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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총파업투쟁 돌입이 되지 못한 아쉬움

  • 등록일
    2004/08/06 22:04
  • 수정일
    2004/08/06 22:04

민주노총으로 가입하고 맞은 철도파업투쟁이 성사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부산에 내려가 철도노조 총파업투쟁을 인터넷 생중계를  지원한 후 학교때 후배들이나 만나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회나 실컷 먹고 파업투쟁이 남기 성과와 한계에 대한 고민을 해볼 요량이었으나, 참여정부가  철도노조 투쟁이 부담스러웠는지 잠정합의안을 가결로 철도노조 파업 돌입투쟁은 마무리 되었다.



 부산 투쟁에서 아쉬움이 한 둘이 아니었다.


 서울 인터넷 생중계가 인터넷 회선문제로 진행되지 못해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에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부산과 서울의 파업대기 상황은  천지차이였다. 비가와서 그런것도 있지만, 철도 서울지역본부와  부산지역본부의 대응과 집회 운영은 문제가 있었다라는 개인적 판단을 해본다.
 파업투쟁은 일정정도 지도부의 지도력과 조합원의 결의에 의해 투쟁판이 판가름된다. 그러나 부산지역본부 임원들의 소극적 대응과 집회운영  미숙으로 파업대기는 행사위주로 치뤄지고 말았다.
 
 조합원의 자발적인 분노를 집행부가 받지 못한 상황의 연출이었다. 폭우가 온다는 이유로 집회를 절반도 진행하지 못하고, 체육관으로 들어간 것도 문제이거니와 체육관에서 프로그램 없이 조합원들을 방치하여  파업대오중 일부가 만취해 싸움이 몇건이 발생한 것도 큰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문제는 조직된 대중에 대한 지도부의 투쟁대응의 미성숙과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한 책임은 이후 철도투쟁이 남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숙제로 남아있으며, 이후 잠정합의안에 대한 구체적 실물화를 위한 현장투쟁을 능동적올 펼치기 위한 문제에 있어 크나큰 손실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잠정합의안 발표때 부산의 분위기....
 서울과는 대조적으로 부산은 큰 물의없이 잠정합의안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적적 반응을 보여주었으며, 잠정합의안이 인터넷생중계로 발표되자 투쟁이 성과있게 끝났다라는 판단을 가졌다. 그리고 철도노조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각 지부별 간부회의를 통해 별 무리 없이 지도부의  잠정합의안 발표를 용인해 주었다.
 
 잠정합의안을 둘러싼 긍정과 부정....
 무엇보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긍적적으로 평가하는 측은 제일먼저 정부로 부터 공식 발언으로 민영화철회가 성사되었다는데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전 태도를 본다면 과연 민영화 철회가 공식화 될 수 있을지는 이후 지켜봐야 한다. 노-정의 문제는 힘의 역관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측에 의해 판가름 되지만 이번 파업에서 실추된 현장지도부의 집행력이 이후 잠정합의안의 구체화 시키는 투쟁에서 현장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들며, 안타깝다. 스스로 현장투쟁 동력을 동결시키는 효과가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와 맞물린 민영화 공세를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파업초기부터 건설교통부장관의 철도파업투쟁과 관련한 담화문에서 파업돌입시 즉각적 공권력 투입을 공표한 터라 지도부에 있어 일정정도 부담감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은 들지만, 첨예산 노-정간의 대립에서 파업투쟁이 불가피하였다면 파업투쟁은 돌입하고, 단결된 조합원들의 힘을 응축하고, 이후 투쟁을 전술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도부는 이후 현장내 투쟁을 전제한채 파업투쟁을 노-정교섭을 통해 유보하였다.
 
