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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체적으로 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엄마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시작은 어찌 되었건 대략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일터인데...나는 유독 이른 시기에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의 삶을 추적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엄마와 내 관계를 이해한 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17살에 큰딸인 엄마를 보셨다. 그러니 당연히 외할머니에게 엄마는 딸이 아닌
동반자, 혹은 동료 같은 존재 였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내릿사랑이란 것은
내가 봐도 찾아 보기 힘들다. 시간이 흘러서도 엄마는 외할머니를 외사랑했고
그 모습이 안타까워 가끔 여동생과 나는 할머니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럼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도 부모잖니 나중에 후회 안하려고 그런다'
그 말이 더 안타까워 답답하기도 짜증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내게도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했던 것 처럼 행동 할 때가
종종있다.(많이 양보한 표현) 그럴때면 그 관계의 운명적인 고리가 보여...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묘한 감정들이 부굴부굴한다.
그래도 그 관계에 대한 고찰(?)이 있었기에 좀 나은 맘이 든 것이지
그 전에는 참 참기 힘들었다.
여하튼 대략의 엄마와 나 그리고 외할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내게
일정정도 평온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아버지....
모르겠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가 더 정확하겠지.
그저 어린 나이에 부모 여의고 힘들게 친척 집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 오다
엄마를 만나 그런 대로 가족을 이루고 살 수 있었다 정도가 아버지의 역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 2.
아버지와 다큐...
이주 노동자에 대한 다큐를 한답시고 일년이 넘게 뛰어 다닌 어느날.
가족 모임이 있어서 모였는데 난 아버지 옆에 있게 되었다.
다들 무슨 이야기인지 즐겁게 하는 데 문득 난 아버지도 이주노동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웃기는 일이다. 가까운 곳에 이주노동자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그냥 슬쩍 물었다. '아빠, 아빠 사우디 아라비아에 갔을 때 노동조건은 어땠어?'
아빠는 이곳에서 일하는 것 보다 거기가 훨씬 노동 조건이 좋았다고 잔업도 없고
월급제로 일 할 수 있어서 가게 됐다고 하셨다. 18 개월 동안...
참 비교가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비하면..
난 이야기가 안 될 거 같단 생각에 묻는 것을 멈췄다.
그런데 문뜩 외롭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어렴풋이 기억에 나는 것은
아빠에게 보낸다고 하면서 엄마가 밤이면 우리 삼남매를 데려다 놓고
오래된 카세트에 학교에서 배운 노래며 아빠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에게 그것들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외롭지는 않았어요?"
허허하게 던진 나의 질문에 아빠는 사뭇 진지하고 열띠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 외로움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가슴이 탁 막혀 왔다.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아버지 입에서 한번도 나오지 않던 이야기였다.
'올커니' 했다.(나쁜년이다. 아니 미친년에 더 가깝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술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내셨는데
편지가 오기만은 기다린 밤들, 편지가 오면 그걸 가지고 가서 외등 밑에서
읽고 또 읽었던 때, 테이프는 듣고 또 듣고, 몇번 들으면 지겨워 질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멈추질 못해서 계속 듣고 또 들었던 때 이야기..
그리고 몇가지 이야기를 더 하셨던 거 같다.
그런데 어찌나 그 이야기들이 가슴에 다가오던지...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을 인터뷰를 해보면 A 상황에 A 를 물어 보면 A- 가 되던가
대게는 B가 되서 돌아 올때가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A라는 상황에 A를 이야기하는 거다.
가슴이 막막했지만
올커니 였다. 이거 구나 언어의 한계라는 게...
그러면서 속이 후련해졌다.
# 3.
가편 끝내기 삼일전
내게는 아무래도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을 재간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옹졸한 나는 언어를 넘어서 소통을
제대로 찍어 내지 못했고 그래서 언어의 장벽이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문뜩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래 아버지한테 가서 인터뷰를 해야지..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이주노동자들이 한 이야기와 겹쳐져서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을 수 있을 꺼야...
얄팍한 속샘으로 얄팍한 일정을 가지고 담날 아버지에게 갔다.
# 4.
가편 끝내기 이틀전
아버지는 열심히 사다리차를 닦으시면서
자신의 차가 같이 일하는 40대 차 중에서 두번째로 깨끗하다며 자랑을 하셨다.
