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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풍경과 교통비

  • 등록일
    2004/08/18 02:22
  • 수정일
    2004/08/18 02:22

지하철 서민의 교통수단이니 서민의 발이니 뭐 이러한 시대는 끝장났다.

교통카드에 찍힌 금액을 보면서 한숨이 나온다. 이번달 회의때문에 종종 외부에 나가는 일이 이전에 비해 늘었지만 교통비 인상으로 이전에 비해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을 교통비로 나가야 한다.

 

속이 쓰리다. 교통카드 할인도 안되고, 이전에 2구역 교통카드 할인을 받으면 840원이었는데 이제는 2구역은 없어지고 무조건 10Km 이상이면 100원 운임추가 그리고 5Km 간격으로 100원 추가 허걱.... 이 놈의 교통비 무서워 어디 마음데로 지하철 타고 돌아다닐 수 있을까? 버스도 마찬가지이다.

 

서민들은 서울 집값과 비싼 물가로 인해 서울 외곽으로 외곽으로 밀려나는 마당에 교통비가 이 따위로 인상되니 허리띠 졸라매도 살아가는데 버겁다. 나도 허리띠 졸라맸지만 허리를 줄여야 하나보다. 졸라매도 더이상 허리를 줄일 수 없다.

 

그래도 지하철 풍경은 변함없다.



하루 일상에 지쳐 곤하게 잠든 이들도 있고, 술이 얼큰히 취해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이도 있고. 늦은 퇴근시간으로 바쁘게 집으로 향하는 이도 있다. 지하철 요금은 인상되었으나 풍경은 여전하다. 그만큼 우리내 인생사도 빡빡해 졌다.

 

일할 수 있어서 기쁘다지만.... 다르게 말하면 짤리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전쟁을 치루며 숨가쁘게 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퇴근하지만 지하철 노동자들은 운행시간 연장으로 이전보다 더 빡빡한 지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지하철 기관사, 그리고 정비사, 역무원들의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뒤로 한채 하루를 마감하거나 시작한다.

 

한번쯤 지하철 풍경에서 인간의 풍경에만 신경쓰지 말고 지하철 노동자들의 풍경에 눈 귀기울이며 쳐다보았으면 한다. 에어컨 시원하게 나오는 지하철 전동차에서 우리는 무사고를 기원하는 지하철노동자들의 모습은 찾기 못하고, 일상에 지쳐있거나 연인과 나란히 즐거운 퇴근길을 가는이, 그리고 여러가지 잡다한 모습을 보지만 정작 기관사와 역무원의 분주한 몸부림은 거들떠 보고자 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 시야의 협소함으로 지하철 전동차 기관사의 분주한 모습 그리고 늘 지하철 전동차 문에 딱맞게 정차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고용불안의 그림자, 고된 노동의 그림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지하철 풍경의 주체이지만 정작 그들을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지하철에서 소외된 이가 되었다.

 

오늘 서울지하철노조에서 붙인 스티커 한장을 보았다. 그러나 난 의문이 들었다. 이 많은 사람들중에 과연 서울지하철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려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자신도 같은 처지이면서 왜 그들에게 눈과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짧은 상념에 사로잡혀 보았다.

 

이렇듯 우리내 인생사 결코 녹녹치 않다. 남에 대한 고려나 배려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마 도시가 갖고 있는 원죄는 아닐지.... 나에게 닥치는 일이 아니면 철저히 무시하는 풍토.... 나하나만 잘되면 되겠지 하는 이런 풍경....

 

물신이 세상 유일한 가치로 숭배받고, 부러움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 사회에서 과연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물음엔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철은 정시에 출발하며 정시에 종착역에 닿을 것이다. 내일을 위해 이밤 차량을 정비하고 있을 지하철 차량기지 노동자들의 근무모습이 눈에 가물가물 보일 것 같다.

 

힘내라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이며.... 해방역 닿을때까지 투쟁의 기관차 힘차게 전진하기를 바라며...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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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밥을 얻어먹었다.

  • 등록일
    2004/08/17 16:11
  • 수정일
    2004/08/17 16:11

오늘 공짜 밥을 얻어먹었다.

얼마만인가 누구에게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이.... 그동안 회의나가면 밥값(사무실에서 식비청구는 하지만)을 내고 먹다가 오늘 꽁짜로 그것도 잡채밥을 얻어먹었더니 배가 든든하다.

