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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05
    야구 토토 복권 광고를 보면서 드는 잡생각(1)
    간장 오타맨...
  2. 2004/09/05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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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운 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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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툰] 외롭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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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09/02
    이주노동자가 본 한국 사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간장 오타맨...

야구 토토 복권 광고를 보면서 드는 잡생각

  • 등록일
    2004/09/05 23:20
  • 수정일
    2004/09/05 23:20

야구 토토 복권 광고를 보면 왕년 야구 스타와 하일성 KBS 야구 해설위원이 나온다.

야구 토토 복권 광고에 내가 그토록 열렬히 환호하며 응원하던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타이거즈) 공격의 핵 김봉연이 나온다. 참 많이도 늙었구나는 생각이 든다.(나도 삼십대 중반이니까 그들도 늙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였기에... 실업야구단에서 짠벼가 굵었던 그들의 나이가 불혹의 나이가 된 것도 이상할리가 없지 않겠냐... 그러나 시간을 고정해 놓고 그들을 봐온 나인지라 그들이 늙은음 나에게 또다른 것이였다.)

 

그들의 야구를 보면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보낸 나로서는 그들의 야구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해태 타이거즈는 초기 요즘 유행하는 책 삼미슈퍼스타즈 다음으로 뒷 등수를 차지하는 팀이였지만 전라도님의 자랑이요 희망이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군상상고 출신의 선수와 광주일고, 광주상고, 진흥고 등 전라도 야구 명문고를 나온 이들이 주축이 된 해태 타이거즈.... 유년시절 나의 우상이요. 희망이였던 것 같다.



야구 토토 복권 선전을 보면 하일성 해설위원,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투수,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타자, 박철순 OB 베어스 투수 등이 서있다. 참 많이 늙었고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낀다.

박철순 투수는 OB 베어스가 82년 프로야구 출범후 초기 우승하는데 큰 공을 세운 투수로 그 기억의 장면이 아직도 떠오른게 만든다. 최동원 투수는 롯데 자이언츠 최강속구 투수로 투구 폼이 좀 이상하였지만 한 시대 투수로서 최고의 영예를 않았다.

 

82년 프로야구 원년으로 돌아가보자. 초기 서울 연고의 MBC 청룡(현 LG 트윈스), 경기, 인천을 연고 지인 삼미슈퍼스타즈(청구로 바뀌었다-태평양 돌핀스로 바뀌었다-현 현대 유니콘스로 바뀜.), 충청 대전 연고의 OB 베어즈(현 두산 베어즈), 대구 경북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 경남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 전라도 연고의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타이거즈)가 초기 프로야구 팀이였다. 지금은 빙글레 이글즈(한화 이글즈)와 전북에 연고를 둔 쌍방울 야구단을 인수하여 총 8개 팀이 프로야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총 6개 팀이 야구를 하였다.

 

고교야구가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던 그 당시 고교야구의 맹위에 힘입어 프로야구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이는 곧 고교야구 경기의 관중 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낳았고, 야구경기는 모두 프로야구로 스포트라이트가 빛췄다.

 

주말 어김없이 텔레비젼 앞에 시선은 고정시키고 야구를 보았다. 우리집은 텔레비젼이 없어 마을회관에 동네 녀석들과 모여서 어르신들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를 어김없이 보았다. 해태 타이거즈 경기가 있는 날은 이장님이 동네 방송을 통해 마을주민을 소집하여... 함께 보던 기억이 난다. 참 좋았던 경기이다. 내가 살았던 전라도는 씨족사회이기 때문에 그 동네 부락은 한 성씨가 전부이다. 이 동네에 촌수를 따지면 1촌부터 16촌까지 집단구락을 이루고 사는 동네라 마음또한 어찌나 똑깥은지... 음원의 함성은 우리동네를 들썩이게 하였다. 이 응원이 비단 우리 마을만이겠느냐 전 전라도 읍내는 해태 타이거즈 경기에 울고 웃었다 할 정도로 야구는 큰 호응을 얻었다. 야구경기의 승패에 따란 학교를 간후 아이들과의 대화의 내용이 밝기고 하도 어둡기도 하였다. 국민학교때 제일 인기있는 스포츠가 야구와 짬뽕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 짬뽕을 해본지도 꽤 오래 되었다. 중학교때 까지는 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짬뽕이라는 놀이를 알까... 야구와 같지만... 짬뽕 공(야구공 크기의 고무공)을 주먹으로쳐서 날리는 경기는 참 재미났다. 야구 장비가 없었던 우리에게 이 짬뽕 경기는 야구를 익히는 주요한 도구였다. 야구공도 없어서 테니스공에 신문지 글러브 널판지 빼트를 이용하여 야구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끄때로 돌아가 보고 싶다.

