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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실용정부에게 한마디

시민단체에서 짧게 한마디 하라길래

급하게 쓰긴 썼는데

어째 공허하다.

 

투쟁하겠다고 준비를 나름대로 해놓고도

막상 투쟁에 임박해서는

오합지졸처럼 흩어지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투쟁준비조차 부르짖는 사람이 몇 안되고,

앞장서야 할 사람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나도 말한 것만 제대로 실천한다면

제 자리걸음은 할텐데....쩝

 

암튼

투덜투덜 한마디 써놓고는

또 내 낯이 더 뜨거워진다.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 경총을 일컬어 경제 5단체라고 한다. 재계의 이익을 대표하고 대정부 압력단체 역할을 행사하는 단체들이다. 군사독재정권 시기와 문민․국민․참여정부를 두루 거치면서도 이들 단체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경제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노사문제조차 정부로 하여금 노골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도록 강요했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에서는 구속된 노동자수가 처음으로 1천명을 넘어섰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고 임금을 떼어먹은 악덕사용자가 구속된 사례를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를 자처하고 나섰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잣대를 벗어나서 오로지 경제발전에만 진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실제로 내세우는 정책들을 보라. 규제완화, 작은 정부, 시장경쟁, 민영화 등 아주 노골적인 재벌친화적 정책들이다. 거기에 노동자 서민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요컨대, 실용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보수이데올로기를 포장하고 옹호하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경제5단체의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 떠돌까.

청와대의 새 주인에게 쓴 소리 한마디 전하고 싶다.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용정부라면, 노동자 서민의 경제를 살리기보다는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들의 배만 불리는 실용정부라면, 국민을 섬긴다면서 법치를 내세워 노동자의 투쟁을 더욱 거세게 탄압하는 실용정부라면, 결국 노동자의 실용주의적 선택은 투쟁의 한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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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싸고 간편한 돼지고기 수육 만들기

지난 주에 미디어충청(http://cmedia.or.kr)에 실은 글을 그대로 옮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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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마시게 될 때나, 그럴싸한 반찬이 없다고 아이들이 투덜거릴 때, 내가 우선 차려내는 음식이 돼지고기 수육이다.

돼지고기는 값이 싸니까 큰 부담이 없고(소주 한 병을 포함해서 1만원이면 너끈하다^^), 고기를 삶는 동안 채소를 씻고 쌈장을 준비하여 김치와 밑반찬 두어 개 상에 올리면 30-40분 만에 술상이든 밥상이든 뚝딱 차릴 수 있다는 것도 좋다.

한번 해 보시라. 정말 쉽고 간단하다.

 

재료

돼지고기 600g(3-4인분), 된장 1큰술, 양파 1/2개, 대파 1대, 마늘 4-5쪽, 생강 1쪽, 마른고추 1개, 새우젓 적당량
-돼지고기는 얼리지 않은 것으로, 껍질이나 비계가 적당히 어울린 삼겹살, 목심, 사태가 좋다.
-돼지고기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여러 방법들을 써보았는데 된장을 넣어 삶은 것이 가장 무난했다. 다른 재료들은 있으면 넣고 없으면 생략해도 된다.

고기 삶는 순서

1. 냄비에 돼지고기가 잠길 정도의 물을 넣고 된장, 양파, 대파, 마늘, 생강, 마른고추 등등을 더해서 끓인다.


2. 돼지고기를 적당한 덩어리로 나누어 씻고, 팔팔 끓는 물에 넣는다. 다시 끓기 시작하면 마시다가 남은 술(소주, 맥주, 청주 따위)을 반 컵 정도 더해주어도 좋다.


3. 냄비 뚜껑을 덮고 약한 불로 줄여서 30분 정도 삶는다. 너무 오래 삶으면 맛이 팍팍해진다. 꼬치로 찔렀을 때 투명한 액이 살짝 나올 때가 먹기 좋을 만큼 익은 것이다. 새우젓에 찍어 먹는다.


돼지고기의 지방은 녹는점이 우리 체온보다 낮아서 대기오염과 식수 등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몸에 축적된 공해물질을 체외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예전부터 광부들은 삼겹살을 즐겨 먹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돼지고기는 효용이 높을 듯하다.