 

밥을 얻어먹게 된 것은 오늘 회의에 늦은 사람들이 밥값을 쏘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정말로 밥값을 냈다. 그래서 안면몰수하고 난 중국집(일명 짱깨집)에서 조금 비싼 편에 속하는 잡채밥을 시켰다. 계속되는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채밥을 시켰다.



돈을 내는 사람들은 비용을 줄이려는 처사인지 자장면이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자장면 곱배기와 보통을 시켜 먹었다.

 

오늘의 밥 얻어먹게된 이유는 다른아닌 회의시간을 늦게 도착하여 벌어졌다.

운동사회내에서도 오늘 같은 일이 널리확산되기를 바램해 본다.

다들 단체일로 바쁘다 보니 회의시간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 운동사회내 연대회의에서 종종 벌어진다. 오늘도 마찬가지 였다. 한사람은 회의인지 까먹었고, 한사람은 단체일로 인하여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이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늦었으니 밥을 사라고 말을 꺼내 밥을 사게 되었다. 다음에도 늦으면 밥을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이후 회의가 정시에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활동가 모두가 일에 치이고 바쁜 일정을 쪼개면서 사용하고 있다는데 대한 심정적 이해는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심정적 이해는 심정적 이해일뿐 활동가들이 정한 시간을 최소한 지키는 것도 운동이 아닐까 개인적 생각을 가져본다. 사견으로 난 웬만하면 회의시간을 지키기 위해 회의시간 10분전에는 장소에 도착한다. 최소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예의이며 회의진행에 있어서 비록 10분이지만 준비시간을 갖기 위한 나름데로 노력을 하고자 한다, 잘지켜지지는 않지만 그리고 회의가 늦을 것 같으면 최소한 양해를 구한다. 어디쯤인데 몇시경에 회의장소에 도착한다는... 그리고 모여 있으면 내가 없더라도 회의를 진행해달라는 말과 더불어... 왜냐하면 활동가과 함께 잡은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나의 불처저함이다. 이에 회의가 진행되었을 때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의결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의결권 때문에 기다리기 보다는 의결을 진행하고 보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단 든다. 

 

운동사회내 회의시간은 활동가들의 민주적(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지만) 절차와 합의를 통해 결정된 시간이다. 시간을 맞추는 사람은 늘 그 시간대에 온다. 그들은 시간이 널널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난 배려의 문제라 생각한다. 우스개소리로 코리안 타임 이야기 하지만 친구간의 약속 그리고 회의 그리고 중요한 일이 있을때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 되려 바보취급되는 현실인것 같아 어안이 벙벙할 때가 많다. 나도 의례 회의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갈려는 버릇이 생기지만 혹시 혹시하는 생각에 되도록 시간을 맞춘다.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회의시간을 잘못 잡은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다들 바쁜데 이런 사소하고 소소한 일에서부터 힘은 빼지 말았으면 한다. 활동가들 다 같이 어려운 시간 쪼개어 바쁘디 바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연장노동은 기본이고 불철주야 주경야독으로 문건 만드랴 활동하랴 다들 분주하다. 주일은 있지만 못쉬는 활동가들 또한 부지기 수 있다. 다들 정말 정신없이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든다. 조금만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다들 화이팅...

 

만약 불가능하다면 회의시간을 지킬 수 있는 시간대로 잡으면 된다. 습관이 잘못 되었다면 습관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운동권 타임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에 글을 써보았다.

 

공짜밥을 얻어먹었지만 그건 나의 활동시간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을까....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이 납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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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도 잃어버렸다.

  • 등록일
    2004/08/17 01:24
  • 수정일
    2004/08/17 01:24

다이어리를 어제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다이어리는 다이어리 이상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다이어리는 죽은 군의문사로 죽은 후배가 군에 가기전에 자신은 필요없으니 선배 쓰라고 준 소중한 물건이다. 그 다이어리는 그와의 추억 그리고 그 다이어리를 볼때만다 후배를 떠올릴 수 있는 나에게 있어 과거, 현재를 잊는 소중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와의 대화라는 말을 하였듯 다이어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거울이었다. 그 소중한 것을 정신팔아먹으면서 잃어버린 것에 정말 죄스럽기까지 하다.

