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7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18
    또한번 잊혀질 이름....
    간장 오타맨...
  2. 2005/06/18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
    간장 오타맨...
  3. 2005/06/16
    한신대를 가면서 느낀 풍경....
    간장 오타맨...
  4. 2005/06/15
    비가온 날....
    간장 오타맨...
  5. 2005/06/14
    어제 선전전
    간장 오타맨...

또한번 잊혀질 이름....

  • 등록일
    2005/06/18 22:14
  • 수정일
    2005/06/18 22:14

노동열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명지대 강경대 열사처럼 동상 비석이 될 열사의 이름을 되새겨 본다.

 

근래의 열사들이 나왔지만 이내 우리가 열사를 마지막 보낸 고 박창수 열사 이후 노동열사가 나와도 그 이름은 열사력에 표기될 뿐... 이에 상응하는 우리의 투쟁은 큰 파장과 그 열사의 삶의 발자취를 글자 몇귀로 흘려보내거나 잊고 만다. 과거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망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을 버티는 힘으로 믿고 살아간다.

 

마석 모란공원을 가보면 낮설은 이름들.... 그리고 책에서 보던 분들의 비석을 읽으면서 그 열사의 삶 그리고 그 현장에서 쓰려졌을 그 열사의 삶을 역추적 해본다. 그러나 이도 시간이 없어 마석 모란공원을 가보지 않은지가 꽤 되어 새롭게 들어온 열사들의 이름을 가늠할 수 없다.

 

이 만큼 우리는 열사정국의 국민대회를 했던 기억이 10년하고도 4년을 흘러보내고... 이제는 그 발자취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때 시청진격투쟁으로 시청을 가득메웠던 곳엔 이명박이 잔디밭을 만들어 관변단체 집회장으로 전락시켰고, 더 이상 그 땅을 밟기 힘들 상황이다. 집회신고를 해보지만 개정집시법으로 인하여 이도 큰 대회가 아니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배달호, 김주익, 박일수 열사 그리고 이어져 나온 몇명의 열사들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그 열사의 죽음에 애타하며, 투쟁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면 뭍혀진다. 그래서 마냥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다. 책꽃이에 꽃힌 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호루라기라는 시집이 마냥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열사의 죽음으로 죄인이 되기도 해보지만.... 그 죄의식은 시간의 흐름에 뭍혀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또한번 반성과 잊혀진이라는 그 시간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언젠가 명지대에서 술먹기에 간 적이 있다. 강경대를 그가 죽은 공간에 세워진 동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명동성을 갈때면 그 뜨겁던 유서대필 사건으로 얼룩진 김기혁열사를 떠올리고, 을지로를 갈때면 토끼몰이 진압으로 죽어간 김귀정 열사를 떠올리고, 전남대에 가면 강경대 열사의 죽음을 규탄하며 죽어간 박승희열사를 떠올리고, 서울대 캠퍼스에 가면 흉상이된 열사를 되새겨 보며... 각 거리를 지나면서 그 집회와 시위로 죽어간 무수한 열사...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동지들의 뜨거운 눈물로 보낸 열사를 본다. 인천에 있을때는 경동산업에서 사측의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다. 분신하여 죽음을 맞이한 두분의 열사를 본다. 이 처럼 열사력에 수놓은 많은 열사들.... 그 죽음에 우리는 쉽게 떠나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시간의 지남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서인지.... 90년대 활동가를 만드는데... 투쟁하는데 게을리 하였는지... 그 힘을 발휘하기엔 너무나 나약하기 그지 없다.

 

난 슬퍼할 자격도 없기에... 그냥 그 자본가 정권을 죽음으로 내몰린 그 현실을 시간을 기억해 둘련다. 그리고 달력에 또 뺴곡히 써본다. 열사력이 있다면 그 열사력에 또한분의 노동자가 노동해방열사로 기록되는 것이 못내 서운하지만.... 그 기억을 잊혀먹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게 보낼때... 때로는 날씨가 궂으면 열사가 울지나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너무 조용하다.

 

이 투쟁이 전국을 아니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기엔.... 우린 너무 나약해졌다. 그냥 본다. 어찌 노동자의 죽음이 하찮겠는가? 그러나 보라 우리 현실을....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으로 그 이름이 퇴색해져 가고 있는 현실을....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주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개같은 자본가 세상에서 우리는 힘이 없으면 이렇게 이렇게 슬퍼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힘도 발산하지 못하는 나약한 현실이다.