과학적 근거를 일일이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것 말고도 돼지고기에 관한 얘기들은 대체로 찬양일색이다.

돼지고기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있어서 혈관 안에 콜레스테롤의 축적을 막아주며 피의 흐름을 활발하게 한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즐겨먹는 중국인들에게 고혈압 환자가 많지 않다던가. 돼지고기는 단백질의 함량이 많고 특히 비타민 B1의 함량이 월등히 많다. 비타민 B1? 음식물 대사과정에 필수적인 기능을 하는 비타민으로 결핍되면 각기병에 걸리고 뇌 활동이 둔화된다고 했다. 여러해 전에 보고된 내용이지만, 돼지고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쌀에 이어 둘째가는 단백질과 비타민 B1의 공급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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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조 게시판에서...

누군가 이렇게 썼다.

-새로운 진보정당, 누구에게 이로운 정당인가?

 

그래서 나도 몇 마디 했다.

신랄하게 하고 싶었지만

'이&실'이라는 필자 또한 내 주변에서 혼자 끙끙거리고 있을 것 같아서

조심조심 내 생각을 적었다.

 

내 생각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대들'이 하는 얘기의 절반 이상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듯이,

내가 내뱉는 얘기의 2/3 이상을 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을 수 있겠다.

 

2MB의 문제가 아니라

한 세대를 걸쳐서 관통하는 문제라니깐...!!

 

아, 오후 6시가 지나고 이 시간까지

술 참 많이 마셨고, 회의는 의미있는 수준으로 했다.

술을 많이 마셔도

술에 혹여 취했어도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감출 수는 없는 법...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꿋꿋하고 소신에 찬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오늘, 내가 쓴 글>

 

'이&실’ 동지의 글을 매번 읽는 독자 중의 하나입니다. 처음 ‘이&실’이라는 아이디를 보면서 ‘이론과 실천’의 줄임말인가 하고 잠깐 생각했던 탓인지, ‘이&실’이라는 글자는 눈으로만 보고 입으로는 ‘이론과 실천’이라고 불러보곤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론과 실천이 통일된 삶을 꿈꾸어 왔던 저에게는 무척 호감이 가는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공교롭게도 민주노동당에서 다달이 내던 기관지도 ‘이론과 실천’이었네요-.-).

저는 우리 노조의 현안과 안팎의 관심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지혜롭게 글을 쓰는 동지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동지가 실제로 누구인지 알면 온라인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만나서 술 한잔 나누며 토론해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만, 그건 동지의 ‘의지’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니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모든 내용에 다 공감한 것은 아니지만, 동지의 글은 대체로 내게 부족한 부분을 성찰하게 하고 제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을 일깨워 주곤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읽기만 해도 흐뭇한 경우가 많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어제 동지가 올린 글(자유게시판 12627번, 새로운 진보정당, 누구에게 이로운 정당인가?)에 대해서는 한마디 참견하고 싶어졌습니다. Edmund Burke의 얘기로 시작되는 1번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히 토를 달고 싶지는 않고 새로운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진 2번 내용에 대해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편의상 동지의 글 흐름을 따라가면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나서 끝에 가서 종합하도록 하겠습니다. (따옴표는 제가 임의로 표시한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는 19세기 유럽의 노동자처럼 진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노동자의 편을 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정작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진보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하고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명사와 이데올로기 사이를 오가는 단어이기는 합니다만, 한국에서의 진보는 누가 쓰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보수꼴통들은 진보와 친북좌파를 같이 뭉뚱그려 사용하고, 중도우파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보수주의적 색깔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들을 진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진보를 사회과학적인 개념으로 풀면 현재의 사회체제를 개혁하거나 변혁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저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쓰든 지난 대선의 결과를 보면, 우리 노동자는 진보에 대한 환상을 갖기보다는 냉정하게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듯이 보이고,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노동자의 편을 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든다고 한다. 어떤 진보냐? 새로운 진보라고 한다. 어떻게 새로운가?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라는 슬로건을 높이 들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하는 것이 어디 노무현 정권뿐이겠는가?”

