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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83.

운동회

 

 

 

[위가 좋을까 아래가 좋을까.mp3 (2.18 MB) 다운받기]

 

 

 

 

  언제부터인가 각종 행사에 이벤트 업체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네 동네에서는 80년대 후반 이벤트 업체들이 생겨났고 90년대 들어서부터는 크고 작은 학교 행사 진행을 업체에 맡기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전에는 학교서 무슨무슨 행사를 해도 입담좋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사회를 보고 이런저런 놀 궁리를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놀이와 웃음까지도 업체에 맡겨서 지시하는대로 정해진 순서와 시간에 웃어야하는 일은 마치 테레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과 흡사합니다. 

 

  오늘 운동회 날이라 어제 모든 선생님들이 나와서 만국기도 달고 천막도 치고 운동장 흰색선도 새로 그었습니다.  만국기는 친구들 신나라고 너무 높지 않게 몇번이고 고쳐달았고 뛰다가 어디 부딪치지 않도록 운동장 울타리를 멀찌감치 밀어냈습니다.  천막이 날아가지 않도록 물을 가득담음 말통을 하나씩 붙들어 메놨습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오늘 올까요?'  '글쎄다...'  1학년 복도를 지나는데 걱정어린 쑤근거림이 들려왔습니다.   청군백군 점수판 옆 본부석 천막에는 이벤트회사 음향장비가 차려졌고 커다란 앰프가 운동장 양 옆으로 설치되었습니다. 

 

  "깃발이 춤을 춘다 우리머리 위에서~~~   달린다 넓은바닥 푸른하늘 마시며~~~ 우리편아 잘해라~~~  저쪽편도 잘해라~~~  우리는 다 같은 ㅇㅇ학교 어린이!!!"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애국가를 제창한 다음 교장선생님 말씀을 잠시 듣고는 흘러간? 가요에 맞춰 체조를 하고.. 운동회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세대를 이어 한 40여년 넘게 부르는 노래입니다.  노래가 끝나고는 곧바로  이벤트 회사 사회자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저렇게 운동회 놀이들이 두어시간 진행되었습니다. 아저씨때처럼 오재미를 던져 박을 터트리는 놀이도 없었고 줄다리기도 없었습니다. 조각판을 펼쳐놓고 뒤집는가하면 네모난 블럭을 돌려가며 뛰어가서 쌓고 오거나 낙하산? 같은 것을 메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학년별 계주를 끝으로 청군이 이겼습니다. 

 

  학교주변엔 이벤트회사서 나눠준 박수치는 풍선막대기와 일부 학부모님들이 버린 백다방 냉커피 껍데기와 물병이 나뒹굴었습니다.   히잡쓰신 학부모님은 운동회가 다 끝나고 친구를 데리러 오셨고 그리 많은 부모님들이 오시진 않았습니다.  예전같이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노동절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5월1일날 운동회를 했었더라면 오늘보다 더 많이 오셨을까요?  그래도 교장선생님이 집회를 참석하시거나 하루 쉬시도록? 노동절을 피해서 운동회를 계획하신 것 만으로도 대단하신 분이라 여겨집니다. 

 

  친구들이 신나게 뛰고 놀면서 아무도 다친 사람없이 운동회는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고 혼자서 집에간 친구들도 있었죠.  정문앞엔 달고나 솜사탕 아저씨가 계셨는데..  이런 조그만 핵교에 운동회날인지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넙적한 사탕모양의 달고는 4000원.  아저씨 핵교다닐때는 숟가락에 방개를 놓고 물속에 넣으면 방개가 해엄쳐간 숫자의 경품을 받는 뽑기 아저씨도 오셨었습니다.  운동회가 끝나면 모이셨던 아저씨, 아주머니가 싸우는 일도 종종 있었죠.  흔하게 잡아 장이나 국에 넣어먹고 튀겨먹기도 했던 방개가 요즘은 농약에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친구들~~~  운동회에 이벤트 업체를 부르는 것은 잘못된거라 아저씨는 생각해요.  왜냐면 잘하던 못하던 우리끼리 궁리해서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찰흑으로 가족 인형을 만들었는데..  번듯한 인형만이 잘했다고 칭찬하고 비뚤비뚤 내가 만든 가족인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면박주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친구들이 표현한 모든 것은 다 나만의 방식이고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표현입니다.  왜 다 번듯함을 지향해야하나요? 