 

그래서 청소년 축구를 위해 모인다는 그 붉은악마의 열기... 그 도가니를 보며 우리는 왜 저렇게 모였으면서도 이제는 그 어디에서 그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본다.

 

노동운동이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게 된 것도 큰 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또 나약함이라는 비겁을 무기삼아 그렇게 시간의 흐름으로 떠나는 이에게.... 잘가오 그대라고 말하지 못하고, 부끄럽게 보내겠지.... 나 또한 무감각하다. 그러나 서럽지는 않다. 언젠가 우리 힘이 되는 그날을 다시금 세우며 이 기억 차곡차곡 쌓아야 하기에.....

그러나 현실 우리 너무 무기력하고 나약함은 반드시 잊지 말아 할 것이다. 부끄러움 보다 잊혀지지 않기 위해 삶으로서 운동이라는 단어를 반추해 본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삶 그 자체로서의 운동이라는 것은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냥 생각만 해본다.

 

우리 경기지역 행운레미콘 노동자들 또한 연대동지들의 손길을 내밀지만 전국적 사안이 아니기에... 아니면 이러한 사건이 벌어져야 연대의 손이 내밀려질려나.... 전국에 투쟁을 하며 연대투쟁을 간곡히 기다리는 동지들의 모습 또한 떠올린다.... 장기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특수고용직노동자라는 이유로 때론 혼자 때론 집단으로 힘찬 투쟁을 전개한다. 고작 한번 연대를 가도 고마워 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연대투쟁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러나 우리 너무나 미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너무 미약하다... 말은 무수한데.... 운집되는 군중은 우리 얼마더냐.... 그 4-5만의 대중들은 다 어디로 살아졌나.... 한국이 싫어 해외로 다 떠났냐...... 아니 우리 운동이 그들을 떠나보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소리 없는 외침이라도 불러보고 싶다. 그 떠남에 우리 무엇하나 했던가.... 푸념만 해본다.

 

또 잊혀지겠지.... 열사여 영면하소서....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

  • 등록일
    2005/06/18 21:12
  • 수정일
    2005/06/18 21:12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외치며 산화해간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 그/녀들의 삶 그 자체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 상처가 덫나지 않게 나와 센터에 있는 사람들은 사방팔방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때론 비굴하게 사업주에게 제발 체류비자를 살려달라고, 아니면 강하게 끝까지 가보자고 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달라지는게 없다. 다만,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법이라는 테두리에서 그/녀들은 한국인과 똑같은 법적 효력을 적용받는다. 그 이외에는 비자의 유/무에 따라 정부가 정해 놓은 합법이주노동자냐 불법이주노동자(미등록이주노동자)냐를 판가름 받게 된다.

 

이도 얼마전 법무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과 동일한 노동조건을 부여했다는 이유로 고용허가제를 없애고, 과거 트레이닝 비자를 통해 입국을 시킨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녀들에게 노동기본권 조차 주어진 상황으로 한국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 보자... 지나가는 개도 비웃는 일이다. 그/녀들 대부분이 가슴알이 하는 것은 무엇때문인지나 알고나 있는지....

 

단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오판이다. 그/녀들은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업는 처지에 있다. 노동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투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 그/녀들의 전문적 지식을 활용하기엔 이 땅은 너무 협소하다. 그렇지만 불평불만 없이 노동을 하면서도 기쁘게 일한다. 고국에 돌아가서 금휘환양할 생각으로... 천만에...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천만에.... 그/녀들은 일을 원하고 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대접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꿈은 연수생으로 일하면서 산산히 부셔져 버린다. 아니 처참히 짖니겨 진다. 그래도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노동하고 싶어한다.

 

정부는 그/녀들을 내 쫒는다. 악순환의 연속.... 이 땅에 들어와 어느정도 숙련노동자가 되면 정부는 장기체류를 빌미 삼아 고국으로 귀국을 종용하거나 단속을 통해 강제추방 시킨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한국인이 더이상 오지 않는 사업장에 이주노동자들 마저 없으면 회사가 망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회사 경영(저임음장시간노동)을 위해 불가피 하게 고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숙련노동자이기에 다른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그에 따른 시간과 인적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에 불법노동자 고용에 따른 불이익이 있더라도 야간작업만 시켜서라도 고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다르다. 장기체류를 이유를 삼아 무작정 단속을 통해 강제출국 시키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에 따라 연수생으로 한국 땅에 들어온다. 이 되물림은 끝도 없을 것이다.

