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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0/26
    이주노동자에게 집회란..(11)
    schua
  2. 2004/10/21
    한때(4)
    schua
  3. 2004/10/19
    작업을 하다보면....(16)
    schua
  4. 2004/10/19
    시 한편...(2)
    schua
  5. 2004/10/17
    부산영화제에서 얻은 것^^(5)
    schua
  6. 2004/10/16
    Don’t beg for the right to live, take it.
    schua
  7. 2004/10/14
    동반자라는 것.(9)
    schua
  8. 2004/10/12
    계속 소통해야지(2)
    schua
  9. 2004/10/08
    부산에서..
    schua
  10. 2004/10/05
    샤말의 편지(5)
    schua

이주노동자에게 집회란..

* 이 글은 썩은 돼지님의 [이 신발도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지난 2월 17일 굽다가 연행된 날이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어이 없이 샤말을 길에서 납치한 것을 항의하는 집회였는데

맘 먹고 덤비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집회 침탈을 가까스로 외환카드 노동자들과

연대하러 온 학생, 활동가들이 막고 있을 때

뒤쪽에서 굽다가 연행됐다.

굽다의 사지를 잡고 50m 정도 떨어져 있는 봉고로 데려 갔다.

난 그 상황을 보고 맥이 빠졌다.

들고 있던 카메라는 지 맘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대오를 향해 큰소리로 '여기 여기' 했다.

다들 정신이 없었던 지라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었다.

멀리서 연영석 동지가 달려오면서

'이럴 필요까지 없잖아. 당신들 이럴 필요 없잖아' 한다.

너무 상식적인 말인데 멍하게 들렸다.

그 영상을 보면 순간 순간이 멈춰진 스틸 같다.

그 장면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 같은

그래서 꾹 참아보지만 그 장면은 계속 된다

현실과 희망의 괴리...

그 상황이 재연되고 그 상황을 어찌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일때면 그 장면에서 그땐 도망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치기 십상이다.

 

 

그렇게 굽다를 잃고

우리는 명동농성단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농성단에 도착해서는 다들 들머리에 앉아

넋을 놓았다.

그러다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걸 찍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오더니 그게 굽다 신발이란다.

그 소릴 듣고도 난

그 신발을 한참 찍었다.

마치 굽다가 투명인간이 되었고

신발만 내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굽다' 부르면 투명인간이 된 굽다가

'어 비즐리' 그러면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이주노동자 집회에 가면 상식 밖의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아무 일도 아닌 것 가지고 경찰이 트집 잡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다.

어느 집회를 가도 그런 식으로 하지 않을 일들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왜들 그러는지 왜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저렇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한국 사람이니까.

그런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멸시.

까놓고 이야기하면 그거였다.

별 것도 없는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면 멸시 좀 받고 살아야지

어디 집회까지 하고 지랄이야.

얼굴에 씌어 있다.

노골적일 때도 있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회할 때였는데

처음으로 이주노동자가 이주노동자 집회에 왔다.

그랬더니 하는 말 "왜 여기까지 데려 오고 그래"

한국 활동가에게 하는 말이다.

그 활동가 왈 "이주노동자가 개입니까 데려오게"

통쾌했다. 하지만 그 경찰 말 정말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으면 웃으면 되는 데 웃음도 안나온다.

 

아무 권리도 없고 언제든 잡아채서 넣어 버리면

본국으로 돌려 보낼 수도 있고 어디 하나 거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주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주노동자가 집회에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농성을 하면서 중요할 때 집회를 해야 하는 데

머뭇거리는 이주동지들을 보면 답답했다.

하지만 한번 연행되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도 어떤 방법도 없이 본국으로 추방되니

그러면서도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집회에 나가는 이주동지들을

볼 땐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한국에서의 자신의 삶이, 시간이 송두리째 강탈당할 수 있다는

그런 압력을 이겨내면서 이주동지들은 집회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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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 이 글은 schua님의 [시 한편...]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존 버거 아저씨 책을 하나 옆에 놓고 찝쩝거리고 있는데.

진짜루 찝쩝거린다.

