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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상영

그 동안 못 보신분들을 위해 알려드립니다.

(전 이런건 소질이 없나봐요. 어흐...쑥쓰)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많이 오셔서 이주동지들의 삶과 투쟁을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이틀 동안 상영하는 데요.

11월 17일(수) 12:30

11월 19일(금) 8:30(PM)

평일이긴 하지만 금욜 저녁은 그런 데로 편하지 않을까 싶네요.

네오님! 리버미님! 꼭 오셔요~~

장소는 서울아트시네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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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

* 이 글은 자일리톨님의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자일리톨님에게 책을 얻어 열심히 읽고 있다.

정말 열심히 읽고 있다. 다시 한번 감사해야지...감사감사^^해요.

 

워낙에 글 재주가 있는 기자이다 보니 그의 책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재미는 글 재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겨레21이 재미 없어진 이후에도 아시아 관련한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

한겨레21을 열심히 사 읽은 적이 있었다.

워낙에 한국 언론에서 아시아 관련한 기사를 찾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있긴 있으나 거대 통신사들의 글들을 인용하거나 바탕으로 해서 쓰는 그러한

기사는 생명력도 없고 신뢰도 가지 않는다. 

그런 기사들에 비하면 그의 글들은 살아 있었다. 팔닥 팔닥 살아 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아시아가 동시대를 살아 가는 존재로 다가 왔다.

그리고 그 역사와 사회구조가 한치도 한국의 그것과 어긋나지 않은 것에

감탄했다. 정말 감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세계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그저 역사책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 읽는 것 하고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아시아를 제 1 세계의 눈으로가 아닌 같은 세계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건 한국의 눈...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현대사에 전쟁을 경험한 주변부 역사를 경험한 사회에서 산 나로서는

그의 글들이 살아 있었다. 나를 둘러싼 사회를 설명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 같다.

그를 보면 자신감이 생겼다.

전쟁에 대해서 적어도 세 1 세계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겠구나...나는...

뭐 그런...자신감.

 



 

그 자신감은 전쟁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데까지 옮아갔다.

그러다 911이 터졌다. 

미국은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 다 떨었다. 정말 호들갑이다.

무고한 사람이 그렇게 어이 없이 죽어간 것이 어찌 안슬프겠냐만

미국의 지배세력(정말 이 말 안쓰고 싶었는데 이 말 밖에 딱 맞는 말이 없다)은

그 슬픔을 동원해서 빈라덴을 엄호하는 탈레반을 무너트리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야 한다고 난리를 피웠으니...그리고 그 호들갑에

전세계가 놀아났으니...그리고 911에서 죽은 사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미국이 지구 곳곳에서 일으키고 있는 전쟁에서 죽어갔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뻔뻔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911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오히려 그런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슬펐다. 그런 역사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온 세계가 광기에 휩싸인 듯 돌아가고 마치 거대한 시계가

내 머리 위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 광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무기력.

난 말끝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 난 그리고 갈거야. 난 갈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기껏 내가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땐 그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그 미친시간을 기록해야 한단 생각.

그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끝없는 무기력에서 나를 잃을 것 같았나 보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다.

말문이 막혔다.

하루 하루 전쟁관련 소식들을 찾아 읽었다.

전쟁을 흥미 위주로 다루는 기사들이 물리긴 했지만 그 안에서라도 

사실들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러다 정문태씨의 기사를 만나는 날이면

반가워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결국 미국이 들어 앉았고 탈레반은 물러났다.

이미 마음은 잡을 수 없고 좀 거창하긴 했지만

인류는 절대로 진보하지 않는단 생각으로 팽배해져 있을 무렵.

----------------(오버했다. 근데 그 당시에는 정말 맛이 가 있었다.

내가 술이라도 먹을 줄 알았다면 그때 몸 망가졌을 거다. 쉼 호흡하고..휴우.)

 

친구가 한 포털 사이트의 광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국제지원단체가 아프가니스탄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데

거기에 함께 갈 스텝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시큰둥했다.

전쟁이 나고 나서 그곳에 가서 지원을 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전쟁을 막았어야지!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보지도 않고 그저 전전긍긍한 전쟁,

현대사에 전쟁을 겪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전쟁은 어떤 것인지, 정말 그것은 어떤 것인지.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기로 맘 먹었다.

