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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17
    91년 당시 회고
    간장 오타맨...
  2. 2005/02/17
    오늘 하루....
    간장 오타맨...
  3. 2005/02/16
    비 내리는 오늘...
    간장 오타맨...
  4. 2005/02/14
    김진균 교수님이 가신지 일 주기....(2)
    간장 오타맨...
  5. 2005/02/14
    일상으로 돌아와
    간장 오타맨...

91년 당시 회고

  • 등록일
    2005/02/17 17:40
  • 수정일
    2005/02/17 17:40
오늘 사무실에 있는데 운영위원장님이 91년 안양에서 박창수 열사 투쟁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하였다. 그 당시 투쟁 그리고 전경과 대치.... 긴박한 상황... 체루탄 연기가 뿌연 거리에서 거리를 지켜야 했던 당시의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도 거기에 한 대오를 차지 하였고, 구호를 외치며 투쟁하던 시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게 들려온다.


정확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 집회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주로 물리력을 대동한 투쟁은 화염병 엄단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방패를 동원해 전경들이 집회대오를 압박하는 형태... 간헐적으로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대동되었지만 경찰의 압박에 무기력하게 ㅤㅉㅗㅈ겨야 했던 당시 상황들.... 그렇게 투쟁은 사글어 들었다. 아니 투쟁을 전개할 수 없는 조건으로 조건들은 만들어졌다고 해야 겠다. 14년전의 이야기들 그 때를 회상하는 것들이 이상하게 다가온다. 무용담을 갖고 살아가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과 과거를 비교하는 버릇...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 자의 자책이겠거니 하지만 너무 쉽게 정세는 변하였고 상황도 변모하였다. 지금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물어보지만 그 대답은 찾기 힘들다. 아니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들었는가? 어느 유인물에서 보았지만 노동운동의 위기는 없다고 한다. 그러기를 소망해 본다. 그러나 보자! 왜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대두되었는가? 과거 같이 가열차게 가투를 하지 못해서 아니다. 과거 같이 대중이 운집해서 아니다. 과거 같이 시대에 주요한 이슈가 없어서 아니다. 문제는 현장에 조합원이 노동운동을 뒷받침하고 전체 민중이 투쟁의 동력으로서 스스로 형성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 않을까? 정확히 말해 지역은 사라지고 주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합원은 없고 활동가만이 난무하는 시대가 아닌지... 쉽게 분노하고 쉽게 타오지 않았던 그 당시 상황들.... 술 안주 감도 아니요 술자리 입담거리도 아니지만 언제부터 인지 회상을 하면 그 당시를 회고한다. 그래서 괴로울때도 종종 있다. 그 당시 과연 내가 무어라 말 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하였던가? 치열하였다면 지금 시기 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나에 대한 대답들... 결코 무용담으로 이야기하거나 흘려보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은 이야기 속에서 변질되고 만다. 아 그ㅤㄸㅒㅤ 나도 그랬지... 쇠파이프를 들고 화염병 들고 희뿌연 체루가스 날리는 거리를 투쟁구호를 외치며 투쟁하였다는 말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다가온다. 그 당시를 나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그 행위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연휴일까? 난 과연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고를 갖고 활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과거의 내 이미지가 참 이상하게 다가오고 오늘 무용담 비스무리 한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러웠다. 그런 이야기 하지 않으마 다짐하였지만 그 시대에 기억들을 꺼내면서 난 스스로 그 당시 무엇을 하였다라고 스스름 없이 이야기를 지껄인 것.... 매우 부끄럽다. 현재와 미래를 과거속에서 투영하여 보겠다던 그 포부와 생각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 당시 희뿌연 거리에 서 있는 내자신을 발견하였다. 그 때와 난 다르지 않은데... 왜 난 자꾸 과거라는 이미지에 계속해 빨려들어가고 있는가? 그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이 현실을 이끌지 못하고 위기론으로 조장된 현실에 서 있어야 할 내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부끄러움이 이제 활동이라는 연으로 이어지기를 다만 바램해 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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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 등록일
    2005/02/17 12:43
  • 수정일
    2005/02/17 12:43
오늘 다솜공부방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생들의 졸업식이 있다. 오늘 3층 다솜공부방은 한산하다. 아이들 졸업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두 졸업식장으로 출동... 나는 사무실을 비우기 어려워 사무실에서 이렇게 통신을 하고 있다.