 

아마 내가 책 읽는 방식은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한번에 파는 방식,

다른 하나는 계속 보는 방식,

 

첫번째는 읽을 때까지 거의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

대략 세미나 할 때 발제를 위해서 주로 이용하는 방식인데,

그러니까 아주 목적 의식적으로 드갈때 이다.

계속 보는 방식은 지하철 기다리면서,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 갈아 탈 때,

밥 먹을 때, 밥 먹고 잠시 한 숨 쉴 때, 자기 전, 일어 나기 전 이불 속에서,

편집 하다 랜더링 걸어 놓고, 차 마실 때, 회의 하기 전, 컴퓨터 파워 들어 오기 전,

여하튼 계속 옆에다 놓고

그냥 시간이라고 말하기 뭐한 시간이 날 때도 읽는 방식,

한 마디로 찝쩝거리는 방식..

 

지금 읽고 있는 책도 그렇다.

근데 이런 이야기하려고 한게 아닌데..

찝쩝이라는 단어에 필이 꽂혀서...쯪...

 

하여튼 지금 찝쩝거리는 책이

존 버거 아저씨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이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데...참...기네....아닌가..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책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시간, 공간,(훌륭훌륭..난 존 버거 아저씨를 넘 좋아하는 것 같다)

시간에 대한 글을 모은 것이고 당연이 공간에 대한 글..

시간에 대한 글은 주로 시간의 한때에 대한 글들이다.

시도 있고 소설도 있고 상상의 날개 한 쪽 같은 노트도 있다.

그래서 자유롭고 그래서 지루하고 그래서 집중력을 요하지만

그렇게 단련을 하면 인간의 한때들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순간을 영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조급증 같은 것이 있어서 순간에 영원을 부여하고 그러다

순간도 놓친 적이 많다. 내 20대의 대부분은 그랬던 거 같다.

그렇게 많이 놓친 순간을 오늘 하나 찾았다.

 

요만때, 일년 중 요만때,

날씨도 요만때,

가로등이 켜지려고 스스르 준비하고

아직 간판들 불은 다 안 켜지고

세상은 회색인듯 갈색인듯

잡힐 듯 말 듯, 가물 거리지만 그래서 아늑하고 따뜻한 한때

 

10대때 주로 이런 때이면 큰 공터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가 좋아서 한동안 매일 매일 그렇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참 외로웠던 거 같다. 그런데 그 외로움이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했던 거 같다.

너무 외로웠다. 너무 외로워서 멍해졌던 거 같다.

얼어 붙는 것 처럼.

 

그런데 오늘 만난 '그때'는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아니 외로운 것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따뜻하고 산뜻하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삶의 한 단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한때와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나이를 먹나 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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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하다보면....

마녀가 될 때가 있다. 정말 성질이 있는 대로 나고. 심지어는 그 성질을 이기지 못해 방바닥을 구를 때도 있다. 정말로 구른다...허이허이.. 그럴때면 내가 이러다 제명대로 못 살지 싶다. 그런데...지금이 그렇다. 정말 환장하겠다. 다음주 말에 상영이 잡혀 있는 데 가편도 안나왔다. 연출가 하나 하나 얼굴이 떠오르면서 미워졌다가 안쓰러워졌다 한다. 오락가락가락오락.... 장마철 하늘도 아닌데... 그래도 해야지. 그 여름을 열심히 산 증거들이 아닌가. 그렇게 열심히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나누지 않았나. 그런데 이렇게 막판에 일에 눌려서 그 땀들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면 안돼지. 그렇지. 그렇지. 그러니... 얼른.... 마음 다 잡고 다시 해야지. 아... 내가 왜 다큐작업을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유일한 때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것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걸.. 마리오형이랑 한 이야기를 다시 되세기며.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하는 거라고. 푸하~~~~ 그래 잘났다! 다시 편집 시작!!!!!!! 이쯤이야!!!!!!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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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

