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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보리암, 상주은모래해수욕장... 걸으며...

  • 등록일
    2014/03/25 10:40
  • 수정일
    2014/03/25 10:40

첫날 쌍계사 거닐며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이기도 한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그 재현한 소설가 박경리 상상 공간 들녘을 보고 난 후 그 곳에서 하루 밤 보낸 후... 남해로 떠나기 위해 이른 새벽 5시 일어나 세면을 하고 5시 40분 여인숙을 나섰다.

아침 공기 제법 남녘도 쌀쌀하다.
하동 터미널 부근 국밥집을 찾을 수 없어 하동터미널 CU편의점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아침 노동을 하는 이들이 건네는 말에서 하동 장터로 발길음 돌렸다.

하동장터... 시레기국... 테이블2개의 그 좁다란 공간에 할마시가 새벽 장사를 위해 국밥집을 열고 계셨다.

시레기국... 제법 푸르스름한 제철 반찬과 갓과 파를 버무린 김치, 시금치, 호박, 쑥주나물, 김치 육찬에 시레기국... 그 사발그릇에 담겨줘 나온 잘다겨진 시레기국 밥주족하면 더 달라는 그 입담과 인심에 아침맛 따시게 먹었다. 가격도 3,000원인 그 시레기국 땡초를 넣어 얼큰한 시레기국이 우리내 어머니 아니 시골장터의 인심후한 아침밥... 가게 공기밥 추가만을 부르짖는 상술과 다른 인심과 그 단촐하지만 그 시장에서 보낸 그 할마시의 노동 인심과 인간사의 그 단면 훈훈함을 엿보았다.

그리고 나선길... 시계는 6시 10분 남해가는 첫차 7시 20분 그렇게 담배를 피우며 추위녹이며 하동시외버스터미널 나왔다 들어갔다 그렇게 몇번을 하고 첫차로 남해를 건넜다.

그 남해로 가는 길 들녘 매화는 만개해 곱게 빛깔 뽑낸다.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우리나라 처음 들어선 현수교 남해대교를 지나는 길 바다의 품세가 넉넉하다. 그 바다를 보는 것 그리고 그 현수교를 건너기 위해 나선길도 정감이 흐른다.

그렇게 남해에 도착 터미널에서 보리암가는 버스표를 끊고 다시금 일찍 나선길 보리암까지 가는 길 가물가물 하여 마을 하나 지나쳐 버스에서 내리고, 그리고 보리암을 바라보며... 2km 밖에 안되는 쌍화문이 있는 곳이 아닌 보리암 국도 길로 걷기를 하였다. 그 돌계단 길을 가다 동행이 혹시나 하산하지 않을까해... 국도로 거닐었다. 동행은 이 길이 아닐거라 말하며.... 걷는 길 바다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따스했다.

보리암 가는 길 그렇게 국도를 버스에서 내리고 한시간 가량 걸어 보리암 셔틀이 다니는 곳에 당도.... ... 보리암 앞 주체장까지가는 셔틀이 있었다. 왕복2천원 그러나 그냥 보리암 정상 주차장까지 4.1km걷자고 하였다. 그렇게 10시 17분부터 보리암 까지 걸어 올라갔다. 생각보다 가파른 도로길을 땀과 숨고르며 올라갔다. 그 돌산의 위용을 보고 걷기를 하였다. 지나다니는 차들이 속도를 내며 걷는 길... 힘겨웠지만 그래도 산에 오를때는 두발로 걷는 것이 힘겹지만 좋았다. 그렇게 올라간 자리...

보리암 초입 주차장에 11시 20분에 도착 매표(1,000원)하고 다시금 한시간 가량 걸어 보리암으로 사진을 찍으며 거닐었다. 금산은 올라가지 않고 보리암 이성계가 기도를 들이고 국가를 찬탈하였다는 기도도량으로 갔다.
어김없이 기도도량이라 그런지 사람들 사진, 기도 들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보리암 기도도량에는 새로운 역사를 유교라는 한국 사회의 악... 사농공상 기초의 성리학자들이 조선이라는 국가를 개국한 이성계의 효염인지... 정성들여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등산객들이 대거 올라오는 모습도 보였고, 그렇게 보리암 사진으로 그 광경 지켜보고... 다시금 쌍화문으로 내려갔다.

그곳 산악회에서 온 이들이 대거 올라오고 사람으로 가득히 메웠다. 사진을 찍고 쉴공간 요기할 공간을 찾아 그렇게 쌍화문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햇볕이 드리우지 않는 그늘진 곳은 여전히 추웠다. 한 5분만 있더라도 추위를 느낄 수 있어... 그럭저럭 요기를 하고 그늘진 곳을 벗어나 햇볕을 쬐이고 그곳에서 쉬었다. 그 절벽 깍아지는 곳에 난 길을 보면 옛 선인들의 노동을 떠올렸다. 그 암벽 위에 절터를 만들고 그 암벽터에 탑이며, 종이며, 그 기초를 다지고, 정으로 이름세기고 늘 먹거리를 위해 오르고 내렸을 길.. 그 암벽터를 다져 세운 인간 노동의 역사 깊이를 각인해 보았다. 암벽을 뚫고 가지를 치켜세우며 그 암벽 사이에 터잡고 버티고 있는 소나무와 나무들을 보면서..... 그렇게 쉬고 다시금 하산....

하산길은 가파랐지만 뭐 2km밖에 안되는 길이라 힘겹지는 않았다. 다만, 동행한 이는 등산화가 아니라 고생을 많이 했다. 발톱이 빠졌다는 소식에 참 미안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내려와 인근 가게에서 더위와 피곤 이기기 위해 하드를 사 먹었다. 입맛도 없다는 동행인은 먹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 하드를 녹여버렸다. 그렇게 하산하고 쉬었다. 상주해수욕장으로 그렇게 넘어 갔다. 그 길 그 시골 풍경 그 삶터를 다진 인고의 시간들이 묻어난 공간 집터와 밥 그리고 그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풍광을 담았다.

그 노동의 땀 끊임없이 흘리는 그 돌산 돌밭을 일구어낸 인고의 인간의 시간 그 노동을 위해 지주와 탐관오리의 수탈로 힘겹게 살거나 도적떼가 되어 화전민이 되었던 우리내 선조들... 그 민초 인민의 삶을 엿보았다.

여전히 농촌의 손길 바쁘다. 노년의 할마시 그 걷기도 전동휠체어 타고 올라와 밭 고랑 메는 할마시의 모습에서 농촌 노년의 농심을 떠올려 보았다.

한들한들 바람 맞으며 농촌마을 풍경 구경하며 상주은모래해수욕장으로 거닐었다. 그리고 그곳 예전부터 오면 갔던 오아시스 식당 그러나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가격도 비싸졌고... 그곳에서 모듬회 시켜먹고 길 나섰다.

남해에서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오는 길 여러번의 차를 타고 왔다.
오후 5시 남해에서 진주로 진주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조치원에서 평택으로 평택에서 오산.... 진주에서 7시발 청주행 고속버스타고 도착하니 오산역 도착하니 저녁 11시를 알린다.

그렇게 남녘 봄 마실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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