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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A. 의식 I. 감각적 확신; <바로 이것>과 사념, §8

(§8) [감각적 확신이 담고 있는 것이 이렇게 보편적인 것이 되는 것은 감각적 확신과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깊은 관계가 있다.] 말하는 순간 감각적 확신과 더불어 우리는 감각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언사행위를 보면, <이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1], 또 <이것이 있다>라고 할 때 사실 모든 것에 적용되는 <있음>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이때 <보편적인 이것>이나 모든 것의 <있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목전에 있는 뭔가 직접적인 것을 목적하고 있지만] 우리의 언사행위는 [결국] 이렇게 보편적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언사행위를 보면 우리가 감각적 확신 안에서 생각하는[2] 것이 절대 그대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가 참다운 것을 말하지 않는가?] 아니다. 대려 언어가 보다시피 감각적 확신보다 더 참다운 것이다. 언어 안에서는 우리도 감각적 확신과 다를 바 없는데, 언어로 우리의 사념을 표현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우리의 생각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보편적인 것이 바로 감각적 확신이 실로 담고 있는 것이기[3] 때문에, 그리고 언어는 오직 이것만을[4] 표현하기 때문에, 감각적인 확신 안에서 사념하는 있음/존재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언젠가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무리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남게 된다.



[1]원문 <aussprechen>. 다른 사람이 듣게 말로 표현하다.

[2]원문 <meinen/사념하다>

[3]원문 <das Wahre/참다운 것>

[4]원문 <dieses Wah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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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A. 의식 I. 감각적 확신; <바로 이것>과 사념, §7

(§7) 우리가 이렇게 감각적 확신이 말하는 것을 써서 보관한다는 것은 그가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듣고서 그를 그가 말한 데로 [그가 말한 것과 일치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지금은 밤이다>라는 말을 [써서] 보관하는 것은 [감각적 확신이] <지금>을 <[목전에] 있는 것>[1]으로 취급하는 것에 합치하게 써서 보관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경과하면서] <지금>이란 것이 사라져 버린다. [항아리란] <지금> 그 자체는 자신을 지켜 그대로 있는데, [그 항아리가 담고 있는 것을 보니 더 이상 밤이 아닌] 더 이상 밤을 담고 있지 않는 <지금>으로 지속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낮이 지금인 <지금>은 낮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그것과 결별하고 자신을 지켜 낮이 아닌 것으로 지속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지금>은 자신을 지키는데 있어서 어디까지나 부정적인 것으로 지속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을 지켜 지속하는 <지금>은 [찍어 들어 올릴 수 있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매개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이 변함없이 존속하는 것이라는 규정성은 타자가 아니라는, 즉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라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개된 것이라고 해서 <지금>이 [단순성을 상실하고 주름진] <지금>이 된 것은 아니다. [이런 매개를 거치는 가운데 <지금>에 뭔가가 상처와 같이 응어리 지거나 딱지로 남아있지 않고][2]어디까지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주름이 없는 [매끈한] 단순한 <지금>일 뿐이고, 이런 단순성 안에서 <지금>은 그 안에서 들러리 하는 것에[3]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낮이나 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은 존재하는데 있어서 타자존재양식을 취해도 그것에 전혀 물들지[4]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을 통해서 존재하는 이와 같은 [굽힘/주름이 없는] 단순한 것, 즉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딱 찍어 잡아 들어 보여줄 수 없는 것[5], 그러면서도 여기에 개의치 않고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가운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을 우리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 감각적 확신이 진리라고 담고 있다고 내놓는 것이 사실 [직접적이기는커녕] 보편적인 것이다.



[1]원문 <Seiendes>

[2]데리다의 <incision>, <Mal>

[3]원문 <bei herspielen>

[4]원문 <affizieren>

[5]원문 <Nichtdie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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