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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 또다시 무산

또다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무산되었다. 아니, 이번에는 대회가 아예 열리지조차 못했다. 미리 예고되었던 상황이었던 만큼 민주노총 집행부나 각 연맹이나 지역의 간부들이 충심으로 온 몸을 던져 노력했더라면 최악은 피할 수 있었을텐데, 집행부는 여전히 네탓이오만 연발하면서 회의장을 점거한 동지들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으니 큰일이다.

 

일주일쯤 후에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겠다고 하지만,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안을 고수하는 한 일주일 아니라 한달이 지나도 오늘 상황은 재현될 수밖에 없다. 집행부가 힘으로 밀어부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나 깨달을 것인가. (근데, 오늘 현장에서 있었던 중집위에서는 분명히 날짜를 정하지 않고 대대를 일단 연기하기로 결정했는데, 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구태여 1주일 이내에 소집하겠다고 발표했을까, 회의를 시작하면서 1주일 순연시키겠다고 하더니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은 탓은 아니었을까, 그런 식으로 사회적 교섭안을 강행처리해야 된다는 생각이 민주노총 집행부의 뇌리에 완강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어서 다른 대안은 들어설 공간조차 없는 것일까, 쩝, 이렇게 썰렁한 상상을...-,.-)

 

4월 총파업 투쟁 조직이 큰일이라며 맥이 풀려 돌아온 위원장에게, 집행부가 남 탓하고 있다고 우리도 그러지 말고, 빨리 책임있는 간부들 불러모아 대책을 내보라고 했더니 한숨만 내쉰다. 하긴 위원장한테만 미룰 일도 아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30분이라도 차분하게 앉아 글쓰고 있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이쯤에서 글쓰기는 일단 멈추고 생각을 집중해서 현 사태의 해법이나 궁리해야겠다. 좀 정리되면 다시 쓸란다.(200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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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어제 오후에 잠깐 짬이 나서 쓰다가 다시 회의에 불려들어가면서 저장해두었던 것이다. 미완의 글이지만 그냥 여기에 남겨둔다)

 

다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주에는 각 조직과 단체마다 간담회, 토론회, 좌담회, 결의대회 등등 다양한 형식의 논의의 장이 벌어졌고, 여기저기 팽팽한 긴장감이 넘쳤다. 우리 연맹만 하더라도 그렇다. 사회적 교섭과 관련한 논의는 긴장감이 도를 지나쳐서 아차 하는 순간에 서로에 대한 짜증과 고성으로 폭발한다. 모두가 이대로 가면 파국이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해법은 판이하다.

 

<노동과 세계> 좌담회에 가서 현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가볍게 제안했었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안은 상정하지 말고, 민주노총의 공식 의결기구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되었던, 2004년 사업계획의 교섭방침-기업별 교섭을 넘어 산별교섭, 대정부교섭, 사회적 교섭 등 중층적, 총체적 교섭구조를 마련한다-에 근거해서 집행부가 일정한 한도 안에서 사회적 교섭에 관한 대정부협상을 추진하는 내용으로 대의원들이 동의를 구하자는 것이었다.

 

좌담회에서의 제안 정도로  끝났는데, 뾰족한 대책없이 정면충돌할 상황이 되었으니 주말에 여기저기서 이른바 "이성우안"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안은 해놓았지만 지금 분위기에서 집행부든 아니든 그것에 쉽게 동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심정은 여전하다. 이대로 가면, 내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 확실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누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 일단은 집행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사회적 교섭안을 상정하지 않는 결단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집행부 스스로 그런 결단을 내리고자 고민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집행부 안에도 강온의 다양한 견해들이 있어서 서로 운신의 폭을 제약하고 있는 듯하다. 자승자박의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집행부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설득하거나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워낙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조정력이나 지도력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누군가 나서서 중재라도 할라치면 독박  쓸일 있냐고 도리어 타박하는 분위기까지 있으니, 모두가 언행에 조심스럽다.

 

민주노총 중집위를 열어야 한다고 여기저기 떠들어댔는데, 조금 전에 확인한 바로는 오늘 중으로는 어려운 듯하다. 오전에 있었던 총연맹 상집에서는 중집위를 소집하는 분위기에서 위원장에게 위임을 했는데, 중집위를 구성하고 있는 각 산별연맹 대표자들이나 지역본부장들이 시간이 없다거나 중집위를 소집하면 뭐하느냐 하는 식의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서 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뻔히 내일 일어날 일을 예측하면서 책임있는 논의의 자리조차 갖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괜시리 위원장에게 따졌다.

