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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꽃이 만개하였더군요.

  • 등록일
    2010/03/29 13:39
  • 수정일
    2010/03/29 13:39

출근길 인근 학교에 살포시 개나리 꽃이 화사한 노란 꽃잎을 내밀고 있더군요.

연일 날씨가 추위로 인해 꽃잎과 풀빛이 빛바랜 시간이었는데.... 오늘 출근길에 본 노란 개나리와 풀들이 살포시 파란과 노란색을 내밀고 있습니다.

 

오늘 모처럼 하늘에 파란색과 햇빛이 비추고,,,,, 바람이 시원하게 다가오네요.

연일 추위로 잠바를 입고 나오는데.... 약간 덥게 느껴집니다.

오늘 출근길 꽃잎과 서서히 다가오는 봄기운에,,,,, 잠시 넋을 놓고 개나리와 바람을 쐬어 보았답니다.

 

이 추위에도 봄이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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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이주민들과 지낸 사진들을 열어봅니다.

  • 등록일
    2010/03/04 12:30
  • 수정일
    2010/03/04 12:30

이주노동자, 이주민들과 지낸 사진들을 열어봅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이주노동자 그/녀들과 보낸 시간들을 회상해 봅니다. 만남은 그리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움에 처해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와 인연을 맺게된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 입니다. 호소할 곳,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그/녀들은 친구의 소개로 아름아름 찾아왔습니다. 모든 센터가 그러할 것입니다.

 

임금체불, 산재, 폭행 등 한국에서 처한 어려움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기에 도움을 청하고, 하소연하며, 억울함을 센터에 있는 저희들에게 이야기하고 해결에 실마리를 찾기를 바랬습니다.

 

 

그런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과 올해도 어김없이 한해살이를 하였습니다.

 

많은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자진출국하는 이의 환한 미소도 보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강제단속으로 연행되어 강제출국한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 또한 많았습니다.

 

 

조촐한 환송회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에게 미안함을 마음으로 나마 전해봅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떠나야 하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의 봅니다. 무슨 큰 죄를 지었는지 보호소에서 죄수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그/녀들의 모습 그리고 한국에 체류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그/녀들의 떨리는 목소리로 환송을 하는 것이 저희 일상이었습니다.

 

 

이런 그/녀들.... 사진속에서는 한결같이 웃고 있습니다. 추억에 기대어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과 보낸 소중한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떠나야 하는 그/녀들.... 그러나 욕심이 과한 것인가요. 그/녀들과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시간은 무한하지 않았습니다.

 

유한한 시간속에서 그/녀들과 웃고 지낸 시간.....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아 소통의 어려움으로 그/녀들과 잦은 다툼도 있었으나 그/녀들은 한결같이 맑고, 순수하였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해 하소연하였고, 부모님이 아프면 같이 아파했고, 기쁠때 마음껏 웃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도, 친구가 죽어도, 아이가 아파도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은 하루면 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 그/녀들의 몸은 개인이 아닌 가족을 부양해 하는 기계이며, 가족의 미래를 짊어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사망소식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주노동자, 아이가 아파서 야후 인터넷 메신져로 하염없이 걱정하며 사랑한다는 목소리를 아이와 아이를 부양하는 친지에게 이야기하는 그/녀들이 한 없이 덧없게 느껴질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이 왜 이렇까지 하며 한국에 체류해야 하는지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주운동을 하면서 이주한 이주노동자, 이주여성의 삶의 단면을 접하면서 이주한 그/녀들의 삶을 보았답니다. 더 나은 세상, 미래를 꿈꾸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웠듯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또한 코리안 드림을 꿈꿔왔습니다.

 

코리안 드림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브로커에 속아 막대한 빛을 지고 한국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생이 아닌 관광비자 3개월, 6개월짜리를 받고 들어온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고용정책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브로커에 속아 한국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강제출국되는 이도 있습니다. 관광비자의 가격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중국과 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그 횡포가 심각합니다. 이렇게 억울하게 들어온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그/녀들이 자주는 아니지만 어려울때나 고민스러울때 고국에서 큰 일이 있을때 찾아와 마음을 가다듬고 갑니다.

