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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11
    날씨가 내일 가장 추운날이라고 한다.(2)
    간장 오타맨...
  2. 2005/02/10
    내일 드뎌 산행을 한다.(7)
    간장 오타맨...
  3. 2005/02/10
    어제 음주가무를 만끽하다.(4)
    간장 오타맨...
  4. 2005/02/09
    간단히 차례상을 차리다.(4)
    간장 오타맨...
  5. 2005/02/09
    내가 바라는 현실은
    간장 오타맨...

날씨가 내일 가장 추운날이라고 한다.

  • 등록일
    2005/02/11 00:07
  • 수정일
    2005/02/11 00:07
음 산에가는 날인데... 내일 날씨가 춥다고 한다. 산에 걷다보면 땀도 나고 그래서 추위는 그럭저럭 이길 수 있는데... 문제는 식사할때나 조금 쉴때 땀이 식어 옷이 젖거나 해서 추위를 타면 어쩌나 긴장이 된다. 그나마 연하천을 거치지 않고 벽소령과 세석산장 그리고 장터목을 이르는 산들은 새롭게 시설을 이전에 단장하여 추위를 대강 피할 수 있고, 추운 몸은 그럭저럭 대피소에 들어가 체온을 높이면 된다. 문제는 내일 바람이 얼마나 불까이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그리고 눈이 오지 않는다면 별을 보면서 달빛과 랜턴 불빛에 의지에 산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차를 따고 함양으로 간다.


오늘 조금 긴장되고 산에 간다는 설레임에 잠이 오지 않는다. 기대한 만큼 좋은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산행을 하였으면 좋겠다. 고속도로변에 풍경이 눈에 아른 거린다. 함양 터미널.... 풍경도 머리에 그려진다. 음 삼정리.... 차가 금방 있어야 하는데.... 내일 아침과 점심은 그럭저럭 패스트푸드나 아니면 뭐 대체할 식사로 때우고 산행을 간단히 해야겠다. 산에서 마실 공기를 생각하니 폐속 깊은 곳까지 신선하다는 느낌.... 벽소령에서 맞을 낙조를 생각하니 미소가 흐뭇.... 음 그래서 산행은 가는 것 보다 가기전 설레임의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산에서 맞은 차가운 공기와 시원한 공기... 그리고 별빛과 달빛.... 도시에서 늘 땅만보고 아래만 보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하늘을 투명하게 맑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맑은 공기와 맑은 정신들을 갖고 와야겠다. 이 맑은 공기와 맑은 정신이 소진될때면 또 어디론가 후루룩 떠나면 될 것이고.... 문제는 얼마나 춥냐인데.... 음 조금 긴장이 된다. 그냥 접고 잠이나 자야겠다. 산길의 상태도 좋았으면 좋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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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드뎌 산행을 한다.

  • 등록일
    2005/02/10 12:28
  • 수정일
    2005/02/10 12:28
오늘 아침 등산장비를 점검하다. 아이젠은 불편하니까 이전에도 그렇구 안 착용한다. 랜턴을 챙기고... 준비물 살 것들을 점검한다. 내일 먹거리를 무엇을 할까 고민도 해보고... 일단 벽소령에 도착하면 밥과 떡만두국을 끓여먹어야 겠다. 조미료와 소금.. 가레떡을 준비하였으니 뭐 걱정꺼리 없고 만두를 사야겠구고, 안주꺼리로는 양파, 파, 햄으로 야채햄 볶음이나 만들면 되구... 뭐 전과 과일을 조금 싸가면 된다.


