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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자들이 나서는 메이데이를 바램하며...

  • 등록일
    2014/04/29 11:30
  • 수정일
    2014/04/29 11:30

분노하는자들이 나서는 메이데이를 바램하며...

이 땅의 노동자 인민의 생명권, 생존권, 노동권을 되찾기 위한길... 노동자 인민들이 세월호 사태, 25째 죽음을 맞이한 쌍용자동차, 노동재해로 죽음의 공장이된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삼성반도체, 장애해방 이동권 등급제 폐지, 도시빈민해방을 위한 주거권 생존권의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이 땅에 해방을 위한 행동 추모를 넘어 분노의 물결로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길 나서야 한다.

국가의 총제적 부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모아 나아가야 한다.

그 총체적 부실 죽임당한 여린 생명들 단원고 학생, 신혼부부, 이주노동자 그 탑승객 죽음이 역사로 남기기 위한 투쟁의 길 나설때이다.

추모로 언론통제로 해당선사의 문제가 아닌 작금의 정권의 규제완화 이윤 창출을 위한 자본주의에 의한 죽음에 어찌 침묵할 수만 있는가? 이제 나서야 한다. 추모의 마음 넘어 그 무사생환의 염원이 허망하게 죽음이된 생명에 대한 미안함 죽지 않고 살기 위한 길 나서야 한다.

작금 추모의 분위기로 그쳐서는 안된다. 분노하고 직접행동의 횃불을 들때이다.

또한 국가의 총체적 죽임당한 생명에 대한 성금 모금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이 분노에 알량한 성금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왜 이 땅 노동자 인민이 짊어져야 하는가? 그 성금이 그 당사자들에게 직접전달되지도 않는 현실에... 우리는 추모와 성금 걷어치우고 직접행동으로 노동자 인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총체적 부실국가를 바로 잡아야 한다.

성금으로 그 마음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행동으로 우리의 생존권, 생명권, 노동권, 사회권 등을 되찾고 국가의 총체적 부실 언론의 무능 자본의 이윤 만능 시대에 맞서 나서야 한다.

추모와 성금 모금을 걷어 치우고 분노의 물결로 나서자 더 이상의 사회적 학살을 당장 멈춰 세우기 위한 노동자 인민의 직접행동으로 이 세월호 사회적 학살 생존권과 이동권에 고 통받는 이 땅의 노동자 인민의 처절한 삶 함께 분노하고 나서자...

먹먹함 비통함을 이제 넘어 행동해야 할 때이다. 총제적 부실국가 이를 비호하는 공권력과 언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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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영상 - 기차길 옆 공부방

  • 등록일
    2014/04/22 23:41
  • 수정일
    2014/04/22 23:41

일상이 묶인 몸이라 여유가 있어 기간하지 못했던 것 보고 싶은 것을 즐기고 있다. 푸른영상의 기차길 옆 공부방을 어찌어찌 구해 보았다.
잔잔한 감동과 그 곳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 작은 감동과 이야기가 일상이 무미건조한 나에게 햇살을 비춰주고 있다.
투쟁도 그렇게 소소하게 그렇지만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투쟁의 감동에 감흥을 받고 힘받고 그 힘으로 밀고 나가기를 빌어본다.

그 잔잔한 감동 끌적여 본다.
이전 블로그에 쓴 글을 약간 손 봐서 올려본다.

푸른영상에서 만든 기차길 옆 공부방 영상을 보고서 인천에 살면서 그곳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인천 만석동에 있는 오래된 공부방.....
"가차길 옆 공부방"

깊이 있는 공부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대학가에 불기시작한 야학과 공부방 교사는 서울의 철거촌과 공단지역이 점차 사라지면서 서서히 그 명맥을 잃어가고 있느데.. 인천 만석동의 공부방은 약 12년간이나 지역민들의 애환을 가슴으로 간직하면서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한 공부방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성장한 공부방 어린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차길 옆 공부방을 지켜온 교사 들... 그들이야 말로 이 시대를 부여않고 살아온 사람들인 것 같다. 계속 한 지역에서 자신의 사람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초기의 생각을 가지고 살 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만석동 주민들의 애환이라 말로 표현하지만 그들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막연히 공부방 교사의 삶이 낭만적 지식인으로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들의 내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무언가 우리와 다른 이상이 있지 않은지 감히 생 각을 해보게 된다.

정말 만석동 아이들의 그늘진 얼굴... 삶의 그늘진 모습들..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말료 표현하기란 정말 힘들다.

인천 만석동이란 곳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전에 철거촌에서 잠시나마 공부방 선생님 역활을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인천 만석동이란 동네에 있는 기차길 옆 공부방이라는 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진한삶 의 단면을 같이 느끼고 싶다.

그 공부방이 있어 안심이든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질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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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극은 국가의 총체적 부실과 규제완화가 낳은 비극이다.

  • 등록일
    2014/04/22 11:26
  • 수정일
    2014/04/22 11:26

촛불이 아랫녘에서부터 밝혀지고 있다.
무사생환 기원을 바랬던 이들의 그 마음들이 모이고 기도가 되었다.