 

회의가 또 이어진다. 에라 모르겠다. 밤에 시간나면 계속 쓰자. (2005. 3. 14)

 

밤에 시간나면 쓰자고 해 놓고서, 1차, 2차, 3차, 4차... 취하도록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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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취한 밤

비틀거리는 세상

 

구차한 세월에 담 쌓고

몸에 밴 습관들 모두 버리고

등 비빌 언덕조차 완강히 거부하고 있을 때

 

새벽 미명에

불쑥

날아든

옛 동무의 편지

 

-비관은 강력한 피임약이다*

 

카아-

새벽 기차에서 보듬는

뜨거운 유자차 한잔의 기쁨.

 

* 벤 와텐버그의 말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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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사회적 교섭과 민주노총의 진로

ㅇ. 일시: 2005년 3월 9일 수요일 오후 3시

ㅇ. 장소: 민주노총 2층 상황실

ㅇ. 참석: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

             이성우 공공연맹 사무처장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ㅇ. 사회: 차남호 편집국장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렇다고 속시원히 다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3월 15일로 예정된 대의원대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들은 서로 공유한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3의 대안도, 절충의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화나는 상황이다.

 

정리한 내용을 메일로 받았는데, 내 말뜻이 조금은 다르게 정리된 내용도

있지만, 그것도 기록자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말을 정확히 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어서, 특별히 걱정되는 표현 한두군데만 손보고 그대로 인정했다.

 

<노동과 세계>에 실릴텐데, 여기다가 미리 올리면 혼날려나....?^^;;

 

참...

당초 주어졌던 주요의제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적 교섭'에 대한 역사적, 종합적 판단

2. '참여:불참'의 대립구도를 벗어나 '제3의 대안'은 없나?

3. '사회적 교섭안' 처리과정 전반에 대한 판단(평가)

4. 3월 15일 임대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거기에 임하는 대의원의 태도는?

5. (상대방이 아닌) 의견을 같이하는 분들(조합원, 대의원)에게 당부의 말씀

 



 

<좌담> 사회적 교섭과 민주노총의 진로

“2004년 결정 따라 처리하고, ‘충돌’은 피하자”

대체로 의견접근…갈등해소 돌파구 될까


◇일시 : 2005년 3월9일(수) 오후3시

◇장소 : 민주노총 2층 상황실

◇참석 :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

        이성우 공공연맹 사무처장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사회 : 차남호 편집국장


사회> <노동과 세계>는 그 동안 사회적 교섭과 이를 둘러싼 조직내 논란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힘써 왔다. 오늘은 3월15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이견의 주요 당사자들을 모시고 그 동안의 논의를 총정리하는 한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사회적 교섭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겠다.

이상학> 우선 용어 문제인데, 사회적 교섭이란 ILO 등에서 쓰는 ‘사회적 대화’라는 넓은 의미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일부에서 말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코포라티즘)도 사회적 대화의 하나지만 민주노총이 제시한 사회적 교섭을 곧바로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규정하는 건 무리가 있다. 노사정을 비롯한 사회․경제주체들이 주로 사회적 의제를 놓고 논의하는 장을 만들고, 교섭의 장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합의가 가능할 수도, 쟁점화로 끝날 수도 있는 열린 공간이다.

유럽 사례를 들어 사회적 합의주의가 가능하려면 높은 노조조직율, 노사단체의 중앙집중화, 강력한 진보정당․친노동정부 등의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는 70년대의 ‘구 코포라티즘’의 경우에 해당한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조건에서는 이것이 작동하지 않음이 입증됐다. 과거엔 계급타협적 방식이었다면 최근의 유럽을 보면 지난해 엄청난 파업이 일어난 네덜란드에서 보여지듯 다른 양태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의) 경험이 없는 아일랜드 같은 곳에서는 노사정 주체들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기도 한다.


참여-불참은 여전히 '팽팽'