그런데 그 지원단체에서 가기 전에 유서를 쓰란다.

쓰벌.. 그래도 꼼꼼히 썼다. 내가 어찌 되면 내 카메라는 누구에게 주고

내 편집 컴퓨터는 누구에게 주고 뭐는 누구에게 주고 등등...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이 내 유서를 보더니 혀를 내두른다.

넘 현실적이라고...

 

집에는 동남아시아에 잠시 갔다 온다고만 했다.

살짝 비자가 나오면 아프가니스탄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루 파키스탄 국경지역에서 비자를 신청하고 기달려야 했으니까.

하지만 워낙에 내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 식구들은 귀 담아 듣지 않았다.

걱정한 내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유서도 쓰고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고(?) 카메라도 챙기고 출발.

 

국경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들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쉬이 접근할 수 있다던 파키스탄의 국경지역 폐샤와르로 가는 길만도

험난했다.  만 하루를 꼬박 이동해서 겨우 도착한 페샤와르.

비자를 신청을 하고 기달렸다 운이 좋았는지 비자가 나왔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것.

폐샤와르에서 카불까지 가는 국제지원단체만을 위한 비행기가 있는데

(그 비행기는 10명 정도가 겨우 탈 수 있는 작은 비행기다)

원래는 그 비행기를 이용해서 카불까지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걸 못 타게 됐다. 자세한 기억이 안난다.

왜 비행기를 안타고 육로를 택하게 됐는지.

여하튼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직도 곧곧에 무장한 사람들이 있다고도 하고 

아직도 미군이 뿌려 놓은 지뢰가 곧곧에 있다고도 하고.

눈에 안뜨이기 위해 현지인 옷을 구해 입고 다 허물어져 가는 차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네...에공..)

 

밤이 깊어 가니 각설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오늘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그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라고 하면 참 어색하다.

그래도 나이가 어리니 아이라고 해야겠지..일반적으로..그렇게 하니...

 

그 아이를 만난 건...

프로그램 중 난 배가 고파 잠시 밖에 나왔다.

그런데 한 아이가 계단에 앉아 감자 튀김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옆에 가서 안되는 아프가니스탄말로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배고픈 것을 눈치챘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보러 그 감자튀김을 먹으란다.

당황스러웠다.

국제지원단체 직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오기 전에 했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음식이든 길거리에서 파는 것은 먹지 말아라.

그 음식이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너무 깨끗해져버려서 그걸 먹으면 탈이 난단다.

그래서 다들 물도 사다 먹고 음식도 열심히 만들어 먹는다.

그걸 뭐라고 할 수 없다. 탈이 나는 걸...정말로 탈이 난다.

이미 우리들은 현대문명으로 인해 약골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난 그 말이 잠시 떠오르긴 했지만

그 말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의 당당함 때문이었다.

"먹어, 먹어"하는 그 아이의 모습.

그 아이의 모습은 여느 카불의 아이의 모습이었다.

혜어진 옷, 신발, 깨제재한 얼굴,

그럼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아이는 너무나 당당했다.

행동이 참 당당했다. 정말 시간을 올곧이 살아낸 어른 같았다.

난 그 아이의 당당함이 너무 낯설었다.

그 당당함이 카불에선 낯설었다.

(전쟁에 황폐해진 땅에서 국제지원단체들의 지원에만 기대야 하는 사람들은

속으론 아니지만 겉으로는 지원단체 사람을 보면 당당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런 상황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아니 어쩌면 세계 어디 가도 그러한 당당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난 너무 그 아이가 멋있었다.

당황스러운 순간도 잠시 난 그 친구의 당당함에 눌리고 홀려서

그 친구의 감자튀김을 나눠 먹었다.

뒤늦게 날 발견한 한국 스텝이 그런다.

어이구..애들 것을 빼앗아 먹냐.

그래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우리가 익히 알아 왔던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보호해줘야 하고 안쓰러워해야 할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어른이었다.

아니 어떤 어른보다도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나 보다 훨씬 강했다.

그 오랜 전쟁을 견뎌 왔고 지금도 그 전쟁 때문에 황폐해진 그 땅에서

살고 있으니...난 그 친구의 그 당당함이 너무 멋져서

그 친구랑 헤어지고 와서도 그 친구 때문에 가슴이 벅찼다.

