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7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11
    6.10 항쟁을 보내며...
    간장 오타맨...
  2. 2005/06/11
    민중연대 전선이 사라진 지금.....
    간장 오타맨...
  3. 2005/06/10
    이제야 정신 차리다.
    간장 오타맨...
  4. 2005/06/07
    어제 저녁 예전 룸메이트를 만나다.
    간장 오타맨...
  5. 2005/06/06
    동네 주민을 오산에서 만나다.
    간장 오타맨...

6.10 항쟁을 보내며...

  • 등록일
    2005/06/11 01:24
  • 수정일
    2005/06/11 01:24

6.10일 그날을 보낸다.

기념할 날도 많고 그냥 흘러가는 날도 많다. 그러나 6월 호국보훈의 달이라 명명되던 달을 이제 다시금 곱씹어 본다.

 

과연 6월은 어떠한 의미였는가? 국민학교때 학교에서 틀어주는 "아 어찌하여 잊으리 조국의 원수들이 짙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해 호국영령을 기리며 반공 웅변대회와 포스터를 그리던 그달.... 6.6일과 6.25로 대표되는 반공을 외쳐부르던 달.... 대가리가 크고 사회를 알면서 그 허구성을 느끼기 전까지 학교에서 걷는 반공비를 100원씩 꼬박 집에서 받아가서 내던 달이기도 하다.

 

선생님 왈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을 위해 소중히 쓰여질 반공비를 걷는다는 말에 어린 내 눈엔 그 돈을 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가 서려 있었는지 꼬박 꼬박 이 돈을 타서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없던 그 시절... 평화의 댐을 이야기하면서 63빌딩의 반이 잠긴다는 말을 믿고 평화댐 건설 기금을 1,000원이나 냈던 그 시절을 회상해 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사회라는 것을 알면서 하나둘 무너져 갔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위해 부던히 내 자신의 거부를 하지 못해 늘 질문하고 대들던 그 초년생 시절을 추억해 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집회 그리고 사건을 통해 하나하나 깨져갔던 시기.... 박종철 열사가 있었고, 87년 6.10 항쟁이 있었고,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88올림픽 상계동 올림픽이라 명명되는 철거민과 도시노점상분들의 처절한 생존권과 주거권 사수 투쟁... 노동형제들의 현장 투쟁들 다양한 것들이 내가 알고 있던 안개의 장막을 하나둘 걷어 주었다.

 

그런 6월 어린시절의 호국보훈의 달은 이제 항쟁 그리고 민주화라는 화두를 넘어 투쟁하는 동지의 달이기도 하다. 4월, 5월은 참 느끼하도록 속이 불편한 달이다. 그러나 6월 그 힘찬 함성이 머무는 달엔 무언가 힘이 솟구치는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6월은 일어서는 달이다.

 

6월 그렇지만 그렇게 일어서는 달만은 아니다. 91년 그 강경대 열사 투쟁의 도화선이 외대 국무총리 강의로 얼룩진 계란을 위시한 폭력 사건으로 마감되던 때이기도 하였고, 그 당시 성대학생만이 전대협 출범식 거부투쟁을 하면서 김귀정 열사를 지키기 위해 투쟁의 의지를 불태우던 달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 투쟁은 사글어 들었고, 정국은 평온을 찾았다. 이 어찌 허무하던지.... 그렇지만 또한편 그 투쟁이 90년대 하나의 끊어진 맥을 일으켜 세워주는 계기점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6월은 실천의 달이기도 하지만 늘 좋지않은 기억이 서려있는 달이기도 하였다. 종강을 하고 농활을 준비하거나 한학기 투쟁을 정리하는 달.... 모두가 뭐가 그리 분주했는지... 학내의 힘찬함성들은 다 정리하는 이름으로 그리고 7월 농활과 8월 통일축전이라는 것으로 매몰되면서 하반기 선거라는 국면 속에서 일년을 정리하는 때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 많은 투쟁이 있었지만 3, 4, 5월 처럼 치열한 달은 드물다. 다만, 11월 전태일열사 투쟁정신 계승을 위한 총력투쟁이나 전국노동자대회, 전국민중대회 등이 배치되어 투쟁의 명맥을 유지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노동계에 있어서 6월 비정규직개악법 국회통과를 두고 총력투쟁이 전개되는 시점이다. 어떻게 되었던 이 비정규직법안이 국회상정이 안되게 할 수 있는 있을지 미지수이지만(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국회교섭단체간 합의에 따라 조정이 되겠지만...) 다시금 비정규직 투쟁 그리고 현실 붉어지고 있는 민중투쟁에 대한 포괄적 연대투쟁의 장으로 이어지기를 바램한다. 또한 김선일씨 1주년이기도 하다. 반전투쟁 단위에서는 힘찬 투쟁을 전개하고 이라크 파병철회와 미군의 전쟁책통에 대한 규탄집회가 잡혀 있고, 여러 행동들이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참 아쉬운 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일상사업으로 이러한 문제가 논의되고 의제화 되어야 하지만 우리내 역량의 부족함인지... 그 기념과 그 시기 이외엔 그 의미들을 곱씹거나 명맥을 유지하는데 있어 그리 오랜시간 끌지를 못한다.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는 심정이지만 단체들의 일과 투쟁 그리고 사업이 녹녹치 않고 산더미를 알고 있기에 이러한 사안들이 소중하게 다가오지만 아쉬움이 밀려오는 것 또한 맞이하는 때의 느낌이다.