잠정합의안을 통한 파업유보는 현장투쟁력을 후퇴시켰다.
잠정합의안에 있어 철도노조가 주장이 관철되는 성과가 있다는 지도부는 판단하고 있지만, 부산지역의 한조합원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해고자 복직(전제조건 일단 시험을 볼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전제 조건이 단서조항으로 달려있는 것 같다.) 45명, 신규인력 채용 3500명, 철도민영화 철회, 새마을호 여성인력 정규직화, 역무 민영화 철회 등 사안들이 잠정합의안을 통해 공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가 이루어졌다. 이는 작년 교섭 총파업투쟁 돌입하여 잠정합의안을 하였지만, 현장에서 손배가압류가 강화되었고, 노동강도가 더욱더 강화되어 과로나 산재로 죽음을 맞는 조합원수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문제점들이 첨예하게 들어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신규인력 채용방식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본다면 정규직 3500명 채용인지 아니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율을 포함한 3500명인지 애매모호하게 잠정합의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민영화 철회라는 것 또한 어느선까지 민영화를 철회할지 구체적이지 않다. 간헐적으로  철도 내부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는 점이나, 철도 민간역사 증축등과 고속철도 내년 개통에서 어떻게 구현될 지를 판가름하면, 민영화 철회라는 것 자체는 현재 정규직으로 공무원으로 신분을 보장받고 있는  철도노조 정규조합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철저히 정규직 조합원들에 지분싸움을 위한 파업투쟁이라는  판단을 조심스럽게 개인적으로 판단해 본다.
 
이후 보여질 비정규직투쟁에 철도노조는 대응방안이 있는가?
새마을호 여성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신호탄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호도할 수 있겠으나 이것은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 철도노조가 대응을 잘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어부지리라는 말로 표현하면 맞을 것이다.


철도노조는 더 늦기전에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한다. 철저히 정규직 조합원을 위한 투쟁을 진행한다면 한국통신이 지난 투쟁에서 보여준 정규직 조합원들의 밥그릇 투쟁의 전처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과오를 범할 것이다. 더 늦기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양분화를 진척시키고자 하는 철도청의 방침을 투쟁을 통해 분쇄하여야 한다.
 
지도부는 이번 투쟁의 과오를 현장투쟁으로 만회하여야 한다.
잠정합의안의 구체적 발현형태는 현장투쟁의 성패에 달려있다. 지도부는 파업유보를 통해 갈려진 현장조직들의 분위기를 추스리고, 이후  잠정합의안 구체적 실행을 위한 현장투쟁을 조직하여야 한다. 지금 현장조합원과 현장조직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다면, 잠정합의안의 성과는  문서로 성문화된 문구이외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성과로 이어나갈 수 없다.


부산에서 만난 한 동지(이전 SSL에서 함께한 동지)가 철도노조 파업유보는 가뜩이나 무너진 지도부의 지도력에 있어 큰 상처일 것이며,  현장조합원과 현장조직의 첨예한 대립으로 치닫을 위험성을 경고한바 있다. 분명 현장내부투쟁이 격화될 전망이라는 것은 잘 알겠으나 지도부는  지도 방침을 현장조합원의 총투표를 통해 파업여부를 가리지 못한 만큼, 지도부의 판단이 올바른지 그른지는 이후 현장투쟁을 조직하는데서 과오들을 만회하여야 한다.
 
 이런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성과측면만 부각된다면 이후 철도노조의 민주노조 건설의 과정은 험난할 것이다. 더 늦기전 철도노민추로 부터 세워나갈 민주노조 기풍을 올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지도부는 스스로 성과보다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인식하고 이후 투쟁에 매진하여야 한다. 우리는 철도노조의 민주노조 깃발이 나부끼는 한 성과와 패배에 관계없이 지속적 연대투쟁에 투쟁의 심신을 바치고자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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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 등록일
    2004/08/06 21:59
  • 수정일
    2004/08/06 21:59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제4시집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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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얻고 잃어버리는 것들

  • 등록일
    2004/08/06 21:58
  • 수정일
    2004/08/06 21:58
 나는 살면서 희망과 인생을 잃어렸다. 그래신 분노와 용기와 무모함을 얻었다. 잃은 것에 비하면 얻은 것도 많다.
 
 희망.... 난 원래 무지한 놈이라서 단/무/지(단순, 무식, 과격)한 놈이라서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의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삶에 큰 떡이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갔다. 정말 무식해서 그런지 앞만보고 달려갔다.


