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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9/22
    소꿉장난
    새삼
  2. 2005/09/22
    이미 잊혀진 뜨거움에 대해..
    새삼
  3. 2005/09/20
    귿~ 모닝 베베(1)
    새삼
  4. 2005/09/20
    잃어버린 입맛
    새삼
  5. 2005/09/20
    빈티리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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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9/20
    연휴 끝.
    새삼
  7. 2005/09/16
    추석의 추억,(2)
    새삼
  8. 2005/09/14
    (1)
    새삼
  9. 2005/09/13
    비 온다.
    새삼
  10. 2005/09/13
    혼자서?
    새삼

불평분자의 하루

1.

고향만두 더럽게 맛없다.

고기에선 노린내가 나고 만두피는 다 찢어진다.

만두는 두부랑 숙주 잔뜩 넣고 약간 두툼한 피에다 담뿍 담아 주먹만하게 만드는 게 최고다.

맛없는데 그냥 먹었다. 혼자 앉아 열나 투덜거리면서 우적우적.

 

2.

창조적인 하루를 보내고자 책을 만들려고 했는데

집에 칼도 없고 가위도 없고 실도 없고 큰 바늘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젠장.

 

3.

필름 스캔 몇 개 하다가 스캐너에 오류가 났다.

피씨 재시작하면 된다기에 두 번이나 재부팅했는데

계속 오류난다. 절대 안 된다. 완전 최고 짜증.

 

4.

집에 가야 되는데 너무 귀찮다.

옷도 안 갈아 입고 씻지도 않고 있다.

토스트가 너무 먹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다. 귀찮다.

웩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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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손을 꼭 붙잡고 가는 세 아이를 보았어.

썩은 돼지님의 [의기양양] 에 관련된 글.

 

배트의 글을 읽다가 지난 5월에 홈페이지에 써 놓았던 글과 사진이 생각났다.

다리가 겨우 의자 끝에 닿았던 꼬마 아이.



 

 

 


 

 

 



동대문 쇼핑으로 기분을 달래러 가던 길이었어.
맨 뒷자리에 앉아 잠이나 좀 자려는데,
귀여운 꼬마 셋이 내 옆에 앉아있었지.

제일 큰 형, 막내를 돌보는 누나, 그리고 다리가 겨우 의자 끝에 와 있는 막내 꼬맹이.
자꾸 이 아이들을 쳐다보게 돼서 잠을 못 잤어.
어딜 가는 길이야?
내 옆에 앉았던 분홍색 잠바를 입은 여자 아이에게 물었지.
엄마 보러 가.
엄마 보러? 엄마 어디 계신데?
공장에.
그 때 시간은 8시가 넘어 어둑할 때라, 꼬맹이 셋이서 엄마 공장을 찾아서 버스 타고 간단 얘기에 좀 놀랐어.
엄마 공장은 어디야?
어딘 지 알아. 조금만 더 가면 돼.
아이는 너무 씩씩해 보였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동생의 다리를 모아주느라 정신없어 보여서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는데,

맨 창가에 앉아 있던 큰 오빠는 책임감에 얼굴이 무거워져서,

괜히 말을 거는 나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봤어.
근데, 난 그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또 대단해보여서 눈을 뗄 수가 없었지.
내릴 때도, 자기도 이 버스 속에선 작고 작은 꼬맹이인데도, 동생이 넘어질까 끊임없이 잡아주는 아이를 보니까, 내 어릴 때도 저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동생 손 잡고 버스 타고, 처음으로 엄마 사무실에 찾아갔던 기억이 났어.


그 사람 많던 동대문에서 그 애들은 너무 작아 쉽게 사라져 버렸지만,

그 꼬맹이들이 나보다 더 어른인 거 같아 부럽기도 했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고 싶었는데, 큰 오빠의 눈초리 때문에 몰래 겨우 한 장 찍었다. 막내 꼬맹이의 다리가 정말 귀여웠는데. 그 꼬맹이들의 뒷 모습에 괜시리 울컥거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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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정말 웃기게도, 결혼하는 꿈을 꾸었다.

그것도 딱 결혼식 장면이었다. 결혼식 직전에 드레스를 입고 있는 내 모습 시작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이 끝나는 것.

그런데 이 꿈 속에 최근 내가 고민하고 있는 수 많은 것들이,

무슨 소설 속의 알레고리처럼 다 숨겨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장면과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일어나서 나는 내 마음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아 허허 하고 웃어버렸다.

 

오늘 종일 꿈 속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꿈 속의 나의 미안한 마음도,

어쩔 줄 모르는 선택의 순간도, 그리고 후회도 그대로 그렇게

하루종일 마음이 저릿저릿 아팠다.