 

어제 작년말 산업연수생(E9 비자)인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한 분이 와서 말이 도통 통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하소연 한다. 자신은 거짓말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장이 가불한 돈을 떼어먹었어요. 어떻게 하면 되요. 그리고 가불한 돈 주지 않고 해고를 시켰다고 찾아온 인도네시아 연수생.... 작년 말에 와서 처음 겪는 그 낮설음 그는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도네시아 대사관, 노동부, 안산 외국인의 집을 찾아가 상담과 구제 방법을 찾으려 다니다. 마지막으로 해결점을 찾기 위해 회사 인근에 위치한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찾아 왔다.

 

오산에 와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사업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화를 내면서 해고를 했다고 한다.(해고를 하고 통지를 하면 비자의 시한이 그즉시 소멸이 된다. 그리고 출국을 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자 신분이 된다.  참 어이가 없는 현실이다.) 이유는 사업장 무단 이탈과 잘못 계산된 임금을 달라고 사업주에 대한 말을 듣지 않아서 해고를 하였다고 한다.

 

그 이주노동자는 그나마 형편이 좋은 조건에서 노동을 하였다. 기본금 70만원, 수당 10만원, 밥값 식대 20만원 총 100만원을 받고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이주노동자는 무엇보다 회사에서 자신에게 이 새끼야 이 새끼야 하는 말에 대해 처음에는 몰라서 그냥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줄 알았다. 그 말이 욕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적대감이 컸던 것 같아... 그 대목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보면서 해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한 말은 당신은 하나도 나쁘지 않다. 그런 욕을 하고 당신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잘못되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잊는다. 그는 1998년부터 `1999년 1년간 일본에서 건설노동자로 취업해 있었다고 일본에서 증명하는 건설노동자 근무확인증을 내밀며... 그 곳에서 일할 때도 일본인들에게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며, 서러움을 호소한다.

 

그를 달래고, 해고가 되어 어떻게 할 것이냐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대표가 와서 통역을 하면서 이야기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당신은 하나도 잘못한게 없지만.... 당신이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회사가서 사장에게 당신이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싹싹빌어라 말을 하였다. 참으로 해결책이 없어... 하나도 잘못없는 이주노동자에게 비자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내놓은 안이다. 기가 막히지만 그는 불법체류자는 무섭다면 꼭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집에 동생이 아파서 병원비를 내가 벌어 주어야 한단다... 그래서 싹싹빌라고 하였다. 해놓고도 참 잘하는 일인가? 멍하니 한숨만 쉬다가 그래도 어찌하랴... 비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잘못없는 그에게 회사사장에게 빌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제.... 마음이 하도 개운치 않아 소주를 몇병 먹었다.... 잘하고 있는 짓인지 몰라서... 잘못없는 사람을 죄인 만드는 것 같아 영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리고 아침.... 오목사님이 회사 사장에게 전화기로 한시간 가량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사장에게 인도네세아 이주노동자 해고를 철회해 줄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사장에게 그 잘못없는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정을 몰라 잘못을 하였으니 선처를 해달라고 하면서 비위를 맞추며 해고를 철회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말이 잘됐는지.... 고려해 보겠다고 하였다.

 

칼자루를 쥐고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창고 바닥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 날이라 삽자루 질을 하였다... 땀은 비오듯 이마를 적시는데... 마음 한켠 영 개운치가 않고 속이 쓰리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맞이하였다.

그 이주노동자 센터에 찾아와 각서 하나를 건네준다. 그 각서를 잃고 해고가 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계속 불편해... 지금 그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 신분을 모면해서 기쁘게 웃고 갖지만.... 그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잘못을 했다고 시인하게 하였다는 생각을 해보니...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구제를 위해서 편법이라고 하지만 참 그 순박한 노동자 그리고 돈 40만원을 포기하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이 일로 다들 마음이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속이 궁금해진다. 그 숯덩이 같은 속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살까? 마냥 웃고 있는 모습이 아마도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는 않을까? 생각만 해본다.