 인생.... 난 중학교때 부터 화학을 좋아하였다. 늘 수업시간에 화학이 국영수에 비해 낮게 배정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중/고등 과정을  보냈다. 정말 화학시간만큼 재미난 공부는 없었던 것 같았다. 인생의  진로를 화학선생님으로 중학교때 정하였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화학과를 떨어져 2지망 화학공학을 붙으면서 인생이 꼬였다. 화학선생의 꿈을 포기하고 화학엔지니어로 꿈을 대학교때 변경함. 인생의 꿈을 변경한지 3주만에 향우회에 나가 술먹고 운동하면 술 잘사준다는 꼬임에 빠져 질풍노도  시기를 운동이라는 것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 그렇다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향하는 수준에 있음.
 
 그러나 나에게 이렇게 잃은 것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분노와  용기 무모함을 또한 얻었다. 분노는 광주를 알았고, 4.3을 알았고, 4.19를  다른 각도에서 알아나가면서 데가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는 말임. 대학  처음 선배가 던져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읽고 밤세워가며 술먹고 동기들에게 울면서 술꼬장 부림.... 동기들이 하는 말..."너와 다시는 술  안 먹어"... 나는 비굴하게 이 사태 이후 동기들에게... "놀아줘 하며... 꽁 무뉘를 따라다님... 대학교 2학년때 첫 구속... 남들은 다들 도망 잘쳐서 아무런 문제없었는데.... 나는 길음스트당시 버스를 탄체로 후배 6명과함께 철장신세를 짐.... 복역 3개월 15일만에 출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출소 함. 당시 회상하는 동지들은 미친놈이라는 비난을 가함. 다들 쇠파이프를 길거리나 다른 안전한 장소에 버리고 갔는데... 나의 부주 위로 후배들과 함께 쇠파이프를 들고 버스를 타서, 경찰의 검문에 걸려서 무모하게 구속이 됨.... 참 멍청한 놈이였다. 단/무/지의 전형이었음.

 

그러나 분노와 용기는 최고조에 달하던 기였음. 혹자들은 길음스트로  한명의 구속자도 없었다고 하지만 나와 후배들이 그 구속자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음. 정말 창피해서 말 못하고 다님. 모임에 다나면 왕따 당함...
 나는 굳건히 놀아줘하며 끈질기에 쫓아다님.
 
 용기도 얻었다.
 공부와 담을 쌓은 내가 사회과학서적을 접함.(대학교 들어가면 공부를 하지 않을 거라는 나와의 약속을 어김.) 그런데 사회과학서적 용어들이  넘어려웠음. 그리고 대부분의 책들이 선배들이 번역한 일어책을 교재로  삼고 있어 문맥 연결이 난해해 이해하는데 어려웠음. 지금이야 활자가 좋고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많지만... 그 당시 T.R(training Reader)은 정말 형편없는 선배들의 엉망진창의 글과 맞지않는  문맥을 해결하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작용함.
 
 지금 생각하면서 참 잘 살고 있다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잃은것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 많기에....
 
 그리고 앞으로도 단/무/지 정신으로 세상에 분노하며, 머리보다는 행동으로 다가서는 사람이고 잡다.
 
 운동이라는 것을 요즘 세상사를 보면서 느끼건데.... 똑똑한것보다  얼마나 바르게 오래 그리고 원칙을 지켜가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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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 등록일
    2004/08/06 21:45
  • 수정일
    2004/08/06 21:45
 정말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승사람이 아닌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편지를 뛰우면서 죄스러움을 사하려 합니다.
 
 늘 즐거운 일이 있을때는 혼자 있어도 되는 법이지만 슬픔이나 아픔을  나누어야 하는데 선배랍시고 그렇게 하지 못해 못내 죄스럽게 생각한다. 니가 그렇게 힘들어 했을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운동한답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작년 여름 너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뭐라 할 수 없는 죄스러움때문에  한동안  아무일도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죄스럽다. 후배 선배들에게 너가 무척 힘들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나는 그냥 언젠가는 만나야 겠지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는데 너와  이제는 더이상 이세상에서 볼 수 없겠구나.. 아니 너는 이제 과거 추억에 묻혀 있는 사람이 되었지... 얼마전 무심하게 시리 나는 너의 음성메세지를  들었다 1년전 너의 음성이 담긴 육성의 목소리를... 생생히 형 저 **에요 하는 목소리가 선명한데 너는 없더구나 음성만 남겨져 있는 너의 목소리를 나는  밤 새 우두커니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너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내  내 나의 핸드폰에서 너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고 간혹 사무실에서 듣는다.


