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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은 인간시장이다.

  • 등록일
    2004/09/01 02:05
  • 수정일
    2004/09/01 02:05

오늘 집에서 칩거하다가 한강변으로 자전거 타고 나갔다.

주로 출근시간과 주말 이외에는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리지 않은터라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다르게 한강변은 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운동을 하건 연인과 데이트를 하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시간에도 사람이 있는 것을 본 나는 참 인간 많다라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한강에 도착하여 바람의 시원함에 기대어 성산대교 뚝방에 앉아서 한강의 물흐름을 지켜보면서 유유히 흐르는 물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기를 30분.... 한 아저씨가 오더니 이 자리는 자신이 주로 낚시하는 자리니 비켜달라고 하였다. 뭐 나도 한 30분간 앉아 있어서 뭐 더 있을 필요가 없어 자리를 양보하고 한강변을 다시 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렸다.



이번엔 자전거를 타고 양화대교를 넘어 성산대교를 거쳐 가양대교를 거쳐서 고양시 행주대교와 건너편에 있는 방화대교에 다리 밑에 도착하였다.

여의도 기점으로 하여 한 12km 조금 넘는 거리인 방화대교 밑 한강은 철새들은 구경하는 명소로 유명하다. 이 곳에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이, 인라인스케이트 타고 오는 이, 마라톤으로 달려오는 이 자가용을 몰고 가족단위로 놀러오는 이로 북쩍꺼리는 곳이다. 방화대교 옆에 철세에게 틀키지 않고 관측하는 짚단으로 만든 철세관측소도 있고, 나무로 만든 자연녹지도 있어서 아이들과 자연학습을 위해 놀러오는 곳으로 한강에서 최적지라 생각된다.

 

배가 고파서 다리 밑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짜장면과 물만두에 소주한잔을 하고 왔다. 어둑어둑해지는 때까지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바람은 어느정도 시원하게 불어주었고, 한강물살은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자 처럼 바람의 흐름에 바도가 출렁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평온함을 느꼈다. 참... 돈만 있으면 한강변에 나가 중국요리 또는 닭배달 시켜먹어봐요... 참 좋답니다, 돗자리만 가져가면 소풍이 따로 없습니다. 가족단위로 가시는 분들은 가족 야유회도 괜찮겠네요... 이전에도 한강변은 좋다고 느꼈지만.... 오늘 한강다리밑 네온사인을 보면서 자전거 타는 것도 참 좋았답니다.

 

방화대교에서 3시간 정도를 있다가 자전거를 타고 다시금 한강변을 달렸습니다. 이번에는 어디로 달렸다면.... 여의도를 거쳐서 한강철교를 거치고 동작대교를 밑부분을 지나서 반포대교에 도착하였습니다. 반포대교도 참 한강변에서 잘 꾸며놓은 곳입니다.

특히 여의도에서 반포대교 부근까지 나있는 한강변 자전거전용도로는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이들은 중급이상 정도되어야 하지만 자전거나 마라톤 도보를 즐기는 사람들은 한번 가보세요... 길이 높낮이가 있지만 강변북단 자전거도로에 비해서는 참 길이 꾸불거리지만 산책하기 좋답니다. 반포대교 이전에 한강공원 또한 인공 섬을 만들어서 다리를 넘어 산책하거나 앉아서 바람을 맞으면서 쉬기 좋은 곳입니다.

 

한강에서 제일 다리 야경이 좋은 곳은 어디냐면 원효대교 입니다. 야밤에 한강변을 자전거 또는 인라이스케이트 마라톤으로 달려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것입니다. 원효대교를 자동차로 건더는 이들은 모르지만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 마라톤 또는 산책하러 나오신분들이라면 우효대교의 야경에 금방 감탄을 합니다. 그래서 인지 이 부근엔 사진을 찍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답니다. 강건너에는 여의도 63빌딩이 있어 사진 구도가 잘 나오는 곳이거든요. 저는 종종 퇴근길에 반포대교에서 잠수교를 넘어 원효대교까지 와서 맥주한잔하고 간답니다. 주로 새벽 1시경에 가면 좋답니다. 간혹 연인들이 있어서 부러울때가 많지만 이 시간대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혼자 원효대교 다리밑 불빛과 달빛과 별들을 벗삼아서 혼자 맥주한잔 또는 소주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기분에 취해서 마냥 즐겁습니다. 이곳은 또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어서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은 한강에서 숨어있는 진주같은 장소입니다. 한강의 명소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곳이죠.