-새로운 진보정당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할 것 같은 예단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진보정당은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논의만 무성한 단계입니다. 저도 의견이야 여러 가지 있지만 아직은 지켜보는 수준에 가깝습니다. 저처럼 가까이서 보든 아니면 관망하는 입장에서 보든, 새로운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과 매도는 성급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동지의 입장에서는 ‘안 봐도 비디오’ 수준이라고 한다면 제가 뭐라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종북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분당이라... (이하 부분 인용) 참으로 궁색한 변명... 예견됐던 문제들을 이제 와서 종북주의라고 매도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분당을 합리화하기 위한 주장치고는 너무 초라.... 일심회 사건이 결정적이라고 하면... 정말 비상식이다.”

-동지가 그간 올린 글들을 다시 읽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2005년 이후 동지가 올린 글 중에서 이토록 감상적으로 질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궁색하고 초라하고 비상식적인 사람들’, 바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이겠죠? 동지의 비판적 안목이 한순간에 비난 일색으로 넘어가게 만든 ‘그 사람들’의 책임에도 눈길이 가지만, 그래도 의아스러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예견되었던 문제들’은 맞습니다. 자주파의 주된 이념은 민족주의이고, 그것은 애초에 진보의 이념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친미 반공 이데올로기를 금과옥조처럼 섬기는 세력이 권력을 잡아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면서 민족주의도 한국에서만은 하나의 진보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한 현실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으로서의 고유한 색깔을 갖고 노동자 민중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진보정당을 그들의 2중대로 만드는 일에 더 치중하게 했고, 결국에 민심은 노무현과 민주노동당을 싸잡아 한 통속으로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대통령선거 과정 그리고 그 평가 과정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문제들’이 더 이상 덮어둘 수 없을만큼 커져버린 것이고 그 결과는 지금 진행되는 바와 같습니다. (두 줄로 쓰고 말 내용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필요하다면 추후에 또 쓰도록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탈당이며 분당이며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길밖에 없었느냐 하고 묻는다면 저는 애써 변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원이 아니면서도 손을 내밀면 기꺼이 민주노동당을 후원했던 저의 벗들에게 요즘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다닙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주창하면서도 노동자를 선거 기계로 전락시킨 데 일차적 책임이 있다. 노동자를 주체로 내세우지 못하고 객체로 대상화시켰다는 말이다.”
-저도 상당 부분 인정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 뛰고 있는 동지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단병호 위원장(국회의원)의 탈당의 변에 실린 내용을 인용합니다. 동지의 지적과 맥락이 같습니다. “당 위기의 본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그 첫째입니다. 민주노동당 당원의 40%가 노동자 입니다. 그 대다수가 민주노총 조합원입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있지만 민주노총 내에 민주노동당 당원은 없었습니다.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그리고 당면한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당원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자 대중은 행사와 선거 때 그리고 재정을 조달하는데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어떻게 노동자의 미래가 될 수 있겠는가? 노동자에게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급 정당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정당’은 그 디딤돌이 아니다. 노동자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다.”
-동지의 민주노동당 비판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당 간부의 한 사람으로서 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반성과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고 요즘 제 마음이 그렇기도 합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노동자의 미래다, 하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나 동지가 참여해서 노동자의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지가 말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급정당’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지는 민주노동당의 연장선위에 놓여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노동자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라고 단언했는데, 동지가 말하는 ‘계급정당’은 아직 실체가 없습니다. ‘이론’과 ‘이상’은 있고 ‘실천’과 ‘실체’가 없다면 공허하지 않습니까? 물론 동지는 그러한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실천적 결단과 용기를 낼 것으로 믿습니다만....

급하게 참견하려다 보니 말꼬리를 다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의하신다면, 진지한 후속 토론을 통해서 동지의 생각을 더 알고 싶고 제 생각도 밝히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것입니다. 지금,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적극 나서는 동지들이 있고, 노동자 계급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동지들도 있고, 민주노동당을 되살려보겠다고 애쓰는 또 다른 동지들이 있고, 이러한 상황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동지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의 변혁과 진보를 위하여 앞장서겠다고 하면 누구에게나 힘든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노조활동이든 당 활동이든 서로 북돋아주고 격려해주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그 길이 차이가 분명해질 때 토론하고 비판하면서 더 큰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길을 나서기도 전에 그 길은 아예 길이 아니라고 단정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지는 맙시다. 동지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좀 더 많은 조합원들이 들어서기를 바라고, 조금은 다른 길 위에서 저도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아직은 저 자신조차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분명한 선택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자리잡지 못하면 노동자의 미래는 끝없이 암담하다는 생각에서 적어보았습니다.