 

  친구들이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나중에는 이벤트 업체가 없으면 어떠한 행사도 진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돈에 의존하는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마트폰 없이 친구들과 잼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어요.  운동장에 땅따먹기를 할수 있고 팔방, 삽치기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최소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친구와 친구들과의 관계에는 돈이 끼여들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돈에 종속되지 않고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됩니다.  이건 세상이 변하건 AI가 나오건 수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가치입니다. 

   

  우리는 돈이면 최고인 세상에 살고 있어요.  아저씨는 이런 세상은 오래가지 못할거라 생각합니다.  모처럼 친구들이 오늘 운동장을 신나게 뛰어다닌 것 같이 찾아보면 많은 재미난 놀 것들이 있어요. 친구들도 아마 스마트폰 디다보는 것보다 그런걸 더 좋아할겁니다.  음..  참고로 핵교 근처에 냇가있죠?  거기 잉어가족이 살고..   자라 아저씨가 살고 계시고..  가끔씩 밤중에 수달아저씨가 지나다닙니다.   뱀아저씨도 가끔 지나다니는데..  먼저 건딜지 않으면 물지 않으니 뱀아저씨는 건딜지 마시고 조심하세요.

 

   친구들~~ 우리 정신줄 놓지 말아요.   화이팅~~~

 

 

 

ps.  언제부터인가 시위를 한다면 번듯하게 광고업체에 피켓을 맞추는게 대부분이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스케치북이나 하얀 천에 직접 적는 일이 요즘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내 주장도 돈에 종속시켜버리면 결국 우리는 돈없으면 아무 주장도 소리도 못내는 바보가 되어버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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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82.

작사의 중요성

 

 

 

[관계.mp3 (6.34 MB) 다운받기]

 

 

 

  퇴근후 도서관 가기전 얼큰 순대국밥과 깍두기를 먹고 있는데 조용히 흘러나왔던 노래. 

 

  작사의 중요성을 일깨워 줌.

 

비오는 날, 멜라니 사프카 노래를 연상시키는 훌륭한 곡,편곡,노래지만 작사는 좀...

 

  대중적이며 선이 굵고 분명한 이 곡은 군악대에서 연주할만한 추모곡으로 손색이 없다.   트럼펫이나 섹소폰으로 연주하거나 비트가 강한 락으로 연주하면 곡의 진가가 발휘뒬 듯.   

 

  다음 연습곡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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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상회

 

 

 

  명희.  본명은 ㄱ상회. 아마도 ㄱㄱ상회, ㄴㄴ상회..  이런 간판에서 보고 붙인 이름이지 않았을까 싶다.  주성이발관에서 ㄱ형님을 부르는 이름은 명희였다.  

  "얘.. 명희야 머리감켜 드려라..  얘 명희야 수건 걷어라. 얘 명희야 커피 한 잔 타라"

 

  머리를 감겨주는 의자에 앉으면 누구나 다 타이루를 붙여놓은 세면대로 90도 가까이 머리를 숙여야한다. 그러면 명희형님은 조그만 회색 물조루에 물을 가득 길어와 머리에 뿌리고는 비누칠을 해서 머리를 감겨주셨다.  머리를 감겨주실때는 늘상 문지르는 부분이 따로 있었고 박박 문지르는 통에 얼얼함을 느낄때즈음이면 머리감는 일은 끝났다.  그리고는 옆세면대에 세수물을 조루에 길러 담아주셨다.   세수를 하고 있으면 주머니에 수건을 쿡 찔러주셨다.  주머니가 없는 추리닝 같은 걸 입고간적이 없어서 바지주머니가 없을때는 분홍색에 흰보풀이 점점이 박혔던 수건을 어떻게 건네주시는지 알지 못한다.

