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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06
    활동가인가 직원인가 질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간장 오타맨...
  2. 2014/03/04
    빗발치는 투쟁 지켜보며 … 푸념만 늘어놓는다.
    간장 오타맨...

활동가인가 직원인가 질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 등록일
    2014/03/06 00:50
  • 수정일
    2014/03/06 00:50

지금 우리내 조직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은 스스로 활동가임을 자임하지만 직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해고노동자가 그 위치를 가름하던 시기는 있었지만 그 현장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지만 그 계급적 한계를 노정한 그들은 직원으로서 계급운동을 각성시키지 못하고 계급적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활동가로 서지 못하고 관료적 노동운동에 편승해 있다.

그 길도 인맥이 작용하는 노동현실... 아주 부끄러운 자화상이 우리내 노동이다. 그 현실적 바탕이 작금의 노동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노동도 현장과 동일하게 선택적 활동가 조직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에서 활동가들이 점철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 민주노총 인천본부 사태에서 그 상근자 해고 투쟁도 하였지만 여전히 그 문제는 물타기하고 있고 자기 입맛에 맛는 이들이 조직적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그 길을 가고 있다.

난 어떠한 조직이던 투쟁을 조직을 그리고 민주노조 깃발 시켜 세워 노동해방 깃발을 세울수 있는 이가 그 자리에서 그 위치에서 현장과 소통하고 연대하고 단결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보지만 우리는 그 경향성과 조직으로서 그 자리를 아니 직장을 마련하는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작금의 노동의 단절과 분절 현장의 경향성 뿌리의 태초이지 않을까 생각되어진다. 그 출신에 따라 위치를 지워져야 한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조직은 노동자 조직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학습, 조직, 실천하고 그 경험들을 노동자를 둘러싼 단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그 산별에 학출 그리고 노동자 출신이라 말한 이들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작금 그러하지 않지만 앞으로 그 경향들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조합부터 노동부터 노동운동부터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주적으로 단결연대투쟁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이 분절된 노동을 바꿀 희망이다, 정치를 염두한 인간들과 정치적 무르익은 경향성과의 투쟁이다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산별은 노동자 그리고 무르익지 않았지만 노동자계급의 노동자 주체가 세워내고 만들고 각성하고 투쟁하고 실천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각성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햇지만 지금은 절실하다.

운동의 피폐와 정파의 전투장이된 현장을 보면서 아래로부터의 조합원운동 그리고 사유를 하지 못한 활동의 졸속함을 보면서... 더욱더 절감한다.

그 사유와 사고도 하지 못한는 저열함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누군가에겐 대의겠지만....나도 그 중의 하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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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치는 투쟁 지켜보며 … 푸념만 늘어놓는다.

  • 등록일
    2014/03/04 18:09
  • 수정일
    2014/03/04 18:10

빗발치는 연대 우리내 투쟁도 그 방향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기...  

분명 다들 이 공황기 징후전 그 투쟁이 폭발될 위기의 시기라 하지만 그 투쟁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 투쟁은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작금 투쟁을 외면한 우리내 노동계급 상층과 다르게 사회적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 자본의 노동탄압에 대해 민주노조 탄압에 대해 그 투쟁의 불씨 지피고 있다.  

그/녀들의 하방연대가 그/녀들의 사회적 투쟁이 이 땅의 울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투쟁이 사회적투쟁으로 발돋음하지 못하고 투쟁승리라는 노동자 염원을 아직 닿지 못하고 있다.

그 투쟁에 대한 지속적 투쟁을 갈구하지 못하는 우리내의 초라한 단상이지 않을까? 빗발치는 투쟁을 보면서 마음을 쓸어내려 본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총파업이 이 사회를 바꾸었던 시기 아니 그 바꾸었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바뀐 현실이 이제 자본의 법 그리고 국회라는 입법부의 권력의 입맛에 난도질 당한 우리내.... 그러나 그 입법부에 기대어선 우리의 초라한 단상.... 그리고 투쟁의 메이라에 부응못하는 우리의 연대가 너무나도 후져져 가슴을 미어지게 할 때가 있다.  

방법과 방향을 알지만 그 투쟁에 대한 책임과 지금 빗발치는 투쟁에 대해 모르쇠하는 무관심이 이 현상을 낳은 것인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향해야 할 곳 그리고 우리가 그 곳에서 세워야 할 것은 나름 아닌 우리내 노동자 인민이다. 그/녀들과 함께하는게 투쟁의 삶이고 활동이지 않곘나 생각되어 진다.  

전문지식과 지식 그리고 법이라는 테두리에 우리의 투쟁 그리고 국회라는 입법부에 더이상 기댈 곳이 없다. 그 전문지식과 법이라는 테두리를 등에 없고 투쟁보다 자본에 투항하거나 계급성을 상실한 쁘띠부르주아 얼마나 많던가? 그래서 여전히 방문한다. 어느계급편에 설 것인가? 노동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나의 화두이다. 그래서 그 언저리 삶을 살아간다. 노동의 언저리 삶.... 그러나 그 언저리 삶을 살아가는 나도 알고 있다.  

우리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하방연대 그렇게 목놓아 외쳤지만 그 투쟁에 대해 우리의 관심 그리고 지도부의 의지와 결단만 있더라도 그 일회성이라도 그 투쟁에 진심어린 우리내 투쟁한다는 지도부가 나서서 함께 머리띠 묶고 싸움하는 모습이 우리가 가져왔던 투쟁의 모습 아니었던가? 상기해 본다.   빗발치는 투쟁이 난무한 이 땅에서 여전히 노동자 인민은 투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투쟁에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고 조직하기 위해 불철주야 현장에서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그 모습 우리내 지도부의 모습이면 얼나마 좋으련만 그 지도부는 투쟁에 대한 책임을 뒤로한 채 회피와 몸보신으로 달구어져 간다.  

안철수와 민주당으로 갔던 그/녀들이 그러했다. 지금도 비겁자여 갈테면 가라 외치고 싶지만 그런 힘도 소진해 없어진 우리내 노동자 인민의 빗발치는 투쟁이 서럽게 다가온다. 타전되는 소식에 가슴 쓸어내지만 그 투쟁이 편향적 사회적 투쟁으로 시선이 옮겨진 우리내 초라한 단상이 마음을 가슴을 타게 한다.  

225총파업이 거세된 우리내 노동은 하지만 여전히 희망보다 투쟁을 지피코 있다. 단결투쟁 승리, 노동해방, 민주노조 사수 그 수많은 외침이 노동자이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내 고통받고 착취받는 인민은 그 삶의 터전에서 그 삶으로서 절규를 한다. 그 삶이 실시간으로 타전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반성한다. 내 삶이 그/녀들과 동일성을 갖게되기 까지 아직 멀었구나 투쟁을 말하지만 내 삶이 그러하지 못한 비루한 삶인지라... 그래서 그 삶에 동일성 갖게 나도 낮은자가 되어 함께 비루한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리라.... 무산계급의 손과 몸처럼 나도 손과 몸이 바쁜 그런 삶을 지향하고 싶다.  

머리와 지식이 아닌 오늘 하방연대를 떠올려 본다. 그 하방연대.... 우리내 노동자 인민에게 필요하고 구구절절한.... 신영복 선생 더불어 숲 사이트 갔다 문득 든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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