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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2/02
    화제거리....(6)
    간장 오타맨...
  2. 2005/02/01
    무엇이 우리를 둘로 갈라놓았는가?(4)
    간장 오타맨...
  3. 2005/02/01
    겨울추위는 결코 반갑지 않다.
    간장 오타맨...
  4. 2005/02/01
    엘지칼텍스, 공포의 노조파괴 공작
    간장 오타맨...
  5. 2005/01/31
    작업하다가 딴짓꺼리...(2)
    간장 오타맨...

화제거리....

  • 등록일
    2005/02/02 18:17
  • 수정일
    2005/02/02 18:17
오늘 모처럼 서울에 내가 속한 회의가 있어 내가 정치적으로 몸담고 있는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오늘 화두는 어제 있었던 민주노총 대대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야기가 분주히 되었다. 결과에 대해 통과가 안 된 것에 대한 안도의 한숨이 이어지고 어제의 긴박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내귓가에는 이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멍하게 듣고만 있어야 했고, 이 이야기들이 내 귓가엔 들어오기엔 어제 내가 동영상으로 본 상황에 대한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민주노조운동의 대의 그리고 필연적으로 막을 수 없었던 절박함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적 교섭안이 대대에서 타결되지 않는 것에 대해 나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한숨을 내 쉬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 하루 신문에 나왔던 기사 또한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어찌 사회적 교섭안에 대해서 이 처럼 허무하게 우리는 둘로 갈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난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판단하기엔 너무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내가 지역에서 활동하였을때 알고 있던 몇몇 노조 간부들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그 상황에서 반대 측을 옹호하거나 찬성을 옹호하던 이들의 모습에서 난 조합원들의 정서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답답하게 다가왔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지도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지도의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사회적 교섭안이 되었을때의 필연성은 어느덧 사라지고 갈림만이 남아있고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장기투쟁사업장의 투쟁하는 조합원이 민주노총에서 상정한 안에 대해 대의원이 판단을 잘못 내릴 수 있다는 판단으로 참관을 하여 조합원 정서 그리고 조합원으로서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한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 나와 다르다고 차별하는 모습에서 희망은 싹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합원들에 대한 정서 그리고 생각들은 하고나 있는 것인지.... 푸념을 늘어 놓아 보았다. 잘못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 한 것 같다. 사회적 교섭안 부결이라는 대의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지키는 활동에서 다른 문제로 영역이 확산되지 않기 위한 또다른 강구책... 그리고 조합원과 현장 투쟁단위들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리고 이에 대한 방법들이 민주노총 차원에서 다각도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대대가 상정되면 또 싸움으로 물리력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 사회적 교섭안이 갖고 있는 위험성과 노사정위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와 현장의 목소리가 함께 일치하는 차원으로 민주노총 강화와 민주노조운동 원칙을 사수하는 방향에 대한 목소리들을 조직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회적 교섭안은 결코 대의원 대회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전체조합원들에 대한 의중과 논의 그리고 필연적으로 예상되는 위험성에 충분한 인식들이 있어야 한다. 안건으로 상정하여 찬/반 토론하고 표결로 의결하기엔 이 사안은 너무나도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 안이 통과된다면 파장력은 민주노총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 이며,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안이다. 민주노총의 중요한 기로의 문제이다. 과거 정리해고 수용때와 같이 지도부 사퇴로 끝날 수 없는 사안이다. 정치활동으로서 사회적 교섭안을 막아낸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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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둘로 갈라놓았는가?