너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말 무심했다. 나만의 고민 나만의 안위를 위해 난 너가 그렇게 힘들어  할 때 내자신의 고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천에서 서울로 황급히 도망치듯 올라왔다. 그리고 몇해지나지 않아 들었던 너의 죽음... 죄스러움에 가보지 못했다. 그래 난 너와 함께 하지 못 했을 뿐더러 너의 마지막 길또한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래서 인지 너가 요즘부쩍 나를 찾는것 같구나.... 그렇게 보기 힘들었는데  니가 내 꿈에 나타나서 서운하다는 말을 전하고 간이후 난 거의 밤잠을 자지 못하고 늘 사무실에 우둑커니 않아서 술로 밤을 지세운단다.


그래 선배가 미웠겠지.... 그리고 잘못했지... 보고 싶다고 전화해도 가보지 못하고 그냥 열심히 살라고 전화안부만 하면서 지세운 나날들을 보냈지... 너는 군에서 제대하고 제일먼저 나를 찾아주었는데... 그때도 나는 일이  있어 너와 술한잔 제대로 하지 못했지...  학교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늘 동아리 학생회관 학생회 실에서 너와  동고동락하며 운동을 위해 어떻게 살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담론을 주고  받으며 밤이 지는줄 모르게 술과 이야기와 노래와 뒤범벅이 되어 우리는  함께 했었지... 그러나 시간은 너와 나를 갈라놓았지... 내가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사회운동을 접하면서 우리둘은 간급은 점점더 멀어졌지.... 그리고 내가 인천에 있을때 그리 만날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고 너는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우리의 만남은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러나 니가 이렇게 이 세상을 접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할일이 많았는데... 그리고 운동을 위해 니가 할 몫도 많았는데 너는 무심하게 이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더더욱 니가 보고싶구나...하찮은 운동이라는 것을 지금 부여잡고 있다, 인천에서 내려와 서울  노동넷에서 별볼일은 없지만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활동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있단다. 부족한 내가 과분한 위치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너가 보았으면 좋아했을 것 같은데.... 너에게 이러한 내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구나...그것도 영원히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구나.
 
요즘 부쩍 꿈에서 너를 자주 만난다. 나의 죄스러움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강박관념이 나를 사로잡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가 꿈에서 선배무심하다 선배 함께 있자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요즘 너에 대한 죄스러움 그리움에 사뭇혀 살아간다. 요즘 밤잠을 자지 못한다. 너의 생각으로...
 
그러나 너에 죄스러움을 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결의를 다짐해 본다.  다시는 보지 못할 너에게... 내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너는 기억되겠지... 그러나 이것도 너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만의 추억이겠지....


너와 나도 역사라는 이름으로 지워질까? 그러나 요즘 부쩍들어 관념논자들의 유신론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나약한 마음을 가져본다. 신은 없음을 잘  알면서도... 단한번이라도 너와 다시만나고 싶어하는 마음때문에....
 
보고 싶어 이렇게 끌적여 본다. 너는 이글또한 읽을 수 없겠지... 그러나 나 의 마음은 이렇다. 그래서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내마음속에 너에게 이렇게 끌적여 봤다.


무로 돌아간 나의 후배에게...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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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회상

  • 등록일
    2004/08/06 21:34
  • 수정일
    2004/08/06 21:34
과거를 생각하면서 써보았습니다...
지금의 나를 가다듬기 위해서.....
 
여러 책들에 대한 것 특히 레닌의 무엇을 할것인가?(박종철 출판사 판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음. 난 아마 백의가 백두인가에서 나온 책을 읽어 보았을 뿐.) 볼세비키와 맨셰비키을 두고 혁명적 전위세력과 사민주의 세력이라고 쉽게 단정하면서 우리는 늘 기회와 사민 그리고 교조주의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것은 보지 못한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력들...

