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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부산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영화제 기간에는 다른 일정이 겹쳐서 몇 년동안 못가다가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상영하게 되어서 갑니다

이제 그곳엔 재워줄 친구도 없고 같이 놀아줄 친구도 드물지만

딱 한 편이라도 멋진 영화를 건지게 된다면 더 바랄게 없을거예요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http://www.piff.org/kor/index.asp

* 와이드 앵글 초청작 리스트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소개

  10월 13일 메가박스 3관  저녁 8시

  10월 16일 메가박스 3관  아침 10시 30분

* 상영관 안내

* 해운대로 오는 교통정보의 모든 것 

 

 

 

2006/10/11 21:59 2006/10/1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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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연대했을까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순회상영회에 관한 단상


2006. 10. 11. 나루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이하 ‘불타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나는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이면을 담은 기록이자 연대 그 자체이기를 희망했다. 이 때 연대는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또는 현장)과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연대이자, 지금까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영상작업을 해온 연출자들의 연대이면서, 그 결과물을 보는 관객들과의 연대이기도 하다. 현장이 다양할수록, 연출자들의 이력이 다양할수록, 상영하는 공간과 관객층이 다양할수록 더 좋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배급방식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기를 바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을 찾아가 만나고 싶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과연 제대로 연대했을까. 배급에 관한 구체적인 평가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배급팀에서 준비했으리라 믿고 그동안 진행한 상영회 중 내가 참석했던 총13회의 상영회를 돌아보며 앞으로 조금 더 고민해야할 점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1. 배급에 대한 연출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2005년 12월 19일 이후 3월까지 이어진 기획 모임 당시 연출자들은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는 못했으나 ‘공격적인(?) 배급’에 동의했다. 그러나 각자 자신이 촬영하기로 한 현장으로 흩어지면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고 배급에까지 마음을 쓸 여력이 없었다. 연출자들에게는 ‘이 영화를 과연 5월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단편들은 완성된다 하더라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5.18에서 6.10까지라는 의미심장한 상영 일정을 모토로 전국 각지의 상영 주체들을 조직해야했던 한독협 배급팀에서 이 영화의 배급에 관한 모든 업무를 떠안아야 했던 것이 미안하고 아쉽다. 그런데 총연출자였던 이마리오 감독 외에 다른 연출자들이 전혀 협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시간과 인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주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주요 도시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상영회가 조직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그간 꾸준히 상영네트워크의 토대를 구축해온 한독협 배급위원회의 노력이 맺은 결실일 것이다. 아직 영화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결과물을 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각 상영주체들이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한 정보만으로도 상영회를 준비하고 평균 30명 이상의 관객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2. 더 많은 관객과 보다 활기찬 상영회를 함께 만들기 위해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여러 영화제의 경우, 주최 측은 홈페이지와 관련기사 등을 통해 상영작들에 관한 정보를 미리 관객에게 공개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들은 그 영화의 제작진과 줄거리, 기획의도 등을 찾아볼 수 있고 연출자가 소속한 단체나 제작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보다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영작 선정에 참여했던 프로그래머들이 그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견해를 가지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 때문에 감독과 관객의 소통에도 도움이 된다.

