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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7/10
    통신질서확립법 등 권력에 의한 검열과 통제
    간장 오타맨...
  2. 2005/07/10
    오늘은 바쁜 날이다.
    간장 오타맨...
  3. 2005/07/10
    최근 노동감시와 노동과정의 특성
    간장 오타맨...
  4. 2005/07/10
    통신질서확립법 등 권력에 의한 검열과 통제
    간장 오타맨...
  5. 2005/07/10
    왜 박노자는 되고 우리는 안되는가?
    간장 오타맨...

통신질서확립법 등 권력에 의한 검열과 통제

  • 등록일
    2005/07/10 08:55
  • 수정일
    2005/07/10 08:55
행인님의 [또 게시판 실명제냐?] 에 관련된 글.

통신질서확립법 등 권력에 의한 검열과 통제 2005년 07월 10일 08:40 수정|삭제|트랙백 행인님의 [또 게시판 실명제냐?] 에 관련된 글. 노동미디어 2000행사 자료를 퍼날르며....(http://lmedia.nodong.net) 통신질서확립법 등 권력에 의한 검열과 통제 문성준(민주노동당 정보통신차장) 1. 글머리 인 터넷으로 상징되는 온라인 공간의 검열과 통제는 국가 권력에 의해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등의 공간이, 신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매체로 각광을 받는 유행 이상으로 이제는 통신 공간의 폐해를 부각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이를 이유로 국가 권력은 인터넷에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적절한 통제는 사실상 인터넷의 폐해와 지저분함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국가 권력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범죄 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등의 온라인 공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더욱 강력하고 보편적인 통제 수단을 도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의 '불온통신' 규정으로도 수많은 사이트들이 폐쇄되고 있고 국가보안법으로 사이트 운영자들이 구속되고 있으며 선거법으로 개인들의 정치적 주장이 묵살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보다 더한 검열과 통제의 수단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더욱 경악케 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 직접적으로 인터넷 등의 통신에서의 컨텐츠를 통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 하여금 일상적인 검열을 강제하는 입법도 추진한다는 점이다. 2. 검열과 통제를 위한 법률과 조례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행정부는 국가에 의한 통신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는 5개의 법률 제·개정안과 조례안을 발표했다. 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 청소년윤리위원회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행정자치부의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표준안] 등이다. ①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일명 [통신질서확립법]) [통 신질서확립법]이라 불리우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은 7월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11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될 때까지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대체로 뼈대는 일관되게 남아 있다. 그 내용 중 '인터넷 내용 등급제', '개인정보의 상품화 위험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행정부에 의한 인터넷 주소 자원 관리', '이용자의 의무', '정보통신 사업자의 인지 책임', '영장 없는 수색' 등이 법률 개정안이 수정될 때마다 들락날락거린 내용들이다. '인 터넷 내용 등급제'는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국가로부터 재정 등의 지원을 받기는 해도 민간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반면,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정부 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획일적으로 마련한 등급기준을 국내 모든 컨텐츠에 적용하는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등급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돌아다니게 될 컨텐츠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검열을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보통신부가 마련한 기준은 크게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매체'인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청소년유해매체'의 기준이다. 처음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마련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청소년보호법에 의한 '청소년유해매체'로 정의하기도 했다. 청소년보호법에서 정의한 '청소년유해매체'에는 동성애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도 포함하는 등 진보적이거나 소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청소년보호를 내세워 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국 가가 강요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나 등급제의 기준이 반동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반대해서는 안된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내용들에 등급을 매기려 하는 시도 자체가 문제가 된다. 기준을 만들어서 청소년 보호 등을 빙자하여 보편적 접근을 차단 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과 알 권리의 침해이다. 그렇다면 소위 선진국 등지에서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둘러싼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터넷으로 민주적인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각 국가 권력은 통제와 검열로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인터넷이 국민의 생활에 깊이 다가감에 따라 생기는 문제 중 하나가 개인정보 유출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정보통신부는 기존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보다 그 개정안인 [통신질서확립법]에서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조항을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개인정보를 다루는 사업자가 개인정보를 다룰 때 허용되는 범위를 더욱 분명하게 설정해 줌으로써 개인정보가 상품화되는 경향을 부추기도록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처방은 개인정보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적절한 선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가 상품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정보를 프라이버시권 보호 차원에서 다루는 법률이 필요한 이유이다. ②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신질서확립법] 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검열'의 혐의를 받게 되고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자 정보통신부는 이 개정 법률안의 핵심 중에 하나였던 '인터넷 내용 등급제'와 '명예훼손 분쟁조정'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담당하는 조항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으로 옮겨 삽입해서 입법 취지를 발표했다. 두 개정 법안 중 하나만 통과되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현 정부에게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도입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통신의 외자 지분율을 높이는 데에 있었고 '인터넷 내용 등급제' 도입 여론이 악화되자 입법예고를 거치면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서 '인터넷 내용 등급제' 부분 등을 삭제했다. ③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 정 보통신부와 국가정보원이 정보통신분야에 관해 모종의 합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그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9월에 입법예고한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이 그들의 작품이었는데 이 제정안의 통제 수단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 나는 우리 나라의 공공망 전반의 안정성 확보 업무를 국가정보원이 담당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식민지배와 독재의 산물이며 가장 폭압적인 국민 통제 기구이다. 이러한 국가정보원이 일상적으로 행정·금융·통신·국방·치안·운송·에너지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에 대한 보호대책수립·예방·대응·복구 등에 관한 관리적·물리적·기술적 업무지원 등을 수행하고, 그 업무수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포괄적으로 대통령령으로 위임받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는 정보통신 기반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시위'를 불법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에 대하여 일시에 대량의 신호를 보내거나 부정한 명령을 처리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오류를 발생하게 하여 시스템의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에서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특정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집중적인 게시물 올리기나 말머리달기운동 등에 대해서도 적용할 소지가 있고 이와 같은 사이버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표현의 수단을 불법화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④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통 신질서확립법] 초안 가운데 '사업자의 인지 책임' 부분은 논란을 빚은 끝에 입법예고안에서 삭제되었던 부분이다. 이 조항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며 정부가 형사 처벌을 통해 정보통신 사업자에게 내용 규제에 대한 책임을 강요하는 교묘한 검열 제도이다. 그런데 청소년윤리위원회는 문제의 이 조항을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포함하여 입법예고를 했다. 제26조 2항(청소년유해행위의 금지)의 11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유통을 묵인 또는 방치하면 2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사업자는 형사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청소년유해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결국 무분별한 삭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를 불러올 것이다. 특히 사업자의 의무로 되어 있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조치'의 의미는 모호한데다 다른 사업자와 협조하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조치란 거의 없을 것이므로 인터넷 등 온라인 공간은 작은 논란으로도 쉽게 경직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⑤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표준안] 행정자치부가 7월에 각 지방자치단체에 하달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표준안]의 제6조(홈페이지 게시자료 관리) 2항에 의하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국가안전이나 보안에 위배되는 경우",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 "특정기관·단체·부서를 근거없이 비난하는 경우"의 글이 게시되었을 때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의 홈페이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여 공론을 형성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의 공론 형성을 위한 소통까지도 방해하는 검열이 수행되는 장으로 후퇴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자치부의 조례안인 것이다. 3. 통제와 검열 시도, 그에 대한 저항의 과정 [정 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이 [통신질서확립법]이란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7월, 개정 법률안의 최초 명칭이 [개인정보보호및건전한정보통신질서확립등에관한법률]이기 때문이었다. 8월에 '질서확립'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개정안의 명칭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개정안]으로 바꾸었다. [통신질서확립법]은 정보통신부가 입법예고를 하기 전에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로 연 공청회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온갖 '검열' 투성이의 개정안의 '검열' 이미지를 덮기 위해 정보통신부는 '개인정보 보호'와 '청소년 보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한 저항은 시작되었다. 시민·사회단체는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반대 입장의 성명서를 7월에 발표하고 이 법률안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히기 시작했다. 이 법안의 정체가 진보진영으로 흘러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여름내내 롯데호텔 등 파업 사업장의 투쟁이 계속되었고 한편으로는 6·15선언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어느 때보다 통일 열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 신질서확립법] 반대 운동을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벌이고 있던 진보네크워크센터를 통해 민주노동당에 알려졌고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노동당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활동과는 다른 방식인 온라인-오프라인에서의 직접 행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합의를 하고 각각 통신검열을 반대하는 사이트(민주노동당-free.jinbo.net, 진보네트워크센터-freeonline.or.kr)를 제작·운영하면서 통신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와 함께 네티즌을 조직하여 8월 20일 이 사안으로 최초의 온라인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이후 청소년층의 폭발적인 참여로 온라인 시위는 8월말까지 진행되었다. 8월 26일 정보통신부는 자체 시스템을 조작하여 10시간가량 홈페이지 서비스를 중단하고 네티즌의 공격에 의해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며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고발하고 배후로 진보네트워크센터를 지목한 사태가 발생했다. 10월, 이 사태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턴의 수사 결과 발표와 정보통신부에서 유출된 내부 문서로 정보통신부의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8월 말 뜨거웠던 온라인 시위에 힘입어 8월 입법예고는 무산시켰지만 정보통신부는 두개의 또 다른 검열무기를 들고 나와 [통신질서확립법]과 함께 9월 중순 경 입법예고를 했다. 정보통신부가 새로 들고 나온 무기는, '불온통신'으로 유명한 [전기통신사업법]에 '인터넷 내용 등급제'와 '명예훼손 분쟁조정'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담당하는 조항을 삽입한 이 법률의 개정안과 국정원의 공공망에 관여하고 온라인시위를 불법화하는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이었다. 정보통신관련 3개 재·개정안과는 별도로 행정자치부에서는 지난 7월에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 표준안]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하달해서 지자체 의회에 상정토록했다. 이는 성남·부평·양산 등에서 입법예고 되었지만 상위법의 미비로 지자체 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상위법인 [민원사무처리에관한법률 시행령]이 개정되면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 표준안]이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해당 의회에 조례안을 상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10월 [통신질서확립법]의 독소 조항 중 하나인 '사업자 인지 책임' 부분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까지 삽입이 되어 입법예고되면서 정보통신부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모종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주장을 믿는다 하더라도 정부의 통신 검열 시도는 여러 부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8월부터 지속적으로 온라인-오프라인에서의 행동을 조직했던 단체들이 10월 [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창립을 제안하고 11월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을 창립하여, 단기적으로는 집중적인 법률안 반대 운동을 진행하고 장기적인으로는 국가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에 대항하는 전망을 찾고자 하고 있다. 7월 20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 7월 20일, 시민·사회단체, 성명서 "정보통신부는 과도한 규제와 권한집중을 가져올 무리한 통신망법 개정안을 철회하라!" 발표 7월 27일, 질서확립법 개정에 관한 시민사회단체 내부 토론회 개최 8월 12일, 민주노동당, "반대! 통신질서확립법" 홈페이지 개통 (http://free.jinbo.net) 8월 18일, 진보네트워크, "통신질서확립법을 철회하라!" 홈페이지 개통(http://freeonline.or.kr) 8월 19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주요골자 및 향후 추진일정 발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 도입방안 발표 8월 20일, 낮12시,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네티즌들의 대응 방안 논의 모임 8월 20일, 오후10시, 제1차 온라인 시위, 정보통신부 사이버민원실 자유게시판, [검열반대] 말머리 달기 8월 26일, 낮12시부터 오후10시까지 정보통신부 홈페이지 접속불능.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 수사 착수 8월 28일, 오전10시경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 방문.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협조요청 거부 8월 28일, 낮12시, 제2차 온라인 시위, 정보통신부 사이버민원실 자유게시판, [검열반대] 말머리 달기 8월 29일, 오후2시경부터 9시경까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 9월 2일, 오후 3시, 신촌, 제1차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 9월 5일, 오후1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에 대한 시민공청회 개최 9월 16일, 오후3시, 대학로, 제2차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 9월 21∼26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정보통신기반호보법 제정안] 입법예고 9월 23일, 오후3시, 대학로, 제3차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 9월 23일, 오후10시, 제6차 온라인 시위, 정보통신부 사이버민원실 자유게시판, [검열반대] 말머리 달기 10월 9일∼13일, 정보통신부 3개 입법예고안에 대해 민주노동당, 민언련 인터넷분과 의견서 제출 10월 12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8월 정통부 홈페이지 서비스 불능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 시스템 마비의 원인을 '네티즌들의 사이버 시위'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결함 등 내부문제'로 결론 10월 19일, 시민·사회단체, 성명서 "국회는 정보통신부가 제출한 정보통신관련 3개 법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수용하라" 발표 10월 19일, [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창립 제안, 11월 초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창립 10월 20일, 낮12시, 여의도, 제4차 검열반대 네티즌 대회 10월 23일∼11월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검열반대] 말머리달기 온라인 시위 11월 16일, 오후9시, 박주천 국회 정무위원장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실시간 온라인 집회 4. 검열반대운동 [정 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의 출현으로 시작된 검열반대운동은 크게 두 주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이 법률안을 최초로 문제삼은 시민·사회단체들이고 또 하나는 온라인-오프라인에서의 직접행동을 조직하고, 나중에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으로 조직된 단체들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은 정보통신부의 3개 법안 등에 대해 반대 논리를 생산·강화하고 정부와 국회의원을 상대로한 설득 작업이 주가 되었고,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으로 조직된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온라인 시위와 오프라인 집회의 지침을 마련·시행하고 검열반대 사이트 운영을 통한 온라인 공간에서의 선전활동을 주로 하였다. 양자의 운동은 다른 영역에서의 활동이었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통해 한나라당 소속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들이 '인터넷 내용 등급제', '국가정보원의 공공망 개입' 등을 반대하는 성명을 유도해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과 [정보통신기방보호법 제정안] 중 국가정보원 개입 부분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을 줄이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검열반대의 두 흐름이 좀더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국 가 권력의 통제와 검열 시도가 특정 법률 제·개정으로 구현되는 만큼 이번 사안은 입법과정에 맞추어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정보통신부 등의 입법예고와 국회 상임위의 법안 심사 일정에 따라 행동 방식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데에 집중하다보니 풍부한 역량을 갖지 못한 처지에 있는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진영은 차근차근 대중을 조직하여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하였다. ① 온라인 행동 검열반대운동이 시작될 무렵에는 강력한 시위 방법으로 서비스거부 공격도 고려했지만 8월 26일 정보통신부 시스템 조작 사건으로 시위 방법은 온건한 [검열반대] 말머리달기로 굳혀졌다. 