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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 쿠키

내가 오래 전에 요리교실에 다닐 때

여름방학을 맞아 가문비도 어린이 요리교실에 다닌 적이 있다.

아빠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어린 가문비에게도 흥미를 자아냈던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지 혼자서도 곧잘 무언가를 해먹곤 한다.

 

오늘, 저녁 무렵,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데 가문비가 전화를 했다.

-아빠 지금 바쁘거든. 조금 있다가 집으로 전화할께.

=아빠, 아빠, 나도 바빠. 잠깐만!!

-(기자양반, 잠깐만 기다려주세요..-_-) 무슨 일인데 그래?

=오븐에 넣는 판 어디 있어?

-글쎄다, 엄마한테 물어보지.

=엄마는 전화를 안받는단 말이야.

-그러면 오븐 윗쪽이나 아랫쪽 보관함에서 찾아봐.

=알았어. 끊어.

 

집에 왔더니, 아이들 돌보는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가문비가 친구들 데려와서 무슨 과자를 굽는다고

아직 저녁도 안먹었어요."

가문비, "아빠, 버터가 모자랄 것 같아 새로 샀는데,

그대로 남았거든. 돈 줘."

나, "여기 있다. 근데 다른 재료들은 어떻게 구했어?"

가문비, "설탕, 버터, 밀가루, 이런 것들은 우리 집에 있고,

초코, 바닐라 같은 것들은 친구집에서 가져 왔어."

 

작년 엄마 생일날에는 쿠키를 구워서 선물을 대신하더니

내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선물로 줄 모양이다.

밤에 가문비 방에 들어갔더니 밀폐용기에다 정성껏 담아놓았다.

 

맛은?

달지도 않고 풍미도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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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이후, 주절주절...

17일에 공식적인 임기를 마치고 다시 현장에 돌아간 수석부위원장은 곧바로 사업관리팀장이란 직책으로 발령이 났고, 어제 회의에는 휴가를 내고 참석했다. 오전에 남은 짐을 박스에 챙겨서 진짜로 사무실을 떠났고, 2년 동안 그가 쓰던 노트북 하나와 전화기 한대 뎅그라니 놓여있는 책상이 내 눈 바로 앞에 낯설게 남았다.


