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얼거리다

from 돌속에갇힌말 2005/01/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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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프리챌커뮤니티 다큐나루에 썼던 제작일지 중에서

 

 

1. 류미례가 나를 <엄마...> 촬영스텝으로 등록해서 아이디카드를 장만해줬는데도' 

    부산영화제에 못갔다

    서울을 맘대로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그 영화에서 내가 촬영한 장면은 스텝 스크롤이 올라가는 맨 마지막 장면에

    단 한 컷만이, 그것도 스틸로 들어가 있을 뿐이며

    하은이가 날마다 가는 놀이방에서 단 하루를 찍었을 뿐인데도

    번번이 스텝이라고 챙겨주는 게 고맙고 늘 미안하다

 

 

2. 이사를 앞두고 하드 디스크가 망가졌을 때

    과장 안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 디스크는 자막 작업을 위해서

    그리고 <돌 속에 갇힌 말>과 <금禁>마스터를 저장해두기 위해

    직접 용산에 가서 구입한 것인데

    편집본 프로젝트 파일들이 저장된 다른 드라이브에서 사고가 잦아서

    그것을 그대로 본체에 설치해서 사용하던 중이었다

    내 맘대로 설정을 건드리거나 함부로 만지지도 않았고

    컴을 잘 다루는 사람이 와서 점퍼 위치까지 세심하게 관찰해가며 달아준 것이다

    그래서 안심하고 수정을 했고

    '이제사 마스터를 출력하는구나'하고 

    export tape을 클릭하자 마자...사라졌다

    J드라이브였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모든 폴더들이 사라졌다

    표용수씨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거래하는 데이타복구업체를 소개해줬고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전문가들도 원인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했다

    열심히 해보기는 하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들에게 그 물건을 넘겨주고

    G와 H에 남아있던 최근 프로젝트 파일들을 끌어모으다가 이사를 했다

    오늘 그 하드디스크를 받았는데 마스터 파일의 절반만 겨우 살아났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말했다

    당신이 뭘 잘못한 게 아닙니다, 기계가 잘못된 것도 아니구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운이 나쁘다, 운이 나쁘다...그 말도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석 달동안 운이 나쁠 수가 있을까

 

3.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잠시 마음이라도 달래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냉정해지는 사람도 있다

    폭염 때문에 감기몸살때문에

    혹은 장염으로 체력저하로 밥을 못먹고 잠을 못잘 때

    상한 내 얼굴을 측은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련하게 일한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에 그 이름들을 다 새겨넣었다

    어쨌건 사람공부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니까

    나는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다

    바보다

 

3. 새로 이사한 집은 사무실 짐과 내가 살던 집의 짐이 다 들어가지지가 않아서

   책장과 소파와 기타등등 많은 짐을 버려야 했다

   가져가기로 한 사람들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재활용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그들도 휙 둘러보더니 그냥 가버렸다

   충분히 5년은 더 쓸 수 있는데...

   동사무소에 가서 폐기물신청을 했더니 그 담당자가 그랬다

   요새는 물건이 하도 많이 나와서

   재활용센터에서도 값나가는 거 아니면 싣고 가지도 않아요

   우리도 이런 물건들 처리하느라 아주 골이 아픕니다

    언제나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가보다

    씁쓸하다

    스티커를 부착해놨는데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인지

    아니면 간밤에 비바람이 불면서 그 스티커에 적은 물품 목록이 지워진 것인지

    다른 것들은 치운 모양인데 소파가 건물입구에 덩그렇게 남아있다

    도로 가지고 들어갈까? 쳐다볼 때 마다 답답하다

    저 소파에서 여름을 세 번 났는데...밤샐 때 마다 나를 편안하게 쉬게 해준 친구였는데...

    처음 그것이 합정동 사무실에 들어오던 날 정말 기분좋았었는데...

    아쉽지만 하는 수 없다

 

4. 새 공간은 좋다

    따뜻하고 밝다

    사실...집을 옮길 때 마다 그 집이 마음에 든다

    집 보는 눈도 별로인데 그저 마음을 편하게 먹어서 그런걸까?

 

5.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는걸까

   사람이 무섭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다큐멘터리도 일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누구보다 심약하면서 겉으로만 야멸찬 듯 행동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이끌고가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2005/01/31 16:35 2005/01/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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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성장에서 영화상영하기

혹은

영화로 농성에 참여하기

혹은

현장으로 찾아가는 독립영화 시도해보기

..라는 작전은 일단 실패했다

 

 

 



(흑...계속보기, 기능을 사용하려다가 뒷부분을 날렸어요...

 기억나는 대로 다시 써보자면...)

 

12월 28일 낮

국보법철폐 국민연대의 한 분과 통화할 때

29일 수요일 저녁으로 예정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독립영화협회 배급담당자와 통화할 때

-날씨와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

-국회 상황의 변동으로 인한 농성현장 분위기의 변화

-외부에서 시위를 조직하거나 다른 투쟁을 조직해야하는 상황

이라서 상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죄송했다

이 추위에 밥을 굶어가며 힘든 농성을 이어가는 그분들께

혹시 조금이라도 누가 되거나 폐가 된 것은 아닐지

동참하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건 아닌지

처음에 상영의사를 밝히면서도

억지로 농성단을 어떤 장소에 모이게 하거나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치게 된다면 안하는 게 좋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었다

어쩌면 그렇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아쉬웠다

이번 상영은 '영화를 본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랄 수 없었고

모일 만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단 한 사람이 보게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복잡한 상황을 잊고 화면에 집중하면서

서로 공감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천막안에 모니터를 설치한다던가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쨋건

이번에는 너무 급하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상황에 대처할 별다른 경험도 없이 시작했던 일이니

상영이 불가능해진 것이 당연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에는

찾아가는 독립영화, 현장에 동참하는 상영회를 이루고 싶다

극장에서

영화제에서

온라인에서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누군가가 찾아와서 봐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볼 수 있고

보고 싶어하고

같이 봐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일하는 곳이나 농성하는 곳이나 공부하는 곳이나 쉬는 곳으로

찾아가서 상영하는 독립영화의 사례를 많이 남기고 싶다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여럿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립영화는

그래야 한다고 믿으니까


2005/01/05 12:50 2005/01/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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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성장에서 영화를 상영하자, 는 생각은

얼핏 떠오른 아이디어였지만

막상 전화를 하고

여기 저기 연락을 시작하면서

생각에 살이 붙었다

 

 

 


내 영화가 상영되지 않아도 좋았다

농성하는 분들이 보고싶은 영화를 꼽아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립영화가 지금껏

현장에 찾아가서

농성이나 파업에 참여하는 상영형식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궁금해졌다

 

