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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28
    다른 세상은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가능하다
    간장 오타맨...
  2. 2005/05/27
    열린우리당에 드리는 수청 철대위 입장
    간장 오타맨...
  3. 2005/05/27
    시간을 보내며....
    간장 오타맨...
  4. 2005/05/25
    한가한 오후
    간장 오타맨...
  5. 2005/05/24
    부담감....(2)
    간장 오타맨...

다른 세상은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가능하다

  • 등록일
    2005/05/28 09:16
  • 수정일
    2005/05/28 09:16
다른 세상은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가능하다 미디어 / DMB 시대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DMB 사업자가 결정났다. ‘지상파이동멀티미디어방송’이라는 긴 이름을 지닌 이 DMB 사업은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쏟아져 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올 방송통신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목적은 한 마디로 이동중인 사람들이 손쉽게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란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아직도 이동을 할 수 없어서 투쟁하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이동하며 감상할 수 있는 매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이런 매체를 만들지 말자는 건 아니다. 만약 다음과 같이 될 수 있다면 DMB도 의미있는 일보전진일 것이다. 바로 이런 매체들을 통해서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논쟁되고 소통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이 DMB 사업의 얼개에 깊숙이 반영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할까 ? 아직까진 전혀 (혹은 거의) 그렇지 않다. 김명준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소장 mjkim@mediact.org 누구나 겪고 있지만 별로 고민해보지는 않는 상황을 한번 되새겨보자. 디지틀 미디어 시대에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이 결정해버린다. 그런데도 우리 주머니를 털어 그 사업을 진행하는 기묘한 현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세상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살아보면 그냥 알 수 있는 것인데, 이 쪽 사업의 진도는 항상 거침없이 나간다. 단 한사람도 정부청사앞에 가서 “지금 보는 TV가 워낙 화질이 안좋으니 디지털로 바꿔라!”고 외친 일도 없거만 이제 수년내로 모든 아날로그 TV는 고물이 될 판이다. 모두를 위한 디지털 미디어 자본주의? 아무런 싸움도 없이 왜 이렇게 진도가 빨리 나가는지에 대한 답변은 다음 두가지중 하나다. 그게 워낙 좋은 것이긴 하지만 대중들이 무식해서 요구를 안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워낙 이권이 크게 걸려있는 것이라 앞뒤 안 가리고 진행하는 것이다. 어느 답변이 맞든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점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자본주의가 원래 그런 것이긴 하지만, 이 분야의 사업들이 지난 10여년간 보여준 규칙들을 보면 하나같이 똑같은 궤적이 그려진다. 언제나 시작은 장밋빛 환상이다. 언론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어느날 아침 눈을 뜬 A과장은 이동용 멀티미디어 디스플레이로 어쩌구 저쩌구 … 어쨌든 그런 편리한 세상이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 따위의 기사들이 분위기를 잡아주고, 새로운 미디어가 유발할 산업 연관 효과가 그럴듯한 통계로 포장되어 등장한다. 그런데, 이 통계들을 다 모아보면 우린 하루종일 온갖 미디어의 숲에서 바보처럼 버튼을 눌러대고, 수입의 대부분을 방송통신장비에 지출하고 있어야 한다. 어쨌든, 주로 영어약자로 암호처럼 이름 붙여진, 이상한 미디어에 대한 정책이 수립되고 거대한 이권을 노리는 사업자들이 각축전을 벌이다가 이런저런 시비가 붙고, 어쨌든 사업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경쟁이 장려된다. 독점되면 안된다고,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사업이 과잉투자임이 드러나면서 수사학은 바뀐다. 소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지 않고 경쟁은 치열하니 다시 효율성의 논리가 등장하면서 독점이 경쟁을 대체한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시장이 경쟁을 낳고, 그를 통해서 소비자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주장하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이 사실은 경쟁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결국 경쟁은 오직 사업권을 따기 위한 핑계이자, 공적 책임을 떠맡지 않기 위한 변명임이 드러날 뿐이다. 상황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제 이런 과정 전체가 마치 원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양 그럴듯한 개념으로 포장되기 시작하는데, 산학협력이라는 이름 하에 동원되는 학자들은 이런 자본의 운동에 대해 온갖 논리적 구조를 부여해준다. 그것은 패배주의이거나 혹은 적극적인 동참의 표현이다. 