  • 등록일
    2005/02/01 23:02
  • 수정일
    2005/02/01 23:02
대의원대회가 유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1일 사회적 교섭안이 유예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 한켠 무엇이 우리 민주노조를 둘로 갈라놓았는가? 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1998년 그 당시의 노사정위 합의는 정리해고의 악몽에서 우리는 얻은 교훈이 무엇인가? 고용보장이 과연 현 민주노조 운동에 있어 현안 최우선 현안문제로 대두될 수 있는 것인가? 사회적 교섭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아도 결과는 불보듯 뻔한 것 아닌가? 노동운동의 기본을 안다고 말하는 대의원들이 사회적 교섭안에 대해 전체 100% 동의를 얻어 부결시켜도 모자랄 판에 이에 대한 적극적 옹호와 이를 받으려는 움직임들은 과연 타당성을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이미 예견되었고 한쪽에선 강행 처리를 한쪽에선 강행 저지를 위한 필연적 대치 상황은 몇차례의 회의에서 확인되지 않았던가? 이에 대한 토론을 통한 노동운동진영의 다양한 의견을 통해 이 결정이 과연 어떠한 파장력 그리고 어떠한 위험성(강행 저지) 또는 어떠한 가능성(강행 찬성)의 입장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 속에서 전체적 조합원들의 의사결정으로 진행하는 방안으로 처리되었다면 좋지 않을까? 당분간 민주노총 내부에서 단결이라는 구호는 빗 좋은 개살구 격으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과연 이 방법밖에 없었던 말인가? 강행처리 강행저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갈라놓았을까? 현재 민주노총에서 있는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들의 파벌 싸움에서 벌어진 양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강행처리하고자 한 파들과 이를 저지하고자 한 파들... 총파업 투쟁에서 이토록 뜨거운 투쟁을 보여주지 못한 면모를 본 기분이랄까? 한편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애쓴 동지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도....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그 동안 쌓았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또한 강행처리를 주장한 그들 또한 이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그건 과연 대의원들이 조합원들의 대의를 위해 선택을 하였단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표를 던지려는 움직임... 이에 대해 아무런 소통 창구와 의견 개진을 만들지 못한 지도부 그리고 이를 사회적인 문제임에도 사회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조합원 전체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리지 못한 활동가들... 모두가 이 사태에 대한 당사자이면서 피해자인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정신들을 스스로 무너트린 장본인이라 하겠다. 나는 민주주의 원칙과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라는 것에 대해 다수결의 폭력이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에 모든 안건이 표결로 일사천리 진행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에 대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약을 스스로가 어기는 것도 문제가 있다. 강행처리가 되었다면 더 큰 파장이 예상되어졌더라도... 이에 대한 조합원들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를 통해 민주노총에 정식으로 안건 상정이 부당하였음을 조합원에게 폭로하고 이를 모아내는 자리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이해는 한다.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이 다수결의 표결이 조합원의 총의라고 받아 들여지는 분위기... 이보다 민주노조운동에 분파라는 것이 올바르게 자리매김하지 못한 현실.... 노동운동이 술로 조직되거나 자신의 사람 껴안기 등... 투쟁과 실천으로 조직된 기풍이 사라지고.... 분파와 입장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거나 입장을 조직하지 못하는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에서 난 미래의 불투명성을 본다. 혹자들은 대공장 중심의 민주노총운동과 결별하고 제3노총(그렇다고 제3노총을 건설하자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결과가 계속해 반복된다면 이제 스스로 민주노총이라는 울타리에 있어 자본에 의한 균열보다 우리내 입장속에서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지 않을까? 오늘 같은 사태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활동가라는 것이 어떠한 임무와 요구가 부여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서로간의 상처로 이후 닥칠 자본과 정권과의 투쟁... 아니 공세적인 저항에 수세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과연 단결투쟁이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을 건설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던 나로서는 이 사태는 충격이다. 그렇다고 이 사태까지 갈 것을 모르고 있던 바도 아니다. 혹시나 혹시나 하였고, 민주노총에서 이 안건은 이렇게 쉽게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은 있었다. 