그럼 첫번째는 누구냐고 물으니...겸손의 표현이라며 조급한 딸을 놀리셨다.
대략 스케치를 하고 집으로 들어와서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제서야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눈치채시고는 싫다신다.
막막하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다른 인터뷰였다면 당연히 이래 저래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어떻게 하면 이야기 하기 편하게 만들까
고민고민해서 왔을 터인데...아버지는 그저 이야기하시겠지...
촬영을 어떻게 해야 편집 할때 편할까
그런 생각만 하고 왔다.
저번에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하시더니..왜?
막막하고 당황스러워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억지로 참아 가면서 아빠에게 화를 내보기도 하고 아무런 일 아니라는 듯
허세도 부려보았지만 아빠는 왜 이야기 못하는 지 하기 싫은지 변명을 하셨다.
내용은 그게 아닌데 변명처럼 하셨다.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게 미안하기도 하고 왜 변명까지 하시는 지
답답하기도 하고...
18개월이란 짧은...내가 만난 이주노동자 누구보다도 짧은 기간 동안
아버지는 뭘 느끼셨길래....저러실까...뭔지 이야기 하지 않으셨지만
내 눈 앞에는 아버지가 느꼈을 여러가지 것들이 파노라마 처럼 지나갔다.
노동자로...먹고 살기 힘들어...마지막에나야 찾을 법한 방법을 찾았다는...
아버지의 어눌한 말 속에서...영양 실조가 걸렸는데 안되겠다란 생각으로
갔다는 아버지말 속에서 가난은 부끄러운 것임을, 그리고 가난이 아버지를
그 멀리 가족도 버리고 가게 했다는 것을 아버지는 부끄러워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창피하고 쪽팔렸다. 막막하고 심난했다.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난 그들에게 당신들은 노동자이고 거기에다 이주노동자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당당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인지...끝없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이 무엇이고 노동자라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 난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 있는 노동자, 이주노동자에게 나는 어떻게 했던가?
가족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난 가족에게 별 부채의식도 없고 안타까움도 없다.
가끔 다행이란 생각만 한다. 다들 성실히 열심히 살아주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것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에 기준 삼아서 말이다.(참 싸가지 없는 년이다)
여하튼 내가 너무 쪽팔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소외시키면서 난 살았다는
생각에 쪽팔림이 이빠이여서 목구멍에서 쓴물이 넘어 왔고 눈에서는 붉은 눈물이
넘실거리고...
# 5.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18개월이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이주노동자는 이주노동자였던 것이다.
그것이 십년이든, 일년이든, 일개월이든, 하루든 이주노동자의 경험은
인간을 참 외롭고 사회의 바닥이란 느낌을 안 가질래야 안가질 수 없는 경험인 것이다.
난 그걸 모른체 아니 알려고 하지 않으며 살아온 것에 쪽팔렸고
정말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대략의 이야기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와 혹은 그녀와 오랫동안 같이 있었다고
그 혹은 그녀를 이해 할 수 있을까?
우린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존 버거 아저씨가 한 말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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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어떤 세계의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 세계의 모습을 해체하여 자기 시각으로 재조립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행한 일정한 선택을 이해하려면, 그가 부닥쳤거나 거절당했던
다른 선택의 결핍 상태를 상상 속에서 직시해 보아야 한다.
잘 먹는 사람들은 못 먹는 사람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서툴게나마 남의 경험을 파악할 수 있으려면
그 세계를 분해해서 재조립해 봐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의 주관 속에 들어가느니 하는 얘기는 오해에 이를 여지가 있다.
남들의 주관이란 똑같은 외부적 사실들에 대해서
단순히 내부적인 태도만이 다른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 중심부에 놓여져 있는 사실들의 별자리 자체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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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만세!!!!!
# 6.
가편집 마지막 날
프롤로그에 넣을까 말까를 몇번이나 고민하다...
그래 다큐 덕분에 난 누군가를 한번 더 이해할 수 있었지 않았는가?
이 다큐를 보는 사람도 누군가를 한번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다큐는 그런게 아닌가...누군가를 이해해가는 과정.
몇번을 보고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러다 넣었다.
