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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2/08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콘서트에 부쳐(5)
    간장 오타맨...
  2. 2004/12/08
    오늘 술잔
    간장 오타맨...
  3. 2004/12/08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겨울....
    간장 오타맨...
  4. 2004/12/07
    [시/이문재] 마음의 오지(4)
    간장 오타맨...
  5. 2004/12/07
    잡생각들....
    간장 오타맨...

[시/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갈님에게 보내는 시)

  • 등록일
    2004/11/24 10:18
  • 수정일
    2004/11/24 10:18
* 이 글은 갈막님의 [쉬엄쉬엄 가야겠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쉬엄쉬엄 가는 갈님을 위하여 김용택 시인의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는 시를 선물로 선사합니다. 이전 더부살이를 하던 공간에서 galmac이라는 아이디 글을 보면서 따스한 사람... 그리고 내가 알았던 빼트가 그이라 부르는 이... 언제나 그 이를 보러 간다던 빼트가 부러웠고, 세상사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한분이죠.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글 속에서 인사나 안부를 물어주면서 가까운 곁에 있는 느낌을 받았던 님이 꽃피는 봄이 오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못내 아쉽게 다가옵니다. 저는 종종 빼트님의 꼬마게시판에 가본답니다. 내가 써놓은 글을 퍼나르거나 읽으면서 그때를 회상도 해보고, 아 내가 이리도 어렸구나 생각을 해보기 위함이지요. 늘 어리고, 어리섞음을 잘 알지만 서른하고도 중반이 된 나이에도 이 어리고 어리섞은 습성은 변하지 않더군요. 양지보다는 음지를 그리워 하고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보다 곁에 지켜보거나 그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낮은 곳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리고 어리섞은 저에게 있어서는요. 그런 저에게 따스한 말과 힘내라는 격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만 했습니다. 꽃피는 봄이오면 꼭 돌아올거라는 믿음과 이전 글에서 넓은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고기구워먹을때 불러준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시를 옮겨봅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돌아올 갈님을 떠오르며....(내가 사용하고 있는 공부방 컴퓨터에는 야니의 After The Sunrise 음악이 잔잔히 흐릅니다.) ------------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물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은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 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두었 ]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 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 산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 다보며 이슬처럼 반짝 떨어지는 내 슬픈 물이 그대 환환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 숲 그 숲에 당신이 문득 나를 ㅤㄲㅒㅤ우는 이슬로 왔습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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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르톨트 브레히트] '1917년 여름 스몰리

  • 등록일
    2004/11/24 09:41
  • 수정일
    2004/11/24 09:41
***1917년 여름 스몰니에서 볼셰비키는 민중의 대표를 취사장에서 발견하다 혁명의 2월이 지나고 대중이 행동을 정지했을 때 전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농민에게는 토지가 없었고 공장 노동자는 압제 밑에서 굶주리고 있었는데 다수에 의해서 선출된 소비에트 평의회는 소수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모든 것이 구태의연하게 무엇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을 때 볼셰비키는 평의회에서 백안시 당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끊임없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총구를 프롤레타리아의 진짜 적 지배계급에게 향하라고


