거장의 이름과 매우 화려한 수사들을 나열하며 마지막 글자를 ‘샵’이 아니라 ‘숍’으로 표기해 고전적 품위를 폭발시킨 강렬한 카피다. 모름지기 품위란 건 폭발되는 게 아니라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다. 디카 대중화 시대에 맞지 않는 귀족적인 카피에 주눅이 팍 들다가 그 정점 ‘숍’ 때문에 그나마 폭소를 터뜨리며 정신을 차렸다. 그럼에도 여기엔 그저 웃어넘기지 못할 강렬한 환상이 있다.

뉴칼레도니아 판타지
사진이 처음 발명되어 대중화된 장르는 초상사진이었다. 신흥 부르주아들의 귀족에 대한 환상 중에 하나가 초상화였고, 그것을 초상화가를 고용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감당할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초상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노동자계급에게는 초상사진 조차 환상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과 환상은 그렇게 사진을 기록했다. 그래서 사진은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이 사진의 매력이다.
150여년 시간이 흘러, 사진은 경제적 조건이나 계급적 욕망 같은 것들에 구애받지 않게 됐다. 찍고 싶은 사람이 찍히고 싶은 사람을 찍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요즘은 아무나 예술사진(?)을 찍는 시대다. 이건 너무 멋진 현상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예술의 대중화고, 사회주의적인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진가들은 이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
‘사진가’가 특별한 인재로서 ‘등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초기에 전통적 예술이 사진을 예술에 포함시키지 않으려 발악했던 것처럼, 아마추어 사진가를 사진가로 인정할 수 없는 찌질한 프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현대적 조건은 예술적 재능이 아니라 치사하게도 뉴칼레도니아라는 섬에서 워크숍을 하는 것이고 고액의 수강료다. 얼마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등장한 판타지 중 하나가 뉴칼레도니아다. 295만원으로 경험하는 환상이 ‘꽃보다 남자’의 그것인지, 거장의 대열에 성큼 다가서는 것인지 애매하게 만든 것도 이 환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라 하겠다.

김치와 치즈
김치와 치즈는 계급을 초월한 흔하고 맛난 음식이다.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하는 힘이 있다. 김치와 치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걸 발음하며 사진기를 볼 때는 최소한 억지 미소라도 짓는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이왕이면 보기 좋은 사진을 바라는 마음이 김치와 치즈를 외치게 만든다. 다른 예로, 이 신문에 실리는 집회 사진들에는 팔뚝질하는 장면이 많다.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의지를 좀 더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 속에는 시대에 따라 욕망과 환상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뉴칼레도니아의 환상도 있고, 김치와 치즈로 표현되는 환상도 동시에 존재한다. 어떤 환상을 찍을 것인지 선택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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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민중의 고달픈 일상을 추석 명절과 직접 비교하며 한가위때 만큼은 행복해지자는 덕담이다. 그리고 일상이 한가위처럼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뜻도 분명히 담겨있는 말이지만, 그래도 꽤 낙관적이지 않은가? 어릴 때 어른들에게 이 말을 들으며 명절을 즐겼고, 어른이 되어 다시 아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며 오랜 세월 명절이 이어져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세월 속에 인이 박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을 상상하며 괜히 슬퍼진다. 내 처지 때문에 그런가? 옛날에도 이 말이 짜증났던 사람들이 꽤 많지 않았을까?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에서 구직자와 취업자들에게 추석 스트레스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친척들의 취업에 대한 지나친 관심, 결혼하라는 이야기, 금전적 문제, 귀성 교통체증 등 대충 누구나 공감하는 스트레스들이다. 그 중에 가슴이 살짝 아리는 내용은 구직자들 중 40.8%가 귀성하지 않고 취업정보를 검색하거나 공부하겠다는 부분이다. 실업률이 생략된 조건에서 퍼센트의 높낮이는 눈속임이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귀성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취업 스트레스 속에서 잠시도 탈출하지 않겠다는 부분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들에게 해와 달의 밝음이 무슨 의미겠는가? 밝음이 두루 넓지 않은 세상이다.
하여간 이번 기획은 추석을 앞둔 활동가들과 노동자들의 애환을 두루 들어보는 것이었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추석 애환에 대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대략 실패하다 보니 괜히 서설이 길어졌다. 전통, 가족, 결혼, 음식준비, 대화주제 등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회주의 운동하는 사람들의 명절 문화가 어떤지 살짝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인데, 그닥 건진 게 없다. 그래도 쉬어가는 페이지로다가...

