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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4/27
    [시/도종환] 담쟁이
    간장 오타맨...
  2. 2005/04/19
    [산문/도종환] 아름다운 봄날
    간장 오타맨...
  3. 2005/04/18
    [산문/도종환]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간장 오타맨...
  4. 2005/04/15
    [시/도종환] 여백
    간장 오타맨...
  5. 2005/04/14
    [시/이정하] 우리 사는 동안에...
    간장 오타맨...

[시/이육사] 황 혼

  • 등록일
    2005/05/05 23:49
  • 수정일
    2005/05/05 23:49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텐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지는 시냇물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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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종환] 담쟁이

  • 등록일
    2005/04/27 12:36
  • 수정일
    2005/04/27 12:36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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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아름다운 봄날

  • 등록일
    2005/04/19 22:00
  • 수정일
    2005/04/19 22:00
봄 산을 넘다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연두색 물감에다 흰색을 조금 섞어 붓끝으로 톡톡톡 찍어 놓은 것 같은 나무들. 그건 신갈나무 갈참나무 같은 참나무류의 새로 돋는 잎들일 겁니다. 바로 아래에 짙은 녹색의 소나무 잎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어 더욱 싱싱하게 연록색으로 빛나는 새 잎의 신선한 채도. 그 사이에 분홍색에다 흰색을 많이 섞어 옅은 연분홍으로 가볍게 칠한 산벚나무들. 골짜기에는 직선의 줄기를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 가까운 산발치에는 희디흰 조팝나무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이토록 아름다운 산의 풍경은 누가 그린 것일까요.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요. 자연의 힘, 생명의 힘, 신의 손길에 감탄하며 저절로 머리 숙이게 됩니다. 뭉글뭉글 솟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듬지의 곡선들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싶어집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산가의 사계절 풍경 중에 봄의 신록을 으뜸으로 칩니다. 계절별로 두 가지 풍경씩을 선택해 팔경을 삼았는데 그 중 첫째가 봄 산의 신록입니다. 신록이 연록색 깃발을 드는 것을 신호로 산벚나무 꽃이 피고 이어서 자두나무, 앵두, 뜰보리수나무, 배나무가 흰색 분홍색의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골짜기 물이 더욱 맑고 힘차게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붓꽃잎이 쑥쑥 솟아나고 상사화가 단검처럼 빳빳한 줄기를 세우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합니다. 단도직입. 그렇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으면 상사화 잎은 단도직입으로 대답을 요구합니다. 겨우내 혼자 지켜온 고독의 성에 백기를 꽂을 걸 요구합니다. 상사화가 여기저기서 푸른 칼을 들이대고 앞산에선 나무의 대군이 신록의 창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에 갇혀 나는 그만 무장해제 당하기 직전의 외로운 병사 같습니다. 그런 날은 정말 사과꽃을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 상현달 새벽하늘 위에 서늘히 떠 있는 모습을 누군가와 같이 보았으면 싶습니다. 모란꽃 여린 순들이 손가락을 들어 수화로 내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숨겨진 뜻을 혼자서는 풀지 못하겠습니다. 봄은 이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꽃 피고 만개하여 이 땅에 아름다운 꽃 향기 가득한 날, 나는 한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는 잡보장경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이 망가지기 쉬운 것이 역경 속에서가 아니라 역경을 이기고 난 뒤 긴장이 풀린 시기입니다. 적과 싸우며 나라를 지켜낸 인물들 중에는 전쟁이 끝난 뒤에 동지에 의해 배신당하거나 적이 아닌 동지의 손에 죽는 이가 많았습니다. 함께 싸워내야 할 적이 사라지거나 공동의 목표가 없어진 뒤에는 내부의 분열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 중에는 겨울을 이기고 난 봄철이 그렇습니다. 게을러지고 해이해지는 것도 이때입니다. 한 생애를 사는 동안 우리가 맞닥뜨린 경계 중에서 우리를 가로막는 역경계 앞에서는 분노를 조심하고 순탄하게 풀려나가는 순경계 앞에서는 탐심을 경계하라고 스님들은 가르치십니다. 인간은 의외로 어리석은 데가 있어서, 일이 잘 풀리는 시기에는 욕심이 생기고 의욕이 넘치며 그것이 과욕을 불러오고 바로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꽃 중에도 화려하고 현란한 꽃을 피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꽃은 대체로 수명이 짧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자연 속에 살면서 아름다운 건 생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그 꽃이 성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수꽃은 강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암꽃은 예뻐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매혹적인 색과 향기를 만들어 내는 물질을 끝없이 생산해 내고, 그리하여 더욱 확실하게 씨앗을 잉태할 수 있게 되지만, 꽃을 피우고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 때문에 그렇지 못한 나무들에 비해 수명이 짧다는 것입니다. 피는 꽃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벌써 지는 꽃이 있습니다. 그러나 피는 꽃만 축복이 아니라 지는 꽃도 축복입니다. 꽃이 피는 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꽃이 지는 날도 소중하다는 걸 꽃은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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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 등록일
