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158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0/01
    정신 못차리는 현대중공업노조
    간장 오타맨...
  2. 2004/10/01
    Good Night (편안하고 아늑한 밤을 위한 음악)
    간장 오타맨...
  3. 2004/10/01
    [시/김소월] 꿈으로 오는 한 사람
    간장 오타맨...
  4. 2004/10/01
    분단임을 알 수 있는 곳 오산(3)
    간장 오타맨...
  5. 2004/10/01
    연휴 마치고 오산 첫날
    간장 오타맨...

8.15 행사에서의 통일진영과 수구보수진영의 집회

  • 등록일
    2004/09/18 15:30
  • 수정일
    2004/09/18 15:30

8.15 행사하면 범청학련(당시 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애청학련이 있었으며, 90년도 범청학련 남측학생본부로 개편 되었던 것 같음.)의 주도로통일축전을 치뤘다. 96년 연세대 사태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큰 행사로 진행되어 모이는 인원만 대략 5만에 육박하였다. 이 행사는 동군서군으로 나누어 통일선봉대가 7월 농활을 마치고 조직되어 전국의 대도시를 돌면서 통일의 필요성과 분단상황의 평화를 염원하는 대장정을 하였던 기억으로 난다. 난 이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민족민주해방운동진영(NLPDR진영, National Liberty People's Democracy Revolution)의 큰 행사로 각 학교마다 한반도기를 만들어 행사를 진행한다.

 

행사에서 감동과 청년의 기상을 강조한 나머지 주요한 화두를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는 있어지만, 학생대중운동진영에 있어 주요한 파장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보수우익의 인공기 사태와 91년 부산 동아대, 전남대 사태의 대조적 모습....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우익단체의 8.15행사에서 인공기와 김정일위원장 초상화를 불태우는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91년 노태우정권은 부산 동아대, 전남대에서 인공기를 학생들이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무수한 사상자가 나왔던 사태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년전.... 고르바초프 소련 당서기장과 89년 수교회담을 갖은지 얼마되지 않은 사태와 아주 대조적으로 비춰진다 할 수 있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민족이기전에 북한과 남한은 엄연한 자주권이 보장된 하나의 국가이다.
민족의 동질성, 일본군국주의 발호와 미군와 소련의 분활점령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동토의 분단, 그리고 서로다른 이념을 통한 다른 국가로의 발전.... 민족을 논하기전에 엄연히 국제법상으로 서로다른 나라이다.


그러나 서로다른 나라이기 이전에 인도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서파키스탄으로 불리웠으나 지리적 여건상 독립국가로 발전함.)가 인도에서 독립한 것은 종교이다. 이들이 우리나라와 같이 단일민족(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철저히 이데올로기화된 공세라 개인적으로 사고된다. 특히, 고대노예제와 봉건제에서는 지배계급이 존재 할뿐 여러 종족들이 지리적 여건에 의해 융합하여 공동체를 이룬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지리적 여견상 A.C 고대국가의 형성을 통해 단일한 문화권에 포함된 종족으로 발전한다. 특히 A.C 7C중후반 신라의 삼국통일에 기인하여 단일민족형성의 골간을 마련한다. 삼국시대를 중국의 사서에서는 서로다른 나라와 민족으로 분류하여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이라는 문화적 동질성과 언어적의 동일성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주도의 통일이 우선시 되기보다는 민간차원의 교류확대가 지금 보다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통일을 먼저 실행하기 위해서는 낡은 냉전의 산물인 미군정에 의한 정전협정을 타파하고, 남북상호 평화협정체결을 통해 한반도가 더이상 지구상에서 화약고가 아닌 평화의 땅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보수우익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보수우익세력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냉전시대부터 내려왔던 보수우익의 사회적 지위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우익은 서북청년단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선량한 민중들을 기만하고 폭력을 행사하였던가? 남한으로 내려온 이들중 과연 북한에서 자유를 갈망하여 귀남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6.25전쟁 발발전만 해도 북한의 전력, 경제력이 우위를 점하였다. 이건 북한지역이 일본제국주의 팽창을 위한 전진 기지로 만들어져 무수한 공장들이 위치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건설이 근대화를 통한 국가건설로 발전하지 못하고, 일본에 종속되면서 한일합방과 무관치 않다. 우리의 의식과 힘으로 근대국가를 형성하였다면 일본과의 합방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가정이지만.....