H씨가 추석하면 떠올린 것에 정확한 해독은 어려운데, “어”로 들리는가 하면 “오”로 들리기도 한다. 미혼인 H씨는 동생이 곧 결혼해서 그 때 내려가기로 하고, 이번 추석에는 고향집에 안가기로 했다. 동생이 먼저 결혼해서 부담되지 않냐니까, 부모님이 우리 딸 하고 싶은 대로 하랬다며,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H씨가 반어법을 거의 안 쓰는 걸로 보아 그 부모님도 반어법을 안 썼다고 믿고 싶다. 만사에 표정이 밝은 H씨지만, 추석과 상관없이 동지들과 관계에 대해 자기 운동에 대해 깊은 근심에 빠져있다. 그래서 추석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추석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단다.

S씨는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외로움이랬다. 추석과 상관없이 항상 외로운 사람이 추석에 특별히 외로운 이유가 뭐냐고 묻자, 외로움이 아니라 심심함이라고 번복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안 놀아줘서 심심했다고 한다. S씨는 한동안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았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없어졌다며 이번 추석엔 고향에 간단다. 그래서 이번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게 돼서 뭘 할지 고민은 덜었지만, 혼자 궁상 떨 때보다 제대로 심심할 거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차표는 끊었냐 물으니, 안 갈 이유가 없어서 가려는 것이지, 적극적으로 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차표를 못 구하는 상황을 기대한단다. 어쨌든 고향집에 가게 되면 전형적으로 가족들에게 스트레스 받을 조건인 듯한데, 대처방안이 있냐고 물었다가 욕만 먹었다. S씨는 노총각이고, 가족들의 기대나 바램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K씨는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에 동문서답했다. 다른 질문들에도 거의 말 돌리고 딴청을 피웠다. 그래도 종합하자면, K씨는 서울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일상적으로 결혼 빨리 하라고 심각한 압력을 받고 있다. 아직 노총각이 아니라고 우기는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다며 공수표를 날리고 있지만, 부모님들이 그게 공수표다 아니다 부부싸움할 정도라고 한다. 작년 추석에는 수원에 있는 산소에 성묘를 가다가 가족들이 K씨 걱정으로 의견이 분분하자, 그 상황을 참지 못해 오지도 않은 급한 전화를 받고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러 간다는 핑계로 K씨 자신의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뻥과 구라가 부모님께 통하기는 하느냐는 질문에, K씨 버럭 화를 내며, 이런 말을 남겼다. “여보세요, 이래뵈도 내 뻥구라는 완벽한 사이버스페이스에요. 우리 부모님은 나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고... 에헤 흠”

A씨는 추석에 추상적인 뭔가를 떠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뭔가를 떠올린 것도 아니라, 질문이 유치하다는 대답을 했다. 하여간 A씨는 결혼한지 몇 년 안돼서, 아직 시댁에 대한 어색함이 있었다. 시댁이 옛날에는 삼촌, 외삼촌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라 꽤 시끌벅쩍했다가 근래들어 시부모와 남편 동생들만 있는 조용한 가족이 됐다고 한다. 시댁 식구들끼리도 그 분위기가 사뭇 어색하다고 느끼는데다가 새가족이 된 A씨의 어색함이 더해져서 이래저래 더 어색한 가족이란다. 자기 몸이 약해서 시댁갔다가 친정갔다가 하면 몸살나서 완전 녹초되는데, 이번 추석연휴는 짧아서 더 걱정되는 모양이다.

C씨에겐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놀거리인 듯싶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이번 추석부터는 C씨 형수가 곧 있을 아버지 제사 때나 모이자고 했단다. 그래서 추석에 저위 H씨를 비롯한 고향에 안가거나 심심한 동지들을 불러 고궁에 놀러갈 계획을 짜고 있다. 평소 부인에게 지배당한다고 말하는 C씨니까 물론 처가댁에 먼저 다녀온 뒤에 동지들과 놀 것 같다. 그리고 가족들과 모이면 뭘하고 놀지 고민하고 있다. C씨는 안팎으로 뭘하고 놀지가 관심사다. 명절에 남녀노소 함께 즐길수 있는 놀이로 윷놀이가 어떻겠냐는 내 이야기에 그닥 동의해주진 않았다. 어쨌든 C씨의 고민이 고민인지 아닌지 내가 고민하고 있다.

M씨는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이 보름달이라고 했다!? 장투사업장에서 전망하기 힘든 싸움을 하면서도 보름달이 떠오른다며 싱글대는 모습에, “아, 물론 추석에 보름달이 떠오르죠”하며 같이 싱글거렸다. M씨는 아버지에게, 되지도 않는 싸움일랑 접고, 집에 와서 노가다나 하라은 이야기를 이미 수차례 들었다고 한다. 당장에 그 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M씨 고향집에도 M씨만의 그 싱글거리게 만드는 보름달이 떠오를 것 같다. 제발 그 동네만큼은 날씨가 꼭 화창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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