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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가르쳐주는 공부법] 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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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 핵교 잘 다니고 있나요?  찔끔찔끔 나가느니 집에서 푹 쉬고 싶다고요?  아저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코로나로 핵교의 역할이 점점 분명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들이 친구들 핵교 안가고 집에서 뒹글거리면 무척 걱정되고 속상하거든요.  뼈빠지게 일하시는 대부분의 이유는 친구들 잘 갈켜서 뒷바라지 잘해주려 밤늦게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핵교는 공부를 갈쳐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친구들을 모아놓고 잘 놀고 잘 자라게 하는 어머니, 아버지 같이 돌보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걸 훈육이라고 하는데..  여러분 선생님들은 학교의 이러한 역할을 무척이나 싫어한답니다.  그래서 돌봄교실이라는 것도 여차하면 지방단체로 떠넘기려하고.. 친구들이 어떻게 살든말든 학교 청소를 하던말던 지식이나 꾸역꾸역 가르치고 고상한척 월급이나 받아먹으려 합니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다 그런것은 아닙니만 이번 코로나 재난으로 학교의, 선생님의 역할은 지식전달이 다가 아니라는게 아주 극명해졌습니다.  거꾸로 친구들도 학교에 오는 이유도 단지 지식을 전수받기 위함이 아니라는게 분명해졌지요. 그래요 친구들은 친구들과 함께 쑤근대며 시시닥거리며 잘 놀기위해 학교에 오는겁니다.

 

   친구들과 아저씨가 숨은 석축아래 담쟁이가 지금쯤 단풍이 들기 시작했겠지요?  친구들 가끔 학교오면 아저씨가 인제 안보이지요?  아저씨는 친구들을 떠나 꼬맹이들이 왔다갔다하는 인근의 다른 학교서 일하게 되었어요.  아저씨는 친구들 책상이나 뚜닥뚜닥 고쳐주려 학교로 흘러들어왔는데 친구들은 책상 곰팡이났다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책걸상을 다 버리고 새걸로 사주었죠?  책상 상판 하나 들어봤더니 들린다고 전교죠 탈퇴한 교장이 다 바꾸라고해서 그렇게 된거예요. 담임선생님도 모두 고장나면 아저씨한테 얘기하기 귀찮아하고 그냥 새걸 사달라니 아저씨가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멀쩡한 교사의자 수천들여 다 바꾸고 생색내고, 괴기스런 교련복,교복 갖다놓고 옛날교실 꾸미는데 수백들이고. 방학때 교장실에 몇몇 학생 모아놓고 창문 다닫고 에어컨 선풍기틀고 수업한다고 어쩌고하다 밀접접촉자로 코로나검사 몰래 받고오는 그러면서 한없이 좋은 사람인척 무책임한 그 전교죠 탈퇴한 교장을 아저씨는 많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음..  그래봤자 뭐 물어보면 모르겠다하고, 교장실 냉장고 전기 안들어가 다 녹으면 잘 모르겠다하고 뭐 그런 소심한 반항 정도였지만요.  아저씨는 뭐가 그리 급한지 그렇게 내팽겨쳐지듯 떠나오게 된거예요. 지금도 3관옆 물주던 호스가 건물뒤켠에 널부러져 있을거구요. 고장난 분무소독기가 알콜 배합통옆에 서있겠지요.

 

  새학교에 와보니 지하피트엔 단열이 안되서 결로로 물이차서 곰팡이가 피고있고, 지열배관엔 보온재가 설계와 다르게 얇게 감겨있고, 상수도 급수시설엔 물이 가득차있고 후렌지가 삐딱하게 대충 용접되어 붙어있고, 꼬맹이들 다니는 교실은 무거운 유리문이 달려있어 6개를 뗘내버려 문이 없습니다.  물론 특수교실엔 어른들 대변기가 붙어있어 꼬맹이 친구들이 이용할 수도 없고 소변기도 없습니다. 어른 장애인 화장실인 샘이죠.  최근 지은 건물인데 장애인 화장실엔 경사거울이 붙어있지 않고 일반 거울이 붙어있습니다.  하늘엔 F-15? 세모 비슷한 TV에서 보던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50m 옆에는 고속도로서 차들이 하루종일 쌩쌩거리며 지나가고, 운동장은 30여층 인근 아파트가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 숨이 콱 막히고 오후엔 햇볕을 다 가려버립니다.  가끔씩 도마뱀이 교실 복도에 돌아다니는걸 보면 도마뱀이 살던 곳에 핵교를 지은 것 같구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난계단이 3개 이상있으며 곳곳에 베란다 처럼 친구들이 화재시 피난할 장소를 자동개폐기를 달아 많이 마련해놓았다는 겁니다.  