북한지역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이들은 철저한 농노를 착취하던 봉건지주 자식들이 대부분이다. 자신들의 한과 울분을 반공이라는 이름을 빌려 무수한 양민 특히. 천민이나 평민같은 민초들을 괴롭혔다. 이들이 한 짓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승만정권이 출범하면서 광복군의 홀대와 일본 앞잡이들의 등용으로 반민특위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 이도 보수우익의 대두와 무관치 않다.


보수우익은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며, 아직도 이들이 이 땅의 무수한 민초를 기만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반공단체들은 왜 베트만 양민학살에 침묵하는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보는가? 박정희정권이 미국에 앵벌이하러 파병한 파월군인들은 왜 전쟁의 진실을 왜면하는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인가? 또다시 권력자들의 승냥이로 돌변한 그들이 가엾기 그지 없다.

 

6.25는 이땅의 이념운동을 말살시켰다.
6.25는 남한내 이념운동의 토양을 씨말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승만정권에 의한 57년 반공법의 제정으로 국가보안법의 시발을 출범시켰다. 이승만 하야가 되더라도 이 법은 폐지되지 않았으며, 이후 더욱 더 악날하게 군부독재자들의 통치수단으로 사용되었다.


6.25는 반공과 독재라는 부정의 역사를 낳았다. 북한의 남침인지 남한의 북침인지.... 이 지난한 논쟁을 보면 북한의 남침에 힘을 더 싫을 수 있을 것이다. 군사력과 화력면에서 월등한 북한이 중국(1949년 모택동의 대장정의 성공으로 중국본토 사회주의 국가건설)과 소련(스탈린정권)에 지원속에 6.25를 감행하였다 개인적으로 판단한다.(특히 민족해방운동진영과 논쟁만 하면 남한의 북침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얼토당토 않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군사력이 월등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일본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의 미쓰시비, 도요타 자동차등 주요 기업들은 미군군수물자를 조달, 생산하면서 엄청난 부를 걷어들었다.)
이후 인혁당, 통혁망 사건.... 그리고 대만에서 한국전쟁을 파견된 맥아더부대의 대만 사회주의운동세력의 말살 등 동북아에서 미국의 팽창의 계기점을 만들었다.


아직도 6.25로 말미암아 이념운동진영은 정치사상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에 의해 갖은 탄압을 받고 있다.

 

민족해방운동진영에 부탁....
이 땅에서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보수수구세력만 제외한다면.... 그리고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민족해방운동진영만이 통일운동의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열정을 갇고 통일운동을 한 것은 정말 중요하나... 이땅에 과연 통일만이 진정한 민중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인가?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도 알지만 이도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보수안정세력 또한 6.25전쟁을 치루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안다. 그래서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대부분이 보수안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들이 전쟁을 억지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그들만이 전쟁 억제력이 있다는 억측에 못배우고 늘 속기만한 민초들은 그냥 동조해주는 것이다.

 

진정한 통일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긴호흡으로 준비하라.... 학생운동만
이 운동의 전부가 아니다. 그내들이 말하는 진정한 통일일뿐 그리고 민
중의 벗이 되어 모든 사람에 흐름없는 눈으로 세상을 질타하고 나아 갔
으면 한다. 한때의 열정과 청년의 기상에 기대어 학생운동이 불장난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주변을 바꾸는 운동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대중적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 이 대중적 운동에 늘 깊게파뭍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말하고 실천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마지막으로 다른손이 한일을 다른손이 모르게 하라듯이.... 촉구하고 알리는 것은 좋으나 일상생활속에 민초들의 잎심으로 널리알려지는 운동이 되기를 바란다.

 

일상활동이 늘 8.15 통일축전이 되기를 바라며...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제 백기완선생님 노나메기 강의 끝자락을 들었습니다.