 

나중에 맘이 통하는 그 학교 선생님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산다고

그 아이도 카불의 아이였다.

아침에는 일을 하고 시간 날때 마다 학교에 와서 공부한다고.

선생님도 인정했다..참 당당한 아이라고.

 

이래저래 준비해간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 날

사람들은 그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난 너무나 망서려졌지만 그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다.

난 그 친구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당당하게 사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그가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런 마음을 담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그래서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너무 창피하긴 하지만 내게 있는 약간의 돈이라고

선생님은 내 맘을 읽어 줬다. 고마웠다.

결국 선생님이랑 내린 결론은

많이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된다고 그 아이의 삶에 존중을 보내는 의미를 담을 수만 있으면

된다고 학자금 처럼...그렇게 난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다.

 

멀리서 그 아이가 보인다.

여전히 당당하다.

나 같으면 기분이 나쁠수도 있을 텐데

혹은 어려운 살림에 돈이니 반갑다고 웃을 수도 있을 텐데

그 아이는 선생님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고 받았다.

멀리서 인사를 하는데 나도 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데.

창피했다.

돈을 지워준 것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정말 창피한 것은

'전쟁을 막지 못해서' 였다.

참 오바다. 하지만 정말 그 아이 앞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권위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는 나는 앞세대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에게는 앞세대 아닌가

난 그 아이에게 뭘 했나.

전쟁도 못 막고 전쟁 때문에 그 아이를 그렇게 힘들게 해 놓고서

이제와서 그저 당당한 모습에 존경을 표한다고 헛짓을 하니...

창피했다.

창피해서 울었다.

프로그램 내내 감상주의는 아니다라고 지랄하고 다닌 내가 우니

같이 했던 스텝들이 이상하게 여겼지만

난 눈물을 멈출수 없었다.

"shame on me"

계속 되네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전쟁을 막는데 노력해야지 더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왔는데

 

난 이제 정문태씨가 기술해 놓은 아프가니스탄을 보면서

겨우 아프가니스탄을 기억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참....

 

여전히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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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11월 15일이면 명동에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지 일년이 되어 간다.

어찌 일년이 지나갔는지...참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 속에 즐거움도 슬픔도 절망도 기쁨도 있었으니

정말 그냥 일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농성단에 있는 동지들과 전화 통화를 하다 보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걱정이 된다.

농성 첫날...그 추위...

아마 날씨 보다 그 상황이 더 춥게 느껴졌던 거 같다.

그날 저녁 집회에 당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었던 홍준표 부위원장 말이

무섭게 현실이 되었다. 왈 "이 투쟁이 열흘이 될지 100일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는 2004년의 해를 이곳에서 2004년의 따뜻한 봄 햇살을 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동지들.. "

처음 그 말을 들을 때는 그냥 의례적인 이야기겠지 했는데 아니 아무런 느낌 없이 들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고 보니...그리고도 한참을 지나 일년이 되어 가는 것을 보니..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명동성당 관계자들과 실랑이 끝에 들머리에 농성 천막을 칠 때는

참 심난하기도 하고 그 현실이 싫어서 쳐다 보는 것이 싫었지만

어쪄랴 기록해야 하는 걸...난 열심히 텐트 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다 친 텐트 앞에서 이주동지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진은 왜 직냐고 했더니...이제 집이 생겼는데 기쁘지 않냐고

여럿이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텐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런 것이 살아가는 것이구나..살아가는 것은 다른 게 아니구나

어차피 현실은 팍팍하고 어디 기댈곳 없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얻어낸 것들을 공유하며 즐거울 수 있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구나 그런 생각에 나도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노숙을 하다 천막이 생기고 천막에 스치로폼을 대고

전기 장판을 마련하고 씻을 곳이 없어 찬물로 화장실에서 씻다가

천주교 인권위 도움으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게 되고

그때 마다 사람들은 기뻐했다.

다시 그런 일을 하라면 난 자신이 없다.

물론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같이 그 시간을 나눴던 나로서는

참 뭘 몰라서 그렇게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한 동지도 어떻게 이런 농성을 들어 오게 됐냐고 하니까

"이렇게 힘든줄 알았으면 안했죠" 한다.

 

투쟁은 그런 것이다.