산에서 먹을 음식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그리고 오산에 내려가서 귤과 술 그리고 갖은 부식을 조금 사야겠다. 늘 욕심을 부려 음식을 즐비하게 가지고 가보았자... 먹는 것은 한정되어서 주로 쵸코파이로 허기를 때우니 쵸코파이를 조금 가지고 가야겠다. 그런데 귤은 많이 가져가면 좋다. 오를때 귤 힘으로 땀을 식히고 갈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장터목에서는 음 스프를 끓여먹어야 겠다. 야채스프도 속을 든든히 해주는데 참 좋다. 식빵을 조금 준비해서 장터목에서 먹고... 천왕봉에 올라가서 일출봐야겠다. 그리고 천왕봉에서 내려와 아침으로 남아 있는 음식들을 혼합하여 부대찌개(일명 잡탕찌개)로 배를 불리고... 휴식을 한 2시간 휘하고 백무동 길로 하산.... 하산하여 라면을 끓여먹고 지리산 동동주를 한사발 마신후... 주변을 보고 동서울로 버스를 타고 오면 된다. 문제는 날씨인데.... 바람만 세차게 불지 않으면 좋으련만.... 세석산장에서는 떡볶이나 해먹을까? 떡볶이도 좋지만 산에서 먹는 라면도 운치있겠지... 오뎅국이나 끓여서 술안주 삼고.... 촛대봉에 걸쳐져 있을 별들과 달님과 함께 술한잔하고 조금 쉬엄쉬엄 장터목으로 이동하여야 겠다. 주로 세석산장에서 휴식을 많이 취하고 가면 되겠고, 세석에서 일출보러가는 팀과 함께 동행하여 천왕봉까지 가도 좋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산행은 5월이 제일 예쁜계절이다. 철쭉이 뽐내는 계절.... 세석평전을 온통 철쭉이 뒤덮은 동산이니.... 가히 광경에 놀라지 않을 사람 어디있으랴.... 눈꽃에 만족하여야 겠다. 긴장도 되고 기분이 오묘하다. 오늘 날씨만 그대로 이면 산에 하늘의 별사탕을 줄줄이 구경할 수 있다. 밤에는 운해가 자주 끼지 않으니 구름이 걸치지 않은 맑은 날씨이면 좋겠다. 오늘 저녁 오산에서 지리산 산신령님에게 텔레파시나 보내야 겠다. 부디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여주시어요... 비나이다. 일출은 그런데 생각보다 좀 볼품이 없다. 바다에서 보는 것을 생각하던 이라면 산에서 보는 일출을 상상하지 마시기를.... 살것과 먹을것 욕심내지 않고 준비해야 겠다. 그리고 맥주도 피티병이 나왔으니 하나준비하면 음.... 모든 준비는 완료되겠구나... 음 내일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볼 풍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마냥 좋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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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음주가무를 만끽하다.

  • 등록일
    2005/02/10 10:24
  • 수정일
    2005/02/10 10:24
엊그제 집에 와서 등산장비를 빌리기 위해 동지요 친구인 지인에게 전화를 하였다. 8일은 집에서 친척과 동생 형과 보내기 때문에 만나기 힘들고 9일날 보자구 하였다. 9일 저녁 올해들어 처음으로 동지요 친구인 지인을 만났다. 이전 함께 자주 밤에 술을 마셨는데 내가 오산으로 휘리릭 떠난 다음부터는 술 먹을 기회가 없었다. 올들어 처음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만났다. 차례음식이 남아 있었고 동지요 친구인 지인이 술과 먹거리 몇 가지를 가져왔다. 그렇게 시작한 술자리.... 천천히 마셔야 한다고 해서 소주 3병을 놓고 2시간동안 홀짝홀짝 마셨다.(내가 노가다에서 배운데로 하면 3병은 둘이서 3잔만 부으면 끝나는데 어제는 최소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천천히 천천히 마셨다.)