 

이렇듯 야구는 전라도민의 한과 울분을 프로야구를 통하여  달래곤 하였다. 프로야구는 한을 풀기 위한 주요한 도구였다. 광주사태에 대해서 나는 잘 몰랐지만... 서울에 와서 형과 누나의 대화에서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알것은 대학에 들어와서 이니... 그 전라도민의 분노 특히 광주민과 그 피해 당사자들의 울분을 어떠 했으리... 정권이 만들어 놓은 스포츠지만 이를 통해 그들의 저력을 발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 또한 그렇지 않겠느냐... 한과 설움의 결정체였던 것이다.(이와 함께 서울에 올라오니까 프로스펙스니 나이키니 하는 신발이 유행하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난 스팩스라는 신발을 주로 시장에서 누나가 사주어서 신었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으로는 해태 타이거즈는 82년도 83년도에 5위를 하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영원한 꼴등팀이었으니까... 그래서 해태 타이거즈 경기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경기를 보면서 그들에 대한 무언의 응원을 하게 된다. 꼴지들의 반락을 꿈꿔보기도 하였다. 그리 승률이 좋지 않아서...

 

그러던 차에 86년(85년 삼성이 전반기 우승 후반기 우승을 하여 85년 이전 전반기 후반기 우승팀이 격돌하여 프로야구 우승팀을 겨누던 터였는데... 삼성이 전반기/후반기 우승으로 85년도 삼성이 통합우승을 하게 되었었다. 이에 KBO는 경기 룰을 개정하게 된다. 86년 플레이오프제가 도입되어 2,3위간 5차전을 거친 뒤 7차전의 한국시리즈를 하게 되었됨.) 꼴지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삼미슈퍼스타즈(청보로 바뀜... 내 알토랑 같은 돈이라 지껄이는 이순자가 만든 라면 회사임. 전두환 정권의 퇴임과 함게 없어짐. 80년대 중반에 라면을 즐겨먹었다면 청보라면 먹어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함 생각해 보시기를... )가 청보그룹에 매각 되어 청보야구단이 85년도에 바통을 이어받아 해태와 1위 2위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희열을 어찌 설명하랴... 늘 꼴지를 하던 팀의 반란이 아닌가....

청보에는 재일동포 출신 장명부 투수의 활약상은 눈부실 정도로 뛰어났다. 해태 또한 김준환, 차영화, 김성환, 김봉연 등 타력을 바탕으로한 군상상고 출신선수와 선동렬이라는 대어 투수가 해태를 지탱하였다. 아직도 그 경기가 생생하다. 청보 장명부의 놀라울 정도의 투구와 해태 선동렬.. 김정수의 들이 분발하여 내리 해태가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감격의 순간.... 프로야구의 전성시기였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고등학교때까지는 프로야구를 보았는데... 대학 들어오면서 스포츠와 벽을 쌓았으니 지금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 야구는 지금의 축구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국민의 열화와 같은 전폭적 지지를 받는 스포츠였다. 야구에 웃고 울고 하였던 시대 격동의 80년대 이다. 운동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80년대 그 격동의 시기... 프로야구의 전성기와 함께 운동도 전성기,... 90년 들어서면서 프로야구는 점차 그 인지도가 떨어지고,... 지금 축구에 위치를 내어주고 있다. 프로농구에게도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어쩌라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잠시 프로야구 복권을 보면서 그 당시 심정을 생각해 보았다. 참 국민학교때 축구도 많이 했지만 야구와 짬봉을 더욱 많이 하였던 기억이 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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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 등록일
    2004/09/05 20:54
  • 수정일
    2004/09/05 20:54
* 이 글은 갈막님의 [첫화면을 사진으로 두기가 뭣해서..]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갈막님 글을 트랙백하였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은 환상이다, 행복한 결혼 그것은 잠시 일뿐.... 돈으로 포장된 자본주의에서 결혼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노동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노동하며, 죽지 않기 위해 노동하여야 한다. 현 서울역과 을지로 지하도의 넘쳐 나는 노숙자들을 보라... 그들은 노동에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쫒겨난 이들이다. 결혼이 남과 여.... 동성애자인 남과 남, 여와 여가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단으로 바뀐지 이미 오래되었다. 결혼에 대한 상상부터 확 날려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신데렐라 컴플렉스부터 까부수자...