 

다이어리를 통해 후배와의 대화를 난 가끔 독백을 통해 이야기 한다. 나만의 대화 나만의 독배 그안엔 그 후배가 늘 살아있었다.



후배와의 만남 대학교 5학년(학기로 5학년 난 학기로 7학년까지 다님... 15학기 코스모스 수료 내가 생각해도 돈 무진장 대학에 퍼다날랐다....)때 과 선전부장이던 나의 후배를 동아리연합회(이하 동연)에서 만났다. 그는 좌파라고 자임하던 녀석들의 학내모임 선전부장 회의에 나타나서 나의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선전부장이 었으나 정작 글씨는 갈김체이기에 거의 선전물을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과에서 선전부장이라는 직함을 통해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자 하였던 이였다.

 

93년 그 뜨거웠던 여름.... 우린 농활을 통해 서로를 알아나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후배는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후배의 누나는 숙대를 다니고 있었고, 숙대에서 한가닥하던 운동권의 주동자였었다. 그의 집은 늘 누나의 학생운동으로 불안초조 그리고 경찰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그의 누나는 몇번의 조직사건으로 투옥이 되었고, 이를 통해 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등학교때 부터 누나의 타고난 조직화에 후배는 쁘락션되고 말았다. 부모님을 생각한 후배는 운동에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92년 당시 강경대 1주기 추모식에서 어느정도 운동을 지향해야 겠다는 결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 친구와 동아리연합회 노숙방에서 진한 술잔과 노래하나... 늘 후배는 내가 귀거하는 동아리연합회 노숙방에 찾아와 선배 술한잔 하죠... 하면서 술을 매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 후배와의 대화에서 난 그에게 진솔하지 않았다. 후배는 자신이 살아왔던 과정 운동을 머뭇거리게 된 배경 그리고 집안에 대해 나에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였다. 난 그렇지 못하고 그의 이야기만 들어줬다. 정작 나의 이야기를 그에게 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하러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게 되었는지.... 나는 어떻게 대학 오기까지 살아왔는지... 다른 동지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만이 숨기고 싶은 비밀 그리고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가족사가 있었기에 난 그들의 가슴에 담은 이야기를 정작들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누구나 받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이야기를 난 나의 쪽팔림과 나의 존심이라는 것을 내세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그런 입으로 난 동지라 지껄였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고민을 떨어놓았던 그들에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나를 믿고, 나를 따르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준 동지와 후배들에게 난 정작 무엇을 해주었던가.... 후배가 떠나고서야 아쉬움이 남는다. 버스는 이미 떠났다.

 

후배는 참 맑은 녀석이었다. 늘 힘들어도 웃도 열받아도 웃고 술이 떡이 되도 웃었다. 늘 힘들다고 털어놓을 때 빼놓고는 그 후배는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늘 밝은 그.... 그가 군대간다고 형 저 군대가요 술한잔 건하게 사줄께요 형 내가 복학하면 형 졸업하겠죠... 그래서 미리 술한잔 대접하는 겁니다하고 술한잔 건하게 사주고 입대한 그가 7개월 후 뼈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사인은 군대에서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 맑던 후배가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후배가 형 면회와요 할때 면회하도 갈것을 그리고 형 편지보냅니다. 편지 받았을때 편지라도 붙여줄걸 왜 이리 귀찮은지 지금 후회가 막심하다. 이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와의 생활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가 준 다이어리.... 맑은 그를 다이어리속에서 발견하곤 하였는데... 그걸 잃어버리다니.... 난 내 학교시간 그 후배와 소중한 추억을 잊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술한잔 하고 난 후 이글을 쓰면서 조금은 진정되었지만.... 오후내내 일손은 커녕 화딱질이나서 혼자 씩씩대고 있었다. 참 미련한 놈 같으니라구.... 난 참 미련한 놈이다....

 

끝나지 않은 군의문사.... 난 운동이라는 것을 접하고 동지 3인 그리고 선배 3명 후배 1명을 군과 길거리에서 의문사로 보냈다. 그들의 장례식도 가보지 못하고 보냈다. 그들의 장례식은 군과 경찰에서 화장을 한 후 통보하였고, 죽어있는 현장사진을 보면서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과의 그 소중한 추억은 그 현장사진 한장에 더이상 만날 수 더이상 술먹을 수도 더이상 내가 이야기를 받아줄수도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그들에게 전달 할 수 없다는 것에,,,, 난 미치도록 서글프다. 내 마음속 이야기 하나도 그들에게 하지 못했건만 난 그들의 이야기만 받아 담았을 뿐.... 오늘 술한잔 하고 나니 서글프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젠장할....