87년 민중의당 그러나 범민주 단일후보라는 사회적 힘에 밀려 출마를  포기하고 정당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여기서 발판을 마련하지 못함은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의거하면 그건 곧 정파주의의 한계가 말해주고 있다. 좌파의 소수 엘리트적인 직업적 혁명가에 의한 혁명주도와 우파라 지칭되어지는 주사파들의 대중적 획득적 힘의 획득에 의한 사회변혁으로 대립되어진 시대적 상황에서의 다수에 힘에 대한 굴종.) 그러나 좌파의 위기는 또 하나 있다. 좌파가 혁명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소수로밖에 남을 수 없었던 것은 서울대 그리고 여러 대학에서의 품성문제의 대두 즉, 혁명가들에게 제일 중요한 인간적인 품성이 문제가 되었다.=86년 서울대 품성론 사건(아마도 말지 통권호를 보면이 사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나와있을 것이다.)
 
우린 아마도 혁명이라는 사회적 거대흐름 속에서 시기적 정세 파악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쉽다. 87노동자 대투쟁 시기와 국민들의 연이은 사회개혁 시위가 BGR(부르주아지혁명)으로 이어져 SOR(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가 이루어진다는 시기적 오류 우린 이론적 성숙기와 사회적 요건들을 충분히 가추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전혀 담보해내고 있지 못하였다. 아마 계획은 있었을 것이다. 공장으로의 대거 이전이 80년대 운동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흔히 말하는 학출운동권 아직도 몇몇 학출운동권들이 현장에 남아 열심히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나, 과거에 비해 수 그리고 열의 그리고 자신의 운동의 노선에 대한 명확성들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단지  노동조합 건설에 온힘을 기울였을 뿐 이후 투쟁에 대한 방향성들은 동구권의 몰락이 가져온 충격으로 와해되었다. 몇몇 그룹들만이 지금 존재하면서 자신들의 운동을 자족적으로 진행하고 있다.(이건 나의 사견임.)
 
민중의 당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전민련이란 실험적 통일전선체

그러나 실험은 실험으로 그치고 말았다. 통일전선의 구축의 시도는 사상적인 이유와 각 정치조직간의 이해와 요구의 충돌로 인해 전혀 합의되고 집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전선은 그 의의만을 만기고 80년대 말 역사의 뒤안길에서 서서히 살아지고 말았다.
  우린 6.25란 역사적 단절이 얼마나 뼈절이게 이 운동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는 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1919년 부터 일기시작한 사회주의 운동이 단절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얼마나 처참히 깨지는가를... 정확히 말해 6.25라는 전쟁이 남겨준 우리에게 있어 반공이데올로기라는 허울 속에 기층 민중들과 소부르주아들의 정치적 이중성들을 즉시 할 수 있었다.

보수와 안정의 기성세대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4.19의 혁명적 정신들을 그러나 시대가 지나고 있는 지금 4.19의 주도세력은 어떠한가? 그들은 기존 정치권으로 편제되어져 그들의 엘리트적 기질을 발휘하여 한국사회의 피박받는 민중들을 피를 뒤에 엎고 정치세력으로 정착하였다. 그리고 유신의 항거한 사람들 지금은 어떠한가?  80년 전두환을 일두로한 군부독재의 잔당들과 같이 정치적 동지로 서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많은 변절자들을 보고 지금도 정치적 신물에 뻬?자족적으로 자위적으로 그들을 몰아세우며 찍을 사람이 없지만, 그들이 기존 보수세력들이 사회적 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논리 하나만으로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기존 정당들에게 표를 던진다. 아 너무나도 한심하지만 이게 우리내 현실이다. 그런데 운동권들은 어떠한가? 이런 사회적 변혁기회 전민련이란 통전체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파 싸움과 힘겨루기에만 연연하지 않았나, 사회적 대안세력 혁명의 정당성을 알리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성들을 지도하기는 켜녕 현실운동적 사안에만 갑갑했다.(많은 혁명론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론들은 인텔리적인 운동의 피폐=인텔리적 운동의 한계는 늘 고정되어지고 있었다 노동자 계급성만을 담지한 그들은 노동자들의 정치세력의 선두에 세우기는 켜녕 자신들의 조직의 정치적 헤게모니 장악 정파간 혁명 사상에  대한 우위만을 강조하였다. 성과도 있다 맑스주의란 단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쇄신 즉. 학계의 맑스연구진행.. 그리고 여러 맑스주의에 대한 분석들이 운동의 발전을 가져온 점이 있었다.

