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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 명 해고당했는데도 세상은 조용해요"

  • 등록일
    2005/02/19 23:52
  • 수정일
    2005/02/19 23:52
장기투쟁 중인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과 분노 ***********************************************************************디지털말 here@digitalmal.com " 대우자동차는 1천7백50명 짜른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 우리는 7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됐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계약직들은 원래 파리목숨이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건지…." 지난 3월 29일, 사상 초유의 전화국 점거투쟁을 벌이다 연행됐던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가 즉심으로 풀려난 뒤 털어놓은 얘기다. "왜 전화국 점거라는 극한 투쟁을 택했냐"는 질문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봄이 갔고, 여름이, 가을이 지났고, 이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현재, 벌써 노조는 투쟁 3백일째를 넘어서고 있다.


11월 7일 밤 10시,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두툼하게 옷을 챙겨 입고 배낭을 맨 노조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린다. 11월 6일, 서울 모처로 집결하라는 노조의 방침에 따라 각 지방에서 2차 투쟁을 위해 상경한 한통계약직 조합원들이 오늘밤은 서울본부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휴대폰은 모두 노조에서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조별로 한 분도 빠짐없이 핸드폰을 수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투쟁이 임박했다는 신호라도 되는 듯 보안유지를 위해 휴대폰을 수거하겠다는 지도부의 방침에 누구 하나 주저함이 없다. "별로 긴장되진 않아요. 여기서 그만둘 순 없잖아요.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길게 싸우게 될지 아무도 몰랐어요. 하지만 갈수록 정권과 한국통신은 우릴 벼랑으로 내몰고…. 갈 때까지 한번 가 봐야죠." 경북 구미에서 100번 교환원으로 일했던 이현정 조합원(26). 그는 이번 상경이 곧 2차 투쟁을 예고하는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싸우다 보면 복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만 갖고 시작했던 싸움, 이젠 이 투쟁이 단순한 복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와 공기업 한국통신의 잘못된 구조조정 정책을 바로잡는 것임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시도했던 예전(3·29 전화국 점거 때)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제는 끝장 볼 각오로 투쟁하겠다"고 다부지게 말한다. 지난해 12월 13일, 공사쪽의 '계약직 7천 명 전원 계약해지' 방침에 맞서 파업에 들어갔던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필수공익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사측이 조정기간 중 불성실하게 교섭에 임했다"며 중재회부에 넘기지 않고 이례적으로 '조정 종료' 결정을 내릴 만큼 노조의 파업은 정당성을 갖고 출발했다. 한국통신쪽은 계약직노조와의 4차례에 걸친 단체교섭에서 "2001년 2월까지 구조조정을 일단락 짓기 위해서 계약직 해고는 불가피하다"는 입장만 전달했을 뿐 계약해지의 어떠한 원칙도 제시하지 못하고 해고방지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투쟁 3백 일째 넘긴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 이 같은 구조조정의 허상은 계약해지와 함께 선로유지보수 업무를 위탁한 도급업체에 지불한 비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5백여 명의 계약직이 도급업체로 넘어갔다고 추정되는 서울의 경우, 한국통신이 산출한 올 한 해 도급액(물자비 제외)은 2백8억 원이다. 세금 등을 뺀다고 하더라도 한국통신이 도급업체에 지출하는 금액을 1인당 비용으로 추산한다면 3천5백∼4천만원꼴이다. 계약직들이 대개 월 80만∼90만 원, 연봉 1천만 원 가량 받아온 것에 비하면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실제 계약직 12명이 도급업체인 (주)케이코하이텍으로 넘어간 화곡전화국의 경우, 도급액은 4억 원, 역시 1인당 연간 3천3백여만 원 수준으로, 계약직일 때보다 한국통신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3배 더 많다. 95년초 계약직으로 입사한 대구의 박 아무개 조합원은 "6년 동안 휴가 한 번 안 쓰면서 정규직이 되는 그 날만 꼽으며 일했다. 같은 일 하면서 정규직보다 2∼3배 적은 임금을 받을 때마다 화도 났지만 정규직이 되면 다 해결될 걸로 생각했다. IMF 전에는 그래도 2∼3년 일 한 사람들은 정규직이 됐으니까 나도 기대가 컸다. 청춘 다 바쳐 일했다. 