동지요 친구인 지인은 요새 회사 그리고 작년부터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IT노조 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내 친구요 지인인 사람들은 리눅스 업종에서 이름을 들으면 그래도 알만한 사람이다. 문 머시기라고....예전 PHP, MySQL 공부를 하였다면 책 머리글자에 문머시기라는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다. 나름데로 MySQL 대중화에 힘을 들였고, 내용을 쌓은 이..... 자신을 엔지니어 타입이라고 말하는 사람.... 이 일이 재미있다고... 그런 사람이 왜 철학과를 들었갔는지 아직도 이해는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순전히 사회과학 서적을 고등학교때 미리 탐구한 댓가이지만... 사회학과를 갔으면 나름데로 재미있게 다녔을 텐데....) 내가 해줄 말도 없고 그냥 듣고, 뻘소리를 나는 하였다. 산이나 올해 자주 가자고... 작년에 북한산과 소백산 밖에 가지 못하지 않았냐고... 그리고 적적하면 내 손전화로 전화하라고 다른 일은 몰라도 내가 술먹자고 하면 잘 달려가지 않냐고 오산에도 전철이 개통되었으니 저녁시간 적적하거나 술마시고 싶으면 손전화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사실 난 돈이 없어서 늘 빈대로 술을 얻어먹고 있다. 염치불구 술 사달라고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늘 중요한 일이 있을때 의논하고 함께 이야기 하였는데, 오산에 내려올때 그렇지 못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앞으로 그러질 않아지....) 참 편안 사람이다. 늘 곁에만 있어도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삶의 향기가 툭툭 온몸에서 배어 나오는 사람.. 가식이 없고 고민거리가 있으면 날 찾아오는 사람... 그러나 나의 몇마디에 의로를 받았다고 하는 이... 그러나 정작 난 내 지인을 통해 삶을 배워가고 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3병은 금새 바닥을 들어냈다. 지인은 자신의 정량초과라 말하며 술을 더 먹을까 말까 고민하였는데 내가 술을 더 사와야 되지 않냐고 해서 2병을 더 사왔다. 지인의 회사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회사생활과 IT노조 활동 등등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3월 1일 북한산을 가기로 합의를 보고 소주 2병을 비웠다. 각각 2병 반씩 먹었는데 조금 아쉬었다. 술을 더 사와야 하는데 지인은 술을 더 먹을려면 나가자고, 그리고 노래방으로 갔다. 난 지인에 의하면 2차 3차로 통한다. 조금 마시더라도 술을 몇차를 먹어야 했기때문에 부쳐진 별명아닌 별명이다. 동네 노래방에 갔다. 노래판을 펼쳐보니 알고 있는 노래가 몇 안되었다. 그렇다고 노래도 잘부르냐 그렇지도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노래 아름아름 이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찾아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을 나도 자주 가지 않는 편이지만 술만먹으면 노래방을 잘 간다. 그놈의 술이 웬수이지... 그래도 지인과 간만에 간 노래방 좋았다. 작년 지인이 오산에 내려가는 환송회라고 함께한 노래방 출입이후 올해 처음들어 노래방에 왔다. 이런 저런 노래를 최선을 다해 불렀다. 그러나 음정박자 무시하고 불렀는데... 노래방 기기가 고장이 났는지.... 점수는 95-100점을 왔다갔다하는거 아닌가? 정말 노래 못부르는데 주인이 신년이라고 기계를 조금 손보았나.... 이상타 하지만 기분은 좋다. 그렇게 부른 시간... 보너스를 너무 많이 넣어주어 1시간어치 돈을 내고 2시간 노래를 부르고 나왔다. 더이상 목청껏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나왔. 계속 넣어주는 보너스 시간이 부담스러워 스스로 노래방을 나오다니.... 조금만 내공이 쌓였으면 한 3시간은 버틸 수 있었는데, 노래를 부르고 나니 갈증도 나고 해서... 간단히 호프집으로 향하였다, 호프의 목넘김이 끝내준다. 아 목청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해소하는데 시원하다. 그렇게 간단히 맥주를 먹고 우리동네 와산교에서 지인은 수색으로 걸어가고 나는 집으로 왔다. 신년 술자리 치고는 기분좋고 신나게 놀았다. 일상이 늘 오늘 새벽과 같이는 않겠지만.... 늘 재미있고 신나게 살았으면 한다. 지인을 꼬득여 올해는 전국 각도의 산들을 달에 한번씩 오르고자 한다. 내일 산행이 그 첫길이기를.... 음주가무 후 아침에 속이 쓰리다. 집에 있는 꿀단지를 꺼내서 꿀 물을 먹고 정신을 차리고 있다. 술먹으면 늘 숙취가 문제야,,,,, 먹을때는 좋았는데... 흐흐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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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차례상을 차리다.

  • 등록일
    2005/02/09 12:52
  • 수정일
    2005/02/09 12:52
이번 설은 간단히 음식을 차렸다. 돈이 별로 없어서 내가 먹을 음식만을 사서 만들었다. 그래도 제수(祭手) 음식을 사는데 20만원 이상 들었다. 조금씩 장을 보는데 차례음식을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소고기를 사는데만 국거리로 15,000원, 산적용으로 20,000원, 조기 2마리 4만원, 동태포 5,000원, 배 3개 2만원, 사과 4개 2만원, 감 5개 1만원, 밤 1만원, 대추 1만원, 곶감 1만원, 숙주나물 2천원, 무우 2천원, 시금치 2천원, 도라지 3천원, 두부 2모 2천원, 병어 2마리 1만원, 북어 포 5천원, 정종 1만원, 동그랑땡 용 갈은 돼지고기 1만원, 달걀 1판 4천원이 들었다.