투쟁은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지를 느끼고 어려움을 함께

겪고 나누고 해결하고 그런 것....그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난 이주동지들과 더 가까워졌고 그들을 쉬이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 기간을 통해 기쁨과 함께 실망도 있었지만...

난 그래도 여전히 이주동지들과 함께 할 것 같다.

나의 다음 주제는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우린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린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쉽게 말하는 그런 친구 말고 정말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연대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한번 열심히 고민해 봐야지.

 

그 일년이 내게 준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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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영화제에 한국영화특별전

며칠전 방송국에서 일할 때 같이 일했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문에서 내 이름을 봤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어서 한참 기사를 봤다고

그리고 맞는 것 같아 너무 반가워서 전화한다고...

얼떨결에 전화를 받은 나는 '아예...'를 반복했다.

마냥 조용했단다. 내가...헝헝...

참 신기하다. 나는 항상 비슷비슷하게 살아 온 거 같은데

다른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신기하다

 

-----------------------------

 

내년 2월 18-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영 화 축제인 제15회 페스티벌 블랙무비(Festival Black Movie,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 국영화 특별전이 개최된다고 부산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전했다.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13편. '코리언 스릴러' 섹션에서는 '올드보이' (박찬욱)와 '살인의 추억'(봉준호), '나쁜 남자'(김기덕) 등 3편이 상영되며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섹션에서는 '이중의 적'(이지영), '계속된다-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주현숙),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경순), '노동자다 아니다'(김미례), '엄마…'(류미례) 등 5편이 선보인다.

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생활의 발견', '강원도의 힘', '오! 수정', '돼지 가 우물에 빠진 날' 등 홍상수 감독의 전 작품은 회고전 섹션에서 상영된다.

(서울=연합뉴스)

 

 

 

 



부산영화제 이후로

가끔 외국에서 메일이 온다.

참 신기하다..

<계속된다>를 보내달라는 메일..

그럼 난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싶어진다

"Who are you?"

 

감독도 초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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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

오랜만에 글을 쓰니 낯설어서 무슨 글을 먼저 써야 하나 고민이 된다.

글을 안쓰는 동안 많은 일들이 생겨서 하나 하나 생길 때 마다

잘 기록해야지 하면서도 그러질 못했다.

아마도 마음이 이리 저리 날라다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또 만나다 보니 계속 흐르는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하나하나 정리해야 하는 데 지금은 그럴 힘은 없고..

곧 정리해야지...

 

그래도 지금 이렇게 글을 써야지라고 만든 것은..

한 친구...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친구였는데

어렵게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하니 오해가 생겼다. 역시 문제는 영어.

어찌할까 망설이는 데 그 친구왈

마음을 열란다. 그리고 편히 표현하면 된단다.

햐...솔직함..

솔직히 먼저 배려랍시고 했던 나의 행동들이

창피해져버렸다.

하지만 마음은 정말 편해져버렸다.

 

역시 영어든 한국말이든 솔직함은 위대하다.

솔직함에는 당당함도 있어야 하는 듯.

문제를 직시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하는 듯.

 

이제 진짜루 솔직하게 살아야지..

에공...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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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게 집회란..

* 이 글은 썩은 돼지님의 [이 신발도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지난 2월 17일 굽다가 연행된 날이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어이 없이 샤말을 길에서 납치한 것을 항의하는 집회였는데

맘 먹고 덤비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집회 침탈을 가까스로 외환카드 노동자들과

연대하러 온 학생, 활동가들이 막고 있을 때

뒤쪽에서 굽다가 연행됐다.

굽다의 사지를 잡고 50m 정도 떨어져 있는 봉고로 데려 갔다.

난 그 상황을 보고 맥이 빠졌다.

들고 있던 카메라는 지 맘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대오를 향해 큰소리로 '여기 여기' 했다.

다들 정신이 없었던 지라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었다.

멀리서 연영석 동지가 달려오면서

'이럴 필요까지 없잖아. 당신들 이럴 필요 없잖아' 한다.

너무 상식적인 말인데 멍하게 들렸다.

그 영상을 보면 순간 순간이 멈춰진 스틸 같다.

그 장면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 같은

그래서 꾹 참아보지만 그 장면은 계속 된다

현실과 희망의 괴리...

그 상황이 재연되고 그 상황을 어찌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일때면 그 장면에서 그땐 도망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치기 십상이다.