가을이긴 가을인가 보네요. 시가 땡기는 것을 보니. 우연히 존버거 책을 보다가 시 한편이 팍 와서 올립니다. 보통은 봄에 시가 땡기는데 이번에는 가을에 땡기네요. 아마 할 일이 태산이어서 인가 봅니다. 할 일이 태산인데 일은 하기 싫고...에공.. 여하튼 시 한편... 제목은 따로 없고 "한때"라는 챕터 안에 있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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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증을 보여주기 위해, 돈을 지불하려고, 혹은 열차 시간표를 확인하느라고 지갑을 열 때마다, 나는 당신 얼굴을 본다. 꽃가루 한 점은 산맥보다 더 오래 되었고, 그 산맥들 속의 아라비 산은 아직 젊다. 아라비 산이 나이를 먹어 언덕으로 변할 때에도 꽃의 씨앗은 뿌려질 것이니, 가슴속 지갑 안에 들어 있는 꽃 한 송이, 우리로 하여금 산맥보다 더 오래 살게 하는 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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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에서 얻은 것^^

영화제라는 것이 자고로 그 동안 접하지 못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일 것이다. 안그래도 기억에 남는 영화를 몇 편 본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덕목들을 발견한 다큐도 있고 거장의 영화에서는 그 안의 권위를 걷어 내고 보면 왜 꼭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을까 하는 자유로운 의문들도 생기도, 전통적인 다큐에서는 오랜기간 쌓여온 힘이 느껴져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혹은 살아 남은 자가 승리한다는 묘한 희열도 느낀 것 같다. 부산영화제에서 내가 느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책임감이란 것이다. 다큐를 만들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뭔가 바뀌기를 기대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엄청 개인적인 인간이다. 내가 뭘 하든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 된다고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듯 하다. 그런데...책임감...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느꼈다. 한 다큐 감독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30이 되고 이제 나이 먹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그게 너무 싫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땐 그 이야기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아니 어쩜 그건 그냥 액면 그대도 나이 먹어 가는 것이 싫다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중에 느낀 것은 나이 들어 가면서 느끼는 혹은 나이와는 상관 없이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단 뜻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쩜 사람들은 대부분 대략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철 없이 살아서 그런 것에 대한 대략의 것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산의 그 공기는 내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아직 그것이 나에게 무엇인지 나에게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어떤 양태로 존재하는 지 모르겠지만 연구해봐야 할 것은 확실하다. 연구해봐야겠다. 책임감이란 뭔지. 혹은 내가 무엇에 책임감을 느끼는지. 어떤 것이 책임감이란 것인지. 등.. 어려운 연구가 될 것 같지만..고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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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eg for the right to live, take it.

* 이 글은 쭌모님의 [이런 멋진 길을 아무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면...]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성매매가 없으면 여성이 성폭력에 노출될 것이란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오류임이 밟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닮아 있다. 두려움을 조장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하지만 그 전쟁은 그들을 위한 것이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익을 찾아 봐야 한다. 포주들의 이야기, 보수 언론의 이야기, 일부 남성들의 이야기. 그 안에는 그들의 이익이 있다. 그 이익을 찾아내 소리내어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여성들은 그들의 말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머리속으로 계속 계속 생각하다 메아리 마냥 울려 어느순간 아름다운 밤길을 봐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두려움이 먼저 떠올라 어디에도 못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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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라는 것.

일상의 소박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게 동반자가 아닌가 싶다. 기쁜 일, 슬픈 일, 소소한 작은 것들을 함께 나누는 사람. 세상의 흔들림에 버거워 할때 그래서 자신도 잊고 해맬때 이전의 자신의 생각을 기억해주고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고마운 사람...나의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 그게 동반자가 아닌가 싶다. 그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많진 않지만 길을 걷다 고마운 마음이 불쑥 뿔쑥 들땐 울어도 된다.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난다. 한 친구가 아래 시를 보고 짠했단다. 그 친구는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다. 항상 바쁜 친구는 바쁘다는 말만해 온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눈물이 날뻔 했단다. 내게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산 것 같아서. 오늘은 꼭 고맙다고 해야지. 내 경험을 나누고 함께 해준 것이 고맙다고.