검열반대운동 전반부(8월 20일∼10월 17일)에는 날짜와 시간, 시위할 사이트 게시판만을 고지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시위가 진행되다가 검열반대운동의 의의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적인 글들이 주로 게시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시위 행태를 극복하고자 중반(10월 23일∼11월 9일)에는 시위문안과 시위지침까지 마련해서 시위를 제안하게 되었다. 2000년 검열반대운동의 하반기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시점에는 11월 16일부터 실시간 온라인 집회를 도입하는 시위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 검 열반대운동의 전반부의 초반이라 할 수 있는 8월까지는 방학 기간의 청소년층이 폭발적인 참여를 할 수 있었으나 9월부터는 이것이 어렵게 되자 다소 소강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조직된 대중에 의한 온라인 시위가 아니라면 한때의 붐 이상으로 지속적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국가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의 대상은 팬픽과 야오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청소년을 넘어서 실질적으로는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진보운동진영임이 분명한데 진보운동진영이 조직적으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점을 보여준다. 검열반대 사이트는 관련 자료 축적, 순발력 있는 업데이트와 메일링 리스트 운영 등으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진보네트워크센터의 freeonline.or.kr)와 배너로 온라인-오프라인 행동을 알리는 사이트(민주노동당의 free.jinbo.net)가 운영되고 있다. 검열반대운동 관련 자료들이 축적되고 한번의 링크만으로 지속적으로 운동 전술이 전달되는 배너를 운영한 성과도 있지만 처음 접하게 되는 네티즌에게 검열반대운동의 의의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컨텐츠나 구조는 아니라는 한계도 가지고 있다. 이 외에 온라인 상의 활동으로 표현의 자유 메일링리스트 freespeech@list.jinbo.net과 전술 논의를 위한 메일링리스트 freeonline@list.jinbo.net을 운영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네티즌에게 검열반대운동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② 오프라인 행동 4 차에 걸친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는 대규모 집회로 조직할 수 없었으며 켐페인 성격의 집회였다. 선전물을 시민에게 나누어 주고 검열반대 서명을 받는 것으로 진행되었고, 통제와 검열은 전국적인 사안임에도 서울에만 집중되는 한계를 보였다. ③ 시민·사회단체들의 공청회 등 활동 시 민·사회단체들의 공청회와 간담회, 자료집 발간 등의 활동은 정보통신부의 3개법안에 보다 구체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나아가 대체 입법까지 고민하고 추진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통제와 시도를 막으려면 결국에는 대중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하게 평가하는 경향 있었다. 그들이 마련한 대응 논리가 국회 상임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8월의 뜨거운 온라인 시위로 불붙었던 지속적인 직접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5. 권력에 의한 통제와 감시에 저항하는 우리의 과제 2000 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년말까지 지속될 검열반대운동이 가져다 주는 결론은 국가 권력은 절대 통제와 검열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통신품위법]이 97년 위헌 판결을 받은지 3년만인 올해, 인터넷 공간에서 어린이를 보호하는 법안(COPA)으로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한국이 미국의 선례를 따라가지 않으리라는 장담도 할 수 없고 행정부 여러 부처에서 통신공간을 검열하고 통제하려는 시도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어떠한 형태로든 통제와 검열을 위한 법률 제·개정은 계속될 것이다. 과제는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인가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될 골치 아픈 문제를 먼저 짚어보고자 한다. 권력과 보수 수구 세력이 인터넷에 돌아 다니는 음란물, 인권을 침해하는 온갖 쓰레기를 처리하겠다며 통제와 검열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통제와 검열을 거부해야지 쓰레기를 방치해도 상관없다고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그 온라인 공간의 쓰레기들은 통신 공간의 가치인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를 방해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통신공간을 원하는 우리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을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은 1. 정책적 대안을 만들고 2. 대중적인 통제와 검열 반대 움직임을 형성하는 데에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다. 공공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통신 공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에게 통신 공간의 통제와 검열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기란 어렵다. 특히 노동자·농민 등 생산 대중의 적지 않은 수가 통신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이 이들과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생산 대중의 이해는 분배의 평등에 있고, 이 이념으로 생산 대중을 조직하는 운동이 통신 공간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게 통제와 검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생산 대중을 조직하여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에 대항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운영원칙 기명문(인권운동사랑방) 머리말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단체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자유게시판을 만들어 쌍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 자유게시판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초기에는 단체 내부 회원 및 내부인사의 지지의견과 함께 단체홍보와 의사소통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쓰이게 된다. 그 런데 게시판은 각종 쟁점이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인터넷의 사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하자 수많은 민원과 온갖 종류의 집회 선전, 담론과 주장들로 근엄해지더니, 급기야 단체의 주장과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 또는 집단에게서 게시판이 점령되고 있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 동성애 사이트다. 그들은 정치적인 반대의견부터 비하 발언, 욕설, 인신공격 등을 해대며 게시판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공격을 퍼붓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노골적인 반대의견이나 욕설 등에 몇몇 단체들이 원칙없이 삭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원칙을 세우려 하는 단체도 있다. 하지만 그 원칙은 다름 아닌 삭제를 위한 합리화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일례로 어느 단체의 게시판 운영원칙(시안)을 보면 게시판 운영 원칙 첫 번째에 '게시판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적극 보장한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세칙 곳곳에는 '상업적인 광고행위를 비롯해서 공인의 사생활 침해 및 명예를 훼손한 행위 등 불가피한 사안에 대해서는 절차를 거쳐서 삭제'한다고 만들어 놓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불가피한 경우 삭제할 수 있다'로 끝난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왔던 국가권력도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건전한 사회풍토를 조성하고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국가보안법' 및 '통신질서확립법'으로 대표되는 각종 악법을 존속, 입법하려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상황에서 단일한 논리를 가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매체별로 상황별로 맥락에 따라 표현에 대한 규제가 침해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어떤 그룹, 개인도 뚜렷이 그 상황을 예측하여 기준을 정하고 논란 없는 규제행위를 성공했던 역사가 없다. 그것은 연구의 부족함으로 인한 논리의 빈약함이 아니라 개인의 표현행위가 똑같은 사안에 대해 똑같은 주장을 하더라도 똑같이 표현될 리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최근 우리의 홈페이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알게 모르게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단상 여 기서 언급할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인 '언론·출판의 자유'와 알권리, 알릴 권리를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으로서의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의사를 특정 매체 또는 기회를 통해서 상대방에게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의 자유'를 의미한다. 표현은 의도하는 목적과 양상을 떠나 그 존재만으로 굉장히 신성한 권리를 부여받는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자아를 확인하고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만의 신성불가침의 고유한 권리이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가 의견을 주장하고 개진하는 과정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참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가 없다. 유럽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내 에서의 소외와 고립을 극복하고 참여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논리는 참정권과 공론에 참여해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결국 개인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 보장정도가 우리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정권과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쉽게 이해되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반대의견이나 소수자의 의견을 묵살시켰던 정권에게 대항함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유용한 무기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주지의 사실이고, 그러한 정치적 억압에 대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지 말라'고 대응했던 우리의 논리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 자체로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폭압적 방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던 국가권력에게 시민사회와 민중들은 "대한민국이 진정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의 이념을 가진 국가라면 국민 누구나 표현과 정치적 의견을 누릴 권리가 있고, 정치적 반대의견과 결사의 이유로 부당한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또한, 최근 들어서 네티즌들과 시민사회단체도 정부가 시도하는 '통신질서확립법'이 "애매한 기준을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온라인을 통제하여 결국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침해할 것"이라며 "인터넷을 네티즌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은 똑같은 논리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개인이나 집단의 표현물이 침해받는 형태와 침해의 주체는 매우 다양화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독재정권이나 권위적인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표현의 자유 침해에서부터 언론을 소유한 거대자본의 일상적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 또한 정보의 생산과 표현이 비교적 쉬워진 온라인매체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발생하는 특정 그룹과 개인과의 침해·피해 관계로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조광희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대응과 전망」이란 글에서 언론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논하면서 언론의 이중적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음] 국가권력에 의한 침해가 충분히 해결되기도 전에 국가권력에 못지 않은 부작용을 보일 주체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으니 바로 자본이다. 그 가장 극적인 예는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이 뒷받침하는 제2회 서울 다큐멘타리 영상제(1997. 4. 18. 개막)에서 천안문사태를 다루었다는 <태평천국의 문>이 중국과의 관계를 해칠까 고민하던 주최측에 의해 상영이 취소되고, 더불어 본선경쟁출품작 중 한편으로 제주 4·3 항쟁을 다룬 <레드 헌트>마저 상영이 취소된 것이다. 또한, 자본 중에서도 언론자본의 내부적인 검열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단인 각 매체들이 언론자본의 수중에 있는 현대적 상황에서는 우려할 만한 일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들이 동시에 국가권력에 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 있는데, 스포츠신문의 만화에 대한 검찰의 제재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같은 자본이 경영하는 종합일간지는 음란물에 대한 철저한 규제를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야 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스포츠신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청소년에게 유익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만화를 게재하는 언론자본의 이중적 태도는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고,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주체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를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매체를 가질 수 없는 우리에게 홈페이지나 여타의 매체는 언론 이상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우리의 알릴 권리와 대중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가지는 이중적인 태도 못지 않게 분명히 우리에게도 더욱더 치졸한 이중적 태도가 존재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침해되는 표현의 자유의 사례와 성격, 예상되는 논란들 어 느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정치적인 표현부터 시작해서 단체 내부의 치부, 욕설로 보이는 다소 거친 표현까지, 우리의 게시판에서 삭제되고 있는 표현들은 다양하고 그것을 규제하는 근거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단체의 입장이 아니라 네티즌의 입장에서 그 현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게시물을 삭제 당한 네티즌의 입장에서는 침해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가. 적들의 글은 삭제한다 어 느 노동조합의 사이트에 적혀있는 게시판 운영 원칙이다. 인터넷의 기본이 익명성이고 고도의 운영기술을 갖지 못한 보통의 노동조합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적들의 글인지 일반 대중의 글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기술적으로도 희박하다. 그런데도 적들의 글을 삭제한다니. . . 추론하건데 정치적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정상적(폭력적이거나, 도배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이지 않은 방법으로 글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할지 싶다. 하지만 우선 정치적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의 글을 지우는 것에 대한 문제는 논란의 소지가 없을 만큼 명확한 표현의 자유 침해임을 모두가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글이 표현되는 양상이 '정상적인 것인가? 아닌가?'가 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러나 누구의 말처럼 '딴지일보'식의 표현으로 지지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은 삭제하지 않을 것인가? 또한 그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의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인고, 그 기준을 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그 게시판 운영에서 어떤 성의도 찾아 볼 수 없는'적들의 글은 삭제한다'는 원칙은 너무나 자의적이고 악의적이다. 이즈음 되면 우리의 정당한 집회를 가로막고 선전을 방해하는 진짜 적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없어진다. 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표현의 자유 침해 사 회적 약자라면 대표적으로 여성과 동성애자들일 것이다. 동성애 사이트의 경우 홍석천씨 사건 이전부터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또한, 여성단체의 경우 군 가산점 논란 이후 거의 모든 여성단체의 자유게시판이 무력화되었고 단체들은 언제부터인가 심각한 발언들에 대해서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정보사회에서도 여전히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이므로 삭제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나, 소수자를 억압하는 것은 사회구조가 문제이므로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모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엑세스권의 불평등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그것이 표현의 자유 침해의 합리화가 될 수 없고, 다른 어느 사이트보다 삭제할 글이 올라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많은거시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 구나 중요한 것은 이 논쟁에 네티즌의 표현에 대한 섬세한 접근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만일 한 명의 이성애자, 남성이라도 합리적이고 올바른 자기 의사를 표현했을 때 규제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게시판을 규제하려고 했을 때 선의의 피해자 없이 성공적으로 규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개인마다 준거의 차이가 틀리고 표현의 양식이 다 틀리는 것이 현실일 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지우고 싶다면 명백하게 설득력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자신이 없다면 게시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명백히 현존할 가능성이 있는 폭력적인 행위의 선동이나 위협'은 엄격한 해석을 거쳐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상황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다. 정치적 표현의 침해 최근 발족한 이주노동자투쟁본부의 글이 외국인노동자를 전담하는 인권단체에서 가차없이 삭제되고 있다. 그런데 그 삭제되는 글들은 거의 모든 진보진영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는 이주노동자투쟁속보와 집회제안서 같은 글들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못한다. 그것은 누구를 위협하지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논란의 소지가 없는 순수한 표현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 권리의 핵심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갈망하는 표현의 자유의 대부분은 우리의 정치적 표현의 권리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아리라 믿는다. 다음은 사랑방 게시판에 올라온 항의내용이다. 확인절차를 밟았기에 판단의 근거가 되리라 믿는다. [다음] 2000.10.31 정말 너무하는군요.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 게시판에는 없습니까? 왜 이주노동자 투본이 올린 글은 자꾸 삭제가 되는건가요? ................. 이주노동자 투본이 지향하는 바가 설령 ***과 다르다할 지라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저희가 외노협에 대하여 비난을 했나요, 욕을 했나요. 우리들의 투쟁 속보를 올리고 자료를 올린 것 뿐이며 *** 싸이트 뿐만 아니라 모든 진보 운동진영의 싸이트에 올리고 있는데 왜! 그러시나요? 우리는 한국노총 싸이트에는 글을 올리지 않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다시는 *** 싸이트를 찾아오지 않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중히 사과하시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주노동자투본 선전국- 운동단체들에게서 삭제되었던 게시물 중 가장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자기방어, 조직이기주의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 기타의 사안들 위 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유언비어나 추문으로 인해 프라이버시 침해의 소지가 있는 글을 삭제하는 행위도 빈번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말할 가치가 없는 자명한 것이다. 그 글들을 지우는 순간 그 유언비어는 의혹이 되고 사실이 되는 것 아닌가? 올라온 글에 대해 성실히 답변하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겸허히 사과하면 되는 것이고, 해명할 일이 있으면 하면 되는 것이다. 개인의 글이 현격히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사건은 내가 알기로는 몇 년 전에 학생운동그룹에서 발생한 1건뿐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네티즌 스스로 하는 것이지 강요돼서는 안 된다. 네티즌들의 당혹스러운 표현보다는 자율성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운영하는 사이버 공동체에는 일 방향만 존재할 것이다. 나가며 사 실 단체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굉장한 혼란을 겪는다. 때로는 삭제하고 싶은 글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3자에게 설득시키고 삭제하는 과정이 그 게시물을 보는 곤혹스러움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 글은 삭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와 삭제해야 될 게시물을 작성한 사람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의 차이를 모르겠다. 무삭제 원칙을 권장하고 싶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다는 결론은 아니다. 네티즌의 표현을 섬세하게 판단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드는 성의를 가졌으면 하고, 설령 원칙을 만들었더라도 그 원칙을 네티즌과 자율적으로 정하고 집행하지 않으면 자의적으로 작동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삭제되었을 게시물은 극소수였을 것이고 이러한 토론회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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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쁜 날이다.