얼마 전에 새로 출범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지부의 기본협약이 20일 저녁에 극적으로 타결되었고, 그 조인식이 어제 오전 11시 30분에 있었다. 조합활동 보장, 전임자 인정, 인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 참관 등 비교적 성과있고 의미있는 결과를 따냈다. 오후 2시부터 있었던 마지막 중앙위원회(전국지부장회의), 4시간 남짓 진행된 이 회의는 한 지부의 현안을 둘러싼 위원장과 지부장들의 현격한 입장차이로 인하여 참 힘들게 진행되었다. 비애... 어쨋거나 오늘아침부터 지금껏 그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고, 원장과의 마지막 담판만 남기고 지금 사무실에 돌아와 있다. 참 임기는 17일로 끝났지만 아직 다음 집행부를 뽑지 못해서 어제 회의에서는 규약에 따라 위원장의 권한을 연말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임기 마치면 얼마라도 여유를 가지려고 여름휴가도 쓰지 않고 지나갔는데 쩝..쩝...이다. 어제 회의를 마치고 모처럼 물처럼 술을 마셨고, 당연히 취했다. 뒷풀이에 참석한 거의 모든 동지들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 아침 5시 30분에 잠이 깬것은 정상이 아니라 취기 때문이었을 게다. 20일, 월요일, 10시까지 연맹 사무실에 도착해야 하는데 잠들기 전에 가문비가 부탁한 반찬을 해두고 나오고 보니 출발부터 늦었다 싶었는데 월요일 아침의 교통체증 때문에 차를 놓쳤다. 다행히도 그 다음 기차의 자유석이 한석 남아 있어서 15분 지각하는 것으로 그쳤다. 연맹의 임원 당선자들이 모여 마석 모란공원을 참배했다. 전태일(1970), 유구영(1996), 김시자(1996), 최명아(1998), 김종배(1999), 최진욱(2000) 우리 연맹에서 가면 우선 찾아뵙는 분들인데, 올해 또 한 동지가 여기 묻혔다. 사회보험노조의 고 박동진 동지, 수배 생활 중에 간암을 얻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지난 2월 40대 초반 나이에 숨졌다. 김시자 열사의 묘소를 참배하다가 대학교 1학년때 나를 학습모임에 이끌고 갔던 경제학과 78학번 선배의 묘소를 우연히 발견했다. 80년 가을에 강제징집되었다던가 해서 못만났는데 재작년인가 친구로부터 선배가 시한부 삶을 산다는 소식만 들었고 그 다음에 신문의 부고란에서 선배의 사진을 보았다. 19살 애띤(?)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후에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인사차 방문하기로 했는데 나 혼자만 급히 대전으로 돌아왔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기본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에서 인사위원회 참관을 놓고 사측이 계속 머뭇거리길래 내일 중앙위원회가 끝나면 내 권한도 끝날 것이니 임금협약을 포함해서 내가 있을 때 체결하고 싶으면 다음 날 오전까지 수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결렬하겠다고 하고서 다음 일정을 이유로 부리나케 나와버렸더니 금세 전화가 왔다. 인사위원회 참관을 포함해서 나머지 사항들도 우리 요구안 그대로 받기로 했다고. 곧바로 과학재단의 임금교섭 조인식이 있었다. 노사가 함께 저녁을 먹기로 지부장이 얘기하길래 미리 시간없다고 했는데 기초지부 교섭 때문에 당초 약속보다 거의 1시간이나 늦어지면서 엉겁결에 합류했다. 입에 발린 얘기만 하고 억지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용자들과 밥먹는 자리는 정말 피하고 싶다. 그나마 지부의 간부들이 노조의 입장을 분명히 갖고서 적절하게 사용자들을 교육(?)시키는 분위기라면 좀 나은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저녁에 선거대책본부의 해단식이 있어서 참석하기로 했는데 하루에 두번 서울가겠다고 하니까 다들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저녁에다 술까지 마시다 보니깐 시간도 늦었다. 결국 못간다고 전화하고 사무실에 들러 다음날 회의자료 검토하다가 조용히 퇴근했다. 술마시자고 한 동지가 전화를 했는데 못가서 정말 미안하다. 이 동지는 늦은 밤에 전화를 해서 오지 않은 나를 나무랐고 새벽 5시에 문자를 보내서 또 나를 탓했다. 미안하다. 조만간 술마시자. 19일, 일요일, 창원에 갔다. 배성환 국장의 결혼식 풍경은 작은나무님의 블로그를 방문해서 사진으로 보시라. 18일, 토요일, 이영태 동지의 결혼식, 임양섭 국장의 아들 평원이 돌잔치, 민주노총의 지역본부 초기 간부들 모임,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갑사에서 있었던 어느 조직의 창립수련회에는 갈 수가 없었다. 조훈 동지가 운영하는 돼지마을에서 민주노총 초기에 고락을 같이 했던 여러 동지들이 정말로 오랜만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 노조 출신의 정기현, 김예준, 고영주, 김세동, 이성우. 전교조 문성호, 대전대 이수상, 조폐노조(경산) 강승회, 없어진 대광레미콘 조훈, 폐업한 동신전선 장병윤, 현대자동차 황수원, 이용길, 유니레버 황장연, 한통계약직 이승환, 이런 동지들과 오며가며 들린 동지들 함께 골치아픈 얘기들 잠시 제쳐두고 옛 추억들만 되새기다가 난생 처음 대리운전이라는 것을 불렀다. 나이가 들면 18번이라는 게 고정되는 건지 10년 전에 부르던 노래를 여전히 18번으로 섬기는 동지들, 워낙 이런 자리가 드물어서 노래하는 모습들은 사진도 찍고 녹음도 해 두었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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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기억 쪼가리들

지난 주는 2년 임기의 마지막 한 주였다.

 

13일, 월요일, KIST지부의 천막투쟁 출정식이 있던 날.