나의 남편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작자 미상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않게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퇴근 길에 동네 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 하고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 날 있었던 열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 들부터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 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들어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한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겆이를 덜그럭덜그럭 하고 또한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배고파~" 해가며 찌게 간도 보는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 먹고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겆이를 미루며 왜 니가 오늘은 설겆이를 해야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바위보로 가끔은 일부러,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였으면 좋겠다.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티브이 채널 싸움을 하다가 오 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 바람을 맞으며 같이 비디오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후룩후룩~ "너 더 먹어~" "나 배불러~" 해가며 게걸스레 먹고나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땐 귀찮게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반바지 입혀서 눈도 안 떠지는 나를 끌고 공원으로 조깅하러가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피스타치오 아몬드나... 체리 쥬빌레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콘을 두 개 사들고 "두 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약간은 구식이거나 촌스러워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어머님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친 엄마한테하듯 농담도 하고, 장난쳐도 버릇없다 안 하시고, 당신 아들때문에 속상해하면 흉을 봐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그런 시원시원한 어머니를 가진 사람. 피붙이같이 느껴져 내가 살갑게 정 붙일 수 있는 그런 어머니를 가진 사람. 나 처럼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를 닮은 듯 나를 닮고 날 닮은 듯 그를 닮은 아이를 같이 기다리고픈 그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의견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만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어른이 보기엔 분명 잘 못된 선택이어도 미리 단정지어 말하기 보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 든 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따라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그리움 담김 어릴적 이야기라든지 십 몇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젠 눈가에 주름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음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 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그의 아내임을 의식하며 살 듯, 그도 나의 남편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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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소통해야지

일요일에 부산에서 첫 상영을 했다.

관객과의 대화도 있었다.

 

부산 오기 전에 '이주노동자인터뷰프로젝트' 서류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러명의 감독이랑 하다 보니 이래 저래 관련된 일들을 한데 몰아 해야했다.

거기다 '계속된다' 상영회가 이틀 연속 있어서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던듯..

역시 일을 몰아서 하면 안된다. 그게 다 몸으로 나타나니까.

부산에 오자 마자 콘디션 난조..결국 감기에 걸려버렸다.

그렇다고 쉴 수도 없고 그것도 부산에서 말이다. 엉엉..

그 최절정에 오른 날...관객와의 대화를 했다.

 

 



영화 상영하는 내내 난 잡생각 이빠이.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중간에 나가 버리면 어쩌나, 소심의 극치를 보이다

결국 저 장면을 왜 저렇게 찍었을까 자책까지 했다.

미쳤다...정말...

옆에서는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볼 오정훈 선배가 웃는다.

에공....이따 무슨 질문이 나올까..

감기 때문에 땀은 삐질삐질 몸은 으시시...

맘은 삐질, 으시시 동시다발.

긴 시간이었다.

 

'계속된다'는 선전선동을 위한 영화다.

짧은 시간에 후반작업을 하면서 오직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내 분노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주투쟁을 함께 나눌 생각 밖에 없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에 대한 배려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산영화제에 선정됐다고 했을 때 당황스러웠다.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도 같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반갑기도 하고..

작업의 완성도가 떨어짐에도 상영할 수 있었던 것은

이주노동자 때문일터인데..

 

생각 밖으로..

관객과의 대화는...좋았다.

'생각 밖으로' 라니..그러니 내가 편견이 많지.

사람들은 편견 없이 다큐를 보았는데

난 사람들이 불편해 할 거라 생각했으니...

그래서 그런지 난 아무래도 넘 수동적이었다.

말도 골라 쓰고 그런 내가 웃긴다.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좋지만 그 안에 내 편견이 부끄럽다.

 

난 소심의 극치였지만

사람들은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투쟁을 지지했다.

고마운 일이다.

 

일관된 모습, 어디서도 당당한 모습.

내겐 그게 필요했던 것 같다.

이주노동자의 투쟁을 알리는 것이 목표였다면

관객과의 대화도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심했다.

반성해야지!!!!!

 

계속해서 소통해야지.

소통을 하기 위해서라도 당당해야지.

정말 진부한 이야기지만

내가 선명해야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경험이 날 더 성숙시키겠지.

그래서 다음에는 작업안에서도 배려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난 더 선명해지겠지.

 

얻은 것이 많은 시간이었다.

배려 하기 위해서

더 당당해져야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지.

