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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27
    가을 엽서
    간장 오타맨...
  2. 2004/09/20
    기차속 각자 이야기에서 그려진 고향의 작은 풍경....
    간장 오타맨...
  3. 2004/09/20
    한국적 사회주의?
    간장 오타맨...
  4. 2004/09/18
    바뀌지 않은 노동현실....
    간장 오타맨...
  5. 2004/09/18
    어느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 글을 보고나서...
    간장 오타맨...

가을 엽서

  • 등록일
    2004/09/27 17:06
  • 수정일
    2004/09/27 17:06

중고등학교때의 개인적으로 낭만적 삶을 영위하고자 부던히 노력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이면 제 자신에게 엽서를 쓰든가 아니면 친한 친구들에게 엽서한장을 사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던 기억이 납니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된 지금 저는 낭만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제는 매료되지는 않지만 그당시 사춘기적 열망을 낭만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면 저의 개인적 안위를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을 연거푸 짖게하지만 그 당시 저의 인식과 사고는 오로지 저 개인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거치는 과정이라 저는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알퐁스 토테의 별에서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흠모하면서 하던 이야기-내 나이 20세이기에...처럼 저도 그때의 나이에 저의 사고는 오로지 출세와 부귀영화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지금은 그리 관심이 없지만 그때의 심정은 이 세상의 가치는 부귀영화와 개인적 안위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또한 그렇게 학교생활때 폭넓게 사귀지 못하였습니다.
  동내 죽마고우 이외에는 친구라곤 대학때 몇명이외에는 저에게 벗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집에가다 예쁜 엽서한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과거의 슬라이드 필림들... 아직도 그때의 사고자 남아있
  음에 저는 엽서를 두장정도 사들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그러나 그때의 심
  정과는 다르게 저는 엽서를 보면서 친구들 그리고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희비를 교차하더군요.
  그러나 그때처럼 엽서는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에 찌들데로  물
  든 저에게 낭만이라는 것 조차 이제는 사치이게 때문입니다.
 
  가을엽서...
  그건 아마도 가진자들의 풍요로운 상징이 아닐까요.
  오늘 집에서 사무실로 오는데 서울역 노숙자들이 서울역 지하도에 일 렬로
  누워 자는 풍경을 보면서 그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희망은  존
  재할까? 아니면 좌절만이 존재할까라는 고민이 되더구요.
  저는 늘 서울역 지하도에서 늘 노숙자들의 모습들을 봅니다. 술에  찌들어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포기한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노숙자  가
  족 저는 그들을 보면서 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문을 해 보았습니
  다.
지금 저는 그들의 처지와 다르니까요. 저도 그들일수 있으니까요.
 

가을엽서...
전 만약 신이 있다면 쓰고 싶습니다.
왜 가난을 만들었는지, 왜 행복과 불행을 만들었는지,... 왜 인간을  창조하며 평등을 이땅에 심어 놓지 못했는지.,.. 등의 엽서를 요...


그러나 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정의와 평등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도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전... 신은 자본가들인 것 같습니다.
 
노숙자들에게 신은 아마도 그들을 길거리로 내몬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낭만과 서정은 죽었습니다.
다만 치열한 생존만이 판치는 이 지구.....
아프칸의 난민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신은 그들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신은 정권이 만들어낸 피조물입니다. 인간을 위해 굴림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권모술수.....
 
가을 그래서 하늘이 이렇게 서럽게 다가옵니다, 겨울이오면 그들은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과 술의 열기로 삶을 연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을엽서를 보면서 저를 타박해 봅니다.
배부른 저의 얄팍함을 비웃으면서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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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속 각자 이야기에서 그려진 고향의 작은 풍경....

  • 등록일
    2004/09/20 08:55
  • 수정일
    2004/09/20 08:55

도시의 삭막함과 분주함에 너무 지친 지금의 도시인들에게 명절의 귀향은 추억과 기대의 교차점에서 고향의 넉넉함과 기억이라는 보물을 들추어 낼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다... 나도 오늘 11시 무궁화호로 나의 추억과 유년기가 묻혀 있는 그리운 고향으로 내려간다....

 

기차속 작은 풍경....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넉넉하고 여유로움을 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내려가는 귀성객을 보면  명절 민족의 대이동이란 고향으로 귀향은 단지 자신이 태어나고 부모님이 있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어릴적 죽마고우와 고향의 인심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시간이다.



고향으로 내려갈때면 기차에서 귀성객들중 한사람과 늘 술한잔을 하며 자신의 고향이야기 그리고 고향에 대한 추억을 안주삼아 5시간 가량의 기차에서 정든 이야기를 듣고 말하곤 한다. 정말 내게 있어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다.