그러나 정반합이라는 유물론적인 합법칙성들은 상실되어져 갔다.

아마도 인텔리적 운동의 한계로 싸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이론적인  확장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학문들에 대한 다양한 섭취를 못한 우리 운동의 한계성들이 있기에 많은 정파운동이 자신들만의 외길 속에서 주도세력에서 사장세력으로 서서히 운동세력속에서 사라져가지 않았는가?  말을 하다보니 인텔리적 운동의 한계로 흘러갔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 통일전선체 운동이 충분한 중요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험적 운동으로 실패하였는가를 잘 보아야 한다.
 

92년 총선과 대통령선거...

민중의독자적정치세력화(민독정)세력과 민중당, 한노당 그러나 그러나  그들은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현실의 냉혹함 민중을 위한 진정한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함을 각인하는 계기를 분명히 얻었을 것이다.

민독정의 선거패배와 민중당의 선거당으로서만 역사에 무대에서 사라짐, 한노당의 의의성만을 강조하고 사라짐...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해 새로운 운동에 대한 대안마련과 모색을 위해 학계와 운동권(각 정치세력들)들의 암울한 시대였다. 이것을 정면 돌파하기위한 합법전술적 당운동..  당운동은 부르주아판에서 표를 획득하지 못하면 당으로서 존립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러한 한계가 있을을 극명히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민주대 반민주의 낡은 사슬을 버리지 못한 우파라 지칭하는 사람들의 민주정부 수립론(내생각으로 아마도 좌파에서 먼저 민중주도 임시  민주정부 수립의 기치를 먼져 들었다고 사료됨.)에 대한 환성에 젖은 비판적 지지론에 입각한 선거전술....  이러한 협격한 입장의 차이를 우린 운동세력들은 늘 염두해두지 않고 독불장 군식으로 자신의 길만을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 대한 이해와  객관적 비판을 하지 못하였다. 다만 정치세력들의 자신들의 이론적 입장에  근거한 비판들만을 계속적으로 강화하였을 뿐이었다.

많은 좌파세력들은 민독정을 진행하면서 구로에서 안양에서 성동에서 노원에서 선거투쟁(학생들은 학생선거투쟁연합을 건설하여 나갔으며, 각  정치세력들은 민독정에 결합하면서 각 조직에서 소속된 지역선거 본부로의  결합)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은 표라는 허울에 의해 처참히 뭉개져버리고 말았다.

혁명성도 투쟁성도 그리고 운동의 열정도 부르주아지 선거판에서는 표가  없로 나오지 않으면 자족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난 이에 합법정당의 한계는 표를 얻지 못하면 당으로 존립할 수 없다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백선본 이후의 선거판도 마찬가지이다. 92년 대선 백선본운동 또한 표가 나오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선본세력(각 정치세력들의 이후 방향에 있어서의 구별정립이 가시화 되어지지 않았는지..... 자신의 궤도의 이탈 그리고 운동에 있어서의 조직의 존립적 근거가 희미해지 는 현상들을 낳았다.  "내가 겪어온 운동속에서 우린 너무나도 학생운동 그리고 일부조직된 운동권들이 전체운동의 책임지을 수 있다?는 오판과 환상 속에서 패밀리적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한다. 각각의 역활과 위치에 맞는 활동들이 배치되고 조율되어져야 한다.)
 
"청년이 서야 나라가 선다." 그리고 "청년들의 시대적 책임성"난 이말에 대한 무진장 반감이 있다. 그건 추상적 구호에 지나지 않고 청년이 시대적 책임을 전부 전가할 세력인가?라는 생각에서 이다.

우린 청년과 민족이란 단어를 언제서부터인가 매우 자주 그리고 친근감 있게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들또한 한 시대의 청년임에 불과하다. 그리고  학생운동권들과 젊은 노동자들을 청년이란 단어로 묶어주기엔 너무나 청년이란 피상성들이 내재하고 있다라 생각이 든다.

