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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2/21
    노동자들은 투쟁을 먹고 산다.
    간장 오타맨...
  2. 2004/12/21
    시간의 흐름...
    간장 오타맨...
  3. 2004/12/21
    스포츠
    간장 오타맨...
  4. 2004/12/21
    카세트 음악을 들으며...
    간장 오타맨...
  5. 2004/12/19
    회사 풍경(2)
    간장 오타맨...

노동자들은 투쟁을 먹고 산다.

  • 등록일
    2004/12/21 22:19
  • 수정일
    2004/12/21 22:19
2002년 02월 27일 21시 28분 01초 철도역사 100년 기나긴 굴종과 억압의 사슬을 부수고 노동자계급임을 자랑차게 선언한 철도노동자의 총파업투쟁 현장에 있었던 가슴벅찬 순간들이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나의 주관적 관념의 망상을 모두 날려버렸다. 철도노동자 투쟁에 함께 있었던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러나 오늘은 철도노조 지도부의 휴지조작처럼 언제나 찢어버리면 그만인 특별단체협약합의(안)체결을 통하여 역사적 총파업투쟁이 노동자계급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한 현실 또한 보았다. 분명 나의 일이 아닌데 일손이 잡히지 않고 무언가 얻어맞은 기분에 도취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 또한 세삼보았다.


그러나 철도노조 조합원의 총파업투쟁의 그 생동감은 잊어지지 않을 것이다.그건 바로 그들 스스로가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였을때만이 역사의 주체요 세계의 주인임을 총파업투쟁을 통하여 각성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지도부의 총파업투쟁 철회하였을때 조합원들이 지도부에게 끝까지 투쟁하자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것을 눈을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먹고 산다라는 생각을 들었다. 노동자들은 개인이었을때 자본가들에 의한 착취와 억압으로 피박받지만 단결된 노동자계급으로써 우뚝솟았을때는 그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투쟁의 최선봉에서 노동자들을 진두지휘할 지도부는 노동자계급성을 망각한 행각을 벌었다. 철도노조 3대요구안 투쟁을 경제투쟁으로 국한 시킨 노조집행부의 지도의 부재로 철도의 역사적 총파업투쟁의 정신을 심각히 회손하였다. 철도노조 조합원의 총파업투쟁을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분쇄하기 위한 노동자게급의 정치투쟁이었다. 아니 사회변혁의 기초를 다지는 계급적 정치투쟁이었다. 그러나 지도부는 정치투쟁의 정신을 망각하고 경제적 투쟁으로 총파업을 귀결하여 철도노조 투쟁이 단지 생존권 사수 아니 밥그릇 쌓기 투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살인을 부르는 근무조건, 한해 30여명이 넘는 철도노동자들이 철노, 작업현장 등지에서 산재, 과로사로 죽어가고 있다, 주70시간이 넘는 24시간 근무, 언제나 산재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동작업현황, 관리자의 온갖 탄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정리해고의 칼바람과 민영화(사유화)를 통한 철도노조 구조조정, 그들은 공공영역에 대한 국가의 투자회피 및 공적영역에 대한 재원확대를 통한 국민의 안전과 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국민모두의 철도를 만들고, 기간의 억압을 분쇄하기 위한 자본가 정권과의 싸움을 전개하였다. 건대 철도노조 농성장에서 조합원을 믿고 투쟁에 동참하였다며 울먹거리 어느 여성조합원의 목소리가 아직도 머리속에 떠나지 않는다. 철도노조 노동자들 스스로 조직하여 철도노조 총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총파업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조합원들은 민주노조 집행부가 들어서자 마자 계속되는 철도내의 비민주적 요소를 타파하는 투쟁을 통해 총파업투쟁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끝까지 총파업투쟁을 전개하자고 조합원들은 지도부에게 호소하였다. 