 

고향에는 나를 알고 있는 어릴적 죽마고우가 있다. 그리고 내나이만큼 나이가 먹은 고향 들녁의 나무와  들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놀던 자리에 또다른 나의 조카와 사촌들이 즐겁게 고향의 들녁을 거닐며 나와  같은 자신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

 

시골 우리집은 감나무와 고 땡자나무 우리에게 공부 할 수 있게 한 우리 누렁이(소이름)가 우리를 정겹게 맞이 해준다. 지붕위에는 내려가면 제비가 새끼를 위해  분주히 먹이를 나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풍경을 볼 수 있다.

 

강이 흐르고 산이 있고 들녁이 있는 나의 고향 생각만 하여도 당장이라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한가위 고향 더욱 아름다워진 고향의 달과 별을  보면서 고향의 정겹고도 풍요로운 고향의 들녁을 볼 것이다.

내나이가 먹어도 언제나 나를 반겨준 고향....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며 도시 속 나의 삶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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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사회주의?

  • 등록일
    2004/09/20 08:30
  • 수정일
    2004/09/20 08:30

한국적 사회주의 구현을 위하여 난 한때 학생운동에 복무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당시 나의 심정은 현재 정세에 대한 정면돌파와 운동권에 있어 혁명성을 복원을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한국적 사회주의라는 일국적 사회주의 구현을 위해 나름대로 이론적 근접을 시도하면서 많은 반성과 고찰을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나의 정체성과 그리고 현 운동에 대한 책임성을 묵과하면서 현실의 어려움만을 급급히 수습하면서 현 위기만 넘기면 이후 사회가 장미빛 미래가 될거라는 막연한 환상들을 품지 않았나 생각이 되어진다.

 

한마디로 급진성에 의거한 운동의 조급성 현실의 위기의식은  그 시기에 있던 사람들의 공통의 문제였다. 대안은 사라졌지만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점들이기에....



우린 과거로 부터의 대화를 너무나 단절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과거에 계승할 점들은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형식들만을 갈구하면서 우리들의 임무  우리들의 목적을 한순간의 아우성으로 저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한 순간의 문제의식이 현실 위기에 편승한 정통성의 발전에 저해되어진 요소는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도 현실을 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를 논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그게 현실 학생운동이 봉착한 문제점이  아닌지 나즈막히 목소리 내뱉어 본다.

 

과연 지금의 위기는 어디서 부터 출발한 문제인가? 학생운동의 실천부재에서 오는 현상인가? 아니면 학생운동의 회내의 문제인가?라는 점을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건 과거와의 단절과 과거 선배의 무책임성이 낳은 학생운동의 내재적 문제가 아닌지....

학생운동 지도학번들은 대부분 3학년말이면 정치조직의 캠의 주요한  직책을 맏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활동을 정력적으로 할때면 그들의 선배는 사회로 아니면 군대로 가며...   운동과의 이별아니면 현장에 머물다 철세처럼 사회의 한 조직원(사회인으로) 되돌아간다...

난 거대한 자본주의적 조직사회라는 공룡의 품으로의 복귀라고 말한다. 한때 이야기하던 논의들은 사회속에서 공상 그리고  꿈 그리고 추억으로 저버리고 살게 된다. 그게 남들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말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하지 않는다. 현실이라고만 말할뿐....

 

난 무엇하러 학생운동, 학회, 학생회를 하는지 지금 하고 앞으로 하고자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운동을 지식인들의 양심으로 하는가?  아니면 사회정의 아니면 혁명.... 그건 공허하다... 무엇하러 맑스에 우리는 귀기울이면서 희열과 절망과 좌절과 그리고 슬픔을 느끼면서  현실사회에 적응하고 있는가? 동지애, 사회변혁, 인간해방, 노동해방,  여성해방이라는 구호들 때문에.... 아닐것이다. 자신의 현실 그리고 사회의 모순에 대한 순수성들이 었다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는 시간이  흐르고 또 점점 사회라는 굴레에 접하는 시기속에서는 사람들은 사회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래 사회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야그하자... 그러나  그 사회속에서 자신의 순수성 열정, 신리등을 챙기지 못하면서 무엇하러 학생운동이라는 험난한 길을 갔는지 반문하고 싶다. 현재 주변에서 선배라 말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난 그들은 과거 학교선배일뿐 한순간 동지로 지낸 것을 가지고 현실운동의 토대를 근거한 사람들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러한 한때 운동에 복무한 사람들의 영웅심, 그리고 운동선배로서 당위감으로 현 학생운동을 딜레마와 이론적 위기로 부터 한계점에 봉착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하며 성찰해 본다.