개인의 노력은 여러 번 있었다

김미례 감독의 '노동자다 아니다'도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상영되었고

장애인 이동권을 다룬 영화 '버스를 타자'도 어느 농성장에서 상영되었다고 들었다

주현숙 감독의 '계속된다'도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말하는 여러 장소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나 독립영화협회의 적극적인 의지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제가 아닌 기간에

여러 영화를 시리즈로 상영하는 일,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이 아닌 곳에서

여러 감독을 참여하도록 권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춥고

상영조건이 열악한 농성장에서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관객들이 모이기 힘들다고 해도

찾아가서 영화를 틀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단 하루라도 현장에 동참하는 일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삶이보이는창에서 소개해준 김경란이라는 분과

처음 통화를 할 때는 서로 고마워했었다

그 후에

국보법철폐 국민연대의 김재윤이라는 분

독립영화협회의 김화범이라는 분과 통화하면서

성탄절을 전후한 주말이나

연말 즈음으로 날짜까지 좁혀가다가

'죄송하지만 여러 여건상 이번에는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농성장 외부에서 집회를 조직해야하는 일정이 계속 잡혀서

사람들을 모아서 상영을 하기가 힘들어졌고

아무래도 그 곳에서 영화를 튼다는 건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방법이 없지는 않은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걸까

묘한 합의 후에 막후 신경전과 여론조작에 열을 올리는

여당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분위기를 흐려놓았기 때문일까

알 수 없다

 

농성의 취지와 의지가 부디 관철되기를

농성에 참여한 분들이 더 이상 건강이 악화되지 않기를

 

 

2005/01/03 16:49 2005/01/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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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날씨에

매스미디어에선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대한 공익광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밥을 굶어가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가족과 따뜻한 집에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간에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그리고 각종 정치적 사안들로 인해

사적인 모든 것을 유보하고 거리에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 출장과 상영회 일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여의도를 지나치면서도 마음만 아팠지 함께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 전화를 했다가 문득

거기서 영화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각종 영상물을 제작해서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거나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우리로서는

지금 당장 단식에 참여하기는 힘들어도

뜻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방금 독립영화협회 회원인 한 사람과 통화를 해서

여의도 농성현장에서 영화상영을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인권탄압에 관계된 영화는 많다

동참할 감독들도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늘 우리들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해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단 며칠 만이라도

같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마음 훈훈해지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독립영화인의 농성참여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영화틀기

출발!

 

2004/12/23 12:07 2004/12/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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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여성문화이론연구소 자료실

http://www.gofeminist.org/Board/Content.asp?TxtCode=23271&Page=1&BoardCode=Board002

 

 

노라 옥자 켈러 <종군위안부 ( 1997)>

 

 

 

전지구적인 제국주의와 가부장적 식민압제 및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의 물결이 거셌고 거센 20세기, "아무런 이름이 없던" ("no name") "제3세계" 여성의 원혼들이 태평양을 건너와 딸들을 홀리고 그 딸들의 독자를 홀린다. <여성전사>의 작가 맥신 홍 킹스턴(이 사람은 확실히 대단한 작가다. 적어도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서는 비포/애프터 킹스턴이라 할 만허니)이 "이름을 빼앗긴 채 자살해 간" 고모의 원혼이 떠돌지 못하게 글쓰기로 고정하여 달랬던 것처럼, <종군위안부>의 작가 노라 옥자 켈러도 떠도는 여성원혼들을 "고이" 떠돌게 냅두지 않는다.

킹스턴이 자기 고모의 혼령에 홀렸던 것처럼, 켈러도 어느날 하와이에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증언하러온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에 "홀린다." 글쓰기를 통해서 켈러도 한판 "굿"을 벌이며 비체화된 여성들의 원혼을 "달랜다." 이 텍스트를 "쉽사리" 큰 단어들로만 이야기한다면,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여성억압(일본군 성노예는 한마디로 저 유태인들이 맨날 산업화하고 기억하려고 열라 애쓰는 사건의 용어를 빌어쓰자면, "성적인 홀로코스트"라 할 수 있겠지)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겠지만, 참으로 복잡한 것이라 차라리 봉합하고자픈 욕구가 솓구쳐 온다.

어쩌면, 아니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젠더화된 억압(억압이란 기본적으로 젠더 억압이며 중층결정의 양식 또한 젠더화 양식이다) 하에서, 여성들에게 글쓰기는 한 판의 "굿"이자 (약한자의 강한?) 무기이며, 그러한 것으로서 글쓰기는 자신과 타자들을 치유하는(이것땜시 모한티는 벨훅스와 트린을 열라 까지만. 여성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가정을 의문시하지 않는 본질주의적이라고) 샤먼적 힘이 있는 것이라는 진부한 진리를 <종군위안부> 역시 예증한다. 켈러의 책은 여성의 몸이 가장 끔찍한 류의 비체가 되는 방식이 섹슈얼리티를 통해서라는 점 역시 드러낸다. 오, 휴/우매니티여, 섹슈얼리티여!

(참고루, 이 비체, 크리스테바가 말한 비체란 초국가적이고 다문화적이며 문화사 자체가 가장 강력한 설명틀이 되는 우리 시대의 종속화 양식이다. 미국 안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렇다. "법적으로는 느그들도 "우리" 국민이긴 헌데 문화적으론 외국인이여/'우리 것이 아니여'(alien)"함시롱 싸가지 없이 하이픈을 붙여 한국곕네 아프리카곕네 하는 하이픈화의 정치학. 이것은 또한 포용하면서도 배제하는 포용/억제(containment)의 술수이기도 하다. )

자원했던 (자원할 때도 너부리는 이미 후회할 것을 예견했었다......아아! 너부리의 욕망은 언제나 절제를 모르고 그리하야 언제나 후회와 부담을 무릅쓰는고야 마는) 발제 준비를 해야지만, 이 켈러의 "허구적" 이야기에 왜 그리 불편시련 것일까.... 마고약도 아닌 이 책은 가슴의 살을 후벼파고 도려낸다. 20세기 판 말뜻 그대로의 하트 오브 다크니스.