 

그리고 늘 단속추방의 공포로 불안감을 떨구지 못하며 살아가는 그/녀들 그리고 그 속에서 죽어간 꽃다운 이주노동자 35명의 열사들.... 그래 그러나 우린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그렇듯 망각으로 모든 것을 잊거나 몇번 추도하다 이도 그 싸움에 참여한 이들의 기억으로 밖에 되새김 되질 않고 있다. 그리고 그 투쟁하였던 이들이 하나둘 강제추방되어 나가면 이도 잊혀지는 것이겠구나 생각을 하니 올해 열사력을 사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스럽게 다가온다. 올해는 열사력이 나왔나... 서울에서 멀어지다 보니 이도 챙기지 쉽지않다. 하루하루 걸쳐진 달력 속에 열사들 이름을 보게 되면 마음은 경건해 진다. 너무 많은 이름으로 빼곡히 차있는 날이면 술한잔으로 시름을 달래던 날도 있었는데.... 그렇게 잊고 살아가고 있구나....

 

그냥 어제와 오늘 일이 마음에 담기 어려워 주저리주저리 횡수를 써보았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신대를 가면서 느낀 풍경....

  • 등록일
    2005/06/16 22:46
  • 수정일
    2005/06/16 22:46

한신대를 회의가 있어 가보았다.

오산에서 웬만하면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데... 회의때문에 수원이나 집회때문에 평택 그리고 한신대를 가보게 되었다.

 

논밭에 벼들이 뿌리를 내렸는지 입파리를 그전에 비해 많이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오산 인근에는 높은 산이 없어서 그런지 희뿌연 하늘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온몸을 때린다. 시원해서 좋다.

 

한신대 가는 풍경을 보면서 전원도시가 저런게 아닐까 상상을 해보았다. 온통 푸르름으로 벼들이 살랑살랑 바람에 입파리를 흔들고 있다. 그냥 정처없이 거니는데 바람도 좋고 공기도 좋다. 담배를 연거풔 피워 하루종일 목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런데로 목이 상쾌함을 느끼고 어디서 부터 날라온 냄새인지 모르는데... 시골에서 한번 맡아 봄직한 구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냄새가 구수하다... 향도 좋고.... 그런 냄새를 도통 느끼기 힘들었는데.... 오늘 맡았다. 어느 농가에서 소통으로 거름을 주고 있기에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희뿌연 하늘에 해가 가려져 붉게 홍시처럼 변해 저녘 노을을 머금지는 못했지만 홍시가 떨어지는 형태를 보고 내가 요즘 장만한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그런데... 카메라가 줌 기능이 별로 좋지 않아 잘 담지는 못해 아쉽다.... 내 컴퓨터 배경화면으로나 설정해 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푸른 벼들이 살랑살랑 논을 가득메우고 그 곳에 어울릿 것 같지 않은 아파트 단지와 타워크레인... 그리고 푸른 산이 턱 하니 있고 그 위에 홍시를 품은 것 같은 해가 떨어지는 형태이다. 그런데 카메라를 잘 찍지 못해서 별로다.

 

회의를 마치고 한신대에서 병점역으로 걸어오는데... 논밭과 병점역 부근의 교차되지 않은 어색함이 감돈다. 아마도 네온사인의 현란한 불빛 때문이리라....

 

오늘도 변함없이 해드라이트를 켜고 수원 세류비행장으로 내려앉는 전투기들의 굉음이 귀를 거슬렸다. 그것 이외에는 오늘 그냥 시골 공간의 정취를 맘껏 느끼는 날이 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가온 날....

  • 등록일
    2005/06/15 23:53
  • 수정일
    2005/06/15 23:53

소나기가 한바탕 퍼부었다.

계속해서 속이 거북했는데.... 내린 소나기를 보면서 속이 약간은 후련한 기분과 웬지모르게 무언가 뻥 뚫린 기분이 들어 참 요상하게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비가 와야하는데 와야하는데 생각만 했지 기다리던 비가 오지 않고 시원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것에 의지해 음 초여름 그나마 내가 있는 공간은 그래도 시원하구나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 무엇이 급한지 그냥 밀린 일은 많은데... 일이 도통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냥 무언가를 만들다 말다 만들다 말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보냈는데... 지금은 그나마 그런 것들이 약간은 가신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금 전열이 정비되고 무언가 하나둘 지역사업과 그리고 기존해 해왔던 사업들이 다시금 논의되고 집행하고자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다시금 시작이라는 말들을 떠들거나 입에서 내뱉어 본다. 뭐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그래서 머리속만 무거웠던 것들을 오는 비와 함께 다 밖으로 털어 버렸다.

