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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외부 정예진압부대 투입했나?

  • 등록일
    2004/09/20 12:57
  • 수정일
    2004/09/20 12:57

지난 9월 10일 우리농업지키기 1만정읍시민대회(이하 910대회)에서 발생한 폭력사태의 진상과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단의 현장 조사가 17일 오전 정읍경찰서에서 있었다.

 

민주노동당 하연호 최고위원,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주재준 민중연대 조직국장, 이종화 민중연대 정책국장, 남미영 민주노동당 농민국장, 전성도 전농 대외협력국장, 김좌진 전농 자문변호사, 오갑수 민노당 강기갑의원 보좌관, 문대영 민노당 이영순 의원 보좌관, 이효신 정읍시농민회 정치위원 등 총 9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경찰관계자들을 면담했다.

 

정읍경찰서 소회의실에서 마련된 이 날 면담에는 경찰측에서는 박관배 정읍경찰서장을 비롯한  정보과장, 정보계장, 정보담당, 경비과장, 경비계장 등 6명이 참석해서 진상조사단의 질문에 답했다.


 



이 날 경찰 측의 입장은 910대회 현장의 모든 지휘 책임을 정읍경찰서장에게 돌리면서 정읍경찰서 차원으로 축소하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당일 조사단과 함께 면담에 참가한 이효신 씨가 전한 조사단의 질문과 답변의 주요내용이다.

 

".왜 외부 경찰력을 투입했나?" "농민들이 시청에 진입해 현수막을 걸고 깃발을 꽂을 것"

본 조사에 앞서 사전 질문이 있었다. 조사단은 농민회 측이 집회신고를 했는가 여부를 질문했다. 경찰은 "집회 신고는 했다. 상여와 관, 볏단이 집회신고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농민회 측은 "이미 알려주었고 경찰도 인지하고 있던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은 "볏단은 이미 알고 있었고  상여와 관은 당일 날 알았다"고 다시 답변했다

 

본 질문에서 서울지역 전투 경찰(방패번호 1010, 1011 부대) 1기동대와 4기동대 10개 중대 1300 명이 정읍 시위현장에 투입된 것에 대해 정읍경찰서는 정읍농민회의 강성과 농민들이 시청청사에 진입할 가능성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농민들이 시청청사에 진입해서 현수막을 걸고 깃발을 꽂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중앙에 보고한 다음 중앙에서 지원 병력을 내려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당일 9시'에 요청하여 서울의 전경부대들이 '낮 1시쯤' 도착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단은 서울 전투병력이 당일 날 요청받아 파견되었다는 대답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사전에 이미 계획된 것일 수도 있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경찰 측은 그 날 광주에 대통령 관련 행사 때문에 내려와 있던 것을 정읍 측의 요청을 받고 병력을 정읍으로 돌렸다고 답변했다.

농민회측은 시측과 시청에 쌀개방 반대 현수막을 걸고 깃발을 꽂을 거라는 점에 대해 사전 조율을 마쳤다고 지적하면서 이 점이 서울 전투병력까지 요청할 중대 사항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평화적인 문화행사에 폭력진압으로 대응한 이유는?  "폭력사태는 우발적인 것"

진상조사단은 무방비 상태였던 농민들이 평화적인 문화행사를 가지려고 한 상황에서 살인적인 폭력을 행사한 이유를 물었다.  경찰 측은 전경이 납치되어서 동료들이 흥분한 결과 우발적으로 일어난 상황이었다고 답변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효신 정치위원이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시위 현장을 사복입고 돌아다니며 시위대들을 촬영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있어서 농민들이 접근해 신분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은 목포대 학생이라면서 신분 밝히기를 거부하는 지라 필름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 과장에서 두 사람과 농민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일단의 전경부대들이 급습했다." 그런 와중에 김진석 씨의 부상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조사단은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고 집회장소가 아닌 곳에서 정복을 안 입은 채 사진촬영을 한 점을 들어 명백한 불법 사찰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을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경찰 측은 명백한 답변을 회피했다.    