 

오늘 밤은 행복한 꿈을 꾸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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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종종, 마음 속으로.


 

토마상 그림은 포근해서 좋아.

나도 늘 마음속으로 계속계속 얘기하는데,

마음 속에서 크게 말하는 법을 아직 몰라서,

내 몸은 잘 듣지 못하나 보다.

 

아, 그러니 잘 좀 해라.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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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곱게 가지려 해도

아주아주 미운 사람이 있다.

아니, 미운게 아니라 싫은 사람.

화가 났다.

화가 너무 많이 나서 그 사람을 만나서 싸대기라도 한 대 올려 붙여주고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람을 더는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만큼

당신도 그 만큼, 받을 지도 몰라.

그러니 그렇게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아줘.

여기 와서 이 글을 읽을리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지 말아줘.

부족한 것 없는 채로 살면서, 그래도 당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했다고 그렇게, 그러면 안 되지.

정말 싫다,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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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y Porgy

뎡야핑님의 [Georgy Porgy] 에 관련된 글.


 

들으시려면 우선 배경음악 ESC눌러 끄시고...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셔요~

 

+) 이건 Eric benet (feat. Faith Evans)의 조지 포지 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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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비가 엄청 쏟아진다,

그러다 또 말기도 하고.

오늘 날씨 정말 이상해.

택시를 타고 한 200미터 가니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무슨 영화 속 한 장면 처럼, 그것도 막 데이빗 린치 영화 같은 거 처럼,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비가 쏟아졌다.

 

내 모습 같았다.

오락가락거리는 거나

미친듯이 퍼부어대는 거나

 

반성해라.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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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좋아. 존경해.

 
뭐 사람들은 비웃을 수도 있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하나는 바로 김병욱 피디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던 고3시절에도,
9시 반까지 꼬박꼬박 집으로 들어왔던 건
바로 <순풍 산부인과>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찾아내는 일상의 재미에 탄복했다.
특히 사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 그 캐릭터의 발견.
그리고 동시에 그가 찾아내는 일상의 쓸쓸함에도 늘, 감탄했다.
똑바로 살아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뭐랄까, 슬프지만 현실.
누구보다 삶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 했었다.
 
 
귀엽거나 혹은 미치거나 가 조기종영한단 얘길 듣고,
와 SBS 정말 가차없구나,
나름대로 유명한 피디에 내용도 괜찮은데,
시청률 안 나온다고 두어달 방송하고 접어버리다니. 심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우연히 드라마몹 블로그에서 김병욱 피디 인터뷰를 발견했는데,
읽고나니 이 사람 더 좋아지는 것 같다. ㅎㅎ
나랑 좋아하는 장면도 비슷하다. 후후.
 
 
관련 기사 - 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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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할일과하고싶은일과나.

예전에 좋아했던 만화 중에 119구조대라는 게 있었다.


 

바로 요것. (최근에는 슬램덩크마냥 큰 새 책으로 나왔다. 아 사고싶어)

 

주인공인 다이고는, 본능에 충실한, 문제많은, 천재, 소방관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원래는 잘 하는 것 없는 문제학생이었는데,

어쩌다(?)-사실 좋아하는 여자때문에 ㅋ - 하게된 소방관 일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거다.

이론이나 규칙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순간순간의 느낌으로 누구보다 화재현장을 잘 진압해내는, 꼬맹이 녀석.

 

아, 어쨌든 만화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하려던 건 아니고,

(언제나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이고 녀석의 한 가지 철학이 오늘 문득 떠올라서인데,

바로 이거다.

"나와 가까운 사람은 가장 나중에."

화재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할 때, 다이고는 늘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마지막에 구했다.

 

약간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나는 좀 그런 편이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불친절하게, 대해왔다.

약속을 정할 때도, 일을 할 때도 가까운 사람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어냈다.

그래도 다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도 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을 가장 나중으로 두는 건, 나의 철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건,

화재현장에서 본능으로 모두를 살려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닌 나에겐,

가장 가까운 사람만을 구해내지 못할지도 모르는 나에겐,

이건 상당히 필요없는 책임감이며 나의 가까운 사람에게는 상처 일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그 쓸데없는 철학을 버렸었는데,

 

요즘엔, 그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무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나는 고스란히 이 위에 쓴 순서대로 그 일들을 진행한다는 거다.

그래서 오늘 약간 우울해졌다.

해야 하는 일은 아닌데 무지 하고 싶은 일이, 상처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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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티비.

 

하루종일 티비만 봤음 좋겠어.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알콩달콩 행복하게.

 

스티브를 만난 미란다처럼, 챈들러를 만난 모니카처럼. 그렇게.

 

더 이상 멍하게 살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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