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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생신

음력 8월 21일 아버지 생신, 장모님 생신

음력 8월 22일 어머니 생신

 

그러니까 추석이 지나고 일주일(6-7일) 지나면

나와 아내를 낳아주신 분들의 생신이 모두 몰려 있다(장인께서는 돌아가셨다).

 

어쩌다가 바깥사돈과 생신이 같다는 이유로

장모님은 회갑을 맞던 해를 제외하고는

둘째 딸과 둘째 사위를 당신이 태어나신 날에 볼 수가 없었다.

(추석에 가서 미리 인사드리는 것도 슬금슬금 빼먹다가

 아내가 서울에서 근무하게 된 작년부터 아예 말로 때우고 있다)

 

어머니의 생신 또한 아버님 생신 바로 다음날이니

이틀 연속 똑같은 상차림과 정성이 고루 나눠지기보다는

아버님 생신에 묻혀가기가 일쑤이다.

 

암튼, 어른 생신이 하나라도 신경이 적지 않게 쓰이는데

세분의 생신이 사실상 한날에 집중되어 있으니

추석 지나면 곧바로 생신을 어찌할 것인지

국제적으로 노는 형제자매들끼리 의논하는 일도 간단치만은 않다.

 

특히 올해는 아버님 팔순을 맞는 생신인지라

추석이 오기전에 생신 맞을 궁리들부터 했다.

 

청력이 많이 떨어진 아버지께 보청기를 해드리고

일산과 필리핀 사는 여동생 둘이

부모님(+혼자 되신 이모님) 모시고 2박 3일 설악산 여행을 하기로 했다.

(설악산 여행은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거였다)

 

그래서 지난 주(추석 무렵)에 일정이 짜여지기를,

생신상은 토요일(어제) 저녁에 우리 식구들하고만 함께 하기로 했고,

일요일(오늘) 아침에는 부모님께서 일찍 수원역으로 기차타고 가셔서

여동생들(일산동생네는 식구 포함)과 만나서 속초로 가시는 것으로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어제 저녁 생신상을 차리는 일과

오늘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어제 오후:

장보고 두부 만들고(잠깐 대전역 가서 부모님과 이모님 모셔오고)

쇠고기 미역국, 잡채, 안심 불고기, 고등어 갈치 구이, 표고 조림, 어리굴젓.......

애고... 바빴다.

 

아참, 어제는 장모님 생신이기도 해서

낮부터 몇 번이나 강릉 처가로 전화를 했는데 부재중,

저녁 무렵에 큰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함께 서울 처남집, 그러니까 장모님의 아들 집에 막 도착하셨다고 했다.

장모님께는 이번에도 말로 때우고 말았다.

 

오늘 아침은 6시 30분에 일어나서

밥하고 갈비탕(미리 해두었던 것), 어제 넉넉히 끓인 미역국, 기타 반찬류...

그리곤 8시 20분까지 대전역에 모셔다 드린다고 바쁘게 움직였다.

 

10시 20분쯤

생신상 차리느라고 고생했네요, 수원역에 다 모여서 속초로 출발해요,

라는 둘째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1박 2일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리곤 오늘 하루, 여느 일요일처럼 보냈다.

주방일, 외출, 장보기(어젠 생신상에 필요한 것들만), 그리고 세 끼 다 먹어치우기,

드라마 보면서 빈둥거리기....

이제부터가 밀린 내 일들을 챙겨봐야 할 시간이다.

 

일요일 밤, 내 수면시간은 늘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 거 쓰지 말고 빨리 자라고? 네..네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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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사랑에 대하여

여기 오는 동지들에게

추석 인사를 대신하여

연휴 동안 하루에 몇번씩 읽고 있는

고은 선생의 시집 "허공" 중에서

한 편을 뽑아서 드립니다.

 

내 말과 글로 인사드릴 여유 없음을 미안해하며...

 

사랑에 대하여

                                 -고은

 

칸첸중가 혹은 에베레스트에는

사랑 따위 없소 필요없소

그 천년 빙벽에

그 천년 폭풍만 있어야 하오

 

팔천 미터 아래

나지막이

거기 어느 골짝에 사랑 있소

거기 오래 묵어

쉰내 나는 사랑 있소

 

물이 사랑에 주려

아래로만 흘러가고 있소

허나

저 아래 바다

거기에는 사랑 없소 전혀 필요없소

 

높지 말 것

넓지 말 것

 

사랑은 첫째 작고 시시할 것 바람벽에 홑적삼 걸릴 것

 

대자대비 아니오 박애 아니오 그저 사랑은 무명 맹목의 그 사랑이오

 

 

....쓰는 김에

재미있게 읽은 것 덤으로 한 편...