 

 

그래서 저녁이면 기쁠때도 있었지만 마음을 쓸어내릴 때도 많았습니다. 이런 그/녀들과 웃고 지낸지도 언 5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함께한다기 보다 많이 배울 수 있고, 그/녀들의 삶에서 우리 아버님들의 고충을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우리 또한 이주노동을 하였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은 우리사회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센터에서 함께하면서 그/녀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 센터는 한가족 같이 그.녀들이 언제나 방문하고 쉬고, 기대고, 외로움을 달래고, 어려움을 풀거나 함께 기뻐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늦은 시간에 간혹 오는 그/녀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거나 살아가는 이야기.... 술한잔 기울이고, 웃고 떠드는 것이 참 행복하게 다가왔습니다. 함께 있기에 고된 노동을 잠시 잊고 고국의 소식을 접하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참 정겨웠습니다. 행복하였습니다.  

 

저녁이면 몇 안되는 이주노동자들이 인근에서 아름아름 와서 인터넷을 보며 자국의 소식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정리하는 공간.... 그 속에 제가 함께 있었고, 많은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 그/녀들이 함께하였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 사진속에 웃고만 있네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을 회상해 봅니다.

 

다들 잘지내고 있는지....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저는 정작 함께 있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함께하였기에 고마웠다고..... 당신들이 있어주었기에 내가 세상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었고, 마음이 풍요롭고 정작 행복하였다고,,,, 늘 걱정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그/녀들....

 

 

베트남 이주노동자 라이쾅 타오 화성 건설현장에서 반장의 횡포로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3년을 해메이다 우리와 만나서 눈치료를 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간 그..... 억울함은 해소되었지만 눈에 상처는 치료하지 못한 그... 그러나 마지막 돈을 벌어서 비행기표를 사서 출국한 타오씨..... 새벽 베트남 쌀국수를 끓어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갔습니다.

 

카자흐스탄 자나라씨... 아이가 아파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아파서 근심이 많았습니다, 출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으나 이전 사업장에 임금을 주지 않아서 출국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빨리 임금체불 건이 근로감독관의 노력으로 일찍 끝나 출국하였습니다. 출국당일 인천공항에서 센터에 찾아오지 못하여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행복하게 살라는 당부.... 더 이상 한국에 가족과 떨어져 살지말라는 이야기를 하였던 기억....

 

케냐의 페리씨.... 2008년 다솜공동체 후원의 밤에서 잠보 춤을 추면서 이주노동자, 지역주민을 흥겁게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안정을 취하고 고향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그러하지만 외로움, 두려움, 폭력에 견디다 못해 배운 술과 담배가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삶을 갉아 먹거나 몸을 망가트립니다. 그래서 안타까울때가 많습니다. 상처를 치유할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이주노동자 그/녀들을 상처를 만들고 확대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린 페리씨가 지금 케냐에서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늘 수줍어 했는데....

 

 

올해 6월 전화로 형 집에 가요....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여자친구와 결혼할 거에요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갔습니다.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늘 어려울때면 함께 있어주었는데.... 스리랑카 헤러드가 보고싶네요.  초기 스리랑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던 이주노동자입니다.

스리랑카 친구들은 대부분 헤러드가 있었기 때문에 왔고, 헤러드는 회사에 있는 할아버지에 의해 잔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먼 타향에서 온 헤러드가 돈을 벌고 건강히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어려운 일과 힘든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님들 처럼 중동의 열사 땅에서 힘들게 일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에 헤러드가 건강히 돈을 벌어 고국에 가기를 바램하며 잔업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헤러드는 잔업을 하여 고국에 돈을 많이 보내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이런 헤러드가 이제는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자진출국을 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몽골 오트후.... 잉크, 오트후, 바이라 3인은 임금체불과 바이라 상해건으로 상담을 맞게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바이라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여 팔, 등, 어깨를 180바늘 꼬메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병원비가 없어서 난처했습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경찰에 붙잡혀서 병원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화성 보건소에서 화성이주노동자 의료지원을 받아 병원비 전액을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바이라가 다쳐 병원에 갔을때.... 살아 있는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바이라 또한 한국의 고용체류 3아웃제도로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어 강제출국 당했다는 소식을 잉흐에게 들었습니다.