 

한편 김진석 씨의 부상과 관련하여 경찰이 사전 경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진압한 점에 대해서 안전수칙을 어긴 점을 지적했다. 더구나 통상적으로 안전을 위해 방패를 고무로 싸는데 이 날은 방패에 고무가 탈착된 점을 들어 안전수칙을 벗어난 점에 답변을 요구했다. 경찰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왜 사망방송이 계속되도록 내버려 두었나?

임만수 정읍시농민회 사무국장은 김진석 씨가 실려간 직후 김진석 씨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 점을 계속 언급하면서 집회를 진행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농민들이 술렁였고 과격한 행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경찰 측에서는 병원에 확인해서 김진석 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곧바로 농민회 집행부에 일려주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면서 과잉진압으로 일관했다는 점에 대해 답변을 요구받았다.

 

임만수 사무국장은 동행했던 119 요원의 진단을 근거로 사망했다고 방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정읍아산병원에 확인해서 김진석 씨가 병원에 도착해서 의식이 깨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경찰은 집행부와는 만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서 시간이 걸렸다고 답변했다. 마침 그 때 시청에 들어와 있던 심요섭 대회준비위원회 공동의장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되었다고 답변했다.

 

910대회 폭력진압에 대한 자체조사와 이후 대책은?

자체조사가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경찰 측은 자체조사는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하지 않았고 만약 한다하더라도 자체적으로는 할 수 없고 상부에 의뢰할 수 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부상자의 치료비용과 피해보상에 관해서도 대책이 없다고 했다. 폭력에 대한 인지수사는 어렵고 고발이 들어오면 조사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전했다. 연행과 진압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성추행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연행과 진압은 서울 기동대가 담당했고 여성 성추행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무엇보다 이 날 조사의 핵심적인 부분인 현장책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정읍경찰서장"이라고 답변했다. 도경찰청 차장도 현장에 있었는데 조언하고 지도하는 정도였다고 답변했다.

 

경찰은 현재 농민 13명에게 출두 요구서를 발부한 상태다.

 

- 정읍통문 기자 webmaster@tongmun.net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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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속 각자 이야기에서 그려진 고향의 작은 풍경....

  • 등록일
    2004/09/20 08:55
  • 수정일
    2004/09/20 08:55

도시의 삭막함과 분주함에 너무 지친 지금의 도시인들에게 명절의 귀향은 추억과 기대의 교차점에서 고향의 넉넉함과 기억이라는 보물을 들추어 낼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다... 나도 오늘 11시 무궁화호로 나의 추억과 유년기가 묻혀 있는 그리운 고향으로 내려간다....

 

기차속 작은 풍경....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넉넉하고 여유로움을 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내려가는 귀성객을 보면  명절 민족의 대이동이란 고향으로 귀향은 단지 자신이 태어나고 부모님이 있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어릴적 죽마고우와 고향의 인심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시간이다.



고향으로 내려갈때면 기차에서 귀성객들중 한사람과 늘 술한잔을 하며 자신의 고향이야기 그리고 고향에 대한 추억을 안주삼아 5시간 가량의 기차에서 정든 이야기를 듣고 말하곤 한다. 정말 내게 있어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다.

 

고향에는 나를 알고 있는 어릴적 죽마고우가 있다. 그리고 내나이만큼 나이가 먹은 고향 들녁의 나무와  들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놀던 자리에 또다른 나의 조카와 사촌들이 즐겁게 고향의 들녁을 거닐며 나와  같은 자신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

 

시골 우리집은 감나무와 고 땡자나무 우리에게 공부 할 수 있게 한 우리 누렁이(소이름)가 우리를 정겹게 맞이 해준다. 지붕위에는 내려가면 제비가 새끼를 위해  분주히 먹이를 나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풍경을 볼 수 있다.

 

강이 흐르고 산이 있고 들녁이 있는 나의 고향 생각만 하여도 당장이라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한가위 고향 더욱 아름다워진 고향의 달과 별을  보면서 고향의 정겹고도 풍요로운 고향의 들녁을 볼 것이다.

내나이가 먹어도 언제나 나를 반겨준 고향....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며 도시 속 나의 삶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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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사회주의?