 

후배와 동아리에 관한 추억.... 후배와 난 동아리 하나를 만들었다. 세미나와 학습을 하기 위한 동아리 내가 동아리연합회장이었을때 가동아리로 인준을 받았다. 그리고 2년만에 편법으로 중앙동아리로 인준을 받았다. 후배들에게 운동은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던 동아리 그리고 조직활동을 위한 안정적 공간확보를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무수히 후배와 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면서 채워나갔다. 중앙동아리로 인준 받고 그와 난 동아리방에 찾았다. 감격이 었다. 우린 둘이 얼싸않고 엉엉 울었다. 우리가 해냈어 하면서.... 참 포부도 있었도 운동이 꼬이지만 원칙만 건실하면 잘 될것이라는 믿음으로 같이 만들었던 동아리.... 난 집에서 붙여주는 돈을 모아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고 후배는 자신의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몰래 훔쳐가지고 와서 동아리방에 하나둘 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우린 종종 함께 술한잔 하면서 밤을 지세웠다. 비록 우리는 소수이지만 나중엔 창대하리라.... 학교를 제대로 바꿔보자고 포부도 열정도 가능성도 우리 앞에는 그 당시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와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번은 술을 얼마까지 먹을 수 있을까... 학교앞 당골집 전부다 돌자고 결의하고 한달 생활비를 털어 우린 무작정 술집을 돌았다... 내 생전 이렇게 하루에 술집을 많이 돌아보기는 처음이다. 무려 8차까지 갔다. 그 결과는 참담하였지만... 후배는 병원에 실려가고 난 동아리방에서 1주일을 칩거하여야 했다. 동기와 선배들이 병원에 가라는 것도 마다하고 동아리방에서 쓰린 배를 잡고 1주일간 구토와 설사와의 사투.... 무모하지만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후배와 몸이 쾌유된 후 만나서 서로가 10차까지 도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행동을 준비하자는 말만 남겼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무모한 행동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

 

후배가 단과대 학생회장 당선되었을 때.... 정말 뛸 듯이 좋았다. 우리도 단과대 하나를 잡았다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도 운동을 위한 대중적 발판 마련... 늘 양지를 지향하지만 음지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고충이라하면 다들 알 것이다. 우리도 양지바른 곳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후배의 당선 소감을 듣는데... 이놈의 눈에서는 이슬이 처음엔 맺히더니 나중엔 소나기가 되어 퍼붙는 것이다. 주체할 수 없이 기쁜 환희의 소나기.... 감격 그자체였다. 후배가 대견하였다. 처음으로 단과대를 잡았던 그 희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한총련 사태로 전국대학이 온통 한총련 탈퇴를 감행할 때 후배는 조용히 동아리로 찾아와 나에게 물었다. 형 우리 한총련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왜 그러나고 물었다. 형 한총련의 노선을 비판받아 마땅하나 한총련 자체는 우리의 역사적 성과물 아니냐고, 한총련 자체는 학생운동이 이루어놓은 결정물이 아니냐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외면하고 이에 대한 한총련 개혁, 한총련 강화에서 우린 무엇을 하였냐고,,,, 한총련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면 다음차례는 우리가 아니겠냐고.... 학원민주화 투쟁은 더이상 공염불이 되지 않겠냐고 말하며 자신은 한총련 대의원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한 자신의 결의와 다짐을 나에게 협박 비스무리하게 주장하였다.

 

후배와 짧지만 소중한 6개월의 동아리 동거생활.... 동아리는 내가 먹고자고 살아가는 생활공간겸 우리 진영 회의장소 였다. 후배는 수배가 떨어진 후 나와 함께 이공간에서 같이 살아갔다. 군대 끌려가기 전까지.... 후배와 애틀란타 올림픽도 같이 보았고, 그래서 술먹고 종종 둘이 레슬링 흉내고 냈다.... 후배의 별명을 타이거 마스크 대 난 그대로 간장 오타맨... 타이틀 매치도 하고, 비오는 날 팬티만 입고 술이 턱이되 학교 정문에서 동아리방까지 뜀박질도 해보고 갖은 꼴통 짖은 죄다 해보았다. 그 당시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생각만 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후배와 나는 참 인연이 질겼다. 6개월 동안 참 좋은 시간이 었다.