 

한강에서 5대 명소를 꼽으라면 저는 첫번째는 한강 강남 강서구쪽 방화대교가 제일로 꼽고, 두번째는 뚝섬유원지, 세번째는 한강 강북성산대교에서 올라와 가양대교가 있는 자연생태학습지(버드나무 군락지), 네번째는 압구정동의 한강변이고, 다섯번째는 성산대교 강남방면이 좋은 곳이라고 봅니다, 특히 원효대교는 야경 뺴면 별로 볼께 없어요.... 한강변에서 또 가볼만한 곳이 있답니다. 초등학교 사회에서 배운 절두산(천주교 순교자 유적지)성당 유적지가 당산철교 부근에 있어서 가볼만합니다. 자동차로도 진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절두산 성당 옆에 있는 당인리발전소 또한 얼마후 개보수를 거쳐 시민공원으로 가꾼다는 국가의 발표가 있었으니 한번 공원으로 개편되면 가보세요...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외가집이 마포에 있어서 어린 시절 서울에 오면 홍대부근에서 자주 놀았답니다. 외가는 마포나루에서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왔다고 어머님에게 들었습니다. 외가는 지명으로는 서강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서강대교의 유래이기도 하구요. 어릴쩍 홍익대학교 부족초등학교 학생들이 다니는 곳도 가보았습니다. 옆에는 서강초등학교가 있지만 돈 있는 녀석은 사립학교에 다녔나 봅니다. 저야 촌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잘 모르죠.... 지금도 있지요... 친구가 홍익대 금속공학과에 다녔는데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하더군요... 홍익대에서 대모를 많이 하니까 홍익초등학교 육성회에서 회장단에서 아예 홍익대 재단을 사버려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엄포와 으름짱을 놓았다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있었다고, 대모를 하면 아이들도 좋잖아요 수업을 안하고 학교를 일찍 파하니까요....

 

딴데로 빠졌네요....

가을바람이 제법 쌀쌀히 부는 날 시간이 되시면 한강변에 나가보세요. 달빛의 고운 자태도 볼 수 있고,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서울의 낮과 다른 밤의 이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후회는 안하실 것입니다, 가방속에 오징어와 맥주는 빼먹지 말구요.... 참 술맛도 좋고, 바람소리와 물소리도 좋고, 밤하늘 청명함도 좋답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술이 있어서 기쁨은 배가 됩니다.....

 

바람부는 날 한강변에 꼭 나가보세요....

저도 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한강변에서 달빛과 별빛 다리들의 네온사인의 빛깔 고운자태를 보러 한강변 죽도리가 될까합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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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나무야/신영복]철산리의 강과 바다

  • 등록일
    2004/08/31 17:39
  • 수정일
    2004/08/31 17:39

당신은 바다보다는 강을 더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강물은 지향하는 목표가 있는 반면 바다는 지향점을 잃은 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오늘 한강 하구(河口)에 서서 당신의 강물을 생각합니다.그렇습니다.강물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물임에 틀림없습니다.골짜기와 들판을 지나 바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숱한 역사를 쌓아가는 살아 있는 물입니다.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돼 뛰어 내리고 댐에 갇히면 뒷물을 기다려 다시 쏟아져 내리는 치열한 물입니다.이처럼 치열한 강물과는 달리 바다는 더이상 어디로 나아가지 않는 물입니다.바다로 나와버린 물은 아마 모든 의지가 사라져버린 물의 끝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엽서를 들고 먼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통일 전망대를 찾아 왔습니다.태백산에서 시작해 굽이굽이 천리길을 이어온 한강과 마식령산맥에서부터 5백리 길을 흘러온 임진강이 서슴없이 서로 몸을 섞으며 바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물길을 따라 강화도의 월곶리에 있는 연미정(燕尾亭)으로 왔습니다.마침 밀물때 만난 서해의 바닷물이 강화해협을 거슬러 이 두물을 마중나오고 있었습니다.드넓은 강심에는 인적없는 유도(流島)가 적막한 DMZ속에서 잠들어 있고 기다림에 지친 정자가 녹음 속에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강안(江岸)을 따라 강화의 북쪽끝인 철산리(鐵山里)언덕에 올랐습니다.이곳은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바라보이고 예성강물이 다시 합수하는 곳입니다.생각하면 이곳은 남쪽땅을 흘러온 한강과 휴전선 철조망 사이를 흘러온 임진강,그리고 분단조국의 북녘땅을 흘러온 예성강이 만나는 곳입니다.파란만장한 강물의 역사를 끝마치고 바야흐로 바다가 되는 곳입니다.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일깨우는 곳입니다.멀리 유서깊은 벽란도(碧瀾渡)의 푸른 솔이 세 강물을 배웅하고 있 습니다.