8시 30분에 연구단지 운동장에서 출발하기로 했는데, 아이들 반찬 챙기다가

15분이나 늦었다. 지부의 간부 3명과 함께 칼같이 와서 기다렸던 화학지부장은

본부 상근자들이 모두 지각이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오후엔 환경정책.평가연구원지부의 창립 6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축사를 하면서 1998년에 노조를 만들던 풍경을 더듬어가는데 머리로는 6년을

되돌아보면서 말로는 8년 세월이라고 했다. 단순한 실수였을까?-.-

 

14일, 화요일, 아침에는 해고자 복직을 위한 출근투쟁이 있었고.

오후에는 곽수석과 이국장과 함께 대구(섬유개발연구원)에 가서 교섭-

마지막으로 하려고 했는데, 실무 두어차례 더하고 27일에 한번 더 본교섭 하기로.

저녁 먹고 소주도 마시고 잠에 취해서 돌아오다.

 

15일, 마지막 중앙집행위원회가 있었다.

뒷풀이는 우리집에서 소주나 마시자고 제안했던 터라서

점심시간에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장보느라 점심도 건너 뛰었지.

곽수석에게 의장을 넘기고 정보통신연구진흥원지부의 임단협 조인식에 갔었다.

회의가 예정보다 늦게 끝나서 바깥이 어둑하다. 비는 쏟아지는데,

부리나케 먼저 집으로 달려가서 몇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7시쯤부터 시작된 자리가 새벽 2시쯤 끝났던가, 도중에 먼저 간 동지들도

여럿 있었지만, 소주와 쇠고기는 더 사왔는데도 동났고, 남으리라 여겼던

조개국도 말끔히 비웠다. 이래저래 스무명쯤 손님을 치렀나..

시간에 쫓겨 미처 처분하지 못한 야채들로 이웃들에게 인심 좀 썼다.

 

16일, 뭐했더라,

오후에 서울에서 연맹 당선자 모임을 갖고 연말까지의 일정을

협의했다(빡빡하게). 연맹 사무실에 잠깐 들렀다가, 분당으로 가서,

전자부품연구원의 노사와 어울려 술 마셨네.

분당에서 평택으로 와서는 또 맥주 마시고, 대전오는 기차에서 막판에

까무룩히 잠이 들어서 대전역을 지나칠 뻔 했지.

유성에서 연맹 정치학교 참가자들이 술마신다고 해서 가다가 아침에 보기로 함.

 

17일, 공식적인 임기의 마지막 날.

아침에 정치학교에는 얼굴만 비추고 말았다.

마음은 괜히 어수선하고 챙길 일도 꽤 많다. 내가 모금했던 10만원 세액공제

영수증도 일일이 친구들에게 등기로 보내고, 연구소 조합원들도 잠깐 보고.

지역본부 임원진 투표하러 연구소에 갔다가 후보 사퇴 소식듣고 난감.

저녁에 모처럼 원자력연구소에 다니는 친구와 어울려 소주 꽤나 마시고,

다음날 결혼하게 되는 예비신랑패들과 어울려 있는데, 웬일로, 수련회 갔던

아내가 늦은 밤에 귀가하는 길에 술집으로 와서는 더 크게 취하는 것을

막아줌. 허나, 후보 사퇴하고 침통하게 술마시고 있던 지역본부의 동지들에게

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함. 미안해라.

참, 일산에서 내려와서 2년을 고생한 곽수석, 수도권지부장 회의 챙기러

가신다길래 마다 하는 것을 억지로 유성터미널까지 태워드렸는데,

그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입안 가득 맴돌던 얘기 하나도 못했네.

지금껏 그랬지만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동지.

 

18일, 토요일, 결혼식에 돌잔치에 오래된 동지들의 모임까지.

