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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연대 전선이 사라진 지금.....

  • 등록일
    2005/06/11 00:23
  • 수정일
    2005/06/11 00:23

민중연대전선으로 라는 노래테이프가 있듯이 87년 6.10일 유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라는 화두 그리고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화두가 80년대말 한국사회를 뒤덮었었다.

 

87년 구로부정선거를 시발로한 구로항쟁 그리고 87년 민주쟁취 독재타도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것 처럼 서울 그리고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투쟁엔 노동자 민중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민주시민 그리고 노동자 대중투쟁을 호소하던 민주화투사들이 길거리를 활보하였다. 이 기반이 민주화를 넘어 민주노조 건설을 그리고 노조 민주화를 넘어 전노협과 전대협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3월부터 6월까지 투쟁과 연대의 함성으로 길거리를 행보하던 인파... 그리고 88년 홍제동 길가를 막고 통일을 염원하던 학생들의 길거리 시위.... 노동자 현장 투쟁과 동맹파업 등 투쟁의 함성이 업종과 직종을 넘어서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울려퍼지던 그 시기.... 그 때 우린 민중연대 전선을 이야기하면서 폭넓은 투쟁을 전개할 것을 호소하였다.

 

작게는 민주시민 그리고 노점상, 철거민, 농민, 도시빈민과 노동자 투쟁을 호소하며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시기 우린 이 모든것을 포괄하기 위해 민중권력쟁취 투쟁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뛰어넘어 민중의독자적정치세력화(이하 민독정)을 민중당 일부 후보와 무소속 후보 전술로 92년 4월 총선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밑바탕에서는 노동자투쟁의 지지세력인 위에서 열거한 민중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변혁과 사회세력화의 주요한 동력이었음을 우리는 감지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민중연대라는 이름과 민중권력쟁취 투쟁이라는 말은 민중 투쟁의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내 노동운동이 부문운동으로 머물고, 시민운동의 확대로 전국의 모든 운동이 부문화 되어갈 때 민중투쟁 또한 하나의 부문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의 다양성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보지만 문제는 이 운동의 부문간의 연대 그리고 부문간의 학제간 연구가 전무한 상황 그리고 운동의 확장이 전문화 되어지면서 이들간의 연대라는 이름은 각 부문의 확장을 통한 상호보완이라는 이름으로 등한시 되어진 것 같다는 개인적 판단을 가져본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서로가 어떻게든 상호작용 속에서 다양한 부문영역의 투쟁이 교차되어야 하지만 이 점은 간과하고 우린 시민 또는 다양한 대중이라는 방식을 선호하며 이전 운동에 대한 일종의 종말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이 땅의 주요세력인 노동자 민중이라는 영역을 대중과 시민에서 분리시켰다.

 

면면을 들여다 보면 이 모두가 노동자 민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대중과 시민이라는 용어로서 그 대중들을 규정하고 부문운동안에 머물게 하거나 더 이상 밖으로의 이탈을 시키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닌지.... 운동은 존재하나 대중이 없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과도 똑같을 것이다. 자기 기반의 활동.... 세상을 변혁을 바라기보다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근원적 접근보다는 사회제도 개선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투쟁에서 노동자 민중투쟁은 과거의 낡은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 이는 분명 80년대말과 90년대 초 현실 모델적 사회주의 붕괘에 따른 현상이지만 이 현상의 극복을 하기 위해 잘못된 길과의 동조라 낳은 성숙되지 못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 민중이라는 용어가 용인되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최소한 자신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로 우리 사회는 흘러가고 있다. 농민의 경우 WTO에 의한 통상압력으로 쌀시장 개방과 농수산물 시장의 전면개방을 요구받고 있고, 도시빈민의 경우 철거민 또는 도시노점상이 주거권과 생존권을 박탈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우린 언제부터인가? 민주화시대라며 이러한 문제를 소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정치권력이 민주화되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그릇된 희망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투쟁에 있어서 개인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또는 이들의 투쟁에 대해서 과격한 점만 부각하여 시대적 정신에 맞지 않다고 매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투쟁을 그/녀들의 배우지 못한 무지나 그/녀들의 게으름 또는 그/녀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그/녀들의 투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과 눈총을 보낸다. 노동자의 투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보자 그/녀들의 투쟁을 그/녀들은 살기위해 싸우고 죽지 않기 위해 투쟁한다고 말한다. 그 구구절절함 한번이라도 유심히 나눠주는 유인물 한자라도 보고 판단해 본 적 있던가? 내 문제가 아니니까? 아니 나는 최소한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그/녀들의 투쟁을  폄하하지는 않았는지....

그/녀들의 투쟁을 폄하하기전 이 사회에서 과연 미래는 어떠한 사회일까? 반추해보면 이 사회에서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 단면을 면면히 살펴보자 결코 쉽게 치부하거나 결코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나의 문제이고, 이후 자식, 후손들이 이러한 더러운 수렁과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직한 일이다. 나의 일이며, 내 이웃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 민중의 문제이다. 현실에 안주한다면 뭐 더이상 할 말은 없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과연 미래는 있는가? 희망을 낙관하며 기운을 차리기에 현실 조건은 그리 썩 좋지많은 않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많은 단사들이 장기투쟁사업장이거나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이 너무 많다. 일일이 지원하기에도 버거운 형편이며, 이 투쟁지원에 있어 순번을 정해서 집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민중연대투쟁은 차치하고라도 연대투쟁이 어려운 조건이라는 현실이 현장 노동운동을 하거나 사회시민단체 운동을 전개하는 활동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몫도 크다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어느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 속에서는 80년대 그 많던 사람이 사라졌는가?라는 이야기 속에서.....현재 90년대 만들어진 노동자 민중 투쟁의 활동가는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90년대 노동자 민중 투쟁을 전개하는 활동가들을 구축하기 보다 모색이기 변화니 그리고 위기라는 담론에 우리 스스로 수세적으로 허우적 거리며 90년대 시간을 활동가 양성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들었고, 노동자 민중 투쟁을 할 수 있는 활동가 양성을 등한시 한 결과가 아닌가? 지금부터라도 그 투쟁하는 활동가 그리고 민중연대전선이라는 포괄적 범위 속에서 현 정세나 투쟁 방향들을 내와야 한다는 말.... 다양한 부문의 의견들이 모아지고 토론되고 지적되어 함께 나갈 수 있는 방향과 활동가들의 폭넓은 안목속에서 활동이 균등하게 배분되고 분산되는 현실..... 활동 영역이 이전에 비해 폭넓게 확장된 것도 있지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서로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그/녀들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시선부터 함께하고 함께 어깨걸고 나가면서... 작지만 민중연대전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전선을 만들어가는 활동가들을 다시금 2000년도 중반인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맞다. 90년대 활동가들.... 자신하나를 버티기 위해 힘들었지만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활동에 있어서는 너무 등한시 되었다. 90년대 형성과 분열 그리고 통합을 위한 우리의 모색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 시기였고, 혼자 버티기엔 너무나 많은 과제들이 얹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 80년대말과 90년대 초반 그 사회주의권 붕괴부터 시작한 지금까지의 과정.... 그 첫단추 부터 잘 규정하고 활동가들을 만들어가는 투쟁 속에서 민중연대전선은 다시금 확립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생각해 본다.

 

짧은 생각을 끄적이는데... 머리만 복잡하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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