나는 오늘 이곳 철산리에서 바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띄웁니다.
당신이 내게 강물을 생각하라고 하듯이 나는 당신에게 바다의 이야기를 담아 엽서를 띄웁니다.바다로 나온 물은 이제 한강도,임진강도,예성강도 아닌 바다일 뿐입니다.드넓은 하늘과 그 하늘의 푸름을 안고 있는 평화로운 세계일 뿐입니다.

나는 당신이 강물을 사랑하는 까닭을 모르지 않습니다.그러나 생각하면 강물은 고난의 시절입니다.강물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물이되 엎어지고 갇히고 찢어지는 고난의 세월을 살아갑니다.우리의 역사에서도 한강과 임진강·예성강 유역은 삼국이 서로 창검을 겨누고 수없이 싸웠던 전장(戰場)입니다.지금도 임진강은 휴전선철조망에 옆구리를 할퀴인 몸으로 이곳에 당도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강물의 시절은 이념과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도도한 물결에 표류해온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인간의 존엄이 망각되고 겨레의 삶이 동강난 채 증오와 불신을 키우며 우리의 소중한 역량을 헛되이 소모해온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 철산리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암울한 강물의 시절도 그 고난의 장을 마감합니다.당신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물이 아닙니다.한마디로 바다가 됩니다.목표가 없다기보다 달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이곳은 부질 없었던 강물의 시절을 뉘우치는 각성의 자리이면서 이제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시야를 열어나가는 조망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강물의 치열함도 사실은 강물의 본성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땅으로 인해 그렇게 달려왔을 뿐입니다.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과 평화인지도 모릅니다.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며 가장 평화로운 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입니다.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목표를 회복하고 청천하늘의 흰구름으로 승화하는 평화의 세계입니다.방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최후의 목표로서의 평화입니다.
평화는 평등과 조화이며 평등과 조화는 갇혀있는 우리의 이성과 역량을 해방해 겨레의 자존(自尊)을 지키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자유(自由) 그 자체입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마지막 엽서를 앞에 놓고 오랫동안 망설이다 엽서 대신 파란 색종이 한장을 띄우기로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언젠가 이곳에 서서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그리고 당신이 받은 색종이에 담긴 바다의 이야기를 읽어주기 바랍니다.그동안 우리 국토와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왔던 나의 작은 발길도 생각하면 바다로 향하는 강물의 여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마지막 엽서를 당신이 내게 띄울 몫으로 이곳에 남겨두고 떠납니다.강물이 바다에게 띄우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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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도시락

  • 등록일
    2004/08/31 16:41
  • 수정일
    2004/08/31 16:41

즐거운 점심 시간, 반찬 사냥을 나서는 아이들의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어제 큰형이 생일이었다는 영철이 도시락 반찬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습니다.

그래도 영철이는 싫은 표정이 아닙니다.

창가에 앉아 있는 철수는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철수는 운동장 쪽의 수돗가로 가서 허기진 배를 물로 채웁니다.

아이들이 반찬 투정을 하며 도시락을 먹을 때,

철수는 수돗가 옆 소나무 아래 홀로 앉아 뜨거운 눈물을 삼켰습니다.

철수에게 점심 시간은 너무 길고 슬픈 시간입니다.



오늘도 도시락 반찬은 김치와 마늘장아찌뿐입니다.