 

  아저씨가 전에 학교는 경제논리로 얘기하면 망한다고 얘기했었나요?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학교엔 수천만원하는 최대전력관리장치를 해놓습니다.  한마디로 전기요금 줄이려고 전기를 많이 쓰면 냉난방기를 순차적 강제로 끄는 장치입니다.  이걸 에너지절감 시설이랍시고 모든 학교에 수천만원들여 해놓고 있습니다.  추운데 전기료 아낀다고 교실에 난방 안할건가요? 더운데 친구들 공부하는 교실에 냉방기를 자동으로 꺼버리는 장치를 수천만원들여 하고 있는겁니다. 거의 모든 학교에선 이 시설을 꺼놓습니다.  이 돈으로 노후 전기시설을 매년 교체한다면 전기와 관련한 사고는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데요.  오늘은 테레비서 나왔죠?  GHP 라는 가스냉난방기를 가동할때 나오는 NOx 는 1대당 1톤 차량 600대 시동을 켜놓은 매연이 발생한다고요.  학교엔 이런게 최소 10개이상 돌고 있습니다.  친구들 교실 옥상엔 수천대의 디젤차량이 붕붕대고 시동켜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인거지요.  친구들 강당조명을 왜 액정을 연동시켜서 켤수 있는 시설을 해야하나요? 스위치에서 쓸데없이 몇단계를 거쳐 고장나면 수리도 독점이고 어렵기만 합니다.  친구들에겐 안전하고 고장 안나는 단순한 시설이 최고인데요.  

 

  새학교를 이렇게 엉망으로 지어놓은 것을 누가 알까요? 누가 책임져야할까요? 지금 보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교육청 시설담당자조차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근본적인 원인은 시설관련 기술직종은 아무나 몸으로 하는 천한 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이 여성들인) 교육청 행정직원들 때문입니다.  학교시설이 대형화, 복잡화하며 이런 사람들이 무식하게 망쳐놓아도 얼렁뚱땅 굴러가던 옛날 학교건물과는 이제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전문적이지 않으면 감당이 안될 수준의 건물덩치가 된것이지요.  이들은 스스로 해결하려들지 않고 또한번 무식하게 선택을 하게될 겁니다.  복잡하고 천한 일인 학교관리를 외주화할거냐 말거냐.  외주화의 가장 큰 피해는 학생들이 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하냐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학교관리의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외주화의 가장 큰 이유는 관리하기 편하자고 하는 것이지 학생들 좋자고 하는게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각학교 시설관리 기술직렬들에게 학교 시설관리 기술교육을 실시해야합니다.  전원선은 4Sq 3C를 쓰고 전등은 2.5 Sq를 써야하며 R형 수신반 조작, 스프링클러펌프 관리, 학교시설 안전관리 실무 등 실질적인 직무교육을 주기적으로 시켜야합니다. 더이상 교육청 시설계에서 이러한 업무를 독점하도록 내팽개쳐서는 다 망합니다.  각 학교 시설관리 주무관들이 진짜 시설관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직무교육을 시켜야합니다.  폐쇄적인 교육청 조직에 이런 얘길 할 수 있는 노동조합도 바로서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있는 노조들은 대부분 승진만을 바라며 기술직 일들을 천하게 여기는 멍청한 행정직들 연가 얘기나 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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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주는 공부법] 쉬어가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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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주는 공부법] 쉬어가기 25.