 

                         -고은

 

금방 두 날개 접으시고

내려앉은 학이시여

임이시여

 

만번이나 고상하셔라

 

무슨 헛소리이신가

이 물속

참붕어 한 마리

오로지 그 한 마리

그야말로 학수고대로 노리시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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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1.

고은 선생의 등단 50주년 신작시집(허공)이 나왔다길래

바로 주문했더니 어제 집으로 배달되었다.

받고 보니 초판 1쇄 발행일이 2008년 9월 10일이네.

펼치고 맨 처음에 읽은 것이 "앙코르와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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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인가?

 

캄보디아

바람 잔 마을

지뢰 밟아

다리 하나 잃은 아이

눈동자 고요하였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어냐고

 

라이라 하였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네 희망이 무어냐고

 

그 아이가 좀 크게 대답하였다

남은 한쪽 다리 잃지 않는 거라고

 

앙코르와트 어디쯤인가?

옛날의 짝 잃은 수코끼리 울음 어디쯤인가?

 

 

2.

앙코르 유적지를 다녀온 것이 벌써 3주가 다 되었다.

시를 읽으면서

멀리 밀림 속에 오두마니 앉아있던 앙코르와트와

땅에다가 그림을 그려놓고 돈을 구걸하던 아이의 얼굴과

코끼리테라스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이러다가는 이번에도 여행 후기 올리기는 쉽지 않겠다 싶어서

떠오르는 풍경이라도 우선 올리고 봐야겠다.

 

프놈바켕에 올라 줌인하여 바라본 앙코르와트. 산이라고는 없이 밀림에 둘러싸여 평지에서는 가까이 가기 전에는 아무런 유적지도 보이지 않는다.

 

쁘리아칸 어귀 길바닥에 그림을 그려놓고 돈을 달라고 하던 아이.

나도 혼자였고 그도 혼자였다.

오른쪽 눈은 다쳤는지 원래 그랬는지, 혼자서 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 맘이 약해져서

캄보디아 지폐 한장을 꺼내어 주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앙코르 톰에 있는 코끼리테라스...

이건 입체모자이크라고 해야 하나, 돌조각을 깎아서 쌓아올렸는데 참 튼튼하고 정교하다.

 

3.

고은 시인은 언제나 나를 기죽인다.

 

이를테면,

 

"파리채로/ 파리를 쳤다// 놓쳤다// 잘했다 잘했다 아주 잘했다"

(혼자 술 마시다가, 전문)

 

"칼바람 친다/ 아직 죽을 수 없다// 내려가자/ 내려가/ 술잔에 메아리쳐 술을 붓자"

(소백산에서, 전문)

 

"여보/ 풍경은 그저 풍경이 아니더군/ 한 생애더군/ 누구의/

 울음이고 또 꽃덤불 속 가시에 찔려 아픈 웃음인 생애더군//

 여보/ 풍경은 그저 풍경이 아니더군/ 한 정신이더군/ 어느 시대 세워주고 돌아선/

 키 큰 휑한 지지리 못난 정신이더군//

 여보/ 당신과 나 또한 저 모퉁이 돌아서서 그런 풍경 언저리 어김없이 머물더군"

(귀가, 전문)

 

펼치는대로 눈에 와 꽂히는 그의 말과 운율의 신명과 발랄함,

풍자와 사유의 깊이가 나를 제압한다.

이따금 고은이라는 이름 대신에 다른 시인의 이름을 놓아 보지만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다.

 

4.

청탁받은 글쓰기는 쉽지 않다.

뭔가 얽매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마감이라는 글, 쉽게 쓰지 못하고 헤매다가

하나로 만족하지 못해 같은 주제 다른 내용으로 두개를 쓰느라

오전부터 지금까지 끙끙거렸다.

 

잠시 쉬는 마음으로 고은 선생을 읽다가 숨이 가빠진다.

 

5.

이제 속보를 써야 한다.

오늘 오전에 쓰려다가 낮에 신임 원장과의 상견례가 있어서

그것까지 다루기 위해서 오후로 미루었다.

저녁에 내든지 내일 아침에 내든지, 맨날 내지 않으니까 좀 편하기는 하다...ㅎㅎ

 

 

 



서쪽으로 향하고 선 앙코르와트는 일출 때 해를 등지고 선다.