이 책은 픽션이고 문학적 재현일 뿐이다...하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의 역사! 진실!은 그저 (일본 정부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되풀이했던 대로) "과거지사"가 아니다. 이 문제는 전지구화의 압력하에서 점증적으로 악화된 채 갱신되고 있는 (초국가적) 민족주의라는 현금의 문제와도 복잡하게 교직되어 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문학적 재현인 이 소설은 허구와 역사의 경계를 흐뜨러 뜨리고 우리에게 "불편"하라고 강요한다. 또한 이런 것으로서 이 책은 재현 일반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또한 내가 왜 한국계 여성 미국인 문학 작품을 학위 논문에 한 장이나 그 이상을 할애하고자 하는 개인적 문제도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20여개의 한국 페미니스트 조직이 만든 정대협의 줄기찬 운동/교섭으로 90년대 들어서야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그나마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인식에 들어왔다. "진지한" 켈러의 이 책도 분명 이런 물결에 편승, 가세, 공헌했겠지만, 조지고 부시는 텍사스 주의 한 대학원 수업에서 읽자니 참으로 묘한 심정이다. 어찌보면 지정학적으로 구체적인 이 문제를 우리시대의 미국의 생활, 문화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런 일도 있었구나....쯧쯧...." 역사의 참상과 차이의 문제들이 대학 제도를 통해서 (이내 또 시들어갈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담론적으로 "소비"되고, 출판 시장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소비"되는 이 미국에서, 텍스트 곳곳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적 기호들이 지뢰처럼 박혀있고 한국/동북아 주체들에게 더욱 더 반향과 공명이 많을 이 텍스트에 문학 연구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어떤 참신한 언어와 새로와보이는 형식에 담아 "저들"과 나 자신을 위협할 것인가?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보편주의적 글로발 페미니즘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글로발 페미니즘의 우산 하에서라야 읽혀지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너부리는 "잘놀고"(playful), 해러웨이가 말한 "아이러니"의 불경을 일삼으며 재미를 좋아하고(fun-loving), 때로 탈젠더로 가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

그란데, 이 책은 이런 너부리의 발목을 잡는다.

20세기 후반들어 페미니즘은 지역, 국적, 인종, 성적 지향, 계급, 문화 등의 갈래를 따라 핵분열을 일으켜 왔다. 포스트구조주의가 차이들의 복권에 상당히 이론적 힘을 실어준 것 같지만 (철학자들은 항상 세상이 (자기들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고 믿는 바보들이다), 실상 이런 차이들의 핵분열은 차이들을 위계적인 사유에서 절단탈구시켜 다르게 구성배열하고자 하는 다른 삶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힘을 가동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켈러가 어머니-딸을 중심으로 소설을 썼던 것은 아마도 이런 차이의 핵분열(켈러는 이 핵분열의 가장 비체적인 뇌관을 재현한다)을 어머니로부터 딸들에게 전해지는 여성들 공동의 자산, 유산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으며, 그 역할을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위임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주 진부한 또 하나의 페미니즘 상식이 나온다: 재현이란 (알고보면 사이비인) 보편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sympathy)이자 "감정이입"(empathy)이니.

켈러의 아키코/순효 앞에서, 페미니즘 한다는 우리 역시, 또한 "잘들 놀고있는" 미국판 포스트모던 페미니즘들이 여성 섹슈얼리티, 몸을 살아숨쉬는 여성들의 피와 살, 육체적 삶의 현실에서 따로 떼어 관념적인/담론상의 차이의 항으로 만드는 작태에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베카는 알게 된다. 자기 엄마가 겪었던 문제는 봉합해서는 안 되는 점이라는 점을. 순효의 녹음테잎은 위계적으로 봉합해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자 하는 (알고보니) 주체인 여성의 욕망과 삶이 그 위계적 봉합선을 넘어서고 튿어낸다는 것, 그리하야 딸들에게 봉합하지 말고 튿어내어 리좀적 주체가 되라는, 살아서는 주체됨을 부정당했지만 증언으로 주체임을 증명한 바로 그 산 주체, 허구상 "우리"를 끊임없이 "홀려대는" 유목적 원혼의 절규였던가. . .

이렇게 쓰고 나도,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왜 일본군성노예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역사를 다시 기억으로부터/증언으로부터 불러내어 쓰는가? 그리하여 왜 이토록 나를 불편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가?

차학경은 <딕테>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지금 그 모든 것을 부활시키냐고? 과거로부터. 역사를, 그 오래된 상처를. 오래된 감정을 또다시 말이다. 똑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사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지금 그것을 명명함으로써 다시는 망각 속에 잊혀진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라고 (원서, 33).

"위안부"질 당하느라 생긴 몸, 그리하야 정신의 상처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데, 트라우마란 일종의 "정신은 죽었으나 몸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하게되는 그런 패턴"을 지닌 행동을 하게 된다. (혹자는 이것이 전일본군성노예였던 할머니들이 무당이 된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아까 앞서 말한 종속화의 양식으로서 비체를 일본군 성노예라는 "성적 홀로코스트"의 경우와 연결해보자면, 이 비체를 문학적으로 재현했을때 사회적 침묵시키기(치욕과 민족의 자존심! 말끝을 흐리며 하는 이제와서...라는 레토릭에 숨은 끈질기게스리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여기서 여성은 나라요 민족이다)의 욕망)를 초과하는 "말하고자 하는 욕망"(서발턴은 정말로 말할 수 있고 말한다! 보라, 저 할머니들의 증언을! 매주 교회가듯 꼬박꼬박 참여하시는 수요집회를 보라! 단지 우리가 듣지 않고자 무의식적인 척함시롱 싸가지 없이 고의적으로 안들으려 할뿐....)은 때로 유령적 형상으로 드러낸다. 왜 유령이냐고? 문학적 재현상 바로 그 초과/잉여를, 그 모든 구속과 억제, 억압을 뛰어넘는, <주체>로서의 행동*교섭능력과 욕망, 요구를 어떤 합리성과 정확성으로 재현한단 말인가? (<서발턴연구회>처럼? 글쎄....)

"배제와 비가시화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유령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 (7) . . . 이 이야기들은 재현상의 실수를 고치지도 아니하며, 기억이(즉 역사가) 우선적으로 생산되었던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미래를 위해서 대항기억을 향해간다"(Avery Gordon 22)

트라우마로 남는 몸, 그리하여 정신(pschy)의 상흔들은 유령처럼 출몰하는데, 이 때의 유령은 행동*교섭능력, 욕망을 지니고서 무언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유령들이다. 켈러가 <종군위안부>에서 불러들이는 일본군 성노예의 유령적 출몰에서 우리는 이 출몰하는 유령들이 "피해자"였던 성노예의 지위에 의해서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목도한다. 비유적으로 죽은 아키코/순효는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온 세상에 대고 소리질러 고발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신의 "훼손된" 몸과 정신을 긍정하고자 하는 행동*교섭능력을 가진 유령적 인물이다. 유령은 실제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며(not actual but real) 물질적 효과를 불러온다.

이 살아있는 유령들에게는 공식 역사가 숨기는 아카이브가 있는데, 트린 민하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초의 아카이브 혹은 도서관은 여성들의 기억이었다" (Woman Native Other, 112)

 

----------------너부리

 

 

 

2004/12/22 21:05 2004/12/2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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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수요일

딴지 편집국
 

12월 16일. 이 날이 무슨 날일까?

총수 생일도 아니고(비슷하긴 하다) 편짱이 첫 빠굴 뛴 날도 아니며 뒤져보면 이 날이 기념일인 사람은 부지기수일테지만 딴지에서 공지하는만큼 뭔가 전국민적인 버라이어티 기념일은 틀림없겠다.