그 얘기는 또 시간 나면 쓰자. 지금 어떤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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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편지함 4963통

틈틈이 스팸메일을 지우긴 지우는데 지우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도 진보넷은 블로그나 미디어참세상에 들어오는 길에 꼭 메일함에 들러서 스팸메일을 지우고 나가니까 나은 편. 문제는 이런저런 메일을 모아 받는 통합메일시스템이다. 지난 여름까지 넷피스를 쓰다가 스팸메일 공세에 1만통 이상의 메일을 남긴 채 1GB를 제공한다는 파란닷컴 메일로 옮겼는데, 선거며 교섭이며 일정이 넘쳐서 여러 날을 건너뛰어 메일함을 열면 1천통은 거뜬히 넘어선다. 오늘도 사무실에 오자마자 진보넷의 스팸메일을 지우고 파란닷컴으로 들어갔더니 1,200여통의 새 메일이 왔고, 받은 편지함에 쌓인 메일이 4,963통이다.#$%%$^%%&&^*& 저 속에서 많으면 5%쯤 차지하고 있을 의미있는 메일들을 지금부터 사냥해야 하는 처지이다. 스팸메일에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었는데 간장오타맨이 알려준 선더버드를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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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선거 연설문 초안

* 이 글은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공공연맹 임원선거에 나간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아침에

차분하게 다시 한번 써 보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3-4분,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즉석에서 어떤 내용으로 바뀌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일단 준비는 끝난 셈이다.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

잠이나 자야겠다.

 

 



 

동지들, 안녕하십니까? 기호 2번 사무처장 후보 이성우입니다.


저는, 소위 먹물 꽤나 들고 가방 끈이 길다면 제법 긴 과학기술노동자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결핵퇴치운동을 한다고 연극을 만들기도 했고, 연구소에 들어와서는 항암제 개발과 관련된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항암제보다는 이 사회에서 암적 존재가 되고 있는 추악한 자본과 부패한 권력에 맞서서 싸우는 것이 더 급한 일로 생각되어, 지금껏 10년 이상 노동조합 활동에 매달렸습니다. 대학교에서 배우고 연구실에서 익힌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저는 노동현장의 조합원 동지들에게서 배웠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제 인생에서 노동조합은 큰 스승이었고, 조합원 동지들은 언제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과기노조 위원장을 세 번이나 했고, 공공연맹의 대전충남지역본부장을 맡아 지역의 크고 작은 투쟁사업장과 열악한 노조 결성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민주노동당 대전시지부장과 유성구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는 많이 부족하고 동지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사무처장 후보로 나서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연맹의 사무처장으로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아래로부터 혁신하는 연맹과 사무처를 만들겠습니다. 현장의 요구를 잘 수렴하고, 실천으로써 조합원들에게 믿음을 주는 연맹 집행부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혁신을 주장하고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후보들이 다 똑같은데, 당신에게는 그 약속을 이행할 특별한 무기라도 있냐고 저에게 물으신다면, 우선 지난 세월을 일관되게 살아온 제 인생 자체를 증거물로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10년 이상 쉴새없이 현장에서 배우고 익혔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저 자신을 단련시켜 왔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느라 서울과 대전을 오가면서, 저는 각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자료집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여기 그 책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사무처장이 된다면 해야 할 일들이 저희들의 약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후보들의 공약과 자료에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료만 겉치레로 읽는 것이 아니라 정파와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든 동지들의 의견을 하나같이 소중히 듣고 챙기는 사무처장이 되겠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저를 돕기 위해서, 몇 가지 무기가 제 몸의 일부가 되어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여기 소형녹음기가 있습니다. 이 속에는 술에 취해서도 담아낸 현장의 동지들의 비판과 욕설과 요구들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약속들도 여기에 녹음되고 있습니다. 제 허리춤에는 디지털카메라가 있습니다. 유세 중에 처음 만난 동지들의 얼굴이 여기에 들어가 있고, 오며가며 집회현장의 목소리들이 여기에 동영상으로 보관됩니다. 이런 것들을 잠자기 전에, 기차와 버스를 타고 오고 갈 때, 다시 보고 들으면서, 동지들의 삶과 투쟁 자체를 곧 저의 것으로 소화할 것입니다.


동지들, 그래도 저에게 모자란 것이 있다면, 준비된 위원장 후보 양경규 동지와 연대와 실천의 모범 수석부위원장 후보 박정규 동지, 그리고 현장에서 다진 전문성과 투쟁성으로 무장한 6명의 부위원장 후보 동지들이 채워 주리라고 믿습니다. 민주노총에 거는 천오백만 노동자와 이 땅 민중들의 기대와 신뢰가 있고, 공공연맹 집행부에 바라는 10만 조합원의 희망어린 요구와 힘찬 함성이 있는 한, 저는 동지들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현장의 조합원들을 대리하는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저희 2번 진영 후보들에게 던져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200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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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짧구나

아침 8시, ㅇ호텔 커피숍에서,

ㅍ연구원의 원장과 행정부장을 만났다.