그로인해 그들은 배신자로 간주되고 반혁명이라 욕을 얻어 먹고 강도 무뢰배 쓰레기라 일컬어졌다 그들을 지도하는 레닌은 매국노 스파이라 불리어지고 창고에 숨어있어야 했다 어디를 가나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상대편은 눈을 돌리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침묵이었다 대중은 그들과 별개의 깃발 아래서 행진하고 있었다 장군과 부호와 부르주아지들이 활개치고 다녔으며 볼셰비키 운동은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활동했다 고함치며 비방하는 소리에도 당황하지 않고 그들의 편이었던 대중이 공공연하게 이탈해 가도 주눅들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여 새롭고 새로운 노력을 거듭하여 최하층의 대중을 대표했다 그들이 유의했던 것은 그들에 의하면 이런 것이었다 스몰니 식당에서 그들은 알아 차렸다 빵이나 배추나 수프나 차를 건넬 때 집행위원들에게 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병사가 다른 누구보다도 볼셰비키에게 보다 따뜻한 차를 보다 부드러운 빵을 건네주고 있음을 건네주면서 병사는 눈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그들은 인식했던 것이다 이 병사는 우리들에게 공감하고 있었으나 상관 앞에서는 숨기고 있다고 마찬가지로 스몰니에 근무하는 하급 직원들은 모두가 분명히 위병도 전령도 보초병도 그들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들의 운동은 그 반은 이루어졌다"고 즉 이와 같은 사람들의 사소한 움직임이나 발언과 침묵 그리고 눈의 방향 등이 그들에게는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로 부터 친구라 불리어 지는 것 그것이야 말로 그들에게는 제일의 목표였던 것이다 * 스몰니는 러시아 짜르시대에는 귀족자녀들의 여학교 였으나 2월 혁명 후 임시혁명정부가 사용하고 있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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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quez(마르쿠제)의 노벨상 수상 연설 전문

  • 등록일
    2004/11/24 09:28
  • 수정일
    2004/11/24 09:28
마젤란과 함께 역사상 최초의 세계 일주 여행을 하였던 프로렌스 출신의 해양 탐험가 안토니오 피기페타는, 남아메리카 대륙을 지나가면서, 매우 정확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마치 환상의 나라로 모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허리에 배꼽이 달린 돼지, 수컷의 등에다 알을 낳는 발톱 없는 새, 숟가락처럼 생긴 부리를 한 혀 없는 펠리컨 비슷한 새 등 여러 진기한 동물을 보았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머리와 귀가 노새처럼 생기고, 몸통은 낙타 같고, 사슴의 다리를 하고, 말처럼 울음 소리를 내는 이상한 동물을 보았다고 기록했습니다. 파타고니아에서 처음 마주친 원주민에게 거울을 보여주자, 그 다혈질의 거인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무서워 어찌할 줄을 모르던 광경도 기술하였습니다.