오전 회의록 하나를 마무리하고, 오전 수도권이주노조 건설 관련 입장에 대한 전화 통화 하나를 하고, 어린이 집 아이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그럭저럭 있다. 머리가 복잡하다. 수도권이주노조는 편두통을 나에게 선사했고, 나는 평등노조 이주지부에서 어떠한 입장을 갖고 수도권이주노조 건설 경로를 갖고 있는지.... 고민이 된다. 1/30일 회의 이후 어떠한 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그들이 소집한 회의에서 어떠한 입장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평등노조 이주지부의 책임성과 이에 들어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건설에 대한 입장들에 대해 서로가 불신을 하고 있는 모습이 머리를 짖누르고 있다. 서로가 함께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지만 서로가 단어 하나의 의미에 따라 내용들에 대해 곡해하는 것이 있지 않나... 오산센터는 평등노조이주지부 그리고 이에 참석하지 않는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수도권이주노조로 시급히 전환되어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이주노동자 주도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이주노동조합 건설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필역하지만.... 감정의 골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언제까지 함께가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설명을 하여야 하는지.... 수도권이주노동조합이 갖는 입장은 자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게 다가온다. 서로에게 있어 양보만을 강요하게 끔 다가오는 것인지 아니면 수도권이주노동 건설이라는 당면 과제가 너무 과도하게 설정된 테제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명동성당 380일 농성이후.... 왜 우리는 수도권이주노조건설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였는지 초심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수도권이주노조건설을 위해 오산센터는 회의를 하고 이들이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 하기엔 너무나 많은 불신의 강 그리고 서로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쌓여있다. 그러나 이 벽과 장막은 누가 만들어놓았는지는 자명하다. 이제 이 장막을 걷어 부치는 일이 관건이다. 그 길에 센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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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오늘...

  • 등록일
    2005/02/16 15:44
  • 수정일
    2005/02/16 15:44
어제 오산민주시민단체 연석회의 대표자회의를 마치고, 실행위원들과 술한잔을 하고 정신을 술집에 놓고 왔다. 터벅터벅 어떻게 왔는지 모르는 길.... 지역분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하며 술한잔하는 풍경이 정겨웠다. 그리고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보니, 어제의 폭음 후유증인 듯 온 몸이 뻐근하다. 창밖에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고, 어두컴컴한 것이 그래도 운치가 있다. 봄은 봄인가보다. 오늘 비내리는 날... 비를 피하고 창밖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비내린는게 보기 좋았다. 피곤함에 못내 힘들어... 낮잠을 곤하게 자고 일어났다. 비오는 날이 참 조용하게 다가왔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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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균 교수님이 가신지 일 주기....

  • 등록일
    2005/02/14 19:29
  • 수정일
    2005/02/14 19:29
작년 입춘이 지난 초봄... 민중의 큰 스승이신 김진균 교수님이 떠나시는 날이 이제 일주년이 된다. 진보운동의 큰 스승이요 민중의 큰 스승이라 칭하신 김진균 교수님 추모사업회가 설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난 개인적으로 내가 2001년 제3회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를 조직위원회를 준비하고 집행할때 그리고 인터넷검열반대 공대위 활동에서 얼굴을 보았을뿐 그분과 인사를 해본 적은 없다. 다만 넉넉한 풍채에 기풍이 설여 있는 그분의 모습에서 학자가 투사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많은 후학들과 함께하였을 김진균 교수님을 생각할때 참 청년으로 살았을 것이라 생각만 가져보았다.) 진보넷과 인연이 있고 내가 노동넷에서 제3회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를 주관하였다는 인연으로 김진균 교수님이 떠나는 서울대병원 자리에 가보았다.


그 분을 기리기 위해 많은 활동가들 학자들이 와서 그분의 가는 길을 함께하는 길에서 그분이 떠나신다는 아쉬움을 접하였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가 우리 교수님이라는 말을 하면서 떠나는 그 자리를 서운해 하였던 글... 진보넷에서 김진균 선생님이 떠난 자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던 추모 홈페이지를 보면서 김진균 교수님이 걸어온 길을 엿보았다. 그 분이 가신지 꼭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그분의 학문적 업적과 운동에 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사업들이 진행된다는 소식은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이 된다. 그러나 다만 아쉬운 것은 그분이 말하는 민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업들은 추모사업회에서 별로 고려되지 않는 것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추모사업회에서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분이 평생 민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모습을 기억하면 노동자 민중들에 대한 추모사업회의 방향성이 설정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나야 추모사업회에 참여할 자격도 없거니와 그럴 만한 인물도 되지 못한다.) 대학로 노제에서 울음바다를 이루었던 기억들... 만장을 들고 서울대학병원에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가시는 길을 못내 서운해 하며 함께한 많은 추모사들은 가슴을 적시었다. 정년퇴임하고 과천에서 연구소를 개설하여 기간 학문에 대한 스스로 재구성을 해내지 못한 것이 아쉽게 다가온다. 아직도 청춘이고 앞으로 민중에 대한 학문탐구에 전념해야 할 큰 스승이 사라졌음을 다시금 되살려본다. 이후 김진균 교수님 처럼 민중에 대한 사랑과 운동에 대한 열정... 그리고 늘 청춘이고자 하였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와 민중에 대한 학문이 남한사회에 넘쳐나기를 바램해 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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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와

  • 등록일
    2005/02/14 11:15
  • 수정일
    2005/02/14 11:15
지리산 산행도 마치고 일상생활로 접어들었다. 이제 두번의 신년이라는 행사를 모두 마쳤으니 일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문제이다. 들떠있던 기분 그리고 지리산에 대한 추억을 접고 이제 무덤덤한 일상사에서 내가 하는 일들 하나둘 차곡차곡 준비하고 한해살이를 시작해야 겠다. 어제 이주노동자 무료진료가 있어 아침에 일어나 지리산 산행 1을 쓰고, 내가 자주가는 진보네 블로그에 들리고 오산 보건소로 갔다.