 

 

그렇게 굽다를 잃고

우리는 명동농성단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농성단에 도착해서는 다들 들머리에 앉아

넋을 놓았다.

그러다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걸 찍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오더니 그게 굽다 신발이란다.

그 소릴 듣고도 난

그 신발을 한참 찍었다.

마치 굽다가 투명인간이 되었고

신발만 내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굽다' 부르면 투명인간이 된 굽다가

'어 비즐리' 그러면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이주노동자 집회에 가면 상식 밖의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아무 일도 아닌 것 가지고 경찰이 트집 잡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다.

어느 집회를 가도 그런 식으로 하지 않을 일들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왜들 그러는지 왜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저렇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한국 사람이니까.

그런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멸시.

까놓고 이야기하면 그거였다.

별 것도 없는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면 멸시 좀 받고 살아야지

어디 집회까지 하고 지랄이야.

얼굴에 씌어 있다.

노골적일 때도 있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회할 때였는데

처음으로 이주노동자가 이주노동자 집회에 왔다.

그랬더니 하는 말 "왜 여기까지 데려 오고 그래"

한국 활동가에게 하는 말이다.

그 활동가 왈 "이주노동자가 개입니까 데려오게"

통쾌했다. 하지만 그 경찰 말 정말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으면 웃으면 되는 데 웃음도 안나온다.

 

아무 권리도 없고 언제든 잡아채서 넣어 버리면

본국으로 돌려 보낼 수도 있고 어디 하나 거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주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주노동자가 집회에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농성을 하면서 중요할 때 집회를 해야 하는 데

머뭇거리는 이주동지들을 보면 답답했다.

하지만 한번 연행되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도 어떤 방법도 없이 본국으로 추방되니

그러면서도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집회에 나가는 이주동지들을

볼 땐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한국에서의 자신의 삶이, 시간이 송두리째 강탈당할 수 있다는

그런 압력을 이겨내면서 이주동지들은 집회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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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 이 글은 schua님의 [시 한편...]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존 버거 아저씨 책을 하나 옆에 놓고 찝쩝거리고 있는데.

진짜루 찝쩝거린다.

 

아마 내가 책 읽는 방식은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한번에 파는 방식,

다른 하나는 계속 보는 방식,

 

첫번째는 읽을 때까지 거의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

대략 세미나 할 때 발제를 위해서 주로 이용하는 방식인데,

그러니까 아주 목적 의식적으로 드갈때 이다.

계속 보는 방식은 지하철 기다리면서,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 갈아 탈 때,

밥 먹을 때, 밥 먹고 잠시 한 숨 쉴 때, 자기 전, 일어 나기 전 이불 속에서,

편집 하다 랜더링 걸어 놓고, 차 마실 때, 회의 하기 전, 컴퓨터 파워 들어 오기 전,

여하튼 계속 옆에다 놓고

그냥 시간이라고 말하기 뭐한 시간이 날 때도 읽는 방식,

한 마디로 찝쩝거리는 방식..

 

지금 읽고 있는 책도 그렇다.

근데 이런 이야기하려고 한게 아닌데..

찝쩝이라는 단어에 필이 꽂혀서...쯪...

 

하여튼 지금 찝쩝거리는 책이

존 버거 아저씨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이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데...참...기네....아닌가..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책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시간, 공간,(훌륭훌륭..난 존 버거 아저씨를 넘 좋아하는 것 같다)

시간에 대한 글을 모은 것이고 당연이 공간에 대한 글..

시간에 대한 글은 주로 시간의 한때에 대한 글들이다.

시도 있고 소설도 있고 상상의 날개 한 쪽 같은 노트도 있다.

그래서 자유롭고 그래서 지루하고 그래서 집중력을 요하지만

그렇게 단련을 하면 인간의 한때들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순간을 영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조급증 같은 것이 있어서 순간에 영원을 부여하고 그러다

순간도 놓친 적이 많다. 내 20대의 대부분은 그랬던 거 같다.

그렇게 많이 놓친 순간을 오늘 하나 찾았다.

 

요만때, 일년 중 요만때,

날씨도 요만때,

가로등이 켜지려고 스스르 준비하고

아직 간판들 불은 다 안 켜지고

세상은 회색인듯 갈색인듯

잡힐 듯 말 듯, 가물 거리지만 그래서 아늑하고 따뜻한 한때

 

10대때 주로 이런 때이면 큰 공터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가 좋아서 한동안 매일 매일 그렇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참 외로웠던 거 같다. 그런데 그 외로움이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했던 거 같다.