그 울산 공장에서 폭설의 재난에도 실습으로 알바로 일해야 했던 젊음이...

부산외대 O.T장이었던 실내공연장 건물에서 입시지옥을 탈출한 젊음이 꽃 피우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교육과 경쟁만이 존재하는 교육전장터인 교육현장 공교육이 무너진 자리... 그래도 고등학교 그 즐거운 추억이 될 수학여행에서 그 국가의 총체적 부실이 재난을 인재로 만들었다.

국가의 규제완화 재난 시스템 부재가 재난을 인재로 키우고 그 인재를 신속히 대응하여 살아있을 그 생명들을 수장시켰다. 또한 언론은 이 그 현장에서 생명들의 외침을 정론직필하여야 하지만 그 현장 취재에서 언론으로서 존재치 않았다.

국가와 언론 이 자본주의 이윤과 욕망이 재난을 인재로 키우며 그 꽃다운 생명 피지 못한 생명과 그 여행의 길 돌아오지 못한 길을 걷게하였다.

그 죽음이 생명에게 진혼곡 올리는 구슬픔이 미안함이 하나둘이 아니라 울분으로 표출되고 촛불로 번지고 있다.

이 사회 그 규제와 시스템이 노동자 인민을 때려잡더니 이제는 그 생명들의 죽음에 내몰았다. 이제 울분 분노 촛불들이 모여 그 추모 진혼곡으로 국가의 책임 부실 아니 작금 그 안전불감증의 원흉... 자본의 규제완화 그 부실의 공공성 규제완화를 외쳤던 자본에 대한 특혜 민영(사유)화라는 총체적 국가의 부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어물쩡 넘기면 안된다. 우리 올해만도 그 귀하디 귀한 생명이 국가의 규제완화 공공성을 경쟁으로 보고 있는 정권의 "창조 경제"가 낳은 참극이다.

공기업의 방만 운영 비정규직 양산, 국민의 안정성을 시장에 팔아넘기고 있는 자본과 정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총체적 부실, 규제완화 민영화 논리를 앞세운 공공재의 시장화가 낳은 현상이다.

이 사태 그 촛불이 모이고 모여 추모를 넘어 우리의 생명을 국가로부터 되찾고 나설때이다.

이 길 민주노총이 메이데이 그 추모와 분노를 함께하여야 한다. 이 자본의 횡포 민영화 규제완화 개발독재에 맞서서 이 땅의 노동자 인민과 공분을 모아 총체적 부실 규제완화로 생명을 수장시킨 자본가 정권에 맞서 우리의 생명권을 그리고 자본으로 부터 피받받는 노동자 인민과 추모의 꽃에 진혼곡으로 넋 달래고 그 살인극 막기 위한 분노 저항의 횃불을 들때이다.

노동자의 날 세계 노동절 그 추모 울분 분노의 진혹곡으로 결의 다지고 저항의 횃불로 꺼져간 생명 위로하고 우리 생명권을 찾기 위한 길 나설때이다.

이 잔인한 4월 학살의 5월 맞이할 우리가... 나설때이다. 메이데이 기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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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망각의 시대....

  • 등록일
    2014/04/18 18:56
  • 수정일
    2014/04/18 18:56

죽음과 망각의 시대... 정치로 죽음의 굿판도 서열화 계층화시켜야 하나... 문제는 이 체제가 재난을 인재로 만들고 폭설로 한 꽃피우지 못한 학생들이 이 체제에서 공장에서 학교에서 O.T에서 이번 진도에서 죽었고 그 죽음에 대해 자본의 미디어와 다른 죽음이 부흔 이 체제에 대한 분노와 책임을 뭍고 있건만...

이 죽음의 굿판 죽음이 드리운 시기 재난이 인재가 노동자 인민의 삶을 짖밟고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데 자제가 되겠는가?

그 열사의 죽음 시대의 부음하지 못한 죽음이 정치 사안보다 앞서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 아래의 정서가 대중적 흐름에 우리인식이 미치지 못한다면 어찌 계급운동 꽃 피울까? 투쟁은 그 죽음도 너와 나를 넘어 우리로 이죽음이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것임을 잘 알기에...

그 죽음에 우리는 한생명이 꺼지더라도 그 사회적 타살에 분노하고 투쟁하고 길거리에서 그 죽음에 부음하며 저항하고 투쟁하렸다. 그게 노동자 인민의 방식이고 그 죽음을 맞이하게된 체제에 맞서 노동자가 촛불을켜고 무사귀환 바라는 심정을 함께하였다.

이 체제 자본주의의 죽음의 굿판에 맞서 당당히... 어찌 한 생명 그 우주의 꺼짐에 슬픔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보다 리 죽음 이 인재 체제의 문제 그세 슬픔을 넘어 분노하고 있건만 우린 그 아래의 바각 흐름 정서 객관적 시각으로 이 사안 체제의 죽음을 부른 인재에 맞서 분노를 넘어 체제에 저항하여야 하디 않을까? 그 작은 시작이 그 힘들이 노동자 인민의 슬픔 분노 저항을 넘어선 투쟁의 도화선 체제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건만...