갈막님의 글을 보면서 결혼하는 것도 일단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결론은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나의 결론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함. 매스미디어의 훈육에 우리는 농락당하고 있다... 옆집 사는 사람이  돈 문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은 생존전략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음....

 

결혼 한사람(남)과 한사람(여)가 만나 혼인관계 즉 법적으로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어찌보면 그럴듯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또 불필요한 수단일 수 있다.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야 성인이 된다는 옛 성언의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 말은 어찌보면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인간의 종족번식을 합리화시키는 변명일 수 있다. 난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더욱더 무게를 두는 쪽은 결혼은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이 된다.

 

현재 결혼이 갖고 있는 한국사회내 남녀 불평등과 여성 노동착취에 대한 생각만 해도 그렇다. 결혼은 철저히 가부장적으로 이어온 부계사회의 폐단을 재생산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가로 막고 있는 것도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대접받기보다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성과 부계중심성으로 인하여 여성은 노동은 가사라는 틀에 억매여 있다. 유럽의 부르우아 시대(18C후반과19C 초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의 계급에 기인하였다. 초기 자본주의가 번성하였지만 여성의 참정권은 20C 초반이 되어서야 부여되었다. 그것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여성이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였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영국의 피의 메리와 빅토리아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 이외에는 보기 드물다. 여기서 여성의 참여 또한 계급적 연공서열에 의해서 이루어진것이지 여성이 보편적으로 정치의 참여의 장(아크로)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는 부르주아시대를 걸쳐 산업자본주의 시대까지 이루어진다.

 

영국의 산업자본주의가 온 런던시내를 감싸는 시기.... 부르주아는 어린 여공과 여성들은 자본가들의 성폭력을 당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가의 성폭력을 이겨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본자 즉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부를 더욱더 확대재생산하였다. 난 패미니즘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참여...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부여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왜냐 같은 인간이다. 여성의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참여의 대상이며, 사회를 이끌어나갈 주역이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이 다 부여되어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는 물론 전지구적 여성의 50%이상이 부계사회가 쌓아논 관습과 권위에 무참히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특히 한국노동시장만 보자...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원래 나약한 존재라는 부계사회의 관습과 권위에 눌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여성이 노동자로서 살아가기는 이 지구는 어려운 곳이다. 아마존의 여전사들은 제외하고는....

 

결혼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오래된 관습.... 종족 번식을 위한 하나의 사회적 관계로 규정지어져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이성애자들에게 있어 남과 여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동성애자들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 되고 있다. 결혼이라는 것이 사회적 관계임이 틀림없지만.... 종족 번식을 위한 행위임을 드러내는 것은 동성애자 결혼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관습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혼은 사회적 관계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서로가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린 공중파 드라마를 통해 결혼은 남과 여의 결합임을 강요받고 있으며, 동성애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부분이다. 이에 홍석천씨의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고백... 커밍아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연애인이라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그의 선택은 정말 용기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신이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지향이 어떠한 폭력으로부터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면 안된다. 인간이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하듯 성적 자기결정권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린 매스컴으로부터 늘 드라마라 공세에 훈육받으면서 사회적으로 늘 맞다아 있는 문제를 터부시하거나 등안시 한다.