게다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 개발은 그 기술 자체가 수용자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하기도 한다. 하나의 DVD 규격을 확정하자마자 이번에는 거꾸로 전 세계를 멋대로 분할통치해버린 지역코드라는 황당한 발상이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긴 호흡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이건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자본은 언제나 세상을 자신의 이름으로 구상하고 만들어왔으니까. 그러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상황을 열심히 분석하면서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바꿔내는 것이다. 현실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아가 그들의 이름과는 다른 이름으로 (그것이 민중이든 시민이든)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 가운데 일단 두 가지만 점검해보자. 괴제는 자본 중심의 미디어환경 극복 그 하나는 공공성이다. 시장근본주의의 문제점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것이었고,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들은 공공성, 공적 영역, 공익성 등의 이름으로 자본이라는 사적 이익의 파괴적인 욕망과 운동을 제어하려했다. 미디어 영역에서 이 공공성은 아날로그 시대를 관통하며 다양하게 굴절되어왔다. 그것은 민중의 정치적 권리가 확대되면서 함께 확대되기도 했고, 때로는 아래로부터 일어난 정치적 변화와 맞물리지 못하면서 위축되기도 하는 등 ‘불균등발전’은 불가피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그 변화의 폭은 짧은 시간동안 무척 컸다. 방송 영역에서 공공성의 문제는 우선 공영방송이라는 일종의 대의제 성격을 지니는 방송의 역할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시작해서, ‘시청자 주권’이라는 무척 추상적이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개념으로 표현되면서 옴부즈맨 프로그램이나 시청자위원회의 결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또 ‘퍼블릭 액세스’의 번역판인 시청자 제작 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사업의 확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정보통신 영역에서는 이와 달리 주로 보편적 서비스의 개념을 중심으로 공공성의 담론이 발전되었다. 사람들이 값싸고 손쉽게 누구나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조건과 정책에 대한 논쟁이 공공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의 주요한 축이 되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런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이른바 정보통신융합의 시대, 미디어간의 경계가 파괴되고 융합된다는 이 ‘디지털 미디어’ 세상에서 기존의 공공성은 어떻게 재평가되어야 하는 것일까. 또 새로운 공공성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그리고 과연 이러한 공공성을 전 사회적으로 담보해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가기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혹은 제안하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답변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다. 워낙 미래가 혼미하고 상을 잡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답답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방송 혹은 통신중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아야할지에 대한 암중모색이나 갈등만이 아직까지 우리 앞에 드러난 현실이라는 것이다. 섣부른 답변을 하기에 앞서서, 하지만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환경에서 산업,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 중심의 논리를 극복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그야말로 미래지향적인 공공성을 구상하기 위한 단서중 한 가지를 양쪽 미디어에서 초보적인 논의 수준에서나마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주류미디어, 참여미디어 포괄하는 새로운 공공성 한국의 미디어 역사가 지닌 주요 특성은 인터넷이 발전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시민들이 공동체 라디오나 TV를 소유하고 운영해본 경험 없이 곧바로 광대역 인터넷(초고속 인터넷이라는 황당한 상업적 용어는 되도록 쓰지말자)을 접하면서 미디어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지평을 확대한 유일한 국가이다. 즉 허가받은 주체가 컨텐츠의 생산과 소통을 독점하는 기존의 대의제적 미디어 시스템과 다른 일종의 ‘직접민주주의적 참여형 미디어 시스템’의 가능성이 한국의 현실에서 매우 폭발적으로 입증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역설적으로, 인터넷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을 그 접근에 대한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뚜렷이 입증되고 있다. 