  • 등록일
    2004/09/18 15:20
  • 수정일
    2004/09/18 15:20


저는 주로 TV를 EBS(교육방송) 채널을 주로 시청합니다. 간혹 그곳에 가고 싶다. 시사다큐, 역사스패셜 등을 경청하기도 하지만 주로 저의 채널은 EBS 중심이 되어 시청 프로그램을 시청합니다. 특히 10시에 부터 11시30분경의 프로그램이라 든지 일요일 오후 3시의 명화감상등이 주로 저의 TV를 보는 낙(樂)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네이스 촛불시위가 끝나고 들어가 EBS 프로그램을 보는데 백기완 선생님의 노나메기 강좌를 하고 있더군요.

 

강단있는 선생님의 강의에 대해 히딩크가 감동하였다는 말이 있듯이 백기완 선생님의 강의는 정말(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고...의 표지에서 백발의 휜머리를 휘날리며 노동자 민중들에게 호통치듯 희망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선동은 아직도 백발청년인 듯한 착각을 줍디다.) 가슴통이 펑뚤리는 시원하다 못해 통쾌하기 까지 합니다. 그 강의를 바로 앞에서 듯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어떨소냐 만은.... 예전 집회 군중속에서 외쳐대던 백선생님의 말씀이 이제는 누구나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러니 할 뿐입니다.(잘된 일이죠...)

 

하여간 어제 간만에 좋은 강의를 들었습니다.(다 경청하지는 못하고 끝자락의 몇마디만 들었답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요일 호주제폐지 토론회를 보고 든 생각...

  • 등록일
    2004/09/18 15:18
  • 수정일
    2004/09/18 15:18

KBS에서 호주제 관련 토론회를 하기에 간만에 TV를 경청하였다.
이 토론회에서 주요하게 호주제 찬성/반대로 양분화하여 각 진영에서 3인이 나와 호주제에 대한 입장들을 개진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 잡생각이 들었다.


특히 호주제와 관련해서 반대하는 입장은 유교적 전통과 사회적 윤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 같았고, 호주제를 주장하는 곳에서는 한국의 근대화를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가족이라는 사회구성원의 조건의 변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당해야할 억압과 차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토론회에서 아쉬운 것은(다른 토론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해 당사자가 아니기에 쉽게 사안을 인식하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철저히 족보체계라는 혈통주의가 낳은 산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혈통주의는 태생으로 인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던 고대사회와 봉건제 사회의 폐단을 발단으로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폐단은 만연된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의를 부추기며, 사회는 이에 대한 여타의 안전망을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하다. 유교적 정신만을 내세우면서 철저히 여성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혈통주의는 남성이 이 사회를 힘으로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에 아직도 이 폐단은 허물어 지고 있지 못하다. 아니 허물어 트릴수 없는 덕목이 되었다 한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그들의 입장.... 호주제가 된다고 해서 사회가 해체되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데 생날리가 난 것 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자신들의 지배적 지위의 약화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역공격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아니기에 호주제 폐지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것이다.

남성은 역사적으로 계승(원시공산제 사회를 제외하곤.... 원시공산제는 철저한 모계중심의 사회였음.)발전한 남성 가부장주의의 권력의 달콤한 그리고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낄 수 없는 성차별의 폭력과 억압에 대한 느껴보지 않았기에 그들은 호주제 폐지의 목소리를 묵과하고 있으며, 호주제가 폐지되면 무슨 혁명이 일어나는 듯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지 못하고 있다.

 

왜 한국사회가 호주제 폐지가 현실적 대안으로 나오는지에 대한 사회적 현상은 목도하지 않는다.


신문지상을 보면 이혼율 증가, 그리고 재혼율 증가 현상만 본다면 이런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고통과 이로인한 사회적 편견이 만연되어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녀평등에 기인한 성명에 있어서의 선택권이 원초적으로 박탈되고 있으며, 남성중심적 사회이다 보니 남편이 죽어도 호주가 어머니가 아닌 아들이 되는 기현상을 낳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보호자가 어머니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는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그들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호주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나 또한 이 당사자가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모른다. 여성이 아니기에.... 단지 우리 어머님이 겪었을 고통만을 내가 살아오면서 느낄 뿐이다.(어머님이 재혼하셨기에 알 수 있다. 내가 아주 어릴적.... 나 또한 양아버지가 있지만 부계성을 따르기에 어디를 가던 김씨로 살아야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여성으로 당해야 할 억압과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밝히고 싶다.  여성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존재는 하지만 관습적이라는 타파되어야 할 억압적 도구에 의해 철저히 묵살된다. 여성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에 대하여 보장을 받고 있는가.... 호주제 폐지 사안만 보더라도 여성은 소수자를 떠나 헌법에 보장된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조차 구제받고 있지 못하다. 유교적 규율과 규범이라는 관습이라는 혁파될 대상으로 말미암아서.... 호주제는 분명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성씨 또한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당 사자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호주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한국의 망하지 않는다. 유교적 관습과 보수우익의 담론에 쪄든 기득권 계층이여 각성하라. 그렇다고 지구가 하루아침에 소멸되지 않는다. 그동안 잘못되었던 사회규율을 바로세우는 일에 제발 안티나 걸지 말기를 빌며....