내 일이 아니기에.... 난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왜면하지는 않았는지... 그들의 말과 행동에 우린 귀기울 필요가 있다. 어떠한 매스미디어에서 그들은 발언권이 제약된다. 그들이 발언권을 제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폭력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그들의 성적 지향을 감추게 만들고 있다. 그들이 받아야 할 노동의 소외, 사회적 고립, 사회적 홀대, 그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으로 왜 이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당당히 사회의 한 일원인데... 또한 이땅의 국민인데....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너무나 크다.... 관습법에 따른 유교적 사회라구 우끼고 지랄하네.... 관습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아니냐.... 그 잘난 관습에 따른 윤리의 무기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죽어나가야 했는가???? 지랄 자빠지고 있네....

 

결혼을 난 성적 욕망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난 성적 욕망은 인간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도구라 생각된다. 

 

결혼을 보라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이 가서 하는 결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이 어찌 이러한 것만 있겠는가? 돈있는 새끼들은 정략적으로 자신들의 가계를 통한 혈연 관계를 이용하고 있다. 어찌보면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끼는 노릇아닌가...

사랑도 없이 집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헤야 하는 것이 어찌 가능한 일인가... 지금 조선시대도 아닌데.,,. 자본가들에 의해 자본가 노동자 농민 평민으로 사회는 또 계급사회로 분화되어 지고 있다. 오호통제라....

 

결혼에서 난 평등부부의 결혼식을 보면서 그들이 과연 언제까지 평등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결혼 자체에서 남성이 아무리 가사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결혼 자체에 있어 가부장적 요소는 여성의 가사노동의 양을 증폭시킨다. 초기 평등부부의 가사분담은 그럭저럭 이루어진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면 이 관계는 조금씩 균열이 간다. 내가 지켜본 후배커플이 그렇다. 그리고 아무리 남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자 노력하여도 집안이라는 울타리에서 여성은 또 가사노동으로부터 속박을 당한다, 제사... 추석,,,, 설날.... 시댁부모님 생일... 등등 수많은 노동에 여성을 혹사당하고 있다. 초기 설겆이 밥 아이돌보기를 잘하던 남성 또한 일터의 스트레스와 퇴출의 중압감으로 가사노동의 초기포부는 사라진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지만 육아, 가사노동, 집안 대소사는 고스란히 여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결혼은 이렇듯 개인과 개인의 평등성에서 해결되지 않고 사회적 울타리에서 평등성을 균열시키는 요소들이 내포하고 있다.

 

여성이 뭐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인가... 사랑만 먹고 사는 존재인가... 난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내안에 너 있다... 이 생구라에 소스라 친다. 남성의 소유 욕망의 결정체라 한다... 카사노바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해봐서 모르는데... 짝사랑하던 때만 생각해도 마음에 그를 담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그가 떠오른다가 정확히 맞다. 그를 머리에서 떠올르면 가슴이 꿍쾅꿍꽝 뛰었던 기억이 있던 지라.... 여성은 이 사회의 한 노동하는 인간이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서도 안되며 사회의 한 주체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사회가 창출하여야 한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깨뜨려야 한다. 특히 드라마와 광고에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180도 전환시키야 한다.

 

여성은 결코 이슬을 먹고 사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이 사회를 이끌어나갈 노동의 역꾼이다. 여성해방에 대해서는 모르나 여성 할당제라도 이사회에서 잘 지켜졌으면 한다. 여성에 대한 취업의 불공정성 또한 척결되어야 한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받아야 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부터 사그러져야 할 것이다.

 

여성을 떠올리며 결혼을 떠올리며 행복을 이야기 하기전 우린 여성이 현 사회에서 받고 있는 차별과 억압적 기재를 하나하나 뽑아보자....

 

이에 결혼은 미친짓이다. 난 결혼을 이 사회에서 필연적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 이러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소유에 대한 욕망의 집착이라 생각된다. 난 이러한 것들에 거부하고 자유롭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

 

결혼은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여성이라는 한 노동자에 대한 소유와 욕망의 집착의 결정체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난 이러한 결혼을 거부한다. 나의 노동에 의해 삶을 지탱하며 나혼자 잘먹고 잘 살시 위해서...

 

뻘 소리를 지껄여 보았음...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행복하다는 말은 불행을 항상 동반하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갈막님 글 같은 행복함이 과연 그와 같은 행복이 지금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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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룸메이트....

  • 등록일
    2004/09/05 20:52
  • 수정일
    2004/09/05 20:52

룸메이트와 상봉하였습니다.