 

  명희형님에게는 형과 여동생이 있다.  어려서 성광여인숙 골목에 살적에 동네 한참 형이지만 약간 지능이 떨어져 학교에 늦게 들어가셨다.  골목서 바보같다고 놀려도 명희형님은 늘상 웃기만 하셨다. 수줍은 듯 손톱을 자주 만지셨다.  동네에서 보던 그 형이 어떻게 주성이발관에서 일하게 되셨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성광여인숙 골목에는 가끔식 술취한 아저씨아주머니들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성이발관은 처음에 주성국민학교 안에 있었다.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전해듣기로 교장선생님이 제소자 교육에 관심이 있으셔서 감방에서 머리깍는 기술을 배운 제소자에게 새로운 삶의 살아가도록 국민학교 안 화단옆에 이발관을 지으셨다고 한다.  머리를 깍아주는 이발사님들은 모두 감옥에서 머리깍는 기술을 배우셨던 분들이셨다. 어려서 머리깍을때는 키가 작아 의자에 판자를 얹어 주시면 그위에 앉아 머리를 깍았다. 조금 커서는 머리깍다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면 한소리를 듣곤 했다.  내가 이발소라는 곳을 가게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때가 처음으로 기억한다.  그 이전에는 누나가 보자기 망도를 씌우고 가위나 삼각형 모양의 머리면도기?로 바가지 머리를 깍아주었다.

 

  주성이발관에서는 깍으려는 머리는 스포스 머리나 상고 머리 2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머리를 깍기전에 '스포스요..'  아니면 '상고머리요..' 하면 이발사님들이 머리를 깍기 시작했다. 명희 형님은 언제나 스포스 머리를 하시고 머리를 감겨주셨었다.

 

  주성이발관에 가면 거울옆 진열장들에는 오백원짜리 지폐나 오래전 지폐들이 붙어있었고 맨위에는 돌맹이들이 진열되어있었다.  겨울에는 연탄난로에 들통이 하나 올려져 있었고 드라이기는 은빛나는 동그란 입구가 달린 드라이기가 있었다.   머리를 깜고나면 주머니에 걸쳐진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옆에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빗을 빗고 나면 초록색 물향수?가 담긴 매캐한 화장품을 한번 발랐다.  가끔씩 다방 아주머니가 커피배달을 오시기도 하셨다.  이발소 벽에는 이발사님들의 각종 선행으로 받은 표창장들이 걸려있었고 경찰과 무슨무슨 협약?을 맺었다는 위촉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는  주성이발관 근처 대형마트서 일했었고 10년전 이발소 근처서 명희형님을 만났다.

  "어...?"

  "안녕하세요?"

  "응.. 그려.  ...  워티기 왜 요즘 안와?"

  "저짝 동네로 이사가서 그렇게 됐네유. 워디 가시는거예유?"

  "잘 계시쥬?"

  "그려..  여기 사장님 돌아가셨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어."

  "예..  근디 동생분도 계시지 않으셨어요?

  "으응..  시집가서 애덜낳고 잘살고 있어. 애들 이쁘지.  잘살어."

  "근데 워디 가시는 거여유?"

  "으응..  이거 신난거 테이프 사러가는겨.  신나는 노래 나오는 테이프"

  "예.."

  "아이구..  반갑네.  머리깍으러와."

  "예.. "

 

 

  10년후 다시 주성이발관을 찾았다.  이발소가 없어졌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평화약국, 평화아파트 옆으로 옮겼다.  명희형님을 보고 싶은 급한 마음에 발길을 부랴부랴 돌렸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명희형님은 없고 명희 형님의 형님이 계시다.  머리를 다 깍고 이발사님께 명희형님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구..  명희를 아시네.  명희 허리아파서 일 못허고 그냥 집에서 있어.  오늘도 답답하니 계속 전화오고 그래쥬. 워티기 전화번호 알려줄까?"

  "아..  아닙니다.  얼굴뵈면 아실텐데.  전화까지는 좀...  명희형님과 어려서 골목서 함께 지냈었는데.  성광여인숙 골목, 쌀가게 뒷집서 살았었어요.  근데 명희형님 진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ㄱ상회여 ㄱ상회.  명희가 지금 64세여. 엄마가 엄청 똑똑했어지."

  "전에 같이 일하셨던 분들은 다 어디로 가셨어요?"

  "반은 죽고.. 다 죽었어.  다 죽고 나만 살었지. 살아서 재랑 둘이 운영하는거여."

  "이발소가 60년은 넘었으니 당연한거쥬 뭐."

  "그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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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 개인정보 유감2

[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준 공부법] 졸업앨범 개인정보 유감2

 

 

 

[한영애 - 여울목.mp3 (3.88 MB) 다운받기]

 

 

 

  어제는 연가를 내서 치과가서 이빨을 두어개 때우고 피부과 가서 염증 항생제 주사를 맞고 5일치 약을 타왔습니다.