이&실 동지와 여러 동지들의 애정어린 의견을 기대합니다.



새로운 진보정당, 누구에게 이로운 정당인가?

 

1.

1789년 프랑스 혁명은 귀족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영국의 귀족들이 심하게 쫄아 있었다, 그곳에서 혁명이 일어날까봐. 그 찰나 버크라는 인간이 나타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성’이라는 글을 쓰면서, 당시 시민 혁명을 자극하던 자연권, 평등, 자유, 이런 것들을 졸라리 씹어댄다. 요즘 그랬다가는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이겠지만, 이것이 근대 정치적 보수주의의 출발점이다.

귀족들 중심으로 보수주의 장막이 펼쳐졌지만,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혁명은 멈추지 않았다. 자유, 자유, 자유.... 1818년, 1830년, 1848년, 1871년..... 그야말로 유럽의 19세기는 혁명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는 그렇게 혁명으로 시작됐고, 그 혁명 때문에 자유주의, 민주주의라는 이름표를 단 ‘자본주의’가 국가 체제로 자리 잡게 된다. 혁명때문에...

진보는 혁명으로, 그리고 민중들의 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진보의 결과물이, 그리고 혁명의 결과물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는 않았다. 돈이 있는 소수의 시민들은 공장을 짓고 돈을 벌 수 있는 자유가 생겼지만, 대다수의 없는 자들은 그 공장에 자기의 노동을 팔 수 있는 자유밖에 없었다.

똑같이 피를 흘려 진보를 이루었는데, 그렇게 얻은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인데,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민주란 말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자유란 말인가? 노동자도 혜택 받을 수 있는 자유와 민주가 필요했다. 또 다른 혁명이 필요했다. 시민들이 귀족에 대한 혁명을 이루었듯이, 시민 안에서 노동자가 자본가에 대한 혁명을 필요로 했다.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자본가들이 보수주의자가 된다. 19세기의 보수주의자들처럼 자유주의자(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혁명을 걱정한다. 노동에 대한 착취가 없으면 자본은 축적되지 않으니 당연하지. 자본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혁명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다.

그래서 명명한다. 자본가인 자기들이 한 것은 ‘자유주의적 진보’요, 노동자들이 하려고 했던 것은 ‘사회주의적 급진’이다. 자유와 민주를 향한 두 계급의 변주곡이 20세기 하늘에 울려 퍼진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진보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다.

2.

우리 노동자는 19세기 유럽의 노동자처럼 진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노동자의 편을 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정작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진보적 지식인의 대다수는 오히려 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아니 결국 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가 더욱 더 안정적으로 작동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누군가 진보를 말할 때, 노동자라면 그것이 어떤 진보인지, 누구를 위한 진보인지를 반드시 되물어야 하는 이유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든다고 한다. 어떤 진보냐? 새로운 진보라고 한다. 어떻게 새로운가?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라는 슬로건을 높이 들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하는 것이 어디 노무현 정권뿐이겠는가? 진보를 운운하는 한국의 먹물들에겐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매우 주요한 전술임을 이제,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안다.

그런데, 종북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분당이라...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정당으로 출발할 때 이미 예견됐던 문제들을 이제 와서 종북주의라고 매도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 오랫동안 참아왔는데 이제는 도저히 같이 하지 못하겠다고? 분당을 합리화하기 위한 주장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민주노동당이 선진적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종북주의는 아니다. 보수 언론 덕택에 속칭 ‘주사파’의 일편단심은 이미 누구나 아는 상식 아니었던가. 무엇이 그렇게 새삼스럽고 놀랄 일이라고, 일심회 사건이 결정적이라고 하면, 이건 정말 비상식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주창하면서도 노동자를 선거 기계로 전락시킨 데 일차적 책임이 있다. 노동자를 주체로 내세우지 못하고 객체로 대상화시켰다는 말이다. 국회의원 한 사람을 당선시키면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노동자 농민에게 주입시켰던 민주노동당이 아니던가. 분당을 주도한 속칭 ‘전진’은 이러한 선거주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어떻게 노동자의 미래가 될 수 있겠는가? 노동자에게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급 정당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정당’은 그 디딤돌이 아니다. 노동자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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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병호 동지의 탈당의 변

단병호 위원장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사퇴하면서 발표한 글.

