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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WAR ERDE IN IHNEN, und
sie gruben.
Sie gruben und gruben, so ging
ihr Tag dahin, ihre Nacht. Und sie lobten nicht Gott,
der, so hörten sie, alles dies wollte,
der, so hörten sie, alles dies wußte.
Sie gruben und hörten nichts mehr;
sie wurden nicht weise, erfanden kein Lied,
erdachten sich keinerlei Sprache.
Sie gruben.
Es kam eine Stille, es kam auch ein Sturm,
es kamen die Meere alle.
Ich grabe, du gräbst, und es gräbt auch der Wurm,
und das singende dort sagt: sie graben.
O einer, o keiner, o niemand, o du:
Wohin gings, da’s nirgendhin ging?
O du gräbst und ich grab, und ich grab mich dir zu,
und am Finger erwacht uns der Ring.
파울 첼란의 “Niemandsrose"(아무도 아닌 이의 장미)란 시집의 첫 시로 게재된 위의 시를 내키는 데로 번역해 본다.
옛날 옛적에 그들은 흙에서 나와 흙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니고 있는 흙과 땅을 갈았다.
언제인가부터 그들을 굴을 파고 들어가지 시작했다. 그들은 이렇게 굴을 파고 들어가면서 날을 보내고 밤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은 신찬양을 멈추었다. 그들이 들었던바 이 모든 것을 원하고, 그들이 들었던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신을 더 이상 찬양하지 않았다.
그들을 계속 굴을 파고 들어가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지혜롭게 되지 않았고, 노래 한가락도 흘러 내보내지 않았고, 어떤 말도 지어내어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들을 그저 죽음을 향한 굴을 계속 파고 들어가기만 했다.
세미한 소리와 함께 온다고 하던 것은 오지 않고 다만 폭풍이 오고 모든 바다가 뒤따라 왔다. 나는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을 뿐이고 너도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을 뿐이구나. 그리고 저기 저 지렁이도 역시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을 뿐이구나. 한가락 노래가 들리는듯하면서 말한다. 그들은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고.
아! 그 한 분은 어디로 가고 아무도 없단 말인가. 아무도 아닌 이여, 그대가 바로 너인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 곳으로도 가지 않았는데? 아! 네가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고 내가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구나, 그리고 나는 내 안의 흙을 파헤치면서 너에게로 파고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흙을 긁어내는 우리의 이 손가락에 너와 나를 하나로 잇는 반지가 깨어나는 구나.
(§15) 그래서 이와 같은 순수한 직접성은 나무를 보고서<여기>하고 밤을 보고서<지금>할 때, 이<여기>와<지금>의 다른 존재양식[1], 즉 나무로서의<여기>가 나무가 아닌<여기>, 그리고 밤으로서의<지금>이 낮으로서의<지금>으로 이전하든 말든, 아니면 나무와 밤과는 다른 것을 대상으로 하는 다른 자아가 있든 말든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않고 또 동요되는 법도 없다. 이 직접성이 담고 있는 것은[2]<나>라는 자아와 대상간에[꼰대로서의] 본질과 들러리라는[3]차별을 두어 이쪽과 저쪽 중 그 어느 한쪽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간의 관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계 안에서는 양자간 어떤 차이도 스며들 틈이 없기 때문에 그 관계에 변화가 발생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 순수한 직접성이 담고있는 것은[4]항상 자신을 지켜 유지하는 양자간의 한결 같은 관계다.[5]무슨 말인지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6]. 여기 이 자리에 서있는 나는[7]<여기>가 나무라고 주장하고 여기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 결과, <여기>가 나무가 아닌 것이 되는 법이 없다. 그리고 나는 다른 자아가<여기>를 나무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거나 또는 상황이 바뀌면[8]나 자신이<여기>를 나무가 아닌 것으로 또는<지금>을 낮이 아닌 것으로 취급할 것이라는[세상살이의 지식을] 모두 지워버리고[9]나는 오로지[내가 마주하는 것에 완전히 빠져들어가 그것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순수한 바라봄일[10]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내 자신을 지켜 흔들림 없이[11]<지금은 낮이다> 아니면 이것과 무관하게[12]<여기는 나무다>라는 직관에서 벗어나지 않고[이런 직관 안에서] [서로 무관한] <여기>와<지금>을 비교하지도 않는다. 나는 오로지[마주하는 대상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13]하나만의 관계만을 붙잡고<지금은 낮이다>라고 할 뿐이다.
[1]원문 <Anderssein>
[2]원문 <Wahrheit>
[3]원문 <Unwesentlich>
[4]원문 <Wahrheit>
[5]원문 <sich selbst gleichbleibende Beziehung>.
[6]원문 <also>
[7]원문 <ich, dieser>
[8]원문 <ein anderes Mal>
[9]원문 <keine Notiz nehmen>. 현상학이 말하는 환원과 에포케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10]원문 <reines Anschauen>. 지금 그것을 바라보는 것 외 다른 것이 없는 직관 행위
[11]원문 <ich für mich>
[12]원문 <auch>
[13]원문 <unmittel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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