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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 어버이날 선물

 

어젯밤에 서울에서 모임이 있어서 갔다가

막차도 보내고 밤은 꼬박 새고

얼마만이냐 KTX 첫차를 타고 부랴부랴 집에 돌아왔다.

 

밥상을 차려놓고

얼른 밥먹으라고 불렀더니

가문비가 카네이션 꽃송이 하나와

책 한권을 갖다주고선 다소곳이 식탁에 앉는다.

 

아하, 오늘이 5월 8일이었구나,

가문비는 곧 학교로 달려나가고

책갈피를 펼쳤더니.....

 

아빠!

항상 밖에서도 바쁘시고

집에서도 딸들 챙기느라

힘드시죠?

앞으로는 말 잘듣고

일찍 일어나는(??) 가문비가

되도록 노력할께요.

 

큰딸이 아빠 많이많이 사랑하고

언제나 응원하고 있는 거 알죠?

아빠- 힘내세요~!!

 

2008. 5. 8

'사랑스러운' 큰딸

가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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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독백

주말 이틀동안에 할 일들이 많았어도

금요일밤까지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는데

어제는 살림하느라고

오늘은 서울 결혼식 갔다가 사람까지 만나고 오느라고

지나고 나니 어째 한 일이 별로 없다.

 

내일 아침부터 참 정신없게 생겼다.

자야 돼? 까짓 거 밤 새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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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

KAIST와 우리 연구원의 통합설이

그저 찔러 보는 수준 아니겠나 하는 얘기도 한편에서는 있었지만

하루가 지나갈수록 뭔가 속도감을 더하고 있다.

 

아침에 비대위 회의를 하고는

곧바로 오후 2시에 조합원 비상총회를 열기로 했고

그때부터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통합(논의)의 문제점 하나씩 열거하며 회의자료 만들고

비상총회한다고 문자 보내고(이건 다른 동지가 훌륭하게...ㅎㅎ)

연구원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 올려대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오랜만에 총회가 열렸다. 

(J 동지의 얘기로는 입사후 6년만에 처음으로 총회라는 걸 해봤단다)

 

투쟁을 결의하고

플랭카드며 대자보며 소자보 등등 선전계획도 토론하고

연발협이라고 하는 단체가 벌이고 있는 서명운동도 둘러보고

비상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받아

내일 개최될 연구원 혁신전략워크샵도 급히 장소를 바꾸어

연구소 강당에서 전직원 간담회(토론회)로 하기로 했고

하여튼 오늘도 하루종일 뭔가 바쁘게 돌아가기는 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 두루두루 여러 사람들 만나고 온 지금

성명서, 보도자료, 전직원 서명운동....

당장 시작해야 할 일들이 눈에 밟힌다.

 

고참 연구원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복도에서 만난 옛 조합원 왈,

"큰일이 생겨야 위원장님이 오시네요?^^"

"요즘 맨날 와요. 노조 사무실에 와 보시기나 하세요~.~"

 

갈 길 멀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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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0-23

4/20

 

12시에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고속버스를 탔더니 1시간 40분만에 터미널에 내려준다.

1시간이나 일찍 가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결혼식 보고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오후 2시부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4.20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차별 철폐 결의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결혼식 끝나자마자 갔더니 막 민중의례가 시작되고 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꼼짝도 않고 2시간쯤 팔뚝질을 하고 구호를 외쳤고

그 후엔 약속했던 동지들이 와서 함께 서서 집회에 참가했다.

 

수화로 하는 연설을 통역하는 것은 이채로웠지만 처절했고

휠체어를 탄 몸짓패들의 공연과

장애를 이유로 해직된 안태성교수의 차별에 대한 퍼포먼스도 강렬했다.

거의 4시간쯤 지나서부터 행진이 시작되었다.

휠체어들의 행진과 그보다 더 긴 경찰대오,

곳곳에서 충돌은 되풀이되었고 싸움은 노동자집회보다 더 격렬했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두 시간 가까이 걸렸나.

 

마무리 집회 대신에 동지들과 술을 마셨다.

아, 집회에 참가한 마산의 장애인 동지들을 찍은 사진을

보냈어야 하는데 잊고 있었구나...

동지들 사는 얘기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전망 등등

술안주는 많았지만 기차는 떠나고 고속버스 막차는 타야 했다.

 

긴 하루였다.

 

 

4/21

 

과학의 날이었다...

회의가 세개 있었다.