이성우> 이름을 사회적 교섭이라 하든 노사정협의체라 하든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노동계는 과거 노사정위를  통해 한번도 무언가를 이뤄낸 경험이 없다. 얼마전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노사정위 합의사항 중 이행되지 않은 건 실업자 초기업단위노조 가입밖에 없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했던 ‘단협실효성 보장’의 경우 사용자 처벌조항을 다 빼서 현장은 말도 못하게 당했다. 공무원노조도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대화와 투쟁의 산물이었는데 결국 제한적인 단결․교섭권만 법제화하는데 그쳤다. 이밖에도 더 있는데 굳이 유럽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노사정 대화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학> 한국의 노동정책은 ‘노동배제’가 기본이고 지금도 방법이 바뀌었을 뿐 마찬가지다. 군사정권 때는 물리적으로 배제했는데 지금은 대화로 포장해서 배제하고 있다. 또 하나 교섭의 성과는 어차피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단체교섭에 합의하더라도 언제 휴직조각이 될지 모르니 ‘휴전협정’이라 할 만하고, 전투는 계속되는 것이다. 법의 보호도 마찬가지다. 노조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활동을 펼쳐야 하는데, 여기서 교섭과 투쟁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 우리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국 투쟁과 조직력인데, 이것과 교섭을 잘 배치해서 궁극적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성우> 사회적 교섭을 잘 배치해서 활용할 측면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어떻게 배치할 것이냐’ 이전에 ‘왜 필요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사실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은 자본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IMF 경제위기 이후 재벌 계열사 일부를 포함해 우량기업은 초국적자본에 먹혔다. 과실을 초국적자본에게 빼앗기고 그 몫을 안에서 찾다보니 비정규직 양산, 경기위축, 빈부격차 심화 등을 초래했다. 여기에다 법과 제도의 도움을 받아 자본의 이익을 공고히 할 것이냐 하는 측면에서 사회적 교섭은 우리보다는 자본쪽에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은 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이 계속 양보하고 빼앗길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상학> 사회적 교섭을 놓고 ‘참여냐 불참이냐’로 논의되는 건 안타깝다. 사회적 교섭 ‘전술’의 유용성과 우려되는 점, 고려사항에 대해 논의해야 할 텐데 참여파-반대파로 나뉘어서 본질적 문제를 놓치는 것 같다. 그 본질이란 어떻게 하면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이익과 전체사회를 위해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쪽은 참여하는 게 유용한 전술이라고 보는 반면 한쪽은 참여하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참여와 불참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그런 논의가 없었던 점은 아쉽다.

이 처장의 주장과 관련해 한국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정권과 자본의 처지는 다르다. 개별자본으로서는 이익을 최대화하면 되고, 또한 그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정권으로서는 권력을 유지하고 재창출하는 과제가 있다. 그러려면 경제가 잘 돌아가고 불만이 해소돼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등은 곧바로 정치적 부담이 된다. 이렇게 봤을 때 자본은 사회적 대화를 원치 않는 반면 정권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 필요로 한다.  

한편 1998년 이후 우리 경제구조는 외국자본에 크게 잠식당하는 등 급격히 바뀌었다. 세계화 추세 속에 자본도 어려워졌고, 정부 또한 운신의 폭이 줄었다. 설령 우리가 집권하더라도 (자본에 대한)근본적 규제는 어렵다. 이런 환경변화를 고려해 노동이 적극 개입하는 게 유리하다는 본다. 또 하나는 노동배제․통제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에서 개입하고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득실은 힘에 달려 있는 것이니 만큼 교섭의 장 자체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성우> 개입의 여지가 확대됐다는 데 동의할 수 있는데, 그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과연 대의원대회 파행까지 무릅써야 할 문제인가. 개입력 확대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단결력이 약화되는 손실이 더 크다고 본다.

박순희> 70년대부터 노동운동 해왔지만 교섭은 ‘소리 없는 투쟁’이다. 교섭은 ‘문지방’ 같은 것으로 단결과 투쟁의 중간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든 반드시 교섭은 필요하다. 예전엔 단위사업장에서 교섭을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웠다. 이와 비교해 볼 때 10년차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을 놓고 논쟁하는 것은 발전이고, 노동문제가 그만큼 사회화됐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사회적 교섭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왜 사회적 교섭에 대해 거부반응이 나올까. ‘98년 노사정위의 악몽’이라 표현했는데 왜 나쁜 기억, 실패한 경험만 생각할까. ‘자라보고 노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는데 거기서 탈피해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조합원 대중과 함께 힘있게 조직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념적이고, 관념적이며, 외국사례와 학문적인 것으로 꼬여 들어가니 답이 안 나온다고 본다. 노동운동은 노동자만 살자는 게 아니라 국민, 경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게 목적이다. 사회적 교섭은 노동문제를 알려내고, 국민과 함께 가는 전술을 택해야 된다는 것이고,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 조합원대중도, 국민대중도 이에 대해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한 예로 비정규직 없는 가구가 없고, 문제를 느끼면서도 이 문제로 파업해도 정부와 기업주 대신 노동자를 욕한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회적 교섭으로 끌어내서 예를 들어 노사정 공개토론 제안하고, 그것을 생중계 한다든지 알려낼 방법은 많다. 그걸 우리 틀로 끌어안고, 우리 것으로 삼을 생각을 하면 하나도 문제될 게 없다. 힘있는 놈들한테 먹힐 텐데 하고 걱정만 하면 노동운동 말아야지.

사회적 교섭틀을 통해 노동자의 힘을 키우고, 교섭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알려내고, 그 힘으로 투쟁을 만드는 것이다. 조합원들도 교섭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면 투쟁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사회> 오늘도 확인됐듯이 민주노총 안에는 사회적 교섭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조직의 갈등과 파행을 부를 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참여와 불참 이외에 제3의 대안은 없는 것인가.