민주노총이 현재 다양한 분파로 갈라지고 현 민주노총이 한 분파가 우위를 차지한고 있지만 조합원 대의를 모으고 방향을 설정할때 사회적 교섭안이라는 불보듯 뻔한 자본의 덫을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난 개인적으로 했다. 아니 소망했다. 결과는 불보듯 뻔하지만 활동가라 자임한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산산히 깨어져 갔다. 사회적 교섭 이 속내는 무엇인가? 북유럽 또는 아일랜드식 노사 평화선언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하자는 말이 전부 아닌가? 이 말은 곧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나누는 것(비정규직 확대)이라 하지 않겠는가? 노사정이 균등한 대화가 가능한 상황인가? 노사정위에 들어가면 무조건 양보가 필연적인 상황이지 않던가... 그 만큼 민주노조운동 투쟁이 2000년 들어 투쟁력이 이를 뒷받침 해주지 못하였지 않은가? 사회적 교섭이라는 틀에서 우린 교섭이라는 망상에 사로 잡히고 말 것은 불보든 뻔한 일 아니던가?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화 되었지만 정규직 노조에서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인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지금 대공장의 경우 자리보전과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위한 운동으로 우리내 전락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고서는 왜 비정규직 투쟁이 전국을 들끊게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원의 논의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고용안정이 우리내 민주노총운동의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지 않던가? 언제 정치적 총파업이라도 한번 제대로 속시원히 해보았나... 총파업투쟁하자면 하는 말 대부분 단사 상황이 좋지 못해 인원동원 어렵다는 핑계로만 일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유독 사회적 교섭안에 대해서는 이토록 열성을 보이는가? 과연 사회적 교섭안이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책임질 수 있는 안이었던가? 비정규직노동자 양상을 한다면 이 안에 대해 책임질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 누구하나 있던가? 책임진다손 치자 자신은 대의원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이를 당해야 할 조합원 아니 미조직된 노동자들은 어떤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과연 유럽이나 아일랜드 처럼 사회적 교섭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단 말인가? 불보듯 뻔한거 아닌가? 정규지과 비정규직 비율을 노사정이 쿼터제 형태로 합의하여 간다는 말 아닌가? 사회적 투쟁이 뒷받침하고 있지 못한다면 투쟁은 커녕 교섭하기에 버겁거나 쿼터제 형태로 계속해서 밀리던가? 나중에는 누군가 책임지도 노사정위를 나오는 결과를 초래하겠다는 것 아닌가? 다양한 이슈들은 노사정위 안건으로 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상정한 안건이 교섭의 안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안들인가? 현실보다 먼 미래를 보구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던가? 이에 대한 속시원한 답이라도 얻는다면 흔쾌히 동의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불보듯 뻔한것 아니었던가?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요구라는 대의는 없고, 지도부와 한 분파의 필요성에 의해 일방향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민주노총의 강령을 심히 훼손하였고 자주적 노조로서의 모습을 실종시킨 결과이다. 민주노조을 자임한 민주노총이 오늘 부끄럽게 다가왔다. 무엇이 노동운동을 이토록 부끄럽게 하는가? 자본의 공격도 막아낸 노동자들 아니었던가? 그러나 굳건한 탄압도 막아내었던 민주노조 활동가들이 허상만이 가득한 사회적 교섭이라는 안으로 상처를 남긴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 없다. 이 사건에 대해서 우리내 과연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차선의 선택치고는 최악이었다고 본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절망만이 나에게 감돈다. 난 그래서 회색으로 가나보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자본의 덫은 필연이었지만 다른 전술이 정녕 없었단 말인가? 못난게 죄다. 노동운동진영의 전선은 지켜냈지만 민주노총운동의 정신은 심히 훼손되었다 생각되어진다. 복잡하다. 정녕 조합원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설명할 수 있는 대의원이 있다면 대단하다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조합원은 민주노조운동에서 실종되어진지 오래다. 대의제가 선진활동가들을 서서히 죽여가고 있지는 않은지....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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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추위는 결코 반갑지 않다.

  • 등록일
    2005/02/01 21:50
  • 수정일
    2005/02/01 21:50