자본이 시장을 통해 인터넷을 독점하게 되는 위험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접근권에 대한 전통적인 논의를 넘어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보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정책의 필요성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른바 주류 미디어의 한계는 명확해지고 동시에 그 역할이 더욱 확장되어야 함이 분명해지고 있으며, 주로 정보통신 영역으로 분류되는 새로운 미디어 또한 그 새로움과 함께 이른바 올드 미디어가 지닌 한계를 어떤 수준으로든 내포하고 있음도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주류 미디어의 혁신과 그러한 주류 미디어와 새로운 참여적 미디어를 포괄하는 새로운 공공성의 프레임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닐까. 말하자면 방송과 정보통신이 모두 공존하는 바로 지금, 이미 드러났지만 공공성의 담론에 아직 포괄되지 않는 방송과 통신 영역의 새로운 의제들을 포괄하면서 아직은 맹아로만 존재하지만 미래에는 틀림없이 드러날 의제를 역시 포괄하는 새로운 공공성의 재구성은 불가피하면서도 가능한 것 아닌가 말이다. 이제 공적 이해를 대변해야 할 사람과 조직들은 이 질문에 대해 책임있게 답변해야 한다. 누가 주도적으로 융합을 할지 따위의 논쟁을 벌이기 훨씬 전에 이것부터 해명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세상’은 ‘다른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자본의 힘은 막강하고 국가 기구와 공적 체계도 자본의 힘과 그 힘에 근거한 시장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이 디지털 미디어의 영역에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서야 할 운동주체, 그리고 수용자의 상황을 둘러싼 특수한 조건이 도사리고 있다. 그 이름부터가 부담스러운 이른바 뉴미디어는 마치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처럼 언제나 저 높은 고지 위에 서있다. 공적 이익을 고려한 대책을 준비하면 대상 자체가 기술 개발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바뀌어버리기도 하고, 대상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순간 게임의 규칙은 이미 결정난 상태이기 일쑤다. 무엇인가 제안을 하려해도 그 제안을 이해하면서 공공성을 함께 고민할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돈도 벌기 전에 무슨 요구가 그리 많냐는 핀잔도 융단폭격처럼 쏟아진다. 이건 정말 힘든 싸움이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이건 해야할 뿐만 아니라 해볼 만한 싸움이다. 기존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싸움이 주로 그 자유를 당장 침해하는 세력에 대항한 수세적인 투쟁의 확대로 표현되는 것과는 달리, 이 싸움은 미래를 그려가는 싸움인만큼 공세적인 싸움이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고, 누구도 미래를 단언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지금 한국은 디지틀 미디어의 초기단계가 아니라 이미 그 한계와 성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이른바 ‘IT 강국’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상황을 알고 있으며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그 첫단추들이 꿰어졌다고 보긴 힘들다. 디지틀 TV의 전송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시대의 채널 정책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고, DMB는 어리둥절한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그러니 비록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빨리) 다시 시작할 때가 왔다. 정해놓은 게임의 규칙안에서 이리저리 휩쓸려다니지 말고, 게임의 규칙을 제안하고 실천하는 운동을 시작하자는 말이다. 처음부터 규칙을 통째로 다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부터 논의를 해나가면 된다. 새로운 시대의 공공성과 미디어 전략을 한꺼번에 논의에 붙여보든지, 수용자 주권, 커뮤니케이션 권리, 퍼블릭 액세스 권리 등의 각종 권리 개념을 중심으로 인권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논의를 하면서 전체적인 얼개를 잡는 단서를 찾아가든지, 앞으로 남아있는 다른 매체들의 도입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 정책을 토론하든지, 도입된 혹은 정착된 매체에 대한 재평가를 새로운 개념에 대한 상상력을 기초로 시도하든지,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누가 모여야 할지,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왔다. 해방의 가능성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좁고, 짜임새있게 설명하기에는 내공이 모자란 상태에서 이 거친 글을 억지로라도 쓰고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직은 작아 보이는 이런 시도들이 분명 현재의 갈증을 채워주는 강력한 힘으로 성장해갈 수 있기 때문이고,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시도가 정말 지금과 다른 세상을 현실적으로(!)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핵심이라는 ‘기술 결정론’ 혹은 ‘생산력 지상주의’를 믿어서가 아니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해방의 가능성과 참여와 다양성의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한껏 키워나가지 않는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장을 무릅쓰고 한마디로 요약하자. 다른 세상은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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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에 드리는 수청 철대위 입장