그걸 보려고 새벽 5시에 호텔을 나섰는데 구름이 끼어서 썩 만족스러운 풍경은 아니었다.

 

날이 밝고...

 

동메본에는 이런 코끼리가 여러 마리 산다.

 

앙코르와트를 내려다보고, 일몰을 보기 위해 올라갔던 유일한 언덕,

프놈바켕의 사원에 걸터앉아서 서쪽 하늘의 해를 보다.

내 뒷쪽에 서서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앙코르와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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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28일 투쟁 보고

KIST지부의 청탁을 받아서 허겁지겁 쓴 글.

 

여럿이 모여 평가할 내용도 많은데 이런 거 막 써도 되나 몰러....암튼 기록삼아 올려 둠.

 

 



모든 직원이 하나 되어 강제통합을 막아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128일 투쟁에 관한 보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생명공학연구원지부(이하 “생명지부”)는 지난 8월 29일 투쟁속보(생공투 속보 82호)를 통해서 128일째 이어온 KAIST와의 강제통합 저지투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강제통합의 진원지였던 청와대가 통합이 아닌 협력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KAIST의 협력방안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며, 생명연과 KAIST가 실제로 협력방안을 마련하여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강제통합은 더 이상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 2차 발표까지 출연(연) 통합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러한 결론에 힘을 보탰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가슴이 뿌듯하다. 4월 15일 KAIST 서남표 총장이 통합을 제안하여 논란을 일으킨 직후부터 5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투쟁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4월 22일에 박종구 교과부 제2차관은 생명연의 선임연구부장과 KAIST 부총장을 불러 두 기관의 협력방안을 5월까지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4월 25일에 당시 김도연 교과부 장관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KAIST와 생명연이 통합을 준비하고 있다”고 통합을 독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5월 7일에는 이주호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KAIST 서남표 총장이 잘하고 있다”면서 통합에 힘을 실었다. 마침내 5월 23일에 교과부는 박종구 차관 주재로 두 기관의 협력에 관한 세 번째 회의를 열고, “KAIST가 제출한 통합안을 뼈대로 하여 5월 27일까지 합의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5월 23일에 드러난 교과부의 계획은 6월에 통합논의를 공론화하고 7월까지 통합에 관한 MOU를 체결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기반으로 한 서남표 총장의 통합 의지, 서 총장의 MIT 동문이자 제자이기도 한 김창경 청와대 과학비서관의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청와대의 의중에 충실하게 따른 교육과학기술부가 합작하여 통합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조차 “정부가 말을 꺼낸 이상 그냥 물러서겠느냐, 어떤 식으로든 통합을 추진하고야 말 것”이라고 했고, 일부 원로 과학자들은 말로는 강제통합에 반대한다면서 행동으로는 정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가 끝내 통합을 밀어붙일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지부는 서남표 총장의 제안 이후 정세를 주시하고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 곧바로 4월 24일에 비상총회를 갖고 통합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인위적 통폐합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강제통합을 획책하는 것은 이율배반이고,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하며, 5공 치하에서의 KIST-KAIS의 통합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강제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과학기술계 출연(연)의 강제통합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강제통합 기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였다. 5월에 접어들자, 생명연 뿐만 아니라 KAIST의 노동조합과 교수협의회, 그리고 대학원 총학생회가 모두 통합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조장희 가천의대 석좌교수, 홍창선 KAIST 전 총장, 신성철 KAIST 전 부총장, 백성기 Postech 총장 등 원로 과학자들도 우려한다는 견해를 속속 피력했다. 정치권에서도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기세를 높이기 시작했다. 생명지부의 투쟁은 한 달 남짓 만에 정부의 강제통합 방침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지부가 넉 달동안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하나 되어 투쟁한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4월 25일부터 8월 6일까지 69일간 빠짐없이 진행했던 출근투쟁이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책임급 직원, 보직자들을 포함하여 연인원 2,907명, 하루 평균 42.1명의 직원들이 참가했다. 5월 21일 교과부 앞 상경투쟁에는 조합원과 직원 200여명(당시 전체 조합원이 85명)이 참가했고, 5월 27-28일 KAIST 앞 출근집회에는 500여명이 함께 했으며, 6월 16일 연구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전 직원 결의대회에는 800여명의 직원들이 참가해서 통합반대를 함께 외쳤다. 출연(연) 역사에서 정부의 방침에 일개 연구소가 전면적으로 반대하여 이토록 강하게 저항한 것은 전례가 거의 없다.