‘반조직행위’를 보는 시각

박순희>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도 없이 2월1일 대의원대회처럼 단상을 뒤집어엎고, 신나를 뿌리고 하는 것은 폭력행위 이전에 반조직적 행위라고 본다. 집행부가 어떤 폐해를 끼쳤는지 하는 구체적인 사례도 없이 어용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몰아붙이는 행위가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가. 노동자가 분열되고,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좋아할 일이다. 집행부만 대의원대회 치르는 게 아니다. 조직적 관점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3월15일 대의원대회를 치러야 된다고 본다.

사회> 이 문제는 다음 주제인데 한 발 앞서셨다. ‘제3의 대안’은 없겠는가.

이성우> 방금 말씀하신 ‘반조직적 행위’ ‘폭력’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아주 예민한 문제다. 일단 민주노총 집행부가 있고, 그 뜻을 지지하는 상당수 대의원이 있고, 또 거기에 반대하는 견해도 상당수 있다. 만약 반대하는 일체의 의사표현이나 행동을 ‘반조직행위’로 규정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사회적 교섭에 대해서는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대립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대의원대회 논의에 참여하고, 책임 있게 이끌어갈 의무는 의장과 대의원 모두에게 있다. 사실 과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일부의 폭력행위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본질을 비켜 가는 것이다. 두둔하거나 정당성을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정부-자본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민주노총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건 우리가 의연하게 딛고 가야 되는 것이지, 정부가 우리에게 그랬듯이 동지를 내치자, 배제하자, 처벌하자 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주제로 돌아와 ‘제3의 대안’에 대해 얘기하자면, 참여와 불참의 대립이 너무 명확하고 크다 보니까 2월1일 대의원대회를 지나면서 우리 스스로 절충의 여지를 축소해버렸다. 민주노총이 일단 이 질곡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의 대의기구나 조직들이 정말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10시간이든 20시간이든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회복해야 할 것 같다. 지금으로선 제3의 대안이 설 수 있는 여지를 함께 만들어야 된다.

이상학> 진정으로 노동자, 노동운동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될 수 도 있다. 딱 부러지게 제3의 대안을 얘기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이 어떻게 가야 되는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적 교섭은 그 점에서 작은 문제일 수 있다고 본다. 노동운동이 정말 민감한 현안을 놓고 이렇게 치열하게 토론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단순히 한 안건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거다. 지금까지 사회적 교섭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해서 결정이 계속 연기돼 왔는데 사실 이 문제만큼 많이 논의한 주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절차적 측면에서 집행부가 상당히 노력했고, 내용에서도 원칙만 정하고 논의하자는 것으로, 집행부안은 열려 있다고 본다. 

이성우> 사회적 교섭만큼 많이 논의한 게 또 있느냐고 하는데 대의기구를 통한 공식논의는 2월1일 임시대의원대회가 전부 아닌가. 국고보조금 수령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에 견줘볼 때도 사회적 교섭에 대한 공론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또 내용에서도 열려 있다고 하지만, 차이가 큰 상황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결정해야 된다고 하면 상황이 연장되는 것일 뿐 이게 제3의 대안은 아닌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상학> 더 심각한 문제는 과연 민주노총이 내부의 합의된 질서가 있고, 지켜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와도 관련돼 있다. 집행부가 서두른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회적 교섭을 활용하는 정책과 전술을 구사하는 집행부를 뽑았으면 사실상 맡겨두는 게 맞다. 그리고 다음에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박 지도위원 말씀처럼 마음 속에 큰 괴물 하나를 그려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지금 대응책을 못 세우면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휩쓸려버린다. 지금이 중요하다.

박순희>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그래서 집행부에서 빠르게 집행할 책임이 있는 거다. 중간논의가 없고, 현장에서 공유하지 못하고, 알려내지 못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겠지만 잘못한 거 논박하다가 우리끼리 코피 낼 일 없다. 조직을 팔아먹는 게 아닐 바에야 집행부를 뽑았으면 결정에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회> 이 시점에서 중간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애초 사회적 교섭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고 제3의 대안을 찾아본 뒤, 사회적 교섭안 논의․처리과정을 평가할 예정이었는데 두루 짚어보는 흐름이 됐다. 갈등해소의 실마리로 지혜를 모으자거나 충분한 논의를 위한 분위기 조성, 진지한 성찰 등이 제안됐는데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다. 이제 3월15일 대의원대회를 어떻게 할지 짚어보면서 논의를 발전시켰으면 한다.