  • 등록일
    2005/07/10 08:43
  • 수정일
    2005/07/10 08:43

오늘은 바쁜날이다. 그리고 기분 좋은 날이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설레임을 대신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친구와 함께 술한잔을 하였다. 준비가 부족하여서 좀 후지지만 그래도 나름데로 축제같은 날을 잡아서 좋다. 이날을 얼마나 학수 고대하였던가?

 

그 함박웃음 짖는 오늘이 기다려진다. 이 고단하다는 삶... 내가 규정내리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 고단함을 한시 잊을 수 있는 날... 그리고 미래를 건설하는 날 그날이 오늘이다. 많은 동지들이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은 내일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반대투쟁으로 함께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의미있고 값어치 있는 날이 오늘이다.

 

오늘의 그 기쁜날은 설레여서 네팔동지와 술한잔하였다. 가볍게... 그리고 사무실에 와서 주저리주저리 글을 쓸라고 하는데... 잘 글이 안나간다. 고민도 없고.... 그렇지만 함께 웃음지으며 미래를 건설하는 날.... 그 광경을 내가 함께 지켜본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무수한 담론이 쌓이고 투쟁을 이야기하지만 그 중심엔 정작 그 당사자들이 없는 때가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이지만 내가 비록 잘 모르면서 서툴게 하는 이주노동자운동 그 중심엔 당사자들이 있고, 그 당사자들이 힘들지만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많은 곳에서 보인다. 그래서 기쁘고 미안하고 고맙다.

 

부족한 내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동지라고 이름까지 불러주니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그 커가는 과정... 고단함의 연속이겠지만 중심에 있는 그/녀들인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있기에 든든하다. 다른 모든 것과 비교해도 비록 건물이 후지고 다른 센터에 비해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 이주노동자운동의 깃발을 휘날릴 동지들이 있기에 희망을 이야기 엿본다.

 

소수자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기 보다 이주노동자라 말하는 그/녀들의 당찬 발걸음 그리고 주체로 서고자 하는 모습에서 해방은 고단하지만 해방은 됐어라는 말을 감히 해본다. 난 무수한 담론 부문을 보지만 이주노동자들 처럼 연대라는 이름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함께하고자 하는 운동의 자세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자신의 성을 쌓기보다 많은 동지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함께가자고 하는 이야기 부족하지만 우리도 부족한 만큼 해야 한다고 당위를 넘어 친구로서 이야기하는 친구속에서 벽이란 그렇게 쉽게무너지는 장벽임을 깨닫는다. 오늘이 그 장벽을 하나 깨부수고 다시금 어깨걸고 나가는 날이다. 그 광경을 지켜본다는 것만으로 벅차다. 운동보다는 사람이 사람으로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이주노동자 동지들을 보면서 느낀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뒷다마 치는 현 운동판보다 그 순수함과 열정에 난 박수와 갈채만 보낸다.(남의 탓을 하지않고 묵묵히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모습 그게 바로 동지들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자기들만의 비밀성을 쌓지않기에 난 그저 좋다. 가면을 벗은 그/녀들이 좋다. 머리보다는 몸으로 몸보다는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따스한 시선이 마냥 좋다. 그래서 자주 술을 먹게 된다. 내가 배우고 있는게 너무많은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동지들이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가져본다. 내안의 벽보다는 더 멀리 그 가슴을 열고 있는 모습에서 많이 부끄웠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간다... 난 과연 그럴까? 그렇지 못하지... 그래서 배운다. 값진 것들을.....)

 

그 험난한 길 함께넘어가는 동지로 우뚝서기를.... 나보다는 너를 너보다는 동지를 동지보다는 우리 전지구 노동자를 생각하는 이주동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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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동감시와 노동과정의 특성

  • 등록일
    2005/07/10 08:41
  • 수정일
    2005/07/10 08:41

미류님의 ['정신'마저 짓밟는 '신종노동탄압'] 에 관련된 글.

*** 노동자감시근절을위한연대모임 2002년 토론회 자료집....(http://gamsi.nodong.net)

 

최근 노동감시와 노동과정의 특성

이 황 현 아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1. 들어가며


1936년에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를 통해 작업장 감시 문제를 선구적으로 제기했다. 채플린이 화장실에서 담뱃불을 붙이자마자 화장실 벽면의 화면에서 “빨리 작업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작업대에서는 다시 “5번열 3번째 작업자, 나사를 더 조일 것”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중앙통제실에 앉아서도 누가 작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라인의 속도가 어떤지 등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작업장 감시가 컴퓨터 기술을 통해 첨단화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회사가 직원들의 태도와 행동을 일방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전자적 감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다. 즉 감시를 당하면서도 그 사실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CCTV, IC카드, 네트워크 모니터링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작업장 감시 장치 및 프로그램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용, 현자전주지부, 한국타이어 등 문제가 된 사업장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노동조합에서는 작업장감시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작업장감시 시스템의 본격적인 확산은 결국 노동통제를 강화할 것이고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임이 확실하다. 이는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파괴공작으로 작업장 감시장치를 도입하고 있는 현실이 입증한다. 

그렇다면 작업장감시, 보다 정확하게 노동자감시란 무엇을 말하는가? 노동자감시란, 넓은 의미로 자본에 의한 노동통제 전반을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이용한 노동자 개인 감시, 노동행태 및 작업관행 감시, 노동자에 대한 정보수집 및 관리를 의미한다. 감시시스템에는 영상시스템(CCTV, 몰래카메라 등), 위치추적시스템(GPS, 핸드폰 위치추적 등), 전자카드(IC칩 카드, 액티브 배지 등), 생체인식기(지문, 홍채, 정맥 인식기 등)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업무용 개인컴퓨터, 전화 등에 대한 무단 열람, 도․감청도 늘고 있고, 생산사무자동화시스템(ERP, DAS 등)도 노동자 감시를 위한 시스템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장감시, 노동자감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급속도로 고도화되고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전자정보적 통제, 전자감시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과학기술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 이러한 눈부신 발달을 보증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ME혁명이다. 극소전자기술의 발달은 노동통제에 있어 현재와 같은 전자정보, 전자감시 통제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발달은 이제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달에 힘입어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발달하였다. 오늘날 감시기술의 특징은 감시대상자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시가 이루어지며(위성에 의한 원격감시, 투시감시 등이 그 예이다), 초정밀 감시가 가능하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감시가 가능할 정도로 대량감시 또한 가능하다. 감시결과를 분석하는 기술도 대단히 발달해 빠르고 풍부하게 분석할 수 있으며, 무제한 저장도 가능하고 DNA 감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의 단서로 수천 가지 정보를 분석할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아주 값싼 비용만으로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방위로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의 전자정보적 감시통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감시통제를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범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듯 프라이버시 침해나 개인정보유출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응의 관점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침해로서 규정하여 설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모임에서는 작업장 감시통제를 주요한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노동통제, 노동권침해라는 관점에서 대응해가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작업장감시, 노동자감시를 통제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자본주의 노동과정의 변화가 야기한 노동통제 기제들을 살펴본다. 또한 최근 작업장감시통제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럼, 현대노동과정의 변화가 야기한 작업장감시, 노동자감시 문제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자본주의적 생산과정과 작업장통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노동과정이자 가치증식과정이다. 그러하기에 절대적 잉여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착취가 강화되고 상대적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자본가 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진다. 자본구성이 높아지면 자본은 투하한 자본에 대한 회수를 높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변자본에 대한 비용을 줄이고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나간다.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는 주로 시설투자에 이루어지는데, 자본은 이후 회수비용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작업장 통제체제를 구축한다. 맑스는 공장을 ‘노동수단의 규칙적인 운동에 노동자가 기술적으로 종속되어 있고 남녀를 불문한 대단히 다양한 연령층의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병영적 규율이 만들어져 이 규율이 감독노동으로 발전하는’ 공간으로   보았다. 공장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전제가 이루어지는 불가피한 장소로 여겨진 것은 근대적 생산의 중심으로서, 노동자의 잠재적인 노동력이 특정한 방식의 분업체계와 노동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노동행위로 전환되는 장소이자 노동과 자본간의 이러한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조직화된 장이 되면서 이다. 작업장이 이렇듯 노동통제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장소라고 한다면 이는 한편, 정보기술이 도입됨으로써 감시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장소로도 파악할 수 있다. 감시의 주체는 당연히 자본가이다. 자본가는 생산성과 이윤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의 인권문제와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노동자는 정보기술을 프라이버시, 인권, 작업조건과 통제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3. 자본주의 노동과정과 노동통제 


자본주의 노동과정 발달과 함께 변화되어온 노동통제기제의 내용을 살펴보자. 생산방식은 대량생산체제, 공장자동화, 전산화, 다품종소량생산에서 신기술과 유연한 노동조직의 결합, 유연한 생산방식의 확산으로 변모되었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해 광범위한 반숙련, 탈숙련 노동자들이 실업과 반실업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시기별 통제기제의 변화> 

 

공장제수공업시기

기계제대공업시기

근대정보화시기

주요 노동자군

숙련노동자

반숙련, 미숙련노동자

다수의 미숙련노동자,

소수의 전문노동, 숙련노동자

자본의 통제변화

위계적 통제

기계에 의한 기술적 통제,

위계와 직제에 의한 통제

자동화기기계시스템,

전자정보적 감시통제

통제기제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 탈숙련화

위계, 직제에 의한 통제(감독자에 의한 인격적 통제, 위계서열)

헤게모니적 통제(노동자들의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지배력 행사)

이데올로기적 통제(경쟁과 효율, 생산성 향상, 성과주의, 기업문화)

<생산방식의 변화>

수공업 생산방식

대량생산방식

린 생산방식

고도로 숙련된 작업자

비숙련 또는 반숙련 작업자

조직 전체에 있어 다능공의 편성

융통성 있는 공구

고가의 전용설비

융통성 있는 자동화 기계 사용

고가의 상품

저렴한 상품

다양한 제품을 적정량씩 생산

 

상품의 다양성 및

제작과정의 융통성 결여

원가 상승 및

융통성 부족의 문제 극복



<생산의 합리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자동차산업>


   

자동차, 합리화

       

로봇 설치, 설비변경

필요인원의 축소

       

전환배치 확대


       

플랫폼통합

혼류생산

             

작업의 다양화

             

노동밀도 증가

노동강도 증대

  


        

모듈화

              

공정수 감소

외주화

             

필요인원 감소



자본관계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아 임금의 형태로 교환가치를 실현하면서 자본가의 명령과 지휘 아래서 자본의 처분대로 노동을 하여 자본가에게 그 상용가치를 실현시키는 관계인데 이는 곧 착취-지배관계를 말한다.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자본의 가치증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문제는 곧바로 생산현장에서 노동조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즉 노동통제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노동력 구성의 부단한 재조직화나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상대적 구성비의 끊임없는 재조정을 통해 이러한 자본의 전략적 요구는 관철되어진다. 전자가 노동시장, 교육훈련, 임금승진 등을 통해 제도화되어지는 경향이 있다면, 후자는 신기술도입, 생산설비혁신, 노동과정, 생산방식의 변형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본의 입자에서 노동조직, 노동통제, 경영관리방식의 문제는 결국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증대시켜 잉여가치율을 높이고 착취-지배구조의 온존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노동통제는 자본주의가 이윤을 보장받는 방법이다. 이윤획득의 방법은 노동시간의 절대적 연장을 통한 것이나 노동강도 강화(노동시간의 내포적 연장)와 생산성 증대, 즉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대를 통해서 가능하다. 생산조건의 발전 정도에 따라 같은 기간에 같은 노동량이 보다 많은 또는 보다 적은 양의 생산물을 제공하게 되는 노동생산성을 통해 달성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기 및 목적이 잉여가치(이윤)의 취득에 있고, 따라 서 잉여노동의 증대에 있는 이상, 노동일 전체의 길이는, 잉여노동의 길이와 함께 변동한다. 자본은 이윤의 양을 증대시키기 위해 잉여노동시간(결국 잉여가치량)을 늘리고 필요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설비를 바꾸거나, 노동일의 외연적 길이를 늘리거나, 아니면 내포적 길이(노동강도)를 늘리거나 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증대되면, 저임금 고실업이 강요된다. 산업혁명과 생산력 발전의 결과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단축, 상대적 과잉인구의 누적, 자본의 과잉축적이 나타난다.