 

그래도 이제 하나둘 시작할때이다.

6월 그 함성의 힘을 바탕으로 일어서는 6월 그리고 호국보훈의 달이라 명명되는 반공의 달이 아닌 6.10 항쟁, 6.15 평화행동, 6.24 김선일 이라크에서의 죽음이 어우려져 평화와 통일 그리고 노동자 민중 투쟁이 어울어지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어우러짐이 일어섬으로 떨쳐 일어나 하나의 함성 큰 강줄기로 흘러넘치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중연대 전선이 사라진 지금.....

  • 등록일
    2005/06/11 00:23
  • 수정일
    2005/06/11 00:23

민중연대전선으로 라는 노래테이프가 있듯이 87년 6.10일 유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라는 화두 그리고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화두가 80년대말 한국사회를 뒤덮었었다.

 

87년 구로부정선거를 시발로한 구로항쟁 그리고 87년 민주쟁취 독재타도라는 노랫말에 나오는 것 처럼 서울 그리고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투쟁엔 노동자 민중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민주시민 그리고 노동자 대중투쟁을 호소하던 민주화투사들이 길거리를 활보하였다. 이 기반이 민주화를 넘어 민주노조 건설을 그리고 노조 민주화를 넘어 전노협과 전대협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3월부터 6월까지 투쟁과 연대의 함성으로 길거리를 행보하던 인파... 그리고 88년 홍제동 길가를 막고 통일을 염원하던 학생들의 길거리 시위.... 노동자 현장 투쟁과 동맹파업 등 투쟁의 함성이 업종과 직종을 넘어서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울려퍼지던 그 시기.... 그 때 우린 민중연대 전선을 이야기하면서 폭넓은 투쟁을 전개할 것을 호소하였다.

 

작게는 민주시민 그리고 노점상, 철거민, 농민, 도시빈민과 노동자 투쟁을 호소하며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시기 우린 이 모든것을 포괄하기 위해 민중권력쟁취 투쟁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뛰어넘어 민중의독자적정치세력화(이하 민독정)을 민중당 일부 후보와 무소속 후보 전술로 92년 4월 총선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밑바탕에서는 노동자투쟁의 지지세력인 위에서 열거한 민중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변혁과 사회세력화의 주요한 동력이었음을 우리는 감지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민중연대라는 이름과 민중권력쟁취 투쟁이라는 말은 민중 투쟁의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내 노동운동이 부문운동으로 머물고, 시민운동의 확대로 전국의 모든 운동이 부문화 되어갈 때 민중투쟁 또한 하나의 부문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의 다양성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보지만 문제는 이 운동의 부문간의 연대 그리고 부문간의 학제간 연구가 전무한 상황 그리고 운동의 확장이 전문화 되어지면서 이들간의 연대라는 이름은 각 부문의 확장을 통한 상호보완이라는 이름으로 등한시 되어진 것 같다는 개인적 판단을 가져본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서로가 어떻게든 상호작용 속에서 다양한 부문영역의 투쟁이 교차되어야 하지만 이 점은 간과하고 우린 시민 또는 다양한 대중이라는 방식을 선호하며 이전 운동에 대한 일종의 종말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이 땅의 주요세력인 노동자 민중이라는 영역을 대중과 시민에서 분리시켰다.