난 청년에서 기성세대로 접어들고 있는 이들이 진정한 혁명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 과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 얼마없다라고 생각이 든다.

난 그들의 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늘 운동성만을 상실치 말기를 바랄뿐이다.
 
혁명의 주도세력인 젊은 인텔리 계급은 러시아에 소수에 불과하였다. 혁명의 원동력은 혁명적 노동자들이 었지 레닌, 트로츠키, 카우츠키,스탈린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서의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 건설은 노동자 주력부대의  무장혁명에 의해 일구어낸 산물이다. 우린 레닌의 저술을 보면서 그의 뛰어남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레닌만의 고민에 의해 나온 전술과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난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선진노동자 즉 인텔리들에 의해 지도되고 조직된 노동자들 계속적인 프략션을 통한 선진노동자 부위 내의 정치노선과 조직노선이라는 끊임없는 그들의 토론을 통한 산물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레닌저작선집의 책들이다.
  그의 투쟁을 있게해준 배경들이 있었기에 레닌이 존재하였지 그의  천재성이 러시아 혁명을 완수하였다라고 볼수는 없다. 어느책에선가 러시아 혁명이 있을 당시 레닌은 혁명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말은 얼마나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조직되어지고 계급성을 담지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지...
 
난 자신 지금 공부를 하건 열심히 산업현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건 자신의 운동에 대해 비젼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것을 하루하루 실천하는 것이  더 욱더 절실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운동을 시작하거나 운동의 변혁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운동에 대한 비젼을 가져야 된다고 본다. 그것이 당운동이던 아니면  여러가지 형태의 사회진보운동이건 무엇을 할것인가?와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자신의 철학이 없다면 그건 아마도 자족적이거나 자위적인 운동이라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청년만이 운동을 한다. 사회변혁을 일군다라는 말은 오판이다.

어떻게 선진 운동가로 아니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운동을 통해 노동자로 환원되어질 것인가란 자신의 철학이 없다면, 기존의 정치적 야망에만 불타는 운동을 알것임은 뻔한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돈이 없으면 굶어 죽듯이 운동에 대한 자신의 목적성과 삶의 기본동력이 없이는 운동이란 환상자체 라고 밖에는.. 난 청년이란? 말과 청년의 시대적 역활 청년이 사회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 자체는 피상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난 전진하고자 하는 자만이 쟁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선진 학생운동가라면 노동자 현장에서 인텔리의 근성을 버리고 노동자 계급으로 새롭게 거듭나는게 더욱 올바른것은 아닌지... 감히 말해 본다.
 
또한 대학생신문에 글중 "혁명적 이론없이 혁명적 실천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난 지금 현실에선 "혁명적 실천없이 혁명적 이론은 없다."라 는 말로 바뀌어야 하는게 아닌지... 내가 알기로는 실천이 이론보다 먼저 앞을 장식해 준다고 생각이 든다. 뭐 말의 앞위가 중요할 소냐 많은....  현실을 돌아보면 맑스주의에 대해 이론적으로 많이 접근한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삶으로 가꾸면서 운동적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동자 계급성을 지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드물기에 맑스를 이론의 잣대보다는  실천의 잣대를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게 올바르 않을까?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진보정당은 대중정당인가? 혁명정당인가? 난 노동자 민중의 대중정당은 원초부터 존재 할 수 없다고 본다. 그건  선거라는 공간의 협소성과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모순속에서 결코 선거를 통한 혁명은 가능하지 않기때문이다.

이에 난 각각의 운동들이 분화되어지는 양산속에서 운동은 배치되고  집행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현실의 운동은 그렇지 않다 너무나 패권의식과 정파적 패밀지 의식들이 파편적으로 조직의 분화양산을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너무나 패권적으로 그치고 있기때문이다.