그런데 한국통신은 정규직을 시켜주기는 커녕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하는데, 바보가 아닌 바에야 투쟁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처음부터 노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박씨는 "도급업체로 넘어간 사람들 중에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 업체가 폐업하는 바람에 또다시 실업자 신세가 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유연화라는 것이 필요 없으면 짜르고 버리는 것이란 걸 뼈저리게 알았다"며 "그래서 파업을 노동자의 학교라고 하지 않느냐"며 웃는다. "아버지 병환 때문에 3·29 전화국 투쟁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정말 가슴에 남는다"던 김삼배 조합원(34)은 3개월 단위로 또는 1개월 단위로 계약서를 반복 갱신하면서 1년 3개월을 근무하다 해고통지서 한 장 받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자신이 노조 일에 적극 나서자 고향 어른들은 "정부하고 싸우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며 그만하라는 성화뿐이셨단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 여기서 그만둔다면 너무 후회가 클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동지들을 떠나보냈는가. 혹한이 몰아닥친 올 1월 15일 집회 도중 쓰러진 이동구 조합원(29)은 반신마비 상태가 됐으며, 올 5월 16일 한승훈 조합원(41)은 13년 동안 일해온 일터에서 쫓겨난 뒤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장기간 농성을 해 오다 장파열로 끝내 숨졌다. 또한 3월 29일 목동전화국 점거 이후 구속된 홍준표 위원장은 차가운 감옥에서 이번 겨울을 나야 하지 않는가. 대전에서 5년 동안 선로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다 계약해지와 함께 노조 쟁의부장으로 일하게 된 한창원 조합원(29)은 "현재 회사는 위로금을 얼마 얹어줄 테니 도급으로 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데, 우리는 공기업 한국통신의 그릇된 구조조정 정책을 바로잡고 일터로 돌아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막가파식' 레미콘 사용주 때문에 교섭도 못해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있는 도급계약서를 이 참에 없애버려야 해요. 말만 그럴싸하게 개인사업자이지, 새벽 1시건 3시건 물량이 있다고 나오라고 하면 자다가도 운전대를 잡아야 돼요. 출근이 불량하면 곧바로 배차정지 같은 징계를 당하죠. 정말 노조란 걸 몰랐으면 지금도 노예처럼 살고 있을 거예요." 유진레미콘 부천공장 임두순(39)씨 말이다. 레미콘 운송기사들은 대부분 입사할 당시 정규직이었다가 90년대 들어 장기근속자가 늘어나면서 임금이 높아지고 차량의 노화로 수리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에 지입형태로 고용계약이 변경됐다. 지입제가 도입되면서 레미콘 운송기사들에게 닥친 심각한 문제는 현격한 임금저하였다. 정규직이었을 때는 회사가 차량관리비 등을 지원했지만 '개인사업자'가 되면서부터 이를 모두 운송기사들이 부담해야 했다. 실제 유진레미콘 소속 한 운송기사는 한 달 평균 1백20여 차례 콘크리트를 실어나르면서 연간 4천5백여만 원을 번다. 하지만 기름값 1천8백여만 원, 차량 보험료 1백30여만 원, 정기점검 1백40여만 원, 타이어 3백여만 원, 일반정비 3백20여만 원 등 개인사업자로서 부담해야 할 지출이 연간 3천5백여만 원에 이른다. 연봉 5천만 원대 고액 소득자라고 하지만 실제 이들에게 쥐어지는 돈은 연봉 1천만 원. 한 달에 1백만 원을 갖고 가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여기에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료 지출과 만약 사고가 난 경우 범칙금, 수리비 등까지 합한다면 그 수입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이 수월한 것도 아니다. 공사현장의 작업속도에 맞춰 콘크리트를 날라야 하는 업무특성상 이들의 업무는 밤낮이 따로 없다. 특히 기온이 높아 낮 시간 작업이 어려운 여름에는 며칠씩 철야를 각오해야 한다. 유진레미콘 광주공장 장병권씨는 "작업시간이요? 뭐 현장이 마무리돼야 일이 끝나는 거죠. 일이 많을 때는 연속으로 쉬지 않고 72시간을 일해 본 적이 있어요"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노조를 만들고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에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요일만이라도 쉬고 싶다" "운반단가 인상하라"는 소박한 요구를 내걸고 시작된 레미콘 운송기사들의 파업이 1백70여 일 동안 계속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형식상 지입차주이지만 합법적으로 노조설립신고필증도 받고 노동위원회나 지방법원에서도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노사간 단체교섭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여졌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 지입차주들의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한 차례도 교섭에 나서지 않은 사용자들의 반발은 예상 외로 강했고, 이에 맞서 레미콘 운송노동자들은 전 조합원 집단단식, 여의도공원 농성, 당산철교 밑 농성, 자전거전국순회투쟁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강고한 투쟁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9월 5일에는 인천지부 사무처장인 안동근씨가 용역깡패에게 폭행 당한 후 후유증으로 숨지는 일도 있었다. 잠시 생계유지를 위해 공식적인 파업은 일시 중단했지만 조합원들은 오는 11월 26일 있을 레미콘 운송기사들의 노동자성 여부에 대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며 언제라도 노조를 인정받고 요구안을 관철시켜 나갈 제2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교섭을 거부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은 제일레미콘 김재승(48)씨는 "파업을 하면서 생활도 어려워졌고, 해고까지 당해 직장에도 못 돌아갈 처지인데 후회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제까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당하면서 살아왔던 내가 노조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라며 느긋한 미소를 띤다. 그런 건설운송노조는 11월 11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단체부문 전태일노동상을 탔다. 