 

횡수를 마칠까 합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디오를 봄,,, 연휴라 좋군요.

  • 등록일
    2004/09/18 15:15
  • 수정일
    2004/09/18 15:15

저번주 토요일부터 추석연휴라 집에서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비디오를 감상하였답니다. 영화관을 가지 않는 관계로 좋은 영화가 비디오로 나오면 주말 또는 주중에 한편이라도 비디오를 감상합니다.

 

이번에는 국화꽃향기, 선생 김봉두,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 오세암(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나왔더군요. 이전에 KBS TV문학관에서 보았었는데 참 좋은 동화인것 같더군요. 슬하에 자녀가 있는 분들은 함께 비디오를 집에서 자녀들과 봐도 좋은 애니메이션인것 같습니다.) 등을 보았답니다.



국화꽃향기를 원작인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영화 자체가 아름답게 꾸며졌더군요.
시대배경도 이전 80년대를 형상화하여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국화꽃향기를 보면서 알퐁스 도테의 "별"이라는 단편소설이 계속 머리에 맴돌더군요.

국화꽃향기에서 인화와 희재의 사랑을 보면서 별에서 스테파네트와 목동이 별이야기를 하면서 주고 받던 글귀가 영상화되면서 희비가 교차하던군요.

 

국화꽃향기를 보면서 순수하다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소설이라지만, 이성간의 사랑이 현실에서 많이 퇴색되어지는 지금... 국화꽃 향기 같은 순수와 낭만 그리고 가슴이 저밀어 오는 듯한 슬픔(사랑하는 부인의 죽음. 참 진부한 스토리이지만 순수함 속에서 서로간의 사랑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결혼하고 난후 희재가 남편인 인화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밖에 하지 못했다는 독백을 하면서 딸인 재인이에게 말하는 대목 하늘아 사랑해, 나무야 사랑해, 바다야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라는 한지로 만들은 그림책을 읽는 대목과 아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아빠 사랑한다는 말 많이 하라는 대목,,, 그리고 희재가 딸은 낳고 죽으면서 한 말 내 영혼에 당신과의 기억을 차곡차곡 고이모아 가져간다는 말할때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국화꽃향기와 별이 저에게 대비되는 것은 알퐁스 도테의 별은 프랑스에서의 빠리꼬뮨이 실패한 후 민중들이 성적욕망으로 분노를 삭히던 시기 순수함이 무엇인지를 사회에 일깨우기 위해서 쓴 책이라는 것을 얼픽 국어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혁명의 실패와 사회적 혼란 그러던 혼란시기 순수가 사장되고 욕망의 시기에 대한 작가의 아픔을 글로써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 별에서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보면서 생각한 독백.... 내나이 스물이기에.... 농장주의 딸이면서 그 동네에 뭇 사내들의 흠모의 대상이 었던 스테파네트를 목동이 느꼇을 순수함이 별에서 잘 나타납니다. 국화꽃향기도 순수라는 것이 이제는 진부한 옛 것으로 치부하는 현실에 대한 자그마하지만 가치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선생 김봉두를 보면서 우리의 교육현실을 바라보게 되더군요.

