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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28
    [노래/유정고밴드] 또 친구에게(2)
    간장 오타맨...
  2. 2004/08/28
    한 없이 눈물 흘려보았습니다.(7)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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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08/26
    소독차에 대한 안좋은 추억(4)
    간장 오타맨...
  5. 2004/08/26
    [펌/진보누리] 삼나무 위의 그녀
    간장 오타맨...

[노래/유정고밴드] 또 친구에게

  • 등록일
    2004/08/28 20:08
  • 수정일
    2004/08/28 20:08

mms://211.215.17.148/song/youjunggo band/youjunggoband_1_to friend.asf

 

♪ 또 친구에게 ♪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건지

어떻게 난 뭐라 할말이 없어

그저 이렇게 살아 갈뿐이라 말했지

 

그러면 어떻게하냐고 묻더군

아주 걱정스런 표정을 짖고

어떻게 길이 안보인다 말할까

 

혹시 알고 있거든 말을 하게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혹시 알고 있거든 말을 하게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차라리 저 빌딩에 불을 지를까

아니면 저 자동차 유릴 깨볼까

아니면 술에 취한채로 헤메다

아무하고나 싸움박질이나 해볼까

 

아니면 세종로 큰 길가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추다 미칠까

아니면 벌거벗은 채로 헤메다

아무렇게나 웃음거리나 되볼까

 

혹시 알고 있거든 말을 하게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혹시 알고 있거든 말을 하게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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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없이 눈물 흘려보았습니다.

  • 등록일
    2004/08/28 13:05
  • 수정일
    2004/08/28 13:05

오늘 새벽 술기운을 빌어 한없이 눈물을 흘려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이자리에 있기까지의 과거의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난 한것이 아무것도 없더군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로 인해 가슴아파했을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초기의 포부와 기상은 나에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졸업하고 막연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공장생활과 단체일을 한 것 같습니다. 단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주변에 좋은 벗들의 힘을 빌어 여지까지 빈대붙으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미안할 뿐입니다.

 

내가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면서 알았던 모든이(특히 같이 단체에 속해 활동단 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요즘 잠도 오지 않고 이러한 마음을 잊기 위해 술이라는 친구를 벗삼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술이라는 친구는 그때의 유희와 무모함만 주고서는 저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군요.

 

어떻게 살지 망막할 따름입니다.

살아오면서 열정도, 뜨거운 가슴도 따스한 마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시간의 흐름과 주변의 좋은 벗들이 하는 일에 어부지리로 얹혀서 그냥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내가 밉습니다. 그러나 그게 나라는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과연 원칙이라는 것을 갖고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한 것인지....

원칙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초라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말로는 원칙을 이야기해 보지만 그것 책구절에 쒸여진 몇몇 단어를 맞춤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주어진 시간에 무사안일 안주하면서 과거의 무용담을 자랑삼아 지껄이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난 참 바보이며, 나쁜놈입니다.

바보가 아니라 참 나쁜놈 멍청한 놈인 것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망칠까 궁리를 계속 가져왔습니다. 

활동이라는 하면서 늘 불평 불만만 늘어났지 발전에 대한 고민을 한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난 나쁜 놈인 것 같습니다.

 

내가 밉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뭐 그리 잘난척 할려구 노력했는지.... 참 허망할 뿐입니다.

 

나를 잊기 위해 술이나 더 먹어야 겠습니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아보았자 나에겐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마음이 아플뿐입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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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나

  • 등록일
    2004/08/28 04:39
  • 수정일
    2004/08/28 04:39

비겁한 나를 질책해 봅니다.

술의 힘을 빌어서

 

난 언제나 비겁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용맹이 없어서

비겁하였습니다.



오늘은 비겁한 자가 용맹을 부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용맹은 비겁이었습니다.

이에 비겁한 자는 술한잔에 의지한채 어제의 나를 돌아봅니다.

 

사람이 사는데 사람의 관계에

소원하였던 비겁한 자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비겁한 자는 비겁을 용맹으로 착각하여

무수한 망말 만을 날립니다.

그래서 비겁한 자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은 공명정대한 것 같습니다.

비겁한 자에게 용기가 주었고

용기에 대한 책임도 주었으니까요.

 

비겁한 자는 이에 그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비겁한 자의 댓가....

그건 아마도 비겁한자의 누차한 변명일수 있습니다.

 

비겁한 자는 술의기운을 빌어

비겁의  흔적을 날립니다.

그래도 비겁한 자는 변명의 여지가 없데도 비겁을 핑계삼아 변명을 갈구합니다.

 

비겁한 자는 술의 힘을 빌어 이렇게 용기를 내어봅니다.