 

힌트 하나 주까? 전재산 29만원의 채권제일주의자께서 워낙 위대(胃大)한 보통사람이라서 집안에 사과상자가 가득한 No통에게 구국의 결단을 하사하시어... 갖은 부정으로 친구 하나 대통령 만든 날 되시겠다.

 

감히 부정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사건. 구로구 주민의 투표의사와는 무관하게 쌩!뚱!맞!은 투표함이 몰래 옮겨지다가 딱 걸려서 온동네 사람들이 대략 1만명 이상 모여서 시위를 하던 사건. 일명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시위농성사건'이 있던 날이다. 명백한 부정의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웠건만 결국 살인마를 대통령이 되고 그 위대한 사과상자의 시대를 열어제꼈던 날.

 

구로구청이 난리가 났는데도 일체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만큼 극심한 보도통제 속에서도 제대로 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뭉쳤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잡아 가두었던 폭력. 폭력. 폭력. 그러나 비단 그 폭력은 몽둥이 뿐이었을까?

여기에 의문을 던진 인물, 그 진압의 현장에 있었던 당시 19세의 소녀는 1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사건. 애써 기억을 잊으려 노력하던 사람들을 찾아찾아 절대로 잊지 말라고, 그 억압과 폭력과 내분을 기억하라고 전달하고 있다.

 

무릇, 역사의 현장에서는 숙연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숙연해지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야... 원래는 12월 16일에 맞춰서 구로항쟁의 기사를 실으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사보다도 시청각 교재가 될 작품하나 소개해올리는 코-너 되시겠다.

 

12월 21일 구로구민회관 오후 7시

 

무려 540석! 자리없다 걱정할리 없으나 무료인 관계로 연말 특수가 예상됨. 게다가 선착순 00명에게는 멋지구리한 포스터를 말아준다. 그리고 궁금한거 있으면 감독한테 직접 물어볼 시간도 있다.

 

혹여 80년대 폭력에 희생된 사람이라면 0순위 강추! 폭력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1순위 강추! 폭력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설레발이 길었다. 일단 예고편 함 때려 보신담에 내일 16일 퇴근길에 무료로다가 역사의 기억을 더듬는 경험들 함 해보시라. 이하는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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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본문에서 빠트린 상영 주최단체

 

      진보생활문예지 삶이보이는 창

      구로시민센터

      구로건강복지센터

       서울남부 민중연대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회

       민주노동당 구로갑.을.금천 지구위원회

 

     

2004/12/15 22:48 2004/12/1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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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상영
- 주최 :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당 문화예술위원회(준)
- 일시 : 2004년 12월 13일(월) 19시
- 장소 : 근로자복지회관 2층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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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16일
6월 항쟁 이후 직선제를 실시했던 대통령 선거 당일
서울 구로구청에서 부정투표함 밀반출 사건이 벌어진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70분 / 다큐 / 기획.연출.제작: 나루)

2004 인디다큐 페스티발 국내신작전 상영작
2004 수원인권영화제 상영작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일 오전 11시 20분
서울시 구로을구 투표소에서 의문의 트럭 한 대가 발견된다
선거관리위원의 동행없이 투표함을 옮기려던 타이탄 트럭,
거기에 실린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
그 투표함을 가리고 있던 종이박스들...
노태우 당선을 위한 부정선거 사례가
이미 전국적으로 발견되던 그 때
인근 주민과 학생들, 공정선거감시단, 평민당 당원들이 모여
사흘 밤낮으로 항의농성을 벌인다
이 영화는 그 날 그 사건을 복원한다
자료화면과 인터뷰를 통해
17년만에 되살아난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 사건'
그리고
그 사흘간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씁쓸한 증언들 사이로
농성에 참여했던 감독의 기억도 담겨있다
감독은 또 한 사람의 생존자로서
이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했으며
이제 그 기억에서 자유로와지기를 바란다

80년대를 상징하는 '돌'
그 속에 갇혀버린 우리들의 '말'
<돌 속에 갇힌 말>은
지금, 당신에게도
머리와 가슴과 온몸이 기억하고 있으나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은 없었냐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냐고
진지하게 묻고 있다

2004/12/06 20:44 2004/12/06 20:44

사건일지-3

from 돌속에갇힌말 2004/12/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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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8-9페이지)

 

*87년 12월 18일

 

00:00

서울시장 염보현 진압예고 전화. 위기설 퍼짐. 경찰은 부정투표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농성해산만 요구.

 

00:35

시민, 학생 약 2,000여명 "부정선거 규탄대회" 계속 진행.

 

00:40

소규모 국지전에서 2명의 부상자 발생.

 

01:50

"우리는 왜 농성투쟁을 감행하는가"라는 성명서 채택. 불법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전·노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최후까지 농성투쟁을 계속한다는 내용을 결의.

경찰은 전경차 약 70여개 배치.

 

02:50

선관위, 구로갑구의 개표를 을구에서 한다고 발표.

 

05:00

백골단, 경찰서에서 구청쪽으로 자리 이동.

 

06:30

구청 오른쪽 첫 방어선을 시민, 학생(우리측) 불지름.

 

06:35

전투경찰, 백골단이 지랄탄을 난사하며 전면 공격 개시

 

06:45

구청 밖의 규찰대 저지선 붕괴. 구청 청사 안까지 경찰병력 난입하기 시작. 투쟁 동지들 옥상과 지하실로 퍼짐. 순식간에 5층까지 진압당함. 시민, 학생들 연행되기 시작.

 

07:00

고척 1, 2동, 개봉 2동의 부정투표함 탈취당하여 을구 개표소로 이동됨.

 

07:20

쇠파이프를 든 백골단 옥상 1차 진입 기도. 옥상투쟁 동지들 필사의 각오로 투쟁을 전개하여 격퇴해 버림.

 

07:40

소방차, 앰블런스 집결, 전경들 구청 앞 사거리 등 주변 차단.

 

07:50

구청 밖에 운집한 시민들, 전투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1.5km 밖으로 밀려남. 투표함 옥상으로 이송. 강제진압시 분신하겠다고 함.

 

08:00

고가사다리차 3대 동원, 투신대비용 매트리스 설치. 옥상에서 100여명의 동지들 계속 투쟁. 옥상과 그 아래층에 화재 발생.

(당시 옥상에 있던 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창고에서 신나가 발견되었고 이를 이용,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에 불을 질러 백골단의 진입을 막아보려 했다. 다른 분의 증언으로는 농성가담자들이 직접 방화하는 것은 목격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화재발생에 관한 동기와 목격담이 엇갈리고 있다.)

 

08:15

옥상 계속 화재. 옥상의 투쟁동지들 독재타도 구호, 애국가 제창 소형 태극기 흔듬. 바깥 시민들 이에 호응하여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외치자 경찰, 무차별 최루탄 난사. 등교하던 고교생에게도 무차별 구타.