왜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말에 귀기울지 않는가? 왜 조합원이 투쟁하자고 눈물로 분노로 호소하는데 그걸 묵살하는가? 합의안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안위가 중요한 것인가? 역사적인 총파업투쟁은 끝났지만 이 파업은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역사가 아니면 지도부가 아니면 위원장이 그 누구도 노동자 개인에 대해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 개인에 대해 책임을 져주기 전에 전체가 구속될 각오가 되어있어야 마땅하지 않았는가? 이후 투쟁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현장에서 투쟁이 계속되어져 이후 더많은 사안들에 대하여 승리를 얻자고들 말한다. 그러나 총파업투쟁을 통해 얻지 못하면 그이상 아무것도 없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또 배워왔다. 왜 배워왔는가 더이상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고 투쟁을 통해 진정 노동해방 그리고 이땅의 노동자계급해방을 위해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오늘 철도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에서 나는 희망과 그리고 철도노동자의 분노를 보았다. 이제 3울 11일 13일 특별단협교섭합의(안)을 가지고 조합원 찬/반투표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나는 어제들은 철도노조 김재길위원장의 핸드폰 육성을 통해 들은 교섭위임은 한국노총에 하였지만, 교섭타결권은 조합원들에게 있다며 총파업투쟁을 끝까지 사수하겠다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러나 교섭타결권을 조합원들에게 주는데 왜 이리도 시간을 오래 잡은 것인가? 무엇이 무서웠던 것인가? 총파업투쟁 현장에서 총파업철회냐 투쟁이냐를 먼저 논하고 교섭타결안에 대한 찬/반투표가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은 조합원 아니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배반행위를 한것이다. 누가 조합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특별단협교셥합의(안)에 찬성을 하였는가?지도부는 이에 대한 조합원 사죄를 통하여 총사퇴해야 할 것이다. 이것 만이 3월 11일 13일 찬/반 투표에서 특별단협교섭합의(안)이라는 허울을 분쇄하고 철도노조가 내걸었던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 저지, 노동조건 개선, 해고자 원직복직이 될 수있을 것이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건국대에서 울려퍼진 철도노동자들의 힘차게 외치던 끝까지 투쟁하여 총파업투쟁 사수하자라는 구호가 사라졌음을....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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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 등록일
    2004/12/21 22:11
  • 수정일
    2004/12/21 22:11
2002년 05월 29일 11시 15분 44초 시간의 흐름에 의지한채 나그네 처럼 훌훌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싶다. 박목월의 시 나그레 싯구에서 나오는 "구름에 떠다니는 나그네"가 되어 자유로이 이 지구를 몇 바뀌라도 돌아다니며 세상을 조롱하고 싶다. 현실에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과 상상만이 유일한 희망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이 비극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주는 무게보다는 사람이 만든 국가/사회/법제도 등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 도피처가 없다.


