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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희망과 인생을 잃어렸다. 그래신 분노와 용기와 무모함을 얻었다. 잃은 것에 비하면 얻은 것도 많다.
희망.... 난 원래 무지한 놈이라서 단/무/지(단순, 무식, 과격)한 놈이라서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의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삶에 큰 떡이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갔다. 정말 무식해서 그런지 앞만보고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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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난 중학교때 부터 화학을 좋아하였다. 늘 수업시간에 화학이 국영수에 비해 낮게 배정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중/고등 과정을 보냈다. 정말 화학시간만큼 재미난 공부는 없었던 것 같았다. 인생의 진로를 화학선생님으로 중학교때 정하였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화학과를 떨어져 2지망 화학공학을 붙으면서 인생이 꼬였다. 화학선생의 꿈을 포기하고 화학엔지니어로 꿈을 대학교때 변경함. 인생의 꿈을 변경한지 3주만에 향우회에 나가 술먹고 운동하면 술 잘사준다는 꼬임에 빠져 질풍노도 시기를 운동이라는 것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 그렇다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향하는 수준에 있음.
그러나 나에게 이렇게 잃은 것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분노와 용기 무모함을 또한 얻었다. 분노는 광주를 알았고, 4.3을 알았고, 4.19를 다른 각도에서 알아나가면서 데가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는 말임. 대학 처음 선배가 던져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읽고 밤세워가며 술먹고 동기들에게 울면서 술꼬장 부림.... 동기들이 하는 말..."너와 다시는 술 안 먹어"... 나는 비굴하게 이 사태 이후 동기들에게... "놀아줘 하며... 꽁 무뉘를 따라다님... 대학교 2학년때 첫 구속... 남들은 다들 도망 잘쳐서 아무런 문제없었는데.... 나는 길음스트당시 버스를 탄체로 후배 6명과함께 철장신세를 짐.... 복역 3개월 15일만에 출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함. 당시 회상하는 동지들은 미친놈이라는 비난을 가함. 다들 쇠파이프를 길거리나 다른 안전한 장소에 버리고 갔는데... 나의 부주 위로 후배들과 함께 쇠파이프를 들고 버스를 타서, 경찰의 검문에 걸려서 무모하게 구속이 됨.... 참 멍청한 놈이였다. 단/무/지의 전형이었음.
그러나 분노와 용기는 최고조에 달하던 기였음. 혹자들은 길음스트로 한명의 구속자도 없었다고 하지만 나와 후배들이 그 구속자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음. 정말 창피해서 말 못하고 다님. 모임에 다나면 왕따 당함...
나는 굳건히 놀아줘하며 끈질기에 쫓아다님.
용기도 얻었다.
공부와 담을 쌓은 내가 사회과학서적을 접함.(대학교 들어가면 공부를 하지 않을 거라는 나와의 약속을 어김.) 그런데 사회과학서적 용어들이 넘어려웠음. 그리고 대부분의 책들이 선배들이 번역한 일어책을 교재로 삼고 있어 문맥 연결이 난해해 이해하는데 어려웠음. 지금이야 활자가 좋고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많지만... 그 당시 T.R(training Reader)은 정말 형편없는 선배들의 엉망진창의 글과 맞지않는 문맥을 해결하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작용함.
지금 생각하면서 참 잘 살고 있다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잃은것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 많기에....
그리고 앞으로도 단/무/지 정신으로 세상에 분노하며, 머리보다는 행동으로 다가서는 사람이고 잡다.
운동이라는 것을 요즘 세상사를 보면서 느끼건데.... 똑똑한것보다 얼마나 바르게 오래 그리고 원칙을 지켜가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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