영수는 엄마의 도시락에는 무슨 반찬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엄마가 일을 나가기 전에 몰래 엄마의 도시락을 열어보았습니다.

엄마의 도시락에는 밥과 반찬 대신

일을 할때 쓰는 헌장갑이 들어 있었습니다.

 

                                                                               조은재의 행복한 도시락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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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식품은 늘 맛있었다.

  • 등록일
    2004/08/31 16:01
  • 수정일
    2004/08/31 16:01

초등학교 주변에 문방구에 배치되어 있던 불량식품들은 늘 맛있는 간식꺼리 였다.

 

서울 처럼 음식이 즐비하게 있지는 않았지만, 촌에 문방구에도 불량식품은 있었다. 내가 자주 애용하는 불량식품은 쫀득이라고 10cm 자모양에 1, 2, 3, 4, 5, ...10 숫자가 써있었고, 무지개 모양은 아니었지만 색깔 줄 칠해져 있던 쫀득이와 가로 10cm * 세로 1cm 마른 포, 꿀맛 같은 검은 액체(설탕을 녹여서 막는 액체였으리라 지금 생각됨.)가 들어 있는 길쭉한 쫀득이를 좋아하였다. 가격은 5원이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참 맛난 음식이였다.

 

간혹 100번대 까지 있어 뽑기로 번호를 맞추면 큰 설탕 사탕을 주는 뽑기도 했고, 학교앞 자전거 탄 아저씨가 큰 투명한 물통을 가져와 오렌지색 색소 음료를 파는 것도 맛났고, 부모님 몰래 비료포대를 훔쳐서 사먹던 아이스께기도 맛난 음식이였다. 5원만 있었으면 이중에 하나는 맛볼 수 있었다. 참 불량식품은 왜이리도 맛났는지.... 산과 들 그리고 강가에 나가면 먹을 것이 즐비했는데.... 그 당시 처음 접한 맛이여서 그랬으리라 짐작만 해본다.



장터에서 늘 부모님을 쫓아와 먹은 것이 풀빵(일명 국화빵과 같은 종류의 볼품없는 빵,,, 빵이라 하기엔 좀 그렇다. 지금 붕어빵과 같은 종류임.... 크기는 붕어빵의 1/10임.)이 였다. 참 맛나게 먹은 것인데.... 불량식품에 비하면 풀빵은 견줄수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유일하게 불량식품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준비물을 살때 부모님이 학용품사고 잔돈이 남으면 사먹으라는 그 불량식품 참 맛났다. 난 매일매일 준비물이 있어서 불량제품을 사먹었으면 했는데.... 참 쉽지 않은 현실.... 시골이라 가정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을 안 선생님은 준비물을 학급에 비치해 놓아(아마 손수 자신의 돈을 떨었을 것이라 생각됨.)서 학용품이 없더라도 학습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해주었다. 이러다보니 학용품을 살 일이 별로 없었다. 늘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형과 누나가 사놓았던 터라 나는 형이나 누나가 쓰던 물건을 되물림받아 사용하였다. 우씨 형제가 많은 것도 죄다. 물건을 새것도 아니구 그렇다고 학용품을 사면서 떡고물도 떠러지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니어서 심통을 많이 내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랴 늦게 태어난 것이 죄지.....

 