 

후배는 나에게 한가질 부탁하였다, 형.... 난 사람을 만날때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빛춰줘여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지라는게 별건가요 서로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굴 만나든지 남을 알려고 하기전에 자신을 먼저 보여주라고... 꼭 꼭 당부하였다. 난 후배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 노력하고자 한다. 동지라 신심을 같이하는 이들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도 그가 없기에 더 말하기 신명나질 않는다.

난 다이어리 분실.... 나의 추억도 송두리채 앗아간것 같다. 꼭 찾아야겠다.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뭇히고 내 후배의 손때가 묻힌 그 다이어리를....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후배가 슬퍼스 우지짖나.... 나 그대 안 잊었다. 그대 잊는날 그날은 내가 그대곁에 다가가는 날이리라.... 미안타 니 소중한 다이어리 지키지 못해서...

 

술한잔 하니 참 이상타.... 술이나 더 먹고 그냥 오늘 자야 겠다... 내일 회의 늦지않게 조금만 먹어야지.... 지금 한 두병을 먹었으니 한 두명 더 먹고 푹 자야 겠다. 아무생각없이...

 

간장 오타맨이....

 

비야 제발 서글프게 우짖지 말라..... 내 후배 눈물 같아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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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상념

  • 등록일
    2004/08/16 20:03
  • 수정일
    2004/08/16 20:03
사랑으로 인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만나고 헤어지는 이들을 보면서 참 많이 부러웠다. 난 그들처럼 사랑이라는 것에 집착하지도 집착할 생각도 없었나 요즘 들어 한강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연인들 모습을 보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조금 질투썩인 부러움이 느껴진다.
 
 나도 잠시나마 짝사랑에 속알이를 한적이 있었다. 그때를 지금 생각하면 웃음과 부끄러움에 몸이 화들짝 달구어져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그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한것 같았다. 그 사람앞에 서면 내 초라한 모습에 움츠려야 했고, 그 사람만 바라보면 가슴이 꿍딱꿍딱 뛰는 것이 느껴지고 얼굴이 화들짝 달구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서 난 참 가슴졸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짝사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하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바로 내 후배인 그녀를  외사랑한 것이 나에게 있어 유일한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중학생때 이성에 대한 눈을 떳지만 그 이성적 감정은 금방 식었다. 여교생의 호의에 헤벌레 하였다. 그러나 여교생이 교생실습을 끝난 후 편지를 꼭 준다고 하였으나 편지는 받아 보질 못했다. 그런 후 난 교생들의 선심성 말레 주목하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사춘기 호기심이었지 이성적 감정은 아니었음... 교생들이 있다면 보낸 편지 꼭 답장 주세요. 저 같이 여린이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 하지 말고... )
 
좀더 용기를 내었으면, 좀더 적극적이었으면, 좀더 그녀에게 일상사에서 잘 해주었어야 하는게 그러질 못했다. 해바라기 처럼 바라보고만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녀가 같은 공간에 있기에 행복하였다. 짧지만 그래도 내 대학생활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같다.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랑은  혁명의 적"이라 말하며, 늘 벌어지는 정세에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임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래서 용기를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변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위기니 침체니하는 분위기가 나를  보다 이성에 눈을 뜨게하는데 방해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난 바보였다.

 

선배들의 말은 정말 말뿐이였다. 나는 정말 바보인가 보였다. 선배들은 나에게 사랑은 혁명의 적이라고 말했지만, 자신들은 그런 혁명의 적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이다. 학교졸업후 선배결혼식에 가서 안사실이다. 정말 난 바보이다.
 
요즘 처럼 날씨가 궂은 날에는 내가 짝사랑 했던 그녀가 보고싶다. 더이상 볼 수 없는 그녀이기에..... 내 가장 친한 친구(대학같은과 동기)의 부인이 되어있는 그녀를 만나는게 부담스러워 친구가 집에 초대해도 집근처 술집에서 술을 먹는다. 나는 취기에 간혹 그녀의 안부만 묻곤하지만... 그 친구도 내가 그녀를 짝사랑한 것을 알고있기에... 흔쾌히 전달해 준다. 그나마 졸업 후에 유일하게 만나는 친구기에 만나면 늘 만취가 되어 정신을 술에 퐁당 집어 담 말지만.....
 