장문기 노조위원장은 "저희보다 더 열심히 투쟁한 곳도 많은데…"라며 겸손해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해요. 우리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요." '불법파견 판정' 내리면 뭐합니까 올 한해 비정규 투쟁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불법파견 문제였다. 98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에서는 파견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 아래 26개 업무에 한해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캐리어는 6개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업무에 근로자를 공급받아 써 왔고, (주)SK는 정규직이 담당해야 할 업무를 인사이트코리아와 대송텍이라는 도급업체 노동자들이 대체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해 왔다. 노동부는 캐리어와 SK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 2년 이상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것을 명령했지만, 이들 업체 모두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나마 (주)캐리어는 계속되는 하청노조원들의 파업과 사업주(전무이사) 구속으로 2년 이상 캐리어에서 근무해 온 하청노동자 1백여 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지만, SK는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노동자 1백30여 명을 전원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계약직 채용을 거부하는 지무영 노조 위원장 등 간부 4명은 지난해 11월 1일자로 해고했다. 지 위원장 등 4명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이에 대해 서울지노위는 "해고 당시 2년 넘게 계속 근무했으므로 SK는 파견법에 따라 신청인들을 이미 고용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계약직 채용제의 거부를 이유로 직접 고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 10월 17일 SK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재심신청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파견대상 업무가 아닌 곳에서 근무했던 3명은 SK의 직접 고용의무가 없다"고 판정했다. 이에 항의하며 서울 마포구 공덕동 중노위 앞에서 집회가 열렸던 10월 19일, 당시 지 위원장과 함께 해고된 왕종현 사무국장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우리는 불법파견이더라도 2년 이상 일했으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노동부장관의 국정감사 답변과 서울지노위 판정대로 될 것이라 믿었는데 파견대상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3∼8년 동안 일한 우리를 직접 고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다. 결국 왕 국장은 "이 판정대로라면 사용자들이 오히려 파견대상 업무를 축소하자고 요구할 판"이라며 허탈해 한다. 한편, 점잖고 고상한 사업주임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나선 사람들도 있다.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앞서 살펴본 레미콘운송기사들과 같이 위탁·도급계약을 맺고 개인사업자로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는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있는 사업자입니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출퇴근 지시를 받고 매일매일 업무일지를 써서 제출하여야 하며, 날짜에 맞추어 수금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수당이 깎이고 심지어 밉보이면 저처럼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대한생명에서 해고된 정방림씨. 정씨는 20여 년을 가정주부로 살다가 같은 동네에 살던 분으로부터 '보험회사에 시험만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보험회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처음엔 완전히 여왕 대접이었죠. 저도 성공사례 교육을 받으면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씨는 야심차게 출발했던 보험설계사로서의 생활을 업무 중 스트레스로 인한 병을 얻게 되면서 얼마 가지 못해 그만둬야 했다.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산재보험 처리도 되지 않아 미리 가입해 둔 그 회사 보험으로 처리하려 했거든요. 그런데 회사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결국은 해촉통지서를 보내더라구요. 이유는 보험금을 받기 위해 쫓아다닌 것이 업무방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사업주임을 포기한 사람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해고된 정씨는 더 이상 평범한 아줌마가 아니다. 보험모집인 노조를 찾아 자신과 같은 억울한 처지에 있는 보험설계사들과 함께 노동자로서의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미 88컨트리클럽을 비롯한 몇 군데에서 합법적인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협약까지 체결했지만 지난 8월과 9월, 서울행정법원이 잇따라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물론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보수적 판결을 내림으로써 이미 확보한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영 루미나 컨트리클럽이다. 