 

오트후는 다른 남자와 가출을 하여 술에 쪄들었는데.... 잉흐에게 지금 들었더니 부인과 재회하여 울반바토르에서 조그마한 가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잉흐 빼놓고는 사업장의 상습적 임금체불, 폐업으로 3아웃되어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오트후, 바이라는 2년의 한국생활을 하고 강제출국당하였습니다.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참 냉혹합니다.

 

늘 저녁이면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센터에서 있습니다. 서류정리와 일도 있지만 이주노동자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 참 정겹게 다가옵니다. 이런 설레인 만남은 다른 곳에서는 없었던 것이라 매우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별과 만남이 번갈아가는 센터생활이지만 그래도 인연은 이어지겠지요....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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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부려서인지 산이 입산을 거부하였다.

  • 등록일
    2005/07/21 14:23
  • 수정일
    2005/07/21 14:23

화엄사에서 벽소령까지 걷고 이틀날 내려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에서 간만에 땀을 흠뻑흘리고 왔다. 그래도 벽소령까지 걷고 내려오는 길에 다리를 다친분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내려오고, 아쉬움을 벽소령에서 내려와 음정 송알 이름모를 가계에서 소주에 도토리 묵을 먹으며 달랬다. 그래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해 본다. 다음을 기약해 본다.

 

*** 12일 0시 31분차로 천안에서 구례구행의 여수행 무궁화호를 탔다.

설레임과 기대심으로 전라서 여수행 무궁화호를 탔다. 그리고 산행을 할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눈을 감았다 떴다하면서 무궁화호에 몸을 맡기고 내려갔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나오는 기차 이동 매점 아저씨에게 맥주캔을 사서 먹었다. 같이 간 동지도 설레임과 기대심으로 그랬는지 잠을 청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산에 내려 올 생각만을 가졌다. 기차가 구례구에 가까워질 수록 기대심만이 부풀어 갔다.

 

*** 12일 3시 39분 구례구역에 도착하였다.

간만에 들리는 구례구역 변한 것은 없었다. 기차표를 건네고 나와 택시를 잡고 갔다. 화엄사까지 2명에 1명 합승하여 만오천원의 비용을 내고 화엄사 산행 초입구까지 같다. 화엄사 지리산 등산로 계단 입구에서 택시에 하차하고 후레쉬를 꺼내서 불빛을 비추고 등산끈을 맨 후 산행 준비를 하였다.

 

*** 12일 4시 25분 화엄사에서 노고단 산장까지 등산을 시작하다.

예상시간을 3시간 30분으로 잡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같이 간 동지를 앞에 세우고 뒤에서 후레쉬를 비추면서 걸었다. 이전에 비해 몸은 그리고 좋지는 않았다. 운동을 자주하지 않아서 인지 계속해서 땀이 비오듯 쏱아졌다. 그래도 새벽 산에서 부는 바람으로 인해 땀이 흐르는 것은 그리 큰 문제 없이 걸었다. 한참을 걷고 지리산 표지판이 보였다. 화엄사 2.1 킬로 미터 노고단 산장 5.4Km 라는 표지판에 잠시 쉬고, 담배를 피우며 가져온 물을 먹었다.

 

바람과 산냄새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여름인데도 산은 초봄 처럼 바람으로 인해 한기를 느꼈다. 그래도 땀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데 흘렸다. 겨울산행보다 여름산행에서 좀 귀찮은 것은 땀을 많이 흘린다는 것인데... 그래도 땀을 흘리면서 걷는 것도 그럭저럭 견딜만 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출발하였다. 산길을 걷는데 숨이 차온다. 이전 자전거를 타고 다닐때는 숨찬 현상은 없었는데 걷기와 운동을 부족해서 그런지... 조금 숨이 차온다. 그래도 걷는데는 문제가 별로 없다. 다리는 불편하지 않고 걸으면 걸을 수록 다리에 힘이 붙는다. 그래서 4.4Km 지점에 와서 또 한번 쉬었다. 물과 담배로만 간식을 삼아 쉬고 물먹고 담배피우고 하면서 산행을 하였다. 총 3번을 10분간 쉬고, 몇번 3-4회를 멈춰서 숨고르기를 하고 난 후 성삼재에서 노고단 산장을 가는 길에 당도하였다. 예산시간에 맞춰서 그런지 3시간 30분 이내에 그 공간에 도착하였다. 올라가서 조금 한기를 느껴 햇볕이 비추는 곳에 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였다. 장마철이라 화엄사에서 노고단 산장에 오는 계곡에 물소리가 쩌렁쩌렁 소리를 냈다.