...마음이 무겁다

...내가 새겨들을 대목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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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민주노동당을 아끼고 사랑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민주노동당에 보내주신 격려와 성원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 뜻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평생 무거운 짐 될 것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여기까지 함께 만들어 온 모든 당직자 동지들과 당원 동지 여러분 미안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는 사회변혁의 꿈 하나를 안고 견디어 왔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좀더 잘했더라면 당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이 회한은 제 평생을 두고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염원하며 힘들게 노동을 하면서도 당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그리고 헌신적으로 활동해 오신 노동자 동지들 감사합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국회에 들어간다고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어려울 때 그리고 그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국회의원의 직을 가지고 일한 사람으로서 탈당의 결단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민주노동당은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지 못하고, 따라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이 당선되는 등 민주노동당은 급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토대가 튼튼하게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의 화려한 성장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의 토대를 굳건하게 다져야 할 때에 2008년 제일야당, 2012년 집권이라는 신기루를 쫓아다니며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가 위기 본질

 

당 위기의 본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그 첫째입니다. 민주노동당 당원의 40%가 노동자 입니다. 그 대다수가 민주노총 조합원입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있지만 민주노총 내에 민주노동당 당원은 없었습니다.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그리고 당면한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당원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자 대중은 행사와 선거 때 그리고 재정을 조달하는데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당원을 당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재조직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그나마 있었다면 현장분회 조직화 방침이 유일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에 위임된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와 민주노동당의 노동부문 할당제는 결과적으로 당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으로 작용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언제부터인가 운동의 건강한 풍토는 사라지고 보수정치판의 잘못된 풍토가 당을 지배하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보수 정당과 달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열정과 헌신성, 책임성과 도덕성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동당에 이런 강점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수많은 토론과 결정에 비해 실천은 항상 미미하였습니다. 사업에 대해 진지하게 평가하고, 그 평가에 대해 진솔하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기풍은 사라지고 논쟁만 남아 있습니다. 공은 가까이하려 하면서도 과와 책임은 멀리하려고 합니다. 진보정당에서 가장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풍토들이 또아리를 틀고 굳어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떠나는 이유

 

비대위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명을 바꾸고, 강령을 개정하고, 시민단체 명망가 몇 명이 더 당에 합류한다고 해서 진보정당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의식화된 노동자 대오가 굳건하게 세워질 때만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현재까지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문제인식에 충실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합니다. 이것이 제가 민주노동당을 떠나는 이유 입니다.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사임합니다. 저는 4년 6개월 동안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과의 관계설정, 노동부문 할당제, 배타적 지지 등 모든 것이 제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결정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질적 발전을 저해하는 잘못된 것이었다는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러한 잘못된 결정을 여전히 조직적 방침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방침은 빨리 고치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민주노총 지도위원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18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포항 남구에서 민주노동당과 함께 포항의 변화를 만들어 보자고 열심히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지지를 요청했습니다. 2월 2일까지 그렇게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면서 민주노동당이 서민의 행복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민주노동당과는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인 도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의 성원을 소중하게 키워내지 못한 책임에 대해 조용히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한 사람의 평범한 노동자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이 정치활동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만날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와도 함께 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로 좌절하고 있을 노동자 동지들께서도 다시 한번 떨쳐 일어나 정말 제대로 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만들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20일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단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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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그리운 날이다

시를 겁나게 잘 아는 친구 얘기

- 조 영 관

 

어쩌다 곰장어 포실하게 익어 가는 포장마차에서

몇 자 끼적거리다가 들키는 바람에

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 왈

가슴을 때리면 때리는 것이지

때릴까 말까 그렇게 재는 것도 시냐고

저 푸른 풀밭 거시기 하면서 끝나면 되는 것을

뭐 좋은 말 있을까 없을까 겁나게 재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고

친구는 심심한 입으로 깐죽거리며 얘기했는데

 