* 이 글은 행인님의 [춥긴 춥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없는 사람에게 겨울은 어려운 계절인 것 같습니다. 저도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는데 조금 방안에 온기를 느끼고 살려면 이전 한달에 1배럴(200리터 석유 한통)의 보일러 등유를 한달에 한번을 꼬박 넣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나마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어서 이도 아끼고 아끼고 살아서 두달에 한번 기름을 넣고 살았던 기억이 나네요. 오늘 같은 날 아마 서울집에서 잠을 잤다면 보일러를 최대로 틀어놓고 자도 실내온도 영상 5도가 되겠지요. 방바닥은 조금 따뜻하고 실내 공기는 찬바람이 스산한데서 전기담요를 깔고 자는 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제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날... 바람소리가 꼭 폭풍을 이 온 것 같이 휭이잉~~~ 꽝~~~ 소리에 소스라쳐 잠을 도통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온동네를 시끄럽게 한 바람소리는 무슨 일을 버릴 기새로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온 동네를 시끄럽게 떠들던 그 소리는 정말 공포를 느낄 정도로 불안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도통 불안감에 잘 휩싸우지 않는데 어제는 그 바람소리 때문에 불을 켜고 잠을 청하였답니다. 무서워서.... 흐흐 .. 이 소리가 계속해서 밤세도록 지속되더라구요. 공포감이 감돌았던 밤.... 그래도 어김없이 잠은 오더라구요.^^ 시끄러운 소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던 저는 어제는 계속되는 바람소리 때문에 잠을 자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구요. 다솜공부방 3층에서 자는데 계속해서 거슬리는 바람소리.... 보일러 온도를 20도로 맞춰놓고 잤는데도 방바닥은 따뜻하지 않아 공부방 책들이 있는 방안에서 나와 컴퓨터가 있는 바닥을 만져보니 따뜻한 기운이 감돌아 그냥 대자로 누워 잠을 청하였답니다. 그나마 이 곳에 내려와 따뜻하게 지내고 있어 다행입니다. 이전엔 보일러를 최고로 하나 최저로 하나 실내온도는 그다지 변화가 없어 아예 초봄으로 실내온도를 맞춰 놓고 살았을때는 집안에 들어오면 추리닝을 입고 전기장판(누가 속아서 비싸게 주고 구입했다는 이온 전기장판... 가격을 100만원 주고 장만하였나다.... 얻었습니다. 필요가 없다며 가져가라구...)을 깔고 누워서 방안에서 입김으로 도너츠도 만들어 보고 하면서 잠을 청하였는데 이 곳은 정말 따뜻하기 그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살던 방처럼 포근함은 없지만 그래도 살만은 합니다. 언제 내가 이 넓은 공간에서 나혼자 방안을 휘돌아 다니면서 잠을 자보겠습니까....(분명 컴퓨터 옆에서 잤는데 일어나 보면 따뜻한 곳을 찾아 어디에 쳐박혀 있는 나를 볼때면 잠버릇 참 험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이전 누군가 내가 잠을 자던 것을 본 이는 내가 분명히 책상 위에서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다가 책상위에서 떨어지자 아무렇지 않게 위로 기어 올라가 잤다고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가 조금 뻑쩍지근하다 생각되면 이러한 것들을 몇번 또는 한번 하고 일어난 터였던 것 같습니다.) 날씨가 춥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주변에 있는 지천인 오산천에 가보았더니 어제 낮에만 해도 물이 흐르던 곳에 얼음이 덧쒸어져 있는 것을 보니 어 날씨 정말 춥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웬만해서 저 추위 그렇게 많이 느끼지 않아서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가 조금 내려 갈뿐이라고 여겼는데.... 얼음을 보고 정수기 통에 담아놓았던 물이 꽁꽁 얼어 얼음이 되어 물이 넘쳐져 있는 모습을 보니 날씨 심상치 않게 추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겨울은 그래도 겨울추위가 기승을 부려야 농민들 내년 농사가 대풍이라 하지 않습니까? 농민들을 보았을때는 그래도 FTA다 뭐다 해서 어렵지만 생계 밑천이 농사인지라 농사가 대풍이 들면 좋겠지만.... 서울역 지하도에 있는 노숙자들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이전 갈월동 사무실에서 근무할때 새벽 4시경이나 종종 새벽 5시 또는 3시에 겨울철 퇴근할때가 몇번 있었는데... 술로 추위를 이겨볼라고 마셨던 이들도 추위에 어쩔 줄 모르고 역 주변에서 일어나 뜬눈으로 새벽을 나는 모습이 눈에 발피더군요. 그나마 새벽 5시 부터 전동차가 다녀 온기가 조금 돌지만... 겨울 철 잠못이루는 밤을 보낸 노숙자들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이전 발을 동동 구르거나 박스 속에 들어가 담요를 덮고 겨울추이를 이기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없는 이에게 겨울은 고통이긴 고통입니다. 그러나 난 지금 따스한 공간에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네요. 내가 그 입장을 이해하기엔 전 너무 편안 생활을 하고 있군요. 그래서 겨울 추위 결코 반갑지 않네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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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칼텍스, 공포의 노조파괴 공작

  • 등록일
    2005/02/01 17:55
  • 수정일
    2005/02/01 17:55
노사 전문가 영입해 민노당 탈당 강요까지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남쪽 끝의 여수. 그러나 겨울 아침 바람은 송곳처럼 옷깃을 파고든다. 현재 시각은 1월 6일 오전 7시 20분. 엘지칼텍스 여수공장 정문에는 출근 차량들이 늘어서 있었다. 차들은 천천히 공장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군화를 신은 사내들이 자동차 트렁크를 열어보는 등 분위기는 사뭇 삼엄했다. 그들이 쓴 모자에는 '특경'이라 씌어있다. 회사가 고용한 사설경비대다. 질서정연하던 그 공간이 느닷없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정문 옆에 어떤 차량이 멈춰서면서부터 였다. "수고하십니다!"