4. 산업사회, 정보사회, 그리고 감시통제체제


산업혁명 이후 사용자에 의한 작업장 감시와 노동통제는 산업발달과 기술의 급속한 전으로 빠른 속도로 확장되었다. 19세기말에는 작업장 감시와 노동통제는 주로 사업장내에서 관리자들이 직접 투입되어 노동통제 수단으로써 감시를 행하였으나,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포디즘이 전산업으로 확장되면서 작업장 통제시스템 도입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말에 들어서면서 작업장에서의 감시와 노동통제가 변화가 이루어졌다. 관리자들이 산업현장에 직접 투입되어 감시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정보화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작업장 감시가 대두되었다. 지금 정보화 기술은 발달에 따른 감시기술은 작업장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지면서 감시의 대상 폭이 일반 국민으로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푸코가 암시한 것처럼 원형감옥식 원리가 침투의 형태로 확산된다면, 자본주의 작업장은 그러한 원리를 기대해도 좋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노동자들은 일련의 분업작업들의 영속적인 기초 위에서 조직되고 감시되어야 한다. 산업혁명 후에 공장은 시장의 압력에 의해 생산과정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을 향상시키도록 내몰린 채 감시와 처벌의 형식으로 혁신의 일차적 대상 장소가 되었다. 컨베이어라인 도입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은 기계화된 연속적인 생산의 흐름 속으로 투입되었다. 일관작업 라인에서 한 노동자의 모든 행동은 생산흐름의 연속과정에서 자동적으로 기록되었고 한편 모든 일탈 행위도 진행방해로 즉시 주목되었다. 

파놉티콘의 궁극적 목적이 감시를 내화해서 규율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공장에 도입된 기계는 바로 이런 기능을 담당하던 파놉티콘에 다름 아니었다. 기계는 숙련노동을 무력화시켜서 새로운 노동 분업을 가져왔으며, 공장에서 육체적, 정신적인 규율을 강제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작업장에 벤담과 같은 원형감옥식 공장에 대한 이론가가 있었다면 그는 테일러다. 20세기 초 테일러는 작업장에서의 행위에 대한 단순한 감독 계획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모든 면에서 보다 효과적인 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으로서 과학적 경영을 개발하여 발전시켰다. 원형감옥식 작업장에서는 감독관이 능률성 전문가로 대체되었지만 그 결과는 거의 같다. 감시 대상자들은 모든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수 없는 관찰자의 철저한 감시의 눈길에 통제되었다. 정확하게 측정된 생산성에 따라 조정된 성과급 보상제도는 순종과 업무 수행이 명백한 강제력에 의하지 않은 채 강요되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작업장 통제로서의 감시의 의미는 이렇게 파악되어진다.

포디즘적 노동과정은 대량생산방식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테일러리즘의 과학적 관리방식과 함께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노동자들은 과학적 관리방식에 입각하여 작성된 표준작업표에 의해 가능한 짧은 시간에 효율적 노동을 반복한다. 생산라인에는 공정별로 표준작업표가 부착되어 작업을 지시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2-3개월이면 완전 숙달될 정도로 단순한 성격의 내용이다. 결국 전체적인 작업의 구상 및 그에 관련된 지식은 경영진이 독점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표준화된 단순 반복적 노동만을 실행하는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작업지시 및 감시가 기계에 이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술적 통제가 노동통제의 주된 방식이 된다. 컨베이어벨트에 종속된 상태에서 노동을 수행하고 그것이 컴퓨터에 의해 점검되는 노동과정 자체가 노동자들을 기술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감시는 노동자에 대하여 사용자가 행하는 감시를 말한다. 정보화 이전의 경우 사용자는 과학적 관리, 포디즘 등의 방법을 통해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전략을 수행해왔다. 이전의 통제방식은 물리적으로 근접한 거리에서 관리자 또는 기계시스템이 노동자에게 통제를 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정보기술이 도입되면서 외형상 통제의 주체는 감시카메라가 된다. 이로써 통제는 노동자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통제에서 정신적인 것과 개인정보에 대한 감시로 전환된다.


5. 최근 감시통제의 특성


전자감시를 개인의 사생활 침해로 좁게 해석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감시는 개인보다는 집단감시를 선호하고 동시에 권력의 문제를 끌어들인다. 현대권력은 전자적 수단을 통한 보이지 않는 감시 덕에 그 반경을 넓히고 억압적 속성을 숨기는 재주를 터득한다. 노동자 감시가 극악한 통제유형으로 군림하던 테일러주의를 보다 과학화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통제방식에 언젠가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정보사회의 감시는 전자감시를 가리킨다. 전자감시란 전자기기 등을 사용하여 감시대상을 감시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정보의 감지, 측정, 수집, 저장, 처리, 분류, 재생 등의 면에서 가공할 만한 효율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보를 디지털화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디지털 정보변환, 즉 디지털 정보처리기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감시능력의 증대를 수반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각 시스템을 상호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LAN이다. 각기 분산되어 있는 정보는 네트워크를 이룸으로써 더 많은 정보자원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디지털 컴퓨터는 감시의 성격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감시를 일상화시키고 확장하며 그리고 심화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정보기술을 통한 전자감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전자기술은 관찰자와 감시자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본인의 동의 없이도 개인의 비밀 정보까지 대량 수집하게 한다. 둘째, 수집된 정보의 전송을 용이하게 하여 공간을 초월한 정보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분산적 정보들을 체계화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게 하고 무한 축적된 정보를 쉽게 검색, 출력되게 한다. 결국 이러한 감시 과정이 원활히 될수록 ‘정보불평등’이 강화되며 ‘권력관계’의 일방성이 강해진다.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작업장 감시는 노동자의 작업행위 뿐 아니라, 일반적 행위적 특성과 순수한 개인특성도 포함한다. 그러나 작업장 감시의 본질적인 의도는 노동자 자체에 대한 감시보다는 노동행위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있다. 즉 노동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생산적으로 만들려는 계기에 위해 도입되는 정보기술이 감시를 위한 새로운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내 감시 시스템은 80년대 후반 대기업부터 도입되기 시작하였지만, 최근에는 저렴해진 비용으로 중소기업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으며, 사무직, 생산직, 서비스직 업종을 가리지 않고 설치되고 있다. 거의 모든 기업이 온라인 감시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네트워크 감시는 사이트 접속 차단에서 이메일 확인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기업의 업무가 인터넷 환경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첨단네트워크 감시장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업은 네트워크를 통과하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에 파악할 수 있다.

감시 기술의 발달로 CCTV, 전자신분증, 위성 위치추적 시스템(GPS), 전화 도청 장치, 인터넷 사용 감시, 생산자동화시스템 등 영상정보통신 기술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보통 노동자 감시 시스템 도입의 명분으로 산업안전, 보안, 업무효율성 제고, 고객서비스 관리, 도난방지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자 사생활 침해, 노동조합 파괴, 노동강도 강화,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통제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7-80년대까지 노동자들은 퇴근시간에 몸을 수색하는 반인권적 노동자통제에 맞서 싸워왔다. 그러나 회사는 이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의 주머니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수색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첨단 기술을 통한 감시기술은 기존의 노동통제 기술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24시간 감시가 가능하고 정보의 선택, 축적, 편집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지역적 한계까지도 초월하여 모든 행적을 추적 감시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이지 않아 오히려 표면적으로 노동에 대한 자율이 확장되는 것으로 보이게 하며, 그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 감시기술을 통해서 직접적인 지배와 명령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활동할 수 있는 ‘자기통제’를 목표로 하며, 노동자들에게서 지속적인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감시는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모니터링과는 구별되며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감시자, 즉 자본가에 의해 감시대상자, 즉 노동자는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주어진 업무를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모든 작업 관련 노동자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수집분석결과 감시대상자는 고과에 매겨지거나 상벌을 받을 수도 있고, 감시대상자가 노동조합과 같은 집단일 경우, 노조파괴전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던 롯데호텔, 발전, 재능교육 노조 등은 노동조합 홈페이지를 차단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작업에 대한 감시는 생산량, 문서처리량, 자원의 사용, 컴퓨팅 시간, 전화사용 횟수, 커뮤니케이션 내용, 서비스 태도, 감시, 도청행위 등이 범주에 들어가는데, 위치확인카드, 호출기, TV, 카메라, 일에 몰두하는 정도, 실수의 경향과 빈도 등도 노동자 일반행위에 대한 감시 부분에 들어갈 수 있다. 정보감시기술의 발전에 따라 작업장 감시는 그 수준과 폭을 훨씬 강화하고 다양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산증대에 기여하도록 계획되고 요구되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감시감독의 목적으로 주로 생산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작업모니터링, 품질관리와 고객서비스 향상, 법과 규칙의 준수, 교육과 감독의 지원, 안전한 작업장의 확보, 사용자의 재산보호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작업장에서의 감시감독은 대부분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는지를 확실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자․정보적 감시체계는 왜 문제인가? 이러한 문제의 상당부분은 감시의 익명화와 자동화 그리고 모든 행동과 움직임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관련된 감시․통제의 과정 및 성격의 급속한 변화 등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을 통해 노동과정은 ‘정보파놉티콘’적 권력지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침내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감시를 내면화하여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기규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6. 다양한 감시통제 방법


1) 감시카메라, CCTV, 비디오 감시


저렴한 감시카메라 기술이 널리 확산되면서 직장 내 카메라 감시가 급증하였다. 사용자는 절도나 기물파손을 방지하고 생산성이나 고객서비스를 위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고 법적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카메라 감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카메라 감시의 문제는 존엄성과 노동권의 문제이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 노동자들은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때때로 산업재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감시 카메라에 녹화된 장면을 이유로 정당한 항변 기회도 없이 징계당하고 해고되고 있다. 특히 많은 감시 카메라가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징계와 해고에 이용되고 있어 이는 신종 노동탄압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집․기록․저장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존엄성과 프라이버시권을 보장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공간적으로 업무와 사생활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감시장비의 기능도 막강해지고 있는 최근 추세에서 회사가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것은 노동통제이자 사생활 침해이다. 게다가 병원이나 버스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 카메라는 노동자 뿐 아니라 시민들의 사생활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카메라 감시의 문제는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2) 이메일, 컴퓨터네트워크 감시


정보통신망의 급속한 확장으로 인한 인터넷과 이메일 감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어지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 임단협투쟁 및 파업시기에 사측에 의한 정보통신망 차단은 노동조합 단결권을 제약하고 있다. 사례로 롯데호텔노조, 아시아나항공, 여천 NCC, 발전노조 등이 있다. 이 사례의 공통점은 정보화에 따른 노동조합 홈페이지가 투쟁시기 유효적절한 소통과 투쟁의 공간으로 이용되어지자 사측은 사내망 차단을 통해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을 일시에 불식시키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사측의 사내전산망 차단은 기술발전에 비해 법제도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아 사용자들은 이점을 착목해 사용자의 사유재산으로 분류해 노동조합 조합활동들을 제약하고 있다.


3) 전자신분증(RF카드, 스마트카드 등 IC칩 내장카드)


생산직과 사무직을 가리지 않고 실시되고 있는 전자신분증 역시 노동자 통제감시 시스템으로 사용되고 있다. 98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출근부 대산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어 몸에 부착하게 되어 있는 RF카드의 경우 라디오 주파의 자동인식 시스템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이 판독기 옆을 지나기만 해도 출퇴근 여부나 특정 장소를 출입했는지 여부, 출입시간 따위의 정보가 자동적으로 확인된다. 업그레이들 통해 인식거리를 50m 이상 확장할 수도 있고 판독기를 노동자들이 볼 수 없기 때문에 판독기의 추가설치, 은폐 등을 통해 노동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있다.


4)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DAS


거래소 상장기업 및 코스닥 등록기업 총 1,494개 중 656개 기업이 ERP를 도입(평균 도입률 43.9%)했다. 근래 도입되고 있는 ERP는 생산직 노동자의 생산과 효율성 증대뿐 아니라 노동자를 감시 통제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이런 생산자동화 시스템은 각각의 기계에 전자정보센서를 부착하여 개별 노동자마다 휴식시간, 작업시간, 생산량, 생산속도, 불량률, 작업장 내 현재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함으로써 노동자의 자율성과 여유시간이 심각히 축소된다. 이전에는 종료시간에 생산량을 체크했지만 이와 달리 자동화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체크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한시도 쉴 수 없다. 나아가 작업 이외의 것들, 이를테면 작업자들간 사적인 대화나 노동조합과의 관련성-노조활동 등이 직간접으로 파악되어 오남용될 소지가 크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노조 설립이나 파업 직후에 ERP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ERP 도입효과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가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현장통제 강화, 고용불안 임을 염두에 둘 때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제화 과정이 시급히 요구된다.


5) 위치추적장치, 생체인식장치


최근 국민의 1/3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 가운데 정부에서 ‘위치정보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피에스는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의 약자로 지구상 모든 곳의 위치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다. 즉 비행기, 선박, 자동차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세계적으로 24개의 위성이 지구상 2만200km 지점에서 아주 정확한 시간정보를 지상으로 쏘아준다. 지상에서는 대부분의 지점에서 동시에 4개의 위성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들로부터 수신한 시간정보와 지피에스 수신기 내 시간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의 지점에서 위성까지의 정확한 거리를 계산하게 된다. 휴대폰 전화기술의 발달로 휴대폰을 이용한 위치추적 프로그램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이용자의 사생활 노출 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인공위성기술과 결합하여 위치추적 정확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7. 마치며


2001년 대용사건을 계기로 노동자감시근절을 위한 물꼬는 트여졌다. 전국적 수준에서, 노동조합 수준에서, 또 현장조직 수준에서 앞으로 프라이버시에 관한 개념 정립, 그리고 전자정보 감시통제 문제와 노동과정의 정보화 문제, ERP, 인터넷을 통한 이메일, CCTV 등 자본의 통제와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노동권 범주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해가야 한다. 현 수준의 통신비밀보호법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입법을 통하여 정보사회를 민주적 방향으로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노동자감시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의 결성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 나가며 논의를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노동자 감시통제를 둘러싼 투쟁은 기존 전자정보감시장치를 폐기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앞으로 도입될 감시장치에 대해서 협약을 명시해야한다. 그리고 자본이 작업장에서 수집한 일련의 통제정보에 노동자들의 접근이 가능해야 하고, 또한 그것을 변경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정보통제권'까지 노동자들 스스로 확보해 나갈 수 있어야한다.