짝사랑 그녀와 어색한 만남....
나의 대학 후배이자, 친구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를 우연찮게 월드컵 경기장에 입주한 까르프 상암지점에서 만났다. 난 그녀가 결혼한 후 한번도 만나지 않았고, 만날 수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성에 이끌릴까봐 어색한 몇마디를 나누곤 나는 급할 일이있어 가야한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황급히 빠져 나왔다.

어색한 인사, 잘 지내냐 친구는 일찍 들어오냐 아이들은 잘 크냐 정도의 통상적 인사말을 나누곤 그냥 돌아섰다. 피천득이 "인연"에서 아싸코와의 두번째 만남에서 기대와 변해진 아사꼬(일본계미군인 남편과 결혼 후 만남)만남에서 느꼈을 감정이 이해가 된다.
 
그녀에게 감사한다. 사랑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변변치 않은 나로서 그나마 짝사랑이라도 할 수 있던 그녀가 있었기에 행복하였다. 앞으로도 이런 짝사랑과 이성간 사랑이 나에게 없을 것이다. 난 지금 살아오면서 사랑이라는 것은 시간허비가 규정(잘못된 판단이다. 그러나 나같이 돈없는 사랑에겐 사랑이란 정말 무의미 한것 같다. 나 혼자 먹고 살기도 버겁다.)하고 있다.

난 앞으로 그때의 감정과 느낌을 고이 간직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요즘들어 연인을 볼때 몇마디의 단어가 떠오론다. "좋을 때다"라는 말.... 모든 사람이 좋은 감정을 갖고 평생 함께 같은 방향을 함께보면서 나가기를....
 
신영복 선생님의 사랑이라는 몇마디 문구가 생각나 위에 몇글자로 적어 놓았습니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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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般)

  • 등록일
    2004/08/16 19:45
  • 수정일
    2004/08/16 19:45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의 싯구절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會者定離 去者泌反) -  가사처럼 우리는 만남과 이별이라는 윤회(輪廻)의 영겁에 돌고 돌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이승의 삶을 죄를 닦는 수행의 삶이라 여기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이승의 삶을 "소풍"으로 비유하였지만, 난 이승의 삶이 소풍처럼  아름답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삶은 생존과 죽음을 넘나드는 투쟁이기에...


 세상사는 이들은 나와 다르게 살아간다. 이들은 추억이라는 과거 거울보다는 내일이라는 불안정한 미래에 기대어 살아가고있다. 그래서 그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와 집착, 영원불멸의 힘을 빌려 이승이 아닌 이후 삶에 대한 욕망을 목말라 한다. 이는 집착과 광신적 열망으로 발산하다. 이는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다. 사고한다는 것.... 인류가 출범하고 난 기나긴 역사에서 자연숭배 사상은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사라진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다 허망하다. 만남과 이별 인연이 모진 끈에 기대어 하루하루 상상의 나래에 살아가기엔 우리내 인생이 너무 삭막하다. 그리고  우리내 부모님들 세대에게는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보다는 내일이라는 희망에 기대어 살아 왔다. 황혼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부모님들은 이전과 다르게 어제와 오늘에 대한 회상에 잠겨 추억이라는 낡은 앨범을 인생과 함께 정리하고 계시다. 황혼기엔 접어든 부모님들은 내일보다는 어제와 오늘에 감사히 여긴다. 인생의 고됨에서 해방되는 시기도 하다.(왁스 4집, 황혼의 문턱이라는 노래를 들어보시기를...)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문구처럼 존재하기에 때문에 사고한다이다. 이러하기에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망각의 강에 빠져 정쳐없이 떠도는 나그네이다. 슬픔, 기쁨 등 과 같은 추억은 시간이 흐름에 서서히  희미해져 버리고, 어느센가 인간의 또다른 아픔과 기쁨이라는 반복적 삶에 종속되어져 간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시간이 약이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일보다는 어제와 오늘에 충실하고자 한다. 나의 진행형은 "아직도"이기에...
 
 주인장의 그들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글을 읽고 그냥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틸타라는 식물에 대한 회상 글을 보면서 주인장의 말에 대해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하나 올려봅니다.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은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않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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