 

오전에 지부 비대위원-대의원 연석회의가 있었고

KAIST와 우리 연구소의 통합론에 대한 대응방안을 갖고 설왕설래하다가

일단 성명서 하나 써서 노조의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오후에 성명서 하나 쫓기듯 쓰고

미디어충청 회의에 갔다가 곧바로 참터 운영위원회에 갔다.

저녁밥 대신에 떡과 과자와 순대 따위 급하게 밀어넣었고

뒷풀이에 가서 맥주는 여러잔 마셨다.

 

 

4/22

 

지부 소식지를 내기로 한 날,

이것저것 걸리는 대로 쓰고 또 쓴다.

 

통합 문제 때문에 생각하고 분석할 거리들도 많아졌지만,

과연 조합원들의 눈높이에 맞게 쓰고 있는 것인지

그냥 알듯말듯한 독백으로만 이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덩달아 많아졌다.

 

조합원들을 자주 만나고 얘기 좀 더 많이 들어야겠다.

 

저녁엔

공공연구노조 정상화를 갖고 고민하자며

오래된 동지들 여럿이서 만나 얘기도 하고 술도 마셨다.

딱 한잔만 더 하자는 동지에게 이끌려 3차까지 갔는데

거기서 일어나니까 또 딱 한잔만 더 하자네...-.-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아이들 밤참으로 먹을 순대와 오뎅 사들고 걸어서 집에 왔다.

 

 

4/23

 

벌써 수요일이야?

하루하루가 참 빠르다.

 

연맹에 가서 어떤 프로젝트 중간발표회를 들었고

(출연연 노조에 관한 것이 있는데 좀 더 공부해야 한마디 할 수 있겠다)

몇 동지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옛 친구를 만나서 옛날 얘기를 나누다가

밤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KTX를 타본 적이 오래되었다.

어지간하면 걸어 다니자고 결심하고 실행한 후로

뭐가 급하다고 불편하고 비싼 KTX를 타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그 후로 기차는 가능하면 무궁화를 탔고(새마을보다 싸니까^^)

기차가 없으면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기로 했다(늦은 시간까지 다니니까~)

 

...이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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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내일 아침 9시까지 광주에 가야 한다.

 

5시 30분까지 오기로 했던 방송사 기자는 6시 30분에나 오셨고

6시 30분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어떤 토론모임 멤버들은

비정규직 인터뷰라는 무게에 밀려?

무려 1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도중에

인터뷰를 방해할 정도로 수다 내지는 호들갑이 심하다고

피디인지 보조 진행자인지 우리 일행들에게 가서 조용히 하라 그러더라,

나는 안절부절...

 

조합원이기도 한 우리 연구소 홍보실 담당자는

난데없이 쳐들어온 방송사 카메라가 반갑지 않다,

누구 이름으로 인터뷰할 거냐고 조심스레 묻기에,

노조 이름으로 할 거다,

실은 밖에서 약속을 했는데 내 일정이 겹쳐서 부득불 연구소로

카메라를 오라고 했으니 이해해라,

아, 그 난감해하는, 그러면서 이해하겠다고 말하는 그 조합원의 얼굴...

인터뷰 끝나고 미안한 마음에 전화했더니

방금 퇴근했단다, 다행인가....

 

술을 열심으로 마셨다,

그래도 이번 주는 술마시지 않는다는 동지를 애써 괴롭히지는 않았다,

동지가 사준 도너츠 꾸러미를 갖고 집으로 가는데

전화가 온다, 피할 수 없는

연구소 직원의 전화였다, 다시 나가서 술을 마신다.

 

또 술을 마신다, 마시면서 온갖 쟁점들은 다 풀어헤치는데

또 전화가 온다 먼 도시에서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이 있다,

만만한 술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고서

서둘러 나도 가서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유성으로 가서

우리네 밤 일정들을 하나하나 챙기는데

15년전 위원장이었던 동지가 사용자가 되어 나타났고

그 동지의 말 하나하나는 지금 젋은 조합원을 압도하고

 

그래도 술마시고 있는 내 전화기에 또 신호음이 울린다.

술 마시고 있으면 또다른 술자리 전화

술 갖고 고민하고 있어도 또다른 술자리 고민 전화

그렇게 오늘 저녁 내내 이어졌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매개로 하는 모든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자구!

 

내일 아침 9시까지

나는 광주에 가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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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KAIST, 생명연에 통합 제안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메모 4월 15-16일] 에 관련된 글.