“중층적․총체적 교섭제도에 주목한다면…”

이성우> 집행부를 믿고 맡겨줘야 하지 않느냐는 얘긴데 실제로 재신임까지 갈 일이 아니라고 본다. 누가 불신임을 제기한 적도 없다.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한 언론매체 기고에서) ‘정부내에서 사회적 교섭을 주장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이는 앞서의 이상학 원장 진단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 사회적 교섭이 아니라 ‘사회적 교섭기구안’을 주장했다. 이는 전술적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교섭기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지난해 정기대의원대회의 위임을 받아 중앙위에서 확정된)2004년 사업계획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 보면 ‘기업별 교섭을 넘어 산별교섭, 대정부교섭, 사회적 교섭 등 중층적, 총체적 교섭제도를 마련한다’고 돼 있다. 이석행 사무총장은 당시 “현재 노사정위는 안 되고 바꿔서 들어가자”고 분명히 정리한 적이 있다.

앞서 제3의 대안이 어렵겠다고 했는데, 그것을 찾기 전에 집행부가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처음엔 사회적 교섭에 모든 걸 투입하겠다고 한 적 없고, 총체적 교섭제도를 마련하는데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 처리과정에서 사회적 교섭을 지나치게 부풀린 측면이 있고, 그것은 집행부의 오류였다고 본다.

그러면 3월15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행부가 ‘믿고 맡겨달라’고 할 것 같으면 초심으로 돌아가서 중층적, 총체적 교섭구조 마련을 위해 책임 있게 진행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또 이수호 위원장은 재신임을 물을 게 아니라 중앙집행위원들의 건의를 바탕으로 “남은 임기 동안 맡겨지는 역할 다하겠다, 지지해달라”고 힘을 모을 것을 호소하며 재신임 안건을 스스로 정리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적 교섭안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당수 동지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현 집행부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면서 힘있게 갈 것을 결의하는 대의원대회가 되어야 한다. 정부에 대해서도 사회적 교섭에 대한 원칙을 의연하게 천명하며 성의 있는 태도를 촉구해야 한다.

사회> 그렇다면 사회적 교섭 안건은 어떻게 되는가.

이성우>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어제 “사회적 교섭과 상관없이 정부 비정규법안 무조건 통과시킨다”고 밝혔는데, 이런 상황에서 힘을 하나로 모으는 대의원대회가 돼야지 사회적 교섭 결정문제로 다시 갈등을 빚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현재 제시된 사회적 교섭안이 3월15일 대의원대회에 상정되면 걷잡을 수 없는 논란에 빠지게 되니 2004년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사회적 교섭 문제를 처리하자는 것이다.

박순희> 찬성이다, 반대다 이런 용어 쓸 필요 없이 2004년 사업계획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에 동의를 모으고, 이 힘을 모아 사회적 교섭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를 확고히 하자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그것도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이상학> 2004년 사업계획은 중층적, 총체적 교섭구조가 필요한데 산별교섭과 사회적 교섭, 노정교섭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교섭은 사실 지난 1999년 대의원대회 결정(노사정위 철수)이 별도로 있다. 또 2003년 대의원대회 때도 이 문제가 표결 직전까지 갔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따로 결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조직내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만 따로 안건을 올리다보니 ‘사회적 교섭만 하냐’는 문제제기가 나왔던 것 같다. 아무튼 이성우 처장의 제안이 대중적으로 확인된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고 본다.

박순희> 사회적 교섭을 하려면 투쟁을 더 강고히 해야 된다. 투쟁이 밑받침되지 않는 교섭은 시간낭비다. 교섭만 따로 한다면 그건 60, 70년대에 했던 한국노총 행태다. 그런 점을 문제제기하는 건 서로 성찰의 계기가 되고, 2월1일 같은 사태가 걸림돌만 되는 건 아니다. 서로 정신차리는 계기도 되고, 정부가 봤을 때도 민주노총이 만만치 않다, 조합 내부에 민주성이 회복되고 있구나 하고 인식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중층교섭이나 사회적 교섭으로 갈수록 조합원들이 진짜 의식화되고 투쟁력을 갖추고, 두 눈 부릅뜨고 보지 않으면 금방 어용이 될 수 있다. 이번 일을 좋은 계기로 삼으면 된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한다면, 걸림돌보다는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 오늘 모처럼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 같다. 지난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위임받아 사업계획을 결정한 중앙위원회의 사회적 교섭 관련 결정내용을 확인하면서 일단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는 사회적 교섭안을 다루지 않는 방안을 이성우 처장이 제안했고…

이상학> 다루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이미 결정돼 있으니까 그것대로 집행부가 집행하겠다, 그걸 대의원대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안건이 정리되는 거 아닌가.

이성우> 이것은 사실 대의원대회 결정을 얻지 않고도 집행부가 뜻을 펼칠 수 있는 집행과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것에 대한 대의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게끔 하자는 것이다.

이상학> 그런데 지난해의 경우 ‘대의원대회 결정 무시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했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뒷부분(사회적 교섭안 처리문제)은 나중에 정리하는 것으로 하면 이성우 처장의 제안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모처럼만의 의견접근

사회>오늘 이 자리는 대의원대회가 아니니 이성우 처장 제안을 ‘통과’시킬 순 없는 일이고, 여러 경로를 통해 타진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의미 있는 자리가 된 것 같다. 끝으로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에게 당부말씀을 전하면서 자리를 마무리하겠다.