 

난 요즘 변하지 말자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살고 있다. 나라는  허울뿐인 나에게... 한낮 자본의 기계에 불과한 나라는 상품이 이 사회에  무엇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수 없다...  그러나 나의 순수한 눈동자 그리고 나의 생각(사상)들만은 접고 살고 싶지 않을뿐이다. 너무나 나약한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것들을  선사하기 위해 내가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에...

 

학생운동의 위기는 난 운동이란것보다 단지 전통적 관례적인 되물림 반복이 낳은 현상이 아닌지 잠시 생각해본다. 같이 고민되고 쉽게 야그할수 있는 야그들을 같이 나누었으면 한다.

 

인천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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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지 않은 노동현실....

  • 등록일
    2004/09/18 18:48
  • 수정일
    2004/09/18 18:48

세월이 흘러도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바뀌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열사들 동지들에게 투쟁을 부탁하는 절박함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세상이 서럽도록 서글프게 만든다. 난 눈물을 흘린 자격도 없기에... 가슴쓰림과 죄스러움만 스며든다. 노동운동을 지향한다고 말만 했을뿐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고 가꾸지 못해 현장에서 이번 사건같은 것을 목도만 해야하기에... 죄스럽다. 최소한의 희망이라는 것이라도 남아 있게... 주변에서 그래도 단한번 승리를 위해 수많은 패배를 감내하자라는 노동운동내 공감대 형성을 함께 일구어 나가지 못했기에.... 노동운동의 위기나 이론의 위기 그 온갖 수식어를 장식하던 노동운동하기 힘들다고 술주정 부리던 나 자신은 과연 그만한 용기나 있을까? 배짱도 용기도 없다.


말보다는 실천하라는 지극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친다. 그러나 이런 지극한 진리를 알면.... 또 시간의 흐름속에 그 진리는 다른 관성으로 잊혀질텐데....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을 난 정말 바라지 않는다. 열사를 목도하고 망각으로 잊혀버리것 자체가 힘들고 죄스럽다.

 

열사의 죽음앞에 고개 숙여 명복을 비는 것도... 눈물을 흘리며 나는 아직 순수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행위... 그리고 누군지 모를 또다른 열사를 추모할 준비를 해야하는 현실이 무섭고 서럽다. 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눈물을 흘릴 자격이나 있는지 나에게 되물어 본다.



노동자들의 세상 즉 노동해방을 만들고자 노동운동을 한다고 말하는 내가 노동자의 절규와 절망 그리고 분신으로 이르게 하는 현실에 무엇을 그리 대단히 했기에 명복과 절을 하며 절규할수 있단 말인가? 누군지 모를 노동자를 위해 이후 열사들의 명복을 빌 준비를 해야하나라는 의구심을 이 시대가 나에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열사투쟁이 민주노총의 주요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난 열사를 잊을 준비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건 지금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나보다 단위사업장과 연맹 및 노동조합 관계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시간이 오래 끌지 아니면 단기전으로 끝낼지 그건 예측과 알수 없지만... 열사의 추모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아마 난 이전 순수성과 헌신성 없이 운동을 지향해 와서 그런가 보다. 슬픔을 이겨낼 자신도 없다.(학생운동 시절 후배가 군에서 의문사를 당해 죽음을 목도하였지만 난 그 슬픔을 채 5년이 지나지도 않은 지금 그냥 잊고 살고 있다. 간혹 후배들이 전화를 해주면 그때서야 알 수 있을 정도이니 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이 없는 열사는 얼마나 쉽게 잊으랴.. 그래서 열사력을 보면서 열사들 이름을 하나둘 확인하면서 열사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영원한 노동자라는 전태일 열사이외에 노동열사중 이름을 외우는 열사들이 없다. 그래서 열사들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슬퍼할 자격도 없다. 곧 잊어버리고 일상에 무덤덤히 살겠지....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것 만큼 서글픈게 없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도 잊혀진다. 사람들로 부터... 그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열사들의 숭고한 뜻만이라도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모두들 시대는 변했다고 한다. 분명 시대는 군부독재에서 문민/민주 독재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독재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름이 군부에서 문민과 민주로 변모했을 뿐이다.

 

혹자들은 임금/생활의 질이 높아졌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생활의 질 높아졌다는 것은 상대적 생각일 뿐이다. 80년대는 생활이라는 것 자체는 공장에서 없었다. 90년대 민주노조 건설과 노동조합활동이 대중적 확산으로 임금이 최저생계비 수준에서 조금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을 뿐 그 당시와 전혀 변한게 없다. 오히려 물가인상폭이 임금인상의 폭을 추월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여가시간이나 있나 거의 없다. 월차와 생리휴가가 있으면 무엇하랴... 낮은 임금으로 월차와 생리휴가는 하루 일당에 몇 % 더 엊어주는 돈으로 대체하고 잔업에 특근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 인터넷 생중계를 할때 한 조합원이 술 한잔하면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과 다르게 밤에 일가?...그리고 매일 왜 내가 잠자고 있을때 나가도 일어나기 전에 일을가" 아빠를 보는 시간이 없잖아 그리고 다른 아빠들은 토요일 일요일 나들이 가는데 아빠는 왜 회사에 나가야해" 이 말을 듣고 아무말을 해주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해 꼭 켜않고 울음만 흘렸다고 한다. 돈을 벌기위해 아버지 자리는 없다. 아마 노동자들 대부분들이 그러할 것이다.

