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빛을 향하다_<밀양 Secret sunshine>|

미갱님의 [밀양 Secret sunshine] 에 관련된 글.

스포일러성 짙으요^^

 

밀양, 비밀의 빛.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다.
그 빛을 향해 달리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감독은 첨부터 밀양의 의미를 던져준다.
하지만 송강호가 연기하는 종찬의 답변이 더 걸작이다.

"우리가 무슨 뜻보고 삽니까? 그냥 사는거지예"

 

인생은 그렇다.
희노애락이 모두 인생안에 있다. 무엇이든간에 그냥 살아가야만 하는거다. 멈출수 없으므로...

 

 

 

 

 

 

신애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권력의 생리를 잘아는 인간형이었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속물처럼 구는 종찬에게는 쓴소리를 내뱉는다.
하지만 그녀또한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우습게 보지않게 하기위해서 거짓으로 돈많은 부자인양 행세했던 것을보면말이다.

 

큰 고통을 겪은 그녀지만 그녀는 자신의 고통이 드러나지 않고 새롭게 살아가길 원한다.
그녀의 바램은 너무나 큰 희망이었던 걸까?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와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지만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소도시에서 프라이버시는 별로 허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어느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밀양의 주변인들은 새로 이사온 외지인인 그녀를 안쓰러워하며 동정의 손길을 뻗친다.
동정이 아닌 인간적 관심이기도 했겠지만 그녀는 그걸 원치 않는다.

동정받지 않고 더 강하게 보이기 위해 아니 공동체안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확립하기 위해 그녀는 거짓말을 선택한다.
그녀의 거짓말은 그녀를 향해 부메랑이 되어 꽂힌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학원장과 경찰서에서 대면하는 순간 움찔하는건
그녀의 양심이었을 것이다.
찢어죽여도 시원치않을 살인범에게 욕을 퍼부었어야 하는데
그녀는 양심때문에 망설였던 자신을 꾸짓는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울지도 못한다.
그녀의 고통은 울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가.
넋나간 신애의 모습을 보면 통곡하며 우시는 할머니보다 더 처절해보인다.
그런 마음을 종찬은 잘알고 이해해주었다.

 

 

 


극중 종찬의 역할은 정말 눈물날정도로 아름답다.
이런 사랑이 또 어디있을까싶다.
이창동감독이 송강호라는 배우를 쓴데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듯하다.
외모나 표현방식에는 신애라는 여자가 거들떠보지도 않을만큼 볼품없지만
그의 진심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한다.
사랑에도 이기심과 현실적 계산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 종찬이라는
남성은 그 모든걸 극복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것으로 보인다.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아니더라도 눈물나게 찡한 사랑임에는
틀림없다.

 

 

 

 


신의 존재에 대한 무거운 주제가 도사리고 있는 영화이지만
영화는 그렇다고 종교에 맹신한다거나 신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을만큼의 거리를 두고 접근한다.


신애는 고통에 못이겨 어쩔수 없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아 장례식에서 울지못한
울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그녀스스로도 생각지 못한 신의 평안함을 그곳에서
느끼게 된다. 이후부터 그녀는 사람들에게 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마음의 행복을 찾았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정말 그녀는 고통을 버리고 행복을 맞보았을까?
혼자서서 게걸스럽게 점심을 해치우는 모습이나 아들의 환영을 보는 듯한
그녀의 모습은 제정신이 아닌듯해보인다.
살인자에 대한 용서로 인해 신애는 구원을 얻고자 한다.

얼마전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소설가와 교수일행에 대한 다큐를 보았다.
소설가 박범신은 히말라야를 찾는 이유가 자기안의 신을 찾기위해서라고 했다.
신은 자신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애는 알지만 그것이 살인자의
마음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미쳐 인지하지 못한것이다.
 
신은 불공평했다?

피해자인 자신은 아직도 불행하고 괴로운데 가해자인
원장은 신에게 먼저 용서를 받고 더없이 행복해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것. 그녀는 그런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보다 악인을 먼저 용서한 신을,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악인에게 먼저 용서해버린 신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그녀에겐 원망의 대상이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에게서
그를 용서해버린 신에게로 전이되었던 것이다.

신애는 신을 향해 "네가 틀렸다"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전두환같은 인물이 아직도 멀쩡히 잘먹고 잘살며 멀쩡하게 후세를 거느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볼때 세상은 항상 정의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듯이....