  <불타는...>의 경우 공식블로그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연출자들이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역할이 더 강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미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는 어려웠다. 그 대신 관객들이 자유롭게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제작, 공개했던 웹페이지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 영화제에서 놓친 독립영화를 특정 기간에 특정사이트로 접근해야 감상할 수 있었던 한시적 온라인 상영회를 넘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이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감상할 수 있고 자발적인 소규모 상영회를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운로드'용 웹페이지의 애초 의도였지만 다운로드를 했던 관객들 대부분이 활용이나 감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 우리의 의도가 어느 정도나 공유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피드백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원인을 찾아 적절하게 대응한다면, 그래서 공식상영 이전에 웹페이지를 제작해서 영화관련 정보도 미리 전달하고 관객들과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마당이 된다면, 앞으로 다른 프로젝트 작업에서는 보다 빠르고 광범위한 배급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불타는...>을 상영한 곳에서 이루어진 관객과의 대화는  대부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냈으나 가끔 매끄럽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상영장비를 당일날 대여받는 경우, 상영 도중에 비디오나 사운드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상영 시작시간이 연기되기도 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진행자가 영화에 대해 부적절한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고, 진행자가 관객의 입장에서 곤란한 질문을 던져 서로 어색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장비의 문제는 상영회를 시작하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점검할 시간을 가지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지만, 상영작품을 소개하고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준비는 상영회를 기획하는 그 순간부터 상영회 직전까지 보다 치밀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불타는...>은 문제제기를 하는 영화이지 결론을 내리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양한 소재와 연출자들의 개성이 영화 안에서 서로 충돌하기에 각 단편들마다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영화다.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어떤 점이 불편하고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는지 더 예민하게 듣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굳이 <불타는...>이 아니더라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중요하다. 거기에는 늘 ‘독립다큐멘터리’ 혹은 ‘독립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이 반드시 있다. 그 자리가 한 인간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접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보람있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 감독은 물론이고 상영주체나 진행자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하고 고민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을 강조하고 무엇부터 소개할 것인지 상영회에 참석할 감독과 사전연락을 취해 확인하거나 보도자료를 숙독해서 진행방향과 질문내용들을 미리 준비한 경우, 망서리던 관객들까지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면서 전체 분위기가 고조되는 곳이 있었기에 이후 더 많은 상영회가 계속 기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상영회 며칠 전부터 그 지역 온라인 매체와 관련 단체들의 홈페이지에 예고편 동영상을 올리거나 기사 작성도 마다하지 않고, 시내 곳곳을 누비며 포스터를 붙였으며, 보도자료를 인쇄해서 모든 관객들에게 배포하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도 연출자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셨던 많은 상영주체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100인의 상영준비위원이 마련한 울산 상영회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자리였다. 그들의 세심한 준비과정과 당시 주최측이 관객을 대상으로 작성, 수집한 설문결과 등을 정리해서 상영네트워크에서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3. 영화에 담긴 현장과 주인공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만나야 했다


  이 영화의 상영료를 지역 상황에 따라 책정하고 그것을 모아서 투쟁기금으로 전달하자는 의견에 모든 연출자가 동의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추리와 서울역의 KTX 노동자 농성장, 기륭전자, 새만금 등에 투쟁기금을 전달한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카메라로 연대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집회에 참석해서 기금을 전달하고 지지를 표현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고 소극적인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륭전자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그들과 함께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단편을 부분적으로 상영하더라도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서로 격려하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랬지만 상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거나 현장에서 영화를 볼 의지가 있었는데도 중간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주체가 없어서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과 당사자들의 현재 모습 사이에는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의 실체는 촬영대상이었던 현장의 당사자들이 직접 확인해야할 것이다. 미처 담지 못한 것, 더 열심히 말해야하는 것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할 필요도 있고 연출자들이 그곳에서 느끼고 얻은 것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전달해야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 만나서 서로 조금이라도 힘을 얻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다음에는 꼭 생기기를 바란다.


4. 속편, 혹은 또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희망


  <불타는...>이라는 독립영화의 신생아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은 이 영화를 본 어느 지역의 영상활동가들이 더 실험적이고 더 재미있는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나 뒤풀이 자리에서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이렇게 문제제기만 던지고 끝나면 안되지 않나, 속편은 누가 만드나, 속편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냐고. 그 때 마다 내가 했던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당신이 누군가를 설득해서 같이 속편을 만든다면 이 영화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정말 뿌듯할 것 같습니다. 미흡한 부분을 다른 영화로 채워주세요.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면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라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목숨을 걸고 고독하게 공들여 작업하는 독립영화도 필요하고, 어느날 느닷없이 낯선 사람들이 모여 딱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후다닥 펼쳐놓는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 굳이 영화운동의 역사나 80년대 독립영화의 전통같은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거창한 뿌리를 의식하지 않아도, 모두를 압도하는 확고한 철학과 미학을 들이밀지 못하더라도, 화면에 담긴 변하지 않는 세상과 여전히 거칠고 흔들리는 카메라와 기술적 단점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쉬워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이런 작업을 서울에서만 하지 말고 어디선가 또 다른 사람들이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시도가 각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공유되기를, <불타는...> 이후 <대추리 전쟁> 과 <쇼킹 패밀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조직력을 확인한 상영네트워크가 독립영화 배급의 허브일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독립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직접 생산하는 주체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갔던 현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이야기하고,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이 상영회에 참석해서 현장을 직접 이야기하며,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던 사람들이 스스로 카메라를 잡게 되거나 객석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던 한 사람이 멋진 영화를 들고 나타났을 때 우리가 <불타는...>을 통해 시도하고자 했던 ‘연대’는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참여한 상영회