만남을 애써 피해 왔었는데

발등의 불처럼 뜨거운 문제 하나 터지자

더 이상 피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시간을 다투는 문제이긴 하지만,

해법에 대해서는 서로가 의견을 충분히 나눈 셈이다.

쌍화차 한 잔 마셨다.

 

아침 9시, ㄱ연구원으로 가서

막 출근한 ㅈ원장을 만났다.

우리 노조 전 위원장 동지의 복직과 관련하여

(민사소송에서 이겼는데, 사측은 항소할 움직임이 있다)

당연면직규정이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기관장협의회장이기도 한 ㅈ원장이

시대착오적인 이 규정을 개정하는데 앞장서 달라고,

그래서 장 위원장의 복직결정을 놓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는

KINS ㅇ원장의 짐을 덜어달라고 부탁했다.

말은 흔쾌했지만 어떻게 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ㄱ연구원에서,

아침 9시 30분부터 기관장들의 회의가 있었다.

 

10시 50분부터 12시 10분쯤까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일행과

우리 노조 간부들 열두어명이 간담회를 가졌다.

과학기술행정체계 개편, 연구회/출연연 혁신,

과학기술인공제회, 해고자 문제,

기관장 선임의 민주성 확보, PBS 등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고

혁신본부장의 대답은 비교적 꼼꼼하고 성실했다.

좀 더 토론이 필요한 혁신에 관한 문제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만나서 얘기해 보자고 했고

본부장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노동조합의 치밀한 준비가 요구된다.

 

점심을 먹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몫의 선거운동을 했다.

전화, 그리고 방문.

 

오후 3시부터

KAIST노조의 창립 17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러플린 총장과 신 부총장이 참석한 것이 이채로왔다.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의식 확산을 강조하면서

연대사를 했고,

최도은 동지의 언제나 힘차고 당당한 노랫가락을 듣고 나서

허기진 듯 떡 몇 개 집어 먹었다.

 

6시 직전에 마지막 선거운동랍시고

한 여성대의원에게 전화를 걸었고(여성에게는 처음이다),

곧바로, 요즘 익숙해진 KTX를 타고 서울로 간다.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곳의 옆집은 중국집이다.

늦게 도착한 나는 혼자서 볶음밥을 먹었다.

다른 후보들 연설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내가 좀처럼 하지 않던 '짓'을 한다.

유세용 원고를 쓴 것이다.

3-4분의 연설을 위해

하고 싶은 말들을 주르르 두들겨 쓰고는

1부 프린트했고, 파일은 저장해 두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써 보고,

연설은 원고를 버리고 할 작정이다.

연설이 그다지 자신있는 것도 아니지만

원고는 자연스러움을 크게 해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연습하는 둥 마는 둥하다가

기차 시간을 핑계로 사무실을 벗어났다.

서울역에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한적한 기찻간에서 해묵은 메모들을 정리하다 보니 대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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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서울역에서...

저녁마다

서울에서 차시간에 쫓긴다.

 

오늘도 마지막 기차표를 끊어들고

100원에 3분짜리 공중전화 겸용 인터넷을 통해

동지들의 사는 모습들을 더듬는다.

 

내일 선거에서 당선이라도 되면

앞으로 2년 동안

이런 것이 내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같은 듯하면서도

흘러간 강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는 것처럼

날마다 다른 내 인생의 강이

오늘도 소리없이 나를 적신다.

 

시시각각

나인 듯 나 아닌 듯

지나는 모든 생명들이 분주하다.

 

차 타러 뛰어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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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평지부 임시투쟁본부 개소식 사진 2장

* 이 글은 산오리님의 [산기평 지부 투쟁본부 개소식...]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안형수 지부장, 그의 생애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투쟁의 시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안하고 고맙고 존경스럽고 안쓰럽고...