그러나 그건 무모한 용기일뿐입니다.

 

비겁한 자는 그래서 비겁의 틀을 벗기위해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정처없는 여행을....

비겁한 자도 그 여행의 끝을 모른답니다.

다만 비겁하지 않게 사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비겁한자는

 

비겁한자는 이의 눈가엔 눈물이 아른거립니다.

비겁하게 살아왔던 과거에 대한 회상

비겁한 자는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고자 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

세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곳

비겁한자가 비겁을 뉘우치고 비겁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을 갈구하고자 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비겁한 자의 눈물에 의미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겁한 자는 과거룰 회상합니다.

 

동지애, 신심, 열정, 희망, 사랑을....

때 늦은줄 알면서 비겁한 자는 이를 갈구합니다.

그러나 기차는 이미 오래전 떠났습니다,

 

비겁한 자의 기차도 떠났습니다.

 

비겁한자는 아무도 그리고 마음이 아프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비겁한자의 패배일수도 희망일수도 아니면 곤조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고자 합니다.

 

더이상 비겁해지는 것이 두렵기에.....

 

외로움에 대해 비겁한 자는 스스로 대처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의 무게는 비겁한 자를 짖눌렀습니다.

 

비겁이 없는 세상, 외로움이 없는 세상에 비겁한 자는 살고 싶습니다.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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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차에 대한 안좋은 추억

  • 등록일
    2004/08/26 17:18
  • 수정일
    2004/08/26 17:18

사무실 부근 자주 소독차(오늘은 소독차가 지나났는데 이전에는 소독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소독을 하고 다닌다.)가 지나 다닌다.

 

소독차에 대한 안좋은 기억은 언 24년전의 일이다. 동네 아이들과 어김없이 소독차를 딸아다녔는데.... 깡촌에서 차를 보는 것도 그리 흔한 일도 아니기에 우리는 소독차 뒤 꽁무니를 따라서 연실이 마을 이리저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던중 소독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소독차가 마을 신작로를 달리다 펑크가 난 것이다. 그리고 그 소독차는 펑크를 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도 모르고 연기를 따라가다 그만 소독차와 부딪치고 만 것이다.

 

소독차와 정면 충돌 그리고 기억이 없다. 병원으로 급행..... 동네가 온통 날리가 났다.

깡촌에서 교통사고라는 것이 처음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기절을 한 상태라 전혀 모르고 동네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어찌나 피를 많이 흘렀는지 동네 어르신은 거의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병원에서 혹시나 치료를 할 수 있을까라는 한가닥 희망을 갖고 경운기 뒤 짐칸에 멍석 깔고 누여 놓고 읍내 병원으로 이송하였다고 한다.

 

기사는 거의 정신이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동네가 날리부르스 났다. 나로 인하여..... 다른 아이들은 옆으로 달려가 그 상황을 본 것이다. 나만 앞에 가려서 못보았던 것이다. 그때 사고의 기억은 아픈것은 없다. 퍽하고 뭐가 부딪혔다는 기억은 있는데 그후론 기억이 없다. 일어나보니 온 몸에 웬놈의 붕대가 이리도 많이 감긴것인지.... 내 평생 쓸 붕대를 어린시절 다 써보았다. 팔 골절, 다리골절, 갈비뼈 2대가 금갔다고 한다. 다행히 머리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다. 가뜩이나 머리가 나빴는데 그때 머리까지 다쳤으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이 사건으로 난 무려 2개월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하니까 집에서도 먹기 어려운 음식들이 즐비하게 있는 것 아닌가? 몸은 비록 붕대에 감겨서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명절에나 먹어 봄직한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늘 사골국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부모의 속도 모르고 난 병원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기도도 드려보았다. 정말 철없는 녀석이지... 부모는 송장 치루는 줄 알고 논과 밭에서 일복 차림으로 뛰어와 병원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는데.... 난 수술이 끝나고 난후 몸이 조금 좋아졌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철딱서니 없는 놈인 것 같다. 그래도어쩌랴 맛난것이 수두룩 한 것을....

 

동네 친구녀석들은 먹을 것을 빼서 먹기위해 문병을 가장해 자주 왔다. 나를 보는 부러운 눈초리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머니머니해도 학교도 안가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소 여물을 써는 것도, 땔감하러 산에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맛난 음식과 잠을 실컷 잘 수 있다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니고 뭐겠냐...... 자고 일어나도 끊이질 않는 맛난 음식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공무원인 지라 면사무소 직원들이 미안하다고 먹거리를 매일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다. 무릉도원이 이 곳 병실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그 당시가 난 못 먹어 봤던 음식을 읍내에서 다 먹어봤다. 하하^^ 정말 행복한 나의 유년시절.... 그러나 지금 생활하면 내가 봐도 우낀다. 그 당시 나의 상태가 진짜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 그나마 교통사고 당하고 난후 조금 나아진것 같다.   

