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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다 무수한 방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다
세상에, 남자의 몸에 무슨 그리도 많은 방을!
햇살방 구름방 바람방 풀꽃방, 자신이
한 그루 풍요한 유실수이기라도 한 듯
온갖 환한 방들을 몸 안팎에다 주렁주렁, 과일처럼
향기롭게 익어가는, 둥싯 떠다니는
그 방 창가에다 망상의 식탁을 차린 적 있다
안개의 식탁보 위에 맹목의 주홍장미 곁에
내 앙가슴살 한 접시 저며내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의 방을 기웃대다가
내 침침한 방을 도리어 그에게 들키던 날
주름 깊은 커튼 자락 펄럭, 따스한 불꽃의 방들 다 두고
물소리 자박대는 내 단칸방을 그가 탐냈으므로
내게도 어느 결에
그의 것과 비슷한 빈 방 하나 생겼다
살아 꿈틀대던, 나를 달뜨게 하던
그 많은 방들 실상, 빛이 죄 빠져나간 텅 빈 동공
눈알 하나씩과 맞바꾼
어둠의 가벼운 쭉정이였다니 오, 그는 대체
그동안 몇 개의 눈을 빼주었던 것일까
그 방의 창이 나비의 겹눈을 닮아 있던 이유쯤
더 이상 비밀이 아니구나, 저벅저벅 비의 골목을 짚어가던
먼 잠속의 물발자국 소리도 그의 것이었을지
---『창작과 비평』 200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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