 

08:17

구청 밖의 시민들에게 최루탄, 지랄탄 난사하여 대부분 해산 당하거나 퇴각. 고가사다리차 동원하여 옥상에 물뿌리며 진압시작. 옥상 투쟁동지들 중 수명 투신.

(투신한 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투신을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08:35

옥상에서 계속 투쟁 중. 투표함을 안고 분신하겠다고 함.

 

08:40

옥상에서 기왓장 계속 투석, 거리 주민들 '최루탄을 쏘지 마라' 등으로 호응.

 

08:44

잘 훈련된 백골단, 옥상에서 살인적 진압 시작, 직격탄 발사, 쇠파이프 등으로 무차별 구타. 투쟁동지들 최후까지 기왓장을 던지며 항쟁하다가 모두 진압당함. 항거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도 무차별 구타 후 연행함.

(조원봉씨의 증언에 의하면 직격탄에 맞아 부상당한 학생이 있었으며, 이 학생을

 후송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본인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여

 병원으로 후송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04/12/03 08:41 2004/12/03 08:41

사건일지-2

from 돌속에갇힌말 2004/12/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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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8페이지)

 

*87년 12월 17일

 

12:40

투표함을 밀반출하려 했던 사람을 붙잡아 공개 기자회견 가짐.

 

17:30

16일 밤 구청에서 농성을 하고 나온 구로지역 주민(반장) 허기수씨(41)가 부정선거에 항의 분신 기도,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나 중태라는 소식 들어옴.

 

18:00

문익환 민통련 의장 이하 간부들 농성현장에 와서 지지 격려.

 

20:00

시민 약 6,000여명이 운집한 상태에서 "선거무효화를 위한 서울지역 투쟁위원회" 발족. 이번 선거를 원천적 부정선거라 규정하고 선거무효화와 독재타도를 위해 범국민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을 결의.

 

23:00

구청 앞 4거리와 구로경찰서 앞의 바리케이트를 중심으로 간헐적인 접전을 벌임.

2004/12/03 08:39 2004/12/03 08:39

사건일지-1

from 돌속에갇힌말 2004/12/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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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수록하는 사건일지는 1988년 4월 20일 발간한 <제5.5공화국과 구로항쟁>이라는 책을 기초로 하였으며, 인터뷰 결과 엇갈리는 부분이나 보완된 점은 괄호안에 기록한다. 이 책은 구로항쟁 이후 결성된 '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 항의투쟁중상자양원태후원회''구로구청부정투표함밀반출항의투쟁피해자가족협의회''구로구청부정선거항의투쟁동지회'등의 모임에서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자료집 본문 첫 내용, 7-8페이지)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밀반출 항의투쟁 일지

 

11:20

 

"부정투표함이 구로구청 현관앞에서 반출되고 있다"고 어느 아주머니께서 제보.

(당시 여의도 평민당사로 여러 차례 전화제보가 왔었다.)

당시 평민당원이던 박영환 외 수명이 구로구청으로 달려가 이미 두 대가 도주한 상태에서 서울 7다 7870 봉고트럭을 발견. 시민, 공정선거감시단원들 4~50여명이 합세하여 부정투표함 반출을 저지.

(구청앞에서 줄을 지어 투표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세하였다,)

 

13:30

 

구청 3층 사무실에서 투표위조 여부를 조사하던 시민 학생들에 의해 투표함 1개, 투표용지 1506개, 붓두껍 60개, 인주 70개, 손장갑 6켤레 발견

(박영환씨 등 몇 몇 증언에 의하면 투표함이 발견된 차량안에서 투표용지와 장갑 등이 발견되었다고 함)

 

16:00

 

공정선거감시인단, 평민당, 민주당, 선관위장 등 관련자들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염.

선관위장은 부정투표함 반출에 대해 자신이 지시내린 바 없다고 발표. 붓두껍, 인주 등은 10월 27일 국민투표시 사용한 것이라 변명하였으나, 발견 즉시 백지에 찍어본 결과 선명히 찍혀나왔음.

(구로을구 선관위과장 강실원이 기자회견과 집회 시 비합리적인 변명을 계속하였다.)

 

18:30

 

선관위원장, 부정투표함 반출이 불법임을 시인.

(이 시각, 국내 방송사 중 유일하게 부정선거 사례를 사실 그대로 방송하던 기독교 방송국은 기관원에 의해 방송이 중단되었으며 방송국 내부에서 농성중이던 학생들이 선배들의 연락을 통해 구로구청으로 이동했다. 방송국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전경과 경찰이 학생들을 폭행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19:00

 

"평민당원이 합법적인 투표함을 탈취하였다"고 중앙선관위 성명 발표 이후 운집한 시민, 학생 5천여명이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각 개봉 및 당국의 공식적 해명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21:00

 

서울시 선관위원장의 "구로을구 개표를 타지역 개표가 끝난 후 개별 개표하여 부정여부를 가리겠다"는 전화옴.

 

22:00

 

구로구청 마당, 도로까지 1만여 시민들이 운집. 주민대표, 공정선거감시단, 학생대표, 지역대표 신부 1인 등으로 농성지도부 구성. 규찰대를 조직하여 농성장 주변 경계. 운집한 시민 1만여명은 '선거무효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부정투표함 즉시 개봉을 요구.

(지역대표 신부 1인은 구요비 신부님으로 밝혀짐)

 

 

2004/12/03 08:39 2004/12/03 08:39

멋진 그대-박향미

from SHOUT! 2004/11/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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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소주 한 잔'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그 자리에 가기 전까지는 몰랐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위한 콘서트였다

'돌속에갇힌말'에 음악을 맡았던 지은언니가 가자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나선 자리였다

 

최근에 나는 어쩐지 쑥스러워서

집회나 토론회, 콘서트 같은 데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누가 같이 가자고 해도 오랫동안 망서리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갔다

내가 움직였던 이유는 오로지 그 사람

'박향미' 때문이다

 

작년 겨울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지은언니와 그는 꽃다지에서 함께 일했던 선후배이자 친구다

그런데 그가 첫 독집앨범을 내고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지은언니는 그가 사라진 지 일년만에

동해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필요할만한 물건들을 챙겨서 차에 싣고 떠났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던 시간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그저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 여행에 내가 동행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대학로 소극장에서 노래하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자 마자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빚이 있었다

 

그 날 동해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시디 한장을 건네주었다

사인도 해주세요, 라고 말하자

나루 언니와 좋은 인연이 되길, 이라고 적어주었다

그리고 그 시디는

내가 영화 한 편을 간신히 편집하는 동안

든든한 응원가를 들려줬다

 

태어나서 가장 힘겨웠던 지난 여름

선풍기를 종일 틀어놓고 땀띠가 돋은 온몸을 긁어가며

봐도 봐도 낯선 '프리미어'와 씨름을 할 때

몇 번이나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을 때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던 파일들이 날아가 버렸을 때

나는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를

눈 앞에서 생생하게

그가 직접 부르는 걸 듣고 있자니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다가

눈물을 감출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제가 서울을 떠나 동해에 있던 2년동안

   좋은 일과 안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떡두꺼비같은 딸을 하나 낳았다는 것이고

   안좋은 일은...그곳에서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하다가

   오해를 받고 왕따가 되었다는 겁니다...