5월 15일 미디액트를 시작으로 부산대학교,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원주 다큐멘터리 모임 나무, 인천 향촌만수동 철거대책위, 서울아트시네마(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성남 문화의 집, 카페 빵, 인하대, 대추리 투쟁기금 전달, 수원 다산인권센터, 울산 근로복지회관, KTX 승무원 투쟁기금 전달, 기륭전자 투쟁기금 전달, 서울 신촌상영회(사춘기회복 프로젝트)

2006/10/11 05:11 2006/10/1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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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개편에서 '독립영화관'이 폐지된단다

사과문 을 받느라고 몹시 어색한 면담과정을 추진했던 나는 착잡했다

사석에서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어제 담당피디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엇, 사실이구나...(부디 그 문자 보고나서 울컥하지 않았기를...)

 

*참세상 - 이젠 KBS 독립영화관마저 폐지한다니

*한독협 - KBS 독립영화관은 계속 방영되어야 한다

 

그 누가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아무런 후속조치없는 폐지에 동의할 수 없다

설마, 나같은 사람은 기뻐할 줄 알았나, 천만에 만만에다

당신은 관심없는 사람한테도 잔소리 하나, 애정이 없으면 비판도 없다

'독립영화관'이 조금 덜 권위적이고 조금 더 유연해지기를 바라면서 움직였던 내게

이번 '폐지'소식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KBS 편성기획팀은 “충분한 기간 방영해 왔다”면서 “폐지라기 보다는 잠시 중단

하는 것이며,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내려야하는 결정”이라고 말했단다

 

충분한 기간이라니, 누가 어떤 근거로 충분하다는 거냐

해마다 새로 제작하고 발표하는 독립영화가 수백편인데 그동안 얼마나 틀었다고 충분하냐

그나마 최근 일 년 동안 제작비가 줄어 다큐멘터리는 틀수도 없었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

 

잠시 중단이라니, 그 시간에 대신 내보낼 프로그램은 어쩌겠다는 거냐

한류를 열렬히 사랑해준 아시아권의 영상들을 '잠시' 틀어주고 생색만 낼거라는 건가

한번 당해봐서 아는데 그걸 '희망고문'이라고 하는 거다, 그러는 거 아니다

폐지한다고 하면 반발할 사람 많으니까 '잠시 중단'이라는 표현만 사용하는 거 누가 모르나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이라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씀하시라

월드컵 올림픽처럼 돈 되는 이벤트는 밤새 무제한으로 방송할 수 있지 않은가

'독립영화관'이 돈이 안되니까, 시청률이 낮으니까 내리겠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다양성, 공익성을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을, 그것도 새벽 1시에 편성해놓고

광고가 붙기를 기대하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닌가, 애초에 그건 포기했어야지

 

KBS '독립영화관' 폐지에 반대한다 

확대를 해도 시원찮을 지금,  누구 맘대로 폐지를 거론하는가

'독립영화관'은 방영시간을 확대해서 60분 이상의 장편 다큐멘터리도 방영할 수 있어야 하며

제작비 예산을 확충해서 보다 합리적인 방영료를 지급해야 한다

방영관련 계약조건과 계약서 내용을 수정해서 불필요한 갈등이나 오해를 줄여야 하며

고정시간대를 확보해서 시청자들이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DVD 공동제작 등 지난 5년간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고 추진했던 사업의 규모도 더 커져야한다

왜냐구?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KBS 홈페이지의 회사 소개 - 개요, 연혁, 2006년 대기획

 

   KBS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으로서

  공정한 보도와 공익적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민족 문화를 창달하며 국가적 비전 제시와 국민 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중략)

   KBS는 TV수신료와 광고 수입 등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공영성 강화를 위해 제1TV, 제1라디오 등은 광고 방송을 하지 않고,
  제2TV, 2라디오, 2FM에서만 광고 방송을 하고 있다.