경비대를 향해 기운차게 아침 인사를 날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지난 해 말 "불법파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엘지칼텍스 정유 노동자들이었다. 굳은 표정의 경비대원이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해고자들이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 출근행렬에 끼어있었던 직원들이었다. 경비대원이 부자연스런 폼으로 경례를 붙인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럼요. 내일도 올겁니다. 하하" 해고자들은 차에서 현수막을 꺼내 펼쳐들었다. 현수막의 문구는 '인권말살․노조탄압 중단하고 부당해고․강제사직 철회하라'였다. 이들의 구호가 아침 하늘 속으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출근하던 이들의 이목이 한번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금새 고개를 돌려버린다. 출근버스에 타고있던 사람들은 창문에 얼굴을 붙인 채 옛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해고자들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야간근무자들의 퇴근 버스가 공장 밖으로 나왔다. 버스 속 한 두명은 해고자들에게 살짝 손을 들어보이며 아는 척을 한다. 그러나 버스는 금새 지나쳐버렸다. 한참 전부터 불안한 듯 기자 주변을 탐색하던 경비대원 한 명이 다가와 다짜고짜 이름을 물었다. 흔쾌히 소속과 이름을 알려줬다. 그 대신 기자는 정문 앞에서 서성이는 이들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경비대에 요구했다. 경비대 외에 십여명의 사내들이 어깨띠를 두르고서 해고자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간부들이라고 알고있는데, 잠깐 만나뵐 수 있을까요?" "절대 안됩니다." 정문 쪽으로 가는 듯한 포즈를 취하자 경비대원은 위협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50미터 쯤 떨어진 그곳에서,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웃으며 이쪽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해고자인 한재훈 씨가 디지털 카메라로 그들을 찍으려 하자, 경비대원들이 달려들어 제지하기도 했다. 숨도 크게 못 쉬는 '파업 생존자' 아침 7시 50분, 해고자들의 '출근선전전'이 끝나고 공장정문 근처의 방문객 대기실로 들어갔다. 언손을 녹이며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뽑아든 해고자들은 노동조합 사무실로 구내전화를 했다. 현재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했지만,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와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상태다. 노조 사무실 출입도 가능하다. 그러나 노조에 전화하던 신범식 해복투 의장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월간 『말』 기자가 함께 있다"는 말에 노조측이 방문을 거절한 것이다. 해고자들도 일순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해고자들이 번갈아가며 전화해서 설득도 하고, 을러보기도 했지만, 어림없었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노조측과 통화를 시도했다. 상대는 위원장 직무대행인 박주암 씨였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한사코 취재거부 의사를 밝혔다. "해줄 이야기는 없다. 일체의 취재를 거부하는 게 노조 방침이다." 박 직무대행에게 “해고자들도 조만간 노조출입을 못하게 할 것이냐”고 묻자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는 "다음 기회에 바깥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미안하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결국 이날 엘지칼텍스 공장으로는 끝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지난 여름 파업 이후 5개월이 흐른 지금, '파업 생존자'들은 이렇게 입을 꽉 다물고 있다. 구속되어 수감중인 전 노조 지도부를 면회하는 조합원이 단 한명도 없을 정도다. 전날 저녁 기자는 이미 잔인한 풍경을 목격했었다. 해복투 사람들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한 조합원이 해고자들을 보자마자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는 게 아닌가. 반갑게 인사하는 옛 동료를 보는 그의 눈은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단순히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괴감이나 미안함 탓이라 해석하기에는 지나치게 위축된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공포에 질린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파업복귀 프로그램'의 야만적 실상 파업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노조는 처절하게 깨졌다. 여론에서도 밀리고, 힘싸움에서도 밀렸다. 2004년 8월 6일 회사측의 '선 복귀 후 대화'라는 요구를 노조가 수용하게 된 것에는 이런 외부적 요인도 한몫 했다. 그러나 그 후 3개월간 '대화'는 없었다. 대신 10월 29일 충격적인 소식이 전국에 알려졌다. 엘지칼텍스 노조가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것이다. 회사측이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파업조끼 화형식'과 '머리띠 절단식'을 하는 등 본격적인 ‘노조 길들이기’에 나선 결과였다. 공장 정문에는 노조 명의로 '지난 잘못된 활동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죄를 드립니다'라는 플랭카드가 내걸렸다. 해복투의 정점식 씨는 "'선복귀 후대화'가 아니라 '선복귀 후학살'이었다"라고 당시를 묘사했다. 조합원들의 복귀 후, 그들에게는 회사의 강도 높은 '복귀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서약서와 경위서, '나의 각오' '앞으로의 나의 마음가짐' 등 굴종적 내용의 '반성문'들을 지속적으로 요구받았다.