 

 

산기평지부의 조합원들, 망명 지부사무실에서, 엎드려 절하며 무엇을 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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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선거를 통해 무엇이 바뀌겠느냐고 얘기들 하지만

그나마 선거가 아니었으면

말 끝마다 현장을 입에 달고 사는 후보들이

언제 전국의 다양하고 복잡하고 치열하고 처절하고 생생한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겠느냐, 그 한가지만으로도

선거는 이따금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지하철노조, 서울도시철도노조, 발전노조, 사회보험노조,

철도노조, 과기노조, 아시아나항공노조, 서울상의노조,

생산성본부노조, 경기도노조, 건설엔지니어링노조,

연구전문노조, 자동차운전학원노조, 서울도시가스노조,

부산교통공단노조...

해고자를 여럿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연맹의 선거에 후보를 낸 조직들을 보니

자동차운전학원노조를 빼고 나면 영세한 사업장은 거의 없고

어떤 의미로든 잘 나가는 노동조합들이다.

그런 노조들의 지지와 지원 아래

19명의 후보들이 이 시간에도 전국을 누비면서

자신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투쟁의 현장을 새롭게 느끼고

그 투쟁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고 믿는다).

160여개 노조 10만여명의 조합원들이 있다지만

연맹 중집위에 참가하고 있는 21개의 큰 노조에 속한

조합원숫자가 무려 8만명(후보들은 대체로 여기에 속함),

140여개 노조에 속한 2만여명의 조합원들은

장기악성투쟁사업장노조에 포함되지 않으면

평상시에 연맹의 사업에 참가하기가 결코 쉽지 않고(일상활동의 문제!),

선거는 어쨋거나 그들과의 중요한 소통의 마당이 될수밖에 없다.

간선제 선거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장과 연맹 중앙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고

큰 노조 작은 노조 할 것없이 함께 싸울 수 있는

커다란 계기로 만들어주기를, 나와 후보들 모두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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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꿈에서 나는 새벽 4시에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 시간에 맞추어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어디선가 '술라'가 나타나더니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다. 지금은 없어진 옛 무궁화열차를 예매했던지, 5명이 한 줄에 나란히 앉아서 갈 계획이 틀어졌다고, 속으로는 아쉬워하면서 '술라'에게 예매를 맡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기다리는데 '술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신 시계를 보면서 초초해하는데 누군가 약속시간이 5시 37분이라고 했고 아직 차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5시 37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번도 사지 않은 로또 복권을 생각했다. 신의 계시인 듯 구체적인 5개의 숫자가 나에게 주어졌는데, 잠이 깨자마자 증발해 버렸다. 로또는 6개의 숫자를 맞추어야 하는데, 112를 11과 2로 풀 것인지 1과 12로 풀것인지를 고민했던 기억은 남았다. 버스를 탔는지 기차를 탔는지 약속장소에 갔다. 거기는 술집이었다. 술집은 빼곡하게 손님들로 가득 찼다. 전화를 했다. 약속했던 곳은 그 술집이 아니라 외딴 오두막에 사는 어떤 여성 동지의 집이라고, '이광오' 국장이 알려주었다. 아까는 술라였고 왜 이번에는 이광오일까, 꿈 속에서도 나는 궁금해졌지만, 다음 장면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약속장소를 찾아서 헤매다가 다른 동지들을 만났다. 동지들과 축구를 한다. 내가 던져넣기를 해야 하는데 공을 머리뒤로 빠뜨렸다. 관중의 야유. 그러나 곧 가운데있던 우리 편에게 공이 건네지고 그 공은 단 한방에 골대 안으로 그림처럼 빨려들어갔다. 그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문지기는 골이 들어가고 나서야 공이 거기에 있는 것을 알아챈 듯 분주했다. 약속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 약속이 끝나면 만나자고 연락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 시간이 새벽 6시인데 나는 또 그러겠다고 한다. 잠은 언제 자나 한탄하면서 나는 꿈 속에서 연신 약속을 하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꿈속에서 꿈을 꾸고 고민을 하고 그랬다. 증발한 꿈의 기억들은 내가 그림을 잘 그렸으면 좀 더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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