  (중략)

  국내 외부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KBS는 지난 2001년 이후 5년 연속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공정하게 공익적으로 국민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지 모르겠고

민족문화창달과 국가적 비전제시와 국민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건 말건 거기에는 관심없다

내가 관심있는 건 다른 문제다

KBS가 매달 꼬박꼬박 TV 수신료를 납부하는 전국의 시청자들과

조금이라도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는 지

근거 희박하고 개념 모호한 다수의 의견, 으로 보이는 국민여론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시청자 의견이라도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아시아의 창'이 반드시 '독립영화관' 시간에 배치되어야 할 이유가 있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라도 했나,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나

아시아를 대표하겠다는 명예욕과 광고수익과 시청률 확보와 시장 개척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시청자들 앞에서 약속한 일을 제대로 진행하고 제대로 끝맺는 것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라고 스스로 밝힌 사람들이 해야할 도리라고 본다

 

'독립영화관' 홈페이지에서 제작진은 아래와 같이 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전략)

 

  독립영화관은 궁극적으로 시청자 여러분의 것입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을 때,
  독립영화관
은 다양한 영화상영의 공간으로 꿋꿋이 성장하고,
   더 나아가 한국영화 발전에 알찬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후략)

 

윗 글은 제작진 한 사람의 개인의견이 아닐 것이다

KBS를 대표해서 '독립영화관 ' 시청자를 대상으로 작성한 글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 대해 KBS 편성기획팀을 비롯한 관련자 모두가 공동의 책임이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각 시도에 독립영화전용관이 생기고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분들이 언제든 집에서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온라인상영관이 생길 때까지

눈으로 보기 힘든 분들이 해설을 통해 소리로도 독립영화를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그 날까지

그리고 다른 방송사에서도 경쟁적으로 독립영화를 방영할 때까지

그래서 (편성기획팀이 아니라)시청자들이 이제 충분하다고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더 해라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방송사에서 이쯤으로 만족하면 곤란하지 않나

내가 보기에 한참은 더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개편해도 늦지 않다

이번 개편에 대한 발언을 보니 '독립영화관'이 시청자의 것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아직은 할 일이 더 많다, 편성기획팀은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폐지 계획을 철회해라

 

*조용히 편집 좀 하고 싶건만 왜케 자꾸 심란한 일들이 벌어지는 지 모르겠다, 나도 일 좀 하자!

  국방부나 KBS나 니들이 그렇게 위한다는 국민이 과연 뭘 원하는 지 생각을 좀 해라, 생각을...

 

 

 

 

2006/09/16 11:35 2006/09/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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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링크:변하지 않는 국가폭력을 얘기하고 싶다

 

변하지 않는 국가폭력을 얘기하고 싶다
"돌 속에 갇힌 말" 울산상영회 준비돼
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을 기록하고 그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억을 되새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돌 속에 갇힌 말’ 울산상영회가 준비되고 있다.

▲사진 : 박용수 사진집 [민중의 길] / 출처 : 나루 감독 블로그 http://blog.jinbo.net/hyunhyun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울산상영회에 참석해 관객들과의 대화시간을 함께 했던 나루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87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루 감독의 개인적 기억의 연장 속에서 당시 영상과 관련자들의 인터뷰 등을 중심으로 제작됐다.

99년 기획을 시작해 5년 동안 관련자들을 수소문하고 입을 열기까지 무수한 대화를 나누면서 힘겹게 만들어진 이 영화는 2004년 완성된 이후 40여 차례 크고 작은 영화제 등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나루 감독은 99년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비디오저널리스트과정을 배우며 첫 작품으로 구로구청사건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87년 12월 17일~18일 동안 공정선거감시단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던 것이 주요한 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오랜 기간이 지난 사건이어서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99년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영화제작에 대한 의견이 공식적으로 나가고, 프리첼 커뮤니티를 만들어 제작일지를 공개적으로 작성해나가면서 조금씩 관련된 사람들과 연락이 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서 촬영된 비디오를 입수하게 되면서 영화제작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오래된 상처를 끄집어내면서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이 쉽지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가서 만나고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상처가 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고, 더욱 그 상처를 얘기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당시 기록을 확보하고 얘기들을 나누면서 좀 더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시 화면이 편집과정에서 많이 들어가게 됐어요.”