촌지 그리고 학군이 좋다던 8학군지역... 보다 선생님으로부터 관심을 갖기 위해서라면 두손 두발 다 걷어 붙히는 우리내 어머니들 모습.... 지극한 사랑이 때론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라는 구도를 교육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시키는 현실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첨단시설과 우수한 선생님들이 포진되었고, 학원가를 떠도는 우리내 청소년과 아이들이 산과 들 그리고 시냇물과 강가에서 자연을 벗삼아 뛰어놀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선생 김봉두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휴먼 드라마라 선생님의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동심에 감동받아 자신의 볼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장면.... 그러나 아쉽게도 6학년 학생의 졸업 후 학교가 폐교된다는 것들을 보면서 저도 유년시절 약 10리길(1Km=2.5리, 4Km) 걸어서 면에 있는 시종국민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더군요.(저희집은 영산강이 흐르고 조금만 나가면 서해 앞바다가 있어 농사일과 어촌일을 하던 대략 40가구의 친척이 모여사는 동네였습니다. 전라남도의 경우 대부분의 시골 마을들이 성씨가 동일한 문중(친인척 관계로 모인 마을 분들)을 이루고 사는 동네였지요. 지금은 강산이 변해 영산강하구 수로를 내어 강이 흐르지 않지만, 아직도 노루, 꿩, 토끼, 다람쥐, 산새, 학과 두루미 등을 볼 수 있는 동네입니다. 조금만 나가면 들풀 숲 속에 노루새끼들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답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흙과 물과 바람에 흠뻑 젖어 살수 있었으며, 여름엔 동네 할머니들로 부터 무서운 귀신과 도깨비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박과 참외를 실컷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시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었는 일들이죠. 그리고 동네에 텔레비젼이 별로 없어 김일의 레스링 경기와 드라마(여로와 수사반장)를 보기 위해 온동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텔레비젼을 시청하던 기억도 있구요. 모기불을 피워놓고 쌀가마니로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서 정말 좋았던 기억들이 납니다. 이제는 이것도 도시생활에 젖어 추억이라는 것으로 밖에는 꺼낼 수 없는 오래된 기억 앨범이 되었지만 말이죠.)


도시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지만, 도시 문명에 수혜를 받지 않아도 시골의 특수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지 공기가 좋다. 자연이 경이롭다 라는 것이외에도 시골에 많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 김봉두를 보면 간접 경험을 시골 분들의 간접 경험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내음이 무엇인지 흠뻑 취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세암을 보면서, 또 다시 행복한 놈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남매 처럼 이런 처지에 놓이지 않았고, 늘 부족하지만 그래도 행복이 있었던 유년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그리움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러나 오세암에서 나오는 두 남매(누나는 시각을 읽음. 스토리 중간에 나오는 회상 영상을 보면 엄마와 두 남매만 사는 집에 불이나서 어머니가 두 남매를 구하고, 불길에 휩싸여서 죽음을 맞이함. 이것을 모르는 남동생(남동생이 갓난아기 시절 집이 화재가 나서 어머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름.)은 어머니를 그리워만 하고, 어머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동생에게 알리지 못하는 누나는 마음속으로만 어머님을 그리워 하며 동생에게 말을 못함. 남동생에게 누이는 어머니인 동시에 아버지 역활을 함. 그런 동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누이의 고운 마음을 보면서 이 글을 쓰신 정채인 선생님의 따뜻함 마음을 훔쳐볼 수 있었다.


누이가 화재로 시각을 잃어버려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남동생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동생의 누이에 대한 사랑은 영화 중반에 동네 아이들이 누이를 괴롭히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누이를 지키기 위해 다섯살난 아이가 자신보다 더 큰 아이에게 덤비는 장면, 그리고 엄마가 없기에 더욱 더 서러운 남동생, 코피가 나지만 누이에게 근심을 주지 않기 위해 콧물이라 말하지만 괴롭히는 아이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코피라 말한다. 그리고 남동생은 괴롭히는 아이에게 덤벼서 그 아이가 코피를 쏟자 그 괴롭히는 아이의 어머니가 와서 남매에게 무심히 던지는 말들.... 남동생은 끝내 도망치면서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 나도 코피를 닥아줄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남동생은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모른다. 저녁 늦게 잠든 남동생에게 누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면 이야기 하지만 동생은 피곤한지 꿈나라에 빠져 고이 잠들었다. 동생은 바람의 소리를 배우기 위해 스님을 따라 오세암으로 향한다, 향하지전 누이는 착한 동생을 잘 보살펴 달라며, 석탑을 돌며 기원한다.