 

  회사에서 내밀어 받으려는 모든 동의서류는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서류입니다. (예전에 우리 위원장님께 교육받았던 내용입니다.)  회사에 이익한 서류라면 굳이 애써 회사가 노동자에게 싸인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내미는 서류 대부분은 '야..  니가 동의했으니까 잔말하지마' 등등의 민법상 방어권을 획득하기 위한 술수일 뿐입니다.  물론 지금의 노동조건보다 더 못되게 싸인을 받아갔다면 그건 불법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만.. 우리들 살아가며 격는 많은 일들은 대부분 민법에 해당하고 민법은 당사자만 동의하면 왠만한 건 모두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 갑의 입장에서는 말같잖은 동의를 받으려 부단히 애를 씁니다. 

 

  그러면 친구들~~  학교에서 내미는 각종 동의서류들은 친구들에게 유익한 서류들일까요?  아저씨가 볼땐 마찬가지로 아닙니다.  친구들이 코를 흘리며 핵교에 처음들어가면 보호자에게 받는 동의서류가 CCTV  관련하여 나는 촬영당해도 괜찬어유. 하는 동의서입니다. 친구들이 머가 아쉬워서 CCTV 촬영 개인정보에 동의를 해줄까요?  그 외에도 학교를 다니려면 수없는 동의서에 싸인을 해야합니다.  급식동의서의 경우는 급식하다 문제생기도 잔말마라인샘인 것이죠.   그리고는 마지막 졸업할때가 되면 졸업앨범 촬영 동의서에 졸업앨범 사진을 찍어 배포시까지 나는 내 초상권에 동의한다는 마지막 동의서를 쓰고는 학교를 졸업을 하게됩니다. 

 

   학교서 내미는 CCTV 동의서는 학교서 먼가 일이 벌어져서 CCTV를 법적인 증거로 활용할때 친ㄴ구들 모습을 제공하는데 군말없고 토를 달지 않겠다는 초상권 포기 각서입니다.  친구들이 쓰지 않겠다면..  갑갑한건 학교, 학교장입니다. 왜냐면 학교장은 학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에대해 '방어'를 해야하는데 방어를 위한 주된 도구 중의 하나가 CCTV  영상이기 때문이예요.  전화 녹취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요즘 학교에 전화하면 녹음되고 있으니 그게 싫으면 전화끊으세요라는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녹음을 해서 이득이 되는 건 친구들이 아니고 학교, 더 정확하게 학교장입니다.

 

  학교서 내미는 졸업앨범 촬영동의서는요.  졸업앨범이 범죄에 악용될 것을 걱정한 일부 젊은 여교사들에게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를 내리고 싶은데..  교육청서 방법을 찾은게 모두에게 동의서를 받아라 입니다. 사유는 초상권이 개인정보가 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위하여. 풋훗.  최소한 학생을 볼모로해서 자신들의 행태를 합리화하는 작태에대해서 양식있는 선생님들은 경종을 울려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본 바로는 그런 선생님은 학교에 계시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졸업앨범 동의서도 결국엔 피해본 선생님들이 학교장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학교장을 보호하기위해, 학교장에게 방어권을 보장하기위한 방편인 것입니다. 

 

  그럼 어쩌냐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범죄는 범죄로써 응징을 해야하지 하나의 범죄로 인해 모둔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다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 사진이 음란물에 이용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는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범죄를 보며 모든 상황을 동일시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정말로 나는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으면 한다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졸업앨범 사진거부 사유서를 쓰고 사진을 찍지 않으면 그만이지 나머지 모든 구성원들에게 졸업앨범 촬영 동의서를 받게하는 것은, 엄청난 행정력 낭비와 학교에 대한 친구들과의 신뢰에 방어권이란 법적 잦대를 들이대며 서로 관행으로 이어져온 신뢰를 난도질하는 행위입니다.  여성 선생님이라고 아주 대놓고 뭔가 맞겨놓은 물건 찾으러 왔다는 듯 졸업앨범 동의서가 뭐 어쨌길래 하는 태도는 가관입니다.  그럼 학생들과 남성 교직원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라는 얘깁니까?  