 

어제 저녁에 올라온 대덕넷(http://www.hellodd.com) 기사... 그대로 옮김.

 
 
[핫뉴스]KAIST, 생명연에 '통합 제안'
서남표 총장, 15일 이상기 원장 찾아 '전격 건의'
교과부 "자율에 맡길 것"…대학-출연연 연계 '신호탄'?

 
 ⓒ 2008 HelloDD.com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게 기관 통합을 제안한 것으로 본보 단독 취재결과 확인됐다. 현재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계부처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간 연계방안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첫 단초'여서 과학계에 핫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16일 KAIST·생명연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서남표 KAIST 총장이 15일 오전 이상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을 만나 기관 통합을 전격 제안했다.

KAIST는 차세대 먹거리의 핵심분야를 바이오로 꼽고 있으며, 이와 연관된 생명연과의 통합이 가장 시너지 효과가 높다고 판단, 통합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생명연측은 곧바로 간부진을 주축으로 KAIST와의 통합 방안 검토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 입장 "개입하지 않겠다"…민간 차원의 자율적 협의 강조

정부는 양 기관의 통합 논의과정에 관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양 기관이 자율적으로 협상한 결과, '통합'으로 결정되면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나인광 교육과학기술부 연구기관지원과 주무서기관은 "KAIST와 생명연 통합 논의를 최근 확인했다"며 "민간에서 자율적 협상을 통해 통합이 좋다고 생각되면 추진하는 것이지 정부가 나설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단, 나 서기관은 "만약 양 기관의 의견이 통합으로 결정될 경우 정부도 적극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전망?

KAIST는 가급적 연내 통합 방안을 확정하고 가능하면 내년부터 실질적인 통합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생명연도 통합 타당성을 검토한 의견 초안을 1~2주 내 교과부에 전달하고, 교과부는 관련법 개정 등 행정적 지원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적극 대응할 복안이다.

정부측은 이번 통합 논의가 오래 지연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통합이 확정될 경우 늦어도 4~6개월 이내에 법 개정 등 관련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생명연 연구원들의 교수 대우를 비롯해 여러 가지 협상 난제들이 걸려있어 통합 가능성이 그리 높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구현장에서는 양 기관의 통합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 신중한 논의와 구성원들의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과거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KAIST의 통합과 분해 사례에서 검증됐듯, 확실한 목표에 따른 정책과 추진계획 없이 무리하게 추진한 통합은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덕넷 김요셉 기자> joesmy@hellodd.com
2008년 0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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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4월 15-16일

1994. 4. 15.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결성된 날이다.

14년 전 그 때 나는 그 자리에 신참 유전공학연구소지부장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14년이 지났고

작년 3월 27일에 과기노조의 깃발을 물려받은 공공연구노조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급추락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나?

 

1988. 4. 16. 한국과학기술원노동조합 유전공학센터지부가 출범한 날이다.

그 때 나는 아직 연구소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그 날을 기념하여 하루 일찍 조촐한 조합원 행사가 열렸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조합원 85명 중에서 52명이 달려왔고

20년 왕고참부터 신참 조합원들까지 한자리에서 얼굴들을 보았다.

밥도 주고 선물도 준다니까 왔지,

하면서도 서로들 놀랍고 반가운 표정들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어제, 그러니까 4월 15일에

한국과학기술원 서남표 총장이 우리 연구소에 왔다고 한다.

과기원과 생명연이 통합하자는 제안을 하러 왔다는데,

마치 청와대 언저리에서 얘기가 다된 듯한 분위기라고 전해졌다.

이래저래 수소문해봤더니

대학과 출연연을 통폐합한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고

그것이 곧 구체화될 것이라는 소문이다.

과기원과 생명만의 문제는 아니라 전체 출연기관의 문제인 것이다.

 

20년 전에 우리 연구소지부가 출범하지 않았으면,

14년 전에 과기노조가 탄생하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되었을까,

어떨 때는 짐짓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그 많은 세월을 가로질러 와서도

나한테 주어지는 고민들은 어째 제자리걸음이란 말이냐.

 

잠자려다 말고

메모라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잠깐 흔적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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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2) - 만나는 풍경들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걷다(1)] 에 관련된 글.

 

어제, 토요일 낮,

심심풀이로 연구소까지 걸으면서

평소에 눈으로만 보고 느끼던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30분쯤 걸리던 거리,

그렇게 산책삼아 걸으니까 1시간이 더 걸리더군.