서인도 제도의 연대기 작가들은 우리에게 무수히 많은 기록들을 남겨 주었니다. 우리가 그토록 탐욕스럽게 찾아 온 환영 속에 존재하는 땅 <엘 도라도>는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지도에 표시되었으며, 지도 제작자들이 상상하는 대로 그 위치와 형태가 바뀌곤 했습니다. 영원한 청춘의 샘을 찾아서, 신화적인 인물이 된 알바르 누녜스 까베사 데 바까는 8년에 걸쳐 멕시코의 북부 지역을 탐험하였습니다. 환상에 사로잡혀 길을 떠났던 그의 탐험대는 서로가 서로의 인육을 먹는 참상 속에서, 처음 여행을 떠난 6백 명의 인원 가운데 단 다섯 명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 시대의 수많은 미해결 된 미스테리 중의 한 가지는, 아따후알빠의 몸값을 치르기 위해 어느 날 꾸스꼬를 출발하였으나 결코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황금의 행방이었습니다. 한 마리에 1백 파운드씩의 금을 실은 1만 1천 마리의 노새가 실종된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 식민지 시대의 카르떼헤나 데 인디아스 지역에서는, 사금 땅에서 키운 닭들의 모래 주머니 속에서 조그만 금덩어리들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한 개척자의 황금에 대한 탐욕이 최근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에, 파나마 지협을 가로지르는 대양(大洋)간의 철도 부설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구성된 독일의 파견단은, 한 가지 조건 하에 계획이 실현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철도를 이 지역에 나지 않았던 철로 만들 것이 아니라 금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우리는 광기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세 번에 걸쳐 멕시코의 독재자로 군림하였던 안또니오 로뻬스 데산따나 장군은 소위 그가 <빵전쟁>에서 잃었던 오른쪽 다리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모레노 장군은 16년간 전제군 주로서 에쿠아도르를 통치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완전무결한 정장에 온통 훈장을 한 겹이 덮이도록 장식하여, 시체를 대통령 의자에 안치시켜 놓았습니다.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띠네스 장군은 엘살바도르의 견신론(見神論)적 전제군주로서 3만 명의 농민의 목숨을 앗아간 야만적인 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먹는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여부를 탐지하는 진자를 발명해 냈고, 전염병으로 번지는 성홍열을 퇴치하기 위해 가로등을 붉은 종이로 싸라고 명령했습니다. 떼구시갈빠의 중앙 광장에 서 있는 프란시스꼬 모라산 장군의 동상은 사실상 원래 네이 원수의 동상이던 것을 파리의 어느 중고품 조각 상점에서 사다 놓은 것입니다. 11년 전,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칠레의 빠블로 네루다는 이 자리의 청중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일깨우는 연설을 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선의를 가진 유럽 인들은―그리고 때로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도―라틴 아메리카로부터 전해지는 섬뜩한 소식에 점점 더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그 불굴의 완강함이 전설로 아련히 남아 있는, 역사를 사는 남녀의 광대한 활동 무대가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쉴 여유가 없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대통령이, 불타는 그의 궁전에서, 전 군대에 맞서 홀로 싸우다가 외롭게 죽어 갔습니다. 아직도 설명되지 않은 두 차례의 의문의 비행기 사고가, 또 하나의 위대한 대통령과 그의 국민의 존엄성을 되찾아 준 한 민주적 군인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다섯 차례의 전쟁과 열 일곱 번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신의 이름 아래,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우리 시대 최초의 종족 살인을 자행한 악마적인 독재자가 등장하였습니다. 그 동안, 2천만의 라틴 아메리카 아이들이 한 살이 채 못 되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1970년이래 유럽에서 태어난 아기의 수보다도 많은 숫자였습니다. 압제로 인하여 실종된 숫자도 12만 명에 이르는데, 이것은 웁살라의 온 주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나 같습니다. 임신 중에 체포된 많은 여인들이 아르헨티나의 감옥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들은 비밀리에 입양되거나 군 당국의 명령에 의해 고아원으로 보내어져 아무도 자기 자식의 행방도 신원도 알아낼 길을 모르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어 보려고 애썼다는 이유로, 전 대륙에 걸쳐 20만 명에 달하는 남자와 여자가 죽어야 했습니다. 중앙 아메리카의 불운한 세 나라―니카라구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에서는 10만 명 이상이 죽어 갔습니다. 만일 이것이 미국에서 벌어진 상황이라면, 비율로 보아 4년간에 걸쳐 1백 60만의 인명이 폭력으로 쓰러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손님을 환대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인 칠레에서는 1백만 명이 그 나라를 등지고 떠났습니다. 인구의 10퍼센트가 망명길에 오른 것입니다. 대륙에서 가장 개화된 나라라고 자부하던, 인구 2백 5십만의 조그만 나라 우루과이는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하나의 비율로 나라를 떠났습니다. 1979년이래 엘살바도르의 내란은 매20분마다 한 명씩의 비율로 피난민을 놓았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이 모든 망명자들과 강제 이민들을 모아 나라를 세운다면 노르웨이의 인구보다도 많은 인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본인은 스웨덴 문예 학술원의 관심을 이끈 것이, 단지 그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이 엄청난 현실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종이 위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서 살고, 매 순간마다 매일처럼 죽어 가는 우리의 무수한 죽음을 결정짓고, 만족할 줄 모르는 창조성의 원천이 되는 현실입니다. 그것은 비애미에 넘치는 현실이며, 이 향수에 젖어 유랑하는 컬럼비아는 운명의 여신에 의해 혜택받은 그 속의 하나의 하찮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시인과 거지들, 음악가와 예언자들, 전사와 악당들, 이 억제할 수 없는 현실의 모든 존재들에게,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중심적인 문제는, 우리 인생을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줄 통례적인 수단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빚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이것이 우리들의 고독의 본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질적으로 공유하는 이러한 어려움 들이 우리를 가로막는 것이라면, 스스로의 문명에 도취된 지구의 이편 유럽 인들의 합리적인 재능으로도 우리를 이해할 온당한 방도를 찾지 못하는 것이 수긍이 갑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측량하는 척도로서 우리를 측정하려 들고, 거친 인생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정도로 닥치는 것이 아님을 잊고,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들만큼이나 