 

면면을 들여다 보면 이 모두가 노동자 민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대중과 시민이라는 용어로서 그 대중들을 규정하고 부문운동안에 머물게 하거나 더 이상 밖으로의 이탈을 시키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닌지.... 운동은 존재하나 대중이 없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과도 똑같을 것이다. 자기 기반의 활동.... 세상을 변혁을 바라기보다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근원적 접근보다는 사회제도 개선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투쟁에서 노동자 민중투쟁은 과거의 낡은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 이는 분명 80년대말과 90년대 초 현실 모델적 사회주의 붕괘에 따른 현상이지만 이 현상의 극복을 하기 위해 잘못된 길과의 동조라 낳은 성숙되지 못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 민중이라는 용어가 용인되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최소한 자신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로 우리 사회는 흘러가고 있다. 농민의 경우 WTO에 의한 통상압력으로 쌀시장 개방과 농수산물 시장의 전면개방을 요구받고 있고, 도시빈민의 경우 철거민 또는 도시노점상이 주거권과 생존권을 박탈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우린 언제부터인가? 민주화시대라며 이러한 문제를 소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정치권력이 민주화되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그릇된 희망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투쟁에 있어서 개인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또는 이들의 투쟁에 대해서 과격한 점만 부각하여 시대적 정신에 맞지 않다고 매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투쟁을 그/녀들의 배우지 못한 무지나 그/녀들의 게으름 또는 그/녀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그/녀들의 투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과 눈총을 보낸다. 노동자의 투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보자 그/녀들의 투쟁을 그/녀들은 살기위해 싸우고 죽지 않기 위해 투쟁한다고 말한다. 그 구구절절함 한번이라도 유심히 나눠주는 유인물 한자라도 보고 판단해 본 적 있던가? 내 문제가 아니니까? 아니 나는 최소한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그/녀들의 투쟁을  폄하하지는 않았는지....

그/녀들의 투쟁을 폄하하기전 이 사회에서 과연 미래는 어떠한 사회일까? 반추해보면 이 사회에서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 단면을 면면히 살펴보자 결코 쉽게 치부하거나 결코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나의 문제이고, 이후 자식, 후손들이 이러한 더러운 수렁과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직한 일이다. 나의 일이며, 내 이웃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 민중의 문제이다. 현실에 안주한다면 뭐 더이상 할 말은 없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과연 미래는 있는가? 희망을 낙관하며 기운을 차리기에 현실 조건은 그리 썩 좋지많은 않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많은 단사들이 장기투쟁사업장이거나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이 너무 많다. 일일이 지원하기에도 버거운 형편이며, 이 투쟁지원에 있어 순번을 정해서 집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민중연대투쟁은 차치하고라도 연대투쟁이 어려운 조건이라는 현실이 현장 노동운동을 하거나 사회시민단체 운동을 전개하는 활동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몫도 크다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어느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 속에서는 80년대 그 많던 사람이 사라졌는가?라는 이야기 속에서.....현재 90년대 만들어진 노동자 민중 투쟁의 활동가는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90년대 노동자 민중 투쟁을 전개하는 활동가들을 구축하기 보다 모색이기 변화니 그리고 위기라는 담론에 우리 스스로 수세적으로 허우적 거리며 90년대 시간을 활동가 양성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들었고, 노동자 민중 투쟁을 할 수 있는 활동가 양성을 등한시 한 결과가 아닌가? 지금부터라도 그 투쟁하는 활동가 그리고 민중연대전선이라는 포괄적 범위 속에서 현 정세나 투쟁 방향들을 내와야 한다는 말.... 다양한 부문의 의견들이 모아지고 토론되고 지적되어 함께 나갈 수 있는 방향과 활동가들의 폭넓은 안목속에서 활동이 균등하게 배분되고 분산되는 현실..... 활동 영역이 이전에 비해 폭넓게 확장된 것도 있지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서로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그/녀들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시선부터 함께하고 함께 어깨걸고 나가면서... 작지만 민중연대전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전선을 만들어가는 활동가들을 다시금 2000년도 중반인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맞다. 90년대 활동가들.... 자신하나를 버티기 위해 힘들었지만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활동에 있어서는 너무 등한시 되었다. 90년대 형성과 분열 그리고 통합을 위한 우리의 모색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 시기였고, 혼자 버티기엔 너무나 많은 과제들이 얹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 80년대말과 90년대 초반 그 사회주의권 붕괴부터 시작한 지금까지의 과정.... 그 첫단추 부터 잘 규정하고 활동가들을 만들어가는 투쟁 속에서 민중연대전선은 다시금 확립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생각해 본다.

