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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쪽팔리면 그때부터 학교생활 쫑이야.
시커먼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로 교장의 차가 지나간다. 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경례!”를 외치며 젊은 시절을 보내는 1978년도 강남의 말죽거리 고등학생들…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건 또 다른 폭력뿐.
폭력을 쓰지 않으면 쪽 팔린다. 쪽팔리면 그때부터 학창시절은 쫑난다.
말 않듣는 학생을 향해 선생님은 많은 학생들 앞에서 머리를 치며 “니들 같은 놈 때문에 민주주의가 안되는거야!”라고 외친다.
흐흠…폭력쓰는 선생님 입에서 쏟아지는 대사치고는 너무나 아이러니 하다.
교장은 선생님의 뒤통수를 학생 뒤통수 날리듯 가볍게 내리친다.
폭력은 교육되어지는 거라는 감독의 암시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권력은 곧 폭력을 통해 쟁취된다는 암시다.
폭력으로 교육되어진 남성들이 만들어가는 이 나라.
폭력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다.
남자들만의 학교. 그들에게 질서는 폭력으로 시작하여 폭력으로 끝난다.
잼나는 건 회사에서 남자사원들에게서 느낀건데 공적인건 물론이고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서열을 은연중에 정한다는 것이었다. 딱히 물리적 폭력을 쓴건 아니지만 그건 다분히 인간적 관계에서조차 폭력적 방법이 그들만의 소통방식인 것같아 씁쓸했다.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여성들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다.
두울. 남성다움의 상징. 브루스 리.
쌍절권을 휘드르며 얼굴근육은 약간 오버하며 “아뵤~~”를 외치는 그는 지금보면 권상우에 비해 가슴근육도 볼품없는 약간 촌스런 남성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시절 남성들을 매료시키는 캐릭터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걸까?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1대 다수와의 싸움에도 굴하지 않으며 멋진 발차기와 쌍절권을 휘두르며 나쁜놈들을 향해 강한 기압소리를 내지르는 그는 분명 70~80년대 강한 남성적 아이콘의 대표주자로 손색없다.
남성적 강함을 드러내면서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를 향한 강한 의지, 그러면서도 여성에게는 한없이 순수한 순진남.
이런 모습들은 지적이며 부드러움의 현대 남성상과는 차별점을 가지는 분명 다른 의미의 남성상이다.
공감하며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고, 기타한곡 정도는 튕길 줄 알며, 비오는 날 자신은 비를 맞더래도 여친에게 우산을 양보할 줄 알며, 불의를 보면 폭력으로 응대하지 않고 현명하게 피해갈 줄 아는 남자…그런 남자가 난 더 좋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기는 해도 관계맺기가 어렵다면 곤란하지 않을는지?
난 오래오래 남자랑 대화하고 싶다.
>>사족
이소령의 쌍절권으로 불의를? 평정하는 권상우의 모습이 너무너무 시원해보였던건 나도 모르게 폭력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권상우가 쌍절권을 휘두르며 5~8명을 혼자서 다 무찌르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던 속이 뻥 뚤렸다. 햐~~~ 시원했다.
남자들이 물리적 힘을 키우려는 이유가 이건가 보다.
문대성이 발차기 하나로 금메달을 손에 쥐고있을 때 그가 그렇게 남자답고 멋있어보였다면…흐흐흐흐….
셋. 70~80년대 문화
어코스틱 기타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하나정도는 튕길 수 있어야 유행에 뒤쳐지지 않을 것 같은 시절, 원나잇 티켓으로 하늘을 찌르는 디스코를 추고, 버스안내양 언니가 어렵게 어렵게 손님을 다태운뒤 “오라이~”를 위치던 그 시절…
그 시절은 그래도 낭만이 있어보인다.
왜일까?
지나간 과거는 모두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인가?
넷. 잉여인간
“대학을 가지 않으면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이 뭔지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거야..”
대학은 나왔으니 잉여인간은 면제된 듯하지만 난 여전히 잉여인간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평균인의 반대말은 곧 잉여인간인가보다.
다섯. 교육
“인간이 되야지.
서울대 연고대 나오면 뭐하나 고등학교 졸업해도 잘된사람 많다. 인간이 되야지…”
모 이런 말 하는 영화속 선생님의 대사를 신뢰할 수 없다. 그건 뉘앙스가 빈정댐때문이다.