전사회적인 정보화, 자동화시스템의 가속화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되고 노동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정보화는 전자감시통제의 강화를 의미할 뿐이다. 더구나 전자감시통제의 성격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개인은 일상적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노동자 민중 모두는 ‘감시’를 내면화된 ‘자기규율’로 가지며 노동하고 생활한다. 노동감시기술을 둘러싼 노동자 투쟁은 기존 감시장치를 폐기하고, 앞으로 도입될 감시장치에 대해서는 협약을 명시하는 차원에서 ‘감시를 받지 않을 권리’를 달성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반감시’를 넘어 노동자 민중에 의한 ‘역감시’를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강남훈(2002),『정보혁명의 정치경제학』, 문화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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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감시 -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술
2002. 4. 22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실장)

기술은 흔히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은 대부분 '노/사 양측에 도움이 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생산력 향상'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기술도 중립적인 것은 없으며 특히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노블의 연구에 의하면, 사용자측은 공장에 자동화 기계를 도입할 때 기술적으로 합리적인 녹음재생 방식보다 노동자 통제가 손쉬운 수치제어 방식을
선택했다. 녹음재생 시스템에서는 급송, 속도, 작업량, 산출고에 대한 통제권이 기계공에게 주어져 있는 반면, 수치제어 시스템에서는 통제권이 경영진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은 생산력 향상이라는 명분보다는 기술에 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더 큰 이해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사실 노동력 자체가 주요한 생산력의 하나이지만 인간의 능력은 기계의 능력에 비해 매우 잠재적이며 제한적이다. 따라서 한정된 시간 안에 잠재적인 노동력에서 최대한의 생산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사용자측은 노동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 "인권은 공장의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작업장에 있는 동안에는 노동자의 일거수 일투족 뿐 아니라 생각까지 회사의 재산으로 취급되면서 인권이 박탈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맑스가 통찰한 대로,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작업장은 보다 완벽한 통제를 위한 사용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어 왔다. 노동자들을 한 지붕 아래 모으고 노동 시간을 정착시키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통제가 비교적 인격적이며 육체적 '처벌'로 이루어져 왔다면, 19세기말과 20세기 - 즉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 시대에 들어서면-들어서면서 관료제적 통제가 오늘날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되었다. 발전된 회계 기법과 위계적이며 정기적인 보고서, 그리고 '과학적 관리'를 특징으로 하는 관료제는 전문적 관리자층을 등장시켰고 노동 과정에 대하여 보다 전면적이며 직접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스웰과 윌킨슨은 자유롭게 맺어지는 노동계약이 자본주의적 전유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관료적 감시는 그 정당성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말처럼, 관료들(관리자, 계획자, 사무원 등)은 자신의 행동(지휘, 감시, 규율)을 주어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수단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제가 확장되면서 생산기구가 점점 거대하고 복잡해져감에 따라, 조직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할 뿐더러 통제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테일러주의적 생산 방식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감과 저항은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를 계속 불러일으켰고 축적의 위기에 봉착한 자본 측을 당황시켰다. 

테일러주의의 과잉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유기적' 조직과 스스로 '책임자율성'을 갖는 조직원에 의한 통제 방식이 등장했다. 번즈와 스톨커에 따르면 '유기적' 조직은 공식성이 낮고 수평적인 정보흐름이 많으며 위계상의 지위보다는 전문성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기계적' 관료제와 많이 대비된다. 혹자는 이것을 '유연적 전문화'라 부르며 포스트포디즘의 징후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통제의 본질적인 면에서 변화한 점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통제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노동자 개개인의 '자유 재량'을 늘인 듯이 보이는 '책임자율'적 통제 방식은 오히려 소위 '팀작업' 등으로 '동료에 의한 감시'를 조장하면서 보다 엄격하게 생산력 할당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비해 시간·장소가 극도로 유연화된 조직 구조에서 성과급 등의 심리적·이데올로기적 경쟁 기제를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과거에는 동료였던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는 점에서 '책임자율'적 통제는 가장 비인간적이며 전면적인 통제라 할 만하다. 이 통제 방식의 또다른 비인간적 면모는 그 기계적 특성에서 드러난다. 관리자와의 인격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대신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작업장 감시 기계' 논란이 불거진다. 

1998년 3월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은 바코드 칩이 내장된 ICCARD 신분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사측에서는 ICCARD 시스템을 도입하면 수많은 노동자들의 신원 확인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면서 "비효율성을 과감히 제거하고 공장을 혁신하고 … 복잡한 업무처리 과정을 단순화하고 업무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ICCARD가 단순히 신분 증명의 용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문 및 각 반의 샵에 이미 설치가 완료된 자동화 시스템과 연계되어 노동자의 위치와 작업 성과를 중앙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RF 액티브 뱃지'의 형태로 운용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노동자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노동조합에서는 이 시스템이 작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권과 여유 조절을 극도로 회사에 귀속시키고, 결국 노조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크게 우려를 표명하였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실제로 미국의 작업장에 도입된 CCTV는 노동조합 조직화에 위 협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의 모기업에서 노조 조직화가 시도되자, 사용자는 공장내부에 비디오 감시장비를 설치하고 그것의 초점을 모든 개인의 작업장소와 작업자에게 맞춰놓았다. 
모니터는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오직 관리자만이 사무실에서 볼 수 있었다.
사용자는 모니터링이 안전을 목적으로 하며, 작업과정의 위험요소 및 잠재적 위험가능요소를 파악해 냄으로써 노동자의 보상보험요율을 낮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조직화의 열기가 높아지는 동안, 작업공간을 떠나서 휴게실로 간 두 명의 노동자에게 허락없이 작업공간을 떠나지 말라는 주의처분이 내려졌다. 이는 곧 노조조직화를 위한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판매부서에 있는 노동자 100명 중 89명이 조합의 대표권을 인정하기 위한 선거에 동의하는 위임장에는 서명을 했으나 실제 투표결과는 대표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의결정족수에 12표가 모자라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회사측이 비디오 촬영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감시 기술을 바라보는 노동자들과 사측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뉴사우스웨일즈 프라이버시 위원회는 1995년 9월 발표한 보고서 [보이지 않는 눈 : 작업장 비디오 감시에 대한 보고서]에서 감시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사용자측의 아홉가지 전형적인 '도입명분'을 제시하였다. ①절도 방지 ②적대적인 기물파손·방화·파괴 방지 ③(생산성 향상을 위한) 작업 모니터링 ④고객 서비스 향상 ⑤고용인 교육 ⑥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⑦법적 의무 준수 ⑧(법적 분쟁 발생시) 사용자 면책 ⑨(생산성 향상을 위한) 생산과정 모니터링이 그것이다. 

감시 기술에 대한 사측과 노동자의 견해가 이처럼 다르다는 것은 그 기술의 실제적인 용도 역시 사측이 표방한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지난 96년 10월, 석달 전의 버스요금 인상이 실은 2백38억여 원의 운송 수입금을 빼돌려 회사를 적자 상태로 만든 업주들의 '조작극'에 의한 것이었음이 검찰에 적발되었다. 그런데도 다음해 3월 버스 요금이 다시 인상될 조짐을 보이자 버스 수익 투명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때 "버스 수익이 불투명한 것은 운전기사들의 삥땅 때문"이라는 업주의 주장이 부각되었고, 애초에는 버스업주들의 비리 때문에 시작된 '시내버스 개선종합대책'은 이렇게 해서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한 CCTV를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겨놓고 마무리되었다. 서울시에서는 업주들에게 거액의 CCTV 설치비를 지원했고 서울시내버스에 일제히 CCTV가 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CCTV는 더 이상 버스 수익 투명화와는 관계가 없다. 몇년새 널리 보급된 교통 카드가 요금을 '투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입 명분을 다했음에도 CCTV는 여전히 건재하다.
사업주들이 버스 CCTV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전담 직원을 채용하고,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CCTV를 백배 활용한다. 어떤 버스 회사는 "물증을 잡았다"며 노동조합 활동가들만을 해고했고 또다른 회사는 관례대로 커피값을 뽑아간 노동자에게 "200원 삥땅쳤다"는 이유를 들어 퇴사를 종용했다. 때때로 그들은 CCTV의 '공익적 목적'을 강조하기도 한다. 9시 뉴스에서는 버스 CCTV에 잡힌 소매치기 장면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시청자는 소매치기의 행위에 분노하면서 CCTV가 우리에게 주는 기능적 효용에 안도한다.

ICCARD, CCTV 이외에도 전자정보적 감시의 수단과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다스(DAS) 시스템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첨단 생산력 통제 시스템의 경우에는 노동자 개개인의 생산량도달 뿐 아니라 몇시 몇분 몇초에 얼마 동안 자리를 비웠는지, 화장실에 갔는지, 담배를 피우러 갔는지를 다 체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실제로 작업 과정과는 관련이 없는 화장실이나 휴게실에 설치된 CCTV는 그 자체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전자우편(E-mail) 감시, 인터넷 사이트 차단, 전화모니터링도 확산되고 있으며 유전자 검사나 생체 정보 수집 등 갈수록 첨단화되어 가고 있는 '감시 기술'에 의해 작업장이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작업장 감시는 쉽게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지 않는다. 이는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위협 요소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현대 자동차 사례의 경우에도 기층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간부들의 판단이 달라 논란이 더욱 크게 불거졌다. 둘째, '시스템'을 큰 특징으로 하는 현대 기술에서는 '감시 기술'을 따로 분리해 내기가 쉽지 않고, 감시 기술을 포착하더라도 분리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들은 언제나 기계가 도입된 이후에야 그 기능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사후적으로 대응을 하다 보니, 기계 자체의 철수보다는 애매한 '합의'로 결론이 나게 마련인 것이다. 실제로 시내버스마다 설치된 CCTV는 노골적으로 '운수 노동자 삥땅 감시'라는 명분으로 도입되었음에도 노/사 양측은 '양심 보너스'로 이 문제를 합의함에 따라 감시의 문제를 양심의 문제로 만들었다. 그렇다. 감시 기술들이 도입될 때에는 결코 '감시'가 아닌 '생산성 향상', '도난 방지' 등의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그럴듯한' 명목을 달고 있다.

그러나 첫째, 보이지 않는 감시가 더욱 위험하다. 이 점은 푸코가 '전자 판옵티콘'에 대한 유명한 통찰에서 보여준 바 있다. 판옵티콘, 혹은 일망감시는 감시 받는 대상에게는 불을 환하게 쪼여 투명하게 만들고 감시 하는 자의 위치는 조명의 뒤편에 두어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점점 더 투명해 지는 개인,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권력'으로 요약되기도 하는 이런 감시 모형도는 소위 정보화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며, 가장 큰 문제는 감시를 받고 있는 대상이 감시의 시선을 언제나 의식하면서 규율 권력을 내면화하게 되는 데 있다.
즉, 실제로 감시당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상관 없이 저기 달려져 있는, 혹은 숨겨져 있는 CCTV로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음을 언제나 의식하고 행동을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책임 자율성'의 요체이자 최근 많은 기업주가 감시 기술을 열렬하게 도입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프라이버시권의 문제는 결코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감출 것이 없으면 감시당하라는 것은 비약이며 이데올로기이다. 프라이버시권의 핵심은 '내가 감출 것이 없어도' 나의 정보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감출 것이 있어서 엽서가 아닌 편지봉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감출 것이 없다면 화장실에서 용변보는 모습까지 공개되어야 하는가? 어떠한 명분으로 감시 기술이 도입되던지, 감시를 당하게 되는 '당사자'들이 이 기술에 대한 우선적인 판단권을
갖는다. 그들이 감시를 '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투명하라고 주장하는 사측일수록 오히려 불투명한 태도로 특정 기술의 위험성에 대하여 은폐하곤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보'를 둘러싼 이런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사측이 노동과정에서 틀림없는 우위를 점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따라서 핵심은 '투명'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감시를 역감시로 바꾸어라. 사측에 도입 될 기술의 모든 위험성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라! 즉 기술 통제권의 확보야 말로 작업장 프라이버시권의 핵심이며,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 통제의 권리를 돌려주는 정당한 과정인 것이다. 

전자주민카드나 버스 CCTV 장착을 둘러싸고 최근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감시 논쟁은, 기술의 '잘못된 활용'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웅변한다. 작업장 감시
기술은 전적으로 '정치적 발명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장 감시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프라이버시권'이라는 낯선 권리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한
운동일 뿐 아니라 '자본의 기술'에 대한 운동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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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질서확립법 등 권력에 의한 검열과 통제

  • 등록일
    2005/07/10 08:40
  • 수정일
    2005/07/10 08:40

행인님의 [또 게시판 실명제냐?] 에 관련된 글.

 

노동미디어 2000행사 자료를 퍼날르며....(http://lmedia.nodong.net)


통신질서확립법 등 권력에 의한 검열과 통제

                                                                               문성준(민주노동당 정보통신차장)


1. 글머리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온라인 공간의 검열과 통제는 국가 권력에 의해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등의 공간이, 신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매체로 각광을 받는 유행 이상으로 이제는 통신 공간의 폐해를 부각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이를 이유로 국가 권력은 인터넷에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적절한 통제는 사실상 인터넷의 폐해와 지저분함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국가 권력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범죄 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등의 온라인 공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더욱 강력하고 보편적인 통제 수단을 도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의 '불온통신' 규정으로도 수많은 사이트들이 폐쇄되고 있고 국가보안법으로 사이트 운영자들이 구속되고 있으며 선거법으로 개인들의 정치적 주장이 묵살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보다 더한 검열과 통제의 수단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더욱 경악케 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 직접적으로 인터넷 등의 통신에서의 컨텐츠를 통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 하여금 일상적인 검열을 강제하는 입법도 추진한다는 점이다.