유행가 가사처럼

자기 깐에 흥얼흥얼 불러제낄 수 있으면 되는 거지

업어치고 뒤집어 쳐서 깐 콩깍지인지 안 깐 콩깍지인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가게 써 놓은 것도 시냐고

툭 터진 입으로 잘도 나불대다가는  

거울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걸레로 박박 문대 닦아내드끼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들 머리에도

훤하게 쏙쏙 들어오게 고렇게만 쓰면 될 것이지

기깔나게 멋만 부려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라고 친구는 겁나게

싸갈탱이 없이 얘기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니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해 놓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천장만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래 짜샤 나도 안다 알어 그 정도가 될라면

얼마나 지지고 볶고 엎어치고 뒤집어치고

대가리를 얼마나 질끈질끈 우려먹어야 되는지 나도 안단 말이다

허지만 요즘 같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그런 고민을 해쌓다니

정말 신통방통허다면서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다가는

달랜답시고 어깨를 툭툭 치며 술까지 채워줬는데

 

그래 죽도 밥도 안 되는 시

고것도 사치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다마는 하고

서두를 떼어놓고도

시가

유행가 가사처럼 술술 그렇게 흘러나오기가

쉽냐 임마 하고 말하려다가

술잔만 빙빙 돌리며 고개를 팍 수그리고 찌그러져 있었는데

한심하다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친구는 입맛을 츳츳 다시며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더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흔적을 남기는

우리 인생살이 같이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 같지 않고

욕 같으면서도 욕이 되지는 않는

망치로 때리는 것 같지만서도 호미로 가슴을 긁는 시가 될라면

졸나게 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어려운 시가 될라면

얼매나 깊은 터널을 지나야 하는지 니가 어떻게 알겄냐 자식아, 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웬일로 한숨 같은 기침만 터져 나오는지

연기 자우룩하게 곰장어는 익다 못해 타고 있었는데

 

<실천문학 2002년 가을호 신인상 당선작>



조영관

 

2007. 2. 20. 간암으로 세상과 작별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함평 학다리중학교 졸업

성동고 문예반 활동

서울시립대 문학동아리 '청문회' 활동

1984년 영문과 졸업

도서출판 일월서각 근무

1986년 이후 노동현장 활동

 

1999년부터 다시 글쓰기 시작함.

2000년 봄, <노나메기> 창간호에 시 <산제비> 발표

2002년 <실천문학> 가을호 실천문학 신인상 시 부문 당선

 

 

조영관 시인의 글 중에서....

-'영근이가 보고 싶다' 에서 한 문단 인용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가슴을 친다. 작년 5월 이맘 때였을 것이다. 영근이 나를 불렀다. 세월의 힘을 간당간당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부평고 옆 그 낡은 쪽방에서 2박 3일을 같이 있었는데 그것은 뭔가라도 그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어적어적 먹어대는 내가 부끄럽게 “죽기로 작정했니.” 해도 배달된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술만 찾았다. 밥술을 뜨다가 대책없이 울었고 그가 울면 나도 울었다. 존재의 무거움이, 또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업을 놓지 못하는 시인의 운명이, 이제 내 것이 아닌 사랑이, 5월 햇살의 눈부심이, 초라함이, 비천함이, 팽팽함이, 낯설은 것이, 안타까움이, 그 모든 것이 눈물로 찾아와서 우린 얼굴을 서로 부벼대면서 울고 또 울었다. 같이 가장 많이 울어 보았던 사람이 박영근일 것이다.

박영근(1958-2006)

-노동자 시인

-취업공고판 앞에서, 저 꽃이 불편하다, 등 시집 다수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자

-2006. 5. 11. 결핵성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죽음.

 

평균 수명 80을 바라보는 이 즈음에

두 노동자 시인은 너무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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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 사퇴서

당직 사퇴서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당 정책위원장직을 사퇴합니다.

 

2008. 2. 13.