이상학>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데 기본원칙인 연대의 위기가 가장 크다고 본다. 계급계층간 연대도 있지만 특히 노동계급내 연대가 도전 받고 있는데 크고 길게 봐야 된다. 너무 당면한 것에 집착하다 보면 진짜 위기로 갈 수 있겠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가 무엇이 틀린지 확인하고 통합점을 정확히 찾아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본다. 이번 문제를 잘 해결해야 내부문제를 해결할 힘이 생긴다.

이성우> 지금은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전가하는 국면이다. 게다가 노동자들끼리 분열돼 연대와 단결이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정부-여당이 4월국회에서 비정규 개악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있다. 지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말 그대로 선언적 총파업을 결의했다면 이번엔 통크게 총파업을 결의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들고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렇게 결의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박순희> 진통을 겪으면서 발전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차이도 인정하고, 다름을 숙고하면서 하나로 가는 그야말로 통큰 운동을 해야 될 필요가 있다. 큰 꿈을 꾸면, 작은 꿈들은 실현됨을 순간순간 느낀다. 자본의 본질을 정확하게 통찰하면 여러 방법이 나온다. 지렛대 역할도 할 수 있고, 문지방 역할도 할 수 있고, 디딤돌 역할도 할 수 있는데 각자의 역량을 모으되 서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비판엔 단호하되 비난은 아끼는 동지애로 조직을 지켜나가는 정신으로 가면 이번에 겪은 아픔도 빨리 치유된다. 힘내시고, 동지애로 좀더 결속되는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드린다.

정리=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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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회의

새벽 4시 30분에

오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서

아침 8시 임원회의,

아침 10시 임원-사무처회의(상집회의),

겨우 회의 두개를 끝마치고 나니

오후 4시 30분이다.

 

지금

각 실별로 점검회의가 또 이어지고 있다.

 

회의로 살아온 인생,

회의(會議)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懷疑)하면서도

다시금 회의에 매달리고야 마는.

 

회의를 혁신해야

조직이라는 것,

운동이라는 것,

사람이라는 것,

모두모두 혁신할 수 있지 않을까.

 

불현듯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말이 떠오르네.

-혁신(革新), 그거 무서운 말입니다.

  짐승의 가죽까지 벗겨서 새롭게 바꾼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민주노총을 한번 바꾸어 봅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잠시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

어릴 적 만화에서 보았던,

식인종한테 끌려가서 거꾸로 매달린 인간의 모습...

 

그 사람들도 혁신은 못하고

대부분 곧 구출되었지 아마.

 

주절주절주절주절투덜투덜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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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하다가...

아침, 회의를 시작하면서,

올해를 시작할 때 열심히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는데

지난 두달을 되돌아보니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으니

3월을 맞아 다시금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더 잘 하겠노라고 짧게 말문을 텄다.

 

그런 것 같다.

연초에 했던 결심은 1월이 지나면 흐릿해져버리고

달초에 했던 다짐은 한 주일이 지나면 스멀스멀 사라지고

아침에 세웠던 계획 따위야 저녁이 되면 정체불명이 되는 것,

사는 것이 그런 것 같다.

 

거기에다가

나란 인간은 참 물러터진 것이

시시각각 채찍질하고 담금질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위태위태하다. 

 

어쩌랴, 어제의 것들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곱씹어서라도

그래서 엇비슷한 반성과 반성을 거듭할지라도

그렇게 살아온 인생, 그렇게 부딪혀온 세상을.

 

정회를 하고 점심을 먹다가

봄이라는데 생각이 미쳐서

오래 전 기록들을 더듬어 봤더니

이런 것이 하나 있더라.

 

정말...

4년이 지났는데 내 삶의 조건은

변한 게 없는 듯.

 



봄. 봄. 봄. 한라산에도!

봄. 봄. 봄. 지리산에도!

봄. 봄. 봄. 설악산에도!

봄. 봄. 봄. 백두산에도!

야호!

 

눈보라와 함께 3월이 왔습니다.

3월을 봄이라고 불러도 좋겠지요.

이번에는 봄이 아주 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봄이 오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너무나 깊었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상처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 고통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여미고 고통을 덜어내고

함께 새롭게 일어서는 일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만

겨울은, 그 계절 속에 파묻혔던 나는

굳이 그것들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이제, 굳이 3월이 봄이라면,

봄, 답게, 나도 더욱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그동안 못썼던 글, 편지, 일기 따위라도

매일같이 쓰면서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들 감출 수 있을만큼

많이 많이 치열해져야 하겠습니다.

(200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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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매체 주소 모음

* 이 글은 최선을 다하는 자유님의 [언론매체 주소 모음]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내게도 필요한 자료라서 트랙백을 걸어둔다.