투쟁은 일단 끝났다. 생명지부는 통합저지 투쟁을 통해 여러 가지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 우선, 출연(연)에서 노동조합이 꼭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일거에 떨쳤다. 이번 투쟁을 통해 대다수 직원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맞설 수 있는 조직은 노동조합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투쟁속보를 통해서 전 직원들과 만나고 교감한 것도 중요한 투쟁이었고 하나의 성과였다. 투쟁속보는 하루 평균 600부씩 발행했고, 점심시간마다 식당 앞에서 전 직원들에게 직접 배포하였다. 투쟁을 시작하던 당시 85명이던 조합원 숫자가 거의 2배로 늘었다. 생명지부의 위상과 역할은 투쟁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생명지부가 투쟁을 시작하면서 내걸었던 목표는 ‘생명연 해체 기도 저지’와 ‘안정적 연구환경 쟁취’였다. 강제통합은 저지했으니 이제 ‘안정적 연구환경 쟁취’라는 목표가 남았다. 정부는 공공무분 선진화 방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면서 출연(연)의 경영효율화를 강조하고 있다. 3년 동안 전체 출연(연) 인원을 10% 감원하고, 성과에 따라 급여 차등폭을 확대하는 것이 이른바 경영효율화의 주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생명연 뿐만 아니라 전체 출연(연)의 문제이다. 정부가 안정적 연구환경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시키려 한다면 생명지부는 공공연구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강제통합 저지 투쟁에 버금가는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200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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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한 문자

"창무에 목일 키었ㅁ "

 

간밤에 술 마시고 집에 가던 한 동지가 내게 보낸 문자.

 

나는 쉽게 '창문에 목이 끼었다'고 이해했는데, 곧

'달리는 차 안에서 목이 낄 상황이 왜 생기지?', 하고 의문이 생겼다.

 

문자를 보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내 경험상, 이런 문자를 보내 놓고 왜 보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이 글자는 내 악필처럼 가나다로 쓰인 상형문자로

해석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이 글은 문자를 보낸 사람을 나무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므로,

  '누가' 보냈을까 따위의 과도한 궁금증을 갖지는 말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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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골집

대전 둔산 "동천홍"의 사천탕면
-노동자 역사 한내에서 쓰라고 하여 급히 쓴 것입니다. 맛에 대한 느낌과 판단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기 바랍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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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도락가나 미식가는 아니다. 그렇지만 주변에 맛집으로 이름난 곳이 있으면 꼭 한번은 들러본다. 길을 가다가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들어가서 먹어보곤 한다. 그러다가 내 입맛에 맞는 집이 있으면 동무들을 데리고 한 번 더 간다. 함께 갔던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하면 그 곳을 기억해 두었다가 모임이나 술자리가 있을 때 우르르 몰려간다. 몇 차례 드나들어 그 집의 맛에 익숙해지면 점차 뜸해지기는 하지만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의 입맛이 모두 바뀌지 않는 한 아예 발길을 끊은 적은 없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지만 음식점과 맺은 인연도 상당히 오래도록 간직하는 편이다.
 
정해놓고 자주 가는 집을 단골집이라고 한다면 내가 딱히 단골집이라고 할 만한 음식점은 없다. 점심때는 김치찌개, 청국장, 냉면, 순대국밥, 생선구이, 콩나물국밥, 설렁탕, 자장면, 칼국수 따위 즐비한 식단 중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그 음식을 잘하는 곳으로 간다. 저녁이라면 주로 술안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다. 삼겹살이나 곱창 같은 구이, 탕수육과 양장피로 대표되는 중국요리, 쭈꾸미와 낙지, 아귀 등 해물류, 감자탕이나 황태전골 따위 토속음식, 가끔은 횟집, 이런 곳들이 소주맛이 나고 동지들과 어울리기에도 무난하다. 그 날 그 날 갈 곳을 정하는 것은 동행들의 몫이지만 나한테 넘어오기 일쑤이고, 그러다 보면 두루두루 번갈아 가기 십상이니 단골집을 만들 틈새도 그다지 없다.
 