 

그 길 위에서 

집에서 나가서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내가 만난 풍경들을 간추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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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1)

 

3월부터 가급적이면 차를 타지 않고 걷기로 했었다.

그리고 지난 6주일 동안 그 다짐은 잘 지켜졌고

내 차는 주로 4킬로미터 반경을 벗어나는 일정에만 쓰여졌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은 내 오랜 바램이었는데,

그래서 작년에는 자전거를 타고 자주 오가기도 했는데,

집에서 연구소까지 거리는 대략 3킬로미터쯤, 자전거로 오가기에는 너무 가깝고,

지역본부를 비롯하여 다른 곳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다소 멀었다.

 

게다가 맨날 고정된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번씩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하는 처지에서 보면

차 없이 다니는 것이 참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저러한 핑계로

말로는 걷고 싶다 자전거타고 싶다고 하면서

차를 포기하지 않고 아주 가까운 거리조차 선뜻 차를 몰고는 했다.

 

차를 버리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정작 엉뚱한 곳에서 왔다.

3월에 가문비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아침일과가 무척 바빠졌고,

아침마다 운동이라도 해보자는 계획은 엄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저녁이야 회의, 사람, 술 따위로 아침보다 더 악조건이니

최소한의 운동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겼다.

 

결론이 걷기였다.

연구소까지 걸어가는데 30분 가까이 걸리니까

무조건 연구소는 걸어서 가고 걸어서 온다,

그래서 하루에 최소한 1시간은 걷기로 한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오전에는 일단 연구소로 걸어서 출근을 한다, 차를 쓸 일이 있으면

다시 우리 아파트로 돌아와서 차를 몰고 나간다,

이렇게 작심했고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바쁜 일상이 나를 늘 몰아세우는 것처럼 살았지만

뚝섬의 사무실로 오가던 하루 4시간 반의 시간을 생각하면

기껏 왕복 1시간 걷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일단 걷기로 맘먹고 나자 걷는 게 재미있어졌다.

점심약속에 혼자 신성동으로 나가면서도 걸어서 갔다오고

둔산에 영화를 보러가서도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몰고 가깝지 않은 거리에 가서 술을 마셔도

차를 두고 걸어오면 마음이 가벼웠고,

다음날 그 차를 가지러 걸어서 가는 길도 즐거웠다. 

 

목련이 지고 나서 새순이 어떻게 움트는지

수양버들가지에서 봄빛이 어떤 빛깔로 피어나는지

지나치는 연구소들의 철조망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놓쳤던 풍경들을

걸으면서 비로소 하나하나 눈여겨보게 되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 봄을 내게 느끼게 해준 것은  걷기 덕분이었다.

내 생활에 다시 큰 충격적인 변화가 오기 전까지는

나는 아마 사시사철 걷기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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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은 무효...

내 맘이 움직여서라기보다는

갑작스런 청탁에 주제넘게도 허겁지겁 써서

미디어충청(http://cmedia.or.kr)에 넘긴 글....

 

제목이 너무 선정적인가....-.-;

 

이 글 읽는 분들 중에서

대전, 충남, 충북 지역에서 사는 분들은

미디어충청 사이트로 가서 후원 좀 해주시고요,

자주 들러서 기사비평이나 독자의견 좀 올려 주시면

엄청나게 감사하겠습니다~.~

 

 



 

                                             18대 총선은 무효

 

 

제18대 총선의 유권자는 모두 37,796,035명이다. 그 중에서 17,415,666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46.1%라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제18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16개 광역시도 중에서 강원(51.5%), 경북(53.1%), 제주(53.5%)만이 간신히 50%를 넘겼을 뿐이다. 구 단위로 보면 서울특별시와 6개 광역시에서 투표율 50%를 넘긴 지역은 종로구(52.2%), 노원구(50.9%), 동작구(52.8%) 등 불과 세 곳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표성이다. 턱없이 낮은 투표율은 민의를 왜곡하게 된다. 예컨대 이번에 충남 논산(논산․계룡․금산선거구)에서 유효투표의 27.7%를 얻은 이인제의 경우 산술적으로 보면 유권자의 13.6%의 지지만으로 당선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전체 유권자의 86.4%는 이인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누가 자신 있게 이인제를 그 지역의 대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전국적으로 보면 투표율 30%인 선거구가 20곳에 이른다고 하니, 겨우 10%대의 대표성을 갖는 국회의원들이 수두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제18대 총선은 한나라당 153명을 포함하여 자유선진당 18명, 친박연대 14명, 친여무소속 당선자 18명 등 무려 203명이나 되는 거대한 수구보수 자본가 모리배들을 국회로 진입하게 했다. 전체 299명 중에서 2/3 이상을 차지하는 이 기득권 집단은 전체 국민의 삶의 질 추락과 사회양극화는 아랑곳없이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친기업적 법률과 정책들을 무한정 쏟아내게 될 것이다. 개인재산 3조6천억원이라는 정몽준을 빼고도 국회의원 평균재산 26억원이나 되는 18대 국회에서 노동자 민중,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먹혀들기나 하겠는가.


