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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적막함.

  • 등록일
    2004/12/28 05:39
  • 수정일
    2004/12/28 05:39
새벽이다. 모든 것이 고요하다. 낮의 낮은 울림이 이 시간엔 큰 울림으로 들린다. 세상 모든 소리가 머무는 시간... 아무리 작은 소리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간이다. 이런 새벽이 난 좋다. 하찮은 것도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감 있게 들려주는 시간... 낮의 큰 울림에 밀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세상의 작은 소리들은 자신의 울림을 자랑이라도 하듯 지저귄다.


하찮음이 없는 시간 새벽은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의 시간이다. 다 잠든 사이지만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 새벽을 깨우는 이들이 있다. 도시의 깨끗함을 위해 청소를 하는 아저씨... 오늘도 어딘가로 팔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근하는 건설일용노동자.... 주야 맞교대의 힘겨움이 배로 증가하는 지금 시간.... 밀려드는 졸음을 참아가며 생산라인에서 기계와 씨름하고 있을 우리내 노동자... 다들 새벽은 잠든 시간이라 하지만 새벽에도 세상은 어김없이 돌아간다. 새벽에도 자본의 돈벌이는 계속되고 있다. 아침 창밖을 본다. 현기증 날 정도로 어지럽게 보이는 굴뚝은 무엇이 그리도 신났는지 연실 하얀 연기를 피워내고 있다. 그리고 공장의 불빛은 환하게 미소를 머금는다. 누구를 위한 미소일까? 자본에 편입된 공장은 자본가의 미소에 화답이라도 하나보다. 더러운 세상... 새벽의 적막함은 공평하지만... 그렇지 못한 새벽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의 이치를 어기는 자본의 악랄함이 공장의 새벽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내 힘이 없는 것인지 너무 잘난 인간들의 사탕발림을 믿고 참고 있는 것인지 아무도 이의나 불평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래 세상의 밥줄을 지탱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그러나 우린 노동자의 타들어가는 숯덩이 속을 모른다. 머리엔 지식이 쌓이지만 몸은 노쇄해 간다. 인텔리겐챠들의 한계이다. 언제 행동을 직접 나선적이 있던가 인텔리겐챠들이 지식과 선동을 그럴싸하게 하지만... 지식은 곧 몸의 노쇄함에 먹히고 만다. 일상적으로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유롭다. 생이 그렇지 못하기에... 이에 우리는 역사의 주체는 노동자라고 말하나 보다. 말보다 행동이 행동보다는 뜨거운 연대가 그립다. 밤의 고요함에 울려 퍼질... 그 신새벽의 외침을.... 그 신새벽의 외침들.... 길음. 답십리의 기억쪼각들... 이제 옛것이 되어 더이상 현실로 부활하지 못한다. 아니 옛것은 모두 진부하기에 폐기되는 시기일까? 아닐거다. 우리내 그 시대만큼 배짱과 자신감도 없을뿐더러... 그 순수했던 시대의 열정이 이미 타 버린지 오래이다. 무수한 왜침은 많지만 정작 한길을 의롭게 가는 이들을 눈씻고 찾기 힘들 지금... 무수한 글자 조합보다 따스한 행동 그리고 정을 느끼고 싶은 이유는 무얼까? 우리내 그만큼 세상에 너무 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밤 어둠이 환하게 빛으로 바뀌는 순간 나의 작고 여린 잡념도 함께 가지고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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