 

그리고 노고단 산장을 가는데 걷기를 간만에 해서인지 양다리 허벅지에 쥐가 난다. 조금 마사지를 한 후 걸으니 그럭저럭 걸을만 하다. 그리고 7시 50분경에 노고단 산장에 도착하였다. 예상시간대로 노고단 산장에 왔다. 

 

산장 취사장에서 쵸코파이를 구매하고 컵라면과 초코파이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조금 쉬었다. 아침을 자주 먹지 않아서인지 아침을 먹는데 속이 영 불편하다. 그래도 이후 오후에 산행할 것을 생각하고 어거지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한 30분정도 노고단 산장에 있다가 노고단 산장 아래로 걷기 시작하였다. 같이 간 동지가 조금더 쉬었다 가자고 했지만 위에서 또 쉬기에 올라가서 쉬자고 말하고 걸었다. 이 곳에서 조금 더 쉬었다 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리의 피로를 풀고 산행을 하였어야 하였던 것 같다.

 

*** 8시 30분경에 산행을 또 시작하다. 연하천 산장으로 출발....

노고단은 입산통제라서 오르지 못하고 임걸령으로 가는 그 길 대목에서 몇방의 사진을 찍고, 쉬고 주변 경관을 보면서 이제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산 정상은 아니지만 산이 굽이굽이 마디가 눈에 들어왔을때 그 시선을 참으로 경이롭다. 그래서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른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이 공간에서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등산가방을 매고 임걸령으로 향했다. 그 길은 대부분 평지와 다름없는 길이기에 편안하게 길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진흙길이 있음을 발견하고 장마 기간동안 이곳에 비가 와서 이렇게 길이 흥건히 젖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래도 대부분의 길은 잘 나있어 길을 걷는데 불편함이 없이 걸었다. 임걸령 가는 길까지는 오르막이 없고 고른 길이기에 걷는데 불편함이 없다. 햇볕이 내리쬐어도 그 길에 난 나무들이 그늘막을 내주어 덥지않게 걸었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줘서 걷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땀이 나는 것을 막기위해 수건을 목에 두르고 갔다. 땀을 딱으면서 걷는다. 옷이 등산복을 입었는데도 땀이 흥건하다. 그래도 불어주는 바람때문에 옷이 젖어 불편함도 다 잊고 걸었다.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표지판을 보고 임걸령 근처에 다달았음을 알았다. 피아골산장과 천왕봉 산장방면 뱀사골 산장이 나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곳이 임걸령 부근임을 표지판을 보고 알았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노루목으로 향했다. 노루목은 반야봉과 천왕봉 종자코스가 갈라지는 곳으로 이 곳도 그리 높지 않고 평이하게 오르막이 있다가 반야봉 산 허리를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다만, 돌길이라 발목이 다치는 사고가 빈번히 나기에 조심을 하여야 한다.