  • 등록일
    2004/09/20 08:30
  • 수정일
    2004/09/20 08:30

한국적 사회주의 구현을 위하여 난 한때 학생운동에 복무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당시 나의 심정은 현재 정세에 대한 정면돌파와 운동권에 있어 혁명성을 복원을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한국적 사회주의라는 일국적 사회주의 구현을 위해 나름대로 이론적 근접을 시도하면서 많은 반성과 고찰을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나의 정체성과 그리고 현 운동에 대한 책임성을 묵과하면서 현실의 어려움만을 급급히 수습하면서 현 위기만 넘기면 이후 사회가 장미빛 미래가 될거라는 막연한 환상들을 품지 않았나 생각이 되어진다.

 

한마디로 급진성에 의거한 운동의 조급성 현실의 위기의식은  그 시기에 있던 사람들의 공통의 문제였다. 대안은 사라졌지만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점들이기에....



우린 과거로 부터의 대화를 너무나 단절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과거에 계승할 점들은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형식들만을 갈구하면서 우리들의 임무  우리들의 목적을 한순간의 아우성으로 저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한 순간의 문제의식이 현실 위기에 편승한 정통성의 발전에 저해되어진 요소는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도 현실을 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를 논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그게 현실 학생운동이 봉착한 문제점이  아닌지 나즈막히 목소리 내뱉어 본다.

 

과연 지금의 위기는 어디서 부터 출발한 문제인가? 학생운동의 실천부재에서 오는 현상인가? 아니면 학생운동의 회내의 문제인가?라는 점을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건 과거와의 단절과 과거 선배의 무책임성이 낳은 학생운동의 내재적 문제가 아닌지....

학생운동 지도학번들은 대부분 3학년말이면 정치조직의 캠의 주요한  직책을 맏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활동을 정력적으로 할때면 그들의 선배는 사회로 아니면 군대로 가며...   운동과의 이별아니면 현장에 머물다 철세처럼 사회의 한 조직원(사회인으로) 되돌아간다...

난 거대한 자본주의적 조직사회라는 공룡의 품으로의 복귀라고 말한다. 한때 이야기하던 논의들은 사회속에서 공상 그리고  꿈 그리고 추억으로 저버리고 살게 된다. 그게 남들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말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하지 않는다. 현실이라고만 말할뿐....

 

난 무엇하러 학생운동, 학회, 학생회를 하는지 지금 하고 앞으로 하고자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운동을 지식인들의 양심으로 하는가?  아니면 사회정의 아니면 혁명.... 그건 공허하다... 무엇하러 맑스에 우리는 귀기울이면서 희열과 절망과 좌절과 그리고 슬픔을 느끼면서  현실사회에 적응하고 있는가? 동지애, 사회변혁, 인간해방, 노동해방,  여성해방이라는 구호들 때문에.... 아닐것이다. 자신의 현실 그리고 사회의 모순에 대한 순수성들이 었다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는 시간이  흐르고 또 점점 사회라는 굴레에 접하는 시기속에서는 사람들은 사회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래 사회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야그하자... 그러나  그 사회속에서 자신의 순수성 열정, 신리등을 챙기지 못하면서 무엇하러 학생운동이라는 험난한 길을 갔는지 반문하고 싶다. 현재 주변에서 선배라 말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난 그들은 과거 학교선배일뿐 한순간 동지로 지낸 것을 가지고 현실운동의 토대를 근거한 사람들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러한 한때 운동에 복무한 사람들의 영웅심, 그리고 운동선배로서 당위감으로 현 학생운동을 딜레마와 이론적 위기로 부터 한계점에 봉착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하며 성찰해 본다.

 

난 요즘 변하지 말자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살고 있다. 나라는  허울뿐인 나에게... 한낮 자본의 기계에 불과한 나라는 상품이 이 사회에  무엇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수 없다...  그러나 나의 순수한 눈동자 그리고 나의 생각(사상)들만은 접고 살고 싶지 않을뿐이다. 너무나 나약한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것들을  선사하기 위해 내가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에...

 

학생운동의 위기는 난 운동이란것보다 단지 전통적 관례적인 되물림 반복이 낳은 현상이 아닌지 잠시 생각해본다. 같이 고민되고 쉽게 야그할수 있는 야그들을 같이 나누었으면 한다.

 

인천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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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형도] 빈집

  • 등록일
    2004/09/19 08:02
  • 수정일
    2004/09/19 08:02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엷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전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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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중노조에 대한 제명 이후는 문제가 아니다.