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저해하는 불순한 어떠한 외부세력도 거부하며 불법적인 파업 및 집회 등 행위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나의 각오')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어떠한 언행도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각오') "본인은 2004년도 노사간 임금협상 과정에서 회사 초유의 공장가동 중단과 시설물 점거 등 불법적인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하여 깊이 반성하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항을 이행, 준수할 것을 서약합니다."('서약서') "회사의 모든 규정과 관련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업무수행과 관련된 각종 지시사항과 인사명령을 성실히 준수하겠습니다"('서약서') 위의 내용들은 대부분 개인의 양심을 문서로 검열하고 있다. 더구나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어떠한 언행도 하지 않겠다" "회사의 모든 규정과 관련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업무수행과 관련된 각종 지시사항과 인사명령을 성실히 준수하겠습니다" 등의 구절은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의 포기를 사실상 강요하는 내용으로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이미 발전노조 파업 당시 서약서 작성 강요가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2004년 7월 6일 서울행법) 민노당 탈당증명원(?) 요구한 조합원 민주노동당 여수지구당 이준상 위원장은 "지난 5개월간 이 여수땅에서 인간의 기본권들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헌법에 엄연히 보장된 정당가입의 자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조합원들 상당수가 당원들이었다. 회사측의 탈당 강요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당원도 아닌 조합원들 여러 명이 지구당에 전화해서 '내가 혹시 당에 가입했었냐'고 묻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회사가 탈당을 강요한 정황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는 누가 당원인지, 누가 탈당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무차별적으로 조합원들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상 위원장은 "심지어 이미 탈당한 사람이 '탈당 증명원'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준 적도 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많은 증명서가 있다지만, 탈당 증명원은 난생 처음 들어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파업이 끝난 후의 '개별면담'은 회사가 조합원들을 확실히 '길들일' 수 있었던 계기였다. 징계가 결정되지 않았던 시점이므로, 사실상 자유의사에 따른 답변은 불가능했던 상황이다. 엘지정유노조 인권실태조사단의 보고서를 보면 "누구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는가" "이동장소로 누가 인솔했는가" "활동 중 무슨 말을 했는가" "(사진에 찍힌 사람을 지적하며)이 사람 강성이냐?" 등과 같이 동료를 '고자질'하게 만드는 질문들이 있는가 하면 "민주노동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같이 정치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다분한 질문들도 섞여있었다. 또한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회사가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을 경우 "면담 준비가 안되어 있다.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라"며 일방적으로 면담을 중단하기도 했다. 회사는 '전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을 다른 조합원과 철저하게 격리시키기도 했다. 회사로부터 '강성'으로 분류된 한재훈 씨는 "징계결정이 나기까지 공장 내 창고에서 사실상 '구금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씨는 "10월 1일부터 83일 간 창고에서 생활하면서 '사직서 쓰라'는 말 외에 회사로부터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식사할 때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창고 밖에 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사협력팀장은 대우차 출신 노무관리 '전문가' 엘지칼텍스의 '파업 이후'를 살펴보면 몇 가지 미스테리가 있다. 그중 하나가 엘지칼텍스의 파업대처 방식이었다. 40년 가까이 파업다운 파업을 경험하지 못한 회사 치고는 노무관리수법이 너무나 정교하다. 노동계 인사들도 이 부분에 의문부호를 찍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엘지칼텍스 파업 전후로 회사측 대응방식을 보면 한 마디로 '프로'의 냄새가 난다"고 밝혔다. 특히 파업복귀 프로그램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과정을 보면 과거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사례나 발전노조 파업, 현대중공업의 노무관리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업경험 없는 회사가 노조와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는 노무관리 전문가를 외부에서 스카웃해오는 것이다. 엘지칼텍스의 경우는 어떨까. 현재 엘지칼텍스의 노무관리를 담당하는 부서명은 '노사협력팀'이다. 취재 결과, 이 부서의 팀장인 윤 아무 씨가 바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출신 노무관리 전문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엘지칼텍스 노사협력팀은 "윤씨가 대우차 부평공장에 있다가 이곳으로 채용되었다는게 사실이냐"고 묻자 "맞다"고 인정했다. 그밖의 몇몇 팀원들도 현대중공업 등 타사에서 활약하던 노무관리 전문가들이라 알려져 있기에, 실명을 거론하며 추가질 문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회사의 담당자는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은 "회사 간에 노무관리 전문가들의 스카웃 관행은 최근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지적했다. 과거에는 그룹 내 계열사 간에 이루어지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실적'이 입증된 노무관리 전문가들이 여러 회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 소장은 그러나 "이런 경향이 기업간 공조체제같지는 않다. 