노루목에 당도하여 허기진 점심을 겸해서 초코파이 2개씩 나눠먹고 잠시 한가지게 쉬었다. 문제는 노루목에서 토끼봉 가는 길인데 그 길에서 많이들 다리를 접질리거나 아니면 이 길에서 발목부상을 당해서 많이 다친다. 그래서 화엄사에서 올라올때 제일 주의해야 할 코스나 노루목에서 토끼봉과 총각샘이 있는 명일봉을 넘어가는 길이다.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 에 600개의 통나무계단이 나있는 길에서 많이든 다리에 이상이 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을 타는 사람들이 예전 계단처럼 해놓기를 바란다. 그 통나무 계단을 걷다가 다리를 다치기 일이 비일비재한다. 대부분 벽소령에서 하산하는 이들 또한 이 길에서 짐무게를 이기기 위해 과도하게 발목에 힘을 주다가 내려오는 길에 발목이나 무릎 관절에 이상이 오는 현상이 있다. 일단 발목이나 관절이 다치면 내리막을 걸을 수 없는 낭패를 보기 쉽다. 내가 같이 간 동행한 동지도 아마도 화엄사-노고단에서 무리한 걷기와 그 계단에서의 등배낭 짐의 하중을 이기위해 지지대 역활을 하였던 한쪽 다리에 힘을 싫다가 무릎을 다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일단 걷는데는 불편함이 없어 노루목에서 뱀사골을 거쳐 토끼봉까지의 산행을 다시금 시작하였다. 뒤에서 따라가는 관계로 앞에 같이 동행한 동지가 별로 불편함을 모르고 잘 걷기에 따라 걸었다. 그리고 뱀사골과 토끼봉을 오르는데 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산행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토끼봉에서 명일봉이 위치한 총각샘을 거치는 코스(연하천 산장으로 가는 코스)에서 발을 굽히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통증때문인지 조금 걷는 템포가 느려지더니 고통이 호소하였다. 그래도 조금만 가면 어려운 코스를 벗어나기에 정상에 가서 쉬자고 하였다. 조금 힘들다고 하면 짐을 내려놓고 쉬고.... 계속해서 무리하게 산행을 강행하하였던 것이 미안하게 다가온다. 산을 만만히 보는게 아니었는데.... 들고온 배낭의 무게도 있고, 화엄사-노고단에서의 무리한 산행도 있고 해서 큰 부상이 아니기를 바랬다. 그리고 연하천으로 내려왔는데.... 통증이 심했는지 무릎을 꾸부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천천히 와도 될 것을 욕심을 부려 종주의 꿈이 날아가는 순간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맨소래담 로션을 바르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바르고 산장에서 5,000원을 주고 압박분대를 구입하여 묶었다.

 

2시 40분에 연하천에 도착하였다. 연하천을 넘어오기 전까지는 한가지게 사진도 찍고 쉬고 해서 별 이상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못내 함께 동행한 동지에게 미안하다. 몸 상태를 서로 체크해 가면서 걸었어야 하는데... 내 생각이 너무 앞서서 뒤롤 쫓아서 걷기만을 하였다. 나도 간만에 걷는 길이라 때로 허리와 다리 쪽에 쥐가 나서 불편하였지만 근육이나 관절은 이상이 없다. 그리고 늘 산행할때 50리터 배낭을 매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니기에 배낭 무게는 내 용도에 알맞는 50리터짜리를 사용하는데... 그 동지도 나와 마찬가지로 배낭을 50리터 짜리를 가지고 무게가 나가는 막소주 1.8리터짜리 두병을 지고 코펠, 침낭 그리고 옷가지를 챙긴것도 한목 한것 같다. 그리고 연하천에서 한 40분 정도를 쉬고 혹시나 하는 기대심과 내일 하산을 할때 편안하게 하산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무리하게 벽소령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연하천에서 벽소령을 가는데... 6시간을 걸었다. 그래도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벽소령에 도착하였다. 그나마 벽소령에 별 사고 없이 도착한 것이 안도가 되었다. 무리해서라도 내일 하산을 하기 위해서는 연하천 비좁은 산장보다는 넓은 벽소령 산장에서 비박을 하고 자는 것이 더 낳기에.... 식당을 둘러보고, 잠자리를 할 공간을 확인한 후 밥을 먹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비닐을 가져가지 않았다. 돗자리나 깔판을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 밥먹기 위해 짐을 푼 곳에서 부산에서 오셨다는 고마운 분들을 만나서 비닐도 얻고 밥도 얻어 먹었다. 그래서 우리도 고마움에 내일 하산을 할 수 밖에 없기에 먹을 것들을 나 내주었다. 김치, 햄, 김, 다시마, 해초, 라면, 커피, 햄볶음, 쌀, 참치, 멸치 볶음, 창란 젖, 막소주 1.8리터 2통을 내놓고 술자리를 가졌다. 같이 온 동지는 다리 부상으로 인해 술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산에 와서 술이나 흥겹게 먹고 산구경도 할겸 해서 왔는데.... 무리한 산행으로 인해 즐기지도 못하게 되어 참으로 미안스럽게 되었다.