[전교죠선생님이 안갈쳐주는 공부법] 나훈아와 미스터 트롯의 차이점

 

 

 

 

 

[나훈아-3-테스형!.mp3 (10.67 MB) 다운받기]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유행일때 나는 말을 참았다.  왜냐면 내 한 마디가 이들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효과에 보템이 될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뭐 대단한 영향력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들의 행태에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기 싫었다. 나는 참고로 TV조선, 채널A 채널을 지워버렸으나 다른 채널에서 재방송을 해서 미스,미스터트롯을 보게 되었다.)

 

 트롯이란 장르는 누구에게나 부담이 없으며 이런저런 크고 작은 마음을 표현한다.  농업이 기반일때 집단 노동 속 힘들때 부른 노동요가 사라진 요즘..  비슷한 역할을 하는게 바로 트롯이란 노래장르이다.   트롯의 탄생은 불행한 일제식민지에서 근거를 두고 있다.  그후로 60, 70년대 노래들은 트롯이건 아니건 모두다 노랫말 속에 이런저런 삶의 모습을 담았다. 그것이 어려움을 극복할 희망이 있건 없건 한계를 가질지언정 최소한 대부분의 노랫 말 속엔 모두 삶의 크고 작은 모습들을 담아내는 암묵적 약속이 있었다.

 

  미스,미스터트롯의 노래와 편집은 그간의 트롯 노래전통을 잇고 있지 않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로 대표되듯이 기존 트롯과는 다르게 삶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노래한 것과는 달리 한마디로 불륜, 섹스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단지 자극. 이거 하나에 촛점이 맞춰져 그간의 트롯이 갖고있는 장점을 모두 거세해 버렸다.  성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전형의 기획과 연출이 바로 미스, 미스터 트롯이다.

 

  그러나 나훈아 노래는 60,70,80년대 서정적인 트로트 연장선상에 분명히 서고 있다. 가벼운듯 우리들 삶의 한 양태를 표현하는 트로트 장르의 장점을 그는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아니 고수하고 있다. 살아가며 이런저런 고민들을 무척이나 편하게 승화시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순응적 삶을 노래한 한계도 분명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작가의 의도된 대중성, 전하려는 의미의 접점에 서있음을 노랫말과 가락을통해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어떤 노래도 이렇게 대중친화적인 성격이 없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해야만한다. 

 

  집단노동이 사라지고 개별화 되고 부속화된 노동을 하고 있는 요즘, 힘들때 함께 부른 노동요 자리를 시간이 지나다보니 트로트가 대신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훈아는 바로 그 트로트를 계승하고 있다.  그 연령대의 삶은 삶과 노동이 분리되기 이전의 세대이다. 70대이면 빈곤과 산업화를 살아내며 아직은 어릴적 농촌기억을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한 세대이다.  나훈아는 자연스레 이러한 정서를 노래한다. 이게 그가 살아오며 각인된 솔직하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정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미스,미스터트롯은 절대 이러한 자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며칠전  KBS 힘내라 대한민국 나훈아 콘서트를  본다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트롯을 하는 모든 이들은 많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격는 모든 행위는 삶과 동떨어져서는 다 가짜다. 죽어서 어찌되건 당장 내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는 도데체 왜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의 삶과 무관한 종교는 다 없어져야 한다.  아니 삶을 좀먹는 질병이다.  삶과 무관한 글과 노래 역시 돈벌기 위해 무한정 찍어내어 공해와 공멸의 시체를 만들고 있는 죽음의 자본주의 모습이다.

 

  트롯의 장점과 건강성은 모두에게 친화적이며 이런저런 삶을 표현하며 한편으로는 승화시키는데 있다.  나훈아는 존경스럽고 솔직한 예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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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가르치는 공부법] 아저씨 일상

 

 

 

 

 

 

[노회찬 의원 헌정음반-06. 흔들리며 피는 꽃.mp3 (4.23 MB) 다운받기]

 

 

 