"...자유"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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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복들을 벗다?

지난 월요일이었구나, 오전에는 정례적인 상집회의 진행하고,

오후에는 출장간 위원장을 대신해서 공무원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 갔다가,

5시로 예정된 단위노조 순회 간담회에 부랴부랴 달려갔다.

 

조합원이 50명 남짓한 작은 사업장인데 열댓명의 조합원들이 모였고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30-40분쯤 열심히 떠들고

민주노총의 최근 상황에 대한 곤혹스런 질문에 성의껏 답하고

퇴근 시간이 지난 노조 사무실에 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처장님, 고생많으시죠?

=에유, 요즘은 노동자라면 특히 모두들 고생이지요. 어디서나...

-사실 아까도 질문이 나왔지만,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사태를 놓고 말들이 많아요.

=언론이 좀 설쳤습니까? 기아차 사태에 이어서 말이죠...

-저도 노조 위원장한다는 게 챙피하더라구요.

=그러셨어요?

-연맹 단체복 하나 구해서 맨날 입고 다녔는데, 요즘은 벗고 다녀요.

(그러고 보니 양복차림이 말쑥하다)

=하하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애서...

=하하, 저야 연맹의 간부고 총연맹의 대의원이기도 하니까, 손가락질 받아도

  할말 없지요 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때마다 더 반성하고 스스로

 채찍질하자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입고 다닙니다.

(평소에도 일년의 절반 이상은 단체복이나 투쟁조끼로 다니는 것 같다)

-그렇습니까? 하하, 저녁이나 하러 갑시다.

=예...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고, 소주 몇잔 마시고 다시 연맹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대화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연맹 정기대의원대회를 진행하다 보니까

얼추 300명 가까운 동지들이 모여 있는데

단체복이나 투쟁복을 입은 숫자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그런 분위기들이

현장의 노조 간부들에게까지 은근하게 확산되어 버린 것일까.

 

눈썰미 좋은 동지들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말이 난 김에, 요즘 내가 입고 다니는 옷차림의 일부를 소개한다.

길가다가 이런 사람 보면 난 줄 알고 술마시자고 하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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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없다

낙서나 일기로 생각하면 앉은 자리에서 후다닥 써버리고 마는데,

이게 어디엔가 실리기라도 하는 "원고"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쉽게 쓰질 못하고 헤매게 된다.

 

월간 네트워커에 한달에 한번씩 겨우 7-8장 수준의 가벼운 글을 쓰는데,

이번에는 뭘 쓰지 하고 궁리하는데 1주일 이상 걸리고,

그런 궁리를 뒷받침할 간단한 자료라도 살펴보는데 두어시간 걸리고,

그러다가 글을 작정하고 쓰려고 하면 이런저런 일들이 터져서는

아예 책상머리에 앉기도 힘들게 한다.

 

항상 마감을 훨씬 넘기는 자의 게으르고 궁색한 변명이지 뭐...-.-;;

어쨋거나, 이번에는

이공계에서 잔뼈가 굵어서도 첨단 디지털시대에

기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 친구들 얘기나 써야지 했는데,

갑자기 등장한 '자살'이라는 소재에 밀렸다.

 

그리고 이 좋은 휴일 낮에 아이들을 컴퓨터 앞에서 내쫓고

후다닥 썼다.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휴일에도 출근한

진보넷(월간네트워커)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꾸우벅)

 

 



 

통계청 통계로 2003년 한해동안 10,932명이 자살했다. 하루 30명, 48분에 1명꼴로 자살한 셈이고, 인구 10만명당 자살율이 27명으로 전체 사망원인 중에서 5번째로 수직상승했다. 게다가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의 숫자가 연평균 35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자살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의 하나가 되었다.

이번 겨울 들어서서 주변의 잇따른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노조 활동가의 자살부터 또 다른 활동가 동지의 부인의 자살, 그리고 배우 이은주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은 우울증(병)에 대한 다양한 억측과 상상들이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체계에 이상이 생긴 것이고, 약물치료든 심리치료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다. 국내 자살자의 80% 이상이 우울증 환자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있지만, 정작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여타의 질병에 비해서 너무도 판이하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면 주변의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 죽음까지 염두에 두고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군가 우울증에 걸렸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문제가 된다. 다른 질병에 비해서 우울증은 그저 심리적인 불안정의 문제요, 개인 의지의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그것이 우리 이웃들로 하여금 치료 한번 받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뒤늦게 우리를 땅을 치고 통곡하게 만든다.