살아가기 위한 노동은 자신의 꿈과 이상 그리고 미래가 절처히 배신으로 점철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과연 개인은 존재할 수 있을까?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시되고 권력에 의해 하루살이 목숨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강요... 부모를 잘 만나 태어날 때 부터 선택권이 부여 되는 새로운 계급사회... 화폐가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우린 굴욕의 노동을 강요받고, 노동으로 부터 소외 받고 있다. 세상을 조롱하고 싶지만 개인의 나약함과 초조함으로 인해 사고(思考)는 죽어가고 몸은 병(病)들어 지쳐간다. 지탱할 힘보다는 울분에 가슴이 찌들어 더이상 이상(理想)은 과거의 흐릿한 추억이 된 병약자들이 넘쳐 흐르는 사회에서 우린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할 수 있는 가치 또한 부여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땅에 떨어진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음이 비극으로 느껴지는 사회... 시간의 흐름은 초조함만 증폭시키고 있는 지금...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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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 등록일
    2004/12/21 22:04
  • 수정일
    2004/12/21 22:04
2002년 06월 04일 16시 10분 44초 월드컵이라는 전지구적 축제 열기가 한국을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습니다. 신문, 텔레비젼, 인터넷 등 한국팀 16강 진출 기원이며, 가능성 타진을 위한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월드컵이 벌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내 삶과 직접 상관없는 스포츠 경기에 광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 정말 우리내 삶에서 즐길 문화가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게합니다. 그러나 우린 스포츠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스포츠에서 우린 땀을 흘린 운동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경기 결과에만 관심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국가라는 집단에 대한 맹목적 지지 또한 벌어지죠. 저와 같이 애국심과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를 볼때면 늘 국가라는 편가리기에 편승해 광신도가 되어가는 것 같아 스포츠와 벽을 쌓아버렸습니다. 대학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올림픽, 월드컵, 프로야구 등을 보면서 스포츠를 탐독하였는데, 상계동올림픽이라는 책을 보게된 이유로 스포츠 경기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군부정권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스포츠와 문화를 행사를 통해 내적모순을 무마하고자 하였죠. 지금도 기억하지만 늘 국풍이라는 문화행사와 프로야구의 출범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나이가 어려 알지 못했지만 대학에 들어오면서 하나둘 알게되었죠. 알게되어 그나마 다행이죠. 스포츠를 즐길 줄 알아야 스포츠를 볼 수 있을 것 지금은 스포츠를 보지 않게 되었죠. 한국과 폴란드 경기의 선의 경쟁보다는 누가 이길까?라는 화두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한국이 이긴들... 폴란드가 이기든... 중요한 것은 열심히 노력하고 훈련한 선수들에 대한 선의의 경쟁입니다. 지든 이기든 열심히 노력한 선수들에 대한 갈채는 스포츠에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승리를 하지 못하면 죄인이 되는 스포츠에서 우린 무엇을 보기위해 열광을 하는지... 한골 두골 들어가 이기면 기분은 좋은 것 이외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술이 가져다준 스포츠는 더이상 패어플레이 정신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스포츠에서 매일 승승장구 할 수 없습니다. 흐린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있듯이 우린 스포츠에서 절대강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강자란 고단한 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산물이니까요. 그러나 우린 선수들의 노고보다는 결과에 흥분한 나머지 비난에 가까운 폄하에 익숙해 졌습니다. "내가 나가면 너보다는 잘 할 수 있다"라는 조롱어린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과 언론들... 과연 스포츠를 즐길 자세가 되어있는지.... 내가 스포츠를 싫어하는 이유... 현대 스포츠는 화합과 선의의 경쟁보다는 국가적 이기와 배타적 문화를 만들어낸 자본의 고도화된 상술이기에 거부합니다. 선수들이 상품화되어 월드컵이라는 장을 통해 상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국가는 이러한 행사를 통해 정권의 견고성을 강고히 하는 스포츠를 싫어합니다. 월드컵 경기후 얼마나 많은 철거민과 노점상들이 월드컵이라는 미명하에 철거되고 생존권을 파손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들만의 잔치에 우린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88년 얼마나 수많은 노점상, 철거민, 노동자들이 탄압을 받았는가? 상계동 올림픽에서 우린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눈물의 머금음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2002월드컴 상암동 철대위 분들은 자신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하루하루 긴장의 날을 보내고 있음을 짐작만 해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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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음악을 들으며...