자고로 공부잘해야 대접받고 상위 몇등안에 들어야 사람처럼 응대해주는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신다.
입시경쟁만으로도 모잘라 학교마다 서열을 매기자는 움직임이 보수적 교육계와 언론에서 일고 있다는데..
한국사회에서 공교육은 제역할을 하고 있는건가?
권상우가 마지막 학교에서 던진 말
"대학민국 학교! 다 *까라 그래!"
흐흠....
>>사족
권상우 넘 멋찌다!!
그에게는 육체에서 보여지는 강한 남성상과 쿨한 유머를 내뱉는 여유로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는 미소년의 남성상. 두가지 매력을 동시에 풍긴다.
물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는 남성적 육체와는 다른, 아담한 근육의 아름다운 선이 느껴지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같은 육체를 지녔다.
이미지 연구가 필요한 캐릭터다...ㅎㅎ
"권력"
"권력 선점하기"
흐흠....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나보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를 최근 몇주동안 느끼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을 재점검해본다.
다시는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말이다.
회사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아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치졸하고 부당하게 진행되는지 겪어보지 못한 난
모...대수롭지 않을 미래였다.
글쎄...그건 자신감과 맞물려 있었고 냉정한 현실부족탓이었다.
정리해고 우선순위를 나열해보면...
결혼한 여성
불필요한 부서 및 업무라는 명목하의 업무 수행능력과 무관하게 남성보다는 여성
그리고 나머지 남성...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누굴까를 매겨본다.
회사 재정을 어렵게 만든 경영자. 일명 CEO
의사결정권한을 가진 임원 및 간부들.
그들은 언제나처럼 건재하다....
.......
무기력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못하고 먼저 빠져나왔지만 그래도 팀원들은 남게 될 줄 알았다. 그러면서 얼마나
안심했던가.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던지. 한치앞도 점치지 못하는 나자신이 야속했다.
그들을 보호할 수 없는 아무힘도 없는 팀장이라는 것을.....
한국 대기업 30개회사중 5명꼴로 1명이 여성이란다.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도 멀었다고 가슴치며
통탄해야 할지 혼란스러기만 하다.
왜냐...아직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여전히 비민주적이고, 남성중심적이다.
아니...대기업또한 껍질을 벗겨보면 여전히...비민주적이고, 남성중심적이다.
여성이 그안에는 아예 없거나, 한치 1년앞의 미래도 보이지 않는 조직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보다 3~4배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여성 임원탄생이 기사꺼리가 되는 한국기업문화내에서는 여전히 말이다.
지배문화, 남성권력사회에서 여성이 살아남기가 이렇게 힘든가..
아직도 절반의 여성이 넘어야 할 산은 높아보이기만 하다.
몇달전부터 벼르던 전시를 오늘에서야 겨우내 보았다.
달리전에서 기대이하의 실망으로 상심이 컸던 난 샤갈전은 한층 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왜냐면 유명작가의 실재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내평생 올까말까하는
귀중한 시간이므로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것 때문이었다.
샤갈은 꿈꾸는 소년이었다.
하얀 수염을 달고 있는 할아버지의 머리에서 그려지는 것들에서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지 않은건 왜일까?
그건 꿈꾸는 자이기 때문에 가능할꺼다.
작가는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담고, 자신의 철학을 형상화한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색채의 감각이 점점 어두워지고 강렬해지는.. 어렴풋이
그에게도 속세의 품새가 느껴지지만 그가 그리는 세상은 여전히 땅에 닿아있기
보다는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
감동적이었다.
그에 그림속에서 살고 싶었다.
그가 그리는 마을은 외로움, 미움, 세상의 부정과 한발짝 떨어져 관조의 세계이다.
날개한쪽 달린 시계와 통통한 닭, 뿔인지 귀인지 구분되지 않는 말....
초가지붕의 집들, 광대, 앙증맞은 초생달까지...
그리고 푸근한 그녀...심지어 그녀의 동그란 가슴은 섹시보다는 귀여움이다.
어떤 것도 뾰족한 건 없다.
어떤 것도 둥글게 둥글게...