룸메이트와 새절역 보금 자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싸우기도 많이했고 함께 기뻐한 기억도 많습니다.

 

제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 시기가 그때 룸메이트와 같이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인생을 개척하였다고나 할까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룸메이트는 멀리서 올라와 바쁜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밥사주고 가더군요. 요즘 돈이 궁해 밥얻어 먹을 일이 없던 터에 룸메이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는 하지 못하였지만... 한끼의 밥에서 느껴지는 고마움과 그리고 이 블로그를 보고 걱정이 되어 나를 찾아준 그에게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살면서 헛 살지는 않았음을 룸메이트와의 만남과 안산에 같이 간 내가 아는 이를 만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안에 내가 머무를까봐 걱정해주고, 보다 나에게 채찍을 들어준 룸메이트와 내가 아는 이가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 인것 같습니다. 관계 속에서 만났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그들이 있어서 난 참 행복함을 오늘 느낀답니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염려하고 격려해주고 나를 지켜봐 준다는 것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곳 블로그에서도 나를 걱정해주는 이가 많습니다. 특히 크랙백을 하는 빼트님, 그리고 크랙백 지원 사이트인 갈님, 알엠님 등등등 많은 이들이 저를 격려해줍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이도 있을 터이고, 저를 이 공간 글을 통해 접한 이들도 있을 텐데... 부족한 저 그리고 허물많은 저에게 격려를 아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디서 살든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고, 용기도 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부족한 제가 앞으로 사는데 삶의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이 공간에서 제가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룸메이트와의 만남.... 참 좋았답니다. 그리고 고맙구.... 누군가가 말 없이 저를 지켜봐주고 힘내라는 작은 한마디에 참 작지만 큰 힘을 얻고 있답니다. 저는 마냥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작은게 행복아닐까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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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 외롭다

  • 등록일
    2004/09/02 10:41
  • 수정일
    2004/09/02 10:41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사고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카툰을 보니 외로움이란 이런거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각박하게 살아간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외로움은 어찌보면 기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 살면서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재도약을 위한 활시위라고나 할까요.... 외로움은 재충전을 위한 밑천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외로울때는 그냥 정처없이 길을 걷거나 시선이 가는 곳에 고정시켜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사람들의 얼굴을 보세요.... 활력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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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본 한국 사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등록일
    2004/09/02 10:00
  • 수정일
    2004/09/02 10:00

이주노동자가 본 한국 사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이주노동자 인터뷰프로젝트 눈길…인터넷으로 동영상 볼 수 있어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미디액트, 미디어참세상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 중인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코리안 드림’을 품에 안고 이 땅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삶. 장시간 노동 속에서도 온갖 욕설에 시달려야 했던 그들은 결국 불법체류자로 내몰려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죽어도 떠날 수 없다’는 그들의 절박한 생존의 외침 그리고 300여일 간의 천막농성. 하지만 그들은 ‘죽거나 혹은 떠나야만’ 한다.

 

“한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명동성당 들머리의 농성단 천막과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서로 보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보면서 독립영화를 하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무엇일까.”

 

총괄 프로듀서인 이마리오를 비롯한 미디어 운동가들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됐고 이마리오는 “카메라로 이주노동자의 삶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 그것이 우리들이 연대할 수 있는 방식 중에 하나였다”고 답을 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작업에 착수했다. 총연출을 맡은 주현숙씨도 홈페이지를 통해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이어서 주저했지만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 용기를 내게 됐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이 프로젝트에는 독립영화인, 사회단체활동가, 일반시민,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자 햄씨는 “외국에 나가 돈 많이 벌어 가족들을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고 싶었지만 여기 와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국에서의 고단했던 삶을 소회했다. 또 다른 이주노동자인 선주씨는 “새를 잡아서 새장에 가둬 놓는 것처럼 묶어 놓고 착취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깊은 시름은 우리 사회가 그 만큼 병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 작업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치유과정이자 우리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6월부터 기획 및 제작을 시작해 17일부터 공개한 이번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는 인터넷(http://interview.jinbo.net)를 통해 볼 수 있으며 앞으로 RTV를 통해 케이블방송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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