다만 1990년대 초 노조파괴전문가로 악명을 떨치던 '제임스 리'와 비슷한 일종의 '프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해복투는 엘지칼텍스 노조가 5년 전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전환한 직후부터 회사의 노무관리가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노무관리 전문가들이 대거 신규채용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가입만으로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40년간 노조와 갈등을 피해오던 회사가 2004년에 와서 느닷없이 정면대결의 위험을 감수하게 됐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회사가 그 시기에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모종의 동기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어느 보고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지칼텍스 여수공장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었다. 문제의 발단 : 보스턴컨설팅그룹 보고서 1999년 엘지칼텍스 여수공장은 세계적 경영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 그룹에 보고서를 의뢰했다. 월간 『말』이 입수한 'RMIP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 보고서는 무려 178쪽의 방대한 분량이었다.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보고서이긴 하지만 꼼꼼이 분석해본 결과, 요점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즉, "추가 설비투자나 고용 없이 어떻게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답변서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전체 보고서를 통틀어 봐도, 지역 사회의 고용을 증진시켜 시너지효과를 얻는다거나 추가설비투자로 장기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조직감축과 노동자 1인의 'multi-skill'화(간단히 말해 지금보다 더 많은 업무를 감내하라는 의미), 노무관리업무의 강화가 보고서 전반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구조조정 안이 일단락되는 시기는 의미심장하게도 2004년 말~2005년으로 잡혀있다. 간단히 보고서 내용을 옮겨보자. 먼저 조직부문에 대한 컨설팅 내용이다. "추가적인 설비투자 필요없이…개선기회는 500여억 원에 달함"(23쪽) "생산관리부문은 포괄적 아웃소싱 통해 조직간소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110쪽) "기능감독직의 15%, 기능직의 20~30% 절감 등 전체인력 15~20% 절감 가능하지만 제약조건은 노조의 동의 필요하다는 점"(120쪽) 덧붙여 104쪽의 조직설계 가이드라인에도 "간접부문의 아웃소싱화"가 명시되어 있다. 쉽게 말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거 전환시키라는 이야기이다. 노경업무(노무관리)에 대한 조언도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보고서는 "임직원과 관리직이 노조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내부갈등을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다"(120쪽)고 제안한다. 특히 여수공장의 장애요인으로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현장의 애로/고통사항을 해결하고 있다는 점"(161쪽)을 들고 있다. 급기야 보스턴컨설팅 그룹은 노조의 존재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노경업무가 가장 비효율적인 부문"(98쪽)이라면서 "현재 노경업무 28명, 노경문화팀 14명을 모두 전문가들로 양성해야한다"(109쪽)고 조언했다. 엘지칼텍스는 2004년 여름의 파업을 능숙하게 '진압'함으로써, 이 조언을 얼마나 훌륭히 수행했는지를 증명해냈다. 과연 누가 '공공의 적' 인가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이 모든 내용은 사실상 하나로 수렴한다. 바로 '주주이익 극대화'이다. 회사가 노조의 파업당시 요구사항이던 '지역사회발전기금'과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에 완강한 거부입장을 보인 것도 저 보고서를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회사는 지역사회나 노사화합과 같은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엘지칼텍스 주식지분의 과반을 점하는 건 외국계 자본이다(셰브론 텍사코 40%, 칼텍스 10%). 또한 주식공개를 하지 않은 비상장 기업으로서 2003년에는 일반 상장기업의 평균주주배당률의 10배에 가까운 98%의 주주배당을 실시했다. 비정규직은 2000년 82명에서 2003년 294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곧 보스턴 컨설팅 보고서에서 요구한 바 그대로다. 이쯤에서 과연 누가 '국가경제의 적'인지 되물어야 한다. 보수언론이 말하는 '귀족노조'가 '공공의 적'인가. 그렇지 않으면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해 노조를 탄압하는 엘지칼텍스인가. 엘지칼텍스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으로 몰렸다. 이유는 '국가기간산업'이어서였다. 그런데 정작 그 기업이 신규투자도 않고, 천문학적 이익을 해외로 반출시킬 뿐더러, 지역민들에 대한 고용도 줄이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엘지칼텍스를 '국가기간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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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다가 딴짓꺼리...

  • 등록일
    2005/01/31 22:13
  • 수정일
    2005/01/31 22:13
영어로 글을 쓸려니 힘들다... 자판을 못 외워서 한자한자 보면서 쓰는 것도 어렵다. 머리도 식힐겸 겸사겸사 내 블로거에 방문해 2005년 1월 마지막이 가는 것을 아쉬워 해본다. 오늘 향남면에 있는 노말헥산의 근원지인 D사에 가서 노말헥산 실험에 참여하였다. 유기용제이며 무색무취(원액은 그렇단다...)인 노말헥산을 어떻게 태국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작업을 하였는지 실험에 참가하고 용액 정량분석을 위한 실험을 시작하였다.