 

소독차만 보면 과거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오늘도 소독차가 지나가면서 그 당시 생각에 잠시 잠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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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진보누리] 삼나무 위의 그녀

  • 등록일
    2004/08/26 13:58
  • 수정일
    2004/08/26 13:58

계속되는 지율스님의 단식에 부쳐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 힐이다. 이미 5년이 흘렀으니 이미 그녀도 우리 나이로 보면 삼십 줄에 턱걸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3년 전 초봄에 신문 기사를 몇 개 벽에 스크랩해두었는데,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스크랩 골판지가 떨어지면서 이 신문 기사도 방바닥에 떨어졌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사진은 노랗게 색이 바랬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위풍당당하다. 그녀는 97년 12월에 삼나무 위에 올라가 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 삼나무는 높이가 60미터쯤 되었고 수령은 2천 년이 된 나무였다. 그녀는 그 위에서 동료들이 올려보내는 걸로 밥을 먹었고, 그 위에서 싼 똥을 동료들에게 내려보냈다. 그녀가 그 위에서 바라본 것은 삼나무 숲이었다.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있는 레드우드라고도 불리우는 삼나무들의 숲. 수령이 보통 1천 년에서 1만년이 된, 생물학의 기적이라고 불리워지는 자연 그대로의 보고였다. 게다가 나무 그루마다 희귀종의 생물들이 기생하고 있었다. 그녀가 추운 겨울 날 이 나무 위에 올라간 것은 이 헤드워트 숲을 소유하고 있던 퍼시픽 럼버라는 개인 목재회사가 이 숲을 수십 년 간 벌채해 목재로 가공해온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당장 벌채를 중단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나무 위에 올라갔다. 퍼시픽 럼비사는 줄리아 힐의 식량보급을 번번히 방해하는가 하면 연기를 나무 위로 피워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뛰어내리겠다고 외쳤다.

그녀의 이 상징적인 투쟁은 각처 환경운동가들의 연대를 끌어모았고 결국 연방 정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회사의 존 캠벌 사장은 '사유재산권 행사에 정부가 관여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부 당국과 퍼시픽 럼버사의 협상은 한동안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종내 1999년 3월 2일 퍼시픽 럼버사의 캠벌 사장은 이 헤드워트 숲을 정부에 넘기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말았다. 줄리아 힐은 그 소식을 듣고 마침내 나무 위에서 내려와 자신이 투쟁으로 지켜낸 그 신비의 숲속 땅에 발을 디뎠다.

그녀의 이 목숨을 건 투쟁은 이후 많은 환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바위 틈 사이, 나무 위, 허공 위에 매달린 채 자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삶을 내걸고 있다. 그들은 나무와 바위와 풀들이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 실제로 숲속에 벌목꾼이 들어와 나무 한 그루만 베어내도 이 나무가 쓰러지면서 지르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비명 소리는 숲속 나무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나무들은 비명에 전염되어 죽어가는 나무와 함께 비명을 질러댄다.

줄리아 힐의 사건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칭송한 클린턴이나 그녀 이야기를 앞다투어 언론의 가십으로 삼았던 백인들은 자기 집의 질 좋은 목재 가구를 쓰다듬으면서 한편으론 감동적인 환경운동가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다.

2002년에 쓴 글 중에서....

권력은 아직도 말이 없고, 지율 스님은 그렇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계신다. 소위 '메이저급' 환경단체들은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이런저런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생명의 소중함, 반전과 평화를 외치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이들의 책임의 윤리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여전히 개발 독재의 망령에 사로잡힌 이들의 책임 윤리 말이다.

책임의 윤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지구 운명에 대한 책임, 아울러 후손들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물려줄 책임을 공히 아우르는 생태철학의 원칙을 의미할 터다. 이미 훼손할 대로 훼손해버린 땅과 하늘에 대한 참회의 원칙.

현재의 편리와 물질문명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어 책임의 윤리를 망각하는 일, 천성산의 비명과 홀로 책임의 윤리를 몸의 고통으로 육화하고 있는 지율 스님의 생명을 갈취하여 이기를 축적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운위되는 이 세계의 표정은 참으로 악위적이며 음란하다. 천성산과 도룡뇽에게, 지율 스님에게, 자기 후손들에게 못할 짓을 지금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게다.

다시 한 번 줄리아 힐의 사진들을 보면서, 지율 스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그녀의 투쟁으로 지켜낸 천성산을 맨발로 걷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밤, 도룡뇽과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소호하기를 기원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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