 

그리고 저녁에 낀 운해로 인해 쏱아지는 별도 구경하지 못했다. 산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자만하지 말고 산에 갈때 겸손하게 산을 받아들어야 하는데 시건방을 떨어 산이 입산을 거부하였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나마 벽소령까지 걷기를 해서 위안을 삼아본다.

 

다음 기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산을 걸어야 겠다. 그리고 같이 동행한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하면서 같이 한가롭게 산구경하면서 산보를 해야 겠다. 그렇지 못해 지리산이 입산을 불허해.... 1박 2일의 산행으로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 수원과 부산에서 오셨다는 분과 좋은 자리 수원에서 오셨다는 분 또한 다리를 다쳐서 산행을 중도 포기하고 내일 벽소령 비포장 도로로 내려가신다고 하였다. 술이 있냐고 물어 막소주 2병이 있다고 하니 술한잔 얻어먹을 수 있냐 해서 우리도 내일 하산하기에 술을 다 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원과 부산에서 오신분 그리고 여자친구와 왔는데 술이 부족해서 술좀 더 먹고싶다는 분과 막소주 두병을 갖고 술한잔 흥겹게 먹었다.

 

부산에서 오셨다는 분은 대원사에서 치발목산장으로 해서 치발목산장에서 일박을 하고 치발목 산장에서 벽소령까지 걸어왔다고 한다. 이분들은 대원사-천왕봉-노고단-성삼재에서 나 있는 차령정간을 걷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밥을 얻어먹고 커피한잔을 하면서 흥겹게 놀았다. 올 2월에 볼 수 없던 것이 있더라... 벽소령 산장에 흡연구역이라고 붙여 놓은 띠테두리에서만 흡연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뭐 점등하면 그렇지 않게 그럭저럭 담배를 피면되는데... 산장지기들이 있을때는 꼼작없이 이 경계에서만 담배를 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늘 지리산 갈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확인한다. 음식 잔밥통만 있고 분리수거대가 없어진 것... 그리고 텐트치는 장소가 다 산아래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벽소령 산장에 매표소가 생긴것 등등 바뀌어 있다.

 

그나마 하산하는 길에 만난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걸어내려와서 다행이다. 그리고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트럭을 타고 산 중턱부터 아래 송알까지 내려올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오르막보다 산을 내려오는 길이 불편하였던 동지와 다른 분들이 그래도 무사히 지리산을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산이 입산을 거부하였지만 흔쾌히 하산을 허락해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뒤를 돌아보며 벽소령 암벽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내려왔다. 다음 보다 몸상태를 체크해 가면서 쉬엄쉬엄 걸어가야 겠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삼재까지 차량을 몰고 올 수 있어서 성삼재에서 차량을 몰고와 산행을 하고 백무동에 내려가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서 집으로 가는 추세임을 확인하였다. 화엄사-노고단까지 가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그리고 대학생 산학부 학생들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별로 없다. 그전과 다르다. 그래도 산 인심은 변하지 않았다. 같이 내려온 수원에서 오셨다는 분의 말이 귀에 남는다. 모든 사람이 산에 온 사람처럼 나눔을 나눈다면 세상은 정말 살기좋을텐데...라는 말.... 맞다. 산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고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기에 지리산에 가는 이유일 것이다. 힘들더라도 다른 산들보다 산에온 낮선이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에... 그래서 또 가을에 한번 더 산에 가볼련다. 시간이 없기에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일박이일 코스로 지리산 종주 계획을 다시금 구상해 본다.