2. 검열과 통제를 위한 법률과 조례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행정부는 국가에 의한 통신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는 5개의 법률 제·개정안과 조례안을 발표했다. 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 청소년윤리위원회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행정자치부의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표준안] 등이다.

①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일명 [통신질서확립법])

[통신질서확립법]이라 불리우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은 7월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11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될 때까지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대체로 뼈대는 일관되게 남아 있다. 그 내용 중 '인터넷 내용 등급제', '개인정보의 상품화 위험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행정부에 의한 인터넷 주소 자원 관리', '이용자의 의무', '정보통신 사업자의 인지 책임', '영장 없는 수색' 등이 법률 개정안이 수정될 때마다 들락날락거린 내용들이다.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국가로부터 재정 등의 지원을 받기는 해도 민간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반면,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정부 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획일적으로 마련한 등급기준을 국내 모든 컨텐츠에 적용하는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등급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는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돌아다니게 될 컨텐츠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검열을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보통신부가 마련한 기준은 크게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매체'인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청소년유해매체'의 기준이다. 처음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마련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청소년보호법에 의한 '청소년유해매체'로 정의하기도 했다. 청소년보호법에서 정의한 '청소년유해매체'에는 동성애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도 포함하는 등 진보적이거나 소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청소년보호를 내세워 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국가가 강요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나 등급제의 기준이 반동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반대해서는 안된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내용들에 등급을 매기려 하는 시도 자체가 문제가 된다. 기준을 만들어서 청소년 보호 등을 빙자하여 보편적 접근을 차단 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과 알 권리의 침해이다. 그렇다면 소위 선진국 등지에서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둘러싼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터넷으로 민주적인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각 국가 권력은 통제와 검열로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인터넷이 국민의 생활에 깊이 다가감에 따라 생기는 문제 중 하나가 개인정보 유출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정보통신부는 기존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보다 그 개정안인 [통신질서확립법]에서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조항을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개인정보를 다루는 사업자가 개인정보를 다룰 때 허용되는 범위를 더욱 분명하게 설정해
줌으로써 개인정보가 상품화되는 경향을 부추기도록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처방은 개인정보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적절한 선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가 상품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정보를 프라이버시권 보호 차원에서 다루는 법률이 필요한 이유이다.

②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신질서확립법]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검열'의 혐의를 받게 되고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자 정보통신부는 이 개정 법률안의 핵심 중에 하나였던 '인터넷 내용 등급제'와 '명예훼손 분쟁조정'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담당하는 조항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으로 옮겨 삽입해서 입법 취지를 발표했다. 두 개정 법안 중 하나만 통과되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현 정부에게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도입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통신의 외자 지분율을 높이는 데에 있었고 '인터넷 내용 등급제' 도입 여론이 악화되자 입법예고를 거치면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서 '인터넷 내용 등급제' 부분 등을 삭제했다.

③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

정보통신부와 국가정보원이 정보통신분야에 관해 모종의 합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그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9월에 입법예고한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이 그들의 작품이었는데 이 제정안의 통제 수단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우리 나라의 공공망 전반의 안정성 확보 업무를 국가정보원이 담당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식민지배와 독재의 산물이며 가장 폭압적인 국민 통제 기구이다. 이러한 국가정보원이 일상적으로 행정·금융·통신·국방·치안·운송·에너지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에 대한 보호대책수립·예방·대응·복구 등에 관한 관리적·물리적·기술적 업무지원 등을 수행하고, 그 업무수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포괄적으로 대통령령으로 위임받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는 정보통신 기반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시위'를 불법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에 대하여 일시에 대량의 신호를 보내거나 부정한 명령을 처리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오류를 발생하게 하여 시스템의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에서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특정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집중적인 게시물 올리기나 말머리달기운동 등에 대해서도 적용할 소지가 있고 이와 같은 사이버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표현의 수단을 불법화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④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통신질서확립법] 초안 가운데 '사업자의 인지 책임' 부분은 논란을 빚은 끝에 입법예고안에서 삭제되었던 부분이다. 이 조항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며 정부가 형사 처벌을 통해 정보통신 사업자에게 내용 규제에 대한 책임을 강요하는 교묘한 검열 제도이다. 그런데 청소년윤리위원회는 문제의 이 조항을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포함하여 입법예고를 했다. 제26조 2항(청소년유해행위의 금지)의 11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유통을 묵인 또는 방치하면 2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사업자는 형사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청소년유해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결국 무분별한 삭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를 불러올 것이다. 특히 사업자의 의무로 되어 있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조치'의 의미는 모호한데다 다른 사업자와 협조하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조치란 거의 없을 것이므로 인터넷 등 온라인 공간은 작은 논란으로도 쉽게 경직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⑤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표준안]

행정자치부가 7월에 각 지방자치단체에 하달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표준안]의 제6조(홈페이지 게시자료 관리) 2항에 의하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국가안전이나 보안에 위배되는 경우",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 "특정기관·단체·부서를 근거없이 비난하는 경우"의 글이 게시되었을 때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의 홈페이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여 공론을 형성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의 공론 형성을 위한 소통까지도 방해하는 검열이 수행되는 장으로 후퇴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자치부의 조례안인 것이다.


3. 통제와 검열 시도, 그에 대한 저항의 과정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이 [통신질서확립법]이란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7월, 개정 법률안의 최초 명칭이 [개인정보보호및건전한정보통신질서확립등에관한법률]이기 때문이었다. 8월에 '질서확립'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개정안의 명칭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개정안]으로 바꾸었다.

[통신질서확립법]은 정보통신부가 입법예고를 하기 전에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로 연 공청회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온갖 '검열' 투성이의 개정안의 '검열' 이미지를 덮기 위해 정보통신부는 '개인정보 보호'와 '청소년 보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한 저항은 시작되었다. 시민·사회단체는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반대 입장의 성명서를 7월에 발표하고 이 법률안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히기 시작했다.

이 법안의 정체가 진보진영으로 흘러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여름내내 롯데호텔 등 파업 사업장의 투쟁이 계속되었고 한편으로는 6·15선언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어느 때보다 통일 열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신질서확립법] 반대 운동을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벌이고 있던 진보네크워크센터를 통해 민주노동당에 알려졌고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노동당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활동과는 다른 방식인 온라인-오프라인에서의 직접 행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합의를 하고 각각 통신검열을 반대하는 사이트(민주노동당-free.jinbo.net, 진보네트워크센터-freeonline.or.kr)를 제작·운영하면서 통신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와 함께 네티즌을 조직하여 8월 20일 이 사안으로 최초의 온라인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이후 청소년층의 폭발적인 참여로 온라인 시위는 8월말까지 진행되었다.

8월 26일 정보통신부는 자체 시스템을 조작하여 10시간가량 홈페이지 서비스를 중단하고 네티즌의 공격에 의해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며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고발하고 배후로 진보네트워크센터를 지목한 사태가 발생했다. 10월, 이 사태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턴의 수사 결과 발표와 정보통신부에서 유출된 내부 문서로 정보통신부의 자작극임이 드러났다.
8월 말 뜨거웠던 온라인 시위에 힘입어 8월 입법예고는 무산시켰지만 정보통신부는 두개의 또 다른 검열무기를 들고 나와 [통신질서확립법]과 함께 9월 중순 경 입법예고를 했다. 정보통신부가 새로 들고 나온 무기는, '불온통신'으로 유명한 [전기통신사업법]에 '인터넷 내용 등급제'와 '명예훼손 분쟁조정'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담당하는 조항을 삽입한 이 법률의 개정안과 국정원의 공공망에 관여하고 온라인시위를 불법화하는 [정보통신기반보호법 제정안]이었다.

정보통신관련 3개 재·개정안과는 별도로 행정자치부에서는 지난 7월에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 표준안]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하달해서 지자체 의회에 상정토록했다. 이는 성남·부평·양산 등에서 입법예고 되었지만 상위법의 미비로 지자체 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상위법인 [민원사무처리에관한법률 시행령]이 개정되면 [인터넷자치단체 인터넷운영에 관한 조례 표준안]이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해당 의회에 조례안을 상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10월 [통신질서확립법]의 독소 조항 중 하나인 '사업자 인지 책임' 부분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까지 삽입이 되어 입법예고되면서 정보통신부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모종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주장을 믿는다 하더라도 정부의 통신 검열 시도는 여러 부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8월부터 지속적으로 온라인-오프라인에서의 행동을 조직했던 단체들이 10월 [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창립을 제안하고 11월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을 창립하여, 단기적으로는 집중적인 법률안 반대 운동을 진행하고 장기적인으로는 국가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에 대항하는 전망을 찾고자 하고 있다.

7월 20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
7월 20일, 시민·사회단체, 성명서 "정보통신부는 과도한 규제와 권한집중을 가져올 무리한 통신망법 개정안을 철회하라!" 발표
7월 27일, 질서확립법 개정에 관한 시민사회단체 내부 토론회 개최
8월 12일, 민주노동당, "반대! 통신질서확립법" 홈페이지 개통 (http://free.jinbo.net)
8월 18일, 진보네트워크, "통신질서확립법을 철회하라!" 홈페이지 개통(http://freeonline.or.kr)
8월 19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주요골자 및 향후 추진일정 발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 도입방안 발표
8월 20일, 낮12시,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네티즌들의 대응 방안 논의 모임
8월 20일, 오후10시, 제1차 온라인 시위, 정보통신부 사이버민원실 자유게시판, [검열반대] 말머리 달기
8월 26일, 낮12시부터 오후10시까지 정보통신부 홈페이지 접속불능.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 수사 착수
8월 28일, 오전10시경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 방문.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는 협조요청 거부
8월 28일, 낮12시, 제2차 온라인 시위, 정보통신부 사이버민원실 자유게시판, [검열반대] 말머리 달기
8월 29일, 오후2시경부터 9시경까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
9월 2일, 오후 3시, 신촌, 제1차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
9월 5일, 오후1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에 대한 시민공청회 개최
9월 16일, 오후3시, 대학로, 제2차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
9월 21∼26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정보통신기반호보법 제정안] 입법예고
9월 23일, 오후3시, 대학로,  제3차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
9월 23일, 오후10시, 제6차 온라인 시위, 정보통신부 사이버민원실 자유게시판, [검열반대] 말머리 달기
10월 9일∼13일, 정보통신부 3개 입법예고안에 대해 민주노동당, 민언련 인터넷분과 의견서 제출
10월 12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8월 정통부 홈페이지 서비스 불능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 시스템 마비의 원인을 '네티즌들의 사이버 시위'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결함 등 내부문제'로 결론
10월 19일, 시민·사회단체, 성명서 "국회는 정보통신부가 제출한 정보통신관련
3개 법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수용하라" 발표
10월 19일, [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창립 제안, 11월 초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창립
10월 20일, 낮12시, 여의도, 제4차 검열반대 네티즌 대회
10월 23일∼11월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검열반대] 말머리달기 온라인 시위
11월 16일, 오후9시, 박주천 국회 정무위원장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실시간 온라인 집회


4. 검열반대운동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의 출현으로 시작된 검열반대운동은 크게 두 주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이 법률안을 최초로 문제삼은 시민·사회단체들이고 또 하나는 온라인-오프라인에서의 직접행동을 조직하고, 나중에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으로 조직된 단체들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은 정보통신부의 3개 법안 등에 대해 반대 논리를 생산·강화하고 정부와 국회의원을 상대로한 설득 작업이 주가 되었고,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으로 조직된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온라인 시위와 오프라인 집회의 지침을 마련·시행하고 검열반대 사이트 운영을 통한 온라인 공간에서의 선전활동을 주로 하였다. 양자의 운동은 다른 영역에서의 활동이었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통해 한나라당 소속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들이 '인터넷 내용 등급제', '국가정보원의 공공망 개입' 등을 반대하는 성명을 유도해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과 [정보통신기방보호법 제정안] 중 국가정보원 개입 부분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을 줄이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검열반대의 두 흐름이 좀더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국가 권력의 통제와 검열 시도가 특정 법률 제·개정으로 구현되는 만큼 이번 사안은 입법과정에 맞추어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정보통신부 등의 입법예고와 국회 상임위의 법안 심사 일정에 따라 행동 방식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데에 집중하다보니 풍부한 역량을 갖지 못한 처지에 있는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 진영은 차근차근 대중을 조직하여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하였다.

① 온라인 행동

검열반대운동이 시작될 무렵에는 강력한 시위 방법으로 서비스거부 공격도 고려했지만 8월 26일 정보통신부 시스템 조작 사건으로 시위 방법은 온건한 [검열반대] 말머리달기로 굳혀졌다. 검열반대운동 전반부(8월 20일∼10월 17일)에는 날짜와 시간, 시위할 사이트 게시판만을 고지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시위가 진행되다가 검열반대운동의 의의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적인 글들이 주로 게시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시위 행태를 극복하고자 중반(10월 23일∼11월 9일)에는 시위문안과 시위지침까지 마련해서 시위를 제안하게 되었다.
2000년 검열반대운동의 하반기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시점에는 11월 16일부터 실시간 온라인 집회를 도입하는 시위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

검열반대운동의 전반부의 초반이라 할 수 있는 8월까지는 방학 기간의 청소년층이 폭발적인 참여를 할 수 있었으나 9월부터는 이것이 어렵게 되자 다소 소강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조직된 대중에 의한 온라인 시위가 아니라면 한때의 붐 이상으로 지속적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국가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의 대상은 팬픽과 야오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청소년을 넘어서 실질적으로는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진보운동진영임이 분명한데 진보운동진영이 조직적으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점을 보여준다.

검열반대 사이트는 관련 자료 축적, 순발력 있는 업데이트와 메일링 리스트 운영 등으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진보네트워크센터의 freeonline.or.kr)와 배너로 온라인-오프라인 행동을 알리는 사이트(민주노동당의 free.jinbo.net)가 운영되고 있다. 검열반대운동 관련 자료들이 축적되고 한번의 링크만으로 지속적으로 운동 전술이 전달되는 배너를 운영한 성과도 있지만 처음 접하게 되는 네티즌에게 검열반대운동의 의의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컨텐츠나 구조는 아니라는 한계도 가지고 있다.