그의 선은 하나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고리와 고리를 이은 듯 잘게 쪼개져서
연결되어있다.
연결된 선은 화합을 의미하는 듯하다. 포용하고 너그러이 이해하는 사랑을 의미하는 듯하다.
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꿈꾸는 영원한 소년"이다.
육체는 비록 새하얗게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현실이 아닌 풍요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 샤갈...
그가 부러울 뿐이다.
유명한 화가여서가 아니라 평생을 꿈꾸며 살았던 행복한 인간이었기에 말이다.
직장인은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오후4시라는 환상적인 시간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전시장을
거닐면서 나는 오늘 한껏 마음의 풍요로운 여유를 느꼈다.
행복하다....
〈경향신문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마르크 샤갈(1887~1985)은 고향 백러시아의 작은 유태인 마을 비프테스크, 그리고 미국 망명기간(1941~1948)을 제외하고 일생을 보낸 프랑스를 소재로 마술사 같은 환상적 색채를 사용해 자전적인 고백 같은 연인들의 사랑과 종교적 주제를 표현했다.
“불어 발음을 잘 못하는 러시아 출신 유태인”이라며 샤갈을 비웃기도 했던 피카소조차도 “마티스 이후 샤갈만이 색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화가이며, 르누아르 이래 샤갈만큼 빛을 잘 파악한 화가는 아무도 없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항상 작품속에 연인 중 한 명이나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 수탉 등으로 자신을 표현한 샤갈은 푸른 색과 빨강, 노랑과 녹색을 주조로 환상적 색채의 하모니를 이루어냈다. 푸른 색은 자유의 상징이면서 유태인으로서 종교적 숭배를 나타내며, 빨강은 유태인에 대한 형제애를 표현하고 땅의 색이기도 하다. 녹색과 노랑은 기쁨과 평화를 나타낸다.
한 시대를 주름잡는 미술사조에 자신을 맡기는 일도 단호히 거부한 샤갈은 파리 유학에서 돌아와 고향 비프테스크 미술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당시, 교사의 한 사람이었던 절대주의자(한가지 색으로 전체 화폭을 칠하는 추상주의의 한 사조) 말레비치와도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유태인 극장 패널화 중 ‘음악’ 부분에서 악사의 옷차림이나 배경에 작게 그려놓은 검은 네모와 부채꼴 모양은 말레비치의 추상적 절대주의가 그리 대단할 것 없다는 샤갈의 예술적 자존심에서 빚어진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10월15일까지
최소의 재료로 만든 기막힌 비빔밥, <화씨 9/11>
으음...
예술가의 현대적 의미....
나도 한때는 순수하게 예술가로 살고 싶었다.
회사생활 몇년동안 예술가적 삶에서 어영부영 멀어졌고 생활패턴, 하는 일뿐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것들까지 난 평균인에 편입하고자 노력했다.
예술가로 살아가기가 현대에 얼마나 힘든가?
독일에서 회화공부하고 있는 과언니는 유명해지려면 자기홍보능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녀 또한 37살의 나이에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 독립적이지도 않고, 타국에서
5평 남짓의 공간에서 한달한달 최소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을 과대포장하지 않고 성실히 작업하는 작가로 남고 싶어한다.
로비로 자신을 알려 작품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고, 교수에게 아부하여
버젓한 자리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힘든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녀뿐 아니라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출한 공간인 작업실도 없고,
주변인들로부터도 사회성결여로 이방인화 되어간다.
그건 자기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뿐 아니라
생존의 위협과도 싸워내야 하는 이중고이다.
MBC2580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던 작가가 나와 퍼포먼스를 하더라.
몇달남지 않는 작업실계약이 완료되면 어떻게 할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글퍼지네.."라고 조용히 내뱉는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만하는 예술가의 삶이란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알기에 나 또한 일찌감치 다른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꿈꾸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삶이 아름답지만 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평균인으로서는 자격미달이다.
아니 편입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맞겠다.
누군가를 자꾸 밀어내야 내가 살고, 누군가를 자꾸 짓밟아야 내가 우뚝설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
회사생활 몇년 동안 누군가를 밀어내지도 짓밟지도 못했더니 내가 밀리더라..ㅋㅋ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때 정신이 아찔해진다.