그녀에게 신은 불공평한 존재였다.

 

가해자에 대한 용서는 살아가는 것만큼 어렵다.
고통을 견디지못해 자신을 자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을 붙잡는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에게 돌팔매를 던지기도 하고
신의 구원을 끊임없이 부정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허물없이 드러내고야 만다.
"살려주세요. 제발..."

 

 

 


타인(가해자)에 의해 어긋난 머리카락을 신애 스스로 자르며 길이를 맞출수 있도록
올곧게 거울을 잡아주는 종찬의 모습을 뒤로한체 카메라는
빛의 한조각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빛을 향했던 그녀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종찬이라는 인물이 있어 그녀는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찬은 그녀가 자신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두발짝 뒤에서 항상
그녀를 떠받치고 있을 것같다. 고장난 차를 고치듯 신애의 마음도 새롭게 해줄수 있을까?
그녀는 사랑으로부터 빛을 찾을까?

카메라의 처음시작은 하늘에서, 마지막은 땅에서 시선을 멈춘다.
진실은 변함없으나
인간이 바라보는 곳에 따라 천국이 될수도 지옥이 될수도 있다는 의미일까?

 


그냥 잡생각?
이창동감독에게 음악은 멜로디로 이해되기보다는 가사로 이해하는 듯하다.
목사의 강연을 배경으로 흐르는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사나
종찬의 맘을 비웃듯이 읊조리는 신애의 노래가사들을 통한 의미전달을
하는 것을 보면말이다^^
"그져~바라만 보고있지~ 그져~눈치만 보고 있지~"

잼나는건 노래방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놀이문화중 대중이 가장 쉽고 잼나게 접근가능한 것이 노래방문화라는
것일까?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중 마이크잡고 꽥꽥 소리치며 신나게
몸을 흔들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의 공간이 노래방이라고 이창동감독은
얘기하는 것같다. 아니 오히려 그곳이 구원의 방인가? ^^;;



 



비밀의 빛. 즉 "삶의 희망"과 "용서의 공간"으로의 의미

바람피는 남편이었지만 그가 태어난 곳이며 살아생전 내려와 터전을 잡고싶어했던 남편의

고향. 밀양. 남편의 바램을 스스로 지켜주기위해 선택한 공간이었고 또한 아무도 자신을

알지못하는 새로운 희망으로서의 공간이 바로 밀양이었던 것이다.

밀양에 내려와 살아간다는 것은 남편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그녀의 자그마한 배려가

아닐까? 

"Secet Sunshine" 영문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밀양이라는 공간적 배경보다는 제목이 주는
의미때문이 더큰 것같다.
밀양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의미는 없는듯하다.

소도시가 지니는 특징을 살리는 공간이라면 굳이 밀양이 아니어도 되었을 것같으니 말이다.

"밀양이 우짜다 이렇게 되었노"

라는 대사가 의미하듯이 한국전반에 퍼져있는 팍팍하고 잔인한 사회현상들.

그건 한국사회 어디에서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전방위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이창동감독 자체가 화면의 유려함보다는 치장을 뺀 단백함을
보여주는 미장센을 즐겨하는 감독이라 그런것도 있겠지만

한국의 소도시의 외양은 어딜가나 비슷하게 밋밋하고 맛이 없는 것같다.

네모나고 건조한 시멘트건물이나 다닥다닥 붙어 무자비하게 화려하고 크기만 한 간판이랄지,

아름드리 나무하나없이 삭막하기만 한 강변의 주변풍광들...밀양이 아니라
한국의 소도시 풍경은 대부분 엇비슷해인다.
도시구조를 계획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개발하는데만 급급한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고나 할까.

이것도 모두 먹고살기 바쁜 개발위주의 정책을 펼치신 박정희 시대의 산물이라고
해야하지 않을런지..요즘엔 어딜가나 아파트뿐이다. 고향인 안동에도 내려가보면 아파트밖에
보이지 않는다.
몇해전 후배가 외국인 남친과 지방으로 내려가던 길에 남친이 산에 버젓이 들어선 아파트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길 들었었다.
산을 깎아 삐죽삐죽 네모나게 볼품없이 올라선 아파트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끼는건
외국인뿐이 아니길 빈다.

소도시에도 환경친화적이면서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노력을 보고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