 

이 성 우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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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오전에 대전시당 당직자 탈당선언 기자회견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시당 사무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회견문을 봤고, 오늘 급히 운영위원회를 해야겠는데

당직사퇴를 하면 고맙겠다고, 성원에 문제가 있다고....

 

기꺼이, 곧바로 미디어충청 사무실에 가서 한 줄의 사퇴서를 써서 팩스로 보냈다.

 

국민승리21부터 시작하면 11년쯤 되었구나,

총선에 출마한 것 빼고는 당의 일에만 온전히 몰입했던 건 얼마 되지도 않고

특히 이번 정책위원장역은 거의 안했다고 하는 게 맞지만

그래도 회한은 많다.

 

숱한 모임에 들고는 했지만

내 스스로 탈퇴한 최초의 조직이 민주노동당이 되겠구나.

당원번호 75번, 세월 지나도 의미있는 기억으로 남게 될까....모르겠네

 

또 새로운 일을 벌여야 한다는 게 작지 않게 마음의 짐이 되지만

이런 게 내 팔자려니, 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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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의 넘실대는 불길 앞에서는

소방차에서 제 아무리 쏟아대는 물길조차 다 기름을 끼얹는 것 같더라.

 

활활 훨훨

5시간만에 6백년 세월이 훠이훠이 다 타버렸고

 

검붉은 피눈물이 다 지고 난 후에사

꺼먼 잿더미 위로 향불이 피어오르듯

허어연 물줄기가 뿌우옇게 퍼부어지고 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면

결정을 미루는 것도 사치인 것을

죽거나 다른 삶을 살고 나서야 알게 되느니.

 

근조 숭례문이라,

너에게 이승 아닌 저승의 새 삶이 있을지어다.

 

 

<덧붙여>

불이라는 게 그렇더라구요.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꾸어버리죠.

 

지금 나한테 혹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머뭇거리거나 고민을 길게 할 틈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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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당대회를 가지 않고

오후 내내 인터넷 생중계를 켜놓고 있었다.

 

이른바 '일심회" 관련하여

원안 삭제안이 통과되자마자 우르르 퇴장들 하고

지금 의사정족수 662명에서 8명이 모자라는 654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덕우 의장이 막 산회선언을 했다.

9시간 내내 흐르게 두었던 생중계 화면을 끌 시간이 되었다.

 

중계되지도 않을 무수한 자리마다

넘치는 울분과 비탄과 통곡들은 어디로 흘러들 갈까,

나는

이제 어디에 몸과 마음을 두어야 하나....

 

내가 붙박힌 곳에서부터 무어라도 시작해야겠지.

연휴가 임박해 있으니

당분간은 방콕모드로 가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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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6

9명의 동지들이 2명과 7명으로 나뉘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5시간 가까이 날아왔다.

 

베트남 시간으로는 밤 11시(한국시간 새벽 1시)에 도착했고

입국수속, 짐 찾기, 마중나온 차량 찾기로 사오십분 쉽게 보내고

노이바이공항에서 하노이 시내의 숙소로 40여분 달리는 동안에

도로는 초저녁에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한국의 시골마을보다도 더 인적 없고 고즈넉하다.

 

몇잔의 술을 마시고

피곤에 겨운 동지들은 쉽게 잠에 취한 듯하다.

 

호텔(여관)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로비바닥에서 이불깔고 자고 있는,

아이인지 사춘기 소년인지 알 수 없는 묘령의 청춘이 눈에 어른거려

밤깊은 이 시간, 어디 나가보지도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내일 앞에 우리 앞에 펼쳐질 이국의 풍광을 상상해 본다.

 

여러날 잠을 설쳤으니, 이젠 잠 좀 잘까?

그냥 습관처럼 세상의 온갖 시름 다 아는 척 사색이나 할까?

 

내일은, 20세기에 드물게 승리한 혁명가 중의 한 사람,

호치민의 썩지 않은 시신을 보고 그 주변도 둘러보고,

그처럼 썩지 않으면 좋을 산과 물 깊은 사파의 자연 속으로 간다.

 

다시 하노이로 돌아오면 3일 후 새벽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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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한해가 새로 시작하니

여기저기 써야 할 게 많더라.