지금은 없어졌는지 있는지 모르지만 거북선이 그려진 구릿 빛 5원짜리 동전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존재였다. 그 5원만 있으면 난 방과후 학교 파하고 나면 불량식품을 사먹을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돈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돈이 쉽게 샘솟는 것이 아니다. 밭농사 지어보았자... 도매상인들에게 헐값에 내주고, 운송비 빼면 빠듯하게 생계를 이어가고, 쌀농사도 추곡수매가 끝냐야 일년 결산이 나오기 때문에.... 농번기에는 돈이 씨가 마를 정도이다. 일년벌어서 비축한 돈을 야금야금 쓸수 없는 탓에 일년농사 대부분을 빛으로 지낸다. 간혹 집안 경사나 조사가 있으면 쓰기위해 가가호호 소를 3-4마리를 비축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큰형이 서울(그 당시 중학교도 전국구로 모집하여 친척이 광주보다 서울에 많이 있어서 형이 서울중학교로 시험쳐서 들어감. 이것이 화근이지 나도 덩달아 서울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으니.... 나중에 시간되면 12시간 비둘기호 이야기도 써내려가 보겠음.... 비둘기호 타고 영산포역(지금은 금산인가 나주역으로 바뀌었지만)에서 서울로 상경하던 이야기를 해보이겠음... 그리고 고속버스 안내양 누나 이야기도... 중학교때 집에 내려오는 풍경으로 ...)로 중학교를 들어가 학비를 내는 것도 빠듯하다. 나도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학비를 내고 다녔으니까... 지금이야 무상교육이다 하여 초등학교 학비를 내지 않으나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학비가 달달이 냈다. 아직도 기억난다. 누런 봉투(마치 월급봉투) 같은 거를 선생님이 주면 그 봉투에 돈을 담아와 선생님에게 제출하면 선생님이 도장을 찍어주고 부모님께 사인을 받아오라고 하신 말씀..... 조금 늦게 때어날 걸 무상교육의 혜택을 덜 받아 아유 열받아라......... 그러던 터라 부모님은 학비를 내주고 내주거나 집안 큰 일거리가 있으면 쌀을 팔아서 비용을 충당한다. 그리고 감자, 수박, 참외, 배추, 무 농사는 달달이 돈이 필요한 농번기에 용돈 벌이는 된다. 그런 터라 용돈을 받기는 여지간히 어려운 일이다. 간혹 동네에서 큰 일거리가 생기면 도와주고 수고했다고 사먹으라고 주신 5원돈이 전부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 불량식품과 친구가 되어 정말 군침을 삼키면서 어린 학창시절을 보내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방과후 문방구 불량식품 코너를 물끄러미 처다보고 있는 일이 종종 생각난다. 뒷산과 앞뜰에 나가면 산과실들이 먹을 수 있는데도.... 그 불량식품에 혀의 미각을 빼앗긴 나는 도저히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어린 유년 먹거리가 늘 고정되어 있던 내 미각에 불량식품은 새로운 맛이었을 것이다. 불량식품을 들고 15리(6Km) 길을 걸으면 이도 정말 신난다. 15리 길을 걸으면서 불량식품을 혀로 빨면서 가는 그 길.... 참 행복함에 도취해 걸었던 유년시절이 생각난다. 불량식품을 사먹는 날은 15리 길이 왜 이리도 멋진 것인지.... 하늘에 뭉게구름이 내 불량식품을 탐내지는 않은지.... 상상하면서 걸었다.

 

지금이야 먹거리가 풍성해 아이들이 패스트푸드로 인해 비만화가 심각하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참 아이들이 도시라는 각박한 공간에서 닭과 돼지처럼 사육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우리때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고팠다. 먹은 것이 없어서 아니다. 그만큼 산과 들에게 뛰어놀수 있는 공간이 많았고, 놀이문화가 많았다. 아이들과 소나무에 올라가 치타가 되보기도 하였고, 강가에서 멱감(수영)으며 놀고, 산과 들에서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그리고 농사일은 뭐 이리도 많은지 소 여물줘야지,... 닭과 돼지 밥줘야지..... 놀고 뛰고 일하고 정말 정신없이 자연과 벗삼으로면서 일상생활을 하였다. 지금 초등학생 1학년  아이들에게 학교를 가기 위해 15리(6Km)거리를 걸어가라면 아이들 대부분이 개거품을 물겠지... 그나마 난 학교 친구들중에 그리 멀지 않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최고로 멀리 오는 친구는 한 25리(10Km)를 걸어오는 초등학교 같은반 급우가 있었다. 이렇듯 나와 내 동네친구들 그리고 내 연배사람들은 시골에서 이렇게 학교를 다녔다. 읍내나 면 중심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도보로 학교를 다녔다. 대중교통 수단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대중교통 수단이 아예 없었으니까.... 길은 구불구불... 저수지를 지나서 산을 넘고 또 산을 넘고... 개천을 넘어서 도착한 학교... 면 중심은 나에게 신천지 였다.... 신기한게 많았으니까... 깡촌에서 살면 다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깡촌에서 살아도 5일장 날은 정말 분비는 날이다. 먹거리도 풍성하고 그 시골 동네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이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것이나 기른 것들은 교환하고 분주하다. 또 가을운동회는 면 전체민의 축제의 장이다. 하하 재미난 것들이 많았구나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불량식품은 나에게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주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불량식품으로 접한 것은 더 큰 면중심으로 내가 진출하면서 새롭게 각인한 맛이고, 읍내로 나가서는 더 큰 것들을 보게되었다. 깡촌의 내가 불량식품을 통해서 세상과 하나둘씩 인연을 맺어갔다.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문방구에서 군침흘리면서 불량식품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또렷히 아른거린다.