   항상 옆에 있어서

   그게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동지들, 친구들이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저를 위해서 불렀습니다

   전에는 제가 여러분에게 노래로 힘을 드렸다면

   이제는 제가 여러분의 힘을 받고 싶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어떤 모임에서 독립한다는 건

한편 기쁜 일이지만 한편 착잡한 일이다

그는 꽃다지가 고향이고 거기서 행복했겠지만

아름답지 않은 추억들도 많을 것이고

우여곡절끝에 독집앨범을 만들었을 것이다

 

힘들게 만든 앨범을 제대로 홍보해보지도 못하고

혼자 객지로 떠나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던 일도,

그 아이와 함께 그 곳에서 투쟁현장을 찾아 노래를 하고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다가

상처만 안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 과정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런 그가 허리까지 닿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휘날리며

다시 무대에 섰다는 것이

그리하여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당신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았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주저앉지마라'

 

혹시 그 노래를 구할 수 있다면 덧글 달아주세요

그리고 멋진 가수 박향미의 노래를 꼭 들어보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삶의 그늘과 그 그늘을 지워내는 시퍼런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당신도 분명 가슴이 두근거릴걸요

 

* 이 글을 작성한 뒤로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를 기획했습니다

   관련된 다른 글들과 작업과정은 또 다른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http://blog.jinbo.net/shout/ 

  

2004/11/25 19:04 2004/11/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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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던 그는

서운했던 것 같다

이제사 인터넷을 뒤져보고 안건데

여러 신문사와 기자들에게 <돌 속에 갇힌 말>을 소개하고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몰랐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팔다리가 덜덜 떨렸고

마이크를 놓칠것만 같아서 자꾸만 손을 등뒤로 감췄다

맨 마지막 질문 외에 다른 질문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고

내 답변 따위는 아예 기억나지 않는다

참으로 무책임한 감독이 아닌가

그런데 맨 마지막 질문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노코멘트'라고 대답한 것이다

출연자가 얼굴을 가려달라고 부탁한 상황에서 턱 아래쪽만 촬영한 화면이 있는데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걸 민첩하게 따라잡지 못해서

여러 번 얼굴이 노출되었다

출연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내용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대답하기 난처하니까 나는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그 때부터 진행하시던 분의 표정이 달라졌다

 

대화를 마치고 손님들과 한참 인사를 나누다가

뒤늦게 극장 문을 나설 때

담배를 피우던 그는 나를 보자 마자 호통을 쳤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감독이 윤리적으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정말 실망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폐막식을 하던 날

입장하기 몇 분 전,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호되게 지적했다

'영화는 잘 봤는데 만든 사람은 너무 실망스럽다'

'유시민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없다'

'유시민같은 정치적인 인물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회피하고 지나치게 방어적이다

 유시민같은 사람보다 더 나쁘다'

'나중에 강의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하고 싶은 영화였는데

 감독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려고 한다'

'감독과의 대화를 100회 이상 진행해봤고 당황스런 경험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다'

'그리고 대화를 마치고 나서 어떻게 나한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느냐'

'뒤풀이 하러 가면서 같이 술 한잔 하자는 말도 못하냐'

'나도 당신만큼 성깔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휙 사라졌다

 

그의 표정과 어투에서 흥분상태가 느껴지고

너무나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어서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아마 그는 그 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보다 더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 너무 실망했나 보다

하여간...여러모로 서운했던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지적을 받을만 했다

지적을 좀 받아야 한다, 나처럼 서툰 사람은...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영화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단 한번, 단 30분만에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를 가지고

나에 관해, 한 인간에 관해 그렇게 규정해도 되는 것일까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격한 표현을 사용했을 뿐일 거라고

아마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일단 내가 잘못한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2004/11/05 15:26 2004/11/0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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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일랜드‘의 강국(현빈)의 직업은 보디가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지켜주며‘ 살아간다. 그는 가족의 죽음으로 정신병을 앓던 중아(이나영)와 결혼했고, 사회 부적응자나 다름없던 재복(김민준)에게 보디가드 일을 가르쳐주면서 그의 사회적 자립을 책임지며, 에로영화 배우였던 시연(김민정)을 경호한다. 그는 ’아일랜드‘의 주인공중 유일하게 사회의 주류에 속해있고, 그 위치를 통해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이 이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중아를 ’불쌍해서 사랑‘했다가 ’사랑해서 불쌍‘해져 결혼하는 것이 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그래서, 강국은 친남매지간일수도 있는 중아와 재복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를 지켜줄 힘도,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수도 없다. 그가 누군가를 지켜주며 ‘참는‘ 것에 익숙해져도 그건 참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재복은 강국이 죽을때까지 중아를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강국은 중아가 재복과 ‘잤는’지 궁금해하고, 재복에게 ‘수준’이 안된다며 화를 낸다. 강국의, 그리고 ‘아일랜드’의 ‘난해한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강국은 사회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지만, 그와 ‘사회’가 아닌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에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왔을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일랜드’는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벗어나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마저 선택을 요구한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대화못지않게 수많은 독백으로 ‘타인’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시청자에게 직접 털어놓고, 드라마는 강국과 중아의 결혼생활이나, 재복과 중아가 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같은 일련의 ‘사건’들 대신 그것들로 인해 새롭게 생겨나고, 균열이 일어난 각자의 관계들에 주목한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게 된 사람이 기존의 제도를 벗어나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하게 된 사람마저 당신의 ‘섬’안에 들어왔을때 그들과 또다른 섬을 만들 수 있는가. ‘아일랜드’는 우리가 ‘관계’를 맺기 위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고 그 가치관속에 숨어있던 '사람'들 각자의 삶을 모두 감싸안는다. 내 곁에 없는 수많은 ‘정상’의 ‘타인’들과 함께 살 것인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어쩌면 ‘미쳤다’고 해도좋을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그들만의 ‘섬’에 들어갈 것인가. 아마 강국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는 중아와 재복을 이미 ‘사랑’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쓰레기’처럼 살지 말라고 했던 시연마저 사랑하게 될테니까. 자신만의 관계속에 있는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렵다면, 그것은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다. 진정한 사람간의 관계와 소통은 사회가 아니라 서로의 ‘비정상’적인 면마저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섬을 만들때 가능한 것이니까. 이미 ‘네멋대로해라’를 통해 ‘네멋폐인’의 섬을 만들었던 인정옥 작가는 강국을 통해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일랜드’에서 살고 싶다면 이해하지말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그래서 ‘네멋대로해라’는 ‘매니아’ 드라마였고, ‘아일랜드’는 '컬트‘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하면 될 뿐이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2004/10/24 14:20 2004/10/2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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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마가 그랬다