 

문자로 무수히 온 덕담들에 대해서

여러날 후에 전화로 일일이 응답하다가

미처 다하지 못하고 끝나기도 했다, 미안해라.

 

날마다 무수히 일어나는 사건들 앞에서

블로그에다가 쓰고 싶은 말이 넘치기도 하는데

우유부단함에다가

오지랖 넓게 안 끼어드는 데가 없다고 자타가 타박을 하는 터라,

그냥그냥 지나치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민주노총, 당, 우리 노조가 삼위일체로

끝이 어딘지 모를만치 추락하고 있는데

마냥 겉돌기만 할 수도 없는 것, 

어디 한 곳이라도 중심을 잡아야

여러군데 걸쳐놓은 내 일들도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니....

 

이제 슬슬

말문을 열며 몸으로 나서 굴러보기로 한다.

어디로 향할지 어떻게 될지, 낸들 잘 알겠냐만.... 

 

....아래 글은 지난 주에 참터 뉴스레터에 허겁지겁 막차로 실린 것이다.



 

무자(戊子年)이 밝았다. 무자(戊子)는 갑자, 을축으로 이어지는 육십 간지 중에서 25번째에 놓인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한해에 두 번쯤 집중적으로 그해의 간지를 주워듣곤 했다. 바로 1월과 12월이다. 1월에는 한해가 시작되었다고 매스콤에서 난리법석을 떤다. 예컨대, 올해는 무자년이다. 그러니까 쥐의 해라는 말이다. 쥐띠인 사람들의 성격과 운수는 이러이러하다.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물 중에서 쥐띠는 아무개 아무개가 있고, 그이/그녀들의 올해 꿈과 포부는 이러저러하다. 혹은 황금돼지해(2007년, 정해년)를 맞아 어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돼지우리를 구청 광장에 만들고 돼지를 키우고 있다. 이런 풍경, 연초마다 신문과 방송에서 되풀이하면서 벌이는 소동이다.


그리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해의 간지가 무엇인지 까마득히 잊고 산다. 그걸 다시 기억하는 것은 12월 중순이나 될까, 다시 신문과 방송에서 무자년이 저물어 가노라 하면서 설레발을 치기 시작하면서이다. 곧 여기저기서 탄성과 회한이 쏟아진다. 謹賀新年과 Best Wishes 어쩌고, 한자와 영문이 섞인 카드의 여백에는 다시금 육십간지가 등장한다. 무자년 한해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소원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따위.


별다른 의구심을 던지는 일 없이 이러한 풍토에 우리는 대체로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어쩌면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현상에 대해서 구지 시비를 걸 생각도 없다. 실은, 일 년에 두 번이 아니라 네 번씩 신문과 방송에서 벌이는 호들갑은 좀 억지스럽다. 음력으로 따지면 아직은 정해년 섣달이니까, 우리는 조만간 돼지해가 가고 있다고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서 재롱을 떠는 방송인, 연예인들을 봐야 한다. 이제 설날이 오면 다시 덕담이 넘치고 평소의 서너배가 넘는 문자메시지 세례를 받을 것이고, 이미 와 있다던 무자년이 다시 새해로 등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언젠가부터 간지가 들먹여질 때 나는 참 고약한 기분에 빠져들곤 하는데, 그것은 지난 일 년 내가 계획했던 일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 결부되어 있다. 사업계획이 어떻고 개인적인 목표가 어쩌고 하면서 거창하게 시작한 나의 계획은 한해의 끄트머리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새로운 간지가 도래하는 때 나는 습관처럼 계획을 세우고, 그 간지가 끝날 때는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계획으로 점철된 나의 한해를 본다. 그러고도 철저히 반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곤 해왔다.


참터가 출범한지 햇수로는 5년째 접어드는 해, 여느 해보다도 사업계획을 놓고 토론이 열띠게 진행되어 왔다. 지금 여기에 딱 맞는 과학상점운동의 사례가 없다는 측면에서, 참터가 가야하는 길은 늘 새롭고 처음 가는 길이다. 올해 참터가 세우는 계획은 집행위원뿐만 아니라 운영위원과 전체 회원들의 활발한 소통과 토론을 통해서 한해의 끝까지 내내 모두의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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