 

불량식품을 한번 사먹어 봐야 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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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겨레] 영화100년, 영화100편

  • 등록일
    2004/08/31 14:30
  • 수정일
    2004/08/31 14:30

94년 9월 7일부터  96년 3월 13일까지(쉬는 기간동안 아래 영화나 봐야 겠습니다.)

 

         <<한겨레신문 영화100년 영화100편 목록>>

 

#1. <인톨러런스 Intorelance> (1916) / 감독: D.W. 그리피스
#2.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 (1919) / 감독: 로베르트 비네
#3.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 (1922) / 감독: 로버트 플래허티
#4. <마지막 웃음 Der Letzte Mann> (1924) / 감독: F.W. 무르나우  
#5. <황금광 시대 The Gold Rush> (1925) / 감독: 찰리 채플린
#6. <전함 포템킨 Bronenosets Potemkin> (1925) / 감독: 세르게이 에이쩬슈테인  
#7. <어머니 Mat> (1926) / 감독: 프세볼로트 푸도브킨  
#8.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 / 감독: 프리츠 랑
#9. <황금 시대 L'Age d'or> (1930) / 감독: 루이 브뉴엘  
#10. <장군 The General> (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11. <잔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 (1928) / 감독: 칼 데어도어 드레이어
#12. <대지 Zemlya> (1930) / 감독: 알렉산드르 도브첸코
#13. (1931) / 감독: 프리츠 랑
#14.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 (1936) / 감독: 찰리 채플린
#15. <올림피아 Olympia>(1938) / 감독: 레니 뤼펜쉬탈
#16. <커다란 환상 La Grande Illusion>(1937) / 감독: 장 르누아르
#17. <게임의 규칙 La R gie du jeu>(1939) / 감독: 장 르누아르
#18. <판타지아 Fantasia>(1940) / 제작: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19. <시민 케인 Citizen Kane>(1941) / 감독: 오손 웰즈
#20. <폭군 이반 Ivan the Terrible>(1944/1946) / 감독: 세르게이 에이쩬슈테인
#21.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1941) / 감독: 존 휴스톤
#22. <인생유전 Les Enfants du Paradis>(1945) / 감독: 마르셀 까르네
#23. <무방비 도시 Roma, Citt  Aperta>(1945) /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24. <품행 제로 Zero de Conduite>(1933) / 감독: 장 비고
#25. <파이자 Paisa>(1946) /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26.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1947) /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27. <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1948) /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28. <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1949) / 감독: 캐롤 리드
#29. <라쇼몬 羅生門>(1950) /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
#30.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1952) / 감독: 진 켈리·스탠리 도넌
#31. <오하루의 일생 西鶴一代女>(1952) / 감독: 미조구찌 겐지
#32. <도쿄 이야기 東京物語>(1953) / 감독: 오즈 야스지로
#33.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1954) /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
#34. <길 La Strada>(1954) /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35. <바람에 쓰다 Written on the Wind>(1956) / 감독: 더글라스 서크
#36. <추적자 The Searchers>(1956) / 감독: 존 포드
#37. <파테르 판챨리 Pather Panchali>(1956) / 감독: 쇼티아지트 레이
#38. <제7의 봉인 Det Sjunde Inseglet>(1957) / 감독: 잉마르 베리만
#39. <현기증 vertigo>(1958) /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40.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41. <재와 다이아몬드 Popiol i Diamont>(1958) / 감독: 안제이 바이다
#42. <오발탄>(1961) / 감독: 유현목
#43. <히로시마 내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 감독: 알랭 레네
#44. <정사 L'Avventura>(1961) /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45. <네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1959) / 감독: 장 뤽 고다르
#46. <쥘과 짐 Jules et Jim>(1961) /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