이 회사는 행정법원 판결 이후 경기보조원은 근로자가 아니므로 조합원이 될 수 없다며 9월 21일 경기보조원 조합원 60여 명을 전원 해고하고 용역깡패를 동원, 조합원들의 회사 출입을 막고 있다. 민간서비스노조연맹 조경석 조직부장은 "명백히 사용자에 종속된 관계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해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보수적 판결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조를 와해시키고 조합원들을 해고하는 대표적 사례"라며 "언제까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하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린나이코리아와 개인별 대리점 계약을 맺고 A/S를 담당하는 기사들도 2백여 일에 가까운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린나이쪽이 기사들의 동의 없이 현재 2천만 원인 보증금액을 무한대로 늘리고 보증기간도 현행 2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계약조항을 바꿔 재계약을 요구한 데 반발, 곧바로 노조를 설립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재계약서에 따르면 서비스기사들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수리 후 제품이 고장나거나 제품하자 등으로 사고가 날 경우 10년 동안 손실액에 상관없이 서비스 기사가 몽땅 책임을 져야 한다. "처음에는 그 계약서를 보여주지도 않고 도장을 찍으라고 하더군요. 계약서 내용을 뒤늦게 안 우리들이 무슨 소리냐, 어떻게 그런 계약서를 갖고 일하라고 하느냐며 반문하자 관리자라고 하는 사람이 해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일하기 싫으면 관두라'고 하더군요." 10여년 동안 린나이에서 서비스업무를 해왔다는 김현섭씨의 말이다. 김씨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이 적은 것은 물론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계약서에 어떻게 합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이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에게 근로자성 인정여부와 함께 중요한 과제는 사회보험 적용여부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업무상 재해에 대비하는 산재보험이다. 골프장에서는 날아오는 골프공에 맞거나 공을 찾다가 미끄러지고 잔디에 뿌리는 제초제에 중독돼 두통, 현기증 등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다. 전국여성노조와 노동과건강연대가 지난 9월 한 달 동안 경기도 소재 골프장 두 곳에서 일하는 1백20명의 여성 경기보조원의 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가 '업무 중 재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재해를 당한 뒤 77%가 자비로 치료했다. 최저임금, 우리 위한 거 맞소? 비정규직 문제가 서서히 사회의제로 부각되면서 비정규직들의 낮은 임금과 근로조건과 함께 '최저임금' 문제도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1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결과 비정규직의 74.7%는 월 1백만 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고, 최저임금 수준인 50만 원 이하를 받는 비정규직도 22.7%에 달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최저임금 심의가 막바지에 치닫던 지난 7월 9일부터 13일까지를 '최저임금노동자 생활임금 쟁취주간'으로 선포한 뒤 최저임금의 낮은 수준을 알려내고 인상을 촉구했다. 그 결과 올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될 최저임금을 2001년 추정 평균 정책급여(1백28만 원)의 37% 수준인 시간당 2천1백 원(월 47만4천6백 원)으로 인상시켰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시급한 것은 최저임금 수준 이상으로 임금이 지급되도록 행정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다. 감독행정이 미치기 어려운 중소영세업체뿐 아니라 실제 서울지하철공사나 도시철도공사에서 시설관리와 청소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용역업체들도 최저임금을 밥 먹듯 위반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최저임금 위반으로 사법처리된 곳은 98년 9월부터 99년 8월까지 1건, 99년 9월부터 2000년 8월까지 1건, 2000년 9월부터 2001년 8월까지는 4건에 불과했다. 서울 모 대학에서 청소업무를 담당하는 용역업체 소속 한 여성노동자는 "월차나 연차 같은 수당이 수시로 바뀌어서 잘 모르겠다. 그냥 월급을 최저임금에 맞추어서 준다"고 말한다. 이처럼 대부분 저학력 여성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이 의도적으로 내역을 알리지 않은 채 최저임금 이하를 주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에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10월 23일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감시단'을 발족시키고 전국에 총 1백51개 신고접수 창구를 개설, 최저임금 위반사례를 접수받고 있으며, 이 결과들을 보아 시정조치를 요구하거나 고소고발에 나설 방침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 권리확보 투쟁은 사업장 또는 각 노조별 비정규직 스스로가 주체로 나서는 것과 함께 총연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비정규문제를 연대와 평등의 실천으로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어울릴 때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한국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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