이 외에 온라인 상의 활동으로 표현의 자유 메일링리스트 freespeech@list.jinbo.net과 전술 논의를 위한 메일링리스트 freeonline@list.jinbo.net을 운영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네티즌에게 검열반대운동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② 오프라인 행동

4차에 걸친 [검열반대]를 위한 네티즌 대회는 대규모 집회로 조직할 수 없었으며 켐페인 성격의 집회였다. 선전물을 시민에게 나누어 주고 검열반대 서명을 받는 것으로 진행되었고, 통제와 검열은 전국적인 사안임에도 서울에만 집중되는 한계를 보였다.

③ 시민·사회단체들의 공청회 등 활동

시민·사회단체들의 공청회와 간담회, 자료집 발간 등의 활동은 정보통신부의 3개법안에 보다 구체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나아가 대체 입법까지 고민하고 추진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통제와 시도를 막으려면 결국에는 대중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하게 평가하는 경향 있었다. 그들이 마련한 대응 논리가 국회 상임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8월의 뜨거운 온라인 시위로 불붙었던 지속적인 직접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5. 권력에 의한 통제와 감시에 저항하는 우리의 과제

2000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년말까지 지속될 검열반대운동이 가져다 주는 결론은 국가 권력은 절대 통제와 검열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통신품위법]이 97년 위헌 판결을 받은지 3년만인 올해, 인터넷 공간에서 어린이를 보호하는 법안(COPA)으로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한국이 미국의 선례를 따라가지 않으리라는 장담도 할 수 없고 행정부 여러 부처에서 통신공간을 검열하고 통제하려는 시도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어떠한 형태로든 통제와 검열을 위한 법률 제·개정은 계속될 것이다.

과제는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인가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될 골치 아픈 문제를 먼저 짚어보고자 한다. 권력과 보수 수구 세력이 인터넷에 돌아 다니는 음란물, 인권을 침해하는 온갖 쓰레기를 처리하겠다며 통제와 검열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통제와 검열을 거부해야지 쓰레기를 방치해도 상관없다고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그 온라인 공간의 쓰레기들은 통신 공간의 가치인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를 방해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통신공간을 원하는 우리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을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은 1. 정책적 대안을 만들고 2. 대중적인 통제와 검열 반대 움직임을 형성하는 데에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다. 공공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통신 공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에게 통신 공간의 통제와 검열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기란 어렵다. 특히 노동자·농민 등 생산 대중의 적지 않은 수가 통신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이 이들과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생산 대중의 이해는 분배의 평등에 있고, 이 이념으로 생산 대중을 조직하는 운동이 통신 공간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게 통제와 검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생산 대중을 조직하여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에 대항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운영원칙

                                                                                       기명문(인권운동사랑방)


머리말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단체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자유게시판을 만들어 쌍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
자유게시판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초기에는 단체 내부 회원 및 내부인사의 지지의견과 함께 단체홍보와 의사소통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쓰이게 된다.

그런데 게시판은 각종 쟁점이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인터넷의 사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하자 수많은 민원과 온갖 종류의 집회 선전, 담론과 주장들로 근엄해지더니, 급기야 단체의 주장과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 또는 집단에게서 게시판이 점령되고 있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 동성애 사이트다. 그들은 정치적인 반대의견부터 비하 발언, 욕설, 인신공격 등을 해대며 게시판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공격을 퍼붓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노골적인 반대의견이나 욕설 등에 몇몇 단체들이 원칙없이 삭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원칙을 세우려 하는 단체도 있다. 하지만 그 원칙은 다름 아닌 삭제를 위한 합리화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일례로 어느 단체의 게시판 운영원칙(시안)을 보면 게시판 운영 원칙 첫 번째에 '게시판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적극 보장한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세칙 곳곳에는 '상업적인 광고행위를 비롯해서 공인의 사생활 침해 및 명예를 훼손한 행위 등 불가피한 사안에 대해서는 절차를 거쳐서 삭제'한다고 만들어 놓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불가피한 경우 삭제할 수 있다'로 끝난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왔던 국가권력도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건전한 사회풍토를 조성하고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국가보안법' 및 '통신질서확립법'으로 대표되는 각종 악법을 존속, 입법하려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상황에서 단일한 논리를 가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매체별로 상황별로 맥락에 따라 표현에 대한 규제가 침해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어떤 그룹, 개인도 뚜렷이 그 상황을 예측하여 기준을 정하고 논란 없는 규제행위를 성공했던 역사가 없다. 그것은 연구의 부족함으로 인한 논리의 빈약함이 아니라 개인의 표현행위가 똑같은 사안에 대해 똑같은 주장을 하더라도 똑같이 표현될 리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최근 우리의 홈페이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알게 모르게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단상

여기서 언급할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인 '언론·출판의 자유'와 알권리, 알릴 권리를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으로서의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의사를 특정 매체 또는 기회를 통해서 상대방에게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의 자유'를 의미한다. 

표현은 의도하는 목적과 양상을 떠나 그 존재만으로 굉장히 신성한 권리를 부여받는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포기할 수 없는 것이며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자아를 확인하고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만의 신성불가침의 고유한 권리이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가 의견을 주장하고 개진하는 과정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참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가 없다. 유럽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내 에서의 소외와 고립을 극복하고 참여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논리는 참정권과 공론에 참여해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결국 개인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 보장정도가 우리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정권과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쉽게 이해되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반대의견이나 소수자의 의견을 묵살시켰던 정권에게 대항함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유용한 무기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주지의 사실이고, 그러한 정치적 억압에 대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지 말라'고 대응했던 우리의 논리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 자체로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폭압적 방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던 국가권력에게 시민사회와 민중들은 "대한민국이 진정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의 이념을 가진 국가라면 국민 누구나 표현과 정치적 의견을 누릴 권리가 있고, 정치적 반대의견과 결사의 이유로 부당한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또한, 최근 들어서 네티즌들과 시민사회단체도 정부가 시도하는 '통신질서확립법'이 "애매한 기준을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온라인을 통제하여 결국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침해할 것"이라며 "인터넷을 네티즌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은 똑같은 논리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개인이나 집단의 표현물이 침해받는 형태와 침해의 주체는 매우 다양화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독재정권이나 권위적인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표현의 자유 침해에서부터 언론을 소유한 거대자본의 일상적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 또한 정보의 생산과 표현이 비교적 쉬워진 온라인매체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발생하는 특정 그룹과 개인과의 침해·피해 관계로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조광희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대응과 전망」이란 글에서 언론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논하면서 언론의 이중적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음]

국가권력에 의한 침해가 충분히 해결되기도 전에 국가권력에 못지 않은 부작용을 보일 주체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으니 바로 자본이다. 그 가장 극적인 예는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이 뒷받침하는 제2회 서울 다큐멘타리 영상제(1997. 4. 18. 개막)에서 천안문사태를 다루었다는 <태평천국의 문>이 중국과의 관계를 해칠까 고민하던 주최측에 의해 상영이 취소되고, 더불어 본선경쟁출품작 중 한편으로 제주 4·3 항쟁을 다룬 <레드 헌트>마저 상영이 취소된 것이다.
또한, 자본 중에서도 언론자본의 내부적인 검열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단인 각 매체들이 언론자본의 수중에 있는 현대적 상황에서는 우려할 만한 일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들이 동시에 국가권력에 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 있는데, 스포츠신문의 만화에 대한 검찰의 제재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같은 자본이 경영하는 종합일간지는 음란물에 대한 철저한 규제를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야 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스포츠신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청소년에게 유익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만화를 게재하는 언론자본의 이중적 태도는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고,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주체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를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매체를 가질 수 없는 우리에게 홈페이지나 여타의 매체는 언론 이상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우리의 알릴 권리와 대중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가지는 이중적인 태도 못지 않게 분명히 우리에게도 더욱더 치졸한 이중적 태도가 존재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침해되는 표현의 자유의 사례와 성격, 예상되는 논란들

어느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정치적인 표현부터 시작해서 단체 내부의 치부, 욕설로 보이는 다소 거친 표현까지, 우리의 게시판에서 삭제되고 있는 표현들은 다양하고 그것을 규제하는 근거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단체의 입장이 아니라 네티즌의 입장에서 그 현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게시물을 삭제 당한 네티즌의 입장에서는 침해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가. 적들의 글은 삭제한다

어느 노동조합의 사이트에 적혀있는 게시판 운영 원칙이다. 인터넷의 기본이 익명성이고 고도의 운영기술을 갖지 못한 보통의 노동조합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적들의 글인지 일반 대중의 글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기술적으로도 희박하다. 그런데도 적들의 글을 삭제한다니. . . 추론하건데 정치적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정상적(폭력적이거나, 도배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이지 않은 방법으로 글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할지 싶다. 하지만 우선 정치적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의 글을 지우는 것에 대한 문제는 논란의 소지가 없을 만큼 명확한 표현의 자유 침해임을 모두가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글이 표현되는 양상이 '정상적인 것인가? 아닌가?'가 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러나 누구의 말처럼 '딴지일보'식의 표현으로 지지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은 삭제하지 않을 것인가? 또한 그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의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인고, 그 기준을 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그 게시판 운영에서 어떤 성의도 찾아 볼 수 없는'적들의 글은 삭제한다'는 원칙은 너무나 자의적이고 악의적이다. 이즈음 되면 우리의 정당한 집회를 가로막고 선전을 방해하는 진짜 적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없어진다.

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표현의 자유 침해

사회적 약자라면 대표적으로 여성과 동성애자들일 것이다. 동성애 사이트의 경우 홍석천씨 사건 이전부터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또한, 여성단체의 경우 군 가산점 논란 이후 거의 모든 여성단체의 자유게시판이 무력화되었고 단체들은 언제부터인가 심각한 발언들에 대해서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정보사회에서도 여전히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이므로 삭제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나, 소수자를 억압하는 것은 사회구조가 문제이므로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모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엑세스권의 불평등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그것이 표현의 자유 침해의 합리화가 될 수 없고, 다른 어느 사이트보다 삭제할 글이 올라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많은거시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이 논쟁에 네티즌의 표현에 대한 섬세한 접근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만일 한 명의 이성애자, 남성이라도 합리적이고 올바른 자기 의사를 표현했을 때 규제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게시판을 규제하려고 했을 때 선의의 피해자 없이 성공적으로 규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개인마다 준거의 차이가 틀리고 표현의 양식이 다 틀리는 것이 현실일 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지우고 싶다면 명백하게 설득력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자신이 없다면 게시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명백히 현존할 가능성이 있는 폭력적인 행위의 선동이나 위협'은 엄격한 해석을 거쳐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상황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다. 정치적 표현의 침해

최근 발족한 이주노동자투쟁본부의 글이 외국인노동자를 전담하는 인권단체에서 가차없이 삭제되고 있다. 그런데 그 삭제되는 글들은 거의 모든 진보진영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는 이주노동자투쟁속보와 집회제안서 같은 글들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못한다. 그것은 누구를 위협하지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논란의 소지가 없는 순수한 표현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 권리의 핵심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갈망하는 표현의 자유의 대부분은 우리의 정치적 표현의 권리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아리라 믿는다.

다음은 사랑방 게시판에 올라온 항의내용이다. 확인절차를 밟았기에 판단의 근거가 되리라 믿는다.

[다음]

2000.10.31
정말 너무하는군요.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 게시판에는 없습니까? 왜
이주노동자 투본이 올린 글은 자꾸 삭제가 되는건가요?
................. 이주노동자 투본이 지향하는 바가 설령 ***과 다르다할
지라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저희가 외노협에 대하여 비난을
했나요, 욕을 했나요. 우리들의 투쟁 속보를 올리고 자료를 올린 것 뿐이며 ***
싸이트 뿐만 아니라 모든 진보 운동진영의 싸이트에 올리고 있는데 왜!
그러시나요?
우리는 한국노총 싸이트에는 글을 올리지 않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다시는 ***
싸이트를 찾아오지 않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중히 사과하시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주노동자투본 선전국-
운동단체들에게서 삭제되었던 게시물 중 가장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자기방어, 조직이기주의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 기타의 사안들

위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유언비어나 추문으로 인해 프라이버시 침해의 소지가 있는 글을 삭제하는 행위도 빈번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말할 가치가 없는 자명한 것이다. 그 글들을 지우는 순간 그 유언비어는 의혹이 되고 사실이 되는 것 아닌가? 올라온 글에 대해 성실히 답변하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겸허히 사과하면 되는 것이고, 해명할 일이 있으면 하면 되는 것이다. 개인의 글이 현격히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사건은 내가 알기로는 몇 년 전에 학생운동그룹에서 발생한 1건뿐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네티즌 스스로 하는 것이지 강요돼서는 안 된다.
네티즌들의 당혹스러운 표현보다는 자율성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운영하는 사이버 공동체에는 일 방향만 존재할 것이다.


나가며

사실 단체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굉장한 혼란을 겪는다. 때로는 삭제하고 싶은 글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3자에게 설득시키고 삭제하는 과정이 그 게시물을 보는 곤혹스러움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 글은 삭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와 삭제해야 될 게시물을 작성한 사람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의 차이를 모르겠다.

무삭제 원칙을 권장하고 싶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다는 결론은 아니다. 네티즌의 표현을 섬세하게 판단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드는 성의를 가졌으면 하고, 설령 원칙을 만들었더라도 그 원칙을 네티즌과 자율적으로 정하고 집행하지 않으면 자의적으로 작동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삭제되었을 게시물은 극소수였을 것이고 이러한 토론회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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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박노자는 되고 우리는 안되는가?

  • 등록일
    2005/07/10 08:39
  • 수정일
    2005/07/10 08:39

왜 박노자는 되고 우리는 안되는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김지하, 이문열, 진중권, 21세기에 살아남을 사람은

 

 * 출 처 : 대자보(http://www.jabo.co.kr)

 

 * 글쓴이 : 비나리

 

박노자는 73년생이고, 오슬로에 있다. 나보다는 다섯 살 어리다. 물론 나이가 문제는 아니지만, 박노자 앞에서 부끄럽고, 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박노자가 우리 앞에 던진 질문에 대해서 사실 잘 모를만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박노자만큼 철저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21세기로 살아서 건너온 사람은, 박노자 밖에는 없어보인다.