#47. <8과 2분의 1 Otto E Mezzo>(1963) /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48.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Teni Zabytykh Predkov>(1964) / 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49. <알제리 전투 La Battaglia di Algeri>(1965) /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50. <무셰트 Mouchette>(1967) / 감독: 로베르 브레송
#51. <페르소나 Persona>(1966) / 감독: 잉마르 베리만
#52. <적과 백 Csillagosok, Katon k>(1967) / 감독: 미클로슈 얀초
#53.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1967) / 감독: 아더 펜
#54. <저개발의 기억 Memorias del Subdesarrolo>(1968) / 감독: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55. <만다비>(1968) / 감독: 우스만 셈벤
#56. <만약에... If...>(1968) / 감독: 린제이 앤더슨
#57.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essey>(1968) / 감독: 스탠리 큐브릭
#58. <루시아 Lucia>(1969) / 감독: 움베르토 솔라스
#59. <죽음의 안토니오 Antonio-das-Mortes: O Prag o da Maldade Contra o Santo
#60. <콘돌의 피 Yawar Mallku>(1969) / 감독: 호르헤 산히네스
#61. <순응주의자 Il Conformasta>(1970) /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62. <이지 라이더 Easy Rider>(1969) / 감독: 데니스 호퍼
#63. <떼오레마 Teorema>(1970) /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64. <대부1·2·3 The Godfather partⅠ,Ⅱ,Ⅲ>(1972∼1990) /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65. <아기레,신의 분노 Aquirre, der Zorn Gottes>(1972) / 감독: 베르너 헤어쪼그
#66. <내슈빌 Nashville>(1975) / 감독: 로버트 앨트먼
#67. <길의 왕 Im Lauf der Zeit>(1976) / 감독: 빔 벤더스
#68. <칠레전투 Batalla de Chile>(1975) / 감독: 파트리시오 구즈만
#69.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1976) / 감독: 마틴 스콜세지
#70. <애니 홀 Annie Hall>(1977) / 감독: 우디 앨런
#71. <파드레 파드로네 Padre Padrone>(1977)/ 감독: 비토리오 따비아니 & 빠올로 따비아니
#72.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1979) /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73. <이레이저 헤드 Eraserhead>(1978) / 감독: 데이비드 린치
#74.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Die Ehe der Maria Braun>(1979)/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쓰빈더
#75. <양철북 Die Blechtrommel>(1979) / 감독: 폴커 슐렌도르프
#76. <성난 황소 Raging Bull>(1980) / 감독: 마틴 스콜세지
#77. <메피스토 Mephisto>(1980) / 감독: 이슈트반 자보
#78. <욜 Yol>(1982) / 감독: 일마즈 귀니
#79.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 / 감독: 리들리 스코트
#80. <향수 Sacrifice>(1983) /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81. <황토지 黃土地>(1984) / 감독: 첸 카이거
#82.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1984) / 감독: 짐 자무쉬
#83. <마기노 마을의 이야기>(1985) / 감독: 오가와 신스케
#84. <녹색광선 Le Rayon Vert>(1986) / 감독: 에릭 로메르
#85. <메이트원 Matewan>(1987) / 감독: 존 세일즈
#86. <붉은 수수밭 紅高粱>(1988) / 감독: 장 이모우
#87.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1989) / 감독: 스파이크 리
#88. <비정성시 悲情城市>(1989) / 감독: 허우 샤오시엔
#89. <십계 Dekalog>(1989> / 감독: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90.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 감독: 배용균
#91. <안개 속의 풍경 Topio stin Omichli>(1989) /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92. <바톤 핑크 Barton Fink>(1991) / 감독: 조엘 코엔
#93.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Zendegi Edame Darad>(1992)/ 감독: 압바스 키아슬로타미
#94. <올란도 Orlando>(1992) / 감독: 샐리 포터
#95. <패왕별희 覇王別姬>(1993) / 감독: 첸 카이게
#96. <서편제>(1993) / 감독: 임권택
#97. <피아노 The Piano>(1994) / 감독: 제인 캠피온
#98.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1993)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99. <스모크 Smoke>(1995) / 감독: 웨인 왕
#100.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1995) /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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