낮은 투표율은 또한 정치적 무관심이 그대로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끊임없이 그것을 조장해온 지배집단의 전략이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항하는 정치운동의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도 거기에 일조했다. 이전까지는 서울의 강남, 서초구가 공고한 자본의 계급정치를 실천했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서울 전 지역이 사실상 자본의 정치판으로 확장되었다. 부동산, 교육, 교통, 세금, 의료비 등등의 문제로 일상적으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노동자 민중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국회는 자본의 전유물이 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은 노동정치의 실종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답답한 정치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또 길게 보고 차근차근 가자고 의연하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겠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원용하면, 대의민주주의 아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반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임원과 대의원 선출을 비롯하여 모든 의사결정은 재적인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것이다. 즉, 과반수가 참여하지 않는 의사결정은 무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46.1%의 투표율을 기록한 제18대 총선은 무효이며, 재선거를 해야 한다. 앞으로 이 나라의 모든 선거도 유권자의 과반수가 참가하는 선거라야 유효하다고 법으로 명확하게 해야 한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있다. 우리나라 제헌국회를 구성하던 1948년 당시의 선거법은 투표자수가 과반수가 되지 않으면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한 단독으로 치렀던 1948년 5․10 총선거에서 북제주군 갑구와 을구에 대해서 국회선거관리위원회는 당시 선거법 제44조에 따라 투표자수가 과반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선거구의 최고득표자의 당선을 무효로 인정하였고, 그에 따라 당시 미 군정장관은 그해 6월 23일에 재선거를 실시하겠다고 포고문을 발표한 사례가 있다. 교통수단이 미약했던 60년 전에도 했던 것을 이 시대에 왜 못하겠는가.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가 비판적 지지가 어떻다느니 후보 단일화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단판 승부로 민의를 크게 왜곡시키곤 했는데, 이것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서 해결할 수 있다. 투표율의 측면에서도 결선투표제는 의미가 있다. 12명의 후보가 출마해서 결선까지 갔던 프랑스 대선의 투표율은 1차 73.9%, 2차 83.8%를 기록하였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투표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억측이다. 아직도 참정권이 없는 국민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 약자들을 배제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가 그러하듯이 우리나라의 투표율 저하현상은 국민의 80%가 ‘고소영’, ‘강부자’로 지칭되는 권력층에 굴종하고 있는 현실이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재선거이든 결선투표제든 선거법 개정이든, 그것이 가장 시급한 당면 문제는 아니다. 다만, 국민의 과반수가 지지하는 대통령과 국회를 만들고, 유권자 모두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경향을 비례적으로 담을 수 있는 대의정치를 가능하게 하려면, 진보와 변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현실의 정치제도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는 것은 반드시 고치겠다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작년부터 시행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의 대상을 국회의원까지 확대하고 그 요건도 완화해서 유권자의 뜻에 반하는 국회의원들은 언제라도 갈아치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가능한 방안의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대의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고 보완하되 민주주의의 핵심은 직접 참여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치제도를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장애보험개혁안, FTA, 어린이성폭행범에 대한 종신형 선고 등 중요한 사회․정치적 쟁점들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했던 스위스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을 무조건 국회에 맡겨둘 일은 아니다. 한반도대운하, 한미FTA, 행정수도 설치 등 우리에게도 국민투표에 넘길만한 큰 쟁점들은 많다. 번번이 국민투표에 맡기자는 얘기가 아니라 유권자가 직접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길을 넓혀가자는 것이다.


앞에서 제도와 현실을 탓했지만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진보정치세력은 다시 한번 준엄하게 자기비판과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지만, 꿈만 꾸고 있어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법이다. 진보정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라고 입으로 말하지 말고, 지역과 현장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진보의 색깔로 바꾸기 위해 지금껏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몸에 밴 상처와 흉터로 말해달라고, 투표소행을 포기한 수많은 유권자들이 외치고 있지 아니한가. (2008.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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