난 냉험한 현실에서도 꿈꾸고 있었던 어설픈 평균인이라는 것을..
남보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꿈을 표출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나마
필요해 하는 그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이 시대 새로운 의미의 고호적 삶.
그들이 죽는날까지 꿈꾸며 살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진보네 친구들이 블로그라는 사이트를 오픈한다고 했을때
블로그가 모야? 그랬다.
지희의 정성어린 설명도 소용엄따.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과 이미지를 배경에 깔수 있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고 그건 기쁜일이다.
진보블로그를 돌다 "평균인"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다.
회사생활을 4년정도 하면서
무의식중에 주변의 많은 평균인들과 닮아가려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약간의 경악과 안도를 한다.
경악은 나에게도 평균에 들고 싶어하는 남들과 다르면 불안해 하는
안정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떄문이었고, 안도는 경악하는 나자신을 보며
객관적으로 나를 판단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래서 평균인의
시각만이 아닌 다양함을 인정 할 줄 아는 나자신에게 대견했기 때문이었다.
ㅎㅎ
요즘 사실 힘들다.
회사를 때려치고 싶어도 실패자라는 낙인으로 매도당할까봐.
나 스스로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꿋꿋하게 살아갈 자신이
조금은 부족할 것같아서 이다.
회사를 떄려싶은 이유가 딱히 정당한가에 대한 답변도 잘모르겠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나 자신을 스스로 성공한 인물이라 평했다.
그건 오만하고 근시안적인 평가였다.
정신차리자!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30대는 견실함으로 가득차야 40대에 후회하지 않는다지만 그건 잘 모르겠다.
인생에서 완벽한 만족감이란 있을 수 없을 건데...
욕심때문이라면 버리고 싶고 그게 아닌 다른 이유라면 그 이유라도 알고
싶다.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인생이 정말 힘들다.
힘들지 않을 때가 올까?
20대에 방황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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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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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는 저 말을 한 다음 학교 때려치죠. 그런데 웃기게도 다시 대학준비하는 학원생으로 나타납니다. 극복할 수 없는, 빠져나갈 수 없는 시스템의 고리 속에서 의식의 분열이 나타나게 되죠. 혹시 '심판'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카프카의 심판'이라고 흔히 말하는데...부가 정보
river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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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본 기억은 납니다만...제길 기억이 가물하네요. 고등학교시절 세로방식의 두꺼운 서적. 카프카의 "변신"은 읽었는데...카프카식 상상력은 왠지 저의 정서와 잘 안맞아서리...헤~부가 정보
rap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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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의 근육질이 버벅거리는 말투와 결합되어 순수열정의 매력덩어리가 된 것 같았어요. 잼있게 보고 나서 사실은 좀 씁쓸했습니다. 통과제의처럼 폭력의 내면화를 겪는 한 소년이 지나치게 멋있게 포장되었다는 느낌 때문에요. 게다가 감독 인터뷰에서 자기 고등학교 시절 얘기라고 하니. 폭력적인 추억이 너무 풋풋한 거 아니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부가 정보
river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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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이영화의 예고편만 보고 <친구>의 아류작이겠구나 하고 무시했던 영화였슴돠. 그런데 최근 어쩌다 비됴로 보고는 <친구>보다는 잘 짜여진 스토리와 상징성이 있는 영화가 아닌가 놀랬지요. 이 글쓰고 잡지를 다디져 비평글을 읽었는데...감독인 유하와 김성수감독의 대담인지의 글을 읽고는 좀 씁쓸했어요~부가 정보
river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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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인 즉슨..실재 유하의 고등학교시절을 다루었다는 점과 고교동창인 두 감독이 야!그 시절이 좋았지..이랬지..모 그런식으로 폭력에 대한 무감각적반응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슴돠.감독은 영화를 만들지만 비평가들이 새롭게 영화를 재창조한다는 느낌을 그 대담을 통해 새삼 느꼈어요.폭력에 대한 저항감보다는 당연시하는데 익숙한 마초남성들의 솔직한 대담이 익숙하지 않게 와 닿았었죠.왜 저런 영화를 만든걸까?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포장으로 폭력을 미화조장한 영화라는걸 인정하는 대담으로 와닿아서 씁쓸했슴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