2004년 10월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멘타리분과에서 주최하는 인티다큐페스티발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후 인권영화제, 인디포럼영화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등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구로를 비롯해 수원, 인천, 대전 등 지역에서도 상영회가 계속 이어졌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했던 분들은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없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었어요. 힘든 기억들이었기 때문에 인터뷰에는 응했지만 상영장에 오시는 분들은 많지 않았어요. 반면 집단적 폭력상황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했던 관객분들은 공감대를 표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어요.”

얼마 전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진행된 상영회에서는 극도의 공포상황에서 조직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고 한다.

울산에서의 상영회를 통해 나루 감독은 변하지 않는 국가폭력의 문제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울산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이 활발히 진행됐고, 그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이 사건에 대해서도 연관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87년 이후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본질은 바뀌지 않은 점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이번 ‘돌 속에 갇힌 말’ 울산상영회는 9월 19일(화)에 진행되는데 특별한 단체나 주최모임이 없이 영화를 보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자 하는 이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게 된다.


나루 감독의 글

주춤거리는 객관성, 혹은 경계에 선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다큐멘터리는 흔히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모호하다.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강요한 자와 순종한 자, 능동적인 사람들과 수동적인 사람들, 그 사이 어디쯤에 객관성이 존재하는가. 나는, 당신은, 우리는 언제나 그 경계 어디쯤에 서성대거나 양쪽을 모두 밟고 선 채 당황하는 존재는 아닌가. 이 작품은 개인적인 감상과 기억을 ‘활자’로 중얼거리는 화자, 즉 목소리를 감춘 감독의 나레이션과 1987년 12월 16일에서 18일까지 농성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인터뷰, 그리고 감독의 인터뷰가 서로 조금씩 엇갈린 채로 조립된 기록이며 모호한 것에 대해 모호하게 말하는, ‘객관성’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1987년 12월 16일, 우리는 괴물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우리 손으로 선출한 위대한 보통사람 노태우, 그러나 그 과정이 민주적이었는가에 대해 나는 회의한다. 87년 당시 국민운동본부 산하 공정선거감시단의 활동으로 전국적인 불법적인 선거운동 사례가 집계되었고 투.개표 과정의 부정 비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어이없는 상황의 단면이 서울 구로구에서 ‘부정투표함 누출사건’으로 표출되었으며 꾹꾹 눌러참아왔던 국민들의 분노가 ‘구로구청 점거’를 통한 항의농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농성 과정에서 당시 재야 운동권 세력의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고, 입장의 차이는 진압에 대한 대안없는 철수로 이어진다. 부정의 현장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은 힘없는 민중이었고 증거물은 사라졌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정권을 장악한 세력도, 비극적인 현장에서 급히 등을 돌려버린 재야도 나에겐 괴물로 다가온다. 17년동안 농성참가자들의 꿈자리까지 지배해온 괴물과의 동거, 우리는 지금 누구를 어떻게 지지하거나 비판해야하는가. 해소할 수 없었던 분노와 좌절이 가위눌린 신음으로 남은 그 해 겨울...







사진 : 박용수 사진집 [민중의 길] (1988/분도출판사)
(출처 : 나루 감독 블로그 http://blog.jinbo.net/hyunhyun)

김성민 기자 / 2006-09-05 오후 9:13:57
 

2006/09/06 16:39 2006/09/0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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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링크:우리의 투쟁 속에 인간은 있는가?

 

 

 

우리의 투쟁 속에 '인간'은 있는가?
 초청포럼'중구난방' 후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123호
초보좌파

우리의 투쟁 속에 
명분과 당위가 아닌 ‘인간’은 있는가...?

초보좌파


8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한노정연)에서 ‘열린포럼 중구난방’ 두 번째를 연다기에 땡볕을 뚫고 혈혈단신으로 찾아 갔다.
 