초기 모의실험을 위해 방문하였을 때, 담당팀장은 이 사안에 대한 중차대한 것을 알지만 우리가 단지 국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실험으로 착각하여 언론에 보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실험에 흔쾌히 동의하였고 고맙다는 전화도 하였다는데 막상 사업장에 가보니(공장장과 사장은 구속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회사 담당자가 나와서 신신당부를 한다. 이 실험에 대한 공문을 하고 팀장에게 확인 절차를 받고 누차 언론에 보도하지 말라는 말... 그리고 이 공정에 있어 어떻게 노말헥산 관련한 태국여성노동자들이 산재를 얻었는지 모르겠다는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 참 순진한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났다.) 모의실험에 대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담당자 인듯한 사람이 나와 자신이 지금 총괄을 하는데 영업때문에 이에 대해 담당 팀장이 승낙한 것 같다는 말로 모의실험 진행이 안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필역해 본다. 그러기를 몇번 했는지 늦게 도착하여 잘 모르겠지만 실험은 이루어졌다.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날씨는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 그리고 손에 보호 로션을 바르고 장갑을 끼고 작업복을 옷에 끼워입고 잠시 있다가 들어갔다.(당초 예상은 4시간 모의실험이 었는데 시간을 단축하여 2시간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담당자라는 사람은 와서 이 작업을 할때 노말헥산을 조금 넣고 하였고, 이러저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작업 안전수칙을 지켜가며 작업을 하였다. 이 작업공정이 자신들이 개발한 공정인데 이 사건으로 이 개발사업을 중단하고 아예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설명 그리고 노말헥산 용액을 헝겁에 조금만 적셔서 작업하라는 말들... 실제 작업을 할때는 이보다 적은 양으로 작업을 하고 검사 단계에서 약품을 쓰는 양은 극히 적다는 설명이 계속하여 그 담당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신경은 쓰이겠지... 그리고 자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냐에 따라 회사가 사느냐 죽느냐가 달려있겠지만 이 문제점 그리고 노말헥산이라는 유기용제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도를 찾았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도 발생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연이은 변명과 그 담당자라는 사람이 모의실험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정말로 짜증났다. 무엇보다 실험하는데 있어 손이 너무 시렸다. 온도는 영상 7.9-6.0 도를 가르치니 작업장이 추워서 작업하는데 애를 먹었다. 실제로 이 추운날 작업한다면 이 실내온도는 얼마일까 그리고 공정에서 세척을 마치고 나온 LCD 팍막 제품의 온도는 얼마였으며, 하루 1.5리터 2개분의 노말헥산 유기용제를 8시간 동안 휘발시켜가며 작업을 할려면 얼마만큼의 양의 유기용제가 헝겁에 뭍히거나 제품에 썩였을까? 궁금하다. 우리의 모의실험은 정량측정으로 가고 있는지 정밀분석에서 정량분석에 있어 정확한 수치가 나타날까 등등 머리는 복잡하였다. 그래도 단순작업이니 이러한 잡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 공정은 제품이 없다는 이유와 공정을 중단하여서 동일한 작업재현을 하지 못하고 끝났다. 제품에 계속하여 덧칠하거나 작업대 앞에 있는 작업지시판을 보지만 과연 하루에 3000개의 제품을 생각하고 출하하는 과정에서 이 과정이 그대로 투영됐을까? 과연 그럴까? 내가 현장에서 경험을 비추어 추축해본다면 아마도 생산수량에 맞추기 위해 무작정 유기용제를 천에 뭍히고 딱았을 것이다. 불량률을 줄이고 재고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처사이다. 재고를 확실히 없애는 방법은 정량을 사용하기 보다 정량 이상의 액체로 무작정 의심이 가는 부분에 대하여 집중하여 용액을 바르고 포장을 하였을 것이다. 이렇지 않고는 하루에 1.5리터 용액을 8시간 2통을 사용하기 어렵다 생각하였다. 우리가 사용한 양은 1.5리터 용액의 1/4의 량을 2시간동안 한 제품에 칠하는 재현실험이었다. 그렇다 손 치더라도 노말헥산은 치명적이라는 말에 조금 불안감이 감돌았지만, 순수 노말헥산이 아니라 90%정도의 용액에 10% 톨루엔을 썩어 무색무취인 용액은 톨루엔 냄새로 화학성분임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색무취인 용액이라는 말 작업순간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들어간 이 용액이 갖고 있는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외국의 경우 이러한 유해물질의 경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냄새를 역겁게 하여 구토를 일으키도록 하여 쉽게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우리는 이러한 용액을 너무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위험물관리사가 없이도 돈 주고 쉽게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 뭐 신기한 것은 이것 뿐이라... 난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목숨을 팔아 자본의 배를 채운다는 것... 그리고 노말헥산 문제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라는 족쇄(불법체류자)를 달아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46만원이라는 저임금, 이 사업장 이외에 동일한 유해약품을 사용하는 업체가 더 있는데 이에 대한 노동부의 조사나 역학조사는 늦장 부리는 것인지 사업주에게 대비책을 마련해 주어서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기다려 주는 것인지 아직도 시행하지 않고 있단다... 그리고 이 외에 중금속 도금 업체들 유해환경에서 어떠한 안전장치나 산안교육도 받지 못하고 노말헥산 이외에 각종 산업안전에 위험에 노출된 이주노동자들이 안산을 중심으로 전 경기남부사업장에 분포하였다는 것에 놀랄따름이나. 아니 이에 대한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부끄럽다. 이번주 일요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이 합의를 통해 올해 4월경 수도권이주노동자노조를 건설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해 투쟁을 전개하고 이에 대한 센터나 관련단체들의 적극적 지원과 연대... 그리고 최저임금 철폐, 노동비자 쟁취, 강제추방 저지가 실질화 되었으면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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