 

  관리자와 상의했다며 담당 젊은 선생님께서 오늘까지 개인정보 동의서 안쓸거면 졸업앨범 사진찍지말라는 통보를 짧게 하셨습니다.  저는 예전 같으면 동의서 안쓰고 사진찍으러가서 몸싸움하고 아수라장을 만들었을텐데..  그러면 친구들에게도 안되는 일이니까 냉큼 동의서를 찾아서 작성해 제출하라는 곳으로 제출하였습니다.   평소 착한 젊은 선생님이었지만 스스로도 꼰대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강제하는 건 무리가 있는거 아니냐는 답변으로 안쓸거면 사진찍지말라고 관리자랑 상의했다는데..  더이상 제가 할말은 없었습니다.  젊은 선생님께서 얘기하신 동의서 받으라는 교육청 공문은 안내사항일뿐 강제사항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장에게 먼가 불이익한 일이 돌아올까 안달난 학교선생님들이 문제였죠.

 

  그 젊은 교사가 나중에 제가 불편하게 느꼈던 지점을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렇지 않을거라는 느낌이 더 큼닙니다.   앞으로 10년후에는 이런 교사가 학교 주축일텐데..  지금같다면 학교는 더욱 암담할 것 입니다.  그냥 학원보내고 말지요.

 

  친구들..  학교 참 좆같죠?  이런 좆같은 현실을 타개하는 방식은 투쟁밖에 없습니다.  그거 아니라고 온몸을 부딪히는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지금 친구들이 누리는 혜택이 이어지는 것이예요.  누군가의 피와 땀의 댓가로 친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숨쉬 듯 공기를 흡입하고 있는거지만..  친구들이 누리는 모든 것은 사실 먼저 살아가신 누군가의 피와 땀이 섞여있는 결과물들입니다.   선생님들이 내미시는 서류는 다 좋은 것인줄 알았지요? 근데 졸업앨범 사진이 뭐라고 동의서 안쓰면 찍지도 말라내요. 헐.

 

  이렇게 뭔가 권위에 흠집을 내면 나쁜놈으로 몰리는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친구들도 이런 권위에 흠집내고 어.. 그거 아닌데요? 하는 목소리도 많이 내면 학교나 사회가 경직되지 않고 지금보다는 좋아질 거예요.  친구들 어.. 그거 아닌데요? 하실 수 있겠어요? 당장은 심들테지만..  나에게 솔직하려면 필요하답니다.  심들지만요.  

 

   영혼없는 일부 선생님들과 함께 벌어먹으려니 이들을 대할때는 저도 영혼 없이 일해야겠습니다.

 

   친구들 화이팅~~~   아저씨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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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 개인정보 유감

 

 

 

[향기품은 군사우편.mp3 (5.54 MB) 다운받기]

 

 

 

  지지난주 아저씨가 냉이를 캐러갔다가 밤까시 비슷한 갈쿠리모양의 조그만 침이 왼쪽 엄지손가락에 두세개가 백혔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뽑아내고 냉이를 캤는데 자고 인나니 왼손 엄지손가락이 절이며 점점 아파오고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이 탈피한 독침? 이 아닐까 싶은데..  왼손 엄지가 했던일이 무척이나 많았음을 절감하고 있어요. 짐승처럼 끙끙 앓다가 나을 작심입니다.

 

  오늘 졸업앨범 담당선생님께서 앨범사진 찍을 예정이니 개인정보 중에 초상권 사용에 대한 동의서가 교무실에 있으니 싸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전 학교에서는 찍어도 졸업앨범에 안실리는 경우때문에 잠시 투쟁을 했었지만..  졸업앨범 담당선생님으로부터 갑자기 이런 메신저를 받고는 갑자기 피곤이 마구마구 밀려와서 답장드렸습니다. 

 

  "...  저는 졸업앨범을 공무수행의 연장으로 여기고 있으며...  학생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졸업앨범에 제 사진이 실리는 것을 개인정보라 여기지 않습니다.  학생들 같이 졸업앨범에 대해서는 동의도 거부도 하지 않겠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 ...  교육청서 교직원들 동의 받고 졸업앨범 찍으라해서 요청드린 거구요... "

 

  " 그럼..  동의하지 않으면 저처럼 졸업앨범 찍는걸 당연히 여기는 사람도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몇년전 교육청 법무행정시스템 ㅇㅇ게시판 17번째 게시글에 저도 문의를 해봤었는데.. 학교장 재량이라는 답변을 받았었습니다. 