차려놓고 보니 별로 되지 않는 양인데 돈은 어디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설날 음식차리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그래도 조상들 모시는 사람으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관습이라서가 아니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나는 제사는 내손으로 꼭 차린다는 생각을 가졌다. 일정정도 지키고는 있다. 내가 손수 만들어서 차려놓고 있으니.... 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내가 어릴 적에 그래도 부모님 혼령이 오는지 않오는지 모르지만 차려놓고 상에 놓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좋아서 였다. 그러나 현재 내가 차려놓고 봐도 음식 장만하는 일 장난아니게 힘들다. 량이 적다고 그렇지만 만드는 음식들을 하기 손이 움직이여야는 일들은 너무 장난 아니다. 그리고 사놓은 음식중에서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음식이 하나 있다. 어제 저녁 밤을 칼로 깍아 놓았어야 하는데 미처 깍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침 귀찮고 일하기도 싫어 밤을 그냥 상에 올려 놓지 않았다. 그래도 제법 음식은 풍성하다. 조기, 동태 전, 버섯(집에서 가져옴.) 전, 동그랑땡, 병어, 숙주나물, 무우 무침, 시금치 나물, 도라지 나물, 소고기 산적, 배, 사과, 대추, 곶감, 감, 물 김치, 북어 포 등 등 한강이 가득하다. 일어나자 마자 만든 떡국도 함께 올려 놓았다. 그리고 식혜와 정종을 나란히 놓고 절을 드리고 제사를 지냈다. 머리가 크고나서 늘 혼자 들이는 제사이지만 내가 차려놓은 상을 보고 직접 만든 음식들 맛과 음식 멋은 볼품이 없지만 누구보다 잘 만들었다. 오늘은 내가 만든 음식을 몇개 싸서 동생내에 갔다 주었다. 좋아 한다. 나누어 줄 수도 있다. 만들때 힘들었지만 나누어 줄만큼 풍성치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문제는 설겆이 이다. 음식을 잠시 쉬었다가 접시에 담아 놓았던 음식을 덜어서 본격적으로 별로 되지 않는 설겆이를 해야 겠다. 명절때 가사노동일의 2/3를 끝마쳤다. 이제 나머지 설겆이와 그릇들을 ㅤㄸㅏㄲ는 일만이 남았다. 심기 일전하여 오늘 모든 것을 끝마쳐야 겠다. 남은 음식을 오산으로 싸가지고 가야겠다. 아이들에게 내가 손수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눠먹어야 겠다. 조금 남는다면 산에도 가져가구.... 버섯전과 산적 한덩어리를 남겨놓고 산에 가져가야 겠다. 곶감과 대추들도 가져가봐야지..... 산에서 까먹거나 던져놓고 와야 겠다. 겨울산 동물들이 먹을 거리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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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현실은

  • 등록일
    2005/02/09 08:19
  • 수정일
    2005/02/09 08:19

* 이 글은 미류님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을 읽고 나는 어째서 그렇게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였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좌파적 지향을 갖고 있어서, 아니면 사회적 교섭이 되면 필연적으로 벌어질 상황이라는 가정 때문에 그러나 아니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운동은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세상이 썩어 문드러져도 노동자들이 일어나 세상을 바꿀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사회라 생각하고 있다. 그 길에 난 맑스-레닌이라는 이론을 옛 선배들로 부터 교육받아왔고, 내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그 안에서 활동이라는 미숙한 행동들을 전개해 왔었다. 나도 어찌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길 다른 동아리나 과를 선택하였다면 난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인식의 절반이상은 내가 의도하지 않게 훈련되거나 주입되었지만 난 그걸 거부하지 않고 지금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내가 훈련받고 주입된 그 활동이라는 과정에서 내가 보아왔던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보아서 일거라 짐작만 해본다.

 

내가 민주노총 대대를 보고 실망한 것은, 아직도 한국내 노동운동이 지도를 획득하지 못하고 주체로서 스스로가 서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과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이 서서히 자주적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 실망 또는 좌절이 닿아 있었다.

 

내 주변에 아는 동료들 중에 일부는 부문운동이라는 것을 위해 환경운동연합이나 다른 운동영역에서 시민사회 또는 진보적 단체일을 하는 이도 몇몇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 가지 않아 정체성, 생계라는 문제로 자신의 역사에서 운동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지워갔다.