애써 찾으면 단골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음식점들이 있기는 하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 날 속 풀러 가고 싶을 때, 먼 곳에서 보고픈 사람들이 왔을 때, 동지들과 나눌 만한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가고 싶어지는 곳이면 단골집의 반열에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집들은 자주 가지는 않지만 한 십년쯤은 꾸준히 찾는 곳이다. 대전에서는 천복순대, 숯골원냉면, 아리랑보쌈, 왕비성, 동천홍, 미송, 임해조 볼테기, 역삼동 황태찜(대전) 등이 인연이 제법 깊고, 시골생막창, 오씨네 칼국수, 두레마을 등이 새로 드나들고 있는 곳들이다.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오늘은 <동천홍>이라는 중국음식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동천홍(東天紅)>은 대전 둔산에 있는 선사유적지의 골목 안쪽 돌담 건너에 있다. 동천홍이라, 동쪽 하늘의 붉은 색(빛)이면 떠오르는 아침해를 말하는 것이렸다. 왕비성, 취영루, 천안문, 중화반점, 포청천, 만다린처럼 흔히 중국음식점이 갖는 ‘성(城)’이며 ‘루(樓)’며 ‘반점(飯店)’ 따위 통속적인 이름을 벗어나서, 이름부터 새롭고 은근히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은 아니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서인지 동천홍이라고 부를 때의 어감이 참 좋다. 내가 이곳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어언 10년은 된 것 같은데, 언제 개업했냐고 물어보니 13년쯤 되었다고 한다.
 
동천홍은 널찍하고 조용하며, 몇 년전에 리모델링을 하고 난 후로는 분위기가 훨씬 정갈하고 깨끗해졌다. 가족과 함께 가도 좋고, 손님들과 어울려 가도 좋다. 나는 주로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하러 가는 편이다. 중국음식점에서 속을 푼다고 하면 십중팔구 자장면과 짬뽕을 떠올리겠지만, 미안하지만 틀렸다. 동천홍에서는 대표 메뉴가 자장면이나 짬뽕이 아니라 ‘사천탕면’이다. 주인한테 물어봤더니 한 때는 90%가 사천탕면을 주문했는데, 요즘은 새우볶음밥 주문도 꽤 늘어서 사천탕면은 7-80%쯤 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도 아니고 짬뽕도 아닌 것이 70% 이상을 차지한다면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오늘 사무실의 동지들과 함께 가서도 세 사람 모두 사천탕면을 먹고 왔다.
 
남들이 사천탕면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하얀 짬뽕’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마른 고추로 매운 맛을 내고 육수에다가 갖가지 해물과 채소류로 시원하고 얼큰한 맛을 내는 것으로 보면 짬뽕과 흡사하다. 사천탕면은 짬뽕과 사뭇 다르다. 우선 국물이 뽀얗다. 얼핏 보아서는 맵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국물을 한 입 떠 넣으면 입속에 매운 기운이 살며시 퍼지면서 오감을 자극한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매운 고추를 바짝 말려 볶아서 국물을 만들기 때문에 담백하고 깔끔하다. 매운 맛 다음에 곧바로 입안에는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감돈다. 새우, 굴, 조개, 쇠고기, 양파, 배추 등이 육수와 넉넉한 굴소스와 어울려 내는 맛이다. 그래서 짬뽕이 갖지 못한 독특하고 감칠 맛을 갖고 있다. 특히 굴이 푸짐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이 국물만 떠 마셔도 오전 내내 술기운으로 요동치던 뱃속이 금세 평화를 찾는다.
 
동천홍의 점심시간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언제나 바쁘다. 조금만 늦게 가면 줄을 서야 한다. 하긴, 사천탕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비울 것을 생각하면, 줄을 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아니겠는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동지들과 어울려 사천탕면을 먹다가 보면 간밤의 취기는 온데 간데 없고 절로 소주 한 병을 청하고 싶어진다. 작년 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어느 동지가 와서 사천탕면과 요리 한 접시, 그리고 고량주를 주문했다. 처음 먹는 사천탕면이 너무 맛있다며, 동지는 오로지 국물만을 안주 삼아 고량주를 들이키는 것이었다. 이제 누구든지 대전에 와서 연락하면 내가 비싼 요리는 말고 사천탕면에 술로 푸짐하게 대접하리라. (2008.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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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해서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는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아침에 펼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작가의 말 중에서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딸들에게 종종 하는 얘기들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살았나 하고 자문해보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하긴, 가끔 생각하지만, 내 사유의 폭과 깊이는 아직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10대의 어느 시기에, 나는 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자기암시를 준 것이 약발을 발휘한 것일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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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일 잘하고 있다가

문자 하나 받고는 새벽 1시에 기어나가서

지금껏 소주와 맥주를 마시다가 왔다.

 

아침에 학교가야 하는 아이들이 밟혀서 오긴 왔지만

 

익숙한 동지들 얘기도 쑥쑥 들어오고

낯선 동지들 얘기도 새롭고 신선하니

나는 어쩌면 좋으냐.