 

짧은 생각을 끄적이는데... 머리만 복잡하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제야 정신 차리다.

  • 등록일
    2005/06/10 17:22
  • 수정일
    2005/06/10 17:22

빗물도 좋고

눈물도 좋다

물한방울만 다오...

 

오산 수청동 골리앗 농성투쟁을 전개한 동지들이 써놓은 낙서이다.

56일간의 투쟁에서 고단한 생활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낙서이다.

경찰특공대에 의해 강제진압 강제철거 되기전 그 투쟁의 의지를 불태우던 동지들의 비장한 심정이기도 하다.

 

난 멍하니 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다.

전철연 투쟁에 있어 이전 민중연대투쟁이라는 단어들이 빛바랜지 오래... 연대한 동지들은 타워크레인을 세워 콘테이너 박스와 고무총 그리고 물대포에 체류액을 혼합해 쏘아대면서 저항하던  철거민 투쟁을 전개하던 골리앗 농성자들 투쟁에 무엇하나 해준것이 없어 마음이 싸하였다는 연대동지들의 말.... 그리고 그들의 푸념들을 듣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자명한 것은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여론과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수청동 골리앗 농성자들의 투쟁에 있어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내며 지원이다 해결이다 소리쳐 보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는 골리앗 투쟁의 위력이 거세된 후 사그러들고 있다. 그렇지만 수청동 비대위는 전철연 주도로 하는 투쟁에 있어 함께 연대를 진행한다.

 

오늘 오산역 앞에서 선전전 그리고 오산지역에서의 연대 집회....다시금 힘들지만 주거권 쟁취와 올바른 주거정책 실현을 위한 철의 철거민 투쟁이 시작된다. 모두다 힘들다는 바닥 싸움 그러나 올바름이 있다면 이 투쟁 무엇이 두렵겠는가? 다만 연대하는 동지들의 힘찬 연대의 함성을 바램할 뿐이다.

 

병원에 입원한 동지는 불구속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찰이 하는 말 가관이다. 불구속이니 니네들이 알아서 병원 치료비를 내라.... 참으로 기막힌 말이다. 그리고 화성경찰서는 오산지역에서의 전철연 투쟁을 차단하기 위해 오산지역 깡패들의 모임인 선후배 연합을 시켜 방어 집회(가라 집회신고를 해놓아 집회를 사전에 차단함.)를 냈다.

 

기가 차지도 않는다. 경찰, 깡패, 주공이 하나가 되어 정부의 주거정책을 그렇게 잘 협심하여서 막아내고 있는 꼴이라니.... 누구를 위한 철거이냐....말은 말이 계속해서 가슴이 비수를 꽂았다. 그러나 자명한 것은 수도권 전지역에서 이제 철거민 아니 이 땅에 힘없고 돈없고 집없는 사람은 더이상 살수 없이 늘 철거라는 미명하게 쫓기는 삶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많은 집 다 누가살려고 그렇게 해 놓고 있다는 말인지.... 집없고,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만을 이유로 경찰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온갖 탄압으로 굴욕을 당해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기 그지 없다.

 

그리고 함께 하였던 인도네시아 안도노가 화성 동탄에서 출입국관리소 단속으로 화성보호소에 감금되어 있다. 요근래 자주 볼 수 없었는데.... 논두렁으로 도망치다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철거투쟁이 한창인 그 시간에..... 전화기 앞에서.... 도통 정신이 없다. 한쪽은 철거민이 한쪽에선 이주노동자가 그렇게 정부의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잡히고 두들겨 맞는 현실.... 철거민 투쟁을 지켜보면서 과거 그 힘차던 민중연대 전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되물어 보았다. 그러나 현실 너무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은 많지만 그 연대의 손길은 서글프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위력이 있는 투쟁 그리고 전국적 투쟁이 아니고서는 그 연대라는 이름의 명암을 내밀지 못하는 현실에 우린 봉착해 있다. 그게 참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제 저녁 예전 룸메이트를 만나다.