아포토시스(apoptosis)라는 개념에 한 때 매료된 적이 있다. 정상적인 세포가 어떤 환경에 놓였을 때 유전자에 기억된 어떤 경로에 따라 세포가 스스로 축소하고 핵이 응축하면서 DNA가 규칙적으로 조각나서 죽어버린다. 세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니! 불과 3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세포의 죽음은 네크로시스(necrosis)로만 알려져 있었다. 네크로시스는 화상과 타박, 독극물 등의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세포의 죽음으로, 세포의 ‘사고사’라고 할 수 있다.

아포토시스는 짧은 시간에 질서있게 진행되는 세포의 능동적인 죽음의 과정이기 때문에 세포자살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아포토시스는 발생과정이나 몸의 형성과 유지에 꼭 필요한 것으로서, 가령 태아의 손은 생성초기에는 손가락 구분이 없는 주먹 형태지만,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아포토시스를 거쳐 스스로 죽음으로써 남은 부분이 손가락이 된다. 암에 전이된 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아포토시스를 통해서 세포가 스스로 치유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아포토시스는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세포 단위의 ‘공익을 위한 자발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세상에서도 아포토시스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모든 행위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든 그 무엇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의 원인은 이 사회에 있고, 우리가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그 책임을 죽은 자의 것으로 돌리는 순간, 그것은 사회적 타살이 된다. 자살은 없다. (200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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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계란탕

어제 점심시간에 문득 생각이 나서 연맹 상조회에 이런 것을 썼다.

앞으로, 거기에 쓰면 여기에 옮기고, 여기에 먼저 쓰면 그리로 옮기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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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가 다되었네요.
틈틈이 짬을 내어서 제가 잘해먹는 음식들 소개하겠습니다.
토마토계란탕은 우연히 EBS요리강좌에서 보고 나서
이래저래 응용을 해봤는데, 아침식사 대용이라든지
술마시고 나서 속이 불편할 때 아주 좋습니다.
만들기도 무척 간단하니까
주방 근처에 얼씬도 안하는 남성동지들도 한번 시도해 보시압!

<재료>
기본: 올리브유, 대파, 토마토1-2개, 계란, 물1-2컵, 참기름과 후추
추가(없어도 무방함): 양송이나 표고 등 버섯류, 굴이나 조개 등 해물류, 피망이나 당근 등

<만들기>
1. 냄비에 올리브유를 넉넉히(초보자는 이런게 헷갈리죠? 2숟가락 정도면...) 두르고 뜨거워지면 송송 얇게 쓴 파(송송? 동그랗게요)를 한움큼(대파 10cm정도) 넣어서 파의 향이 배어나오게 한다.
2. 뜨거운 소금물에 잠깐 데쳐서 껍질을 벗긴(정수리 부분에 칼집을 넣어서 뜨거운 물에 넣어 보세요) 토마토를 얇게 썰어서 냄비에 넣고 볶는다.
3. 토마토가 적당히 으깨지고 끓어오르면 물을 적당히(토마토 1개면 반컵 정도, 토마토가 잠길 정도) 넣는다.
*물은 다시마물같은 거 있으면 쓰고 아니면 생수를!
4. 마구 끓으면(이 때 소금으로 간을 적당히 맞추고) 계란을 하나 풀고 참기름 약간 넣고
취향에 따라 후추를 뿌려 얌냠하면 된다.(->계란을 싫어하면 곧바로 5번으로 가도 됨)
5. (추가) 재료가 기본일 때는 위와 같이 만들어 먹으면 되고, 추가재료가 있으면 위 3의 단계에서 더하면 된다. 즉, 표고가 있으면 표고를, 굴이 있으면 굴을, 피망이 있으면 피망을, 냉장고에 잠자고 있는 재료들을 적당히 넣으면 더 풍미가 있다.

<한마디>
정말 쉬워요. 한번 해보시고 맛없으면 항의하십시오.^^;;
참고로, 미리 토마토를 데쳐서 껍질을 벗겨 놓으면, 10분이면 해먹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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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 중에서-

 

"국민 여러분, 지난 2년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비정규직이 늘고, 장사는 안되고,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으나 아직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비정규직의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규직에 대한 강한 고용보호를 양보하지 않고 비정규직의 보호만 높여달라고 하면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연대임금제나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제안 없이 어떻게 노동자간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한 방안을 찾고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합니다."

 

눈에 걸리는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회의하러 곧바로 민주노총으로 달려가야 할 처지라서,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들어간 두 곳만 옮겼다.

 

왜?

한마디 하고 싶은 블로거 동지들, 욕이든 뭐든 한번 퍼부어 보시라구요!!*^ㅇ^*

 

*근데, 얼핏 보니 나를 포함해서 노조 간부들도 이런 연설 잘 하는 것 같다. 조합원 동지들, 지난 일년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갈수록 노동강도는 쎄지고, 뼈빠지게 일해도 우리네 삶은 제자리 걸음이고, 연봉제며 계약제며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노동조합에서도 최선은 다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 진짜로 최선을 다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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