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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6
    노무현의 죽음에 비친 ‘진보본색’
    PP

노무현의 죽음에 비친 ‘진보본색’

끝없는 애도, 노무현 신드롬
노무현의 죽음은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사회는 마치 노무현 생전과 생후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회가 되는 듯한 현상을 보였다. 상중에 벌어진 북의 2차 핵실험조차도 삼켜버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으며 500만에 가까운 사람이 직접 애도를 표하러 나설 만큼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는 애도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하겠다. 
국민장 기간 동안 보수진영도 일부 극우 인사를 제외하고는 노무현 추모 대열에 동참했다. 오히려 그 와중에 추모 자격 문제에 부딪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노무현이 죽음에 이르게 된 데에 대한 부채가 있으며 그 원망의 화살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서지 못하고 있는 진보진영
문제는 진보진영이 보인 태도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이 보인 전전긍긍과는 정 반대로 조금 심하게 말하면 의기양양 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민주당이 노무현의 상주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진보진영마저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려는 심정과 같은 정서를 드러냈다. 진보진영에서도 노무현은 ‘서민’, ‘탈 권위’,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으며 진보의 아이콘으로 격상되었다. 물론 몇 가지 작은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과는 구별해야 한다거나,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과 그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거나, 노무현의 죽음을 미화하는 것과 노무현이 남긴 과제를 성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등이 그것이다.
적어도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 또는 노동자 정치의 핵심 과제는 기존 보수 정치 또는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된 독자의 영역과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등장함으로써 형식적 독립은 이루었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 세력의 이중대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진보진영은 지난 10년 동안 자유주의 세력의 대체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진보진영은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자유주의 세력에 기대고 있는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대중의 뒤꽁무니만 따를 것인가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진보진영은 독자적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의 뒤꽁무니를 따랐을 뿐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탄핵 반대의 동력을 노동자 민중정치로 안내하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 ‘촛불 정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었다. 진보진영은 ‘촛불 대중’을 지지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넘어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도력을 획득하는 데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만들어 낸 정치 공간 속에서 진보정치는 자신의 한계, 즉 본색을 또 다시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용산대참사라는 노무현의 죽음과는 또 다른 사건이 그 훨씬 전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이를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용산대참사 초기에 보여준 노동자 민중의 분노는 결코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는 열기에 비해 덜했다고 할 수 없다. 진보진영은 그 즉시 왜 전국에 분향소를 차리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라면 용산대참사가 벌어진 당시에 대중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던가. 울산 북구에서의 선거 승리는 도대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가. 노무현의 죽음이 일으킨 정치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제도 정치권의 구역질나는 위선을 탓하기에 앞서 진보진영, 진보정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고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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