  • 등록일
    2005/05/27 17:32
  • 수정일
    2005/05/27 17:32
서민을 위한 정책을 정당의 기조로 삼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최악의 상황이 발생된 후 늦은 감은 있지만 수청 철대위를 방문해 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곳 수청동의 문제는 비단 수청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재개발, 재건축 지역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문제로서 수청 철대위는 지역 단위에서가 아니라 모든 철거민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국정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 주시길 바라며 수청 철대위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이곳 수청 철대위는 주택공사가 재개발 공고를 한 후 공식, 비공식적으로 주공 관계자와 많은 의견을 나누고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대책 방안을 논의해 왔습니다. 주민을 해당자, 비해당자로 나누고, 철대위 동지들을 용역들을 동원하여 회유, 협박하고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만 이야기 하였습니다. 주민들을 해당자, 비해당자로 나누고 법테두리 내에서만 이야기 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투기꾼이 아닙니다.” 다만, 주공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 원거주민들이고 등기부 등본에 등재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언제 이곳을 개발해 달라고 요구했습니까? 현 상황에서 우리가 쫓겨날 경우 우리는 자녀교육, 직장문제 등 지금의 보상기준으로는 세입자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으며, 주거 생존권은 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무엇을 위한 개발입니까? 둘째, 우리는 대화의 마지막 수단을 골리앗을 선택했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상대와 대화의 수단으로 골리앗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택공사가 선택한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골리앗을 세우기도 전에 대화의 방법이 아닌 용역 깡패를 동원한 폭력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폭력 집단이 아닙니다.” 4월 16일에는 우리는 살기 위해서 싸웠지 누굴 죽이려고 싸운 폭력 집단이 결코 아닙니다. 셋째, 골리앗이 세워진 후 우리는 공식적인 5자 회담 형식의 1차 협상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주공은 지금도 예전의 입장에서만 접근할 뿐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또, 주공의 입장과 오산시청의 말은 전혀 달랐습니다. 주공은 법적인 테두리만을 이야기하고 시청은 등기분 등본에 등재된 사람이면 모두 해당자라고 언급을 하였습니다. 오늘 말이 맞는지 우리 철대위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넷째, 4월 16일 용역직원이 한명 사망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 다립니다. 또, 그 문제에 대하여 성낙경 동지가 경찰에 자진 출두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살인으로만 단정할 뿐 부검 등 죽음의 원인에 대한 기초적 수사조차도 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1차 사망 원인이 옆동 4층에서 용역이 던진 소화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4월 16일 당일 우리도 합판 한 장을 머리에 얹고 철대위를 4차례에 걸쳐 침탈하려고 한 것에 대하여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며, 우리의 법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눈뜨고 지켜보기만 했던 경찰 책임자와 침탈하라고 지시한 주공 관계자와 용역 간부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경찰은 국가인권위가 다녀간 후 화성경찰서와 구두로나마 약속한 최소생필품 마저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차단하고 있으며, TV에서도 방영되었듯이 아사직전까지 가면 항복하겠지 하는 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또, 경찰이 철대위를 향해서 처음으로 골프공, 차돌맹이에서 이제는 쇠로 만든 너트까지도 발사하여 유리창을 박살내고 동지들에게 크고 작은 부상을 입혔으며 철대위가 골프장인지 골프채를 휘둘러 유리창을 박살내면 박수치고, 환호하는 것을 보면서 공권력에 대한 증오심만 키워 왔습니다. 여섯째, 수청동 미도빌라에 거주하다 골리앗에서 투쟁중인 종지의 따님 한 분은 5월 16일경 파출소에서 자술서를 썼다고 합니다. 내용은 집안에 조폭이 들어서 가제 도구를 훔쳐갔다고 하는 내용이었고, 당일 동지의 남편되시는 분이 지방 출장에서 돌아와서 집에 들어가는 것 조차도 막고 여관에 가서 주무시라고 했던 경찰이, 4개 중대 병력이 둘러싸고 있고, 동네 주민들 맞여도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이 대낮 트럭을 들이대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도둑을 집지 못했다는 것은 저희 입장에서는 이해 할 수가 없으며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찰의 방조내지는 협조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봅니다. 일곱째, 이곳에 참여한 주민들을 폭력을 통해서 자기권리를 되찾으려 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인식하고 수청의 문제가 해결되면 나의 문제도 해결되는 것과 같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용역 직원 한명이 사망한 것에 대하여 성낙경 동지가 경찰에 자진 출두하고 주공과의 문제가 해결되면 수청 주민들은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법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권력에 대한 불신감을 해소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덟째, 단전․단수는 준살인 행위입니다. 전쟁에서 포로를 잡아도 밥주고 물주고 부상자에 대한 치료는 해줍니다. 40여 일째 단전․단수가 계속되면서 동지들이 닦고 씻지도 못하는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에서 공동생활을 하다보니 피부병, 배탈, 설사 등 갖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선 시급한 문제로 단전․단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권 차원을 떠나서 이것은 준살인 행위입니다. 아홉째, 열린우리당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서민을 위한 정책을 기조로 삼고 있는 정당입니다. 그러나 상동2동의 철거민투쟁, 고양시 풍동의 철거민 투쟁 등을 지켜볼 때 아직도 재개발, 재건축 문제는 살고 있는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 아닌 건설자본의 논리대로만 움직이고 있다고 봅니다. 열린우리당은 수청 철대위 문제를 수청동 문제로만 바라보지 마시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안을 세워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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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보내며....