 

80년대 민주노조 쟁취를 위해 분신으로 자본과 정권에 항거한 열사가 21c 들어서도 변함없구나... 분노가 치밀면서도 나의 나약함 또한 함께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운동 활동을 지향한다고 말만 했던 나 자신이 과연 노동운동을 알면서 지껄이지 않았는지... 그 현장의 자본의 삭풍을 느끼지 못한 내가 열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으랴.... 투쟁하라고 외침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망각으로 잃어버리고 일상의 무딤에 그냥 담담하게 열사력을 펼치며 다 외우지 못할 열사들 이름만 그냥 무덤덤 바라보겠지... 그래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도 그 망각이 잊혀질세 없이 열사들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는 이 상황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이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 사실 난 열사들 처럼 죽을 용기도 없는 놈이다. 관성과 타성에 사로잡혀 운동이라는 것을 요식행사 처럼해오지 않았는지 나를 다시금 되돌아 본다.

 

장애의 처우 개선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신 어느 여성 장애인활동가의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고 노점상의 생존권을 위협하여 분신으로 절규하다 분신하신 열사들...386들의 노풍 그리고 개혁에 거는 기대.... 그러나 노동해방이 되지 않고선 위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던 문제가 될 것이다.

 

잘가요 그대 노래를 들으면서... 2003년 신년 노동자투쟁 희망의 새새벽을 기대해 봅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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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 글을 보고나서...

  • 등록일
    2004/09/18 18:43
  • 수정일
    2004/09/18 18:43

누군가의 고등학교 때의 생활기록부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행위이겠지만 자서전적 수필을 대할때면 한 사람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어 글을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역사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때가 많다.

 

고등학교 시절 누군가 하나쯤 간직하고 숨기고 싶은 비밀들이 어린 추억의 보물상자 일 것이다. 누군가의 그런 소중하고 그때의 회상을 읽으면서 문득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지금을 회자헤 본다.

 

그때와는 사뭇 다른 지금의 모습....
꿈과 사랑과 그리고 낭만이라는 잔잔하지만 가슴이 미어터질 듯한 그 때를 생각하면 혼자 웃음으로 일관하던 나를 발견하며 오늘 누군가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라는 회자적 글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되돌아 본다.



그때의 포부 그리고 희망은 다소 다른 미래로 현실을 살고 있지만...꿈이 있었고 미래가 있었던 그 시절... 정확히 말해 철이없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그 시절... 세상과는 동떨어진 매스미디어의 영향에 의하여 가공되고 헛된 꿈들을 꾸었던 그 시절에 나는 현실의 탈출구로 미래라는 대상과 꿈이라는 허망을 쫓아 앞만보고 달렸으며, 친구가 좋았고 늘 새롭게 펼쳐지는 일상이 좋았다. 누구는 국민윤리 책에서 나오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며 먼 미래를 의해 공부를 통한 미래의 가치를 증식하기 위한 시기라며 공부에만 전념하던 녀석들이 많았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친구 그리고 늘 새로운 일들속에서 세상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었기에 무엇보다 좋았다. 그리고 늘 공부라는 중압감 보다는 아침햇살 처럼 하루하루가 새로운 나날의 연속이 었다. 그때 설레임과 기다림 그리고 일상의 행복이라는 작은 씨앗들이 나에게는 존재
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또한 변하고 나의 주변을 감싸주었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고등학교때 늘 함께할거라 믿었던 친구는 진로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기에 점점 시간의 흐름과 동질성이라는 인식의 차이로 인하여 하나둘 먼대상이 되었다. 정확히 말해 시간이 없어 만남의 시간이 줄다보니 자연스레 친구 또한 멀어지는 대상이었다. 세상에 무한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 누군가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라는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문득 회자되었던 나의 고등학교 때의 자화상을 하나둘 기억이라는 노트에 다시금 담아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것이 달라지겠지만....그래도 그시대의 나의 존재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기억될 것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밤 여행스케치의 노래와 고등학교때의 나의 모습이 교차되어져 간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며 현재는 미래와의 대화이다."
[하이테거 "존재와 시간"책 글귀]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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