열렬하고 피맺힌 것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틀에 끼워 맞춰 우리의 현실을 해석하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더욱더 미몽에 몰아 놓고, 자유를 상실케 하고, 고독하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만일 그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우리를 보려고 한다면, 훌륭한 유럽 인들은 좀더 통찰력 있는 시각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런던이 최초의 성벽을 쌓는 데 3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고, 주교를 맞이해 들이는데 또다시 3백 년이 소요되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왕이 로마를 역사의 수레바퀴 위에 올려놓기까지 로마는 불확실성의 그늘 속에서 2천 년을 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드러운 치즈와 무감동한 시계를 제공해 주는 평화로운 스위스 인은, 16세기까지도 용병으로서 유럽을 피로 물들인 국민이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절정기에도 신성 로마 제국 군대에서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하며 황폐화시키고, 8천 명의 주민을 칼로 베었습니다. 53년 전, 토마스 만은 이 자리에서 고결한 북부와 정열적인 남부를 통합하자고 한 토니오 크뢰거의 이상을 찬양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여기서 그런 환상을 실현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본인은 보다 정의롭고 인간적인 조국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서도 투쟁하고 있는 명철한 유럽 인들이, 우리에 대한 시각을 다시 고쳐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훨씬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계적인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삶의 몫을 누리고자 하는 환상을 품은 모든 국민들에게 정당한 지원을 보내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의 꿈에 공감만 해 준다고 해서 우리가 덜 고독해 질 수는 없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스스로의 의지에 상관없이 부당한 저당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과 독창성을 절실히 열망해야 하리라는 덧없는 생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간의 거리를 접혀 준 항해술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 사이의 문화적인 차이는 반대로 더욱더 멀게만 느껴지고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그처럼 환영받는 우리의 독창성이,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는 또 다른 노력에서는 그처럼 불신을 받고 거부당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째서 진보적인 유럽 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모색하는 사회 정의가,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역사에 점철된 그 엄청난 폭력과 고통은, 오랜 세월 쌓여 온 불공평한 상황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쓰라린 경험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단 한번의 음모로 우리의 조국에 3천 개의 단체가 뿌리를 내렸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은 구식 인간형의 어리석음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러한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럽이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유익한 방종을 이제 잊어버리고, 마치 세계가 두 거대한 주인의 뜻에 따르는 이외에 다른 운명을 개척할 도리가 없다고 체념한 듯합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이것이 우리가 겪어야 하는 크나큰 고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억압받고, 약탈당하고, 버림받는 처지에서 삶으로써 대응하고자 합니다. 홍수도, 전염병도, 기근도, 사회의 대격변도, 수 세기를 두고 그침 없이 계속되는 영원한 전쟁조차도 언제나 삶이 죽음을 능가하고 있는 현실을 뒤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폭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져 왔습니다. 매년 사망자 수보다도 7천 4백만이 많은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매년 뉴욕 인구의 일곱 배의 인구 증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물론 라틴 아메리카 제국을 포함하는 가장 자원이 빈약한 나라들에서 태어납니다. 반대로 가장 번영을 누리는 나라들은, 오늘날 존재하는 전 인류뿐 아니라, 이 불운한 행성에 태어났던 모든 생물체를 백 번은 몰살시킬 수 있을 파괴력을 축적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오늘과 같은 날, 나의 스승 윌리엄 포크너는 <나는 인류의 종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었습니다. 32년 전 그가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엄청난 비극이, 이제 인류가 존재한 이래 처음으로, 확연한 과학적 가능성으로 닥쳐왔음을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다면, 저는 지금 그가 섰던 이 자리에 설 자격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완전한 유토피아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을 이 가공한 현실을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지어내고 어떤 일이라도 믿을 줄 아는 우리는, 아직 현재의 세계와 상반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에 시기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니라고 믿을 권한이 있습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사랑은 진실이며, 행복은 손에 넣을 수 있는 실체가 되고, 1백 년 동안의 고독을 저주받 은 종족이 마침내 영원히 지구상에서 제 2의 기회를 누리게 될, 새롭고 완전한 삶의 이상향을 말입니다. ― 1982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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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 등록일
    2004/11/23 21:50
  • 수정일
    2004/11/23 21:50
이 문자 참 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공부방 1학년 아이를 우연히 일을 갔다와 가르쳤습니다. 요즘 교육이 워낙 빨라 한글을 ㅤㄲㅒㅤ우치고 학교에 간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교육은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사교육 열풍이 한반도 남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하지만 돈이 없거나 그렇지 못한 처지에 있는 사교육 소외자들은 사교육 혜택을 받은 아이들 처럼 쉽게 교육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느껴보았고, 학교라는 공교육에서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이 오늘 가르친 아이를 보면서 느껴보았습니다.