 

P.S 화엄사코스를 선호하는 내가 가본 코스중에서 가장 만만하고 가장 쉬운 길이기에 선호한다. 이전 백무동에서 천왕봉을 거쳐 화엄사로 내려오는 길은 조금 긴장을 하여야 한다. 내려오는 계단보다 오르는 길이 많기에 화엄사-천왕봉 코스보다는 힘이 2배정도 소요되고, 기간도 2박3일을 잡아야 한다. 화엄사-천왕봉 코스는 힘들더라도 1박2일이면 종주가 가능하다. 그래서 2박3일로 가게 되면 백무동 칠성계곡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나서 힘들더라도 차디찬 계곡 물에 몸을 담고 올 수 있어서 그럭저럭 걸을만 하였던 곳이라 선호한다. 그래서 처음에 갈때 이외엔 힘이 조금 부쳐서 오르막 오를때 다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세석까지는 야간산행을 해서 도착하였다. 기분이 내키면 장터목까지 가서 일출을 보았던 기억들이 종종 있고, 총 지리산을 35번 가서 이번처럼 동행한 이가 무릎을 다쳐서 내려온 것은 1번이 있었고, 같이간 이가 약속이 있다고 해서 벽소령에서 내려온 기억을 합산하며 총 3번을 이렇게 내려오게 되었다. 참으로 아쉽지만 산이 입산을 거부했기에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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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0시 39분차를 타고 천안에서 구례로 뜬다.

  • 등록일
    2005/07/18 21:02
  • 수정일
    2005/07/18 21:02
지리산으로 간다. 약간 떨린다. 몸이 바쳐줄려나... 산을 걷는것이 마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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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짱 술을 먹다.

  • 등록일
    2005/07/18 14:16
  • 수정일
    2005/07/18 14:16

어제는 지역동지와 술을 한잔하였다.

전날 술도 먹고해서 좀 자중할려고 했는데.... 그래도 지역에 동지를 간만에 만나는 자리라서 소주를 한잔하였다. 먹다보니 고기 맛도 좋고,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일차를 먹고 알고 지내는 후배가 있는 술집으로 가자고 해서 맥주집으로 갔다.

 

오산에 내려와 술집을 자주 가지 않아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데... 넓은 홀이 있는 그 술집 인테리어가 좋다. 그래서 맥주를 핏쳐 2000cc를 2개 시켜먹고, 흥이 났는지... 노래빠라는데 가보았다. 비싸다고 해서 가지 않았는데.... 홀이 크다는 이유로 갔다.

 

노래방을 가도 아는 노래가 없어 노래를 주로 듣는다. 그래도 요즘 유행곡들을 그나마 노래방에 가면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 맥주를 시켜놓고 노래를 부르는 동지들의 모습을 본다. 노래방에서 흥겹게 놀고,,,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또다시 소주집으로 향하였다. 소주집에 들어간 기억은 나는데... 어떻게 센터에 온지 기억이 없다.

 

연장 4일을 이렇게 보냈다. 이제 자중하여야 겠다. 내일 새벽 0시 39분 차로 오산을 뜬다. 지리산을 거닐다 올 계획이다.

 

첫날은 구례역에서 새벽 5시 차를 타고 화엄사에서 내려-노고단-임걸령-뱀사골-토끼봉-명일봉-연하천-벽소령-선비샘-세석산장까지 거닐고 나서 세석산장에 있는 밖에 벤치에서 비박을 하고, 이틀날은 세석-천왕봉-세석산장으로 와서 촛대봉에서 사진도 찍고 지리산 정기 흠뻑 맞고 별무리를 한아름 눈에 담아두고 올 예정이다. 마지막 날은 세석산장에서 청학동 또는 한신계곡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이전 가봤던 청학동은 그리 인심이 풍기는 동네가 아니라 보류하고 있지만 둘중에 내키는 길로 하산을 할 예정이다. 

 

산에 간다. 약간은 긴장도 되고, 설레인다. 그래서 산에 가는 거겠지만.... 등산짐을 쌓고 있는 지금 한가지다. 그래도 어딘가 간다는 것은 설레임이 있기에 좋다. 저녁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그 길에서 먹을 맥주가 기대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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