 

말 속에 해야 할 것들 그득하거늘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또 무엇을 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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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을 맞으며

오늘 속보(생공투 속보 83호)에 쓴 글이다. 지면 관계로 내용도 중간을 잘라냈고 사진도 삭제했는데, 여기에서는 모두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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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9월을 맞으며

어느 덧 9월입니다. 새벽에 가는 비가 뿌리더니 하늘은 아침부터 찌뿌드드하여 초가을 날씨같지가 않습니다. 한가위가 불과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는데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여름은 참 길었습니다. 난데없는 강제통합 기도에 맞서, 불볕더위를 무릅쓰고 투쟁은 흔들림없이 계속되었지만, 정작 강제통합 논란을 야기한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통합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데도, 출연(연) 일각에서는 “정부가 그냥 물러서겠느냐, 그러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한번 말을 꺼낸 이상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없던 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하고 정부 분위기를 지레 짐작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 말은 통합에 반대한다면서 행동으로는 정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08년 6월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하고, 7월 초에는 공식 발표를 통해 공론화하며, 각계 각층의 토론 결과를 반영하여 7월 말에는 고용승계, 처우보장, 상호 의무와 권리관계 등을 MOU로 체결하겠다고 했던 교과부의 계획서가 그것을 뒷받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투쟁은 소처럼 우직하게 계속되었습니다. 5월 21일 상경집회가 끝나고 비로소 교과부 장관이 우리가 반대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5월 27일에는 전임 원장이 통합에 반대하는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6월에는 정치권에서도 통합반대의 목소리가 확인되었고, 6월 16일에는 전체 직원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2,907명이 참가한 69일의 출근투쟁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통합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으니 철회할 이유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월 7일에 정부는 통합방침을 얘기했었고, 5월 23일에는 교과부 차관이 직접 구체적인 통합계획을 생명연과 KAIST에게 지시했었다는 것을, 그리고 청와대 과학비서관은 틈만 나면 생명연을 비난하면서 통합의 논리를 강변했다는 사실을.

따라서 이제 우리는, 모두가 함께 하는 투쟁으로 강제통합을 저지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연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출연(연)에 대한 강압적 통폐합 기도들이 일단 원점으로 되돌아갔다고, 다른 출연(연)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길고 힘들었던 여름이었지만, 우리는 출연(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자랑스럽게 썼습니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9월의 첫날을 맞아 실험실과 사무실에서라도 저 건너 가을이 오는 풍경을 잠시라도 맛보고 넘어가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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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거의 끝나다

완전한 승리라고 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통합은 일단 막아냈다. 이번 주까지는 확인이 필요하긴 하다. 오늘 속보에는 이렇게 썼다.

▣ 향후 투쟁에 대한 안내

생공투 속보 82호를 통해서 이미 알려드렸습니다만, 노동조합은 강제통합 저지를 위한 투쟁을 지난 주말(8/29)로 일단 중단하고, 앞으로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기로 하였습니다.

생명연-KAIST 강제통합에 관련해서는, △강제통합의 가장 중요한 진원지였던 청와대가 통합이 아닌 협력방안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교과부 또한 협력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으며,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 2차 발표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발표에서도 두 기관의 통합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내일(9/2)로 예정되었던 교과부 앞 1인 시위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1인 시위에 앞장섰던 조합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본관동 앞과 연구동 현관에 설치되었던 대형 플랭카드 3개와 정문과 후문에 내걸었던 플랭카드들도 지난 주말에 모두 철거하였습니다. 관심을 보여 주시고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또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강제통합 저지투쟁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시점은 생명연과 KAIST가 발전적 협력방안을 공식화하는 때라고 판단하고 있고,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 입장을 더 확인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기에, 아직 투쟁 종료 선언은 하지 않고 생공투 체제도 계속 유지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공투 속보도 오늘(9/1)부터는 매일 발행하지 않고 조합원과 직원 여러분에게 출연(연)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알려드릴 일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배포하게 됩니다. 생공투 속보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연(연) 10% 감원 계획?

한편, 조만간 발표될 정부의 3차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은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최소 10% 이상 높인다는 목표 아래 인력과 예산 효율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3년 동안 전체 출연(연) 인원의 10% 감원, △성과에 따른 급여 차등폭 확대 등 일반 공기업에 준하는 계획이 포함될 것이 유력합니다.

노동조합은 강제통합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대해서 조합원의 뜻과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해 대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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