 

띵하게 머리를 짖누르던 두통도 조금은 가셨고, 좀 긴장하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일정정도 본 괘도에 안착화 되어 그냥 그럭저럭 매 때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지 뭐.... 그리고 오늘 그냥 부담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대한 의미도 한번 생각해 보았다.

 

오늘 그래서 그런 기분을 갖고 초등학교 6학년 사회인가 국사인가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배우는 장이 을사조약 1905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사건들.... 러일전쟁 승리로 일본의 지배력이 더욱더 공교해지는 시기.... 고종이 헤이그 특사파견으로 일제에 의해 그 직위를 박탕당하는 사건 등 그리고 이또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까지 해방전 근대사를 보았다. 뭐 그럭저럭 가르치는데.... 내용이 새롭게 다가온다. 뭐 이전에는 수학과 국어 정도 그리고 간혹 영어(잘하지도 못하면서.... 문법에 대해 가르쳤는데...) 새로운 과목이 나온다. 한문도 새롭다.

 

한문공책에 한문을 빼곡히 쓰던 기억들.... 그 단어들이 쓰는데 생소해 늘 한문선생님에게 혼다던 기억... 쪽지시험을 보던 기억들.... 세월이 지났건만 그 풍경 그리고 숙제를 내주고 여러번 반복해 그 한문을 익히게 하는 교육이 아직도 변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오후 몇시간을 아이들과 보냈다. 오는 비를 우두커니 지켜보면서....

 

그래도 조금은 여유를 부릴 시간적 여유를 찾았다. 이전 모에 눌린 것같은 중압감이 좀 불안하게 했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다시금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도 그리고 투쟁의 의지를 밝히고 있는 지역분들도 다 한결같아 보기 좋다. 그전많은 못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모습... 그게 바로 투쟁이라는 것을 이제야 새삼 깨달았다.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조금은 배워가고 있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어제는 꿈자리가 사나웠다. 가위를 눌리지는 않았는데... 땅에서 무언가 손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 기가 번쩍 거리며 순식간에 공포감의 전율이 감돌아.... 그게 무서워 형광들을 밝게 켜고 다시금 잤다.... 가위를 몇번 눌려봐 그 공포감은 알지만.... 기가 허했나... 요즘 무언가에게 잡히는 것 같은 느낌을 잠을 자다 느낀다. 허허.... 공포감에 일단 당혹스럽다. 그렇게 산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제 선전전

  • 등록일
    2005/06/14 11:19
  • 수정일
    2005/06/14 11:19
어제 선전전을 오산역과 금정역을 오가는 지하철 안 선전전을 전철연 연대단위 동지들과 오산역에서의 대시민선전전 그리고 수원역에서 대시민선전전 등을 진행하였다. 수청동의 문제가 6월 8일 이후 조금은 미온적으로 진행되었으나 6명의 불구속자 그리고 가족을 중심으로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자 한다. 이에 이전 진행하였던 수원검찰청 앞 1인 시위와 오산 화성경찰서 앞 1인 시위를 시발로 다시금 수청동철대위 주거권 쟁취 투쟁을 전개한다. 어찌 되었든 그 주거권을 요구한 당사자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투쟁의 의지를 불싸르고 있는 한 이 투쟁은 끝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투쟁에 어떻게 결합하고 함께 민중연대투쟁을 전개하느냐가 이후 관건이다. 4월 16일 벌어진 사건 또한 법정투쟁이 진행되겠지만 나와 있는 수청동 철대위 동지들의 주거권 쟁취 투쟁이 지속시키고자 하는 모습에서 다시금 주거권 쟁취투쟁이라는 당면 과제를 오산시 전역은 물론 경기도 전체의 문제로 어떻게 부각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라 하겠다. 어제의 선전전에서 전철연 연대단위를 위시한 수청동 비대위 동지들의 투쟁의 의지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지루하고, 힘들겠지만 다시금 수청동 철대위 깃발을 높이세우고자 하는 수청동 철대위 동지를 비롯한 전철연 동지들에게 주거권 완전쟁취의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바램해 본다. 선전은 다시금 투쟁의 의지를 불태우는 자리였다. 이후 이전과 다른 조건이지만 연대투쟁을 통해 주거권 쟁취 투쟁의 중요성과 이 투쟁에 대한 연대의 필요성을 하나둘 알려나가고자 한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