왜 갔냐구? 중구난방이라길래....
참고로 아는 척하면^^
중구난방 (衆 : 무리 중  口 : 입 구  難 : 어려울 난  防 : 막을 방)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소공(召公)이 주여왕(周勵王)의 탄압 정책에 반대하며 이렇게 충언(衷言)하였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를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이 같은 충언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도망하여 평생을 갇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즉 대중의 말길[言路]과 자유로운 생각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맘껏 떠들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없는, 거침없는 상상력이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라길래 갔던 것이다. 난 그동안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입에 걸치고 다녔다. 난 ‘남’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양 또 다른 ‘남’들에게 떠들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 사이의 깊은 골은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왜냐면 ‘남’의 이야기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고 ‘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스스로 착각하며 지내왔다. 그것은 편했다. ‘남’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편집하는 것도 쉬웠고, 내 속의 나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힘들어 할 필요도 없었다. ‘남’의 이야기가 맞으면 그냥 내 속으로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내 이야기를 하려고 갔다기보다는 그러한 상상력과 이야기들이 흘러넘치는 소리에 목이 말라서 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게다. ‘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기에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고 어딘지 모자라고 자신 없었다. ‘자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다른 자리들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중구난방에 초청된 사람은 다큐영화 ‘돌 속에 갇힌 말(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 농성 사건)’의 감독인 ‘나루’님이다. 이 다큐영화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구로구청에서 발각된 부정투표함에 시민, 학생 등이 항의하며 시작된 농성이 국가의 폭력으로 짓밟히게 된 사건을 다룬 것이다. 당시 상황을 찍었던,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상과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민중의 열망에 대해 폭력으로 답하는 지배계급과 국가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민중들에게 무차별 행해지는 폭력의 모습은 볼 때마나 울화가 치밀고 가슴은 먹먹하며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살인폭력 자행하는 국가권력 해체하자!! [고 하중근 열사를 추모하며]
 
영화 상영을 끝내고 중구난방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이기에 무언가 말문을 연다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이다. 나루감독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구난방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속에는 ‘아무리 중구난방이라지만 그래도 이야기 자리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 중심을 잡고 이야기가 오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직도 나는 내 이야기가 자유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어색해서 무언가의 틀거리가 주어지고 그 속에서 그것에 맞게 이야기하는 것에 여지껏 익숙해져 있는 것이었다. 한 번 물이 들면 그 물이 빠지기는 무척 어려운가 보다.
 
건방지지만 시건방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돌 속에 갇힌 말’이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것도 역사로 불리우는 투쟁 속에 그 투쟁의 역사적 의미 등등에 대해 재조명 어쩌구저쩌구가 아니라 그 투쟁 과정과 이후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다큐영화는 끝에 이런 말을 남긴다. “역사에 대한 예의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인간을 위해 투쟁해야지 투쟁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돌 속에 갇힌 말’에 보면 당시 그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관망하고 지시하는 사람 부류’와 ‘직접 뛰어들어 행동하는 사람 부류’이다. 관망하고 지시하던 사람들은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되던 그 순간에 아무도 구로구청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부정투표함의 사수가 민주주의의 사수라는 그 하나의 믿음으로 모여 들었던, 직접 뛰어들어 행동했던 시민, 학생 등 민중들만이 국가의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역사의 뒷켠으로 밀려나 있는 동안, 그 투쟁과 폭력 그리고 그 이후를 오직 한 개인으로 감당해야 했던 그들은 역사의 그늘 속으로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었다. 역사라고 할 것까지 없다. 바로 우리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었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아 간다.’고 했던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결의를 요구하지만, 결국 그것은 개인의 희생으로 정리될 뿐인 것 말이다. 우리의 투쟁 속에 명분과 당위가 아닌 ‘인간’은 있는가? 명분과 당위 속에 ‘인간’은 희생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투쟁과 조직의 이름 앞에 ‘인간’은 배제되어 있지는 않은가? 국가든, 민족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조직이든 그 명분과 당위 앞에서 ‘인간’은 고려되고 있는가? 나 역시 적을 닮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우리’라는 속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무도 ‘누가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강변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그 다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자신의 덜익은 생각과 떨리는 가슴과 부끄러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의 잣대를 갖고 듣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위해 내 스스로 노력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공감했다.(적어도 내 생각에^^;)
그래서 그랬는지 세꼬시 집으로 옮겨서 계속된 뒷풀이 자리는 나머지 아쉬운 여운을 남길 만큼 즐거운 자리였다. 나만 그랬나?^^; 중구난방...담에도 꼭 가야지...ㅋㅋㅋ
 
여전히 나의 머릿 속에는, 가슴 속에는 그 말이 남아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다”

 

2006/09/03 16:30 2006/09/03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