모든 운동들이 마찬가지 이겠지만 현시점의 진보정당운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재 정식정당으로 청년진보당이 진보정당으로 등록되어져 있고 그리고 기존 국민승리21이 민주노총(민주노총 강령에 진보정당 건설이 강령으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민노총 강령을 모른 나로서는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들은 말에 의해 진보정당강령에 의한 민노총의 진보정당 참여 한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말한다.)의 과의 연계에 의해 진보정당건설추진위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난 개인적으로 두 세력간의 구분점들을 모르겠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두개의 당으로 양분해 진보정당운동을 전개하게  하는 지를 아마도 기회와 사민세력과의 타협의 거부라면 난 진보정당  운동에서의 통전체적 당이 아니고서의 의미성들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과거 제기한 합비합 동시건설론이란 차별성에 의한 진보정당 건설이 라고 말하면 모를까?

이런 양분화된 구도 상호대립적 관계를 통해 자율경쟁을 통한 진정한 세력으로서의 거듭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과연 대중정당이 혁명정당도 아니면서 이런 구분속에서 무엇을 찾기에 진보정당운동이 양분화되어져야 하는지 난 사실 잘 모르겠다. 맑스에 의한 당이라면 난 합법적 진보정당을 건설은 현시기적으로 무리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누구를 위한 당인가? 슬로건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한것이 없다. 민중의 정치세력, 노동자 정치세력화, 보수정치를 갈아없자는 슬로건 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구호들이 얼마나 민중들이라는 서민들 노동자에게 직간접적으로 피부로 다가올 말인가? 그냥 운동을 한 사람들의 필요성에 의한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생각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드는 생각이다. 당 그리고 단체 인천에서는 너무나도 학생들에 대한 불신과 그리고 배신의 골이 깊다. 그건 당시 노조에 있는 사람들은 말은 안해주지만, 인텔리들의 배신 그리고 계급성의 한계들에 대한 불신임은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한 조합을 들어가서 말을 들어보았다.
그 조합 간부는 진보정당이란 말을 해보았더니 피식웃으면서 집에서 효도나 하라고 나에게 말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조합간부는 진보정당 동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세상을 바꿀 계획과 플렌을 당장 가져오면 지금 즉시 나도 진보정당 운동에 적극적으로 복무하겠다라고 말한다. 계획 만들면 되는것 아니냐...  그사람왈 말은 쉽지.... 운동권들이 정치적 프로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 정치적 프로로 자리매김 되면 그들을 정치철세로 전락해 자신의 정치성을 잃지 않기 위해 어디론가 팔려가는 정치프로선수가 된다는 말을 한다. 남들은 쉽게 미리 부터 걱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 요즘 참여연대를 보라 그들을 비판하지만 그들만큼 정책에 대한 비판(한계성을 내재한 비판)을 하는 세력은 어디있는가? 난 없다라고 본다.

그럼 혹자들은 넌 무엇하러 운동하냐라고 한다. 그러면 난 그렇다 대안을 만들기 위해한다. 대안이 무엇이냐 난 끊임없는 실천활동과 연구를 통한 산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말을 들을면서 난 생각이 들었다.
정치세력화, 세상을 바꾸자!라는 말은 무성하다. 그러나 이후 선거에서 한석 아니 몇백년 후에 정치세력이 되었다고 치자! 그원칙을 늘 변치않고  가지고 집행할 수 있는 우리의 사회전반적 계획은 가지고 있는지....
 
 말이 아닌 실천을 할 수 있는 대안들 사회의 모든 제반 부조리들에 대한 해법들을 가지고 기존썩은 정치권을 가라엎지 않는한 우린 룸펜적 운동가(늘 운동권에 있어 술은 빠지지 않는다 늘 술이란 매채를 통해 서로간의 결속력과 동질성들을 각인한다. 그리고 몇몇 사과서적을 읽으면 맑스에 대해 이런 저런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문제에 대한 끊임 없는 진단 그리고 해안들을 제시할수 있고 이걸 대안들을 가지고 투쟁을 만들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못한 우린 항상 룸펜적 운동가=자족적 운동가로 머물를 수 밖에 없다.)로 적용될 것이다.
 
늘 자신의 그늘을 보지못하면서 남의 그늘에만 안주하고 또한 자신의 그늘의 폭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한심하기 그지 없다.그리고 너무나도 패밀리적인 운동의 한계성들이 우리 주변에 내재하고 있다. 너무 서글프다...

모두들 과거는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과거는 과거일뿐 현재를 견디어 내야 합니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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