  • 등록일
    2005/05/27 11:53
  • 수정일
    2005/05/27 11:53
오늘 울산플랜트 노조 투쟁지원을 위해 많은 단위에서 울산 전국노동자대회 투쟁에 결합하기 위해 내려갔겠구나.... 그러나 수청동 또한 이 못지 않게 거점 투쟁을 하면서 골리앗 사수투쟁을 언 40일 넘게 진행해오고 있다. 이 투쟁에 대해 언론이 세간의 관심을 주목하고 있다. 신문사 기자는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고, 공중파 방송사 기자는 동영상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한다. 어찌보면 언론이 특종을 잡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지만 수청동 투쟁하는 당사자나 전철연 의 경우 이 투쟁이 전국화되어 투쟁하는 철거민들의 주거정책에 대한 투쟁을 알리는 호기이다. 이 투쟁에 있어 구심을 잡고 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한 전철연 분들의 노고야 말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 투쟁을 함께한 이들의 소소한 연대가 수청동 골리앗이 장기투쟁을 할 수 있는 발판과 그리고 이 투쟁을 전국화 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내 노동자 민중이 처한 현실이 수청동에만 있으랴.... 지역의 소소한 투쟁 그리고 연대를 필요로하는 투쟁에 이제 손 잡을 때이다.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에게 있어 한사람이 방문하여 함께투쟁을 해 준다는 것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절박하게 호소하지만 우리내 멀리있다는 핑계와 조건이 안된다는 말로 쉽게 현안에 매몰되는 경향들이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에게 있어서는 핑계와 조롱은 한낮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번 와서 손한번 잡아주고 힘내라는 말.... 투쟁에 함께하겠다는 말에 얼마나 큰 위안을 받는지 우리내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유인물 나눠주며 힘내라는 말들이 하루이틀 쌓여 장기투쟁사업장이라는 명칭을 얻어 끝끝내 노동자가 한다면 한다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그래서 연대라는 말은 함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가는 것이다. 그 시간에 많은 동지들이 떨어져 나가지만 투쟁의 정당성을 알고 있는 동지들은 끝끝내 남아 투쟁하면서 다시는 각 투쟁하는 사안에 대한 문제가 사회에서 소멸되기를 바라며 투쟁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이 좁은 땅 덩어리에서 정든 일터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내몰려 투쟁을 하고 있다. 몇일 밤낮은 천막에서 지내야 하며 몇일 밤낮은 때앗볕에서 지내 보내고 있지 않던가? 경기지역만 해도 이러한 현실에 놓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자신의 사업장 정문앞에서 그리고 역주변에서 부당함을 알리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자....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투쟁에는 모든 단위들이 붙어서 투쟁을 엄호 지지해주고 함께해 나간다. 이 투쟁은 어찌보면 대단한 위력을 보이는 것 처럼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지만 결만은 꼭 교섭이라는 사안으로 사건이 귀결되거나 극적 타결이라는 레퍼토리가 뻔한 이야기로 흐르고 있다. 이 중심에는 투쟁하는 조합원들의 염원과 바램은 이미 저버린지 오래다. 이전 철도파업과 발전파업에 있어 교섭이라는 상황이 현장에 미치는 악재.... 그리고 장기투쟁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없는 조건들이 문제점으로 부각되지 않던가? 