  물론 찍기 싫어하는 선생님들이 계신고 그런분께는 이런 절차가 필요할테지만 저 같이 찍겠다는 사람에게도 동의를 강요하시는 것은 무리가 있다 생각합니다.  졸업앨범에 대해 뭐 이렇게 법적인 동의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런 경험을 해본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불쾌하게 느껴집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

 

  

 

  그냥 알겠습니다. 동의.  했으면 됐었는데..  평소 착하신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 죄송합니다.  

 

  2006년경 집회현장에 가면 늘상 채증하는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지는데요.. 경찰이 같이 촬영한다고 머라할때 우리 위원장님이 하는 얘기는 "공무를 수행중인 공무원에게 초상권은 없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인터넷을 다시 검색해보니 팩트체크니 뭐니 많이들 글이 나오는데요.  종합해보면 상황에 따라 헌법이 보장한 초상권을 공무원들에게 적용하기도 안하기도 하고 한다고 나옵니다.

 요약해보면 헌법이 보장한 가치는 공무를 수행 중인 공무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나..   수행중인 공무가 합법집회를 방해하는 행위 등과 같이 위법성을 가질 경우 초상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헌법이 보장한 공무원들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요.

 

 

  졸업앨범 사진은 초상권을 인정해야할까요?  하지 말아야할까요?  초상권으로 인정한다면 왜 학생들에게는 동의서를 받지 않는걸까요?   졸업앨범에 얼굴을 공개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단지 벌어먹는 직장인일뿐 삶을 함께하는 선생님으로서 가져야할 태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졸업앨범까지 이런저런 것을 따지고 동의하고 해야하는 자체가 피곤합니다.  이러다 숨쉬는거, 잠자는거, 먹고 싸는거 까지 동의를 해줘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 몇년전부터 범죄자를 인도하는 경찰관 아저씨들을 모자이크 처리하기도 합니다.  법원서 공무원들의 초상권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듯이..  앞으로는 선진국들처럼 공무원들의 단체행동권도 인정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러러면 그냥되지는 않고 누군가는 피와 땀을 흘려야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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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준 공부법] 분홍 샌들

[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준 공부법] 분홍 샌들

 

 

 

[우리는 친구다 - 04. 우리 착한 곰돌이, 그리고 또 사우루스.mp3 (3.06 MB) 다운받기]

 

 

 

친구들이 요즘 마스크를 벗으니 더 신이 난거 같아 아저씨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아저씨는 기저질환도 있고..  연로하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 마스크를 여전히 쓰고 있어요. 날이 더 더워지면 비말마스크로 바꿔쓰려해요.  아저씨는 얼마전 기침하느라 잠을 못잘 정도의 심한 감기를 앓았어요.  몸이 션찮어진건지 감기들이 독해진건지 모르겠지만 무지무지 고생했지요.

 

  황량했던 학교 화단에는 깨알만한 꽃을 달고 있는 이름모를 풀들과 노란 민들레 꽃이 피어났어요.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핸드폰으루 사진을 찍으면 이건 무신 꽃이다 비슷하게 알려주지요.  아저씨네 학교에 뭔 꽃이 함빡 달려있어 핸폰으로 찍어 검색해보니 '산옥매' 라는 꽃이었습니다.  수선화도 피어났고 명자나무꽃도 할미꽃도 피어있어요.  친구들 똥 누운거 모인 정화조를 푸러오셨던 아저씨께서 호스를 담가놓고는 꽃을 둘러보며 즐거워하셨죠.

 

 오늘 분홍 치마를 입고 조그만 맨발로 1층 복도를 씩씩하게 걸어가던 1학년인듯한? 당찬 친구를 만났습니다.  아직은 바닥이 차가운 편이지만 뛰놀다 그을은 얼굴로 친구는 조신조신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신발 왜 안 신었어요?"

  "신주머니를 저기 놓고 왔는데... 화장실 가려고..  #%&@"

  "음..  이쪽으로 주무관님 따라 와요. 이거 신고 다시 여기 갖다놓으면 돼요"

  "어..  이거 안맞는데. 너무 커요..."

  "이거 밖에 없으니 그냥 신고 다시 여기 놓고 가요"

  "..."