-애가 왜 그렇게 애살이 없냐

애살, 이란 말은 경상도 사투리인데

오기+승부욕+의욕+의지+기타 등등...으로 해석하면 되려나

특히 애살이 부족했던 건 체육과목이었는데

철봉도 뜀틀도 달리기도 피구도 너무 못해서

국민학교 1학년 때 전교에서 딱 한 사람, 나 혼자

체육에서 미'를 받았던 전설(?)을 남겨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

나는...누구와 경쟁하거나 눈 앞에서 바로 바로 점수를 따야하는 일에서

늘...너무 느리고 너무 자신없어 한다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

천천히 공부해서 찬찬히 이해하는 일은 느릿느릿 해내는데

곧바로 움직여야 하는 일에는 젬병이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완성했다

이렇게 아프고 외롭고 허탈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줄 몰랐다

시작하기 전에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다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애살이 없었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70분짜리 영화 한 편을 마쳤다는 것 만으로도 기특한데

그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없는 작업, 이를테면 음악이라든가 컴퓨터 그래픽이라든가

편집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등을 옆에서 척척 해결해준 사람들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감독으로서 부족한 게 너무 많은 모양이다

마스터 테잎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질책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아팠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은 그냥 흘러만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 많은 사건 사고들이 그저 스쳐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머리에서 가슴에서

옹이도 만들고 뿌리로도 뻗어가서

나중에 뭔가 조금 더 푸릇푸릇한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새 이파리 같은 것이 돋아나게 되지 않을까

 

87년 대통령 선거 당일

구로구청에서 모여 2박3일동안 열심히 부정선거 항의농성에 참여했던

이름모를 많은 시민들과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준 사람들과

그 사건을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 분들 덕분에 이 어리숙한 한 사람이

감독이 되었고

감독이 되느라 열병을 앓으면서 삶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다시 배웠고

결국 혼자서 다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아직 못났고

앞으로도 못난 인생을 엮어갈 테지만

그래서 기대했다가 실망한 분들께는 너무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저, 천천히 이 길을 가겠습니다

한꺼번에 실망하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천천히 실망하세요

이 길에서는 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께요

 

하여간

드디어 한 편 완성했습니다

모든 것 다 접고, 그냥

축하해주세요

 

 

 

 

2004/10/18 10:25 2004/10/18 10:25

2004.5.27

from 돌속에갇힌말 2004/05/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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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27.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

당시 추적60분에서 지하철 기관사들에 관한 내용을 방영했고

나는 [돌속에갇힌말] 막바지 편집을 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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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외상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혹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유족은 물론이고
기관사들도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자신이 몰던 기관차에 치어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은
간접적인 살인의 기억을
뇌 세포 깊이 새겨놓는 것이다
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은
딱 사흘 간의 휴가를 얻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서
대부분 병가를 내고 며칠 더 쉬거나
아예 휴직계를 제출하고 1년 이상 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쉬다가 복귀해도
사고가 났던 역에 진입할 때 마다
고통스러워서 식은 땀을 흘린다고 한다

소리만 들으면서 책을 읽다가
기어이 텔레비젼을 껐다

내게 유일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87년 12월 16일이다
1차 시사를 간신히 마치고
어서 어서 뒷부분을 더 붙여야 하는데
아침마다 강제진압 장면이 담긴 테잎을 틀다가
그냥 끈다

잠이 안와서 한밤중에 다시 일어나기도 하고
새벽에 눈이 떠져서 출근하기도 하는데
여전히 테잎을 보기가 두렵다

마쳐야 한다
마쳐야 한다
직면하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 그림자를 안고 어찌 살려고...
그러면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본다


 

2004/05/27 03:06 2004/05/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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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안, 전체구성안, 촬영구성안, 편집구성안, 대본...
<선택은 없다>는 유난히 갈등도 많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5개월 동안 내가 작성한 문서량은 A4 용지로 300장을 넘어선다
그러나 내가 공들인 시간의 흔적은
완성된 다큐멘터리에 성우의 목소리로만 남아있다
아주 오랜만에 충분히 감정이입을 해서 작성한 나레이션이었지만
엄마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선 부끄러운 대목이 많다
작년 10월에 완성해서 올해 2월에 KBS <열린채널>에 방영되었고
지난 2년간 방영했던 모든 영상물 중에서
우수작으로 선정한 6작품 안에 들어갔다고 한다
방송사를 떠나고 나니 방송프로그램으로 상을 받네,
씁쓸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

아래는 대본에서 인터뷰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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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

선택은 없다-일과 양육 (한국여성민우회 제작, 이혜란 연출)

[1]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와 내 시간을 이끌어 가는 건 이제 내 아이다

가끔 삐걱거리는 몸뚱이처럼
내 마음도 집안에만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분주하지만 어쩐지 외롭고
익숙해졌지만 어딘가 어색한 하루하루,
엄마라는 존재로 서서히 적응하는 동안
둘째를 가졌다

아이를 낳기 전 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었고 시간의 주인은 나였다
남편과 같이 일하던 시절 내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또 저만큼 멀어질 세상
세상의 엄마들은 지금 행복할까

[2]

저녁 7시, 옆자리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부장님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마음은 벌써 문턱을 넘어서는데

몇 걸음만 늦어도 아이는 전화를 하고
보고 싶어? 그래 나도 보고 싶어
안쓰런 얼굴 품어주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돌아와도 쉴 틈은 없다
내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건
아이도 집안일도 마찬가지...

아빠한테 갈래, 아이는 칭얼거리고
오늘도 남편은 야근 중
종일 헤어졌다 만나도 고단한 우리
나도 가끔은 등을 돌리고 싶다

나쁜 꿈이라도 꾼 것일까
오늘따라 잠투정이 유난하다
차가 붕 가버려, 친구도 붕 가버려
늦기 전에 유치원 가자

잘하고 있나? 거울 속의 내가 묻고
조금만 참자, 거울 밖의 내가 답하고
어제와 같은 아침
씁쓸한 마음 자물쇠로 채워놓고
일하는 엄마는 집을 나선다

[3]

막내와 함께 나서는 아침
그 작은 손 종일 손바닥에 맴돌고

아이 셋을 이끌고 혼자 서울에 온 지 3년
둘째 낳고도 미싱을 잡았던 나
낯선 이 곳에서 간병인이 되었다

남의 아픔을 돌보다 보면
내 아픔도 덜어진다지만
구청에서 지원받는 생계비로는
네 식구 살림이 빠듯하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오는 둘째
아침에 미리 해둔 밥 한 그릇 볶아 먹고
술래잡기하듯 골목길로 나선다
막내가 돌아올 시간
집까지 데려오는 건 날마다 언니 몫이다

책가방도 숙제도 던져 놓은 채
만화영화 보느라 허기를 잊었던 아이들
엄마 발소리에 달려나오면 해가 저문다

오늘도 찌개 하나로 둘러앉은 저녁상
잘 먹어서 고마워, 잘 커줘서 고마워...
방 한 칸에 넷이 누우면 밤이 깊었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저희들끼리 크는 아이들...
2004/03/30 07:33 2004/03/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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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사'에서 일하는 후배의 요청으로 썼던 글, 벌써 5년전이다.