어제 회의에서 대성산소비정규직 투쟁이 교섭을 통해 협의로 일단락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참 난감해 있었다. 궂이 왜 화섬연맹이 이 사안을 책임지지도 위원장이 투쟁 당사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교섭을 진행하여 투쟁을 종결시켰는가?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통한 원직복직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왜 모르고 있는가? 이러한 사항들이 지금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현실을 과연 반영한 것인가? 보았을때... 교섭을 전술로 배치하면서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말은 한낮 교섭을 위한 방편이라는 속보이는 활동이 아닐까? 과거 우리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한다면 한다라는 정신으로 지금 불안전하지만 투쟁이라는 의미를 하나둘 세워내지 않았던가? 아직도 세워내야 할 것이 산적해 있고, 조직하고 투쟁하여야 할 사안들이 쌓여 있는데 그 걷는 길 더디기만 하다. 대성산소비정규직 투쟁 3년 7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상케 한다. 그 투쟁에 투쟁하였던 당사자 그리고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을 일구면서 싸워나갔던 그 동지들의 투쟁의 역사는 어찌하였을까? 생각만해도 그 당사자들이 교섭안을 받아 들었을 때 어떠한 생각을 하였을까? 생각이 약간은 그려진다. 결과야 어쨌든 그들의 투쟁은 이제 종결되었다. 그러나 이 투쟁에 대한 평가 그리고 화섬연맹에서의 교섭을 통한 사태해결 그 투쟁과정에서 벌어졌던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투쟁 당사자들 또한 자신들의 입장을 조속한 시일내에 발표를 해주었으면 한다. 의미 있는 비정규직 사업장이 하나 또 지는구나...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되돌아 본다. 연대와 투쟁에 대해서.... 또 어제 인터넷 기사를 보니 오산(송탄비행장)에 스텔스기 15대(보유대수 27%)가 배치된다고 한다. 핵문제에서 붉어진 사안에서 대북압박용으로 배치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미연합사에서는 연례적 군사훈련을 위한 배치라고 하지만 스텔스기가 있을 기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단다..... 군사적 긴장이 감도는 시기이다. 덤프연대, 행운레미콘, 안산공과대, 경기일반노조 이마트 지회, 눈높이 대교 해고 투쟁, 미군기지확장이전반대투쟁, 울산플랜트 노조, 까르프, 투쟁 등등 산개되어 있는 투쟁들이 지역 현안에 널부러져 있다. 이 문제를 다 품을 수는 없지만 시간이 되는데로 가서 손이라도 잡아주고 말이라도 전해주고 싶다. 힘차게 투쟁하시라고...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제 좀 일이 안착화되면.... 이 투쟁하는 장소에 연대하기 위해 방문하고 함께 연대투쟁이라도 결합하여야 겠다. 투쟁하는 당사자들을 엄호 지지하고 함께 같이 나가는 것이 투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투쟁하는 이가 투쟁을 끝까지 할 수 있도록 함께 지켜주는 것이 동지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무실에서 오늘 닫힌당 국회의원이 내려온다 수청동에 간 사람들은 어찌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그냥 끌적이나 횡설수설이 길어졌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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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오후