  친구들 안녕하세요?  아저씨는 오늘 기분이 좋습니다.   한달전 평소 컵으로 활용하던 500ml  비이커를 깨먹었는데 오늘 다시 예쁜 500ml  비이커를 구입해서 막걸리를 한 잔 딸퀐습니다. ㅋㅋ  아니 어떻게 비이커에 물과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지 비난하지는 마세요.  이건 순전히 화학쟁이였던 아저씨 취향이니까요.  누구나 좋은게 따로 있는거구..  다들 제 잘날 멋에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냥 '아..  나랑은 다르구나' 하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모두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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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아저씨가 타고 출근하는 차는 탈탈거리는 소리가 크게나는 14년된 조그만 디젤차인데요.  밧데리에 콘덴서? 장치를 구매해서 달았더니 소리가 반에 반에 반으로 줄었습니다. ㅋㅋ  야간 음주 시공이지만 볼트가 아닌 단자에 잘 물렸고 따블류디도 살짝 뿌려주고 오염을 제거해 접속이 좋아지게 하였습니다.  핸폰 충전기, 네비게이션, 에어컨 틀면 아저씨 차소리가 심해졌는데..   기름도 덜먹고 모든게 부드러워질거로 예상합니다.   아저씨가 음주운전까지는 하지 않았으니 친구들 걱정 안하셔도 되고요.  콘덴서도 충전되도록 5분정도 시동켜서 공회전을 시켜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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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소변기 윗 뚜껑을 열어보면 소변기 물의 량을 조절하는 나사가 나오는데요.   이 나사를 계속 풀르면 어떻게 될까요?  친구들은 잘 모르겠다구요?   음..  나사가 튕겨져나가 수도배관이 터진거와 같이 나사가 막고있던 물이 솟구쳐 물벼락을 맞게 됩니다. ㅋㅋ  그러면 얼른 앞단 수도관밸브를 잠그고 다시 뜅겨져나간 나사를 주워와 막아준 다음 앞단 수도관 밸브를 열어줘야하지요.   아저씨는 그것도 모르고 오늘 소변기 물이 계속해서 적게 나오는 것 같아 (다른 곳 고장인데) 나사를 계속 풀러주다 물벼락 맞았습니다.  평소 생각해 놓은게 있어 당황하지 않고 앞단 밸브를 찾아 막아줬고요. 누전사고 날까봐 화장실 전원을 내려줬고요.  아저씨는 건물관리 20년이 넘었는데 이것도 모른다는건 창피한 일이예요.  인제 알았으니 아저씨도 담부터는 조심하겠지요? ^^

 

  요즘 학교엔 화장실 청소를 해주는 비정규 계약직 노동자가 2명씩 있는데요..  이들의 호칭은 청소전담원 혹은 청소원, 위생사 등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 저희 청소 아주머니께서 시설물점검신청서라는 뭘 고쳐달라는 종이에 본인 이름 적는 란에 청소부라고 적어놓으셨습니다.

 

  "아니..   이름이 없으신 것도 아니고 이름란에 청소부가 뭐예요? 이름쓰고 옆에 가로하고 청소라고 적은 것도 아니고. (청소하는 노동자인게 그렇게 창피합니까? 노동하고 있는게 그렇게도 창피하신가요?")  호칭은 청소전담원, 청소원 이신거구요.  이름을 적으셔야지요. ..." (그렇게도 노동하고 있는 쪽팔린 나란 자아를 숨기고 싶으신겁니까? 같은 노동자로서 화가납니다.)

 

  "뭘로 적어야헐지 하다 청소부라고 적었는데 저도 좀 그랬네요.   담부터는 이름을 적을께요. 미안해유."

 

  살아가며 이사람 저사람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지만..  실제 노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얘기가 겉돌거나 자기가 내뱃은 말에 얼마만한 노동이 들어가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신뢰가 가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결정은 얼마만한 노동이 들어가야 해결되는 일인지 등 실제 '노동'을 고려했을때 막힘없이 잘 진행됩니다. 노동자의 노동이 고려되지 않은 모든 계획과 이론은 다 가짜입니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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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가르치는 공부법] 쉬어가기 24.

[전교죠선생님이 안가르치는 공부법] 쉬어가기 23.