변명의 장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5월에 마친 이주노동자 다큐멘터리 <계속 된다>에 대한 이야기을 할검니다.
다큐에서는 다 못했던 이야기 혹은...이때는 이런 고민을 했지요.
제가 그 상황에서 느꼈던 이주의 본질...등...할 말은 많을 듯 한데..
정말 변명의 장이 될 거 같아..약간은 주저 되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제가 느낀 이주에 대한 것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해 볼까 합니다.
블러그란 것이 개인 저널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장이 아닌가 싶고
홈페이지나 그런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그런 개념에 힘을 얻어 그럼 한번 해볼까 했습니다.
중간 중간 스틸도 올릴 수 있으면 좋겠고..
이주 관련 자료들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문화에 관한 것들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겁이 나긴 하는데 그 만큼 할 일이 많이 생길 거 같아...
긴장도 되고 긴장이 되니..즐겁기도 하네요.
헤헤..
다큐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이제 5주 동안 왼쪽 다리 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한숨 소리가 윙윙 울림니다.
다들 걱정이 태산이랍니다.
근데 다큐는 즐겁고 신기해서 호기심 만발합니다.
석고붕대는 처음 하거든요.
그러니 신기할 따름이죠.
어제는 하루 종일 병원 갔다 온 거 빼고는
오직 한 것이 만화책 읽는 것 뿐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에 대한 다큐를 찍어 보고 싶단 생각도 잠시 하고요.
제목은 벌써 나왔습니다.
"Left leg!"
나의 왼발을 페러디 한 것 같지만 그건 아닙니다.
뭐랄까 자꾸 오른 발을 디딜려고 하는데
양아치 같이 생긴 의사선생이 그러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속으로 난 왼발 밖에 없어 그렇게 암시를 해야 합니다.
저의 지금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Left leg!"
기대하시라...ㅋㅋ 개봉 박두...
옆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게속 된다>의 한 장면입니다.
<여정 : 이주> 에서도 썼죠.
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인데
옆의 영상을 촬영할 때는 한참 '이주란 뭔가' 란 생각에 깊이
빠져 있을 때입니다.
멀리서 줌으로 찍어서 사실 평면적이고
저 영상의 주인공이 하늘색 옷을 입은 사람인데 줌이 이미
다 될만큼 되어 그 사람이 주인공 같지도 않고
그리고 영상의 런닝타임이 짧아 놔서 주인공이 나중에
등장하는 바람에 그 사람이 주인공인지도 모르고 지나죠.
릭샤가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는 거리에서 그는 어디로 가야하나
아주 잠깐 고민하다 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확신이 있어서 혹은 뭔가가 있어서라기 보단
그냥 어디론가 가야하니까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이주'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가야하는, 그래서 머뭇거리지만 곧
또 다시 어디론가로 가야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특히나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것들로 부터 단절됩니다.
단절은 그들의 존재 조건 중의 하나란 생각이 듭니다.
어디에도 뿌리 내릴 수 없는 존재, 그래서 계속 부유해야 하는 존재,
하지만 구성원이 되는 것을 꿈꾸는 존재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현실 앞에 서 있는 존재
단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실은 별 생각 없이 방글라데시의 길거리를 스케치해야지 하는 맘으로
어딘가로 가는 길에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촬영 당시에는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무심한 카메라도 든 사람 마음을 아는지.
가끔은 A라는 것을 촬영하려 했는데 나중에 보니 B가 촬영이 되는 겁니다.
근데 그것이 더 제가 원하던 것일 때가 있습니다.
아마 그때 카메라는 이렇게 생각했겠죠...아휴...이 사람아 이 걸 봐야지...하고
이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얻은 영상입니다.
아직 블러그가 뭔지 모르는데 우선 글을 한번 남겨 보죠.
떠밀려서 시작을 하긴 하는데
이곳에서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할 수 없을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무얼 한다는 것이 요상도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니...
저지른 다음에 잘 느끼고 경험하고 하면서
저를 확장시키면 되겠죠.
이 정도면 시작하는 자세는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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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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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번째와 셋번째가 무지 마음에 들어서 가져왔슴. 기분 나쁘면 곱배기로 일하자. 두려우면 문제속으로 뛰어들자. 오홋..좋다아~~~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