미리 도착한 노동건강연대 분들은 프리젠테이션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이주노동자들이 무료진료를 받기위해 얼마나 올까 고대를 하며 오산보건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새롭게 오신 내과 의사선생님과의 인사. 그리고 몇몇 이주노동자들이 무료진료를 받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풍경... 이게 나의 일상이다. 다솜공부방에 와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 내가 살아가는 공간. 이전 단체에서 하였던 일들과 다르지만 여유가 있지만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조금 무겁게 다가오지만 결코 불편하지만은 않다. 점점 사라져가는 지역운동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새롭게 일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들은 늘 설레임을 나에게 던져준다. 무엇을 만들까? 보다 함께하는 것이 좋다. 부족하지만 배울것도 많은 생활에 난 안식과 여유 그리고 활동이라는 방향성의 막연함을 하나둘 구체화 시켜가고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최소 5년이라는 기간 어떠한 것을 만들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힘이고,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그 약속의 기점에 난 지리산을 갔다. 산은 그런것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오르막인 봉우리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무리 사람이 많다지만 조그마한 깨알처럼 작게 흩어져 있다. 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마을에 불과한 곳에서 사람들은 아웅다웅하며 싸우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나도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을 갖기란 참으로 힘들지만 산을 거닐며 생각한 것들 버릴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생각들... 그래 부족하지만 늘 채워져 있는 내 주변의 소소하고 중요한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면서 왜 앞만보고 달려왔는지... 최소한 산에서 오를때 아래만 쳐다보지만 오르막을 오르고 다음 산을 보던, 내가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보는 것, 그게 인생이 아닐까? 아니 활동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그렇게 바뻣는지 모르겠지만 산에 오르는 기본 처럼... 난 운동을 위해 체력(활동을 위한 기본 소양)과 산을 오른 후 앞산과 뒷산을 바라보는 것(전망과 과거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한번이라도 해보았던가? 반문해 보았다. 이전 삶이 그렇지 못해 나혼자 만들어놓은 도그마에 빠져 허우적 거렸던 경험들... 이제는 그렇지 말아야지 산행을 하면서 다져보았다. 그래서 나에게 산행은 또다른 시작의 의미로 다가왔다. 어제 수도권이주노동자건설을 위한 지구대책위 구성을 위한 회의를 하였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모였고, 아직도 이 동지들간에 조직간에 있었던 분신의 씨앗이 가시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이 올바르고 명확한지 난 잘 모르지만 이주노동자 주도의 이주노동자 전국 산별조직 건설의 초석을 수도권이주노동자노조가 건설이 되어 초석을 다지기를 희망해 본다. 이 길에 내가 그리고 우리 센터가 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만, 한국인들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지도라는 개념은 이제 서서히 역사적 뒤안길로 활동은 접어야 한다. 초기 더디지만 그래서 그들의 힘으로 그들이 봐온 현실... 노동운동에 대한 여타 교육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주체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으로 서서히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램해 본다. 어제 이야기된 수도권이주노동자지구위원회 그 논의에서 난 그래도 희망을 봐왔다. 지금 비록 더디지만 그들 스스로가 인식하고 인식 속에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길... 그 길이 어떻든 노동자로서 새로운 세상과의 접하는 신세기가 아닐까? 부디 지금 비록 서로가 의견이 충동하고 반목이 되지만 그 길에서 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가 한국노동자의 하나의 주체로서 전지구노동자의 일원으로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무료진료에서 또다르게 접한 노동건강연대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어렵지만 산재문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교육을 해주면서 하나 둘 발전을 일구어내는 길에서 우리도 함께 무언가를 하기보다 함께 그들을 위해 배운만큼 실천하고 모르는 것을 탐독하여서라도 함께 논의하고 투쟁할 것은 내 스스로 다짐해 보았다. 산행도 좋았지만 내 일상사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서로 악수를 나누면서 열심히 하자고 고맙다고 말하는 그들이 난 되려 그들이 있기에 배우고 있고, 투쟁이라는 것을 새롭게 일구어나갈 수 있어 내가 되려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고마웠고 함께 우리 멋진 운동.... 내가 바라는 지역운동이 서울의 단체들과 유기적으로 연대하며 운동이 어렵다는 현시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 내가 머물고 앞으로 활동을 터가 될 곳이 전국 지역운동의 일주체요. 일치단결된 운동의 전형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작은 소망을 소원으로 빌어본다. 이제 들떠있는 기분 추수리고 내 일상사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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