 (아래 글을 이 블로그에 옮긴 건 2007년)

 

 

 

주관과 객관 , 과거와 현재의 충돌이 발굴한 "진실"  

 -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진출작 「먼지, 사북을 묻다」

 

                                                                              나루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은 외롭고 고단한 일이다. 우리가 기억하건 못하건 그 사건은 시대에 따라 명패를 바꿔 달며 어두운 입구를 열어둔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보일 듯하던 진실은 다가갈수록 다시 저만치 물러나곤 한다. 언제 무너져 질식할지 모르지만 쉬지 않고 장애물을 폭파하며 진실에 다가가는 그 작업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등을 돌린 '독립영화'로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더 외롭고 고단할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감독이 더듬어간 궤적을 바라보며 '객관적 사실'이라는 나침반과 '감동'이라는 불빛을 동시에 기대할 관객, 같이 손잡고 걸어갈 '우리 편'을 기대할 사건 관련자들, '작가정신'과 '진정성'으로 그려낸 피땀 어린 지도를 기대하며 스크린 앞에 모일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면 감독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메라는 너무나 제한적인 도구이며 편집한 화면은 애초의 기획의도를 배반하게 마련이다. 감독의 오감을 통해 걸러진 것들을 담아내는 게 영화라는 걸 잘 알면서도 '진실'에 관한 다양한 요구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다.

◁「경계도시」장면

  오는 12월 20일(금) 개막할 '서울독립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는 지난해 27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한국독립단편영화제'의 새로운 이름이며 과거 영화진흥공사가 주관하던 '금관영화제'의 맥을 발전적으로 이어온 영화제이다. 이 영화제는 극 실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독립영화의 모든 장르를 단편경쟁(25분 이하), 중편경쟁(60분 미만), 장편경쟁(60분 이상) 부문으로 나누어 각 장르간 경쟁 방식을 도입하고 있어 국내에서 유일한 '경쟁 독립영화제'로 불리고 있다)가 총 40편의 본선 진출작을 확정하고 올해의 슬로건이 '충돌'임을 발표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모든 낡은 것들과 충돌을 시도한다. 그 충돌은 관습적인 상업영화들과의 충돌이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 사회의 흐름과의 충돌이다. 또한 독립영화 내부의 낡은 경향과의 충돌이다.(홈페이지에서 발췌)" 본선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경계도시」(홍형숙 2002, 80분) 「그들만의 월드컵」(최진성 2002, 60분) 「먼지, 사북을 묻다」(이미영 2002, 85분)라는 세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가 눈길을 끈다. 이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작품은 올해 인권영화상을 수상했고 '인디포럼 2002'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던 「먼지, 사북을 묻다」이다.

「그들만의 월드컵」장면 ▷


   이미영 감독이 5년 동안 탄광촌에 거주하며 전작 「먼지의 집」 (1999,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초청, 서울다큐멘터리영상제 신진다큐멘터리 감독상 수상, 스위스 프리버그 영화제 초청)을 발표했다는 것과 올해 들어 두번째 작품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긴장했다. 15년 전에 일어난 어떤 사건(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투쟁)을 취재한답시고 2년을 흘려보낸 내게 이 영화는 부끄러움과 경외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먼지, 사북을 묻다」는 1980년 4월에 일어났던 '사북항쟁'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북항쟁은 강원도 사북에 있는 동원탄좌에서 일어난 노동쟁의 사건이다. 임금인상투쟁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으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시 그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에 맞선 노동자이자 지역주민인 피해자들의 투쟁과 성폭력 사건까지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다. 영화는 풍부한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자리를 바꾸며 일시적으로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사북지역의 사건 전개과정을 고스란히 거슬러올라간다.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감독의 목소리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지도, 결론을 향해 조급하게 앞서 가지도 않고, 과거와 현재를 굽어보는 위치에서 군림하지도 않는다. 극히 사적인 감상을 털어놓기도 하고, 거리를 둔 채 현장을 관찰하기도 하며,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등장인물의 입장에 동화되기도 한다. 목소리는 자료화면과 재연, 인터뷰와 독백을 넘나들며 서로 충돌하고 조금씩 다른 색깔을 입혀 '사북항쟁'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이런 특징은 80년대 이후 정치적 사건을 다룬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구별되며 이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돋보이게 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먼지, 사북을 묻다」장면



  군인과 경찰의 고문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점, 분노한 노조원들이 저지른 '어용노조지부장 부인 집단린치 사건'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던 점은, 관련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당시 상황을 바라본 감독의 '주관적' 시점이 빛나는 대목이다. 게다가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자들의 권위적이고 오만한 현재 모습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드러내고, 시위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의 행렬 속에서 한 증언자를 찾기 위해 무전기를 받아드는 장면은 압권이다.

  반면에 투쟁을 결의하는 노조원들의 목소리를 재연 더빙한 장면은 어딘가 어색하고, 촬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전달하는 대목은 그 솔직함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다소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동시에 갖게 한다. 또한 당시 경찰이 자행한 '성고문'에 관해 충분한 심증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진술을 얻지 못함으로써 숙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직도 성폭력 피해자의 발언을 포용하지 않는 시대의 한계는 물론, 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선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 감독의 한계도 엿볼 수 있다. 당신들의 행동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감독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광주항쟁'이나 '부마항쟁', '제주 4ㆍ3 항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했던 '사북항쟁'을 끈기 있게 채굴,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적으로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중운동의 출발점이자 80년대 노동운동의 첫걸음이었음에도 '불순분자의 난동'이라고 기록한 역사 왜곡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영화다. 이 작품으로 인해 관객들은 다시금 한국 인권의 현주소를 확인할 것이며, 과거의 '경력'을 수시로 들이밀어 관련된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까지 규정하는 권력의 폭력성에 몸을 떨 것이다.

  관찰자와 대상, 사실과 기록, 과거와 현재, 자아와 또 다른 자아가 서로 경계를 허물며 충돌했다가 멀어지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이 작품을 통해 '다큐멘터리'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발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창비 웹매거진/2002/12]

※ 창비 웹매거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창작과비평사 양측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 그런데,  창비측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나루, 2007, 10, 22)

 

 

2002/12/22 07:24 2002/12/22 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