 

 

 

 

 

 

 

 

[Vinnie Moore - April Sky.mp3 (7.13 MB) 다운받기]

 

 

 

  노안도 오고 아저씨가 일이 좀 있어서 길게 쉬겠습니다.   다시 만나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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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가르치는 공부법] 코로나재앙 자기주도 학습

 

 

 

 

 

 

[이젠 잊기로 해요.mp3 (5.37 MB) 다운받기]

 

 

 

  친구들~~~  수능이 중요한가요? 천만에요.  아저씨는 친구들이 헤쳐나가야할  바로 그 '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지혜요.    아저씨는 특이하게 학력고사 수능 모두 봐봤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고,  살아남는 것이라 아저씨는 생각해요.

 

  코로나 재난시절을 우리모두 보내고 있지요? 어디선가 중위권이 사라진다는 얘기도 나오고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중요해지는 시절이라는 기괴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이요?  이건 지금껏 아저씨 강의가 여기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고..  스스로 '자각'해야 되는 부분이라 말씀드렸어요. 말이 어렵고 기괴해보이지만 해보면 안될게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 방식대로 이해하려 하는 노력이 결여된 것이 자기주도 학습 결여이고 재미없어진 공부를 해야하는 중위권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아저씨가 공부는 묻고 답하는 거라 얘기 했었죠?   암기는 공부가 끝나고 떠올려보는 것, 잠을 충분히 자는 것으로 해결된다고도 했었죠? 자기전 생각이 중요하다고도..   이런걸 호들갑떨며 학교서 얘기하고 있는게 바로 코로나시절 요즘 떠들고 있는 자기주도 학습입니다.  

 

  아저씨는 친구들이 이 험한 자본주의를 보다 인간적으로 아니 친구들 있는 그대로 생각한대로 살아가게끔 하는 전술을 말 씀드리고 싶은겁니다.   이걸 위해해 앞으로도 아저씨는 강의를 하고 있는거예요. 이게 전교죠 선생님과 아저씨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고요.  뭐냐면 전교죠 선생님들은 자본주의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해악과 교육의 왜곡을 동일시하거나 혼동했다고 아저씨는 생각합니다.  음..  전교죠선생님들이 요즘은 이런 고민도 하지 않지만요. 

 

  교육을 설계할땐.. 친구들이 살아가며 과연 어떡하면 행복해질 수 있냐를 최우선적으로 고민하면 그 뿐인데요. 실제로는 돈많이 벌고 나만 아니면 되는 돈놓고 돈먹는 자본주의에 충실하게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아저씨는 생각해요.  물론 돈이 있어야 행복해지지만, 돈이 있다고 행복해지진 않습니다.

 

  교육이 그렇다해도..  친구들은 어떤 선택을 하겠어요?   돈 많이 벌며 남들 등치고 불행히 살지, 아니면 돈 적게 벌며 남들과 함께 살지요.  아저씨는 후자 입장입니다.  왜냐면 인생은 저 잘난멋에 사는것이고 '죽으면 난 그런 삶을 살다 죽은 그런 사람인 그 뿐인데 뭘걱정해' 라는 아저씨 생각때문이예요.   이런 고민을 함께한 전자들에게 아저씨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오늘은 아저씨가 오늘 소주 2병을 먹었어요.

 

  그럼..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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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가르치는 공부법] 쉬어가기 22.

 

 

 

 

 

[noraemaul01_b04.MP3 (3.28 MB) 다운받기]

 

http://bob.jinbo.net/main/index.php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떤 때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두들겨 맞았다.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분이 날 15년 키워준 사랑스런 엄마.

  너무나 모순이다. 모순. 세상은 경쟁! 공부! 공부! 아니 대학! 대학!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 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이 사회에 봉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뭐해? 나만 편하면 뭐해? 매일 경쟁!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 들어가는 내 심장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도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내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떤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 아, 차라리 미워지면 좋으련만, 난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엄마를 구해야만 한다. 내 동생들도 방황에서 꺼내줘야 한다. 난 그것을 해야만 해. 그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이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전교 ㅇ등, 반에서 ㅇ등, 넌 떨어지면 안 된다. 선생님들이 널 본다. 수업시간에 넌 항상 가만히 있어야 한다. 넌 공부 잘하는 학생이니까 장난도 치지 마라. 다음번엔 ㅇ등해라. 왜 떨어졌어? 친구 사귀지마, 공부해! 엄마 소원 성취 좀 해줘. 전교 1등 좀 해라. 서울대학교 들어간 딸 좀 가져보자. 그렇게 한가하게 음악 들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해."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 생각지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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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오덕 선생님 비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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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기적으로 선생님께서 고민하신 교육을 받은 1세대입니다.  선생님과 같이 전쟁을 격지 않았고 극도의 빈곤을 격은 세대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사회는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걸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세대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전교조는 노동자이긴하나 학생들때문에 여타의 노동조합 운동과는 달라야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교조의 궁극 목표는 교사들의 이익보다는 학생들이 민주교육으로 바로 서는 교사의 역할을 충실함에 방점을 두셨습니다. 