 

내가 운동하는 이유는 정치를 지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조그마한 바램...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고, 그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주인으로서 정치의 주인으로서 서는 길에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바램은 이전부터 서서히 조금씩 주저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바램하는 것은 큰 것도 아니다. 예전 그 노동자들의 역동성을 보고 싶고 악법철폐라는 단어에도 스스름 없이 머리띠 묶어가며 투쟁의 길로 나서는 그 모습에서 희망을 보아왔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바램하는데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아니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현실이 되었다 말해야 겠다. 우린 언젠가부터 대공장 노조의 투쟁에 대해 사회적 파장력과 이슈라는 이유로 모든 단체가 달려들면서 연대투쟁에 적극적으로 매진하였다. 그러나 소규모 중소영세사업장, 장기투쟁사업장 등 단위노조를 견인할 힘조차 버거운 노동자투쟁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사회적 파장력과 이슈로서 부재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투쟁이 갖고 있는 사회적 함의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우린 매몰차게 그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다. 간혹 이러한 중소영세사업장 이나 장기투쟁사업장, 단위가 열악하지만 주체적으로 투쟁하는 곳이 성과가 있어 보이면 머리를 들이밀듯이 달려드는 모습... 하이애나 근성을 발견하고는 소슬아 친다.

 

정작 어려운 시기에는 외면으로 일색하던 곳에서부터의 관심, 씁쓸하다 못해 참 기막힐 때가 많다. 어려울때 도와달라고 절규할때의 모습..... 그러나 이게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이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었다고 난리 친다. 그래 80년대 그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목청껏 외쳐부르던 그 함성소리와 투쟁소리는 비장함을 주지만, 그 시민사회단체들이 활동하는 범위에는 정작 시민들은 없다. 

 

대의제가 만연한 현실 주인의식이 실종된 현실 그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활동이라는 틀에서 노동자 민중은 실종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지금에는 활동이라는 공간에서 대중은 조직화의 대상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자신들의 조직적 힘을 얼마나 확신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내 96년 학생운동을 붕괴의 일로에 접어들게한 김영삼의 한총련 탄압으로 인한 학생운동의 고립이다. 일명 연세대 사태후 한총련은 대학생들의 대중적 운동으로서 그 조직력과 학생회 장악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기본 5만동력을 자랑하던 한총련 출범식은 이 이후 1만이 모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총련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좌파운동을 자임하던 학생정치조직 세력 또한 이로 인해 크나큰 피해를 받았다.  그 당시 한총련 강화를 말하면 우파계 학생운동 세력과 한총련 개혁을 외치던 좌파계 학생운동들의 몰락은 공동의 적의 한총련 탄압으로 일단락 되었다. 공동의 적으로부터 당해야 했던 사항에 공동으로 대처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기력함이라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 사회적 합의는 비유하자면 한총련 탄압하던 연세대 사태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게 한다. 철저히 노-노 갈등으로 부추기며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언론은 다양한 입장을 내세우며 서서히 목을 조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적 교섭이 되었을 때의 큰 문제는 노동운동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힘 조차 없으면 대의제로 진행해온 대의원들의 결정으로 입게된 타격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간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민주노총 대대장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큰 파장력을 갖고 한국 태극기가 나부끼는 곳곳에서 소리소문 없이 서서히 노조를 압박하거나 무기력화 시킬 것이다. 투쟁하는 비정규직노조는 더이상 희망도 없이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현실만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모든 내용은 사회적 교섭에서 이루어지고 이에 맞게 비정규직 양산과 정규직 보전이 보장되는 테이블이기에....

 

내가 바라는 세상은 노동자 민중이 웃음을 머금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 세상도 훈육의 결과이지만, 난 그 훈육의 과정에서 이 길을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훈육은 받고 있지 않지만 맑스-레닌주의는 아직도 유효하다 생각되어진다.

 

한국의 사상계가 춘추전국시대이지만 난 아직도 구좌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대대와 현실 벌어지는 투쟁들은 나로하여금 서글프게 때론 분노를 때로는 고민을 때로는 슬픔을 안겨 준다. 그 길에 노동자 민중들이 없기에....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정치를 보고 싶다는 선언이 아닌 실천이 대동단결이 아닌 일치단결 기치에서 민주의 한길 투쟁의 한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나 이 길은 지금 멀게만 느껴진다. 자본주의하에서 철저히 투쟁의 장이 되어야 할 운동이 투쟁을 외면한 정치일색이라는 현실이 눈물나도록 서럽게 다가온다. 내가 과거라는 망령에 너무 사로잡혀 있지 않나 때론 불안하지만 그 과거엔 최소 진정성과 동지애가 있었다.

끈끈한......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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