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당명 "새누리당"에 대한 단상

„진보신당“이란 당명 때문에 진보신당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진보신당이 최근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천 잡음의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다름 아닌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을 국민들이 많이 헷갈려하기 때문입니다. 진보신당 당사로 "왜 이정희 대표는 사퇴하지 않는 것이냐"는 항의 전화가 옵니다. 동네에서 발로 뛰는 20여명의 지역 후보들은 주민들에게 두 당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데 선거운동의 절반 이상을 써야 합니다.“ (http://www.newjinbo.org/n_news/news/view.html?no=659)


„진보“란 이름과 함께 모든 걸 갈아치워야 할 때가 왔나 보다. 기회로 봐야지 이름을 남용한다고 통탄할 일이 아니다.

한국에 분명 호명법이 있을 것이다. 이건 잘 모르겠고, 단지 고대 희랍에서도 ‚이름’을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이름’을 사유하는 고대 희랍은 세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즉 오노마,  에포스, 그리고 로고스다. '다 뭘 두고 말하다'란 기본 의미에 오노마는 ‚부르다’란 동사 오노마째인을 명사화한 것이고, 에포스는 ‚말하다-서사하다’란 동사 에이페인을 명사화한 것이고, 로고스는 ‚앞뒤가 맞게 말하다’란 동사 레게인을 명사화한 것이다. 이런 구조 안에서 오노마와 에포스가 공유하는 의미인 „약속“을 로고스가 실천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름’과 ‚실천’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근데 „새누리당“이란 당명과 강령에 이런 고대희랍적인 이름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 그냥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강력한 윤리강령을 내놓고 있다.

한국 좌파의 이름, 약속, 그리고 실천은 뭔가? 이제 어떻게 이름할 것인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선비, 자리싸움, 야권연대

한자/한문을 제공하는 워드의 툴이 없으면 하늘천따지 하고 꽉막일 사람이 유학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논하지도 않을 것이고.

근데 선비하면 강하게 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이미지가 있다. 더럽고 치사하다고 자리를 차 버리고 낙향하여 시골에서 서당하는 선비의 모습이다.

잉여가치에 충혈된 자본주의 흡혈귀 ‚머시너리’(Maschinerie)에 예속되어 몸 주고 이제 마음까지 거의 다 준 상황인데 선비운운하는 건 아마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사람이나 떠드는 말이라고 할 것이다.

근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선비’하니까 민심이 동요한다. 때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위기때마다, „난 자유가 좋아“를 제창하게 하면서 헌신과 충성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에 완전 예속된 것처럼 보이는 민심이, 다른 걸, 소위 대안이란 걸 보지 못할지언정, 열심히(!) 자리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심어져 있는 다른 그림을 본다.

자리에서 내려온 새누리당 김종인과 자리에 붙어있는 한명숙, 이정희가 대조된다. (어, 이정희 자리 내놓았다네. 쯪쯪).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선비와 자리싸움을 자기 이데올로기로한 중산층의 마인드를 그대로 보여주는 „야권연대“가 대조된다.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자리싸움에 시달리는 민심이 최소한 보고싶어 하는 것은 김종인과 같은 선비의 모습이다.

과거에 뿌리하는 마음가짐이지만 여기에 미래가 없다곤 할 수 없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