너무 외로웠다. 너무 외로워서 멍해졌던 거 같다.

얼어 붙는 것 처럼.

 

그런데 오늘 만난 '그때'는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아니 외로운 것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따뜻하고 산뜻하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삶의 한 단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한때와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나이를 먹나 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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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하다보면....

마녀가 될 때가 있다. 정말 성질이 있는 대로 나고. 심지어는 그 성질을 이기지 못해 방바닥을 구를 때도 있다. 정말로 구른다...허이허이.. 그럴때면 내가 이러다 제명대로 못 살지 싶다. 그런데...지금이 그렇다. 정말 환장하겠다. 다음주 말에 상영이 잡혀 있는 데 가편도 안나왔다. 연출가 하나 하나 얼굴이 떠오르면서 미워졌다가 안쓰러워졌다 한다. 오락가락가락오락.... 장마철 하늘도 아닌데... 그래도 해야지. 그 여름을 열심히 산 증거들이 아닌가. 그렇게 열심히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나누지 않았나. 그런데 이렇게 막판에 일에 눌려서 그 땀들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면 안돼지. 그렇지. 그렇지. 그러니... 얼른.... 마음 다 잡고 다시 해야지. 아... 내가 왜 다큐작업을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유일한 때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것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걸.. 마리오형이랑 한 이야기를 다시 되세기며.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하는 거라고. 푸하~~~~ 그래 잘났다! 다시 편집 시작!!!!!!! 이쯤이야!!!!!!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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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

가을이긴 가을인가 보네요. 시가 땡기는 것을 보니. 우연히 존버거 책을 보다가 시 한편이 팍 와서 올립니다. 보통은 봄에 시가 땡기는데 이번에는 가을에 땡기네요. 아마 할 일이 태산이어서 인가 봅니다. 할 일이 태산인데 일은 하기 싫고...에공.. 여하튼 시 한편... 제목은 따로 없고 "한때"라는 챕터 안에 있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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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증을 보여주기 위해, 돈을 지불하려고, 혹은 열차 시간표를 확인하느라고 지갑을 열 때마다, 나는 당신 얼굴을 본다. 꽃가루 한 점은 산맥보다 더 오래 되었고, 그 산맥들 속의 아라비 산은 아직 젊다. 아라비 산이 나이를 먹어 언덕으로 변할 때에도 꽃의 씨앗은 뿌려질 것이니, 가슴속 지갑 안에 들어 있는 꽃 한 송이, 우리로 하여금 산맥보다 더 오래 살게 하는 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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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에서 얻은 것^^

영화제라는 것이 자고로 그 동안 접하지 못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일 것이다. 안그래도 기억에 남는 영화를 몇 편 본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덕목들을 발견한 다큐도 있고 거장의 영화에서는 그 안의 권위를 걷어 내고 보면 왜 꼭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을까 하는 자유로운 의문들도 생기도, 전통적인 다큐에서는 오랜기간 쌓여온 힘이 느껴져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혹은 살아 남은 자가 승리한다는 묘한 희열도 느낀 것 같다. 부산영화제에서 내가 느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책임감이란 것이다. 다큐를 만들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뭔가 바뀌기를 기대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엄청 개인적인 인간이다. 내가 뭘 하든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 된다고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듯 하다. 그런데...책임감...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을 느꼈다. 한 다큐 감독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30이 되고 이제 나이 먹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그게 너무 싫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땐 그 이야기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아니 어쩜 그건 그냥 액면 그대도 나이 먹어 가는 것이 싫다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중에 느낀 것은 나이 들어 가면서 느끼는 혹은 나이와는 상관 없이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단 뜻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쩜 사람들은 대부분 대략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철 없이 살아서 그런 것에 대한 대략의 것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산의 그 공기는 내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아직 그것이 나에게 무엇인지 나에게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어떤 양태로 존재하는 지 모르겠지만 연구해봐야 할 것은 확실하다. 연구해봐야겠다. 책임감이란 뭔지. 혹은 내가 무엇에 책임감을 느끼는지. 어떤 것이 책임감이란 것인지. 등.. 어려운 연구가 될 것 같지만..고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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