방어적이지 말아야지.

자유로와야지.

여유로와야지.

그래서 소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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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신세 좋게 부산에 와있다.

온통 영화 관련된 사람들만 있는 것 같고 신기하고 신기하다.

<계속된다>는 10일 일요일에 상영한다.

표가 다 매진 됐다고 한다.

영화제 기간 중 주말에 상영하다 보니 그럴만도 한데..

영 긴장되고 걱정된다.

여러번 상영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이주노동자 투쟁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이나 관련 단체들에서

상영한 것이라 내가 전하려는 이야기를 편히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는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를 것 같아서 걱정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곰곰히 잘 생각해서

이주노동자 상황과 투쟁을 잘 알려야 하는데

내게 대중들을 설득하고 감동을 줄 힘이 있는 지 걱정이다.

다시 한번 자료들을 찾아 보고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지도 정리해 보고...

그리고 노동허가제 입법 청원 서명전도 해야 하는데

약 장수 마냥 잘 선전을 해야 할 터인데

그래서 서명도 많이 받아야 할 터인데..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부산에 온 것은 좋다.

오늘도 좋은 다큐를 보았다.

<검문소>라는 다큐였는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검문소에 대한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이야기는 여전히 핫 이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의 폭력들이 단편적으로 그려질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것도 충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폭력도 폭력이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군인이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검문소의 일상을 담으면서 그 안의 일상적인 폭력과 그러면서도 유머 등을

담고 있다. 그 안에 막막하게만 보였던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도 보인다.

그래서 반갑고 즐겁고 여유롭다.

그런 내공이 되려면 난 아주 많이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아자!!!

 

<검문소>에 대한 이야기는 담에 꼼꼼히 적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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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말의 편지

샤말씨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의 추적 단속에 걸려 연행 되고 나서 서울에서 가장 멀리 있는 여수의 외국인 보호소에 감금되었다. 샤말씨는 연행된 그날 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열흘이 지나 샤말씨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러니 대략 2004년 2월 25일 정도쯤에 쓴 편지 같다. 참고로 샤말씨는 한국말은 잘하는데 글은...소리나는 대로 쓴다. 상상력을 발동해 보시라. ------------------------------ To 비즐리 (슈아의 네팔 이름이다. 뜻은 번개) 얻에요? 잘 진해죠!! 아라요 항상 잘 진해는고 멀리 여수에서 'Namaste(네팔 인사, 안녕하세요)' 여기 저는 잘 진해고 있어요. 오늘 단식 10일째. 와...벌서 10일 됀내! 만희 배 골아요. TV애 음식 프로그램 열심히 보고 있어요. 진자 먹얼수 업어라도 눈에서 보고, 눈으로 먹어야지. 모 여기 보호소 옆에 먹얼게 마니 있어요. 장문에서 박에 보면 식당 아주 마니 있어요. 갠자나....팔리 나와서 맛이는고 만히 먹어야지....아 먹자 먹고 싶어.... 안이....라면....안이 지긴....oh no 힘들어 하....하....하... 동담이요. 아직 몸은 갠자나요. 여기 의사가 맬 맬 와서 걱정 없어요. 그리고 보호소 직은들 긇어개 남어지 안타요. 저에 대해 걱전 만히 해요. 걱정은 화성에 대요. 거기는 직은들 아주 "사가지 없어요" 파리 "박살"내야지 암래요. 아 좋은 소식 있어요!! 살 팢아서요. 그런대 거울 좀 볼 수 있어야 얼굴 얺어개 대냐 알수가 이는대...여기 보호소라서 거울 안주내. OKAY 비즐리씨 더구맨트리 잘 짖고 나중에 훌륭한 감독 대기 발에요. 알아지... 다음에 만나요. Good Bye. 샤말이... ------------------------------ 참 훌륭한 활동가였다. 아마 지금 네팔에서도 훌륭하게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운동이 힘든 것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투쟁을 하면서 남는 것은 동지이고 주체인데 그 주체가 동지가 사라져 버리니... 정신 없는 날 샤말의 편지를 다시 읽는다. 정말 훌륭한 감독이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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