  • 등록일
    2004/12/21 22:00
  • 수정일
    2004/12/21 22:00
2002년 09월 04일 21시 22분 48초 중학교때 늘 메탈리카, 딥퍼플, 레드 제플린,주다스 프리스트, 메가데스, 헬로윈 등 불법 복제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용산을 누비던 생각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진 지금.... 요즘들어서는 그나마 좋은 음량의 카세트로 노래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좋군요. 컴퓨터 음악이 아무리 정교해진다고 해도 오디오 스피커로 나오는 음악의 감동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인디밴드중에 괜찮은 밴드가 있어 음악을 반복 또 반복해 듣고 있습니다. 카세트도 장만하고 나서 거의 사용을 하고 있지 않아 한번 들어 볼겸해서 컴퓨터로 듣던 음악을 끊고 거금을 들여 음악테이프를 샀습니다.


뭐 좋은 음악이 많이 들어있으면 그 또한 값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장소에 구애받지않고 좋은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게 행복이겠죠. 카세트를 장만하고 거의 사용을 하고 있지 못하다가 요즘 좋아하는 음악테잎이 하나 나와서 반복 또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카세트 테잎의 주인공은 cherry filter(체리필터 인디밴드)라는 밴드의 2집 음악 made in korea입니다. 인디밴드 여성 보컬의 파워풀한 음량으로 노래가 힘이있어 늘 경쾌함에 노래를 듣게 되더군요. 예전에 들었던 하드코아 메탈과 데드 메탈의 음량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계열인 체리필터의 음악을 들으면 또다른 파워풀한 음악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베이스 소리가 끝내줍니다. 또 1집의 난 여자였어와 헤비메탈 콩쥐는 보컬의 파워풀함의 절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가사 또한 인간내면과 일상의 고충을 노래하고 있어 음악과 가사를 감상하는 것 또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 많은 인디밴드들이 나와 있지만 저는 체리필터와 문학선생님이라는 노래를 부른 줄리아 하트 음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더군요. 카세트 음악을 듣는 행위가 요즘 구세대적 행위라지만 시디보다 경제적이고 음악테잎의 복사가 용이하니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전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온라인 생활로 인해 MP3음악을 메일로 보내거나 소리바다에서 공유해 사용할 수 있지만, 직접 좋은 음악을 정성것 복사해 포장을 해서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좀 시간이 걸리지만 정성을 느낄 수 있는 감흥이 있지 않은지... 요즘 이메일이 보편화되어 전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통을 할 수 있다지만 연필을 쓴느 느낌 속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편지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보화에 따라 빠른 효율성이 강조되어 신속하게 정보가 오가지만 인간의 감정과 감흥이 없는 것 같아 못내 아쉽군요. 컴퓨터에서 음악소리를 듣고 있다면 한번쯤 예전에 사용하던 구닥다리 카세트를 이용해 최신곡을 들어보세요. 또다른 마력에 빨려 들어갑니다. 음주가무가 그래서 인간사 희노애락에 최고치가 이런 연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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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풍경

  • 등록일
    2004/12/19 12:38
  • 수정일
    2004/12/19 12:38

2000년 05월 16일 19시 03분 29초
 

회사의 병력특례병들과 친해져 자주 술을 마시러 회사 주변에 술집을 싸돌아 다니고 있죠.

그리고 회사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종종 한답니다.


참 느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의 고민들을 듣다보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그들도 나름대로 미래와 희망이 있더군요. 그런데 사회라는 제도화된 조건에 의해 자신들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꿈이란걸 그냥 자신의 환상으로만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더군요.



대부분의 병역특례병(저희 회사병력특례병)들이 중학교 졸업생들이 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비록 중학교 졸업자이지만 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면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야 느껴보지 못했지만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학력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중요한지를 느끼게 되더군요. 중학교 졸업자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회로 부터의 냉대와 그리고 유흥가 주변에서 자신의 청춘을 허비하는 것도 어찌보면 학력이라는 잣대로 그들을 판단하는 사회가 그들을 유흥가로 밀어넣고 있다고 생각이들더군요.

 

그들도 그곳에 있기가 싫지만 중학교 졸업장 가지고 회사생활하기가 요원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늘 들어간 공장은 쥐꼬리만한 월급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중학교 졸업생이라고 놀리는 비웃음 썩인 뒷다마 그러한 모든게 그들에게 있어 가혹한 정도라고 말하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는 지금 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과분하게 누리면서 살아왔는지 지금 생각되더군요.
늘 부족하게 누렸다고 투덜거리면서 살 생각하면 복에 겨워서 그런 땡깡을 부렸는지 그들의 보면서 반성을 하게 됩더군요. 지금 그래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어 정말 기분좋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젊음에서 느낄 수 없었던 많은 점들을 우리 회사 병역특례병들을 통해서 배워나가고 있죠. 그들이 지금 나의 스승이고 삶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이죠. 그래서 그들과의 술자리에서는 귀를 쫑긋세우면서 술을 먹고 있답니다.

 

오늘도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참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 비록 힘든 병역특례병 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검정고시에 합격해 또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내었으면 합니다. 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든 노동을 하면서 학습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만은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있죠.

 

우리 회사 병역특례병들이 다들 검정고시의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를 글이나마 통해 기원해 봅니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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