  • 등록일
    2004/09/18 23:06
  • 수정일
    2004/09/18 23:06

* 이 글은 바다님의 [현중노조 제명!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현중노조의 제명 이후가 문제이다에 대한 글을 읽고 몇마디 개인적 생각을 쓰고자 한다.

현중노조의 제명 너무나도 늦었다. 민주노총의 판단이 늦었고, 금속연맹의 판단이 늦었다. 이는 현재 울산 현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노조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투쟁하는 지에 대한 지도부의 판단이 반영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이다.

 

현중노조의 제명은 민주노조 운동의 회복이다. 현중 비정규직 노조에 있어 힘찬 깃발이 나부끼지 못한 현실에 어려움은 있겠으나 현중 현장조직들이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운동의 과오가 무엇인지 판단을 할 계기를 준 것만으로도 큰 의미이다.



 

현중노조는 민주노조 운동을 복원하기 위한 길을 걷지 못한다면 민주노조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없다.

 

현중 현장조직의 쇄신의 길을 금속연맹 대의원들이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후 현중노조와 현장조직이 어떠한 행보를 취하느냐에 따라 현중의 앞길이 갈렸다. 만약 그들 스스로가 금속연맹에서 제기한 문제에 있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스스로 민주노조운동을 포기한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계기이다.

이번 현중노조에 대한 제명 결의는 금속연맹이 비정규직노동자 문제에 있어 전면적 대응을 준비하기 위한 수순이다. 현중노조가 떨어나간다 하더라도 금속연맹은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에 대한 자신들의 방향성을 분명히 선언하였기에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차별이니 철폐니 논의가 된다. 현실적 요구는 차별을 없앤다 한다. 무슨 차별을 없애는가... 현장에서 정규직과 동일하게 동일임금동일노동을 취할 수 있는가... 아니면 파견업체에게 그들의 상여금을 정규직과 동일한 조건을 내걸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규직과 동일한 복지후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차별은 그들이 비정규직이기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하는 억압과 착취의 기재이다. 차별철폐라는 말 그 자체의 의미 난 비정규직 단체가 아니기에 그 의미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차별철폐는 비정규직에 대한 인정이다. 철폐로 가기 위한 수순이라도 나는 용인할 수 없다. 차별철폐가 아닌 철폐를 주장해야 한다. 우리의 주장은 전술이 아닌 전략단위로서 구상되어져야 하지 않는가?

 

금속연맹의 향후 투쟁이 기대가 된다.

현중은 스스로 금속연맹의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현장조직은 이탈된 그리고 분열된 노조 현장성 강화에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지금 금속연맹이 중심이되어 진행하고 있는 비정규직 개정악법 철폐투쟁에 우리는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한다. 선엄적 총파업과 부분파업의 수준을 넘어 파견법 철폐의 기치를 내걸고 비정규직 철폐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인구가 전체 노동자 중 60% 차지하는 현실에서 우린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리고 복수노조 3년 유예가 내년도 그 운명을 다한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없어진다면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조허용이 자유로운 작업장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에 대한 준비를 우린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부터 수순을 밝아야 한다.

 

현중제명은 비정규지노동자들 연대투쟁을 도화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후 문제는 없다. 투쟁을 통해 깨지느냐 마느냐가 남아있다. 우리 노동자들은 99번패배를 딛고 단한번 승리를 위한 투쟁의 길에서 얼마나 많은 투쟁의 성과를 이끌어 내었는가? 전투적 노조 운동의 복원과 비정규, 여성, 이주, 장애인 노동자들의 악법이 철폐되는 투쟁의 포문을 열어준 금속연맹에게 투쟁의 신심을 보내본다.

 

이제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현중노조의 제명은 민주노조운동의 복원의 출발점이다. 어떻게 투쟁하는 냐는 노동자 투쟁이 말해주지 않을까? 난 이후 걱정이 없다 판단한다. 금속연맹의 시발로 비정규직 투쟁에 전면적 결합할 노조들이 나설 수 있는 초석을 깔아놓았기에.. 아무리 선엄적이라도.... 현중이 복원되지 못한다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현 정세는 비정규, 여성, 이주, 장애인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민주노조 원칙을 지켜왔기에...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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