 

  1.  8~90년대 선생님께서 바라보신 노동조합과는 달리 제가 알고 경험한 전교조 외의 노동조합은 표면적으로는 근로조건 향상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나 궁극적으로 인간해방,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기는 근로조건 향상 조차 아주 힘들게 주장하는 정도의 단계이고요 아니 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다 모두들 고용을 유지하기위한 몸부림에 방점이 찍힌 형국입니다. 노동조합은 이기적으로 혼자 살겠다는 주장을 하는 단체는 더더욱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선생님께서 얘기하신 학생들의 해방과 노동자들이 목표로하는 해방과는 별반 다를게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들 대동세상, 무릉도원, 천상에서와 같이 지상에서도 같은 세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곳 진보이고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셨던 바로 그 교사 노동자와 일하는 현재의 모든 노동자는 같습니다.  그것이 곧 분단된 통일 조국의 해방이기도 하고요.

 

  2. 선생님께서는 교사의 역할을 너무나 절대시 하셨습니다.  설령 한 아이가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죽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교사일까요? 제가 볼땐 가족입니다. 인격적인 1차 집단 관계를 맺는 가족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친구의 영향도 있다고 보는데 이 역시 가족의 영향에 비하면 무시하고 남을 정도입니다.   그냥 끼리끼리 모인정도의 영향입니다.

 

  한 친구가 괴로워합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습니다.  물론 책을 통해 만나본 선생님의 글쓰기 행위로 지금 50을 바라보며 건강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어느새 어쨌든 어른이 되었습니다. 제가 괴로워하는걸 훌륭한 선생님 한분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산술적으로 따져보아도 2/3 이상의 시간을 가족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요.   반대로 그렇다면 나만 바뀌면 그 영향들이 보란 듯이 없어질까요? 제가 지금껏 살아오며 한 사람이 정신적 문제가 생겼을때 그 단 한사람을 치료한다고 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한 사람이 일상생활이 힘들정도의 문제가 생긴경우 대부분은 가족도 문제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았으니까요. 그 한 사람은 주변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특히 자립하기 이전엔 그렇고요.

 

   그래요.  제가 볼땐 가족구성원의 입장에서 문제가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아야하고요.  문제가 생긴 구성원을 치료하기 위해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치료를 받아야하는 경우가 거의다 였습니다.   여기에 교사의 역할이란 거의 무시할정도의 경우였습니다.  그렇다고 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얘기하신 길잡이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교육이 잘못되어 학생이 죽는다는건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생명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나가려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유전정보속에 새겨진 정보탓인지도 모를일이지요.   그래서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이런 유전정보를 기도를 통해 바꾼다는 말이 생겨났을 지도 모르겠구요.

 

  저는 묘자리는 잘 모르겠는데..  돌아가신 분들과 현생의 사람들과도 일정부분 통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유신론자로 살아왔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으므로..  중요해지는 덕목은 '감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마이스터 에카르트라는 신학자는 그의 신학 모든 얘기를  '감사합니다.'라는 말 하나로 압축하기도 하였고요.

 

  선생님..  저는 지금도 선생님 글을 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헝크러진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현세를 살아가다보면   에이..  선생님 이건 아닌데요? 하는게 자꾸 생겨납니다.   그럴때마다 등불같은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는 선생님이고 선생님은 저이고 우리는 모두 절대자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어제는 귀뚜라미 소릴 들으며 거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선생님께 영원한 빛이 비춰지기를 기도합니다.  궁금한게 있음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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