 

장정일은 살아서 건너온 줄 알았다. 찡인 장정일은 90년대 혼자였지만, 혼자서 "섹스에 미친 시대"가 암 것도 아니라고 외치고 있던 건 장정일 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는 나도 살아서 건너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혼자였고, 지금 돌아보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것에 다름아니다. 강남의 재즈바와 이태원의 일탈들, 이런 것 다 그냥 “섹스에 미친 시대의 부자들과 그 언저리의 일탈에 다름아니다”로 외친 건 장정일 밖에는 없다. 89년도에 사망한 기형도가 만났던 시인만이 있던 도시의 "이상한 소년", 그 장정일은 90년대를 혼자 넘어왔는데, 그 장정일이 아직 살아있을까? 나는 장정일에게 지지를 보내고 싶지만, 지금의 장정일의 모습은 잘못된 이론가들 앞에선 "꽃돌이" 모습에 더 가깝다. TV에서 장정일의 망가진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장정일도 21세기로 살아서 건너오지는 못한 것 같다.

 

조정래는 살아서 건너왔을까? 참여연대의 참여사회연구소에서 활동하던 시절 조정래 선생을 처음 보았다. 멋졌다. 그렇게 말 잘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러나 지금의 조정래는 영 아니다. 조정래가 변한 것이 아니라 너무 변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조정래는 지금 "완화된 민족주의"의 화신에 다름 아니다. 동북아중심국가를 염두에 두면서 일본에게 대해서 끝없는 적개심을 보이는, 그래서 아직도 서정주의 그늘에서 살고 있다. 서정주는 이미 사회적으로 폐기처분 된지 오래된다. 그렇지만 조정래는 21세기에도 서정주를 극복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미 서정주의 친일성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된 상태에서 조정래에게 남은 것은 완화된 민족주의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대응체를 찾지 못하고 굳어가는 민족주의 밖에는 없어 보인다.

 

백기완 선생은 살아서 21세기를 넘어왔을까? 이제 남은 것은 강연하면서 받은 돈을 혼자 가졌다니, 한 번도 밥사준 적이 없고, 옛날부터 자기 영광 외에는 생각한 적이 없다는, 20년도 더 된 무용담이 전도되어 21세기에 동동 떠 있는 셈이다. 지금도 민주노동당이나 지역운동 했던 할아버지들이 술자리 안주 그 어떤 것도 아닌, 살아서 21세기로 넘어왔다고 평하기가 쉽지 않다.

 

김지하 선생, 소위 지하선생은 살아서 21세기를 넘어왔을까? 본인 스스로도 이제 다음 세대에게 넘긴다고 하였지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문득 지하 선생의 큰 그늘 아래에서 나 역시 숨쉬고 살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인임에 틀림없고, 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호쾌하고 호방한 시인이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틀림이 없다. "오적의 김지하"는 분명 사회의 것이었고, 그 재능을 하늘이 사람들을 위해서 내려준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토를 달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이제는 촌스러운 노인에 불과하다는 점에 대해서 더 눈이 많이 간다. 생명이라는 질문이 작으냐? 작지 않다. 동양이라는 질문이 작으냐? 작지 않다. 그러나 21세기에 김지하 선생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남아있지만, 정작 김지하는 70년대보다 더 옛날로 가버렸다. 흔히 얘기하는 "죽음의 굿판"이 잘못되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게 내 어리석은 생각이다. 다만 너무 촌스러웠다는 아주 사소한 데에서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훌리건을 처음 본 이 순박하고 마음만은 청년, 김지하 할아버지는 감격했다. 그래봐야 그건 훌리건에 불과하고, 1만 불 시대의 훌리건들은 3만불 국가의 훌리건처럼 국경을 넘나들 경제적 힘이 없고. 경찰 통제와 미디어 지원 하에 국가 폭력과 교묘하게 결합된, 공공질서라는 또 다른 힘에 기대어 연명하는 그야말로 훌리건에 불과하다. 훌리건들에게 "우주의 질서"를 읽는 늙은 시인, 거기에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가? 나에게는 극우파의 기세등등만이 느껴진다.

 

박노해와 김남주, 두 시인의 차이는 생각보다 깊다. 나는 김남주의 시를 더 좋아했다. 내 주위에는 박노해를 더 좋아하는 사람과 김남주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김남주를 더 좋아했다. 민족해방전선의 맨 앞에 서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김남주의 서정성과 시어들을 좋아했고, 솔직히 시인 김남주를 오랫동안 흠모했다. 별 볼일 없는 시인이고, 나치에게 총살당했다는 것 외에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기억못할 시인이지만, 폴 엘뤼아르를 좋아하게 된 것은 김남주의 시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엘뤼아르를 좋아해서 김남주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김남주를 좋아했기 때문에 엘리아르라도 좋아하게 된 셈이다. 94년도에 김남주는 옥중에서 퍼진 암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하자마자 죽었다. 그래서 살아서 21세기로 넘어오지 못했다. 살아서 넘어왔다면 험한 꼴을 보았을 것 같다. 박노해는 살아서 넘어왔다. 사노맹의 박노해, 그에게 21세기는 없는 것일까? 영 없어 보인다.

 

정작 살아서 넘어온 것은 신중현이다. 신중현이 매주 연주하던 우드스탁의 라이브를 접은 것은 2002년 겨울의 일이다. 우드스탁의 녹음실만을 남겨놓고 카페를 접은 다음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했다. 마음 속 깊은 얘기 한 마디를 남겨 놓았다. "한 명만 있었어도 계속 할려고 했었다..." 아마 우드스탁에 재수없게 한 명도 안 간 날이 있었을 거고, 그 날 신중현은 숨 남아있을 동안에는 끝까지 할려고 했던 우드스탁의 라이브 공연을 접었다. 그러나 아직도 신중현은 서슬 시퍼렇게 살아서, "그런 건 음악이 아니야"라고 여전히 열심히 작곡하고 있다. 그래도 조만간 신중현의 음악은 21세기를 헤치면서 진화하고 있다. 이상은, 이상은은 살아서 21세기 땅을 밟은 드문 경우이다.

 

김광석이 죽고, 꾼 에서 살아남은 이상은은 일본이라는 땅에서 21세기를 만났다. 확인되지 않은 이상은의 여러가지 전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독립된 개체로서 21세기라는 땅을 밟았다. 부럽고 또 부럽다. "쥐고 있던 초록빛 씨앗 보라색 흙에 담그리" (로만토피아 중, 6월 발매) 21세기의 서막이 걷히고, 대한민국 땅에서 진정으로 21세기가 시작된 건 2005년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누가 살아서 건너왔고, 누가 건너오지 못하고, 90년대라는 덫에 걸리거나 자빠져 있는지 조금은 명확해졌다. 나는 시체로 넘어왔다. 89년도에 전체 단식을 기획하던 우석훈은 그야말로 진기 한 줌 남지 않고, 시체로 21세기를 넘어왔다. 90년 10년 동안 한 줄의 글도 남기지 못하고,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하고, 시체만이 남아서 21세기에 흔적만이 넘어왔다.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그날, 난 페트병 3개의 소주를 다 마시고, 그야말로 시체만이 넘어왔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소설 '어리석은 사람"대로 술을 마시고 자살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체만이 21세기로 넘어왔다. 왜 박노자는 가능하고, 다른 사람은 불가능했을까? 그리고 왜 박노자는 진화하는데 다른 사람은 퇴화화거나 퇴행의 길로 빠져들게 될까? 누구나 다 아는 문제 같아 보였고, 다만 박노자는 "금기"로부터 자유로와서 그걸 얘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정도의 평가를 받던 박노자는 이제 한국 최고의 학자가 되었고, 한국 최고의 지성인이 되었고, 또 아직도 계속해서 아픈 질문들을 던지고, 그 아픈 질문들을 증명해나가고 있는데, 다들 21세기라는 공간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죽었을까? 주사파의 패싸움으로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박노해식의 단일 전선으로도 문제가 풀리지 않고, 기타등등의 각패 전선으로도 문제가 하나도 풀리지 않을 뿐더러 더 심각하게 꼬이는 현재의 상황... 도대체 무엇이 차이일까? 왜 박노자는 되고, 진중권은 안되지? 다들 고만고만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는데? 왜 훌리건이 박노자에게는 잘못된 근대화의 결과물로 보이고, 왜 김지하에게는 우주의 맥박처럼 보이는 거지? 더 어린 사람들이 등장하면 좋아질 것이라던 80년대의 대체적인 공감이 20년이 지났는데, 왜 더 문제가 복잡해져버리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거지? 조한혜정 교수의 해방구, 홍대는 왜 "걷고 싶은 거리"에서 "굽고 싶은 거리"로 바뀌어 버린 거고, 레이지본의 2집은 쫄딱 망한거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놓고 진화시키면, 나쁜 것들의 진화가 더 빠르다는 이유 때문일까? 박노자가 좌파야 좌파가 아니야? 왜 이런 쓸데없는 논쟁들이나 하게 되는 거지? 착하게 살아보자고 모인 사람들이 덩치만 좀 되면 금방 파쇼 집단같이 되어버리는 거지? ‘노빠’들도 원래 모일 때에는 감동과 선 같은게 좀 있었쟎아? 노빠라이제이션 같은 이상한 법칙이 이 땅에는 흐르는 거야? 그러면 박노자는? 도대체 어떻게 출현과 진화가 가능한 거야? 진보이냐, 진보가 아니냐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있어서 세상에 도움이 되었느냐? 평가하기는 쉽지는 않지만, 도움이 된 것보다는 도움이 되지 않은게 더 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현재의 모습으로서는 그렇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삶을 빨아먹으면서도 갈 길을 잃고 비둥거리는 공룡 같다.

 

지금은 마치 종교처럼 동지와 동지 아닌 사람들을 구분한다. 그리고 자기처럼 희생하지 않으면 동지 아니라고 삐지기 일쑤다. 시민단체는?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기형적으로 커졌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서 유지하기 위해서 고생해야 하는데, 정작 "아웃풋"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결과물이 너무 조금이다. "에게, 이걸 할려고 그렇게 고생한 거야?" 더 문제인 것은 젊은 활동가들의 성과물을 몇 사람이 너무 쉽게 챙겨가 버린다는 거다.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조직들이 너무 많지만, 눈물만으로 서로 버티고 잇다는 건 실상을 너무 어렵게 만든다. CEO급과만 대화하겠다는 몇 단체는 눈쌀없이 보기는 어렵지만, CEO들이 신경도 안 쓰는 대부분의 단체를 눈물없이 보기는 어렵다. 이 단체들 역시 21세기에 살아서 도착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어렵다. 21세기에도 아직 남아있는 90년대의 흔적 언저리에서 버둥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도대체 21세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질문이 세기의 질문이고, 세기는 떠나서라도 지금 우리나라에게 적합한 질문일까? 내가 보기에는 박노자가 옳고 김지하가 틀렸다. 노빠는 틀렸고, 노무현은 많이 틀렸는데, 그렇다고 민주노동당도 별로 맞아보이지는 않는다. 지금 던져진 질문을 쉽게 바꾸어보면 "독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다.

그래도 독도는 우리 땅. 개인들은 이렇게 가도 좋지만, 이렇게 대답한 학자들은 전부 죽는다. 이문열은 살아남는다. 그래도 이문열은 이 공간에서 별 얘기를 안했다. 나름대로 최선의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생각보다는 험악하게 살아남았다.

 

이순신은 명랑해전의 12척의 전선이라고 대답하면 시장에서는 잠깐 살아남겠지만, 학자로서는 꽝이다. 문인으로서도 꽝이고, 예술가로서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에 대해서 비판할 자격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넘이 그넘이다. 질문은 몇 개 있다. 독도, 지율, 김선일, 훌리건... 또 몇 개의 질문이 더 있을 수 있다.

청계천, 뉴타운 그리고 기초의원 정당공천... 이 몇 개의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하다보면,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될 것 같다. 박노자는 독도, 김선일, 훌리건에 대해서 사회적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김지하 선생이라면? 독도는 우리 땅, 지율은 우리 편, 김선일 불쌍해, 훌리건 좋은 것, 청계천 좋은 것, 뉴타운 몰라, 기초의원 몰라...

노무현이라면? 독도 우리 땅, 지율 나쁜 사람, 김선일 골 아파, 청계천 답답해, 뉴타운 화나, 기초의원 정당공천 당근 해야지... 민주노동당? 독도에 깃발 꼽고, 지율 우리편, 김선일 큰 일이다. 훌리건 좋은 거, 청계천, 노동운동, 뉴타운 나빠, 기초의원 정당공천, 글쎄... 나는? 독도, 시끄러, 지율, 어려운 질문, 김선일, 죽일 넘들, 훌리건, 극우파들, 청계천, 위험한 것, 뉴타운, 나쁜 넘들, 기초의원 정당공천, 어렵다... 여기에 애매하지만 질문 하나를 보태면 황우석이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던지면 통일은 어떻게? 박노자는 정치인이 아닌 학자지만, 어려운 질문들에 하나씩 답하는 진화를 하고 있다.

그래서 박노자와 답하지 않고 도망갈려고 한 사람들의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정답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답할려고 시도한 사람과 시도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결국 많은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박노자의 얘기가 전부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전부 감추고 있던 이전 사람들과 박노자는 확실히 다르다. 나이 가지고 얘기하는 건 좋은 자세는 아니지만, 하여간 박노자보다 먼저 뭔가 한다고 방방거렸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전부 접싯물에 코 박아야 한다.

 

* 사진출처 : 한겨레21

* 필자는 경제학박사로 초록정치연대(www.greens.or.kr) 정책실장입니다. 최근 <아픈 아이들의 세대 - 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뿌리와이파리, 2005)를 출간했습니다

* 필자의 블로그안내 http://blog.naver.com/wasan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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