아 한글 문자가 어려운 것이구나.... 외우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것이 문자가 아니던가? 남들은 쉽다고 하지만 내가 가르친 아이는 한글을 접하면서 어떠한 생각을 가졌을까? 그런 아이에게 난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쉽게 외우라고 말하지만 결코 쉽게 외워지지 않는 단어를 강요한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말을 듣지 않아 엉덩이를 몇대 때린 것이 후회됩니다. 문자를 외우기 이전 이 아이에게 교육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말해주어야 했거늘 그렇지 못하고 외 못외우니 그리고 소리 높여 읽어보라고 몇번 써보라고 말 한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내 욕심에선 글자를 알면 아 글자가 이렇게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수 있구나 가르치고 싶지만 이는 내 욕심이 앞선 의욕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와 오늘 약속하나를 하였습니다. 하루에 한자 한자를 외워 일주일내에 ㄱ, ㄴ, ㄷ, ㄹ -----ㅎ까지 다 읽을 수 있게 함께 공부하자고, 세끼 손가락을 걸며, 엄지손가락 도장을 찍으며 약속했습니다. 한참 뛰어놀 아이를 붙잡아 놓는 것이 못내 미안하지만 그래도 한글을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에 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감행하여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이 아이는 순서대로 ㄱ, ㄴ, ㄷ, ㄹ, ㅁ, ㅂ, ---- ㅎ 까지는 외우고 있으나 정작 문자 판독이 되지 않아 고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동화책이다 만화책이다 읽고 쓰고 그러는데 이 아이만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져 있어 학교에 가는 것도 그리 달갑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얼떨결에 이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르치면 남들과 다를 줄 알았는데 저 또한 간사한 인간인지라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가 투정을 부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볼기짝으로 향해 한 4개를 때렸습니다. 때린 것이 못내 미안하군요. 이 아이가 부디 이 입문과정에서 득도하여 한글의 아름다움 언어의 의미를 알아나갔으면 합니다. 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일을 거울 삼아 결코 손이 먼저 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겠습니다. 사랑으로 아이를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여 오늘 하루 내 행동을 반성해 봅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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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e & Sebastian - Marx And Engels

  • 등록일
    2004/11/22 15:46
  • 수정일
    2004/11/22 15:46

♪ Belle & Sebastian - Marx And Engels ♪


Belle & Sebastian - Marx And Engels *There's misery in all I hear and see From people on TV After their tea when life begins again They'll be happier than me There are a thousand meals being made on Saturday From the view I saw today I took a bet inside the launderette With a girl from Wallasey* She spoke in dialect I could not understand But one thing that she made clear There was no coming on to her There was no way I n s t r u m e n t a l *~* She spoke in dialect I could not understand But one thing that she made clear There was no coming on to her There was no intellect That she could respect If it couldn't see That the girl just wants to be Left alone with Marx and Engels for a while She's writing in the style Of any riot girl Belle & Sebastian - Marx And Engels I'm Waking Up to Us Tracks : 1. I'm Waking Up to Us 2. I Love My Car 3. Marx and Engels Release Date : 27 November,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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