    2005/04/18 20:58
  • 수정일
    2005/04/18 20:58
** 수청동 문제로 골머리를 지끈 거리며 지역의 여러동지들의 몇통의 전화를 받고 머리가 띵해서 있는 지금... 문듯 머리 식히기 위해 도종환 시인 사이트에 들어가... 글을 읽는데... 편지가 아니 산문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냥 생각없이 읽을 만한 글이라 퍼날라 봅니다. 마음은 차분해 지네요.... 음악에 압도 되어 버리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이 너무 가슴에 사무쳐 볼륨을 최대한 높여 놓고 그 음악에 무릎 꿇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내 영혼의 깃발 위에 백기를 달아 노래 앞에 투항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에 항복을 하고 처분만 기다리고 싶은 저녁이 있습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너무 발버둥치며 살아왔습니다. 너무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비굴하지 않게 살아야 하지만 너무 지지 않으려고만 하다보니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제 피붙이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하며 삽니다. 지면 좀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일이 이겼다 졌다 하면서 사는 건데 절대로 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 강박에서 나를 풀어주고 싶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경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선연하게 빛나는 초사흘 달에게 항복하고 싶습니다. 침엽수 사이로 뜨는 초사흘달, 그 옆을 따르는 별의 무리에 섞여 나도 달의 부하, 별의 졸병이 되어 따라다니고 싶습니다. 낫날같이 푸른 달이 시키는 대로 낙엽송 뒤에 가 줄 서고 싶습니다. 거기서 별들을 따라 밤하늘에 달배, 별배를 띄우고 별에 매달려 아주 천천히 떠나는 여행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사랑에 압도당하고 싶습니다. 눈이 부시는 사랑, 가슴이 벅차서 거기서 정지해 버리는 사랑, 그런 사랑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진눈깨비 같은 눈물을 뿌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눈발에 포위당하고 싶습니다.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하는 눈 속에 갇히고 싶습니다. 허벅지 까지 쌓인 눈 속에 고립되어 있고 싶습니다. 구조신호를 기다리며 눈 속에 파묻혀 있고 싶습니다. 나는 그 동안 너무 알맞게 익기만을 기다리는 빵이었습니다. 적당한 온도에서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는 가마 속의 그릇이었습니다. 알맞고 적당한 온도에 길들여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븐 같은 공간, 가마 같은 세상에 갇힌 지 오래 되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산산조각 깨어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버림 받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수없이 깨지지 않고, 망치에 얻어맞아 버려지지 않고 어떻게 품격 있는 도기가 된단 말입니까. 접시 하나도 한계온도까지 갔다 오고 나서야 온전한 그릇이 됩니다. 나는 거기까지 갔을까요. 도전하는 마음을 슬그머니 버리고 살아온 건 아닌지요. 적당히 얻은 뒤부터는 나를 방어하는 일에만 길들여진 건 아닌지요. 처음 가졌던 마음을 숨겨놓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배고프고 막막하던 때 내가 했던 약속을 버린 건 아닌지요. 자꾸 자기를 합리화 하려고만 하고 그럴듯하게 변명하는 기술만 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가난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정직하고 순수했던 눈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적당한 행복의 품에 갇혀 길들여지면서 그것들을 잃어가고 있다면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이 그 의자, 그 안방이 아니었다면 털고 일어서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어떻게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까. 제 목청의 가장 높은 소리를 넘어서지 않고 어떻게 득음할 수 있습니까. 소리의 끝을 넘어가고자 피 터지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생에 몇 번, 아니 단 한 번만이라도 내 목소리가 폭포를 넘어가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안전선 밖에만 서 있었습니다. 너무 정해진 선 안으로만 걸어왔습니다. 그 안온함에 길들여진 채 안심하던 내 발걸음, 그 안도하는 표정과 웃음을 버리는 날이 하루쯤은 있어야 합니다. 그 날 그 자리에 사무치는 음악, 꽁꽁 언 별들이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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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종환] 여백

  • 등록일
    2005/04/15 02:27
  • 수정일
    2005/04/15 02:27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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