그 시각 슬픔 분노가 어디로 향하고 있은지를 잘 보았으면 잘 인식하였으면 좋겠다.

대중의 시각은 늘 헤게모니에 따라 좌지우지하렸건만 객관적 체험적 인식에 그 힘 만들지 못하고 인식하고 조직하지 못한 학습하고 재조직화하지 못한 우리의 무능을 되짚어 보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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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주말에 대한 잡생각...

  • 등록일
    2014/04/13 09:16
  • 수정일
    2014/04/13 09:16

아침 산보 나가는 길...
노동자에게 주말... 참 주말이 주말이어야 하는데...
오고가는 통근버스 그리고 특근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낮선 풍경이 아니라 우리내 미조직화된 노동자의 삶이다.

늘 삶의 깊이보다 그 굴종의 노동을 삶으로 잔업 몇푼에 몇푼 받은 돈으로 욕망을 채워야 하는 그런 미조직화된 아니 조직화되기 어려운 자본의 덫에 걸린 노동자의 삶을 엿본다.

그 잔업이 주는 몇푼의 돈이 잉여임금이고, 그게 차량, 핸드백, 여가의 일부를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 하는 그 고된 노동의 삶을 엿본다.
언제 우리는 그 노동을 정지시켜 금요일이 노동자의 일주일 노동을 마감하는 날이 올것인가? 그것도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얻어낸 자유노동을 얻어낼 것인가?

우리내 노동자의 삶의 고달픈 현실... 일정정도 자본이 있어야 자신의 집을 가져야 하지만 그 꿈마저 포기하고, 그 협동이라 불리는 삶에서도 돈이 자본이 그리고 여유가 필요한 일정정도 소부르주아지의 삶도 못미치는 그런 바닥노동자의 삶.... 그 삶이 꺼진 기숙사 원룸촌... 지친 노동끝내고 잔업없이 8시간 특근 끝내 고향집으로 향하는 여성노동자, 젊은 노동자가 빠져나간 그 유령촌에서....

노동의 굴종을 엿본다.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이야기하지만 조직노동이 제대로 작동하여야 그 노동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조합을 늘리기 보다 노동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없이 기교 확대 양적확대만을 이야기하고 알맹이 빠진 초라한 쭉쟁이 우리내를 본다.

그 허울이 얼마나 부실하였던가? 그 외침 그 함성 다시금 투쟁을 위해 빈 머리 채우고 다시금 전열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맑스-레닌시대 자본론이 노동자의 교양서였다지만 과연 우리내 그 교양서로서 철학과 이론을 접하고 있는지 고심해 본다. 다시금 일구어낼 것이 무엇인지 자명하지만 외연적 확장만을 한다.

그 노동자의 삶의 단면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도 노동을 일으켜 깨우고 빈 자리 빈 공간 채우고 조직, 투쟁, 학습이라는 그런 삶.... 그 대포집에서도 토론하고 사회를 바라보던 냉철한 이성 그리고 따스한 감성 다시금 그 노동자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려야 한다.

선험적 경향적 경험주의와 무지를 벗어나... 노동자에게 그 역사를 다시금 되돌려줘야 한다. 그 길에 우리사회 투쟁하는 자들 현장활동가들이 다시금 재조직화 길과 그 현장에서 정치를 노동을 불지펴야 한다.

관성과 타성을 벗어나... 모르면 배우던 시절로.... 노동자만이 아니라 활동가라는 자들부터 그 학습에 게으리 하지 말야한다. 함께 책한권 토론하고 논쟁하고 비판하고 서로 상호발전할 수 있는 그 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노동이 힘이 없는데 어찌 조직되지 못한 자들을 조직한단 말인가? 우리부터 재조직화 되어야 한다. 사살의 누각을 건설하여야 한다.
그 노동자 정치와 노동자계급이라느 계급성, 당파성, 맹아를 만들기 위한 사상의 누각 건설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유일한 무기 노동자 당, 사상의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라는 것을 건설하는 길.....

현실 운동이 꼬이니 프랑스와 유럽사회주의자들 처럼 좌익맹동주의, 경향적주의가 판친다. 그러나 블랑키주의자와 프루동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내 현실이 참 서글프다. 그 투쟁이 희망이라지만 그 희망이 아닌 전망 그 새싹을 키워야 하지만 좌익맹동주의로 치닫는 그 경험주의 경향주의 경계 없이 현실을 안주하고 있다.

다시금 세워내고 만들고 건설하여야 할 것을.... 정치라는 이름으로 사민, 기회로 급속히 우회하는 현실에 그 깃발을 부여잡고 스스로 그 노동과 이념 사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전망이 있다 본다. 그 전망 스스로 밝히고 그 힘으로 다시금 노동과 정치 이념 세워내는 길 투쟁만이 아닌 현장의 노동조합운동을 계급적 선진활동가 현장정치의 태를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지를 바램하며....

이 공간 투쟁과 삶 정치가 공존하지만 노동자계급적 인식이 무지한 나에게는 여전히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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