  • 등록일
    2005/05/25 13:38
  • 수정일
    2005/05/25 13:38

한가한 오후이다.

아이들이 요즘 오후에 많이 없어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늘 아이들이 오면 이리저리 뛰노는 것때문에 정신이 없이 아이들 아우성으로 들썩거리는 공부방에 아이들이 없는 오후는 한적하게 보내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요즘 다른 곳에서 놀다 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후 늦은 3시 정도부터가 아이들과 전쟁을 벌이는 시각이다. 서로들 컴퓨터를 하기 위해 의무방어로 책 한권을 읽고 컴퓨터 게임을 시켜달라고 아우성 거린다.

 

컴퓨터 문제로 전쟁을 몇번 치른 터라 아이들에게 컴퓨터 시각을 정해주어서 사용하게 하는데 아이들 불만이 이만저만 아닌데로 아랑곳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한다. 아이들 이게 늘 불만인지... 공부방 회의를 해서 컴퓨터 시각을 조정해 달라고 하나보다. 그래도 컴퓨터 관련해서 내가 담당자라고 하며 아이들에게 일방적 통보를 하고 안된다고만 일축하고 있다. 아이들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컴퓨터 컴퓨터 타령이다.

 

이제 조금 풀어줘도 되나....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워낙 고단수들이기에 한치의 방심은 또다른 마찰로 이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래서 공부목적과 게임 사이트에서 제한적이기만 온라인 게임을 허용하였다.

 

온라인 게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아이들 게임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능수능란하게 게임을 하면서 재미지게 컴퓨터를 한다. 좀 큰놈들은 버디버디를 하며 채팅을 하거나 음악사이트에 들어가서 음악을 듣는 아이들도 있다.

 

제한적 시간이나마 그래도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공부방을 찾는 영남이의 경우 몇일 컴퓨터를 하지 못하게 하였더니 집에서 나오지 않았던 적도 있다. 아이들 소원이 컴퓨터 마음껏 하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워낙 큰아이들이 컴퓨터를 독점하고 속도가 빠른 것을 이용해서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컴퓨터를 제한하고 학년별 시간대를 정했는데... 제대로 진행은 되고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 넉넉한 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컴퓨터를 제한하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지만 공부방에 와서 방과후 컴퓨터만 하고 가는 것도 조금 머슥한 것 같다.

 

조금 있으면 꿀맛같은 한가한 오후는 내일로 미뤄지겠지... 아이들이 둘 왔다. 또 지지고 볶고 오늘 하루 시간을 어떻게 흘러보내는지 모르게 시간을 흘러가겠지...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공부란 놈을 몇분 아이들과 함께 해주어야 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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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감....

  • 등록일
    2005/05/24 08:12
  • 수정일
    2005/05/24 08:12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게 요동친다.

일어나 밖에서 담배 한대 피우는데 온몸에 찬기운이 감돈다.

 

어김없이 오늘도 어린이집 아이들이 제시간에 온다.

아이들과 한두시간 아침 때우는 일이 시작되었다.

아침 늘 담배 한대를 피우며 정신을 차리는 일로 시작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게 하루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허비하는 시간이리라...

 

오늘도 정리되지 않은채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겠구나....

한가지 일이 계속해서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는 일이야 어떻게든 때우겠지만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 만큼은 예전과 다르게 힘들게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 힘들어진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만큼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약간 부담으로 작용한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 사업거리로 약간은 긴장이 되고 부담감으로 어떻게 할 지 골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잘 판단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사업 일정을 예정보다 약간은 미루어 놓았다.

 

이번주 홍보물과 포스터 각 사업당 2개씩을 제작하여 인쇄소에 맡기고, 사업 준비하고, 이런저런 고민거리를 지역 학생동지들을 만나면서 풀어 헤쳐가야 겠다. 만나면 이 부담감이 가시려나.... 안되더라도 일단은 부딪혀 봐야 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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