  그리고는 그 친구가 걸어왔던 출입문을 지나는데..  문밖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조그만 분홍 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 누가 신발을 벗어놓는 곳이 아니라 신발 임자는 그 친구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가지런히 분홍샌들을 반대로 정돈해 놓고는 아저씨는 일하러 갔죠.  멀리서 보니 친구는 중앙현관에 실내화를 벗어놓고 다시 맨발로 복도를 걸어 신발을 신고 간 듯 합니다.  맨날 집에만 있다가 언니 오빠가 다니는 커다란 학교에 놀러와서 더욱 조심하였을까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저씨는 학교서 어떻게 생활할지를  배우게 됩니다.  친구들처럼 별 걱정도 없어지고요.  앞으로도 친구들이 지금처럼 즐거웁기를 기도합니다.  어찌보면 어른이 된다는건 어릴적 생각했던 감성과 기준들 지켜내는 커다란 싸움인 것도 같습니다.  아저씨도 친구들 같은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친구들한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꽃도 피고 친구들이 뛰어놓고 마냥 즐거우니 선생님들도 즐겁고, 친구들을 문득문득 바라보며 일하는 아저씨도 덩달아 즐겁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앞으로 일본 핵폐기물 방사능에 오염된 소금, 생선, 미역을 먹게 된다니 끔찍합니다.   일본서 걸러냈다고 바다에 버린다는 알파핵종 방사성물질은 피부를 뚫지는 못하지만 먹으면 몸속에서 조그만 원자탄이 수백년에 걸쳐 터지며 병들게하는 물질입니다.  베타 감마핵종은 걸른다고 했지만 검증된 것은 없고 이들은 근처에만 있어도 우리 몸을 뚫고 지나가며 병들게 합니다. 물론 몸속에 흡수되면 똑같은 조그만 원자탄이 되는거죠. 

 

   모두들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대통령 아저씨가 블랭핑크 뭐 때문에 외교부 책임자를 경질했고 방사능 물질은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했다는 기가막힌 뉴스가 나오고 있어요.  일본 사람같은게 아니라 그냥 일본인으로 행동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미안합니다.   학교서 일하고 있는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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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81.

[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준 공부법]  쉬어가기 81.

 

 

 

[황토십리길.mp3 (3.25 MB) 다운받기]

 

 

 

  드디어 나물 뜯어먹는 봄이 왔습니다.  어제는 동네 벗꽃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쑥을 뜯으러가니 쑥이 너무 조그매서 국 끓여먹을 쑥만 갱신히 뜯어왔습니다.   이번주에는 내친구 담비가 살고있는 내암리 뒷산엘 다녀오려 합니다.  나무 한 그루 호박 한구뎅이 몰래 숨어놓을 곳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이름모를 조그만 새싹들 구경도 좀 하고.. 새소리도 많이 듣고오겠습니다.  뻐꾹나리 아주머니께도 인사드리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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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나는

 

 

 

 

 

[노래마을3 - 05. 나이 서른에 우린.mp3 (4.43 MB) 다운받기]

 

  

 

  나이 30에,  나이 40...  나이 50에 나는

 

  구사대 부서원인 비밀조합원으로서 동료 노동자를 짓밟지 않았고 우리 동료, 이웃을 이용해 먹거나 사기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냥 평범한 노동자로 사는 일이 생각한 것 보다 쉽지 않았다.  존나 어려웠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는 영혼없이 회사의 지시를 이행하는 기계가 되어 있었고 

 

정신줄을 놓으면 나는 회사가 시키는데 어쩔겨 하며 은근슬쩍 숨죽이고 있는 공범자가 되어 있었다. 

 

 

 비록 출세는 하지 못할 지언정 지금껏 누군가를 해롭게 한 일은 없었다.  설령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런 일이 있다한들 뜻하지 않은 일이였음을 사과드리며 머리숙여 용서를 구할 수 밖에.

 

 

  그 댓가로 찾아온 것은 다른이의 삶이 소중한 만큼 내 삶에 대한 소중함. 경배와 떳떳함이다.   

 

  스스로 홀로 있어도 맘껏 즐거운 자유.  누가 뭐래도 난 그것을 내 방식대로 지켜냈다.

 

 

  노조 설립을 위한 10년의 시간은 일반 직장생활 100년을 해도 못할 경험들을 응당 격게되지만,  

그간의 무수한 크고 작은 용기있는 선택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 50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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