  • 등록일
    2005/06/07 07:27
  • 수정일
    2005/06/07 07:27
어제 저녁 2001년도 10월부터 2003년도 2월말까지 함께 동거동락한 룸메이트를 만났다. 이전보다 보기 좋은 모습...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인근지역에 출장을 왔다며, 전화를 걸어와 저녁에 만났다. 연일 퍼마신 술때문에 속이 조금은 부담되었지만 그래도 반가운이 만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인근 순대집에 가서 순대볶음에 소주 한병을 함께 나눠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들.... 룸메이트와 지금 방이 나가고 있지 않은 집에서 티걱태격하면서 살아갔던 흔적들을 말을 통해 쫓아가 보았다. 묶인 몸이라 자유롭지 못한 룸메이트 그래도 얼굴은 보니 반갑다. 몸도 나와 살때 망가졌는데 많이 회복이 되었고, 건강한 것 같아 보기는 좋았다. 그리고 어제저녁 내가 귀거하는 센터 병아리반 방에서 잠을 청하고 오늘 아침 일어나 그가 묶여 있는 곳으로 갔다. 자주는 못보지만 간혹 오는 손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건강히 잘 살고 있음을 직감한다. 아침 예전 룸메이트를 보내고, 이렇게 흔적을 남겨본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동네 주민을 오산에서 만나다.

  • 등록일
    2005/06/06 18:45
  • 수정일
    2005/06/06 18:45

어제 오산에서 문태준씨를 만났다.

같이 등산가는 등산지기요. 동네 주민이며... 함께 여러가지 일들 특히 살아가는 이야기와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로 많이 하였던 이인데.. 오산으로 내려와 도통 보지 못하였는데... 어제 사무실로 찾아와 함께 술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리눅스 업체에서 일하며 정보통신노동조합 활동을 같이 하고 있는 문동지는 노동조합과 일상적 문화생활 향유를 통해 삶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노라 말하였다. 일때문에 바쁘지만 그래도 활동과 문화생활 향유하고 있는 문동지가 부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활동에서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노동조합 활동이 어떻게 나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문동지의 모습과 함께 술한잔 하면서 놀러갈 계획을 세우는 것들... 이번 여름휴가를 같이갈 예정인데.... 같이 갈 수 있으려나....

 

어제 계란탕과 계란찜을 안주삼아 소주 2병씩을 마시고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방에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보았다. 간혹 이런 자리를 갖자고 했지만 워낙 바쁜지라 자주 만날 수 있을려나.... 그렇지 못해도 손전화로 안부나 자주 물어봐야 겠다.

 

어제 술한잔 하면서 자주 오는 이주노동자들도 얼큰히 취해 오산시내를 지나가는 모습도 보았고, 월요일 휴일이라 모처럼 인근 술집으로 나온 이들의 모습들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늘 술집보다는 센터에서 술을 사다가 먹다가 나가서 먹는데 돈이 약간 부담은 되지만 술집에서 술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센터에서 상근하는 분들과 한달에 한번이라도 나가서 밥이라도 먹었으면 하지만 이것도 여유롭지 못하다.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돈도 시간도 발목을 잡고 있다. 그래서 문동지에게 명암을 주면서 명암에 표기된 계좌번호로 정기적으로 1만원씩 후원도 부탁해 보았다. 후원회원을 조직해야 자체적으로 활동하는데 있어 독립성을 갖고 사업에 더 주력할 수 있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고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도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보며 생활을 해나가야 겠다. 어제 술과 노래방에서 간만의 일탈적 행동을 하면서 그냥 살아가면서 문화적 욕구를 만낏하였다. 자주 이런기회를 이주노동자들과 만들어 보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문동지 집에는 잘 갔는지... 걱정이 된다. 챙겨주지 못해서.... 오늘 하루종일 쓰린 속을 부여잡고 라면으로 쓰린 속을 다스려 보았다. 오늘 저녁엔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가 온단다... 허걱 오늘은 맥주나 간단히 사달라고 해야 겠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