 

오세암에 도착한후 얼마지나지 않아 스님은 물건 살것이 있어 큰 눈이 내리기 전에 마을에 내려가 장을 볼러 간다. 내일면 온다는 스님은 큰 눈으로 더이상 암자에 오르던중 사고를 당해 오르지 못하게 됨. 스님을 기다리던 남동생(이름이 길남이 임.) 스님이 가지 말라고 하던 암자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법당에 들어가게 된다. 엄마가 그리웠던 남동생 길손은 관세음보살을 보고 엄마라 부른다. 그리고 오세암에서 길남은 아기보살이 됨.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해 길남은 죽어서 아기보살이 됨. 스님과 누이가 왔을때 승천하는 길남을 보게 됨. 누이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길손은 승천하면서 누이의 시력이 되돌아 오게 됨.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애니메이션 오세암을 직접 보는게 감동을 더 할 것임.

참 좋은 비디오를 볼 수 있어 기분 좋은 연휴인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비디오 감상을 할지 고민이 됨. 그냥 비디오 숍에 가서 골라봐야쥐.... 마지막으로 오세암 애니메이션이 끝나면서 자막으로 흐르던 정채봉 선생님의 시를 여기에 끌적여 봅니다.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 나라에 가 게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데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 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
------------------------------------------------------------------------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인장 서명 멋있습니다. 나도 뜨거운 눈물 흘리고파..

  • 등록일
    2004/09/18 15:09
  • 수정일
    2004/09/18 15:09

주인장 서명이 10월 들어 두번 바뀌었군요. 이 중에 최근 바뀐 서명 "언제쯤 뜨거운 눈물을 흘릴수 있을까" 정말 멋있는 말입니다.

 

살면서 눈물을 안흘려 본 사람은 없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은 몇 차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눈물이 뜨겁다는 것은 아니죠... 희열의 정점에 다다른 눈물을 흘린 적 과거엔 몇번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눈물 흘린 겨를도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계기도 그런 눈물에 기대어 나를 추스릴 수 있는 용기도 그런 눈물을 흘릴 자신도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주인장이 표현한 것을 곡해/확장 해석 할 수 있으나 내가 느낀 바 그런 눈물을 비유한다면 딱 5번 그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은 91년 강경대 열사 투쟁시기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앞에서 전경과 대치하면서 보름을 신촌바닥에서 노숙투쟁으로 시위를 하던 시기이고, 두번째는 김귀정열사 투쟁때 백병원에서 였고, 세번째는 처음으로 들어간 신내동 철거투쟁때 철거대책위원회(철대위)가 내분으로 해체될때 였고, 네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였고, 다섯번째는 내가 아끼던 후배의 죽음이였습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운다라는 말(태어나서 울고, 부모님이 돌아가실때 운다 정도)에 전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울음 그 자체는 인간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더더욱 남자의 전유물일 수 없기 때문이며, 인식을 갖고 있는 모든 만물이 다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전 우리집 소 누렁이가 자식이 팔려갈때 서글피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울음을 비유해서 표현한다면 닭똥같은 눈물이라 하겠지요. 앞으로 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 또한 듭니다.

 

내 삶에서 과연 과거처럼(잘 몰랐지만 열정이라는 미숙함과 무모함이라는 용기가 있었던 시절.... 잘 몰랐기에 이런저런 일도 할 수 있었고, 그러하기에 힘들하고 아파하고 그런 과정속에 미숙함이 조금은 성숙함으로 변하던 시절) 그런 일상적 삶을 지탱할 수 있을지 잘 판단되지 않고, 솔직히 말해 그런 용기가 없기에 자신 또한 없어지더군요.

 

그러나 저에게 이런 계기(과거의 눈물처럼 슬프도록 복바쳐오는 눈물은 흘려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그런 감성까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용기와 자신감을 전당포에서 찾고 싶은 개인적 바램이겠죠.)가 도래한다면 흐느껴 울고 싶습니다.

 

"엄마가 휴가나온다면"의 싯구절 후미에 쓰인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라는 싯구절 처럼...(정채봉선생님 시가 저의 가슴을 때리더군요.... 애니메이션 오세암 후미에 나온 시가 좋아서 외웠거든요.)

 

아마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수 있을까라는 말은 나와 너 너를 넘은 우리가 세상에 찌들어져 혼탁해져 있는가에 대한 메아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게 아니라 세상에 찌들어간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